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2:03

백중숙계

맏 백 버금 중 아재비 숙 끝 계

1. 개요2. 용례
2.1. 백(伯)·맹(孟)·원(元): 장남2.2. 중(仲): 차남2.3. 숙(叔): 삼남
2.3.1. 승(升)?
2.4. 계(季): 사남2.5. 또 다른 서열 유(幼)·치(穉, 稚): 막내
3. 기타

1. 개요

중국에서 이름이나 , 별명 등을 지을 때 사용하는 글자들로, 각각 장남, 차남, 3남, 4남를 의미한다. 백부, 숙부 가족 구성원의 호칭에도 사용된다.

형제간의 서열을 정리하는 용어는 높은 순으로 '백, 중, 숙, 계'이다. 서장자의 경우엔 백 대신 맹(孟)을 쓰기도 한다.[1] 예외가 있는데, 5남인 마속 하후영은 자에 '유(幼)'가 들어가며,[2] 주이 주환의 차남인데 자에 계(季)를 썼고, 제갈정 제갈탄의 막내아들인데 자에 중(仲)을 썼다. 백은 맏이라는 뜻이고 계는 막내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들이 두 명이면 첫째는 백아무개, 둘째는 계아무개가 된다. 5남 이상인 집안의 경우 임의의 글자를 지어서 붙였다.

이 글자들을 이용하면 가족 관계에서 형제를 확인할 수 없는 없는 인물이라도 몇 번째 아들인지 추측해볼 수 있다. 예컨대 동탁은 자가 중영이고 그 동생 동민은 자가 숙영이므로, 동탁과 동민 형제에게는 큰형이 하나 더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3] 유언의 아들 유장 4형제는 유장 빼면 자가 불명이지만 4남 유장의 자가 계옥이므로 그 위의 3형제가 백-중-숙을 썼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마의의 형제들은 장남인 사마랑이 백달, 차남인 사마의가 중달, 삼남인 사마부가 숙달인 식으로 자를 지었는데, 이렇게 8형제가 전원 돌림자로 달을 사용했기에 사마팔달로 묶여 불리기도 했다.

형제 간 서차를 나타내는 백중숙계의 뒤에 어떤 글자를 붙이는지는 딱히 정해지지 않아서 사마형제들처럼 같은 돌림자를 쓰는 경우도 있고 손책과 손권처럼 다른 글자를 붙인 경우도 있다. 손책은 백부, 손권은 중모인데 사실 이는 자와 이름을 서로 부합하게 지은 것으로, 손책의 ‘책’이 사령서를 뜻하니 부절을 의미하는 ‘부’를 ‘백’ 뒤에 붙여 ‘백부’라는 자가 되었고, 손권의 ‘권’이 권세를 의미하므로 모략을 뜻하는 ‘모’를 붙여 ‘중모’이다. 다른 형제들도 백중숙계를 따르되 뒷글자는 돕다(익)와 돕다(필), 바루다(광)와 돕다(좌)로 전부 명名에 맞추어 지었다.

백중숙계 자체가 그냥 형제 간의 서열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일 뿐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라서, 사실 전근대의 유행에 가깝다. 그래서 백중숙계를 써서 자를 지은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대표적으로 제갈근(자유子瑜) - 제갈량(공명孔明) 형제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유방 형제처럼 백중숙계 중 한 글자를 빼고 쓰는 경우도 있다.

2. 용례

※문단명에서 소개하는 용례와 차이가 있는 경우 추가 설명.

2.1. 백(伯)·맹(孟)·원(元): 장남

2.2. 중(仲): 차남

2.3. 숙(叔): 삼남

2.3.1. 승(升)?

자료에 따라 승과 숙이 혼용되는 인물이 있다. 이는 叔과 升의 소전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혼동된 것으로, 升 자체는 형제의 서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위의 인물들은 현재 升을 표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이 당초 叔을 오독한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다.

2.4. 계(季): 사남

  • 마량
  • 배수
  • 사마욱
  • 소창(蕭暢) 자
  • 손광
  • 양홍
  • 여개
  • 오질
  • 유방 - 삼남인데 季를 썼다. 유방과 두 형 3형제는 叔이 없이 伯-仲-季 순인 것.
  • 유장
  • 육강
  • 조등
  • 종회 자 사
  • 주이문 - 주환의 차남인데 仲이 아닌 季를 썼다.
  • 진교
  • 최염
  • 하후위
  • 계찰: 수몽의 막내 아들로 합려에게는 5촌 아저씨가 된다. 총명하고 덕이 높아 형제들이 왕위를 양보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계찰이 북방에 사신으로 가던 도중 서나라의 군주를 알현했을 때 서나라의 왕은 계찰이 가지고 있는 보검을 내심 탐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계찰은 그 마음을 읽었으나 여정이 험난했기에 몸을 지켜야 하는 고로 검을 지금 주지는 않고 나중에 돌아올 때 주리라 맘 먹고 있었다. 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다시 서나라에 들렀을 때 왕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계찰은 무덤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무덤가에 있던 나무에 보검을 걸어놓고 떠났다. 따르던 종자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이미 줄 마음을 먹었으니 더이상 내 검이 아니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계찰괘검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됐다.

2.5. 또 다른 서열 유(幼)·치(穉, 稚): 막내

3. 기타

일본에도 이 비슷한 작명법이 있는데, 장남에게 타로(太郎)나 이치로(一郎), 차남에게 지로(次郎 혹은 二郎)를 많이 붙이는 편이다.[6] 삼남, 사남, 오남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그냥 숫자를 붙여서 사부로(三郎), 시로(四郎), 고로(五郎)라고 짓는다. 이 작명법에 앞에 한 글자를 더 붙여서 ●+타로, ●+지로라는 식으로 이름을 짓기도 한다. 고이즈미 고타로펀쿨섹좌 고이즈미 신지로 형제가 대표적인 예시.

백중숙계의 예는 아니지만 숫자로 작명한 골때리는 예가 고려 중기 성주 이씨 귀족인 이장경(李長庚)의 다섯 아들의 경우이다. 5형제의 이름이 각각 태어난 순으로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었다.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 중 이백년은 밀직사사, 이천년은 참지정사, 이만년은 문하시중(!), 이조년은 대제학으로 고관직을 역임하였다. 이억년은 유학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막내 이조년은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여 고전문학에 빠짐없이 나오는 다정가를 짓기도 했다. 또한 이조년은 고려 말 권신 이인임의 조부이고 이숭인의 증조부이다.

정약용이 지은 아동용 한자 교습서 아학편에도 이 네 글자가 같이 나온다. 지석영이 영어를 덧붙인 판본에서는 각각 영어로 (Eldest, Second, Uncle, Tender)로 번역했다.

서양에서는 비슷한 용례로 시니어, 주니어가 있다. 단, 형제 간의 서열을 나타내는 백중숙계와 달리 이쪽은 대물림의 경우에서도 쓸 수 있는 폭넓은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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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환공의 서장자 경보의 자손들이 맹손을 씨로 삼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만 맹을 쓴다고 모두 서장자인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조맹덕은 엄연한 적장자였다. [2] 마속은 막내였지만, 하후영은 아니다. 일단 마속의 경우에는 바로 위의 형인 마량이 계(季)를 가져갔으니 아마 첫째부터 넷째까지 백중숙계를 차례로 가져가고, 그러고도 남는 다섯째에게는 幼를 준 듯하다. [3] 실제로 동탁(董擢)이라고 하는 맏형이 하나 더 있었다. 한국어 독음은 둘째인 동탁과 같지만 글자와 중국어 독음은 다르다. 그의 자는 맹고(孟高)였고, 두 남동생과 달리 일찍 죽었다는 기록과 아들 동황이 동생 동탁의 밑에서 일했다는 기록 외엔 전해지는 것이 없다. [稚叔] 稚와 叔을 둘 다 썼다. [稚叔] [6] 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창씨개명 당시 총독이 미나미 지로(南次郎)였는데, 총독보다 형이라는 의미로 미나미 타로로 개명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승인을 했던 총독부는 뒤늦게 의미를 간파하고 개명 불허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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