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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nance Quick-Firing 17 poun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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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파운더 대전차포 발포 영상 | 대전기 당시 17파운더 대전차포 운용 영상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개발한 대전차포.
2. 제원
OQF 17파운더 제원 |
3. 개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육군은 기존의 2파운더와 6파운더 대전차포로는 계속 강해지고 발전해가는 독일군의 전차들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1940년 말부터 더 강력한 고성능 대전차포 개발에 착수했다. 이에 신형의 17파운더가 1941년 말에 완성되어 1942년 봄에 양산이 시작되었다.포 본체는 개발이 쉬웠지만 포가의 개발은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그 이유는 대전차포의 특성상 포가 자체가 낮고 가벼우며, 신속한 선회가 가능해야 하지만, 76.2mm(3인치)라는 구경은 이미 제1차 세계 대전기에 운용했던 경야포의 구경과 같을 정도로 큰 데다 후술할 강장약에서 나오는 특유의 괴랄한 반동 때문에 쉽사리 포가를 축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42년 말부터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군이 티거 1을 투입하자 황급해진 영국군은 티거를 전면에서 한방에 격파 가능한 17파운더를 빨리 전선으로 보내기 위해서 급한대로 17파운더의 포체와 25파운더 견인포의 포가를 이용하여 조립한 물건을 25/17파운더로 제식화한 다음에 1943년 2월에 실전 투입했다. 이 경우 더 크고 무거운 견인 야포의 포가를 이용했기 때문에 크기와 중량이 더욱 늘어나서 은엄폐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 이걸 사용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꽃피게 만들어주는데, 그런 것을 모두 감수하고도 당장 쓸만한 대전차포가 필요한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때 얼마나 급했는지 공장에서 완성되는 대로 전장에 보내는 바람에 17파운더의 최초 실전 투입인 튀니지 전선의 마레트 방어선 공략에서는 단 1문의 17파운더만 투입되었다.
후에 17파운더의 전용 포가가 완성되어 이를 사용한 완성형 17파운더 대전차포는 이탈리아 전선 및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서부전선의 유럽부대에 우선적으로 배치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버마 전선 등 태평양 전선에는 단 1문도 배치되지 않았는데, 이는 정글이나 늪지대가 많은 지역에서는 중량이 큰 화포의 이동이 더욱 불리한 데다, 해당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군의 전차는 치하나 하고처럼 너무 장갑이 취약해서 포탄 내부의 작약이 없는 2파운더 대전차포로도 손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2] 그래서 굳이 무겁고 커서 기동이 용이하지 않은 17파운더를 배치할 필요는 없었다. 17파운더를 주포로 탑재한 셔먼 VC, 셔먼 IC, 셔먼 IC 하이브리드나 아킬레스 역시 같은 이유로 태평양 전선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4. 특징
17파운더라는 이름답게 17lbs(7.711kg)에 달하는 장약이 특징. '운동 에너지는 질량과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니까 장약을 많이 넣어서 탄속을 끌어올리면 관통력이 엄청 올라가겠지?'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런 컨셉 덕분에 관통력 하나만큼은 엄청난 수준이어서 실험에서 비교적 관통력이 떨어지는 APCBC가 500m에서 163mm, 1000m에서 150mm, 1500m에서 137mm를 관통할 수 있었으며 3000m에서도 107mm를 관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포신이 1m 정도는 더 긴 5호 전차(판터)의 주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APDS를 사용하면 관통력이 더 증가해서 500m에서 256mm, 1000m에서 233mm의 관통력을 가지며 3000m에서도 162mm의 관통력이 가능했었다. 단, 도입 초창기에는 APDS가 아닌 SVDS(Super-Velocity Discarding Sabot)이라고 불렀다.17파운더의 관통력은 6호 전차(티거)나 5호 전차(판터)의 주포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는데, 티거의 주포( 8,8cm KwK 36)가 500m에서 151mm, 1000m에서 138mm, 1500m에서 126mm의 관통력을 가지며 판터의 주포( 7,5cm KwK 42)는 500m에서 168mm, 1000m에서 149mm, 1500m에서 132mm의 관통력을 가진다. 둘 다 APCBC를 사용한 결과이며 동일하게 APCBC를 사용한 17파운더의 관통력은 판터에게는 열세이나 티거에게는 오히려 약간 우세한걸 볼 수 있다. APDS를 사용할 경우에는 비슷하게 고관통 특수탄환인 APCR을 사용하는 두 주포보다 관통력이 훨씬 더 높아진다. 저 두 전차의 전차포의 관통력이 2차대전에서 최상급이라는것을 고려하면 17 파운더의 관통력 또한 최상급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17파운더가 상대해야할 티거나 판터는 M4 셔먼, ISU-152, 셔먼 VC, 셔먼 IC, 셔먼 IC 하이브리드, T-34-85 같은 전차들보다도 훨씬 강력한 장갑을 갖추고 있었다.
1944년 독일군 병기국 6과의 보고서에 의하면 17파운더의 APCBC탄은 5호 전차 판터의 차체 전면 상부 장갑을 상대로 400야드(365.8m)에서나 효과를 볼수 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17파운더의 위력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미국의 76mm 전차포로는 해당 부위를 영거리에서도 뚫지 못했다.[3] 다만 그렇다고 판터가 17파운더의 APCBC에 대해 무적은 아니었고, 전면이라고 해도 차체 하부나 포탑은 훨씬 방어력이 약했기 때문에 근거리에서는 76mm로도 관통이 가능했으며 17파운더의 APCBC로는 최대 2km에서도 관통 가능하였다.
게다가 17파운더에는 APCBC보다 더 빠른 포구초속으로 강력한 관통력을 내는 17파운더용 APDS가 있기는 했다. 이는 3km 거리에서 티거의 전면을, 1.5km 거리에서도 판터의 전면을 뚫을 수 있었다. 그러니 만약 APCBC로 상대하기 힘든 적을 마주치면 APDS를 쏴버리면 되지 않겠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안타깝게도 APDS의 명중률은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사격장에서 최상의 조건으로 세팅된 시험 사격에서 APDS의 명중률은 800야드에서 겨우 20% 수준에 불과했고 노획한 판터 전차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는 200~600야드에서 숙련병들이 수십 발을 사격했지만 겨우 절반 정도만이 명중했다. 이는 티거나 판터는 물론이고 IS-2의[4] 전후 미군 테스트에서는 미군의 76mm APC가 0.11mil(1km에서 12cm)의 정확도였고 17파운더의 APCBC는 0.19mil(1km에서 20cm)이 나왔다. 그러나 17파운더의 APDS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명중율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해, 1천 야드 거리의 표적에 18발을 쐈는데 한 발도 안 맞자 그냥 테스트를 중단했을 정도였다. #
그래도 APCBC탄은 장거리 사격 시 어떻게던 써먹을 명중률은 나오며 관통력도 동급 전차포 중에서는 최상급이었으므로 대부분은 APCBC를 지급하였으며 APDS는 6%만 지급돼서 근거리에서 적 전차를 확실하게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게 된다.
APDS에서 명중율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 구조와 관련이 있었는데, 탄의 특성상 포구보다 작은 관통자를 송탄통이 감싸고 있다가 포구를 벗어난 후 분리되며 송탄통은 버려지고 관통자만 날아가게 된다. 이는 상당한 정밀도를 요구하는 부분이었기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동시기 APDS탄은 17파운더가 아니라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17파운더의 APDS는 전후 1946년에 캐나다군이 개량해서 명중율을 올렸고, 1953년에는 영국군에서도 설계가 개량되어 해결되기는 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는 기존의 17파운더에 비해 전차 탑재용으로 포신을 짧게 자르고 장약을 줄여 탄속을 좀 더 느리게 만든 코멧의 77mm 포는 APDS의 명중율이 훨씬 더 좋았다는 점으로, 너무 빠른 탄속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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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파운더의 발사 이후 포구화염 |
한편 엄청난 장약을 넣는다는 방식으로 인해 한번 발포하면 장약을 많이 때려박은 만큼 크고 아름다운 포구 화염이 발생하여 위장과 은엄폐 정도에 상관 없이 위치가 100% 곧바로 노출되고 탄착을 관측하기도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영국군이 테스트용으로 제공한 17파운더가 미국의 고관들이 참관한 시험에서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미군이 자국의 3인치를 선택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심지어 포미부에서조차 위험할 정도의 섬광이 비쳤다.[5] 라는 증언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2파운더가 진짜 쇳덩어리 철갑탄만 있고, 6파운더는 철갑탄은 여전히 쇳덩어리 그 자체인 데다가 긴급개발의 문제점으로 인해 구경에 비해 위력은 수류탄 수준의 고폭탄밖에 없어서 전차를 제외한 나머지 목표에 대해 사실상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어서 보병 지원용 포격이 안 되며, 소수의 적 보병이나 적의 경장갑차에게 쉽게 당했던 전훈에 대한 반성으로 76.2mm 급에 맞는 고폭탄도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해당 고폭탄도 초기형은 강력한 장약과 장약 폭발시의 충격을 견디기 위한 튼튼한 탄두 덕분에 안에 들어가는 작약량이 떨어져서 성능이 떨어지므로 신형 고폭탄을 추가로 개발해야 했다.[6] 이러한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계속됐으며, 6.25 전쟁 때 캐나다에서 보내준 M10 아킬레스의 17파운더로는 중공군을 상대하기 부적절해서 미군으로부터 셔먼을 수령받았다.[7]
5.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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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I
첫 생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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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II
차량에 탑재하기 위한 전차포로 개량한 버전. 견인포용 마운팅을 제거하고 포구제퇴기(머즐 브레이크)를 균형추로 교체했다. 그러나 1944년 3월부터는 17파운더용 분리철갑탄의 등장과 함께 다시 전차포 버전에도 제퇴기가 생겼다. 이 버전은 Mk.I 아처 대전차 자주포와 A30 챌린저의 주포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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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IV
개선된 차량 탑재용 전차포 버전. 차량 내부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포미 설계가 변경되어 폐쇄기 블록이 기존의 세로 방향 대신에 가로 방향으로 움직이게 바뀌었다.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주포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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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V
Mark IV에서 주포 마운트를 교체하여 범용성을 높인 버전. 미국의 M10 GMC에 장착된 3인치(76.2mm) M7 주포와 바로 교체 가능하였고, 이 버전의 주포를 M10에 장착한 M10 아킬레스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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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VI
Mkar IV 개량형. 포미가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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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VII
Mark VI와 비슷하나 포미가 살짝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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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ussler 변환
DD 전차의 개발자인 헝가리 출신 엔지니어 니콜라스 슈트라우슬러가 개발한 버전. 17파운더 주포를 자력 주행 가능한 이동대차에 올려놓은 자력 주행 4륜 견인포다.
5.1. 77mm HV
17파운더 포의 저압화 축소 버전.영국에서 원래는 크롬웰 전차의 강화된 주포로 장착할 목적으로[11] 75mm HV(High Velocity) 고속포가 개발되었다. 75mm HV는 6파운더보다 화력이 강한 미국제 75mm 전차포 M2–M6용 75mm 포탄을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강력한 전투 성능을 내기 위해서 미국제 75mm 탄두를 영국제 QF 3인치 20cwt 대공포의 약협에 끼워서 만든 포탄을 운용했다. 더 크고 강한 장약을 사용한 덕분에 기존의 미국제 75mm 주포의 화력을 보유하면서도 6파운더보다 강력한 철갑탄 관통력을 내는게 가능했다.[12] 그러나 만들고보니 75mm HV가 크롬웰 전차의 포탑에 들어가기 너무 컸다는 문제가 발견되었고, 결국 크롬웰에는 호환 가능한 다른 전차포인 QF 75mm가 75mm HV 대신 장비되었다.
결국 크롬웰에 75mm HV를 장착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서 1944년이 되자 크롬웰의 화력 강화형 내지는 후속작으로 계획된 코멧 전차(A34)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코멧 전차가 개발될때 영국군은 안정적으로 고화력 포를 장착할 수 있는 순항전차를 요구했기 때문에 확실히 크롬웰보다는 크고 강한 주포를 탑재해야 했다. 하지만 A30 챌린저의 문제점과 실패를 통해서 오리지널 17파운더를 주포로 쓰기는 곤란하다고 여겨지고 있어서,[13] 전투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차의 신뢰성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원본 17파운더 대신에 17파운더를 기반으로 크기를 축소한 주포의 개발이 결정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77mm HV 고속포다. 77mm HV는 이전에 빅커스가 만든 75mm HV를 기반으로 17 파운더의 포탄을 쓸 수 있게 개발되어서 길이를 조금 축소한 17파운더의 포신을 75mm HV의 포미와 폐쇄기 부품에 결합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장약도 75mm HV처럼 QF 3인치 20cwt 대공포의 장약을 활용하게 개발되었다.
3인치 20cwt 대공포용 포탄의 장약이 원본 17파운더용 포탄보다 적기 때문에 반동과 포미부의 크기도 줄일 수 있었고, 그 결과 원래 17파운더라면 포탑과 크기가 안 맞거나 차체가 반동을 못 견디는 문제로 장착이 불가능했던 많은 차량들에도 장착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17파운더를 달 수 없었던 기존의 화력이 약했던 차량들에도 77mm HV를 장착하여 17파운더에 준하는 화력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17파운더의 축소판이자 저압포 사양으로 개발된 물건인 만큼 포신 길이도 짧아지고 장약도 줄어들고 약실 압력도 낮아졌기 때문에 원본 17파운더보다는 포탄의 포구속력과 관통력같은 성능이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원본 17파운더보다 짧아진 장약통을 사용한 덕분에 탄두와 장약을 합친 포탄의 길이가 17파운더보다 줄어들면서 차체 내부에 포탄을 더 많이 적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과 달리 실제 포탄 구경은 76.2mm지만 이미 존재하는 3인치(76.2mm) 포와 탄약 공급에 있어서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막으려고 처음부터 76.2mm와는 다른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덤으로 장약통이 더 줄어든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17파운더의 파생형이지만 오리지널 17파운더와는 장약까지 포함한 전체 포탄이 호환되지는 않는다.
77mm HV는 제2차 세계 대전기 말에 등장한 코멧 전차의 주포로 탑재되었고, 센추리온 전차의 일부 프로토타입 차량들에도 주무장으로 장착될 계획이었다. 이 외에도 A46 경전차와 2차 대전 전후 영국에서 개발된 FV301 경전차와 그에 기반하는 빅커스 미디엄 크루저에도 장착될 계획이 있었다. 197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FV603 사라센을 기반으로 만든 시제 장갑차에도 장착되었다.
5.2. 차량 탑재형
포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전차나 장갑차량의 무장으로 탑재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특히 유럽 전선에서의 전투가 본격화되고 독일군에 티거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은 급하게 17파운더를 자주화한 차량들을 찾기 시작했다.17 파운더를 차량에 장착한 대강 몇가지 예시만 들어도, 밸런타인 전차의 차체 위에 17파운더를 장착한 Mk.I 아처 대전차 자주포 및 미국에서 원조받은 M10 GMC의 3인치 주포를 철거하고 17파운더를 탑재한 아킬레스 대전차 자주포, M4 셔먼 전차를 개조한 셔먼 VC, 셔먼 IC, 셔먼 IC 하이브리드, 크롬웰 전차를 기반으로 만든 챌린저, 처칠 전차를 기반으로 만든 블랙 프린스, 초중전차 TOG II*, 크롬웰 전차를 기반으로 17파운더를 약화시킨 OQF 17 pdr HV 포를 장착한 코멧, 심지어는 전후 최초의 1세대 전차로 평가받는 센추리온 전차에도 대전기에 개발된 초기형에는 17파운더가 장착되었다.
하지만 17파운더를 장착한 차량 중에서 2차대전 중에 제대로 완성돼서 활약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완성된 차량들 중에서도 다른 문제 때문에 채택이 거부되어 프로토타입에서 그친 경우, 아니면 양산과 실전 배치까지 이루어졌지만 운용되면서 다른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14]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포의 위력이 강한 만큼, 기존의 다른 영국제 주포들에 비해 사격 반동도 심하고 포 자체의 중량도 상당해서 이를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설계와 넉넉한 용적을 가진 차량 설계가 필요했지만 2차 대전기 기술로는 이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운용하던 기존 순항전차/ 보병전차들의 베이스 플랫폼들은 이런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고, 대전 발발 전후로 다른 곳에 나갈 비용이 넘쳐나던[15] 상황에서 영국군 입장에서 차세대 기갑차량 플랫폼을 당장 준비하기에는 자금과 시간에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전쟁 중기까지 순항전차 크롬웰과 보병전차 처칠같은 기존 차량들의 플랫폼에 17파운더를 이식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17파운더를 달고 양산과 실전 배치에 성공한 차량들의 경우 밸런타인 전차를 기반으로 만든 Mk.I 아처는 17파운더 자주화에는 성공했지만 화포가 차체 뒤를 향하도록 탑재해야 해서 운용이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A30 챌린저는 포탑에 일단 17파운더를 장착하는데는 성공하고 실전 배치까지 되었지만 무게 때문에 포탑 장갑이 상당히 얇아졌고, 17파운더를 넣기 위해서 포탑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에 무게 불균형 문제와 차체 신뢰성 문제가 심했다. 프로토타입에서 끝난 차량들의 경우 블랙 프린스는 안 그래도 느린 처칠 기반의 차체에 17파운더까지 올려놓고 보니 밸런스는 맞았지만 기동성이 형편없었고, TOG는 초중전차의 전형적인 약점이 잔뜩 있었다.
그나마 괜찮은 평가를 들었던 크롬웰 플랫폼을 대형화시킨 코멧 전차도 원본 17파운더 장착은 포기하고, 17파운더를 경량화시킨 77mm 주포를 장착하였고, 이마저도 생산이 아르덴 대공세로 늦어지면서 대전 말기에 투입이 되었다.
1944년에는 무기대여법으로 받은 미국/캐나다제 M4 셔먼과 M10 GMC에 17 파운더를 장착한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M10 아킬레스가 영국군에 배치되어 활약했다. 아킬레스의 경우 본질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M10에서 포만 교체한 물건이었고, 셔먼 파이어플라이도 커다란 17파운더를 셔먼 전차에 겨우 우겨넣는 수준으로 만든 물건이다보니 문제가 없던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국에서 개발된 A30 챌린저보다는 신뢰성이 좋아서 영국군에게 선호되었다.
처음부터 17파운더의 장착을 상정하고 새롭게 개발한 영국제 차량은 센추리온 전차였지만, 센추리온이 등장할 시점에는 전쟁의 거의 끝나갔기 때문에 센추리온은 2차 대전에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전후 영국군의 주력 전차가 되었다. 결국 17파운더를 자주화하려는 노력은 사실상 전후에 배치된 센추리온 전차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6. 평가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의 경우, 새로 부대에 M10 GMC가 배치되고, 해당 대전차 자주포가 가진 3인치 대포가 강력하다는 소개를 받자, 그래도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더 우수하다는 평을 내린다.APDS의 명중율이 시궁창인 걸 포함해 여러 단점이 많았지만 APCBC는 쓸만했고 어쨌건 영국군은 적 전차의 장갑을 확실히 꿰뚫을 수 있는 묵직한 한 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17파운더는 그 임무목표에 절륜한 화력에서 나오는 훌륭한 실적과 셔먼 파이어플라이라는 걸출한 결전병기로 보답했다.
한편 미국 또한 3인치 포 그 자체로는 부족함을 느껴서 위에 문제된 M10 GMC에 90mm 대전차포를 무장시키고 포탑을 새로 바꿨다. 이것이 2차 대전 최강의 대전차 자주포인 M36 GMC이다.
7. 대전 이후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포였지만, 17파운더는 압도적 생산력과 화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과 영연방군[16]의 주력 대전차포 혹은 전차포로 이용되었다. 6.25 전쟁에도 캐나다와 호주군이 가져와서 사용했고, 여기서는 대전차전 뿐만 아니라 북한군과 중공군의 토치카나 벙커를 포격하는 직접화력지원에도 사용되었다.하지만 종전 이후 머지 않아 일어난 6.25 전쟁 시점에서 17파운더는 영국군의 주력에서 밀려나 퇴역한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17파운더로는 IS-3와 같은 소련군의 중전차 전력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IS-3를 정면에서 격파하는데 17파운더로는 어림도 없다고 판단되어 1948년부터 더 강력한 20파운더 주포가 개발되어 센추리온 전차 Mk.3 버전부터 주포로 장착되었다.
1948년에 개발된 20파운더는 17파운더보다 구경을 더 키움으로써 화력을 증가시켰고, 주포 신뢰성이나 사용 안정성 면에서도 17파운더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더불어 6파운더에서 처음 상용화되어 관통력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이를 상회하는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APDS 포탄의 성능도 크게 향상시켜 상당한 수준의 개선을 이뤄냈다. 즉, APDS라는 탄종을 개선시킨 것만으로도 이미 17파운더에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17파운더를 오래 사용할 수도 있었을[17] 영국 내 본토방위 부대나 경제적으로 곤란한 국가들에게는 20파운더 주포를 장착한 채리어티어 전차가 보급되는 바람에 17파운더의 가치는 1950년대 시점에선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다만 한국전쟁에서 오스트레일리아군이나 캐나다군이 17파운더를 사용[18]하기는 했다. 물론 이쪽도 오래 지나지 않아서 20파운더나 76mm 셔먼으로 대체되었다.
8.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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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파운더가 등장하는 미디어 일람 |
8.1. 게임
8.1.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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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3에 등장한 영국군 소속 17파운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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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3에서 등장한 오스트레일리아군 소속 17파운더 |
8.1.2. 스틸 디비전 시리즈
영국군 고급 대전차포이며 남아프리카, 캐나다, 뉴질랜드, 인도 등 영연방 국가들 외에 체코슬로바키아나 자유 폴란드군 등 다른 서방 연합 진영도 받아서 사용한다. 주포로 탑재한 파이어플라이, 아킬레스, 챌린저도 등장한다.2km에서도 판터와 타이거를 잡아볼 수 있어 독일군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영국군 보병사단들은 17파운더를 요충지에 배치해서 개활지 견제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신 위치가 파악된 후엔 폭격이나 포격에 집중당하기 좋으므로 매복해서 전차를 좀 잡은 후엔 차량에 견인해서 조금 움직여 주는 게 좋다.
단점은 킹 타이거급의 전면장갑을 장거리에서 절대 잡을 수 없어서 일방적으로 밀린다.
8.2. 월드 오브 탱크
블랙 프린스, 토그 등 6~7티어 영국 전차가 사용하는 최종포로 나온다. 골탄 관통력이 구축전차 수준인 239mm나 되어 동티어 모든 전차들의 약점을 뚫을 수 있다. 특히 토그는 6티어 주제에 그 수준의 깡 관통력을 똑같이 받아 영국 장갑구축의 주장갑대도 숭숭 뚫어대는 기적을 보여준다.9. 관련 문서
[1]
이 포구초속은 정말 대단한 수치이다. 단순히 동시기 대전차포와 비교해보면
PaK 40 같은 경우 피모철갑탄은 790m/s, 경심철갑탄은 990m/s다. 라체-밤으로 유명한
ZiS-3는 철갑탄의 경우 700m/s이다. 다만 판터의 주포인
7,5cm KwK 42하고 비교하면 피모철갑탄의 포구속력이 100m/s 정도 느린데, 이 둘의 구경장이 15씩이나 차이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납득이 간다. 물론 분리철갑탄은 당대 포구속력으로 유명한
티거 2의 주포인
8,8 cm KwK 43 경심철갑탄의 1,130m/s보다 빠르다. 참고로 고폭탄도 유독 빠른 점도 포인트이다.
[2]
연합군 입장에서는 전차라고 보기 어려운
치하에게는
6파운더도 사치에 가까웠다.
[3]
판터의 전면 장갑 두께는 티거보다 얇은 80mm지만
T-34 전차처럼 경사 장갑을 채용한 덕분에 실질적인 방어력은 티거보다 우수했다.
경사장갑 문서 참조.
[4]
단, IS-2의 주포 명중률 자체는 티거의 명중률과 동급이다...라는 주장은 러시아 밀덕계에서 양측 표적지의 모양이 원형과 사각형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반쯤 왜곡한 것이다. 해당 사실을 감안하고 계산하면 122mm 포의 탄착군 지름이 50%가량 넓었다.
[5]
이는 초기형의 문제로 약실 폐쇄가 확실하게 되지 않아서였고 금방 고쳐졌다.
[6]
단, 의외로 구형 고폭탄의 작약량도 미제 76mm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며, 신형 고폭탄의 작약량은 이보다도 좀 더 많지만 셔먼이나 크롬웰, 처칠이 쓰던 75mm 주포보다는 적다.
[7]
17파운더의 장약량이 미제 76mm보다 약간 더 많다곤 해도 어차피 대전차전을 거의 수행하지 않고 대보병전 위주로 흘러가던 당시 상황에선 17파운더의 관통력은 불필요하고 포구 화염, 속사의 어려움 같은 문제가 부각되었다. 또한 물장갑 오픈탑에 적 보병을 제압할 기관총 한정 없는 M10보다는 공축 기관총, 차장 기관총, 차체 기관총을 활용할 수 있는 셔먼이 훨씬 대보병전에 적합하기도 했다.
[8]
영국 톤(2,240파운드=1,016킬로그램) 기준이다.
[9]
극소수가 생산된
12.8㎝ PaK 44는 제외
[10]
관통력 면에서는 17파운더가
PaK 40의 1.5배, PaK 43의 0.75배 정도였다.
[11]
6파운더 대전차포는 철갑탄의 관통력이 우수해도 고폭탄의 화력이 미국제 75mm보다 약했기 때문에 6파운더에 준하는 철갑탄 관통력과 대전차 능력을 가진 동시에 고폭탄의 화력도 미국제 75mm 수준으로 강한 주포의 개발이 결정되었다.
[12]
포구 운동 에너지는 기존 미국제 75mm의 2배에 달하였다.
[13]
특히 코멧은 영국군이 크롬웰의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급하게 요구한 임시 방편에 가까운 전차였기 때문에 개발 시간을 고려하면 차체 설계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새로운 차체를 처음부터 설계하는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코멧 전차는
크롬웰 전차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고, 크롬웰 기반으로 크기가 거의 늘어나지 않게 설계된 만큼 원본 17파운더를 문제 없이 장착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14]
이런 경우 화력 때문에 사실상 억지로 운용할 수밖에 없던 경우가 많았다.
[15]
해군은 독일과 이탈리아를 동시에 상대해야했고 공군도 상황은 비슷했다.
[16]
당시
호주군,
캐나다군,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 연방군 등 영연방 각국의 군대도 17파운더를 이용했다.
[17]
원래 노후 군무기는 퇴역 직후에는 치장물자로 전환해 차고에서 예비군용으로 묵혀두는 경우도 많고, 혹은 해외, 특히 자신들과 밀접한 관계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들로 수출하는 경우도 많다. 영국 같은 경우 구형 무기들을 굳이 비싸고 좋은 장비가 필요 없는 본토 방위 부대들에 보내거나 영연방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떨이로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18]
정확히는 울버린에 17파운더 주포를 장착한 아킬레스 대전차자주포
[19]
Mk.1과 Mk.2는 17파운더를 탑재했다.
[20]
선행 양산형인 카나번 Mk.1 버전에 탑재했다.
[21]
AC4에 17파운더가 탑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