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3:22:13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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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1. 개요2. 사업3. 성과4. 역대 이사장5. 다른 세력들의 폄훼와 왜곡
5.1. 이덕일을 비롯한 유사사학계의 공격5.2. 동북아역사지도 사건
5.2.1. 독도 누락 문제5.2.2.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불신 문제5.2.3. 한사군 문제5.2.4. 삼한의 위치 문제5.2.5. 조위의 영역 문제5.2.6. 폐지와 재시작
5.3. 독도 관련 유언비어
6. 총서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7.2. 지하철

1. 개요

동북아역사재단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하여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 및 독도 관련 사항에 대한 장기적·종합적인 연구·분석과 체계적·전략적 정책개발을 수행함으로써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및 번영의 기반을 마련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법인)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이라 한다)은 법인으로 한다.

제23조(「민법」의 준용) 재단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공식 홈페이지
동북아역사넷
동북아역사재단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동북아역사재단법)

2006년 9월 28일 설립된 정부 산하의 역사연구기관.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기타공공기관)이다. 정확히는 2004년 창설된 고구려연구재단에서 확대 개편된 기관. 근거법률을 보면 특수법인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재단법인이다.[1]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인접국의 역사학자들과 교류를 아끼지 않는 등 극단적 민족감정과 국수주의로 똘똘 뭉친 집단은 절대 아니다. 또 반대로 식민사관이나 동북공정을 찬양하는 재단 역시 아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81 (미근동) 소재.

연구원노조는 민주노총 공공연구노조 소속이다.

2. 사업

동북아역사재단은 근거법률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행한다(동북아역사재단법 제5조 제1항).
  • 동북아시아의 역사정립을 위한 조사·연구
  • 독도 관련 사항에 대한 조사·연구
  • 동북아시아 역사 및 독도 관련 전략·정책대안의 개발 및 대정부 정책건의
  • 동북아시아 역사 및 독도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교류
  • 동북아시아 역사 및 독도 관련 홍보·교육·출판 및 보급
  • 남해·독도의 표기 관련 체계적 오류시정활동
  • 고구려 발해 동북공정 반대 및 만주지역 한국역사 홍보와 연구활동

3. 성과

동북공정의 내용을 반박할 만할 많은 연구 성과들을 내놓고 있지만 대중은 그 성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우리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도서관 역사코너에 재단의 서적들이 많이 비치되면서 지명도가 높아졌고, 역덕후들 사이에서는 책 내용도 개념 잡힌 책으로 꼽히고 있다. 일본, 중국, 미국 유럽지역의 학자들이 지은 좋은 서적들도 번역하여서 출판하고 있다.

2019년 고대사학회와의 공동 연구에서 충주 고구려비를 최첨단 기술인 3D 스캐닝 데이터와 RTI 촬영으로 판독하여 영락7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국가기록원과 협약을 맺기도 했다. #

2017년 고구려 평양성을 국내외 최초로 입체로 구현하여 상상도를 만들었다.

4. 역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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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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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참여정부 <nopad> 이명박 정부 <nopad> 박근혜 정부
초대
김용덕
제2대
정재정
제3대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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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섭
<nopad> 문재인 정부 <nopad> 윤석열 정부
제5대
김도형
제6대
이영호
제7대
박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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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배 (2004~2006)[2] : 고려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한국 고대사 전공.
  • 초대 김용덕 (2006~2009)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명예교수. (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 일본 근대사 전공.
  • 2대 정재정 (2009~2012) :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한국 근현대사 전공.
  • 3대 김학준 (2012~2015) : 정치학자이자 12대 국회의원. 서울대학교, 단국대학교, 명지대학교 정치학과 등에서 교수로 재직.
  • 4대 김호섭 (2015~2017) : 중앙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정치학 전공.
  • 5대 김도형 (2017~2020) :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 근현대사 전공.
  • 6대 이영호 (2020~2023) : 인하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한국 근현대사 전공.
  • 7대 박지향 (2023~) :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영국사 전공

5. 다른 세력들의 폄훼와 왜곡

5.1. 이덕일을 비롯한 유사사학계의 공격

2014년 3월, 이덕일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식민사학에 동조한다고 망언을 했다.[3] # 반대단체까지 만든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이런 유사역사학을 '비주류 학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소개

2014년 4월 28일자로 올라온 역사연구실 상고사 연구용역 과제 공모가 유사역사학을 다룬다고 이전 버전에서 썼지만, 첨부 파일을 보면 유사역사학과는 관련이 없다. 5월 13일 개최한 상고사 학술회의 개최가 유사역사학을 다룬 자리라고 했지만 신동준, 김운회 등 유사역사학에 물든 인사들이 끼어 있어서 그렇지 유사역사학에 치우진 회의는 아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릴 정도의 단체는 아니다.

5.2. 동북아역사지도 사건

2015년 4월 17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약명 동북아특위)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의 사업 중 하나인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부분과 관련하여 큰 충돌이 있었다. 이덕일 한가람연구소장은 이 지도가 철저히 노론사관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매국사학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덕일이 이렇게 주장한 근거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일부 지도에서의 독도 누락, 둘째로 한사군 한반도설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고대사 왜곡이 반영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지도 편찬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5.2.1. 독도 누락 문제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독도 누락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도는 지도에 멀쩡히 있다.

빌미를 준 것은 이덕일의 문제제기에 대한 임기환 편찬위원의 해명 발언이다. 속기록 내용
이덕일 : "그 다음에 24쪽을 한번 보시면 신라의 팽창 551년~600년에, 여기에도 독도를 안 그려 놨어요. 그러니까 지금 독도 문제 가지고 우리가 일본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가 됐고 논쟁이 되고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 지도를 그리면 당연히 독도를 표기해야지요. 그런데 독도를 표기 안 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지증왕 13년에 다 장악했다고 나왔는데 안 해 놨지요."

임기환 : "아까 24쪽[4]의 독도 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지적한 대로 이 지도에서 독도가 누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실수입니다. 저희 지도는 GIS 프로그램,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매 지도의 출력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저희 지도가 완성된 게 아니고 수정 보완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지도를 할 때 아마 이 부분이 잘못 잘린 것 같습니다."
GIS 프로그램 자체가 출력 범위를 정하게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출력 범위에 기본적인 섬 등은 출력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이 말을 곡해하면, 누락될 수 없는 독도가 실수로 누락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지도 자체를 보지 않고 나온 이야기로, 지도는 필요에 따라 임의로 다른 부분을 잘라내고 특정 지역만 나타낸 부분 지도다. 근데 독도 부분까지 나오게 하지 않은 부분 지도라서 독도가 잘려나간 것이다. 즉, 정말 이건 그냥 실수다. 근데 마치 이것이 역사 지도 자체에서 독도를 날린 것이라고 왜곡되면서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독도가 없다는 지도는 완성본이 아니며, 디지털화한 지도에는 독도가 포함되어있다. # 만약 여기서 이건 잘린 거고 다른 지도에는 다 있다는 것을 명명백백히 보여주었다면 문제는 식어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 동북아역사재단은 전방위에서 대규모 폭격을 받았고, 이덕일은 "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라는 불쏘시개를 발간했다. # 이 책에서 이덕일은 모든 지도에 독도가 누락되어 있다는 것을 열심히 떠벌리며 동북아역사재단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독도가 없다"며 올린 지도에도 독도는 멀쩡히 보이고 있다. 애초에 네모로 표기를 했는데 왜 저렇게 길게 되어 있겠는가. 울릉도만 네모 표기를 한다면 저 모양이 안 나온다.

지도 및 자세한 반박은 링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 누락 조작 사건 문서 참조.

5.2.2.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불신 문제

삼국사기 초기 기록과 관련하여 이덕일이 지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4세기 초까지 백제와 신라, 가야가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나옴
-- 지도상에서 삼한의 한 지점을 행정구역상 '백제국', '사로국', '신라국'으로 표기
2. 고구려 모본왕 2년 한의 하북성 및 산서성 일대를 공격했다는 기록 반영 X
3. 고구려 태조왕 때 쌓았다고 나오는 요서 10성이 없음
여기에 대한 임기환 편찬위원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1.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오직 백제와 신라만이 표현되어 있고,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3세기까지의 기록이 삼한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히려 삼국지 동이전 기록은 그 안에 있는 많은 속국과 정치체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편찬 과정에서 이 두 기록을 합쳐서 백제국, 사로국, 신라국으로 표기하였다.
2. 모본왕 기사는 공격에 대한 기사이다. 공격 기사가 영역의 확보를 확정하는 기사는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았다.
3. 요서 10성을 쌓았다는 기사는 다른 사료를 볼 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실현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검토해야 할 내용이고, 아직은 이 기사에 맞춰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된 것이 없다.
삼국시대와 관련해서는 굉장히 많은 사료가 있으며, 사료에 따라 엇갈리는 내용이 있으면 엄밀한 검증을 통해 확인된 합리적 사실만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역사학자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이에 따라,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기년, 연령대 등 다양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아직 국경도 맞닿지 못했을 건국 초기에 백제와 신라가 서로 싸우거나, 막 한강 유역에서 건국된 백제가 마한을 바로 멸망시키거나, 고구려 태조대왕이 118세까지 산다거나, 태어나지도 않은 석탈해가 신라에 도착하는 등 삼국사기 초기 기록들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어느정도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삼국사기의 저술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삼국시대 초기는 1000년도 더 전의 일이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덕일은 이것이 임나일본부 존속과 식민사학을 전제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한다고까지 왜곡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학교 역사 과정에서도 나오는 단순한 사료 비판 문제이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아니다. 즉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으로서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며, 학술적 영역에서 해석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학자로서의 기본 소양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수정론 식민사관설을 참조하자.

5.2.3. 한사군 문제

이 문제에 대해 세계일보가 단독이라며 뉴스를 내보냈는데,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싣는다는 보도였다. # 문제는 그게 한사군 문제였다. 오직 중국과 일본과 겹친다는 이유로 역사왜곡이라는 논리적 오류를 선보이며 동북공정 식민사관을 부추긴다는 저질 보도를 하였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낙랑군의 위치이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동강설, 요동설, 난하 및 대릉하 인근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중에서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대동강설이고, 이것은 평양 인근인 정백동 364호 목곽묘에서 초원 4년의 낙랑 25개 현 호구부가 출토되어 고고학적으로 어느 정도 증빙이 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낙랑국과 낙랑군이 따로 있었다는 설도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임기환 편찬위원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낙랑군의 위치 문제는 이제 상당 부분 논의가 정리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낙랑군을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위치 주느냐는 문제로 논의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즉,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라 낙랑군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주장은 다양한 설이 있고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설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채택한 것뿐이다. 그것이 중국과 일본이 채택한 설과 같다고 하여 이를 비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한사군 위치 한반도설'은 동북공정이나 식민사관과 연결지어 공격하는 그들의 주장과 다르게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꽤 오래된 학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설 참고. 이 부분에 대한 합리적이고 학술적인 토론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이것을 매국사학이라고 몰아가는 행위는 대중의 심리에 기대어 학술적인 내용을 왜곡, 기만하려는 악랄한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가장 보수적이라는 현행 역사 교과서에서 이미 한사군을 한반도 내에 표기할 정도로 주류학계에선 한사군 한반도설이 정설이며 그 외의 주장은 거의 지지받지 못한다. 당장 고고학적으로나 문헌학적으로나 그 증거가 너무 뚜렸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 외에 한사군이 있었다는 주장은 '한사군 교치'[5]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2.4. 삼한의 위치 문제

가장 어이없는 논의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하자면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한반도에 있지 않고 요동을 비롯한 만주에 있었는데 이를 지도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실로 대륙삼국스러운 주장이다. 이덕일이 언급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한(韓)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위서》동이전
한반도는 사방 4000리에 달하지 않으니 삼한은 만주에 있었다는 주장인데, 살펴보면 기사의 기본설정부터 잘못되었다는걸 알 수 있다. 사방이 4000리(1570km)에 달하면서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막힌 그런 지형은 동아시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덕일은 사방 4000리에만 주목해서 이런 내용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같은 책의 '왜인전'을 보면 대마도(남북 70km, 동서 15km)를 사방 400리(160km)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이 특정 지역의 '둘레'를 '사방'으로 잘못 적은게 아니라면 그저 그 당시 중국인들의 무지함만을 증명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삼한의 방위와 위치는 대개 지금의 봉천 동북에서 길림 일대에 준해 있었고, 조선에 접해 있던 땅이며, 우리나라의 국조가 처음 터를 잡았던 곳과 가까운 곳이다
만주원류고
이외의 이덕일이 언급한 만주원류고에도 실제로 삼한이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만주원류고 자체가 일본서기처럼 청나라의 프로파간다 목적이 있는 책이고, 삼한이 있던 때보다 한참 뒤인 1777년에 완성되었으며, 중국의 동북공정처럼 과거 한국계 국가들을 만주족의 조상으로 편입시켰다는걸 감안하면 만주원류고를 한국의 상고사를 이해하는 일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고조선과 고구려는 자국사로 넣기 껄끄러웠는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애초에 이런 기록은 다른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와 전혀 부합하지 않아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한국의 족보들처럼 사학계에선 진지하게 논의되지도 않는다.

5.2.5. 조위의 영역 문제

중국의 삼국 시대 조위의 영역 문제 또한 대중에게 어필하기 굉장히 좋은 소재였는데, 그 지도에서 조위의 영역이 현재의 한반도 중북부 지역까지 뻗어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지도의 형태는 동북공정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의 자료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역사지도집은 1987년에 출간된 책이고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시작된 건데 일단 지적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담기양의 '중국 역사 지도집' 자료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위촉오 221년~265년'
이 지적은 일단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동북아역사재단 측의 얘기에 따르면, 말 그대로 '작업중'인 문서이다. 현재 한국에는 한국만의 역사 지도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이며, 동북아역사재단의 작업은 이 역사 지도를 구비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 일본 등에서 제작된 자료가 있다면 우선은 그 데이터를 넣고, 그것의 오류와 누락 등을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아예 땅바닥에 헤딩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덕일의 말대로 '베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왜 그러냐고 하면 답할 말 또한 없다.

즉,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이 작업은 아직 작업중인 문서의 중간 점검 단계라는 것이다. 5년 계획이 8년 계획으로 바뀌고 예산이 46억 8천만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 전체를 정리할 때 충분한 기간이요, 충분한 예산인가? 역사에 대한 중국은 심원공정과 탐원공정 작업 과정에서 수조 원의 비용을 투입하였고, 수많은 역사학자를 육성하여 조직적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깟 지도에 50억 가까이 들은 게 아니라, 그 정도 지도에 50억밖에 안 든 것이다. 애초에 GIS 프로그램 구입만 해도 몇억이다. 이같은 역사학자들의 노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비판으로 찬물을 끼얹는다면, 이 나라의 역사학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다만 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졌는데, 이 자료가 미국 의회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제출되었다는 것이다. # 다른 문제는 몰라도 이 상황에 이러한, 동북아역사재단의 말에 따르면 미완성된 지도가 한국 정부의 공식 지도인양 보내졌다면 이것은 일종의 관리 소홀 문제로 지적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며, 지금까지의 반박이 거짓부렁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 되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고조선과 동시대에 존재한 진번국과 한사군 진번군을 혼동해서 진번국을 표기한 지도를 가지고 한사군이 '진번국'이 존재한 시기에 존재했다고 왜곡했다고 하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으니까 문제라고 하는 등, 이 항목 위에서 지적된 악의적인 동북아역사재단 깎아내리기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데다 확대재생산까지 하는 문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5.2.6. 폐지와 재시작

사실 이 문제에는 이덕일류의 재야사학쪽 문제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 내용이 겉으로 강조된 것은 2년여간의 토론회가 이어졌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문제였기 때문인데, 여기에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속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이사장이었던 김학준이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술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의 준비위원장 겸 고문을 맡은 전례가 있다. 즉 이덕일 등의 공격을 당할 빌미를 지닌 인사가 수장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사람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정치부 기자출신 정치가이다. 결국 유사역사학자들이 압박해오자 “문제가 다수 발견돼 지도 편찬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연구 책임자인) 서강대 윤병남 교수팀에 지도 관련 데이터와 시스템을 회수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이덕일 세력에게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 그 모습은 이상일 위원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지금 만드는 지도가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독도를 누락한 것은 실수이고 또 일부 위나라 문제인가요, 그것에 대해서는 중국 측의 지도를 반영하다 보니까 아직 제대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지금 우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수로 치부를 하셨고요. 그 나머지는 그러면 대체로 완벽하다는 주장을 하신 것 같은데, 물론 만드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님 같은 경우는 이걸 폐기를 하시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고, 그다음에 교육부는 3년간 앞으로 검수를 하겠다고 하나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 지금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학계가 충분한 검토를 했고 여기 과정에 보면 몇 차례 회의를 거쳐서 그 학계의 입장을 가능한 한 많이 반영한 지도를 현재까지는 만들었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이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김학준 이사장은 이걸 폐기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논란이 유사역사학 vs 뉴라이트 구조는 아닌 것. 오히려 유사역사학+뉴라이트 vs 기존 역사학계의 싸움이다.

다음은 국정감사위원인 김상일 국회의원의 페북 내용이다.
국회 국정감사 때문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5일 오후에 열릴 예정이던 정의화 국회의장과 사울리 니이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의 만남에 동행하는 일정을 포기하고 이날 아침 귀국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의 국정감사장으로 직행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등을 상대로 한 이날 국감에서 저는 일본, 중국의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2012년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의 식민사관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내용의 자료를 미국의 권위있는 기관인 미 의회조사국(CRS)에 보냈고, CRS가 그걸 바탕으로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지도들을 담은 보고서(사진)를 발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단이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의 식민사학을 앞장서서 도와주는 한심한 일을 했다고 비판하고 속히 시정조치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문제가 또 생겼다. 문제가 되기 시작한 시기 이사장 김학준이 뉴라이트의 역사쪽 총본산인 한국현대사학회 창립임원이었는데, 이걸 이어받은 김호섭도 한국현대사학회 이사였다. 즉 뉴라이트 이사장이 물러났더니 다시 뉴라이트 이사장이 이어 받았다. 김학준이 정치부 기자출신 정치학자이자 정치인이었는데, 이어받은 김호섭도 전공이 정치학 박사이고, 중앙대학교에서도 국제관계학 교수를 지낸 국제정치 전문가다. 여기에 현대 일본학회 회장까지 역임했으며, '역사학에 중점이 있느냐, 정치학에 중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치학'이라고 대답한 인물이다. 건국절 논란에도 한 몫 했던 전적은 차처해도, 국제 정치학자가 왜 역사재단 이사장으로 꽂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취임시기 논란을 다룬 미디어 오늘 기사 여기에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의 편찬심의위원 12인중 1명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한겨레 기사

결국 2016년 6월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은 폐기되었다.
그런데 웃긴건 이덕일 등의 문제 제기는 2년여동안 토론을 통해서 진행 되었지만, 폐지논란은 김호섭이 이사장이 된 1년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폐지를 반대했던 김민기(정치인) 당시 국회의원은 이 폐지가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다룬 초록불 블로그의 포스팅. 이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편찬 의도와 연관이 있다. 문제가 된 나머지 모든 이사장이 역사학자인데 딱 2명의 정치학자 출신인 이 2명의 뉴라이트 출신 이사장은 바로 박근혜 정부 기간에 임명되었다. 김호섭이 물러난 것은 그를 지지하던 박근혜 탄핵 이후이다.

2018년 2월 동북아 역사지도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게 되었다.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서강대와 연세대 산학협력단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것 대신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직접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야 역사학자들과의 토론회도 없고, 뉴라이트 출신 정치인 이사장도 없는[6] 역사지도 사업이 시작되게 되었다. 조선일보 기사

그러자 이덕일 지지층에서 김도형 해임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기도 했다. 1개월 동안 8천명도 못모았기 때문에 자동 폐기.

5.3. 독도 관련 유언비어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의 독도 주장과 같은 주장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 주장을 한 건 독도수호대인데, 사실이 아니다. 해당 사건의 진실은 이 링크를 참고. 독도수호대의 주장과 달리 해당 일본인도 은주시청합기를 분석한 결과 '일본의 서북한계를 독도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도서는 독도자료집3에 있고 국회도서관에도 있다. 참고

더불어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덕일의 책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갔나'에선 동북아 역사재단이 독도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지도를 보면 울릉도와 독도를 검은 틀로 묶어 표시하고 있다. 역사 지도에 행정구역조차도 아닌 독도를 그려넣은게 어딘지..

6.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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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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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지하철

역 이름 노선
서대문역 파일:Seoulmetro5_icon.svg 서울 지하철 5호선

[1] 우리나라의 역사 관련 4대 중앙정부기관으로 ① 교육부의 소속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②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③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④ 국가보훈부 산하 공공기관인 독립기념관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근무자는 공무원이고, 나머지 3개 기관 소속 근무자는 공무원이 아닌 공공기관 직원이다. [2] 이 재단의 전신인 고구려연구재단의 이사장이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역대 이사장 대수에 들어가지 않는다.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역대이사장란 참조. [3] 정작 지들이 식민사학과 유사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다. [4] 신라의 팽창 551~600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해당 지도 [5] 치소(행정구역의 중심)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 [6] 해당 시점 이사장인 김도형은 사학과 졸업, 한국근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연세대에서 사학과 교수로 있는 정통 역사학자이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기본적으로 역사재단이기 때문에 국제관계사에 중점을 둔 인물이 이사장으로 임명되긴 했지만 1,2,3,6대는 모두 역사학과, 혹은 역사교육과 출신 역사학자들이었다. 동북아지도 논란이 터진 시기의 이사장들만 뉴라이트 출신 정치학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