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포탄의 무게가 6파운드 (약 2.721kg) 인 화포의 목록.실제로는 37mm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열함이 당당한 현역이던 시절에 전장식 대포가 사용하던 구형 통솔리드 포탄의 중량을 기준으로 대포의 구경을 통일하던 법칙이 현대에까지 전해진 것이라 실제로는 그 당시의 6파운드 중량의 구형 통솔리드 포탄의 직경이 57mm이므로 해당 구경을 유지하며 영국식 분류인 6파운더의 명칭을 가진 화포면 실제 사용하는 포탄의 중량과는 관계없이 이 항목에 들어갈 수 있다.
2. 인디언 6파운더 대포
3. OQF 6파운더 대전차포
제2차 세계 대전의 영국군 화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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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영국군의 화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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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nance Quick-Firing 6-pounder 7 cwt |
3.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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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QF 6파운더 발포 영상 |
Ordnance QF 6-pounder (6-pounder) / 57mm M1. 오드넌스(Ordnance)는 화포, QF는 퀵-파이어링을 말하니 '6파운드 속사포'로 번역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개발된 구경 57mm 대전차포다.
3.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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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개발
대전 초기에 영국군이 대전차포로 사용하던 2파운더는 여러모로 대전차 임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1942년에 북아프리카 전역에 최초로 등장하여 기존 2파운더의 대전차 임무를 빠르게 대체하였다. 미군도 이 포를 M1 대전차포인 57mm Gun M1으로 이름지어 주력 대전차포로 사용하였다. 특이한 점은 포신의 길이가 짧은 Mk.II의 라이센스를 샀는데, 길이는 Mk.I과 같은 50구경장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이는 덩케르크 철수작전 이후 영국이 대부분의 무기들을 프랑스에 두고 왔는지라 급하게 임시로 단포신을 제작한 것이었는데, 당연히 미국은 그런 게 부족하지 않으니 그냥 장포신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후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전차 능력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영국도 장포신을 생산하게 된다.전설적인 티거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을 격파한 대전차포의 후보로 오르기도 한다. 17파운더와 함께 1대 다수로 공격하여 007호 티거를 무력화했다. 1944년 3월부터 APDS가 보급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티거를 관통할 수 있었다.
2파운더를 대체하기 위한 포인 만큼 왕립 울리치 조병창에서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는데, 19세기 말부터 해군에서 사용하던 57mm 구경을 채택하여 기존 생산 라인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포의 디자인은 1940년에 완성되고 포가는 1941년에 완성되었지만, 프랑스의 패전으로 인해 기존의 2파운더 포의 생산과 훈련/보급이 우선시되어 결국 전선에는 1942년에 등장한다. 주된 생산지는 영국과 캐나다였다.
3.4. 특징
크기와 중량이 인력으로만 운용 가능한 대전차포의 한계에 가까워서, 대전 후기에 등장하는 막강한 독일 국방군의 전차를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17파운더가 개발된 뒤에도 17파운더는 견인차량이 없으면 운용이 불가능에 가깝기에 6파운더는 계속 사용하게 된다.[1] 또한 미군에서도 대전차포로 시대에 뒤쳐진 M3 37mm 대전차포 같은 37mm 구경 계열의 화포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6파운더의 성능을 보고 즉시 라이센스 생산을 시작하여 57mm M1으로 제식 채용했다.배치된 당시에는 나치 독일군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지만 6호 전차 티거와 같은 중전차를 쉽게 격파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절대 무리였다. 그러나 5호 전차 판터와 중전차를 제외하고 4호 전차같은 모든 중형전차를 상대로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였고 이후 APDS 등의 신형탄이 보급되면서 티거 같은 중전차들도 관통하여 충분히 격파해볼 수준의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전차들은 APDS 생산 시기 전부 75mm로 전환되어서 6파운더 APDS를 사용해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 후 박물관에서 6파운더를 장작한 처칠 크로커다일이 발견되어 전차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전작인 2파운더가 장갑관통력만 생각한 나머지 철갑유탄도 단종시키고 진짜로 통짜 철갑탄만 주력으로 생산하여 보병 제압능력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것과 달리 급조한 결과 구경에 비해 위력이 수류탄 수준이지만 고폭탄을 일찍 제조하여 대보병 및 비장갑 차량 등에 대해서도 공격력을 가지게 된 점은 나름의 개선점이다.
처음부터 차량 장착을 생각하고 설계했기 때문에 견인식 대전차포과 차량장착용 전차포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3.5. 문제점
3.5.1. 탄자붕괴
관통력은 57mm라는 구경을 감안해볼 경우 훌륭했으나 경사장갑에 명중하는 등 탄착시 각도가 30도를 넘어가면 탄자가 붕괴해서 관통불가가 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예시1943년 7월 30일에서 8월 13일 사이에 영국군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노획한 독일군의 티거를 포탑과 내부 부품을 들어내고 차체와 차대만을 가지고 관통력 실험을 시행했다.
튀니지 본 피차(Bon Ficha)에서 영국군이 해당 관통 실험에 동원한 무기는 6파운더 MarkⅡ 견인식 대전차포와 17파운더 MarkⅠ 견인식 대전차포, 그리고 셔먼 전차의 M3 주포로 표준적인 완전충전장약(Equivalent Full Charge) 탄들을 사용했다. 완전충전장약은 장약을 표준보다 더 넣거나 덜 넣지 않은 문자 그대로 표준충전상태를 말하며 해당 시험에서 사격한 횟수는 6파운더가 26발이고 17파운더는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6파운더보다는 적게 사격했으며 75mm M3 주포는 10발 이하로 사격했다.
시험조건은 평지(수직 5도 이하)에서 측면 티타임을 전혀 주지 않고 완전정지한 티거의 차체를 대상으로 발사각도를 약간씩 조절하면서 50발 정도를 사격했다.
티거의 차체 좌측 상부장갑의 경우에는 노획될 당시 이미 고폭탄 2발에 장갑에 금이 가고 철갑탄 1발에 관통흔이 존재하는 상태였기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수리시설로 가서 장갑을 교체해야 할 상황이었다. 영국군이 따로 데이터를 측정한 이유는 다른 대전차무기의 공격으로 파손된 티거의 장갑을 다시 때려서 격파할 확률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장갑 | 탄종 | 발사각도 |
착탄시 초속 |
최대 관통거리 |
영국제 장갑 환산두께 |
차체 우측 상부 82mm 수직 | 6파운더 철갑탄 | - | 892m/s | 1142m | 85mm |
6파운더 철갑탄 | - | 815m/s | 845m | 85mm | |
6파운더 철갑탄 | 30도 | 탄자붕괴 | 탄자붕괴 | 85mm | |
6파운더 피모철갑탄 | - | 884m/s | 800m | 85mm | |
6파운더 피모철갑탄 | - | 808m/s | 480m | 85mm | |
6파운더 피모철갑탄 | 30도 | 탄자붕괴 | 탄자붕괴 | 85mm | |
75mm M61 | - | 625m/s | 823m | 85mm | |
차체 좌측 상부 82mm 수직 | 6파운더 철갑탄 | - | 892m/s | 1508m | 65mm |
6파운더 철갑탄 | - | 815m/s | 1188m | 65mm | |
6파운더 철갑탄 | 30도 | 659m/s | 탄자붕괴 | 65mm | |
차체 후면 82mm 8도 | 6파운더 철갑탄 | 20도 | 892m/s | 960m | 82mm |
6파운더 철갑탄 | 20도 | 815m/s | 640m | 82mm | |
차체 전면 상부 102mm 9도 | 6파운더 철갑탄 | 10도 | 892m/s | 594m | 102mm |
6파운더 철갑탄 | 10도 | 815m/s | 320m | 102mm | |
차체 전면 중부 62mm 80도 | 6파운더 철갑탄 | 25도 | 706m/s | 관통불가 | 103mm |
6파운더 철갑탄 | 25도 | 799m/s | 탄자붕괴 | 103mm | |
17파운더 철갑탄 | 25도 | 884m/s | 1645m | 103mm |
출처 - Thomas L. Jentz, Germanys Tiger Tanks: Tiger I & Tiger II: Combat Tactics (Schiffer 1996) 15p |
시험결과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측면 티타임 각도도 안준채 완전정지상태에 있는 티거의 차체 장갑을 사격해도 탄착각도가 30도를 넘으면 6파운더 포탄이 깨지면서 관통불가가 된다. 심지어 심각하게 손상돼서 방어력이 영국제 장갑 추산으로 65mm 정도로 급강하한 좌측 차체 상부 장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실전에서는 6파운더를 티거의 코 앞에 매복시켜놓고 사격해도 답이 없다는 소리가 된다.
이건 독일 병기국 6과의 실험에서도 교차검증되는데 차체를 30도 정도 튼 티타임 상태의 티거는 6파운더로는 관통불가가 난다고 한다. 이건 영국제 6파운더건 미국제 6파운더건 영국제 포탄이건 미국제 포탄이건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위의 시험결과에서도 6파운더 장약이 정상적으로 모두 타오르고 탄착각도가 매우 양호한 상태에서 정지한 목표 상대로 정타를 제대로 때려야 594m에서 정면장갑 관통이 가능한데 실전에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유리한 상황이 절대 발생하지 않으므로 관통불가라고 보면 된다.
1943년 5월 19일에도 영국군이 노획한 티거 전차로 관통력 실험을 했는데, 이 여름 실험에서 영국군은 명백한 결론에 도달했다. 명중률이고 뭐고 티거 정면에 이빨도 안 들어가는 6파운더와 75mm포는 가망이 없으며 17파운더를 보급하지 않고는 미래의 독일 전차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결론이 일찌감치 나온 것이다.
수직장갑으로 주로 구성된 티거도 이 지경인데 차체 전면이 경사장갑이고 포탑 정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포방패가 반원통형으로 구성된 판터는 말 그대로 측후면을 사격하는 것 밖에 답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기본적으로 소구경 경량 탄두를 고성능 장약을 많이 써서 고속으로 날리는 개념의 대전차포라 장갑에 명중시 장갑을 관통하기도 전에 포탄이 탄착충격을 못 이기고 박살날 확률이 높은데다가 탄착각도가 30도를 넘길 경우 피모철갑탄의 피모의 성능이 급감해서 말 그대로 포탄이 장갑과 정면으로 격돌해서 깨져나가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피모철갑탄으로 해결하려면 기존의 피모인 부드러운 금속 피모는 탄착각도가 20도만 넘기면 성능이 급감해서 사용할 수 없고 해군의 함포에서 사용하는 방식인 무겁고 튼튼하며 딱딱한 피모를 사용해야 하는데 해군 방식의 피모는 일단 피모가 장갑의 표면을 파손하고 포탄 본체가 진입할 수 있는 홈을 제대로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므로 구경이 줄어들수록 포탄 본체와 비교할 때 피모의 중량이 점점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 미국의 8인치 (203mm) Mark 21 함포 포탄의 피모는 포탄 본체 중량의 17%에 도달했으며 미국의 6인치 (152mm) Mark 35 함포 포탄의 피모는 포탄 본체 중량의 20%에 도달했다. 예시
게다가 이것도 거함거포주의 시절의 거대한 함포 기준으로 소구경이라는 이야기지 육상용 대전차포로 쓰기에는 엄청난 대구경인데다가 피모가 장갑에 손상을 주어봤자 포탄 본체가 만만치않게 무겁고 튼튼하며 딱딱하지 않으면 관통에 실패할 확률이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이중 탄두의 운동에너지 버전과 가깝게 되는데 소련이 실험용 탄두에서 이런 복잡한 방식의 철갑탄을 만들어봤다가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폐기한 사례에서 보듯이 복잡하고 양산이 어려운데 반해 성능이 별로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영국은 17파운더 및 그보다 더 대구경인 화포에 개발노력을 집중하는 한편 6파운더에 대해서는 소구경 관통자를 사용하는 경심철갑탄과 분리철갑탄으로 철갑탄 개발의 주력을 이동시킨 후에 기존의 철갑탄과 피모철갑탄의 개량은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이래서 스펙상으로도 APCBC로 500m 이내에서 판터의 포방패와 티거의 차체 전면을 관통할 수 있었지만, 견인식으로 500m면 보통은 적 전차에게 선제공격 당해서 박살나기 딱 좋은 코앞이고 판터의 차체나 티거의 포탑에 맞으면 못 뚫으니 제한적이었던 성능도 경사장갑 만나면 그냥 끝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고 이는 6.25 전쟁에서 T-34-85를 만나면서 현실화된다.
3.5.2. 포탄의 한계
기본적으로 소구경 경량 탄두를 고성능 장약을 많이 써서 고속으로 날리는 개념의 대전차포인지라 기본적인 철갑탄(AP)이나 피모철갑탄(APC), 철갑유탄으로는 한계가 심했다. 영국은 경심철갑탄(APCR)과 분리철갑탄(APDS)을 도입해서 어느 정도 해결을 보지만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는게 문제다.- 포탄의 입사각은 별도의 표시가 없으면 수직으로 입사한 것이며 탄종에 *표기가 된 경우 30도로 입사한 경우다. 출처는 Bird, Lorrin; Lingston, Robert (2001). World War II Ballistics: Armor and Gunnery. Albany, NY USA: Overmatch Press. pp. 60, 62. 및 Great Britain's Gun Penetration Tables 이다. [2]
-
영국 포탄
포탄
종류명칭 100m 500m 1000m 1500m 2000m 공급
개시탄두
중량포구
초속
(43구경장)포구
초속
(50구경장)
AP Shot, AP, Mks 1 to 7 135mm 112mm 89mm 70mm 55mm 기본탄약 2.86kg 853m/s 892m/s
AP* Shot, AP, Mks 1 to 7 - 81mm - - - 기본탄약 2.86kg 853m/s 892m/s
APC Shot, APC, Mk 8T - - - - - 1942년 9월 2.86kg 846m/s 884m/s
APCBC Shot, APCBC, Mk 9T 115mm 103mm 90mm 78mm 68mm 1943년 1월 3.23kg 792m/s 831m/s
APCBC* Shot, APCBC, Mk 9T - 81mm 74mm 68mm 63mm 1943년 1월 3.23kg 792m/s 831m/s
APCR Shot, APCR, Mk 1T - - - - - 1943년 10월 1.90kg - 1082m/s
APDS Shot, APDS, Mk 1T 177mm 160mm 140mm 123mm 108mm 1944년 3월 1.42kg - 1219m/s
APDS* Shot, APDS, Mk 1T - 131mm 117mm 103mm - 1944년 3월 1.42kg - 1219m/s
HE Shell, HE, Mk 10T - - - - - 기본탄약 대략 3kg - 820m/s
-
미국 포탄
포탄
종류명칭 100m 500m 1000m 1500m 2000m 공급
개시탄두
중량포구
초속
(43구경장)포구
초속
(50구경장)
AP AP Shot M70 135mm 112mm 89mm 70mm 55mm 기본탄약 2.85kg - 853m/s
APCBC/HE APC Shell M86[3] 110mm 98mm 85mm 73mm 64mm 기본탄약 3.30kg - 823m/s
HE HE Shell T18
M303- - - - - 1944년 3월[4] - - -
Canister Canister Shot T17
M305- - - - - 1945년 1월[5] - - -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 포탄이 종류도 적고 위력도 특별하지 않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원래 미국은 대전차포 개발의 주력을 37mm와 75mm ~ 76mm의 2가지 종류로 개발하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서 90mm를 예비 및 장기 개발과제로 다루고 있었다. 57mm의 경우에는 무기대여법으로 영국에게 지급하기 위해서 생산을 개시했으며 이에 따라 포탄도 영국제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서 개발했고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M3 37mm 대전차포를 대신할 목적으로 갑자기 미군이 채택함에 따라서 실제로 미국에서 생산 가능한 포탄은 철갑탄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영국제 6파운더와 미국제 6파운더는 서로 포탄도 호환되며 탄도특성도 동일한 특징을 가진다.
실제로 미국의 AP Shot M70 탄종의 경우에는 영국의 Shot, AP, Mks 1 to 7 와 비교할 때 탄두중량도 비슷하고 관통력은 동일하며 포구초속만 약간 차이날 정도로 사실상 동급 포탄임이 입증된다. 미국의 APC Shell M86 의 경우에도 영국의 Shot, APCBC, Mk 9T 와 비교할 때 탄두중량과 포구초속이 비슷하고 단지 미국의 포탄이 내부에 작약으로 Dunnite(Explosive D)라는 폭약이 34g 정도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관통력이 딱 5mm 정도만 미국제 포탄이 부족하며 2000m라는 초장거리에 가서야 관통력 차이가 4mm로 줄어든다. 따라서 영국제 포탄이 저저항피모철갑탄이고 미국제 포탄이 저저항피모 철갑유탄이라는 것만 차이날 뿐 동급 포탄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철갑유탄을 사용하면서 내부에 작약을 넣기 위한 개조를 한 결과 통짜 철갑탄두에 비해 관통력이 딱 5mm 줄어든 것 뿐이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이 얼마나 57mm 포탄에 관심이 없었는지 고폭탄인 HE Shell T18 / M303은 1944년 3월에 인가만 해놓고 생산을 안해서 2차대전 중에 사용이 불가능했으며 산탄인 Canister Shot T17 / M305도 1945년 1월부터 생산에 돌입해서 전선에 제대로 도착하기에는 때가 늦었다.
그러므로 영국제 포탄이나 미국제 포탄이나 특성이 매우 비슷한 사실상 동일한 포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전선에서 미군이 고폭탄, 분리철갑탄이 필요할 때 영국군에게서 소량을 공여받아서 사용했다.
문제는 영국이 6파운더 철갑탄과 피모철갑탄의 탄자붕괴현상을 실험으로 발견한 후에는 경심철갑탄과 분리철갑탄을 개발해서 포탄이 깨져나가기 전에 소구경 관통자에 강력한 충격력을 줘서 적 전차의 장갑을 관통하는 방향으로 포탄을 개선한 데 반해서 미국은 그냥 손놓고 있었다는게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57mm 포탄 개량에 손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3인치 M5 대전차포와 76mm M1 전차포 및 90mm 대공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 및 티거 2를 상대하기 위해서 경심철갑탄 계통 고속철갑탄(HVAP)인 M93 같은 포탄을 개발하고 양산하는데 집중하였으며 57mm 계통은 비상용 등의 명목으로 영국제 경심철갑탄이나 분리철갑탄을 공여받아서 쓰다가 2차대전이 끝나면 바로 퇴역시킬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독립 당시의 대한민국같은 가난한 3선급 우방국에게 공여할 목적으로 57mm 대전차포가 선택되었고 이러한 국가들은 적의 공격을 받더라도 치하와 같은 구식 경전차급 전차 정도만 공격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기에 철갑탄은 특별하게 개량할 필요도 없고 보병포 대용으로 쓰게 고폭탄이나 많이 생산해서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이 판단했다. 6.25 전쟁 개전 당시 한국군이 57mm 고폭탄을 많이 보유한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3.5.3. 탄도불안
소구경 고속탄을 발사한다는 대전차포의 특성상 6파운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숙련된 대전차포 사수들이 500야드(약 457m) 거리의 2차 세계대전 당시 4호 전차의 사이즈를 상정한 정지표적에 대한 명중률이 75%일 정도로 명중률이 떨어졌다.여기에 더해서 2차대전 당시 영국 APDS의 고질적인 약점인 탄도 불안정 때문에 500야드 이상에서는 분리철갑탄 사용 시 명중률이 급감하는 결점이 있었다. 탄이 가벼운 만큼 17파운더보다 더 명중률 저하가 심했지만 17파운더의 최대 단점은 포구화염 및 연기로 인한 차탄 명중률 저하였으니 17파운더보다는 차탄발사가 용이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1944년 5월 23일에 노획한 5호 전차 판터에 대해 이시그니 테스트(Isigny test)에서 미국제 6파운더로 영국제 분리철갑탄(APDS)를 장전해서 사격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는 정상적으로 사용가능 (normally available) 정도로 매우 미묘한 판정을 했지만 같은 실험에서 사용한 M116 75mm 경야포가 사용하는 75mm 구경의 M66 대전차고폭탄(HEAT)는 대단한 (special) 성능이라고 극찬급의 평가를 했다. 예시
해당 실험에서 철갑탄은 관통력 부족과 탄자붕괴 문제가 지적되었고 분리철갑탄은 탄도불안 및 포탄 발사 후에 이탈자가 관통자에게서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채 적 전차의 장갑에 명중하여 관통력 급하락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이래서 영국제 분리철갑탄을 미국이 라이선스해서 생산한다는 계획은 쓰레기통에 들어가버렸고 미군 소속의 6파운더들은 영국제 분리철갑탄을 7발에서 10발 정도를 지급받아서 사용했다.
3.6. 장착된 차량
일단은 주력 대전차포인 만큼 동시기 영국제 전차들의 주무장으로도 장착되었다. 대표적으로 다음 차량들에 탑재되었다.6파운더 생산 초기에는 전차들에 단포신이 장착되었으나, 이후 장포신 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자 장포신을 장착하였다.
이 외에도 영국군은 트럭에 싣고 다니며 일종의 대전차 자주포로 운용하기도 했으며, 미군은 M3 하프트랙에 M1을 올린 T48 GMC를 개발해 영국과 소련이 사용하며 대전차 자주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대전차 성능은 뛰어나도 고폭탄 위력은 다소 부족해서 범용성 면에서 미국산 75mm 전차포보다 부족하였고, 이 때문에 영국은 파괴된 셔먼에서 떼어내거나 미국으로부터 75mm를 입수하여 자국 전차에 75mm 주포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후 6파운더를 기반으로 구경을 확장한 QF 75mm 전차포를 자체생산까지 하게 된다.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다목적 전폭기 중 일부는 7.7mm 기관총 2~4문과 함께 이 대포 1문을 장착해 해상 공격용으로 쓰였다.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때 같은 구경의 포를 가진 치로와 치하 전차에 6파운더를 달아서 운용한 적이 있다.
3.7.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전 후기에 이미 훨씬 우월한 성능의 대전차포들이 등장하고, 대전차포 자체가 사장되는 분위기인 만큼 전후에는 빠르게 모습을 감췄지만 전후 수에즈 분쟁과 같은 전장에 등장하기도 하였고, 중국과 남미의 일부 국가에선 해안포용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3.7.1.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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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기의 M1 57mm 대전차포 |
대한민국 국군도 한국전쟁 당시 주력 대전차포로 이 포의 미국제 라이센스판인 M1 57mm 대전차포를 117문을 도입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T-34-85를 상대로 거의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원인으로는 대한민국 국군 공식 전사에 의하면 위력부족,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철갑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철갑탄을 사용했다는 회고록이 존재하며[6] 포병이 자기가 쏘는 탄종이 철갑탄인지 고폭탄인지 몰랐을 것 같지도 않고 고폭탄과 철갑탄을 분명히 구분하면서 고폭탄을 더 많이 받아왔다는 회고[7] 또한 존재하므로 철갑탄 자체가 없었다는 건 의심스러운 이야기다. 다만 철갑탄만 있었어도 전차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식의 회고도 존재하므로 일선 부대에 보급된 철갑탄이 부족했다는 의미라면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
1950년 1월 1일, 주한미군사고문단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 해군의 모든 장비들을 검열하면서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57mm 대전차포의 탄약 상태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탄종은 HE(고폭탄)과 APC-T(피모철갑탄), 그리고 Drill(훈련용 더미탄)로 크게 3종류였다. 1950년 1월 1일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총 44,776발의 57mm 대전차포용 포탄을 보유했고 이중 HE탄은 36,192발을, APC-T탄은 8,352발을, Drill탄은 232발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 보유탄약의 80%가 전부 고폭탄이었던 셈이고 철갑탄은 전체 대전차포들에게 72발 씩만 보급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예시
다시 말해 철갑탄이 없었던건 아니나 탄약의 대부분이 고폭탄이었고 이는 당시 대한민국 국군이 대전차포를 대전차용이 아닌 보병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실제 전쟁 발발부터 종전까지 꾸준히 활약한 북한군의 ZiS-3 76mm 대전차포는 대전차 임무 외에도 보병 지원용 야포로 활용되었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군 참전용사 증언에는 고지에 은엄폐한 ZiS-3가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로 기억되고 있다.
초기 전투에서 고폭탄을 적 전차에 사격하였으니 격파가 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대전차 전투 증언을 보면 탄약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 걸로 봐서 탄약의 구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당시 대한민국 국군에게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6사단 중대장으로 57mm 대전차포를 운용했던 이대용 중위의 회고에 따르면 전쟁이 터지고 본 북한군 전차가 실물로 처음 본 전차였다고 하며 전차와 자주포 구분도 못 했다고 한다.
고폭탄 사용시 결과가 안좋은 것은 당연한데 철갑탄 사용시에도 결과가 별로 안좋았다. 이렇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난 이유가 실제 위력 부족인지 아니면 낮은 명중률과 낮은 훈련도가 겹쳐, 명중탄을 내지도 못했으면서 명중탄을 냈다고 착각하는 경우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아마 둘 다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의 경우는 앞서 설명했듯이 탄착각도가 30도를 넘으면 6파운더 포탄이 깨지면서 관통불가가 일어나기 쉽다는 6파운더의 특성 및 관통력 높은 분리철갑탄(APDS)는 미국이 라이선스 생산 안해서 없다는 상황이 3호 전차나 4호 전차같은 수직장갑이 많은 나치 독일군 전차를 상대하다가 경사장갑으로 유명한 T-34-85와 만나면서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위에 설명했듯이 영국제 포탄을 참고해서 동급 포탄으로 만든데다가 그 수준도 잘해봐야 1943년 1월 수준의 Shot, APCBC, Mk 9T를 철갑유탄으로 개조한 정도였고, 여기에 탄자붕괴 등의 결점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서 그대로 생산했던 탓에 1950년의 시점에서도 주력 전차로 당당한 현역이던 T-34-85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덤으로 동급 구조라면 통짜 철갑탄보다 철갑유탄이 내부 공간이 비어있고 내부작약이 충전된 관계로 포탄이 더 잘 깨지기 쉬워서 탄자붕괴에 더 취약하다. 철갑유탄의 내부작약은 장갑을 관통한 후 내부손상을 크게 하기 위함이지 장갑관통력 그 자체에는 약간 손해가 나는 구조다.
덤으로 당시의 지상군용 피모철갑탄의 피모는 위에 언급했듯 구경의 한계로 인해 부드러운 피모가 많았는데, 해당 방식은 20도가 넘는 경사각을 가진 경사장갑에 대해서는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데다가 장갑의 표면을 경화시킬 경우에는 피모가 장갑의 표면에 손상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바람에 포탄 본체가 장갑과 격돌해서 깨지는 탄자 붕괴 현상이 터지기 딱 좋다. 그래서 구경이 크고 낙각으로 인한 입사각은 더 큰 해군의 함포에서는 포탄 본체의 15% ~ 20%의 중량[8]을 가질 수준으로 튼튼하고 딱딱하며 무거운 피모를 사용해서 장갑의 표면이 경화되었더라도 튼튼하고 딱딱한 피모로 표면을 분쇄하고 홈을 파서 포탄 본체가 튼튼하고 딱딱하며 무거운 피모와 충돌해서 피해를 입고 손상된 장갑과 만나므로 쉽게 관통하도록 설계한다. 예시
그러나 지상군용의 소구경 화포에서 튼튼하고 딱딱하며 무거운 피모를 장착하는 것은 어려웠기에 경심철갑탄이나 분리철갑탄 방식으로 바뀌게 되는데 57mm 포탄 개발에서 손을 놓았던 미국은 그걸 못했으니 답이 없었다.
비록 이시그니 테스트(Isigny Test)에서 6파운더의 문제점이 나타났으나 미국이 해당 대전차포를 타국에 공여하기로 결심한 순간 어차피 미군이 사용할 것도 아닌 이상 기존의 단점은 무시해버리고 영국제 분리철갑탄(APDS)을 라이선스 생산하거나 수입해서 한국군에게 지급하는 한편으로 기존의 철갑탄은 폐기처리하거나 연습용으로 지급하거나 장갑차 격파용 같은 임무에 쓰라고 지급했다면, 비록 분리철갑탄이 명중률이 낮고 여러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현장에서 한국군이 대전차포병을 희생해가며 근접전을 할 경우 실제 일어난 전투보다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데 이를 다 날려먹은 것이다.
실제 스펙상으로도 이론상 320m라는 초근접거리에 들어와야 T-34-85의 전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데 경사장갑이라 명중탄이 나도 탄자 붕괴 내지 도탄이 발생하기 딱 좋다. 게다가 실전에서 정직하게 전면 장갑을 드러내는 일도 적은데다가 320m까지 근접하면 대전차포를 쏘기도 전에 전차가 선제공격해서 85mm 전차포 고폭탄과 공축기관총 세례를 동시에 맞아 인수분해 당하기 딱 좋다. 실제로 미국 군사고문관이 직접 T-34에 조준사격을 했음에도 격파에 실패하는 것을 확인한 후 탈출한 기록이 있다.
후자의 경우 현재 활동 중지 및 백업 전무로 사라진 다음 블로거 봉달이의 경우 이를 두고 이상할 것도 없는다고 주장하였는데, 한 예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숙련된 대전차포 사수들이 500야드(약 457m) 거리의 2차 세계대전 당시 4호 전차의 사이즈를 상정한 정지표적에 대한 명중률이 75% 정도였다고 하니, 훈련도 숙련도도 부족한 국군이 기동하는 T-34를 상대로 제대로 명중시켰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실제로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및 미군에서 흔히 발생했으며, 이것을 위력 부족으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6파운더로 T-34-85를 아예 못잡은 것은 아니다. 청주 전투에서 1문으로 T-34를 3대를 잡았다거나 낙동강 전선에서 1사단 11연대 소속 2문으로 북한군 13사단에 배치된 전차 5대 중 3대를 완파/반파했던 것 외에 수원 등지에서도 전과가 있던 것으로 보면 아예 못 잡는 물건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사례는 대전차포 운용병력이 자기 몸을 갈아서 낸 전과이며 청주와 낙동강의 전과는 당시 미국에게 요청하여 철갑탄을 대거 지원받은 후에 거둔 것이었다. 덤으로 포탄이 장갑에 명중하는 입사각을 잘 조정해서 정타를 날리거나 경사장갑에 명중해도 탄자붕괴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6파운더가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군사학적으로는 전차의 무한궤도를 끊어서 일시적인 주행불가 상태로 만들어도 격파로 인정받는다. 이러니 전차의 무한궤도를 약간 손상시키고 대전차부대가 전멸한 다음에 30분 뒤에 전차가 다시 기동하는, 총합적으로 따지면 엄청난 피해와 함께 시간벌이도 못하는 전투라도 전차의 격파수에 들어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서 개전 초기의 한국군은 T-34-85 전차와 SU-76M 자주포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상황이었던지라 6파운더로 격파한 기록의 상당부분을 진정한 전차의 완전격파로 보기에는 부적절하다. 위의 기록도 이런 것을 감안한 후에 인정받을 만 해서 올라간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튼튼한 진지를 만든 후 매복한 후 전면에 대전차 지뢰를 깔아놓고 적 전차의 측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조건을 전장에서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개전 초반에 한국군에게 대전차 지뢰는 시제품 180여개만 존재했으므로 애초부터 답이 없었고 숙련된 병력도 모자란데다가 철갑탄도 부족했고 여기에 앞서 말한 숙련도 부족, 6파운더 고유의 문제점인 명중률, 탄자붕괴, 분리철갑탄을 미국이 라이선스 안함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제 성능의 절반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북한군의 T-34-85 전차의 경사장갑 맛을 톡톡히 보면서 초기 방어전에서 많은 희생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사단 화력 부족으로 대전차포의 본연의 임무가 아닌 보병 화력지원용으로도 사용한 탓에 적 전차에게 노출되었다는 점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보병 화력지원용으로 쓸 화포가 부족했던 탓이다.
여기에 더해서 사단용 경야포 겸 대전차포로 쓸만한 무기가 미국에 있었는데 3인치 M5 대전차포다. 해당 대전차포는 구경의 76mm로 고폭탄 화력이 57mm보다 우월하며 명중률도 좋고 포탄이 탄자붕괴가 발생하지도 않고 기본적인 철갑탄인 M62 피모철갑탄도 준수한 편이고 M93 경심철갑탄은 매우 쓸만하여 실제 동급 화포인 76mm M1 전차포를 장착한 셔먼 전차들이 T-34-85를 손쉽게 격파하고 다녔으므로 차라리 6파운더 대신 같은 도태화기인 3인치 M5 대전차포라도 주었으면 6.25 전쟁 개전 초기에 그렇게 한국군이 북한군 전차 소수에게 심각할 정도로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3인치 M5 대전차포가 인력만으로 운용하는게 매우 힘들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고정진지에 배치해서 북한군 전차 몇 대만 정면에서 박살내도 본전은 뽑는 셈이고 위력이 훌륭하다면 한국군이 인원을 총동원해서라도 1문에서 2문 정도는 어떻게든 인력으로 끌고 다니면서 악착같이 운용할 것이니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잘못된 판단 탓에 현역 시절인 2차대전 당시에도 슬슬 도태되어가던 구식 화기를 그나마 쓸만하게 만들어주는 분리철갑탄 같은 신형탄종을 단점이 많다면서 라이센스 생산하지도 않고 탄자붕괴 등의 단점이 전혀 개선이 안된 구식 철갑탄과 함께 한국에 대전차포랍시고 지급한 것이 만악의 근원이었다. 실제로 M1 57mm 대전차포의 답없음을 알고 있는 미군 중 일부가 역시 도태화기지만 좀 더 쓸만한 M10 GMC라도 한국군에게 주어야 한다고 했다가 주장이 반려당한 사례까지 있으니 답이 없다. 한국군이 이런 수준의 대전차포를 가지고 숙련되지도 않은 인원으로 운영하여 전차를 격파하는 성과를 냈다는 것 자체가 칭찬받을 일이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철갑탄이 대량으로 지급되었지만 M1 57mm 대전차포는 망실되는 수량을 거의 보급받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배치수량만 사용되었다. 미군도 바주카 수량이 모자라서 한국군에게 지급한 바주카를 도로 반납하라고 요청하는 실정이었고 대전차공격대대라는 편제에 일반 바주카 6문이라는 소량의 대전차화기만 지급하는 실정에서 예시 M1 57mm 대전차포가 철갑탄만 지급하고 숙련된 인원이 운용하면 쓸만했다면 대전차포 수량이 늘어야 할 것인데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균질압연장갑 280mm를 관통가능해서 T-34-85를 쉽게 잡는 M20 슈퍼 바주카(Super Bazooka)가 한국군에도 조금씩 지급되기 시작하면서 도태병기화된 M1 57mm 대전차포는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대전차 임무에서도 사실상 퇴역했다.
다부동 전투 전적 기념관에 1문이 전시되어 있다. 예시
3.8. 미디어
3.8.1. 게임
3.8.1.1. 월드 오브 탱크
미국 전차 트리의 M8A1의 주포로 나오며 그럭저럭 쓸만한 주포다. 6파운더라는 이름 자체는 영국 전차 트리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미국 미디엄 5티어 M7의 경우 철갑탄과 고속철갑탄만이 사용 가능한 6파운더를 지니고 있다.3.8.1.2. 워 썬더
전차 탑재형으로 등장. 영국제 포 답게 관통력은 우수하나, 작약이 없는 쇳덩어리라 내부 파괴력은 많이 부족하다. 미국의 프리미엄 T18E2 장갑차와 M4A5 램 Mk.II, 영국의 크루세이더 Mk.III, 처칠 Mk.III, 그리고 크롬웰 초기형[9] 등 여러 차량에 장착된다. 독일은 노획한 처칠 Mk.III에 등장, 소련은 랜드리스로 받아온 SU-57과 Mk.IX 발렌타인이 있다.[10][11]3.8.1.3. 배틀필드 V
나오는 연합군 고정형 대전차포가 OQF 6파운더이다.3.8.1.4.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3.8.1.4.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미군 진영에서 대전차포 유닛으로 등장한다.3.8.1.4.2.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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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3에 등장한 영국군 소속 OQF 6파운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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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3에 등장한 미군 소속 M1 57mm 대전차포 |
3.8.1.5. Steel Division: Normandy 44 시리즈
미군과 영국군의 중간급 대전차포로 등장한다. Steel Division 2 기준 1.5km의 사거리를 갖고 있고 APCR 사용 시 1km 내로 근접해 온 타이거와 판터도 잡을 수 있다. 그냥 일반 철갑탄만 써도 1km 내에서 4호 전차나 돌격포는 쉽게 잡으며 타이거 측면도 잘 뚫을 수 있다. APCR 탄을 꺼놓고 있다가 중전차가 접근 시 아예 사격금지로 대기하다가 기습적으로 APCR을 발사해서 잡아주면 좋다.일부 처칠과 발렌타인 전차의 주포로도 나온다. 75mm 처칠보다 대전차 관통력이 좋지만 대보병능력은 개판이다.
[1]
17파운더를 견인하는 방식도 거추장스럽기는 마찬가지라 영국은 17파운더의 자주포화에 힘을 썼다.
[2]
대한민국육군협회에서 출판한 '우리가 겪은 6.25 전쟁 1권' 121쪽에서는 어디 출처인지 457m에서 36mm의 관통력을 보인다는 잘못된 서술이 나온다. 반면 더 소형인 소련의 45mm는 500m에서 66mm의 관통력을 보인다고 서술되어 있다.
[3]
Dunnite(Explosive D)라는 폭약이 34g 정도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Ordnance_QF_6-pounder
[4]
인가만 받음
[5]
생산 중
[6]
18연대 대전차포중대의 청주 남쪽 대전차전
[7]
포병학교 57mm 대전차포 소대의 초전 3일
[8]
저구경일수록 탄두 중량에서 피모 중량의 비중이 커진다.
[9]
75mm 탑재 후기형보다 BR이 높다! 크롬웰I이 크롬웰V보다 BR이 높은 이유는 더 높은 관통력, 더 빠른 속도, 더 높은 장전 속도 때문이다.
[10]
M3 하프트랙의 57mm M1 대전차포 탑재형인 T48 GMC의 소련 제식명이다.
[11]
물론 셋 다 프리미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