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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 혈통의 호주인을 말한다.2. 이민사
아일랜드계 호주인은 호주 역사 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고국인 아일랜드섬에서 이민을 원하는 죄수와 자유 정착민으로 18세기 후반부터 호주에 왔다. 호주로 이송된 사람들 중 일부는 전쟁 포로였으며, 주로 1798년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반란에서 싸운 사람들이었다. 또다른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아일랜드 대기근과 전반적으로 아일랜드의 낙후된 상황에서 편안한 삶을 찾지 못한 정착민들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아일랜드계 호주인은 국가 인구의 최대 3분의 1을 차지하였다.1901년 호주 자치령 통계에 의하면 1901년 당시 호주 내 가톨릭 신도 인구는 850,620명, 1911년 당시에는 921,425명으로 조사되었는데 당시 호주 내 기독교 인구 절대다수가 영국에서 이민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이를 기준으로 아일랜드계 호주인 인구를 추정할 수 있다. #
이 외에도 아일랜드의 구빈원(Workhouse)에서 호주로 보낸 아일랜드인 고아 등도 적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1848년부터 1850년 사이에는 호주의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일랜드인 고아 중 여아 4천여 명이 호주로 이송시킨 바 있었다. 이 외에도 호주의 가톨릭계에서는 가톨릭 인구를 늘려서 발언권을 늘린다는 계획 하에서 1920년대부터 아일랜드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데려다 호주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호주로 이주된 아동들 중에는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불구(경제 사정으로 잠시 고아원에 맡겨놓은 경우) 강제이주된 경우가 적지는 않았고, 이러한 관행은 엄청난 항의를 받은 끝에 1950년대부로 끝나게 되었다.
아일랜드계 호주인의 총 수에 대한 명확한 수치는 없는 상황이다. 2011년 호주 인구 조사에 따르면, 2,087,800명의 주민이 단독으로 또는 다른 조상과 결합하여 아일랜드 가계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