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오키나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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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의 오키나와현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2. 미군기지 문제
2.1. 현황
이미지 출처는 세계일보. 사진 속의 광대한 활주로가 미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이다. 보다시피 기지를 둘러싸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기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이 기지는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지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오키나와가 일본 귀속을 선택한 것은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 기지 철수와 같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원하던 의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오키나와 주민들 빼고 모두가 오키나와에 주일미군이 있는 것을 원했기 때문. 실제로 2014년 7월 1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2년 오키나와 반환과 관련된 소위 '오키나와 밀약' 문서의 공개를 요구한 소송을 기각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현황. 빨간색은 모두 미군기지이다.[1] |
2011년판 일본 방위성의 방위백서에 따르면,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은 전체 주일미군 약 33,000명 가운데 23,000명(!)이며, 그들의 가족과 군무원까지 합치면 총 43,550명에 달한다. 또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현 전체에 대략 37곳이 분포하며, 기지면적은 현 전체 면적의 18.7%에 달한다. 대충 평택시 면적과 거의 맞먹는 지역이 미군기지로 되어 있다.
오키나와의 주요 미군기지는 코트니 캠프 등에 해병대 시설 및 해병대 관리구역이 있으며, 해병대 제3기동전개부대사령부가 위치한다. 토리이에는 미 육군 제1특수부대군 제1대대 및 제10지원군이 주둔하고, 유명한 후텐마 기지에는 해병대 제36해병항공군 산하에 다수의 CH-46, CH-53, AH-1, UH-1 등의 헬리콥터 부대와 KC-130 공중급유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기지에서 발진한 CH-53 헬리콥터가 2004년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정에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기적적으로 일반인 피해자는 전무했지만, 추락지점에 있던 건물은 대파되어 철거되었다. 그리고 철거하면서 남은 벽면 일부와 그을린 부분이 남은 나무를 보존하고 있다.
극동 최대의 공군기지라 일컬어지는 가데나 공군기지에는 미 공군 제18항공단 산하에 F-15전투기, KC-135 공중급유기, HH-60 헬리콥터,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같은 기지 내에 해군 P3C 대잠초계기, 육군 1-1방공포병대대의 패트리어트 PAC-3가 배치되어 있다.[2] 그 외에도 나하에 위치한 군항과 나하 국제공항, 캠프 화이트비치의 해군 저유시설, 구니가미의 해병대 훈련캠프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일부 시설은 자위대도 공유한다.[3] 자위대 83항공단소속 F-15J가 나하 국제공항에 배치되어 있다.
2020년 3월, 향후 10년간 추진될 미 해병대의 대규모 조직 및 전력 재편 계획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전력 설계 2030'(Force Design 2030). 이 계획은 그동안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의 큰 전면전을 거치며 해병대가 너무 중장비에 치중해 해군 소속 육군 같은 존재가 되어 해병대만의 역할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무거운 전차/야포, 적의 레이더에 쉽게 피탐될 대형 상륙함정/헬기 전력은 과감히 축소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특히 기갑 전력은 10년 내에 완전히 없앨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대신 경량화와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적의 레이더에 잘 피탐되지 않을 무인공격기들과 소형 고속상륙정, 기동성이 좋은 경량화된 다연장로켓, 미사일 등을 사용하고, 말단 보병제대 화력과 정보력을 크게 강화하여 중대급 전투단이 중심이 되어 적의 소부대와 조우하면 강화된 소부대 화력으로 제압, 강력한 적 전력을 발견하면 타군의 중무장 병기를 유도하여 격파하는 식으로 적을 제압하면서 여러 섬들 사이를 이동한다. 그리고 차례차례 섬의 접수가 완료되면 수송기로 실어나른 신형 대함미사일 포대를 박아놓아 방어선을 구축하고 또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채택해 공격적 기동수비대로서 육해공군과는 차별화하여 운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20년 12월까지 해병대의 모든 전차는 육군으로 이관되었다. 기갑 병과 인원들도 본인 의사에 따라 전역과 육군 전군 중 하나를 택해 인사 조치되었고, 서류상 기갑 특기도 해병대에서 삭제됐다.
이러한 구상은 다분히 상륙 후 내륙 전투보다는, 남중국해 등 소형 도서지역, 연안 지역에 대한 신속 투입 임무에 초점을 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개편 때문에 유사시 적지에 함께 돌입할 자국 및 동맹국의 타군들이 이들을 화력지원하고 뒤처리하는 등 부담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 유사시 북한에 상륙해야 할 때 연합작전을 수행할 대한민국 해병대도 포함된다. 미일이 참가하는 해상훈련 중에 자위대 수륙기동단의 비중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볼 때 이는 거의 확실해진 상황이다. 앞서 수많은 이들이 회의론을 표했지만, 이미 전차대 전량이 육군으로 이관된 것을 본다면 데이비드 사령관의 개혁안에 대한 평가가 군 내외에서 긍정적일 가능성이 크고, 바이든 행정부 쪽에서도 진행 중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단 한명의 군인 사망자 뉴스에도 민감한 미국 정치계를 고려했을 때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동시에 인력 피해도 줄일 수 있는 교리는 정치계의 니즈를 확실하게 충족시킨다. 따라서 미국 해병대의 괌 이전이 2024년 10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이뤄진다. #
2021년 3월. 대법원에서 가데나 기지 소음문제에 주민들에게 배상하지만, 비행금지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다. #
냉전 시대에 핵전쟁 발발시 실전에 투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핵무기 실탄 반출입 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한 사실이 미군 기록에서 확인됐다. #
2.2. 미군기지 반대운동과 갈등
미군 기지가 있는 것도 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지만,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이로 인해 오키나와에서는 미군의 범죄를 불안해하고, 더불어 잊을만 하면 전투기 떨어졌다느니 하는 사고가 터져 이런 불안감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는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이 활발하다.2012년 9월 중순, 센카쿠 문제로 불거진 중-일 관계를 기회로 미 국방부는 오키나와 주민의 거센 반대를 묵살하고 M-22A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의 배치를 확정했다. 일본 정부 역시 이에 동의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처사에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10월 16일, 미군 병사 두 명이 귀가 중이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기도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한 번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가 직접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불쾌함을 표시했고, 주일 미국 대사도 "미국 정부가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오키나와 현 주민의 분노를 이해한다. 일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 하늘에는 신형수송기 오스프리가 날고, 땅에는 걸어다니는 흉기(미군 병사)가 있다"면서 "주민들은 어디로 걸어다녀야 하느냐"며 분노를 드러냈다. 기사
2014년 9월 23일에 주일미군 소속 AV-8 1대가 오키나와 해상에 추락사고가 일어났는데, 예전에 일어난 추락사고으로 인해 불안한 주민들이 25일에 카데나 기지 입구 앞에 시위를 하였다. #
2016년 6월 19일에는 주일미군 군무원이 일본 여성을 살해한 사건에 항의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현민대회'가 열렸다. 또,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현 내부에서 이전하지 말고 폐쇄·철거하라고 촉구했다. 본토에서도 시위가 있었는데, 도쿄에서 국회의사당 앞에 약 1만 명(주최측 추산)이 집결해 살인사건에 항의하거나 SOFA 개정을 요구했고 나고야 시내 공원에 1천 명, 삿포로 도심에 약 500명이 모여 각각 시위를 벌였다. 기사
2016년 7월부터 오키나와 구미가미 군 히가시 촌에서 미군 해리팟 공사가 진행 중인데 주민들이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건설은 강행되고 있으며 이에 주민들은 자재 반입 막는 등 다방면에서 시위를 펼쳐지고 있다. 그러던 중 8월 말부터 경시청 기동대가 출동하면서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경시청 기동대 비용이 오키나와 경찰들이 부담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 비용의 지출 금지 등을 요구하는 주민 감사 청구를 현 감사 위원에 제출했다.
2014년 10월 18일 미군 헬리콥터장 건설현장에서 오사카부 기동경찰 대원이 건설에 대해 반대 시위하는 오키나와 주민에게 '토인(土人)'이라고 폭언을 하는 일이 발생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 사건 직후 오키나와 전역은 물론 민주당, 사회당 등 야당에서도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다음날 19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동경찰의 토인 발언에 대해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헬리콥터장 건설에 대해서는 '적절한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하여 현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일로 인해 건설을 중지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브라운 대학교 동아시아 학과 스티브 랍슨(Steve Rabson) 명예 교수는 '기동경찰의 토인 발언은 한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 오키나와에 대한 본토의 식민주의적 태도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역신문인 오키나와 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
2014년 11월 8일에는 쓰루호 요스케(鶴保庸介) 오키나와북방상은 참의원내각위원회에서 오키나와 토인 발언 문제에 대한 야당의원의 질의응답을 통해 '토인 발언이 차별 발언이라고는 개인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인권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제3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언론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라고 답했고, 이에 대해 야당은 '오키나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발언',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키나와담당상이라는 것이 어이가 없다. 자격이 없다. 사퇴해야 할 것.'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
2017년 1월 2일 도쿄 MX의 외주 뉴스 프로그램 뉴스 여자(ニュース女子)에서 히가시 촌에서 미군 해리팟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과격 폭력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일당 5000엔을 받았으며, 중국인과 한국인이 있다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공산당 등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BPO(방송 윤리 및 프로그램 향상기구. 한국의 방통위에 상응.) 방송 윤리 검증위원회에서 심각한 방송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4]
미국이 거센 주민 반대와 저항에 항상 완고한 것만은 아니다. 대안으로 미군은 일본 본토, 야마구치 현의 이와쿠니를 새로운 미군 거점지대로 조성하기 시작하여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있던 KC-130 공중급유기를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로 이전했다. 또 차세대 스텔스기 F-35를 2017년까지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하기로 했고, 오키나와 주민의 배치 반대가 격렬한 신형 수직이착륙 수송기 MV-22 오스프리 12대(2개 편대)도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배치하기 전 이와쿠니 기지에 잠정 배치하기로 했다. # 이러한 배치 전환 및 이와쿠니 기지 거점화가 개시되면 오키나와가 짊어진 미군 기지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쿠니 주민들도 혐오시설(...)인 미군 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지수.
2014년 10월 22일에는 주일미군 호쿠부(北部)훈련장 총면적 7천800㏊의 절반이 넘는 4천㏊ 규모의 땅을 반환하였다. 이번 반환은 1996년 이후 20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반환으로 74%에서 70%로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16년 9월 1일, 미일 양국 정부가 후텐마 기지에 실시하고 있는 훈련의 일부를 오스프리 등 본토와 괌으로 옮기는 것으로 합의하였으며, 훈련 비용은 처음 전액 부담과 함께 괌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기사
2.3. 미군기지 헤노코 이전과 반대운동
오키나와는 물론 일본과 미국에서도 논란의 핵심인 후텐마 기지 이전 후보지인 헤노코 해변의 모습.
미국과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외부로의 미군기지 이전은 수용할 수 없으며 대신 가장 문제가 심각한 후텐마 기지를 나고 시 헤노코로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
2013년 12월 27일, 일본(과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에 결국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 현지사가 굴복,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의 오키나와 내 이전에 동의했다. 이전까지는 오키나와 외부 이전 내지는 기지 폐쇄가 현청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일본 정부의 압력과 회유[5]에 결국 오키나와 현이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나카이마 현지사는 '사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 들
한편 일본 정부는 헤노코 지역 기지 이전을 지역주민들이 방해할 경우 형사특별법을 적용해 엄격히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2002년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엄포를 놓은 것.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사의 결정에 항의하며 집회를 가지고, 2014년 1월 9일 임시 현의회를 소집해 지사를 추궁할 계획을 밝혔다. 관련 기사[6]
한편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기로 합의하고 오키나와 현(縣)정부를 굴복시켜 헤노코 해안 매립을 오키나와 현정부가 승인함에 따른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노엄 촘스키, 존 다우어, 노마 필드, 마이클 무어 등 서방 국가의 진보적 지식인 29명이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해안 매립을 승인한 것에 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
2014년 1월 19일 치러진 나고 시 시장 선거에서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파인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현(現) 시장이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기지 이전 문제가 시작하자마자 좌초됐다(...). 실제 기지 이전을 위해서는 공사자재 적치장 설치 등 나고 시장의 인허가가 필요한 절차가 많기 때문에 나고 시장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그 부분에서 암초에 걸린 것. 집권 자민당 정부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부 정무관,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 등을 동원해 기지 이전 찬성파를 도왔지만 '지역 경제 개발'이라는 고리타분한 구호에 나고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셈이다. 관련 보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정부의 '지역 개발' 논리가 식상한 것이,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래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지역 관광자원 개발, 대규모 리조트 단지 건설 등을 지원해 왔지만 그로 인한 혜택은 토지개발업자 등 소위 '토건족(土建族)'에게 돌아가고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수혜가 없었다. 여전히 오키나와는 '본토'에 비해 훨씬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역 주민의 소득 수준도 일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40년 넘게 이어져 왔는데 새삼스러운 '기지 유치를 통한 경제 개발'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
헤노코 해안 주변에서 경찰 • 경비업체와 대치하고 있는 기지 이전 반대파 주민들. 2014년 8월 6일.
16일의 지사 선거를 앞두고 내걸린 선거전 포스터. 사진 좌측 4명의 사진 가운데 기지 이전 반대파가 왼쪽 위의 오나가 타케시 후보, 오른쪽 아래의 키나 쇼키치[7] 후보이고 왼쪽 아래가 기지 이전 찬성파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이다.
2014년 11월에는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가 치러졌다. 미일동맹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 문제가 최대 쟁점. 현지사 선거에서 미군기지 헤노코 이전에 동의한 나카이마 지사는 결국 패배했다. 새로이 당선된 헤노코 이전 반대파인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현(縣)지사는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 등에서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 弘多) 전(前) 지사가 후텐마 기지의 이전 대상지인 헤노코 연안부의 매립신청 승인과정을 검증할 위원회를 내년 1월 중순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검증 결과 매립 승인 과정에서법적 하자가 드러나면 매립 승인도 취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오나가 지사는 아울러 12월 25∼26일 도쿄를 방문해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 반대 여론을 전하기 위해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오키나와 담당상 등과의 면담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4월에는 미국으로 가 기지 이전의 문제점을 직접 호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헤노코 이전은 기정사실"이라며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이전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만나봐야 의미가 없다"며 지사와 면담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전했다.
대신 아베 정부는 예산안 삭감 카드를 동원할 태세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차년도 오키나와 진흥예산 요구안을 전액을 제공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오키나와 기지 이전에 협력한 나카이마 전 지사 시절 오키나와 진흥예산은 2011년도 2,300억 엔에서 2014년도 3,400억 엔으로 증액됐고, 2015년도 진흥예산 요구안을 3,794억 엔(약 3조 4,782억 원)으로 설정됐다. 아베 정부는 기지 이전에 협력하는 대가로 2021년까지 매년 3000억 엔대의 오키나와 진흥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바 있지만, 신임 지사가 이전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자기도 안 지키겠다는 태도다. #
또한 일본 고등재판소에서 이전 대상지인 헤노코 해안부 매립 승인을 취소한 오나가 다케시 지사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
오키나와 현의회 선거 전에는 오키나와현 의회에서 주일미군 철수요구, 기지 축소 결의안 채택하였다.
2016년 6월 5일에는 오키나와 현 의회 선거가 있는데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대응과 지역 경제 진흥책 등으로 평가가 내려지는 것에 대한 투표가 오나가 타케시 현지사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볼 수 있다. 주일미군 군무원의 20대 여성 살인 사건 여파 속에 치러진 6월 5일 오키나와 현 의회 선거에서 예상대로 오나가 타케시 현지사를 지지하는 일본공산당과 일본 사회민주당이 각각 선거 전에 비해 1석 늘어난 6석, 지역정당인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 3석, 무소속이 12석으로 집계됐다. 오나가 지사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 중에는 자민당이 기존 보유 의석에 비해 1석 늘어난 14석, 공명당과 오사카유신회가 기존 의석수와 같은 4석과 2석, 무소속이 1석을 각각 차지했다. 투표율은 53.31%로 집계되었으며 앞으로 아베 정권과 극한 대립을 보여줄 것으로 보이며 본토 내 에서도 야권 내에서 큰 영향은 아니지만 조그만한 영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2월 13일에 일본 정부가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기지를 이전하는 헤노코(辺野古) 해안 매립공사를 내년 초 조기에 재개하기로 했다. # 그리고 2017년 4월 25일에는 본격적으로 나고(名護)시 헤노코(辺野古) 연안에서 호안(護岸) 공사를 시작했다. 호안 공사는 바다의 기슭이나 둑 등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으로, 헤노코 기지 설립을 위한 본 공사의 첫 단계에 해당된다. 오키나와 현과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
그 와중에 2018년 12월 9일에 치러질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를 앞두고 다시 미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현 지사가 임기 도중에 사망함에 따라 9월 30일에 치러지지만 일부 지역에서 태풍 짜미로 인해서 27 ~ 28일에 당겨서 실시하였다. #
선거결과,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자유당, 사회민주당, 일본공산당 등 리버럴-혁신 연합이 지원하고 추천한 타마키 데니 전 중의원의원(오키나와 3구 출신)이 자민당, 공명당, 일본 유신회, 희망의 당인 보수연합이 지원한 사키마 아츠시 전 기노완 시장을 꺾고 당선되었다. 오나가 전 지사의 후계를 자처하면서 미군기지 현외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후보였기 때문에, 오키나와 현과 중앙정부간의 갈등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 국토교통성이 매립 승인 철회 처분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집행 정지"을 내렸는데, 오키나와현, 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 와중에 1965년 당시 주일 미국대사가 말한 발언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1965년 당시에는 오키나와는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인데, 일본과 오키나와에 핵무기 배치를 인정하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 무방하다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2023년 9월 4일. 최고재판소가 오키나와현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현을 대신해 공사를 승인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 이를 받아들이면서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현 대신해서 공사 승인한 것이다. #
2.4. 헤노코 기지 매립 주민투표
조례안에 따르면 주민 투표는 조례 공포 후 6개월 이내 실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 지사는 2019년 봄까지는 구체적 실시 시기를 정해야 한다. #
그리고 2019년 2월 24일로 정해졌으며, 헤노코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이는 1996년 미군 기지 축소에 대한 주민투표 이후의 주민투표이다.
그런 도중에 자민당 소속의 오키나와현의원이 주민의 참정권 ·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망언 등 방해하는 행동이 드러나자 일본 공산당 등 주민투표 정당성을 나서고 있다. #
투표 참가에 소극적이었던 오키나와, 기노완, 이시가키 등 3개 시(市)가 입장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원래는 기노완 등 5개시는 투표 조례에 규정된 선택지가 '찬성'과 '반대'로만 돼 있어 정확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었다.
이에 오키나와현 의회가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답변 항목을 추가하자 참여 쪽으로 선회했다. #
이번 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일본 중앙정부는 결과에 상관없이 기지 이전 공사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묵살하면 주민 반발이 거세져 당장 4월 예정된 오키나와 3구 중의원 보궐선거와 7월의 참의원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 찬반 현민투표 | ||
선택 | 득표수 | % |
예 | 114,933 | 19.10% |
아니요 | 434,273 | 72.15% |
어느 쪽도 아니다. | 52,682 | 8.75% |
유효표 | 601,888 | 99.42% |
무효표 또는 빈 투표용지 | 3,497 | 0.58% |
득표수 | 605,385 | 100% |
유권자수/투표율 | 1,153,591 | 52.48%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그리고 24일에 치러진 결과에서 주민투표의 승패 기준 총 유권자 4분의 1인 28만 8천표를 넘김에 따라 투표 결과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
4월 16일. 후쿠오카 고등재판소(고등법원) 나하 지부는 이날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후텐마 비행장 인근 주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에 21억2천100만엔(약 215억3천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 다만 1심에 비해서 배상금이 약간 줄었다.
4월 21일. 오키나와 3구 보궐선거에서 범야권의 지지를 받은 야라 도모히로(屋良朝博·56) 후보가 자민당의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54) 후보를 따돌렸다. #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야권단일후보가 승리했다.
9월에 헤노코 기지 공사 업체의 단합과 자민당, 공명당, 일본 유신회에게 자금 받친다는 정황이 단독 보도되었다. #
12월에 기지 공사에 대해서 예상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늘어난다고 밝혔다. 설계 변경 놓고도 방위성, 오키나와현 간 대립이 있다. # 2020년 4월에 정부가 연약 지반의 개량 공사에 따른 설계 변경을 오키나와에 신청했다. #
미 의회에서는 헤코노 기지의 존재하는 연약 지반이나 활단층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미일관계 보고서에서도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
3. 독립 운동
자세한 내용은 류큐 독립 운동 문서 참고하십시오.4. 중국의 영유권 주장
자세한 내용은 중국-오키나와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2012년 7월에는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한 영유권 주장이 나왔다. 오키나와의 전신인 류큐 왕국이 중국의 번속국(藩屬國)[8]이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청나라의 쇠락을 틈타 1879년 강제로 합병한 것이니만큼 중국에게 궁극적인 영유권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실제로 관철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게, 오키나와 주민들의 가장 큰 원성의 대상이기도 한 미군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얌전히 물러난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국적임이 분명한 주민이 1, 2만도 아니고 140만 명이나 거주하기 때문에[9] 과거에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현재의 영유권을 인정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2012년 다시 불붙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에 따라 일본이 애초에 센카쿠 주변지대인 류큐 제도에 대한 주권도 없었다는 점을 거론해 일본의 주장을 약화하려는 의도로 파악되고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중국의 야욕에 대한 입장은 냉정하다. 류큐 반미주의자나 분리주의자들조차도 "우리는 종 륙주의자들이 아니다"라고 하는 상황. 중국이 류큐 지역에 노골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시작한 2012년 7월에는 중국이 우리를 먹으려고 한다는 플래카드를 나하 시내 곳곳에 걸어두어, 설령 반미주의를 표방하더라도 중국을 좇는 행위는 엄격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3년 5월 15일에 류큐 독립 운동 단체인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가 결성되자마자 다음날인 16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가 중국이 민간 차원에서 일본의 영토로 돼 있는 오키나와의 독립운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0] 센카쿠 문제로 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센카쿠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커다란 틀을 손에 쥐기 위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 다만 오키나와 독립운동 지지세력도 중국의 영향력 강화는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이 정말로 지원해 준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이다.
5. 반 본토 감정
자세한 내용은 일본-오키나와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6. 기타
2000년 7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제26차 G7정상회의인 규슈- 오키나와 정상회의가 오키나와 나고시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일본 최초로 지방에서 개최된 정상회의이며, 당시 쟁쟁한 도시들이 후보군에 올라 있었으나 오키나와의 역사적 아픔과 지역의 뜨거운 유치 열기 때문에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결정으로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슈레이몬 도안이 그려진 2천 엔권 지폐가 발행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오키나와 반환 50주년을 맞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
[1]
특히 일본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는 거의 전부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위키백과 내용 해당 페이지에서 'Facilities' 표의
미 공군과
미 해병대 문서를 보면 미군 기지로 인해 오키나와가 받고 있는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일간지《르몽드》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주일미군 약 41,000명 가운데 무려 25,000명이 오키나와에만 주둔하고 있다.
[2]
미국의 주적인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주한미군보다도 많다. 중국을 견제하기에 최적의 위치이며 한반도 유사시 공군이나 해군 등은 오키나와나
사세보에서 출격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비싼 전투기 배치했다가 파괴되어 잘못하다가 북한손에 흘러들어가면 안되니까 그런것이다. 그래서 주한미공군에는 상대적으로 싼
F-16을, 주일미공군에는
F-15나
F-22등 첨단고가 전투기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투기의 속도는 매우 빠르고 한국군도 그 옛날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북한군이 서울로 오기도 전에 주일미공군 전투기가 북한군을 폭격할 수 있다.
[3]
이상의 자료는 2011년판 일본 방위백서를 참조한 책 『오키나와와 평화』(2007)에서 참조했다.
[4]
그리고 문제의 뉴스 여자라는 프로그램은
DHC TV가 실제 제작으로, 도쿄 MX의 죄(?)라면 이들 프로그램을 방송할 채널만 빌린것 뿐이기에 도쿄 MX(혹은 대주주
FM 도쿄) 자체의 논지와는 무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쿄 MX는 한류 드라마를 간혹 수입하기도 한다. 결국 도쿄MX측도 이 프로그램 때문에 BPO 조치를 받은게 마음에 걸렸는지 결국 DHC계열 프로그램 뉴스여자(2018년 4월부로 폐지) 및 도라노몬 뉴스를 짤라버렸다.
[5]
이전 대가로 약 3460억 엔(
3
조 5,1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이전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 비용은 약 3조 엔 가량. 또 현 주민의 의견을 고려해 이전 대상지인 나고 시 헤노코(辺野古) 지역의 환경보전을 위한 조치도 강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6]
1995년에도
미군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민심이 폭발해 기지 문제가
미국과
일본 양자에게 곤란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현지사였던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는 당초 주민들의 기지 폐쇄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 섰다가 막판에 배신을 때렸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 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현 나카이마 지사도 현재로선 1995~96년 사이 오타 지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뭔가 아주 강력한 외압이 들어간 거 아닐까?
[7]
하이사이 오지상을 부른 그 가수 맞다.
민주당 소속이었는데, 민주당이 미군기지에 대한 방침을 오키나와 관내 이전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낙선하고 말았다. 키나 쇼키치 본인은 당의 방침 전환에 격렬히 항의하다가 결국 탈당하게 되었다.
[8]
도쿄대 명예교수인 이시이 아키라의 분류에 따르면, 번국은 종주국의 제후가 파견돼 다스리는 변방국가이고, 속국은 자체 왕조가 있되 종주국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타입을 말한다고 한다. 이 양자가 혼재된 형태가 바로 번속국.
동아일보 2012년 7월 13일자 기사 참고.
[9]
2012년 4월 통계에 따르면 오키나와 현의
인구는 140만 1730명.
[10]
동아일보 외신 다이제스트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