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3:27:10

아베 신노스케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4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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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000><colcolor=#fe5a1d> 감독 83 아베 신노스케
1군 76 니오카 토모히로 (헤드코치 겸 타격수석코치) · 74 무라타 요시노리 (종합코치) · 81 스기우치 토시야 (수석투수코치)
77 우츠미 테츠야 (투수코치) · 78 카와이 마사히로 (내야수비코치) · 79 카메이 요시유키 (외야수비·주루코치)
88 사네마츠 카즈나리 (배터리코치) · # 아나부키 이쿠오 (트레이닝코치)
2군 73 쿠와타 마스미 (2군 감독) · 75 안도 츠요시 (헤드코치) · 71 야마구치 테츠야 (수석투수코치) · 72 오타케 켄 (투수코치)
85 와키야 료타 (내야수비·주루코치) · 82 스즈키 타카히로 (외야수비·주루코치) · 87 하시모토 이타루 (타격코치) · 89 카토 켄 (배터리코치)
# 이시모리 타카시 (트레이닝코치)
3군 70 코마다 노리히로 (3군 감독) · 86 후루키 시게유키 (타격코치) · 100 미사와 코이치 (수석투수코치)
104 노가미 료마 (투수코치) · 105 요시카와 다이키 (내야수비코치) · 103 킨죠 타츠히코 (외야수비·주루코치)
102 이치카와 토모야 (배터리코치) · 108 박석민 (육성코치) · # 존 터니 (트레이닝코치)
순회 84 쿠보 야스오 (순회투수코치) · 110 젤러스 휠러 (순회타격코치)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선수
틀: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돌아가기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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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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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221815><tablebgcolor=#221815>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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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9C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49C00 {{{#!folding [ 쇼와 시대 ]
{{{#555555,#aaaaaa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
1965년 ~ 1988년
1965년 1966년 1차 1966년 2차 1967년 1968년
호리우치 츠네오 야마시타 츠카사 (1) 츠치타 마코토 타카다 시게루 시마노 오사무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코사카 토시히코 유구치 토시히코 요코야마 타다오 나카이 야스유키 코바야시 히데카즈 (5)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사다오카 쇼지 시노즈카 카즈노리 후지시로 카즈유키 야마쿠라 카즈히로 불참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하야시 야스히로 (1) 하라 다쓰노리 마키하라 히로미 사이토 마사키 (1) 미즈노 카츠히토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우에다 카즈아키 (1) 쿠와타 마스미 키다 마사오 (1) 하시모토 키요시 요시다 쇼지 (1)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49C00 {{{#!folding [ 헤이세이 시대 ]
{{{#555555,#aaaaaa
1989년 ~ 201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오모리 타케시 모토키 다이스케 다니구치 고이치 (1) 마쓰이 히데키 미노 가쓰히로 (2)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가와하라 준이치 (2) 하라 슌스케 (1) 이리키 유사쿠 (2) 타카하시 요시노부 (2) 우에하라 고지 (2)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타카하시 히사노리 (2) 아베 신노스케 (2) 사나다 히로키 (1) 기사누키 히로시 (2)
쿠보 유야 (2)
우츠미 테츠야 (2)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노마구치 타카히코 (2)
미키 히토시 (2)
츠지우치 타카노부 (3)
후쿠다 사토시 (2) (4)
사카모토 하야토 (1) (3)
카네토 노리히토 (2) (4)
후지무라 다이스케 (1) (3)
무라타 토오루 (1) (4)
오오타 타이시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초노 히사요시 사와무라 히로카즈 마츠모토 류야 (1) 스가노 도모유키 고바야시 세이지 (1)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오카모토 카즈마 사쿠라이 토시키 요시카와 나오키 (1) 쿠와하라 타쿠야 (1) 다카하시 유키 (1)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49C00 {{{#!folding [ 레이와 시대 ]
{{{#555555,#aaaaaa
2019년 ~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홋타 켄신 (1) 헤이나이 류타 (1) 오타 타이세이 (1) 아사노 쇼고 (3) 니시다테 유히
(西舘勇陽)
}}}}}}}}}}}} ||
(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3) 고교생 드래프트, (4)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5) 지명 후 미입단: 현재는 1973년도 코바야시 히데카즈가 유일하다.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00>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대 4번 타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49c00>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파일:일본 국기.svg 나가사와 후지오
(永沢富士雄)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켄타로
(伊藤健太郎)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지마 하루야스
(中島治康)
파일:일본 국기.svg 츠츠이 오사무
(筒井修)
파일:일본 국기.svg 마에카와 하치로
(前川八郎)
1936夏 1936夏-1943 1936夏-1948 1936秋 1937秋
<rowcolor=#f49c00>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파일:일본 국기.svg 미즈하라 시게루
(水原茂)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카미 테츠하루
(川上哲治)
파일:일본 국기.svg 아오타 노보루
(青田昇)
파일:일본 국기.svg 키구레 리쿠조
(木暮力三)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무라 마사미
(中村政美)
1937秋 1939-1958 1943-1952 1943 1943-1944
<rowcolor=#f49c00>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스다 히로시
(須田博)
파일:일본 국기.svg 콘도 사다오
(近藤貞雄)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바타 히로시
(川畑博)
파일:일본 국기.svg 쿠로사와 토시오
(黒沢俊夫)
파일:일본 국기.svg 코마츠바라 히로키
(小松原博喜)
1944 1944 1944 1946 1947
<rowcolor=#f49c00>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라야마 키쿠지
(平山菊二)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미츠오
(宇野光雄)
파일:일본 국기.svg 미나미무라 후카시
(南村不可止)
파일:일본 국기.svg 테즈카 아키하루
(手塚明治)
파일:미국 국기.svg 미야모토 토시오
(宮本敏雄)
1948 1951-1953 1951-1952 1953-1954 1955-1961
<rowcolor=#f49c00>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가사 카즈오
(樋笠一夫)
파일:일본 국기.svg 후지오 시게루
(藤尾茂)
파일:일본 국기.svg 카시와에다 분지
(柏枝文治)
파일:일본 국기.svg 요나미네 카나메
(与那嶺要)
파일:일본 국기.svg 나가시마 시게오
(長嶋茂雄)
1955 1955-1961 1955 1958 1958-1974
<rowcolor=#f49c00>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자키 카즈히코
(坂崎一彦)
파일:일본 국기.svg 쿠니마츠 아키라
(国松彰)
파일:대만 국기.svg 오 사다하루
(王貞治)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자와 요시유키
(池沢義行)
파일:일본 국기.svg 모리 마사아키
(森昌彦)
1959-1962 1960-1968 1962-1980 1963 1964-1965
<rowcolor=#f49c00>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파일:일본 국기.svg 아이바 요시히로
(相羽欣厚)
파일:일본 국기.svg 요시다 카츠토요
(吉田勝豊)
파일:일본 국기.svg 타나카 쿠스오
(田中久寿男)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쿠라 테루유키
(高倉照幸)
파일:일본 국기.svg 모리나가 카츠야
(森永勝也)
1965 1965 1967 1967 1967
<rowcolor=#f49c00>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파일:일본 국기.svg 시바타 이사오
(柴田勲)
파일:일본 국기.svg 스에츠구 토시미츠
(末次利光)
파일:일본 국기.svg 야나기다 마사히로
(柳田真宏)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훈
(張勳)
파일:일본 국기.svg 아와구치 켄지
(淡口憲治)
1969 1970-1975 1974 1976-1979 1976
<rowcolor=#f49c00>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 존슨
(ジョンソン)
파일:미국 국기.svg 존 시핀
(シピン)
파일:일본 국기.svg 야마모토 코지 파일:미국 국기.svg 로이 화이트
(ホワイト)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하타 키요시
(中畑清)
1976 1978-1979 1979-1980 1980-1982 1981-1988
<rowcolor=#f49c00>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파일:미국 국기.svg 게리 토마슨
(トマソン)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바라 마코토
(松原誠)
파일:일본 국기.svg 하라 타츠노리
(原辰徳)
파일:미국 국기.svg 레지 스미스
(スミス)
파일:미국 국기.svg 워렌 크로마티
(クロマティ)
1981 1981 1982-1995 1983-1984 1984-1990
<rowcolor=#f49c00>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파일:대만 국기.svg 루밍쑤
(呂明賜)
파일:일본 국기.svg 코마다 노리히로
(駒田徳広)
파일:일본 국기.svg 요시무라 사다아키
(吉村禎章)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크 브라운
(ブラウン)
파일:미국 국기.svg 필 브래들리
(ブラッドリー)
1988 1988-1992 1990-1998 1990 1991
<rowcolor=#f49c00>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파일:미국 국기.svg 로이드 모즈비
(モスビー)
파일:미국 국기.svg 제시 바필드
(バーフィールド)
파일:일본 국기.svg 오카자키 카오루
(岡崎郁)
파일:일본 국기.svg 오쿠보 히로모토
(大久保博元)
파일:일본 국기.svg 오치아이 히로미츠
(落合博満)
1992-1993 1993 1993 1993 1994-1996
<rowcolor=#f49c00>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로사와 카츠미
(広沢克実)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이 히데키
(松井秀喜)
파일:미국 국기.svg 셰인 맥
(マック)
파일:일본 국기.svg 키요하라 카즈히로
(清原和博)
파일:일본 국기.svg 이시이 히로오
(石井浩郎)
1995-1998 1995-2002 1996 1997-2005 1997-1999
<rowcolor=#f49c00>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하시 요시노부
(高橋由伸)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밍고 마르티네스
(マルティネス)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로베르토 페타지니
(ペタジーニ)
파일:일본 국기.svg 코쿠보 히로키
(小久保裕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엽
(李承燁)
1999-2014 1999 2003-2004 2004-2006 2006-2008
<rowcolor=#f49c00>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파일:일본 국기.svg 니오카 토모히로
(二岡智宏)
파일:일본 국기.svg 아베 신노스케
(阿部慎之助)
파일:일본 국기.svg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小笠原道大)
파일:일본 국기.svg 알렉스 라미레스
(ラミレス)
파일:일본 국기.svg 초노 히사요시
(長野久義)
2006 2007-2019 2007 2008-2011 2011-2016
<rowcolor=#f49c00>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타 슈이치
(村田修一)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호세 로페스
(ロペス)
파일:미국 국기.svg 존 보우커
(ボウカー)
파일:멕시코 국기.svg 레슬리 앤더슨
(アンダーソン)
파일:쿠바 국기.svg 프레데릭 세페다
(セペダ)
2012-2017 2013-2014 2013 2014-2015 2014
<rowcolor=#f49c00>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파일:일본 국기.svg 오오타 타이시
(大田泰示)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하야토
(坂本勇人)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이 다이스케
(中井大介)
파일:일본 국기.svg 카메이 요시유키
(亀井善行)
파일:미국 국기.svg 개럿 존스
(ジョーンズ)
2014-2015 2015~ 2015 2015 2016
<rowcolor=#f49c00>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파일:멕시코 국기.svg 루이스 크루즈
(クルーズ)
파일:미국 국기.svg 케이시 맥기
(マギー)
파일:아이티 국기.svg 알렉스 게레로
(ゲレーロ)
파일:일본 국기.svg 오카모토 카즈마
(岡本和真)
파일:일본 국기.svg 마루 요시히로
(丸佳浩)
2016 2017-2018 2018 2018~ 2020
<rowcolor=#f49c00> 제91대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타 쇼
(中田翔)
2022
1) 연도는 해당 선수가 4번 타자로 1경기 이상 출장한 해.
2) 볼드체 일본야구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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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의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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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91db> 파일:NPB 로고.svg 일본프로야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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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센트럴 리그 (Central League)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퍼시픽 리그 (Pacific League)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svg 파일:한신 타이거스 엠블럼.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엠블럼.svg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svg
아베 신노스케 후지카와 큐지 고쿠보 히로키 신조 츠요시
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엠블럼.svg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엠블럼.svg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엠블럼.svg 파일: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엠블럼.svg
미우라 다이스케 아라이 타카히로 요시이 마사토 미키 하지메
파일: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엠블럼.svg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엠블럼.svg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 파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엠블럼.svg
다카쓰 신고 이노우에 카즈키 기시다 마모루 니시구치 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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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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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34년 ~ 현재
초대
미야케 다이스케
(1934~1935)
2대
아사누마 요시오
(1935~1936)
3대
후지모토 사다요시
(1936~1942)
4대
나카지마 하루야스
(1943)
5대
나카가미 히데오
(1944~1946)
6대
나카지마 하루야스
(1946~1947)
7대
미하라 오사무
(1947~1949)
8대
미즈하라 시게루
(1950~1960)
9대
카와카미 테츠하루
(1961~1974)
10대
나가시마 시게오
(1975~1980)
11대
후지타 모토시
파일:일본 국기.svg
(1981~1983)
12대
오 사다하루
(1984~1988)
13대
후지타 모토시
(1989~1992)
14대
나가시마 시게오
(1993~2001)
15대
하라 타츠노리
파일:일본 국기.svg
(2002~2003)
16대
호리우치 츠네오
(2004~2005)
17대
하라 타츠노리
(2006~2015)
18대
타카하시 요시노부
파일:일본 국기.svg
(2016~2018)
19대
하라 타츠노리
(2019~2023)
20대
아베 신노스케
파일:일본 국기.svg
(2024~)
:일본시리즈 우승 / : 센트럴리그 우승 / : 단일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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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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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2 JS 우승로고.png 파일:09giants.png 파일:12 giants.pn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2 2009 2012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반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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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우수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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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50 1951 1952 1953 1954
코즈루 마코토
쇼치쿠 / 외야수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투수
오토모 타쿠미
요미우리 / 투수
스기시타 시게루
주니치 / 투수
<rowcolor=#fff> 1955 1956 1957 1958 1959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투수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외야수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 투수
<rowcolor=#fff> 1960 1961 1962 1963 1964
아키야마 노보루
타이요 / 투수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 / 투수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rowcolor=#fff> 1965 1966 1967 1968 1969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rowcolor=#fff> 1970 1971 1972 1973 1974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 투수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rowcolor=#fff> 1975 1976 1977 1978 1979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외야수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외야수
에나츠 유타카
히로시마 / 투수
<rowcolor=#fff> 1980 1981 1982 1983 1984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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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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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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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바스
한신 / 내야수
키타벳푸 마나부
히로시마 / 투수
야마쿠라 카즈히로
요미우리 / 포수
카쿠 켄지
주니치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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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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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마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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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 투수
잭 하월
야쿠르트 / 내야수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포수
쿠와타 마쓰미
요미우리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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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오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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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후루타 아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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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이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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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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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포수 베스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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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1940년, 1947년 ~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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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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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쿠라 카즈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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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카와 미츠오
히로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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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니시야마 슈지
히로시마
후루타 아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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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 아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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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 아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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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카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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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카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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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카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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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 토시오
닛폰햄
나카자와 신지
한큐
나시다 마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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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테츠
나카자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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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와 노부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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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히로마사
한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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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야마시타 카즈히코
킨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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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츠토무
세이부
타무라 후지오
닛폰햄
요시나가 코이치로
다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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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사토시
오릭스
요시나가 코이치로
다이에
이토 츠토무
세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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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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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마 켄지
다이에
이토 츠토무
세이부
죠지마 켄지
다이에
<rowcolor=#ffffff> 2005 2006 2007 2008 2009
죠지마 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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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자키 토모야
롯데
호소카와 토오루
세이부
타노우에 히데노리
소프트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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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텐
호소카와 토오루
소프트뱅크
츠루오카 신야
닛폰햄
시마 모토히로
라쿠텐
이토 히카루
오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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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타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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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토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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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타쿠야
소프트뱅크
모리 토모야
세이부
카이 타쿠야
소프트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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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토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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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후루타 아츠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노 아키히로
( 한신 타이거스)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타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3년~2014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타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나카무라 유헤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2년 센트럴 리그 수위타자
초노 히사요시
(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토니 블랑코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2년 센트럴 리그 최다 타점
아라이 타카히로
( 한신 타이거스)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토니 블랑코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2년 센트럴 리그 최고 출루율
토리타니 타카시
( 한신 타이거스)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발렌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
아베 신노스케의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NPB 로고.svg 일본프로야구 보유 기록
포수 시즌 최고 타율 (0.3404, 2012년)
좌타자 통산 최다 사구 (152개)
연속 수비기회 무실책 (1709회)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센트럴 리그 보유 기록
포수 최초 통산 400홈런 및 350 2루타 달성
최다 상대 투수 홈런 (233명)
교류전 최다 홈런 (60개)

파일: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아이콘(2006-2017).svg WBC 보유 기록
1이닝 2홈런 (2013)
}}} ||
아베 신노스케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10번}}}
히로사와 카츠미
(1997~1999)
아베 신노스케
(2001~2019)
저스틴 스모크
(2021)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0번}}}
고토 코지
(2019)
아베 신노스케
(2020~2023)
결번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3번}}}
하라 타츠노리
(2019~2023)
아베 신노스케
(2024~)
현역
}}} ||
}}} ||
파일:IMG_6650.webp
<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83
아베 신노스케
阿部慎之助 | Shinnosuke Abe
출생 1979년 3월 20일 ([age(1979-03-20)]세)
치바현 히가시카츠시카군 우라야스초
(現 치바현 우라야스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야스다가쿠엔 고교(安田学園高等学校)
주오대학
신체 180cm, 97kg
포지션 포수, 1루수
투타 우투좌타[1]
프로입단 200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요미우리)[역지명]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1~2019)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감독 (2020~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작전·수비치프코치 (2022)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수석·배터리코치 (2023)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2024~)
등장곡 Earth, Wind & Fire - September
응원가 요미우리 초창기(01~07)[3]
요미우리 중반기 이후(08~19)[4]

1. 개요2. 아마 시절3. 프로 경력
3.1. 국가대표 경력
4. 은퇴 이후5. 지도자 경력
5.1. 요미우리 감독 시절
6. 플레이 스타일7. 기타8. 연도별 성적9. 감독 성적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아베400HR.jpg
개인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모습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포수이자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 포수 였으며, 타카하시 요시노부를 이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인 요미우리 순혈 슈퍼스타.[5] 다만 한국에서는 국대 경기때마다 털리는 호구 이미지가 왠지 강한 편(…)[6]. 그래도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2006~7시즌을 비롯 요미우리 소속 선수 시절 내내 요미우리의 주전 포수였고 주로 이승엽의 다음 타석인 5~6번 타자로 많이 출전했기 때문에 당시 국내에 꾸준히 생중계 되었던 이승엽 출전 경기를 종종 보았던 팬들은 잘 알고 있는 선수이다.

2. 아마 시절

주오대학 시절부터 도토 대학야구리그에서 타격으로 주목받았다. 대학시절에 이미 1998 방콕 아시안게임, 2000 시드니 올림픽 등 프로-아마 통합으로 구성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될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7] 결국 2000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에 1순위로 지명됐다. 당시 받은 계약금은 10억엔(한화 약 100억)으로 MLB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계약금으로 4년간 1,510만달러(188억원)를 받기 전까지 세계 아마야구 최고 금액이었다.

3. 프로 경력

파일:external/thumbnail.image.rakuten.co.jp/rb2001-bb-282.jpg
신인시절의 야구 카드.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394bcf77-s.jpg
옆에 있는 선수는 마쓰이 히데키.

데뷔시즌인 2001년, 야마쿠라 카즈히로 이후 요미우리 구단 사상 2번째로 신인 포수로서 개막전 마스크를 쓰는 위업을 달성한다. 데뷔 첫 해부터 10년 동안 주전 포수로 활약한 무라타 신이치를 벤치 멤버로 보내버렸고, 무라타는 시즌 종료 후 바로 은퇴했다.[8] 데뷔 시즌인 2001년의 성적은 0.225, 13홈런 44타점으로 컨택은 아쉽지만 신인 포수로써는 훌륭한 성적이었고, 2년차인 2002년에는 0.298 18홈런 73타점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수비력도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아베의 활약에 힘입은 요미우리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센트럴리그를 우승하고,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즈를 4:0으로 떡실신시켜버렸다.

2003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93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이듬해인 2004년에는 33경기만에 시즌 20홈런을 기록[9]하는 등 타격에 완전히 눈을 뜬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후반기에 페이스가 급격히 저하된 탓에 최종 성적은 0.301, 33홈런 78타점에 그쳤지만 요미우리 역대 포수 중 최초로 3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된다. 2005년에도 26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으나, 이승엽이 입단한 2006시즌에는 0.294 10홈런 56타점에 그치며 데뷔시즌 이후 가장 저조한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물론 대부분의 포수들에겐 이조차도 커리어하이다

팀의 주장을 맡은 2007시즌에 33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부활했고, 2008시즌에는 24홈런,[10] 2009시즌에는 32홈런을 기록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2009시즌에는 팀이 7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2010년에는 무려 44홈런을 때려내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노무라 카츠야, 타부치 코이치에 이어 단일시즌 40홈런을 기록한 역대 세 번째 포수가 된다.

2011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시즌을 다소 늦게 시작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0.292, 20홈런, 61타점의 성적을 기록한다. 공인구의 변경으로 인한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고, 5년 연속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2 시즌에는 타율 .340 출루율 .428 장타율 .565 OPS .993 27홈런 104타점이라는, 저반발 공인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적[11]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타이틀(타격왕, 타점왕)을 거머쥐었고,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득표로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하고 일본 야구계 최고권위의 상인 쇼리키 마쓰타로상도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13 WBC에서 일본 대표팀의 주장 겸 4번 타자로 낙점받았으나, 중압감 때문인지 시즌 초라 아직 몸이 덜 풀렸던 탓인지 WBC 기간 동안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들어가서는 135경기 0.296, 32홈런, 91타점으로 팀내 홈런 1위, 타점 1위를 차지하며 여전한 강타자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22타수 2안타 타율 .091로 부진하며 라쿠텐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시즌 이후 구단측에서 마쓰이 히데키의 6억 1천만엔을 넘는 연봉 6억 2천만엔을 제안했지만 일본시리즈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고사했다고 한다. 이후 6억엔에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4년 들어서 부진하면서 신인 포수 고바야시 세이지에게 밀리고 8월부터 1루수 출전을 시작하게 됐다. 1루수로 출전하면서 성적이 조금씩 반등하는 중. 사실 이동안에도 줄곧 4번 타순에 들어섰는데 2014년도 요미우리 타자진 상황이 영 좋지 않기 때문이다.[12]

결국 2014 시즌이 끝나고 하라 감독과 면담을 한 이후 1루수로 완전히 전향을 선언했다.

2015년 4월 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 경기에서 오래간만에 포수 포지션으로서 경기에 출전했다. 이유는 올해 FA로 영입한 포수 아이카와 료지[13]가 지난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오른쪽 다리근육 부상을 입어 주전 포수 자리가 부재중인 상태라는 비상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날 경기가 중요했던 것이 팀의 3연패라는 좋지 못한 흐름을 끊어야 되는 경기라는 부분도 있지만 자타공인이 인정하는 요미우리의 최고 라이벌 팀 한신을 상대로 상대전적 1000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경기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승리를 잡아내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결국 믿고 맡길 수 있는 아베에게 포수 역할을 부탁한 것. 그리고 아베는 감독의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땐 1회 말 니시오카 츠요시의 도루를 저지해냈고 타격 쪽에선 4타수 2안타(그 중 하나는 2루타)라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팀은 패해 버렸다. "연패를 어떻게든 막고 싶었지만 팀이 져버려서 아쉬웠다"라는 것이 경기 후 코멘트. 여담으로 아베는 혹시 몰라 포수 장비를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날 경기에서 예전 포수 장비를 갖추고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1루수보다는 포수로 출전한 빈도가 훨씬 높았고, 이를 두고 네이버에 일본야구 칼럼 리포트 쓰는 키무라가 칼럼 한 편을 통째로 써서 까기도 했었다. 그러나 교류전 도중 목 부상이 재발해다시 2군으로 내려가야 했고, 결국 2015년에도 타율 .242 15홈런 47타점의 썩 좋지 못한 성적 때문에 연봉이 36%나 삭감되었다.

2016 시즌에도 잦은 부상으로 부침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다시 연봉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기존 연봉에서 6600만엔이 삭감된 약 2억 6000만엔에 재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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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3일,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원정경기에서 9회 초 마무리 투수 이마무라 타케루를 상대로 우전안타를 날리며 마침내 NPB 사상 49번째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로서는 1980년의 시바타 이사오 이후 무려 37년 만이자 역대 포수 4번째 겸 구단 포수 최초의 2000안타 달성자이다. 아베의 2000안타가 나왔을 때 양팀 팬들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와 성원을 보냈으며 먼저 2000안타를 달성한 아라이 타카히로가 꽃다발을 선물했다.

선수 본인이 TV 도쿄에서 2017년 2월 밝힌 바에 따르면, 요미우리 입단시부터 "2000안타 기록 달성은 전혀 생각치 못했다" 라고 한다. 여담으로 한때 팀메이트였던 오다 코헤이가 2017년 아베의 생일에 2000피스 퍼즐을 선물했는데 2000안타까지 38안타가 남아서 이 38조각을 뺀 상태로 선물했다고.

2000안타 달성 이후 닛폰 테레비 스포츠뉴스 프로그램 <Going>에 출연했는데, 13년 전 스프링캠프에서 자신에게 사인을 받고 운 팬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영상

다만 주전 1루수로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프로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지만, 최종 성적은 129게임을 뛰며 지난해보다 약간 나은 타율 .262 15홈런 76타점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5000만엔이 삭감된 2억 1000만엔에 계약을 체결했다.

2018년 시범경기에서 젊은 우타거포 1루수 유망주 오카모토 카즈마가 두각을 나타내며 개막전부터 요미우리의 1루수 자리를 차지하면서 결국 17년 간의 주전 생활을 마치고 백업으로 물러났다. 95게임 출전에 그쳤으나 구단 신기록인 입단 첫 시즌부터 18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2019년 시즌에 포수 재도전을 선언했으며 레귤러 포수인 고바야시 세이지, 세이부에서 영입한 베테랑 포수 스미타니 긴지로와 주전 마스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즌 개막 후엔 작년과 마찬가지로 주로 대타 등 백업 멤버로 나오는 중이지만 출장 기회가 작년보다 더 줄었다. 거기다 개막 후 5월 때까지 무홈런에 머무르는 등 장타력이 더욱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6월 1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첫 홈런을 신고함과 동시에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통산 400홈런은 일본프로야구 사상 19번째 기록이자 포수로서는 노무라 카츠야 타부치 코이치 이래 3번째 기록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에서는 V9 당시의 레전드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이래 구단 사상 3번째의 쾌거이다. 그 뒤 이전보다 장타력이 오르는 모습을 보이며 6월 9일, 13일에 치바 롯데 마린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2, 3호 홈런을 날리면서 230명의 투수에게서 홈런을 빼앗아 홈런을 빼앗아 낸 투수의 수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9월 13일 기준 타율 .303으로 3할 타율을 웃돌고 있다. 장타력은 감소했지만 감도있는 타격은 여전한 듯. 그리고 9월 24일 이번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0년부터 지도자로 전향한다고 한다. 9월 27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1580일만에[14] 선발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이날 4번타자로 출전하여 4회에 시즌 7호 홈런(통산 406호)을 기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또한 아직 포스트시즌이 남아있으므로, 아베의 모습을 조금은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아직 은퇴하기는 아까운 활약을 연이어 펼치는 중. 한신과의 파이널 스테이지 1, 3, 4차전에서 5번 1루수로 선발출장, 1차전에선 고의사구를 얻어냈으며 3차전에서는 승리를 굳히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어지는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센가 코다이를 상대로 2회 선제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하지만 팀은 0-4로 패배. 그리고 4차전이 끝나고 시상식을 마친 후 양 팀 선수들이 나와 마지막 경기를 치른 아베를 헹가레쳤다.

사실 다른 팀으로 옮기거나 교진에 남더라도 연봉을 대타요원에 맞게 삭감한다면 충분히 백업 및 대타요원으로서 현역 생활을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는 기량이지만 슈퍼스타에게 연봉은 자존심 문제라 함부로 많이 깎을 수도 없을 뿐더러 교진이 현재 마땅한 감독감이 없어서 하라 타츠노리를 다시 불러온 상황이기에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그랬듯이 지도자 수업을 거쳐 아베를 추후 감독으로 앉히기 위한 기량에 비해 좀 이른 감이 있는 은퇴를 하게 됐다. 지명타자 제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센트럴리그의 팬들 중에서도 지명타자 제도만 있었으면 2~3년은 충분히 더 현역으로 뛰었을 수 있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2019시즌 종료 후 모두의 예상대로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3.1. 국가대표 경력

  • 2000 시드니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참가했으나 2번 모두 메달획득에 실패했다.[15]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발탁 가능성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당시 아테네 올림픽에 포수로 간 선수는 죠지마 켄지[16]와 아이카와 료지의 2명으로, 죠지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전에 그 해 타격 삼관왕을 달성한 마츠나카 노부히코와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반면, 아이카와 료지는 타격 성적이 특출나진 않았고 오히려 수비형 포수에 가까웠기에 수비 보강 차원에서 데려간 것이었다. 그 해 아이카와의 성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올림픽 이전까지의 성적이 타율 .249, 홈런 6개에 볼삼비는 11볼넷/45삼진으로 크게 나빴으며 K%는 무려 22.8%였다. 거기에 아이카와 료지는 타율 .302를 기록한 2007년, 11홈런을 친 2010년을 제외하면 커리어 내내 3할 타율, 두자릿수 홈런, OPS 7할 이상을 기록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장타툴이 없고 똑딱이에 가까운 타자였다.
    컨택 자체는 포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쳐 준다고 볼 수 있었으나 아이카와가 주전으로 뛸 당시의 일본프로야구가 극도의 타고투저에 빠진 시기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볼넷도 적어서 출루율도 낮았던 데다 그나마 가장 높게 평가받은 수비력도 아베에 비해 매우 뛰어나진 않았다. 오히려 당해년도 대다수 수비 지표에서 아베[17]가 아이카와[18]보다 크든 작든 우위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포수 리드가 사실상 허상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 된 지금 시점에선 그냥 대놓고 아베를 쓰는게 맞다고 봐도 될 정도의 유의미한 차이.
    또한, 아베는 4월 9일부터 4월 16일까지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고 4월 28일에는 3홈런을 기록하는 등 세계 최단 기록인 개막 33경기 만에 20홈런을 달성하며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당해년도 8월에 있던 아테네 올림픽 발탁에도 기대가 모아졌던 것. 항간에는 아베가 당해년도 8월에 부상을 입어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테네 올림픽 일본 대표팀 라인업 발표는 7월 6일이었다. 즉, 7월에는 부상도 아니었고 성적상 안 뽑힐 이유가 없었던 것.
    그렇다고 아베가 수비가 불안한 포수도 아니었고, 정작 수비 보강용으로 데려간 아이카와 료지는 점수차가 매우 벌어진 상황에 1이닝씩[19]만 총 3경기에 대수비로 출전하였고 타석에는 들어서보지도 못했다. 당시 일본 대표팀이 대회에서 9경기를 치렀으니 사실상 죠지마만 거의 풀타임 포수로써 구르다 온 셈.
    더욱 아쉬운 건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의 일본 대표팀은 일본프로야구 정예 1군을 데려가긴 했으나, 팀 전력 안배 차원에서 각 팀당 2명 차출 제한을 두었다는 것이다.[20] 이 때문에, 요미우리에서는 우에하라 코지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발탁된 것이며 대표팀 전체적으로 라인업이 짱짱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최정예까지는 아니었다. 애초에 최정예로 전력을 꾸렸다면 전년도 성적으로 보나, 2004년 전반기 성적으로 보나 아베가 못 뽑힐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2004년 올림픽 출전 실패와 더불어 정작 출전한 올림픽들에서도 메달 하나 못 건졌다는 점에서, 아베와 올림픽은 악연으로 남게 되었다.
  •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일전에서 아베의 타자의 중견수 앞 안타급으로 빗나간 2루 송구는 베이징 때가 전부가 아니었다. 2009 WBC 2라운드 순위 결정전 당시, 아베는 주전 포수로 출장하였다. 실책은 4회에 발생하였다. 4회에는 선발 우츠미 테츠야의 뒤로 고마쓰 사토시가 마운드를 이어받아 등판한 상황이었으며 2사 1루 상황에서 1루 주자 이택근이 2루 도루를 시도하였고 아베가 송구하였으나(...) 이번에도 2008 베이징 때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빗나간 2루 송구가 나왔고 이택근은 그 덕에 3루까지 진루하였다.

4. 은퇴 이후

2020 시즌부터 요미우리의 2군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방식에서 구세대적 야구관을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되었다. 잘못하면 한신의 가네모토 도모아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 실책→펑고 300개, 볼넷→30분 질책, “진짜 악마인가” 아베 감독의 지옥 훈련

2020년 3월 23일 와세다대학 야구부와의 교류전에서 투수진이 9볼넷을 허용하며 패배했다고 한다. 그 후 선수들에게 쓴소리도 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 경기 패배 후 체벌로 달리기를 지시했다고 한다. 대학팀에 패배한 日 프로 감독, 선수단 전원 '벌주' 지시 이 이후 벌주는 하지 않고 있다.[24]

2020년 4월 25일 아베 2군 감독, 주장 사카모토 하야토, 마루 요시히로, 스가노 도모유키 하라 다쓰노리1군감독 등 5명이 1000만엔씩 총 5000만엔(약 5억7000만원)을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2020년 9월 16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1군 수석코치 대행으로 1군 덕아웃에 들어왔다. 원래 수석코치인 모토키 다이스케가 급성맹장염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갔기 때문. 모토키 코치가 회복된 이후에는 다시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참고로 모토키는 그 오다 코헤이 이지메 주동자 맞다.

비록 올드스쿨에 입각한 지도방식을 가졌다고는 하나 언론에서 말한대로 강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고[25] 육성 실적이 아예 전무한 것도 아니기에 아직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다만 무리한 체벌로 인해 선수단의 부상위험이 커지는 점과 이러한 강압적이고 구시대적인 지도방식은 멘탈이 약한 선수들에게 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고쳐나가야 할 점이다.

여튼 현 2군 감독으로서, 현임 하라 감독 이후 차기 감독 후보로 가장 유력한 인사 중 하나. 경쟁자로는 전전임 감독이자 현재 해설을 하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와세다에서 야구행정 공부를 하다가 코치로서 현장에 복귀한 구와타 마스미가 있는데, 현재로서는 세 명 다 고만고만한 상황이다.

2021년 2월 21일 스프링캠프에서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5. 지도자 경력

2022 시즌에는 2군 감독에서 1군 작전·수비 치프코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2023 시즌부턴 수석코치로 전임했다. 이때 아베, 타카하시와 함께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쿠와타 마스미 투수코치가 팜 총감독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과 겹치며 현임 하라 타츠노리의 뒤를 이을 감독으로 아베가 내정되어 사실상 후계자 수업에 들어간 것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후 2023 시즌을 끝으로 하라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후임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 유력하다는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나왔다.

5.1. 요미우리 감독 시절

2023년 10월 4일자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함에 따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8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니혼 TV와의 인터뷰에서는 아키히로 유토, 카도와키 마코토 등 야수들의 기용책을 미리 밝혔고, 10월 27일날 열릴 드래프트에서 즉시전력감 투수를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6월 10일 현재 29승 27패 4무로 3위를 달리고 있지만 새로운 선수보다는 부진한 기존의 선수[26]를 계속 쓰는것 [27]과 번트를 남발하고 경기에서 패배한 날엔 선수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하는 것과 지도자 커리어 내내 지적받던 강압적인 태도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과도한 번트 시도를 자제하는 등 개선점을 조금씩 보인 결과 서서히 성적을 내기 시작하여 한신-히로시마와 1위 경쟁에 뛰어들더니 9월에는 1위에 등극, 매직넘버까지 점등시키며 취임 첫 해부터 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9월 27일 현재 센트럴 리그 우승까지 매직넘버 1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그리고 9월 28일 요미우리가 히로시마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매직넘버가 소멸,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펼쳐진 CS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요코하마를 맞이해서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내리 패배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려있다. 특히나 타선이 3경기 동안 고작 2득점에 그치는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 사실 타선의 심각한 침체로 인하여 연패한 것이다보니 아베의 감독으로서의 실책은 딱히 두드러지진 않았는데, 포스트시즌 경력이 적은 선수들이 많은데도 파이널 스테이지 시작 전 선수들에게 알아서 타격감을 관리하도록 자율적으로 방임한 게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편.

그러다 4차전에서 7회 말 스퀴즈에 이은 상대의 실책 덕분에 내리 3득점을 뽑아내면서 4:1로 감독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거두며 일단 핸디승 포함 시리즈 전적 2승 3패를 만들었다. 5차전도 타선은 1점을 뽑는데 그쳤지만 투수들의 활약으로 승리, 3승 3패로 균형을 맞추며 승부를 6차전까지 끌고 갔다.

6차전에서 초반 상대 송구 실책으로 선취점을 얻었고, 4회에는 주자 1, 3루 상황에서 토고 쇼세이에게 스퀴즈 번트를 지시하며 1점을 짜내 2:0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직후 이어진 요코하마의 공격에서 내리 2실점을 하며 동점을 허용했고, 9회 초 2사 3루 상황에서 스가노 토모유키 마키 슈고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는 바람에 결국 2:3으로 패배하며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로 감독 첫 해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2024 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전력을 보강해주고 있는데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 포수 카이 타쿠야, 마무리 투수 라이델 마르티네스 등 오랜만에 큰 돈을 쓰고 있는지라 아베로서는 내년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지고 있다.

6. 플레이 스타일

공수를 겸비한 2000년대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포수. 후루타 아츠야가 늙고 조지마 겐지가 메이저로 떠난 뒤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공격형 포수 자리를 꾸준히 지켜왔고, 현재도 이 계보를 이을 강타자 포수의 등장은 다소 요원한 상황이다.[28]

매 시즌 20~30홈런은 꾸준히 기록할 수 있는 파워를 지녔으며, 타율은 3할대 몇 차례와 3할에 가까이할 기록했을 정도로 정교함도 갖추었다. 그 덕분에 현재 일본 최고의 공격형 포수 1순위로 꼽히고 있으며, 그 진가는 2009년 일본시리즈나 2009 한일 클럽 챔피언십 등에서 제대로 보여줬다. 2016 시즌 종료 기준으로 통산 373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데, 은퇴 시점에서 통산 400홈런~450홈런을 기대할 수도 있는 수치다.[29] 특히나 2011~12년의 통일구 사태로 대표되는 최악의 투고타저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면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는 점과, 동시대 공격형 포수 라이벌이라 할 만한 선수가 전무했다는 포지션 보정이 합쳐져서 일부 세이버메트릭스적 지표상으로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강의 포수,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투수 리드, 도루 저지율 등 수비력은 다소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방망이에 가려져있어서 그렇지 수비력이 바닥인 선수는 아니고 2002시즌과 2008시즌에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로 1루수로 전향할 예정이라 위의 이야기는 사실상 사어가 되나.... 했지만 요미우리 포수진 상황이 워낙 좋지 못하여 결국 잠시동안은 포수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지만 코바야시 세이지의 활약[30]으로 2016년부터는 1루수를 전담으로 맡게 되었다. 단 노쇠화된 몸으로 익숙지 않은 포지션을 소화하다보니 1루 수비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고 있다. 2018년 11월 6일 드디어 4년만에 포수로 복귀했다.

7. 기타

  • 2012년 10월 2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투수인 사와무라 히로카즈가 1회부터 선두타자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키고 견제 사인까지 놓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자 마운드로 가서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시합 초반부터 터진 황당한 일이었으나, 직후 사와무라는 다시 정신을 차려 8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고 요미우리도 2차전을 가져가게 되었다. 후에 당시 상황을 아베 본인이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여 직접 해설하기도 하였다. #
이후 아베의 은퇴시즌이었던 2019년 9월 27일 도쿄돔 최종전이자 본인의 은퇴기념 시합에서 당사자들이 이 해프닝을 그때처럼 진짜로 때리진 않았지만 직접 재현하며 마지막으로 아베의 플레이를 보러 온 팬들에게 큰 재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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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보고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웃고 말았고(...) 도쿄돔에서 그 장면이 전광판으로 리플레이되는 와중에 아베가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영 좋지 않은 곳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31]
  • 국내에는 이승엽의 절친으로도 유명하다. 이승엽과 아베는 서로 히어로 인터뷰에 나가게 되면 각각 서로의 언어로 말하기로 했는데, 둘 다 약속을 지켰다. 실제로 이승엽과 친해지기 위해 직접 한국어 공부를 하고 한국어 편지도 이승엽에게 썼을 정도의 절친이었다. 이승엽 항목 상단에 보면 아베가 쓴 편지가 적혀 있다. 이승엽의 은퇴식에 나온 영상편지에도 영상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한일통산 400호 홈런당시 같은 팀 선발포수였다.
  • 만화 크게 휘두르며의 주역인 고등학교 포수 아베 타카야는 본래 작품 구상단계에선 '아베 신노스케'라는 이름이었으나, 이 항목에서 다루고 있는 아베 신노스케가 시드니 올림픽 국대로 뽑히는 등 대활약하자 혹여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베 타카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참고로 아베 신노스케와 아베 타카야는 실력있는 포수 + 타격능력도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 타카하시 요시노부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날 시 차기 감독 1순위로 꼽혔다. 그러다 요미우리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우에하라 코지가 다시 복귀했고 해외팀 진출 정도는 요미우리 구단측이 순혈로 인정만 해준다면 또 모르는 일이었지만, 타카하시가 임기 3년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한 뒤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우에하라도 복귀 후 얼마 안 가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하고 팀을 떠나 유튜버로 자리잡았다. 요미우리 구단이 타카하시를 성급하게 감독에 앉혔다가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아베가 제왕학을 완벽히 배울 때까지 하라에게 다시 팀을 맡기게 된 것으로 보여지며 2023시즌 기준으로도 여전히 최유력 후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가 결국 2024년에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이 그렇듯이 프로 초창기까지는 상당히 호리호리한 몸매를 하고 있었으나, 2005년 정도부터 몸매가 둥글둥글해지더니 점차 배가 크게 나오게 되었고 은퇴 직전에는 상당한 뚱보가 되어 버렸다. 다만 은퇴 후 다이어트를 해서 현재는 프로 초창기 때와 비교할 만한 수준의 몸매로 돌아왔다.
  • 현역 때의 인기와는 별개로 팬서비스가 최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8.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1 요미
우리
127 428 87 18 0 13 40 44 3 31 79 .225 .293 .373 .666 0.9
2002 127 511 133 26 0 18 62 73 4 46 81 .298 .377 .478 .854 5.1
2003 94 371 95 15 1 15 46 51 1 40 52 .303 .391 .500 .891 3.3
2004 108 436 114 22 1 33 61 78 0 43 87 .301 .391 .625 1.016 5.9
2005 130 534 143 16 0 26 56 86 0 51 78 .300 .365 .498 .863 4.1
2006 129 497 133 26 2 10 39 56 0 35 76 .294 .349 .427 .776 3.5
2007 140 580 137 20 0 33 72 101 1 57 76 .275 .355 .513 .868 4.9
2008 125 484 116 27 0 24 60 67 1 44 66 .271 .350 .502 .852 4.1
2009 123 462 120 20 2 32 63 76 1 34 87 .293 .357 .587 .943 6.0
2010 140 569 140 27 2 44 85 92 0 58 91 .281 .368 .608 .976 7.3
2011 114 437 114 21 0 20 45 61 1 35 66 .292 .363 .500 .863 5.5
2012 138 556 159 22 1 27 72 104 0 69 47 .340 .428 .565 .993 8.6
2013 135 529 125 17 0 32 81 91 0 86 59 .296 .427 .564 .991 7.5
2014 131 526 114 24 0 19 49 57 1 58 77 .248 .340 .425 .765 2.7
2015 111 419 83 14 0 15 44 47 0 64 84 .242 .370 .414 .784 3.2
2016 91 387 104 13 0 12 43 52 0 44 55 .314 .394 .457 .853 1.5
2017 129 512 119 13 0 15 41 76 0 41 67 .262 .329 .389 .719 0.1
2018 95 223 49 6 0 11 22 46 0 21 55 .247 .324 .444 .769 0.2
2019 95 192 47 8 0 7 15 27 0 28 53 .297 .411 .481 .892 1.1
NPB 통산
(19시즌)
2282 8651 2132 355 9 406 996 1285 13 885 1306 .284 .368 .495 .863 75.7

9.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24 요미우리 자이언츠 143 77 59 7 .566 리그 1위 CS2 탈락
총계 143 77 59 7 .566 ­

10. 관련 문서


[1] 원래는 오른손잡이지만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인 카케후 마사유키를 동경해 타격할때 만큼은 왼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카케후도 아베와 마찬가지로 치바현 출신. [역지명] [3] 吠えろ慎之助 オオオオッオ 行けよ慎之助 熱くなれ(외쳐라 신노스케 오오 오오오 가자 신노스케 뜨거워져라), 링크는 음원 버전이라 48초부터 가사가 나온다. [4] 最高の笑顔 見せてくれ 慎之助 明るく逞しく 導けよ 永久に(최고의 미소를 보여줘 신노스케 밝게 씩씩하게 이끌어줘 영원히) [5] 다카하시가 감독직을 수행하는 기간 동안 아베는 선수생활 말년 → 은퇴 → 해설자 → 코치로 복귀해서 감독수업의 일정이 거의 들어맞는다. 현재 요미우리의 현역 내지는 코칭 스탭 중에 아베와 견줄만한 위상을 가진 인물이 없기 때문에 큰 변수가 있지 않는 한 미래에 감독이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며 결국 감독직에 앉았다. [6] 베이징 올림픽때 2루 송구라든지.. [7] 주전은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 백업포수이자 현재 SSG 랜더스 배터리코치인 스즈키 후미히로의 몫이었고, 한국과의 3·4위전에서 9회 2아웃 상황에 대타로 나와서 경기를 끝내는 땅볼을 쳤다. [8] 하지만 무라타는 순혈주의 때문에 빠른 은퇴를 선택했다고 보는 쪽이 맞다. 은퇴 이후 커리어가 딱 그렇다. 문제는 그동안 요미우리가 굴곡이 심해서 하라가 2번이나 그만뒀다 다시 돌아오는 혼란기를 거치는 동안 감독이 될 시기를 놓쳤고, 아베와 타카하시 요시노부라는 40대 스타들로 빨리 물갈이가 되어버린 것. [9] 현재까지 시즌 20홈런 최단 경기 세계기록이다. [10] 다만 타점은 67타점에 불과했다. [11] WAR이 무려 9.3이다. 포수로서는 역대급 시즌. [12] 3할, 50타점을 넘긴 선수가 단 한명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예전에 해준게 있는 아베가 4번 타자로 나서는것. [13] 2000년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10년대 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주전 포수였던 선수로, 테니스의 왕자 뮤지컬판에서 아쿠츠 진 역을 맡은 배우 쥬리의 형이다. [14] 2015년 5월 31일 라쿠텐 이글스전 [15] 팀동료 스기우치 토시야도 같은 케이스이다. [16] 2004 아테네 이전 0.343의 타율과 무려 34홈런을 쳐내고 있던 중이기에 아베 신노스케가 뽑혔더라도 조지마의 후보 포수였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17] 108시합 출장, 894자살 56보살 10병살 2실책 수비율 .998/38허용 18저지 도루저지율 .321 [18] 102시합 출장, 624자살 44보살 9병살 2실책 수비율 .997/40허용 18저지 도루저지율 .318 [19]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전에서 11-1로 일본이 크게 앞서고 있던 상황에 이탈리아 타자의 타구에 죠지마가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자, 곧바로 교체 포수로 아이카와가 들어왔고 직후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은 채 일본이 콜드게임으로 승리했다. [20] 참고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된 2000 시드니 올림픽은 한술 더 떠서 프로-아마 간 알력 문제나 프로 구단의 전력 유출 반대 등으로 인해 센트럴리그는 6구단 다 합쳐서 고작 2명, 퍼시픽리그는 1구단 당 1명씩만 출전하는 데 그쳤으며 그마저도 예선에서 주요 전력으로 참가했던 후루타 아츠야 등이 본선에서는 프로구단 측의 차출반대로 출장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이렇게 프로와 아마추어가 어정쩡하게 혼합된 대표팀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각자 다른 숙소를 쓰며 연습, 시합 때만 얼굴을 마주치는 등 팀이 전혀 화합되지 못했고 끝내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에 패해 4위에 그쳤다. [21] 조별예선 한일전 경기 당시, 이종욱의 딜레이드 스틸 때 2루 송구를 하였으나 굉장히 빗나갔다. 거의 타자의 중견수 앞 안타 수준의 송구 실책이었고 이를 틈타 3루 주자였던 김현수는 홈을 밟고 이종욱은 3루까지 진루하였다. 유격수였던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을 정도로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 송구였다. [22] 아베가 포일을 한 풀리그 한일전 당시는 KBS에서 중계했다. [23] 시드니 올림픽의 예선전 형식이었던 1999년 아시아 야구대회 결승전에서도 대타로 나와 마지막 타자로 삼진을 기록했다. 1999년 아시아 야구대회 결승전 박스스코어(일본어) [24]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콘도 렌 투수에게 외야 폴과 폴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벌주를 200회(약 30km) 시켜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아예 DeNA의 외국인 선수들도 이건 인간이 할 수 없는 훈련이라면서 주니치를 저격했다. [25] 선수들을 지도할 때 질책을 하지 않고 소통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충분한 피드백을 하는 모습이 2군 영상에서 잡혔다. 그리고 2군 경기를 보러간 요미우리 팬들 사이에서도 아베가 그렇게까지 강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는 목격담도 있다. [26] 사카모토 하야토, 코바야시 세이지 쵸노 히사요시 [27] 특히 감독되기 이전에 2군 감독이여서 그동안 선수 안키우고 뭐했냐며 비판을 받고 있다. [28] 그나마 옆 리그에는 세이부의 모리 토모야, 닛폰햄의 콘도 켄스케 등 타격 재능이 뛰어난 포수 유망주들이 있지만 수비력의 성장이 더디다는 이유로 포수로서 출장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고, 세리그에서는 아이자와 츠바사가 나타나긴 했지만, 경기수가 너무 적다. 국대경기에서도 2000년대의 아베- 조지마 겐지- 사토자키 토모야- 아이카와 료지 이후에는 수비형 포수인 시마 모토히로 스미타니 긴지로 등이 주전 마스크를 썼다. 결국 모리 토모야가 2018년부터 주전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고 콘도가 외야로 정착하며 당분간은 모리가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공격형 포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9] 참고로 일본프로야구 포수 통산 홈런 1위는 노무라 카츠야의 657개다. 수비형 포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에서 저 정도의 누적스탯은 대단하다. 워낙에 먼치킨스런 성적이니 논외로 하자. [30] 2016시즌 양 리그 포수 중 유일하게 규정타석 진입 [31] 보통 저런 상황을 대비해 중요 부위에도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저렇게 보호대를 착용해도 맞을 땐 엄청나게 아픈 경우가 많다. 당장 KBO 리그에서도 이만수가 선수 시절 영 좋지 않은 곳에 투구를 세게 맞아 보호대가 깨졌다는 무서운 일화가 전해져올 정도. [32] 재밌게도 아베 본인의 첫 일본시리즈 마지막 일본시리즈는 모두 4차전에서 막을 내렸다. 다만 차이점은 2002년엔 요미우리가 우승을, 2019년엔 요미우리가 스윕패를 당했다는 것. 그리고 은퇴한 다음 해엔 26-4가 기다리고 있었다 [33] 특히 요미우리가 리그 3연패를 달성해놓고 정작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스윕패를 당하는 바람에 진출에 실패한 2014년 일본시리즈가 절정이었는데, 하필 같이 해설을 맡았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 요시다 요시오, 히야마 신지로여서 일본 웹에서 웃프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대로 한신의 노미 아츠시 2013년 일본시리즈, 2016년 요미우리와 DeNA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게스트 해설로 등장하여 웃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34] 사실 아베는 롯데의 연고지인 치바현 출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