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00:39:49

평화수호대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fff><colbgcolor=#169B62> 상징 국호 · 국기 · 국가
역사 역사 전반 · 아일랜드 자유국
정치 정치 전반 · 대통령 · 총리 · 의회( 하원 · 상원)
외교 외교 전반 · 아일랜드 여권 · 유럽연합 ·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관계
경제 경제 전반 · 아일랜드 파운드(폐지) · 유로
국방 아일랜드군
사회 Leaving Cert · 대학 · 기타 교육 및 유학 관련 문서
문화 문화 전반 · 요리 · 세인트 패트릭 데이 · 아일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아일랜드 영어 · 아일랜드어 · 켈트족의 축제 · 아일랜드 신화
치안·사법 평화수호대
지리 아일랜드섬 · 렌스터 · 얼스터 · 먼스터 · 코노트
기타 아일랜드인 · 아일랜드/인구 · 아일랜드계 미국인 · 아일랜드계 영국인 · 아일랜드계 러시아인 · 아일랜드계 칠레인 · 아일랜드계 캐나다인 · 아일랜드계 아르헨티나인 · 아일랜드계 멕시코인 · 아일랜드계 호주인
}}}}}}}}} ||
평화수호대
An Garda Síochána[1]
파일:Badge_of_An_Garda_Síochána.gif
<colbgcolor=#1C2747><colcolor=#ffF> 설립일 1922년 2월 22일
수장 평화수호대장 제레미 앤드류 해리스 (Jeremy Andrew Harris)
소재지 Phoneix Park, Dublin 8, Ireland
전신 민경대(Civic Guards)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Irish Republican Police)
더블린 광역경찰(Dublin Metropolitan Police)
왕립 아일랜드 경찰대(Royal Irish Constabulary)
재적총원 수호대원 12,943명
민간직원 1,999명
예비대원 695명
상급기관 법무평등부(Department of Justice and Equality)
웹사이트 파일:Badge_of_An_Garda_Síochána.gif
1. 개요2. 관련 법률3. 계급4. 역사
4.1. 영국 통치기4.2. 독립전쟁 및 아일랜드 내전 시기
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범죄신고: 국번없이 999, 112

아일랜드의 중앙경찰기관으로, 아일랜드 전국을 관할구역으로 삼는 수사기관이자 정보기관, 준군사조직이다. 동시에 북부의 북아일랜드 접경지대에서의 국경 관리를 담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출입국·외국인청의 기능도 행하고 있다.

평화수호대 계급장

2. 관련 법률

평화수호대법(Garda Síochána Act 2005)

제2장 1절 6조의 1
"평화수호대"라 일컫는 경찰조직은 이 법에 따라 경찰기관으로서 존속한다.

제2장 1절 6조의 2
정부는 평화수호대를 유지하고, 평화수호대에 장비를 지급하고, 급료를 지급한다.

3. 계급

아일랜드어 계급명 영어 계급명 인원수(2021년 기준)
Coimisinéir Commissioner 1명
Leas-Choimisinéir Deputy Commissioner 2명
Cúntóir-Choimisinéir Assistant Commissioner 8명
Ard-Cheannfort Chief Superintendent 47명
Ceannfort Superintendent 165명
Cigire Inspector 425명
Sáirsint Sergeant 1,944명
Garda Garda 11,870명
Garda Ionaid Reserve Garda 459명

4. 역사

4.1. 영국 통치기

평화수호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은 영국 통치기 아일랜드 장관(Chief Secretary)이었던 로버트 필 경부터 시작된다.

로버트 필이 아일랜드 장관으로 부임하던 1812년의 영국에는 근대화된 경찰제도가 부재했었는데 벨파스트 글래스고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자치법률로서 경찰제도가 도입되어 있었으나 런던 및 영국 전체적으로는 체계화되고 근대화된 경찰제도가 부재했고 경찰(Police)이라는 말 자체가 주민들에게 생소하였다. 실제로 로버트 필이 훗날 런던광역경찰청을 창립한 이후에도 경찰은 경찰(police)로 불리기 보다는 로버트 필의 이름을 따서 peeler, 로버트 필의 미들 네임을 따서 bobbies라는 식으로 불렸다 #[2]

근대화된 경찰제도의 부재는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였고 당시 아일랜드의 치안은 자경단, 영주의 수하들, 군대 등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었다. 이에 로버트 필은 1814년, 평화보존대(Peace Preservation Force)라는 이름을 가진 치안 부대를 생성하였는데, 이는 아일랜드 장관의 지휘하에 활동하면서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당시 평화보존대가 특정 영주나 지역 유지의 재정지원이나 관할권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822년에는 평화보존대가 업그레이드된 왕립 아일랜드 경찰대(Royal Irish Constabulary, RIC)가 창립되어 치안 활동을 유지했다. 그리고 평화보존대와 RIC의 성공에 고무된 로버트 필은 영국 정계로 복귀하여 1829년 런던광역경찰청을 창립하게 된다. 즉, 근대 경찰제도의 역사만 따지면 아일랜드가 영국보다 빠른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전근대 경찰과 근대 경찰의 특징을 대략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누가 자금을 지원하고 누가 지휘를 하는가 - 전근대 치안유지세력은 상인조합이나 영주, 시의회에 의하여 통제되는 경우가 많으나 근대 경찰은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로부터 자금지원과 통제를 받는다.
(2) 치안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 전근대경찰은 공공용지와 도로만 치안유지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으며 인적드문 오지나 사유지(특히 영주의 사유지)는 아예 치안 유지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경찰은 행정구역 기반으로 치안 범위가 설정되기 때문에 행정구역 안이라면 어디든지 치안을 행사할 수 있다.
(3) 언제 치안행위를 할 것인가 - 치안활동은 예방적 치안과 사후적 치안이 있다. 전근대경찰은 사후적 치안, 즉 사건이 벌어졌을때만 활동하였지만 로버트 필이 창시한 근대경찰은 예방적 치안도 중시여겼다.
(4) 누가 치안을 유지할 것인가 - 전근대경찰은 시민 아무나 되는 경우도 있었고 자원봉사 개념으로 봉급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근대경찰은 전문화된 인력이 전문 훈련을 받고 봉급을 받으면서 치안을 유지한다.
(5) 무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 전근대 경찰제도는 무장측면에서 군대와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경찰은 무장을 최소화하여 시민의 피해를 방지했다.

로버트필이 아일랜드에서 평화보존대와 RIC를 창립하던 당시에는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잉글랜드 본토에서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 지역기반 치안'이라는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는데 로버트 필은 평화보존대를 창설함으로써 아일랜드에 그 개념을 먼저 도입한 것이다.

때문에 현재 아일랜드 정부도 평화보존대를 자국 경찰 역사의 뿌리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기리고 있다 # #.

1836년에는 런던광역경찰청을 본따서 더블린광역경찰청(Dublin Metropolitan Police, DMP)이 성립된다. RIC와 DMP의 주된 차이는 무장차이와 민족-종교 구성이었는데, RIC가 준군사조직 수준으로 무장을 잘 갖추었던 반면 DMP는 근대경찰답게 무장을 최소화하였다. 또한 RIC는 대영제국의 제국주의 첨병처럼 활동한 이들로서 전체 대원들의 70%가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였으나, 고위 간부들의 60%는 영국인을 포함한 개신교도였다. 당시 극심한 민족과 종교 차별이 반영된 예라 할 수 있다.

때문에 RIC는 당시 아일랜드인들에게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고 곳곳에서 RIC에 대한 저항과 보이코트 활동이 있었다. 1919년에 발발한 아일랜드 독립전쟁의 불씨를 당긴 사건 자체가 아일랜드 독립군에 의한 RIC 대원 사살사건( Soloheadbeg ambush)이었고 독립전쟁에서 아일랜드 독립군과 상대한 영국측 병력의 상당수가 RIC이기도 하였다. 이 당시 RIC측의 병력 피해는 막심했는데, 1920년 10월에 작성된 영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20년 1~3분기 동안 당시 전체 9,500명의 RIC 대원 중 117명이 사살당했고 185명이 죽었고 600명이 퇴직하였다. #

4.2. 독립전쟁 및 아일랜드 내전 시기

1919년 아일랜드 독립 선포와 함께 아일랜드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자국 영토의 치안세력으로서 1920년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Irish Republican Police) #을 창립하였고 이들은 1922년까지 활동하였다.

하지만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은 몇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아일랜드 공화국은 그 어느 나라의 승인도 받지 못한, 영국군 입장에서는 반란도당에 불과했고 독립전쟁은 아일랜드 땅안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이 제대로 된 치안활동은 불가능했다. 전쟁중인 독립신생국가 아일랜드 공화국 입장에서는 전국토가 전쟁터였던 셈인데 그 상대 역시 처음에는 영국의 RIC였고 나중에는 조약반대파 독립운동가였다. 따라서 경찰과 군대는 엄밀히 말하자면 구분되지 않았으며 실제 인력 구성과 대우도 경찰과 군인이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20년 아일랜드 공화국 국방장관 Cathal Brugha이 공포한 바에 따르면, 경찰 인력 중 해외로 이민가는 자는 탈영병(deserters)으로 보고 처벌하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아일랜드 공화국이 당시 경찰인력을 경찰이 아니라 군인으로 봤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또한 아일랜드 공화국은 아직 완성된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자처하던 세력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행정제도를 갖추지 못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내전 당시인 1922년 비정규군(조약반대파)이 코크를 점령하였을때 아일랜드 공화국 인사인 Gearóid O'Sullivan가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당시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은 (정부가 아닌) 지역 상인들로부터 봉급을 지원받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독립전쟁과 내전을 연달아 치르던 아일랜드 공화국이 경찰병력을 유지할 재정적, 행정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영국과의 협상에 따라 임시정부 아일랜드 자유국이 건국되었을 때 아일랜드측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항 중 하나가 경찰제도의 개편이었다. 1922년 2월경 조약 찬성파이자 아일랜드 자유국 주석이었던 마이클 콜린스에 의하여 설립된 이 경찰조직의 이름은 민경대(Civic Guard)였는데 당시의 조약찬성파-조약반대파간 갈등을 고려하여 정치적으로 중립성향이 검증된 인력만 채용하였으며 과거 영국 해군에서 복무한 다수의 인력도 민경대에 복무하였다. 새롭게 창립된 민경대는 지역 상인이 아니라 중앙, 지방 정부의 자금지원과 통제를 받았으며 다른 국가의 근대 경찰과 유사하게 무장수준도 최소화하여 전쟁이 아닌 치안 유지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1925년에 이 조직은 아일랜드의 평화수호대(Garda Síochána na hÉireann)로 이름이 바꾸었고 이는 현재까지 계속되는 중이다. 평화수호대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갈린다. 영국이 지배하던 시절 로버트 필에 의하여 창설된 아일랜드 최초의 경찰조직 평화보존대(Peace Preservation Force)를 계승하였다는 시각도 있고 1870년 이후 프랑스 및 프랑스 식민지국가에서 널리 퍼졌던 치안조직명 평화의 수호자(gardiens de la paix)를 따라했다는 평가도 있다. [3]

영국이 물러감에 따라 1922년 8월 RIC는 해체되어 평화수호대에 흡수되었으며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도 1922년경 평화수호대에 흡수되었다. DMP는 Políní Átha Cliath(더블린의 경찰)로 개명하여 계속 활동하다가 1925년에 평화수호대에 흡수되었다.

5. 기타

약칭은 'Garda'이다. 파출소를 찾을 때도 Garda station을 찾아야 한다. 아일랜드를 처음 방문할 경우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아일랜드 정부부처는 법적으로 부처의 이름을 게일어 영어로 병기하도록 되어 있는데, 평화수호대는 영어로 병기되지 않는 부서 중 하나이다. 비슷한 예로서 방송통신부처 Raidió Teilifís Éireann, 우편부처 An Post, 관광부처 Fáilte Ireland, 해양산업부처 Bord Iascaigh Mhara 등이 있다.

현대 아일랜드어에서 영어단어 Police에 해당하는 경찰은 Póilíní라고 한다. 독립전쟁+내전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하에 창설된 평화수호대와 달리 평화로운 시기에 창설된 경찰기관은 Póilíní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에서 공항경찰은 Póilíní an Aerfoirt라고 하고 군사경찰은 Cór Póiliní an Airm라고 한다. 때문에 아일랜드를 여행간 관광객들은 공항에서부터 Airport Police라는 문구가 도장된 경찰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통상 ERU라고 불리는 경찰특수부대 Emergency Response Unit은 가슴팍에 GARDA라는 호칭과 POLICE라는 호칭을 병기하여 표시하고 있다.


무적핑크가 출연한 크랩 KLAB 영상.

평화수호대의 명칭을 두고 Police라는 단어 대신 Garda를 채택한 것에 대하여 반영감정 때문이라는 설이 한국 인터넷에만 있다. 다른 나라 웹사이트나 논문, 기사 등 에서는 해당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일랜드 사이트에서도 해당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해당 설이 퍼지게 된 계기는 기업인이자 여행작가인 박재희가 2019년에 중앙일보에서 게재한 여행기에서 현지인 친구 로스(Ross)에게서 들은 내용으로 추정된다. 아일랜드에 'Police'가 없는 이유, 듣고나니 짠해졌다(중앙일보, 2019.08.21)[4]

6. 관련 문서



[1] '언 가르더 시하너' 정도로 읽음. [2] 벨파스트에서는 Bulkies라고 불렸다 [3] gardiens de la paix는 현재도 프랑스내에 존재하는 치안조직의 이름이다 # [4] 작가가 예시로 든 아일랜드에서의 Police=한국에서의 순사 예시는 엄밀히 말하면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 경찰은 일제시대에도 공식 명칭이 경찰(警察, 케이사츠)이었고 순사는 경찰의 말단계급명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일랜드 평화수호대의 현재 계급명은 영국 경찰의 계급명을 차용해서 쓰고 있다. 영어 Sergeant > 아일랜드어 Sáirsint, 영어 Commissioner > 아일랜드어 Coimisiné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