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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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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부성급시 | 장쑤성의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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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시 | Nanjing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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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부 소재지 장쑤성 난징시 쉬안우구
베이징둥루41호
江苏省南京市玄武区北京东路41号
지역 화둥
면적 6,587km²
하위 행정구역 11구
시간대 UTC+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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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한리밍(韩立明)
시장 샤신민(夏心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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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시화 매화
시목 설송
차량번호 苏A
행정구역 약칭
행정구역코드 320100
지역전화번호 025
우편번호 210000 ~ 2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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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자연환경3. 역사
3.1. 춘추전국과 진한시대3.2. 6조의 수도로 번성하다3.3. 두 번의 비약과 쇠퇴3.4. 근대3.5. 현대
4. 관광5. 교통6. 행정구역7. 대학8. 군사9. 출신 인물10. 여담11. 매체에서 등장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중국 장쑤성 성도. 한국식 발음으로는 남경. 옛 이름은 진링(金陵,금릉)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지역인 건업 역시 이 지역으로, 현재 난징의 시할구인 젠예구(建邺区,건업구)로 이름이 남아있다.

중국 역대 왕조 대도시 중 한 곳으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유구한 지역. 중국 남부의 중요도시 및 국제도시로 중국 장쑤성의 성도며 부성급시다. 사진은 난징시의 번화가인 신제커우(新街口), 신제커우 한복판에는 쑨원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2007년 주민등록인구는 618만 명. 2017년 기준 833만 5,000명.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절(1928~1949)에는 수도였으며,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중국국민당 국부천대한 후에도 현재까지 중화민국( 대만)의 명목상 수도이기도 하다.[2]

교통망으로 난징 지하철이 있다. 중국 특성상 난징시의 면적도 한국의 여느 행정구역에 비해서 널찍한 편이기에 외곽까지 잘 깔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내에서는 제법 촘촘하게 노선망이 잘 짜여 있는지라 관광했을 때 이용하기 좋은 편이다.

중국의 몇 안되는 일류(一流)대학이자 중국판 아이비 리그 구교연맹(C9)의 대학 중 하나인 난징대학 난징에 있다. 매년 대학 순위는 다르지만 가장 공신력 있는 중국교우회에서 2020년 발표한 순위 기준 4위로 랭크되어 있다.

2. 자연환경

파일:중국 난징 6.jpg
도심 한복판의 현무호
파일:난징 중국 4.jpg
주원장의 무덤인 명효릉의 참배로

난징은 장강 유역에 위치하여 있으며 고도 20m의 저지대에 위치한다.

중국 중남부에서 유서깊은 도시인 난징은 말 그대로 우한과 더불어 중국 남부인 강남(강동)의 수도라 할 만하며 위도는 북위 32도 3분으로 제주도보다 남쪽에 위치한다.

여름이 엄청나게 덥다는 것이 이 도시의 포인트이다. 충칭시, 우한시와 함께 중국 3대 화로라고 불리는 도시이다.[3][4]

기후는 Cfa의 온난습윤 기후이며 강수가 비교적 연중 균등하다. 7월 평균기온은 28.1℃이며[5] 습도는 80%으로 말 그대로 푹푹 찌는 더위이며 열대야도 여름에는 매일 나타난다. 연평균기온 15.9℃로 제주도와 비슷하다. 1월 평균기온은 2.7℃로 부산광역시와 비슷하며[6] 역대 최저기온은 -14.0℃[7], 역대최고 40.7℃ 이다.

3. 역사

파일:석두성 중국 난징.jpg
고대 건강의 석두성.

3.1. 춘추전국과 진한시대

기원전 571년( 주령왕 원년) 초나라가 지금의 육합구(六合區)에 당읍(棠邑)을 설치한 것이 난징의 시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오왕 부차가 495년 난징에 야성을 쌓았다고 한다. 기원전 473년( 주원왕 4년)에 월나라 대부 범려가 지금의 진회(秦會)지역인 강 남쪽에 월성(越城)을 쌓으면서 지금의 난징 시가지 축성사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333년( 주현왕 36년) 초위왕이 돌산에 금릉(金陵)읍을 축조하면서 지금의 난징 시내에 치소가 설치되었다.

중원 전토를 통일한 후 순행하던 진시황이 이 지역에 도달했을 때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여 소나무를 빽빽이 심어 왕기를 억누르고, 이름도 말릉(末陵)으로 바꿔버렸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망기자(望氣者)라는 사람이 500년 후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이 때문에 시황제가 북산(北山)을 파헤쳤다고 한다. 이후 후한말까지 현재 난징 지역에는 현급 행정 구역만 설치되었고 삼국시대 이전까지 말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3.2. 6조의 수도로 번성하다

파일:중국 난징 7.jpg
도심 동북부 치샤구에 남아있는 소량 시기의 능 석물

3세기 초 손권 오나라( 손오)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이후 6조(六朝)의 도읍이 되는 기반을 닦게 된다. 원래 오나라의 수도는 회계(會稽: 현재 저장성 사오싱시)였는데 자치통감에 따르면 손권의 중신 장굉이 말릉이 도읍으로 적합한 땅이라 하여 권하였고 유비가 동쪽을 지나면서 손권에게 이곳으로 거주하라고 권유하여 212년 수도가 되었다.[8] 그러면서 명칭도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의 건업(建業)으로 변경.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중 일부 작품에서 이 이벤트가 구현되어 있다. 내내 건업이 수도였던 건 아니고, 형주 공방전 직후와 손호 때인 265년 - 267년 두 차례에 걸쳐 잠깐 우창(지금의 어저우 시)[9]에 천도했지만 곧 건업으로 돌아왔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건업 서북쪽 경계에 구덩이가 있었는데 오나라 사람들은 다 시황제의 일화를 오나라 창건을 예언한 일화로 여겼다. 항우와 유방을 예언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 뒤 오나라를 멸하고 진나라( 서진)가 삼국을 통일했으나, 이후 진나라는 팔왕의 난으로 대혼란에 빠졌다. 결국 흉노 출신의 유연(劉淵)이 세운 한(漢)나라, 곧 전조에 의해 수도 낙양이 함락당하고 중국 북부를 빼앗겼다는 소식( 영가의 난)이 건업에 있던 낭야왕 사마예(司馬睿-동진(東晉)의 초대 황제)에게 전해진 직후 휘하 심복들과 호족들의 뜻을 모아 그가 건업에서 즉위한다. 이 시기부터 훗날 동진으로 분류한다. 원제(元帝-사마예)는 서진의 마지막 황제였던 민제(愍帝) 사마업(司馬鄴)의 휘(이름)인 (鄴)이 건업(建業)의 업과 음이 같다해서 이를 피하기 위해 건강(建康)이란 지명으로 고쳤다.[10]

이렇게 손오(229~280) 이래 건강은 동진東晋(317~420)· 송宋(420~479)· 제齊(479~502), 양梁(502~557)· 진陳(557~589)의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의 한족 여섯 왕조의 수도로 340여 년간 번영했다. 이른바 육조시대의 무대.

시대에는 다시 금릉(金陵)으로 불렸고 오대십국시대에는 강남에 세워진 지방 정권 오나라 남당의 수도였다. 이후에는 강남으로 쫓겨난 남송이 건강이 아닌 임안( 항저우)을 수도로 삼았다. 이유는 금나라와의 경계인 회하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금릉이라는 지명은 송나라, 원나라 시대까지 계속 쓰였고, 원 문종대에 이르러 다시 집경(集慶)으로 개칭되었다.

손오가 천도하면서 건업성을 축조하였는데, 다른 중국의 도성들보다도 군사적인 요건을 많이 고려한 도성으로 손꼽힌다. 건업성 자체가 손오부터 동진, 송, 제, 양, 진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남조 시기의 성벽을 통해서 손오 시기의 도성의 범위를 추정하고 있는 실정이다.[11] 도시개발이 많이 이루어진 탓에 발굴조사된 유적이 많지 않으나 대체로 지금의 난징 친화이취(秦淮區) 일대에 위치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곽 자체는 수문제 양견이 천하통일을 이루면서 강남지역의 흥기를 막고자 완전히 평지로 만드는 바람에 현재는 지표 상에 남아있는 손오~남조시기의 도성 유적은 없으며, 발굴조사를 통해서만 성벽의 기초부가 확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3.3. 두 번의 비약과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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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난징 중국 1.jpg
명대의 난징(응천부) 지도
파일:남경성 중국.jpg
명대에 세워진 난징부성

육조시대 이후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난징이 다시 비상하게 된 것은 명나라가 들어서고 나서부터였다. 원나라 말엽 안후이성에서 활동하던 군벌 주원장은 1356년 집경(난징)을 함락시키고, 이름을 응천부(應天府)로 고친 후 스스로 오국공(吳國公)의 자리에 올라 근거지로 삼았다. 그 후 진우량, 장사성 등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강남의 패자가 된 주원장은 1368년 응천부(난징)에서 칭제건원하며 명나라를 건국했다. 이후 명나라는 북벌을 단행하여 쇠락해가는 원나라를 만리장성 너머로 몰아내고 중원을 통일했으니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장강 이남에서 기반한 통일이었다. 주원장은 응천부라는 이름에 더해 우리가 아는 현재 명칭인 난징[12]으로 고쳤으며 건국 10년째인 1378년에 정식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 이름을 경사(京師)[13]로 바꾸었다. 경사 혹은 난징은 건문제 시대까지 수도의 지위를 유지했으나, 정난의 변으로 황제 자리에 오른 영락제가 1403년 수도를 자신의 근거지였던 순천부(順天府)[14]로 옮기고 이름을 베이징으로 바꿨다. 그리고 경사는 '북쪽의 수도' 베이징에 대비되는 '남쪽의 수도'인 난징으로 환원시켰다.[15]

명말 이 밀고 내려오자 복벽운동으로 남명이 저항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금방 함락되었고 명 황실은 정성공 등과 함께 광둥성, 윈난성, 베트남, 타이완 등으로 뿔뿔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남명의 강역엔 간신히 들어가지만 의미도 없을 수준이다. 이로 인해 난징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고 청나라는 난징을 이름을 강녕부(江寧府)로 고쳤다. 그래도 그 경제적 중요도는 변치 않아서 청나라 대에도 난징은 중국의 경제적 수도 역할을 행하였다.

3.4. 근대

파일:Nanjing_Presidential_Building_0.jpg
태평천국, 중화민국의 정부 청사이던 난징 총통부

19세기에 들어오면 열강에 의해 청나라가 수난을 겪는 아편전쟁 난징 조약의 배경이 되어 급격한 근대화를 맞이하기도 했다. 1853년 사이비 기독교 성격의 사회운동인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자 홍수전이 이곳에 들어와 수도로 삼고 천왕이 되어 이름을 천경(天京)이라 하였다. 하지만 10여 년 뒤 청나라의 공격과 내분으로 인해서 곧 처참하게 함락되었다.

신해혁명을 통해 수립된 중화민국도 이곳에서 처음 도읍을 정했고[16] 1928년에는 장제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가 되어, 직할시로 지정되었다. 이 당시 하위 행정구역은 제1구~제15구, 성북동구나 성동구 같은 명칭은 별칭이었다. 강남 지역의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난징을 수도로 정하는 것은 중화민국으로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국민당의 북벌은 역사상 두 번째로 강남에서 시작한 통일이었으며, 베이징은 다시 한번 수도에서 강등되어 북쪽을 평정했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 난징은 국민당 정부의 근대화 정책이 성과를 거둔 덕에 나름대로 번영을 구가하였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수도인 난징은 일본군의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패색이 짙어진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후퇴하면서 난징은 함락되었다. 엄청난 접전을 뚫고 오면서 악에 받친 일본군에 의해 1937년 난징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왕징웨이 정권이 들어서면서 괴뢰정권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1945년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국민정부는 난징으로 복귀했다.

3.5. 현대

파일:중국 난징 4.jpg

파일:NanjingSkyline2.jpg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베이징이 수도가 되어 난징은 수도 지위를 상실했다. 1953년 장쑤성으로 재편입되면서 직할시 지위를 잃고 장쑤성의 성도(省都)가 되었다. 덩샤오핑에 의해 1994년에 부성급시로 승격되었다.

4. 관광

파일:부자묘 중국.jpg
파일:중국 부자묘2.jpg 파일:부자묘h.png
파일:중국 부자묘.jpg
푸즈먀오(부자묘 夫子庙)

공자묘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겠듯, 난징 최대의 공자 사당이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갖춘 것이 아니라 인근의 상업 구역 역시 왁자지껄한 것으로 유명하다. 난징 여행의 필수코스.

파일:중국 난징 쑨원.jpg
파일:중국 난징 손문.jpg 파일:난징 중국 중산.jpg
파일:난징 중국 손문.jpg

중산릉(中山陵)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의 묘가 난징에 있다. 중산릉(中山陵)은 그의 호를 딴 이름이며, 사진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듯 난징 시민들의 존경은 여전하다. 황제의 무덤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인 '릉'(陵)을 붙인 것 또한 엄청난 대우이다. 일본의 난징 점령 당시 파괴될 뻔한 전적이 있다. 입장료는 무료.
파일:중국 명효릉.jpg 파일:중국 명효릉 2.jpg
명 태조 주원장이 안장된 명효릉 (明孝陵)
파일:중국 난징 고루.jpg

파일:중국 난징 종.jpg
1382년에 세워진 고루와 종

파일:남경 중국 2.jpg
명대 궁궐인 자오티엔궁 (조천궁 朝天宫)

파일:중국 난징 1.jpg
파일:중국 중화문.jpg
파일:난징 중국 9.jpg
파일:난징 중국 6.jpg
명대에 세워진 난징성

파일:지밍스 남경 중국.jpg
파일:중국 난징 계명사.jpg
6세기 소량 대에 세워져 14세기 명대에 중건되었고, 19세기에 재건된 지밍스 (계명사 鸡鸣寺)

파일:중국 난징 8.jpg
동문 쪽 구도심

파일:남경 총통부 중국.webp
태평천국 중화민국 당시 궁전이던 난징 총통부

파일:난징 중국 7.jpg
난징 대학살 기념관 (침화일군남경대도살우난동포기념관 侵华日军南京大屠杀遇难同胞纪念馆)

그 외에도 역대 왕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오래된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4.1. 전시장

5. 교통

난징 루커우 국제공항이 관내에 존재하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중국동방항공이 대한민국에 정기 항공편을 운항중이다. 그러나 항공편수가 그리 많지가 않고, 조금만 가면 상하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예 상하이로 입국해서 열차편으로 난징으로 오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않다. 사실 항공편만 잘 끊으면 이게 더 싸게 먹히기도 한다. 상하이는 항공편수가 많고 저가항공도 취항중이라 잘만 예약하면 싼 값으로 끊을 수 있는 반면에 난징은 대형 항공사들만 운항하기 때문이다.

시내 교통으로는 난징 지하철 12개 노선이 운행 중이이다. 하지만 난징시가 원체 역사가 깊은 곳이라 난공사가 많다. 여러 고도들처럼 땅만 파면 문화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6.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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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학

8. 군사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육군사령부가 난징에 위치한다

9. 출신 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분류:난징시 출신 인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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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담

  • 장쑤성의 성도임에도 "난징은 안후이성의 성도"라는 드립이 있다. 장쑤성 서남부에 상당히 치우쳐져있고, 3면에 안후이성에 둘러싸여있어 같은 장쑤성보다는 오히려 안후이성과 교류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안후이성은 성도가 자주 바뀌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야 허페이시로 겨우 정착했고, 현재까지도 경제가 상대적으로 낙후돼있어 중심지로써의 위상이 약한 반면 난징은 경제력이 높고 정치적으로도 과거부터 안후이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었다.[18] 장쑤성 내에서는 쑤저우라는 경제 대도시가 있어 난징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밀려난건 덤.
  • 난징에서도 항일 애국지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LG그룹( LG에너지솔루션, 전자, 엘지디스플레이 등), 금호타이어 등의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많은 교민들이 거주 중이다.
  • 한때 난징과 나고야시가 지역 교류를 시도하려 했지만, 나고야시장이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것에 대한 항의로 나고야시와 지역 교류를 취소했다. 난징 대학살을 저지른 일본에게 시달려서 일본 기업은 없을 것 같지만 일본 자동차 기업인 마쓰다의 공장이 이곳에 위치해 있고, 거리에서 일본산 자동차를 보는 것도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 친화이구에는2015년 12월 1일 개관한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이 있다. 르포
  • 2013년, 커다란 거품이 도로에 등장에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지하철 공사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한다. 국내 기사

11. 매체에서 등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난징(도미네이션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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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 바람의 나라에서는 고대 문명의 보고로 등장하여 발굴단도 있지만 산소들만 들끓는 통에 변변찮은 마을도 못 차리는 낙후지역으로 등장한다. 2000년 전만 해도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았던 강남 지방이 화북보다 더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지만 말이다.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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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구의 행정중심지는 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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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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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安阳


[1] 난징 무역관 (KOTRA) [2] 현재 사실상 대만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는 타이베이 6.25 전쟁 당시 부산광역시가 몇 년간 그랬던 것처럼 명목상 아직도 임시수도이다. [3] 공교롭게도 세 도시 모두 장강이 지나간다. 한국에서 열섬 현상으로 유명한 서울도 중간에 한강이 지나가는데, 사실 강과 열섬현상은 별 관련이 없다. 열섬현상은 밀집한 마천루 및 분지지형과 더 관련이 있다. (오히려 강을 끼고 있으면 복사냉각 때문에 겨울에 추워진다. 하지만 이것도 아열대기후인 난징과는 별 관련없는 얘기다.) 세곳 모두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덥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보다 더 더운 곳도 중국에 많다. 그리고 더욱 공교롭게도 세 곳 모두 중일전쟁 시기 국민정부 의 수도였다. [4] 사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연평균은 더 덥지만 여름 기온은 여기가 더 덥다. [5] 참고로 그 덥다고 소문난 대구광역시가 최난월 평균기온이 27℃를 채 넘지 않는 정도다. [6] 부산광역시가 살짝 더 높다. [7] 1950년 이후부터다. [8] 강표전과 태평어람에 따르면 유비 제갈량이 손권에게 이곳을 도읍으로 추천했다고 나온다. [9] 역사적으로 유명한 우창 시는 현재 주변 도시들과 합쳐져 우한시의 한 구역으로 되어 있다. 어저우는 우한으로부터는 동남쪽으로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10] 태평어람에 기재된 동진의 역사가 손성의 의견에 따르면 시황제로부터 손권이 황제에 오르기까지는 437년이고, 진나라가 (위나라의 토덕을 이어) 오행 중 금(金)의 덕을 이었으니 금릉의 기운이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며, ( 진원제 사마예가 동진을 세운 것이 이때로부터) 526년이니 이 말이 맞다고 했다. [11] "건강실록"에 기재된 손오 시기와 남조 시기 모두 "도성의 둘레는 20리 19보, 궁성의 둘레는 8리였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초축된 건강성을 연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손오 시기에는 "흙과 대나무를 둘러 성벽을 만들었다"라 되어 있었는데 동진과 남제를 거치우면서 벽돌을 사용한 성벽으로 개축되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어저우에 남아 있는 무창성 성벽도 토성이다. [12] 정확한 명칭은 난징 응천부이고, 영락제 때 천도한 베이징 순천부에 대칭되었다 [13] 다른 의미 없고 그냥 수도라는 뜻이다. [14] 원래 이름은 대도로 원나라의 수도 였다. 대도를 정복한 주원장은 이후 대도를 순천부로 개명했다. [15] 다만 신하들의 거센 반대 때문에 거대한 베이징 성 자금성을 짓고도 영락제는 정식으로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영락제의 뒤를 이은 홍희제는 수도를 난징으로 환원시키려했으나 뜻을 이루기 전에 죽었고 뒤를 이은 선덕제가 계속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베이징의 수도 지위가 굳어지게 된다. 명나라가 정식으로 베이징을 수도로 삼은 것은 선덕제가 죽고 정통제가 즉위한 1441년이었다. 이후 황제들이 베이징에 머무르면서도 베이징을 경사(수도), 행재(임시수도)로 여러 번 개칭한 바는 있다. 또 난징에도 베이징과 별도로 수도의 여러 중앙 관부를 두기도 했다. 일종의 백업을 한 셈인데 이게 토목의 변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6] 그러나 위안스카이 북양군벌의 영향력이 커 실질적인 수도는 베이징이었다. [17] 은나라의 수도 은허. 하지만 현재엔 나열된 고도 중 가장 낙후되고 작은 도시다. [18] 두 성은 명나라 시절에는 남직예(南直隸), 청나라때는 강남성(江南省)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행정구역이었고 난징(당시 강녕)은 강남성의 성도였으며, 강남성 분할 이후에도 한동안 강소(상해 포함), 안휘, 강서를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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