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1:35:53

송신영/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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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현대 유니콘스 시절3. 넥센 히어로즈 1기4. LG 트윈스 시절5. 한화 이글스 1기6. NC 다이노스 시절7. 넥센 히어로즈 2기
7.1. 2013년7.2. 2014년7.3. 2015년
8. 한화 이글스 2기
8.1. 2016년8.2. 2017년

1. 개요

전 야구선수 송신영의 선수 경력.

2. 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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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현대 유니콘스 시절.

어떻게 보면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드래프트 지명 순위를 보면 2차 11순위(전체 88순위)인데, 이 얘기는 2차 지명 때 그의 앞에 87명이 불려 나갔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시절에는 1차 지명과 고졸우선지명도 있었다. 더군다나 송신영은 대학 졸업반으로 나왔을 때 이 순위로 지명되었다. 즉, 정말 아무도 그의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기다 사실상 신고선수로 입단했다.[1][2] 그런데 고려대 95학번 중에서 프로 무대에서 지금까지 롱런하는 선수도 송신영뿐이다.[3] 다만, 앞뒤의 선후배들이 너무 쟁쟁해서 좀 이 학번이 약간 묻히는 감도 있다. 94학번이 김동주 손인호,[4] 96학번이 김선우, 김상훈, 강봉규, 강병식[5] 등으로 화려했다.

서울양목초등학교 시절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지금은 없어진 서울재동초로 전학, 중앙중, 중앙고 시절 홍성흔과 배터리를 이루었고 고2 때까지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초특급 유망주[6]였으나 고3 때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였고, 수술이 두려워 재활로 해결을 하려다가 결국 뼈가 기형으로 자라 제대로 된 피칭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후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95학번) 에 진학해서도 제대로 마운드에 선 적이 거의 없었기에, 낮은 순번이라고는 해도 그의 지명은 그 자체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999년에 입단한 선수가 1군 무대에 데뷔한 것이 2001년의 일이다. 2년간 2군에서 짱박혀 구른 후에 기어이 살아남아 1군에 등장했다.[7] 그리고 이 때 이후로 그는 내내 1군 주전 멤버로 살아남았다. 첫 해 무려 115⅓이닝, 이듬해인 2002년에 104⅔이닝을 던졌고 2003년 68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 동안 단 한 번도 70이닝 밑으로 던져 본 적이 없다. 물론 성적이 초특급 불펜의 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70이닝 정도를 먹어줄 만큼 건실한 스태미너는 높이 평가해줄 만하다.

김시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현대 시절 투수코치로 있을 때부터 김수경과 함께 제일 아끼던 애제자였다. 다만 쉽게 갈 수 있는 걸 어렵게 가는 단점이 있었다고. 이 점을 좀 고치라고 매번 충고했지만, 본인은 위험상황이 더 좋다고 해서 김시진 감독을 당황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7년에는 팀 마무리 투수 박준수가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자 대신하여 마무리까지 맡았다. 이를 도하 참사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을 좁힌 것이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박준수한테 불리하게, 거꾸로 커브가 주무기인 송신영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연장전에서도 많이 나왔다. 캘러웨이의 이탈을 메우느라 팀 투수진에 완전히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면서 14세이브로 리그 8위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3. 넥센 히어로즈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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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우리 히어로즈 시절.

팀의 재창단 이후 2008년에 새로 부임한 감독 이광환이 제대로 망가뜨려 놨다. 특히 4월 등판 일지를 살펴보면 경악스러울 따름인데, 3일전에 3⅓이닝을 소화한 투수한테 또 다시 4이닝 세이브는 물론이요, 심지어 이틀 전 1⅓이닝으로 세이브를 올린 투수를 별안간 구원으로 5이닝이나 맡기는 기상천외한 등판도 있었으며, 4월 20일, 22일, 24일 세 경기에 걸쳐 총 4이닝 동안 6실점을 하면서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또 이틀 뒤에 1이닝을, 바로 다음 날엔 2⅓이닝을 소화하게 만들어 버리면서 마구잡이로 굴려졌다. 어이없는 것은 시즌 내내 이러한 패턴으로 등판을 하게 만들다보니 ERA 부분에서 한 때 6.50까지 치솟은 적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10월 4일 전까지 간신히 ERA를 4.97로 내린적도 있었다. 하지만 4일 한화전에서 1⅔이닝 동안 3실점의 패전을 또 안으면서 시즌 최종 53경기에 출장하여 72⅓이닝 동안 2승 8패 4세이브 9홀드에 ERA 5.23으로 데뷔 이후에 가장 좋지 못한 평균자책점과 개인커리어 최다 패를 기록하기도 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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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넥센 히어로즈 1기 시절.[9]

2009년에는 2008년보다 더 좋지 못한 스타트를 하면서 4월 월간 방어율이 9.90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7월 11일 경기 이후 기준 ERA가 3.92까지 관리될 정도로 솔리드한 활약을 연이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리그 강팀이었던 SK와 두산, 기아 타선을 유독 버거워하며 만나기만 하면 실점하는 일이 잦았고, 결국 올스타전 이후 붙은 SK와의 3연전에서 3경기 모두 중간계투로 출전했음에도 첫 경기만 1⅓이닝 무실점 했을 뿐 나머지 2경기에서는 총 6실점(5자책)으로 멸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8월에는 23일 한화전에서 2이닝 3실점으로 패전의 멍에를 쓴 것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호투하고 있었으나, 9월에 결국 퍼지면서 월간 기록 1승 2패 2세이브 ERA 7.36을 보이고는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최종 58경기 출장하여 작년보다도 더 많은 75⅔이닝 동안 3승 3패 4세이브 6홀드 ERA 5.23을 기록했다.[10]

2년 연속으로 5점대 방어율로 커리어가 하향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지만 2010년에 기어코 부활, 꾸준히 롱 릴리프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계속 자신의 야구 인생을 펼쳐 나갔다.

넥센의 손승락이 2010년 마무리로 자리잡기 전까지 넥센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하여 중요한 상황마다 등판하였다. 거기다 과거에도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에 팬들은 걱정이 태산.

2010년 6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 중에 무등 야구장에서 벽돌에 발이 걸려 제대로 투구를 못한 적이 있다. 무등 야구장 양대 사건인 벽돌출토 사건의 주인공인 셈.[11]

2010년 이후로도 넥센 히어로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줬다. FA를 포기한 대가로 2억이 넘는 연봉 계약을 확정, 낮은 지명 순위에서 출발해도 노력 여하에 따라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았다.

그리고 2011년 4월, 그 2억 몸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4월 28일 기준으로 초반 7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세이브 순위 1위까지 치고나간 것. 방어율은 0점대에다 승률까지 무려 10할이다. 같은 페이스로 잘 하고 있는 오승환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넥센의 철벽 불펜의 핵심으로 이대로면, 어깨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던 손승락이 돌아와도 손승락 중간계투로 밀어낼 기세다.[12]

5월 3일에는 프로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으며 5월 5일 목동 홈경기에서 KIA 상대로 시즌 9세이브 달성했다.

5월 19일 대구 원정경기에서는 발빠른 강명구 이영욱을 출루시킨 뒤 1사 2, 3루 상황까지 가며 흔들리다가 결국 박석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시즌 첫 패전+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이후 손승락이 다시 마무리를 도맡으면서 셋업맨으로 활약을 이어나갔고 7월 31일까지 1승에 7홀드를 올리며 히어로즈의 중간허리를 굳건하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시즌 ERA도 7월 말까지 2.36으로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덤.

4.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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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3시간도 안 남긴 상황에서 극적으로 LG 트윈스 박병호, 심수창를 상대로 당시 팀메이트였던 김모씨와 같이 2:2 맞트레이드되었다. # 중간계투진의 부실로 고역을 치르고 있는 LG의 의도는 마운드 강화 차원인 것으로 보이는데, 장돌뱅이가 뒷구멍으로 또 한 건 했다는 의혹이 짙다. 야구팬들에게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13] 그리고 이는 이후 1년 8개월간의 저니맨 생활의 시초가 되었다. 등 번호는 오상민 방출로 인해 비어있던 36번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8월 2일 SK 와이번스와의 문학 원정 경기에 등판했는데...

5:1로 LG가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윤진호의 무뇌수비와 이상열& 김선규의 장작질이 더해지면서 5:4까지 쫓기는 위기를 맞았으나, 송신영이 8회 2사 후부터 등판하여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이적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네이버 중계창의 LG팬들은 기존 LG 불펜들의 동태눈빛에 불안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등장시 눈빛부터가 남다르고 포스가 풍겨진다며 대찬양. 반면 넥센 히어로즈 팬들은 그저 눈물만...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이적 후 잠도 제대로 못자고 긴장했다. 위가 아파서 트레이너로부터 약을 타서 먹었다. 이런 긴장감은 2004년 한국시리즈 이후 처음이다"라고 털어놓았고 이에 캐스터가 "오늘 이겼으니 긴장 풀고 잠 좀 푹 자길"이라며 훈훈한 한마디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8월 3일 경기에서 똑같은 상황에 등판, 8회 위기는 잘 막았으나 9회 이호준에게 끝내기 투런을 맞고 말았다.

8월 21일 삼성전에서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8회부터 등판, 삼성의 중심타선을 막아내며 호투, 세이브를 올렸다. 선발승은 넥센에서 같이 이적한 김모씨.

8월 23일 넥센전에서 등판. 1⅓이닝 1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1이닝은 완벽하게 틀어막았지만 1976년생 노장투수를 2이닝 던지게 하고 하루 쉬고 또 2이닝을 굴린 野石의 병크가 돋보이는 상황이기도 했다.

9월 1일 SK전에서 등판하여 ⅔이닝 2실점 2자책점 불질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LG 팬들은 오히려 쉴드 쳐주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게 1976년생 노장 투수를 3일 연투시키는 감독놈부터 까는 게 이치상 맞는데다, 4강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 9회 말 2아웃 실점 위기 상황에서 경기 보며 덕아웃에서 쳐웃고 있는 선수놈들까지 등장했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LG 프런트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가운데 나온 말이 모 선수는 100억을 주더라도 이 팀에선 못 뛰겠다더라고 해서 그 말을 한 선수가 누구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FA 자격을 얻는 이택근이라는 설이 돌았으나 이택근은 LG에 남아서 4강에 가고 싶다고 공언해서 송신영이 이 발언의 주인공이라는 설이 거의 굳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송신영은 "인터넷 상으로 '100억 줘도 LG에 못 있겠다'고 말한 선수가 나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리고 "서울 태생이라 MBC 청룡 팬에 어린이 회원이었다"며 "어릴 때부터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LG에서 꼭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11월 14일 이택근이 1차 협상에서 구단 제시액에 실망을 넘어 창피함을 느꼈다며 더 이상 우선협상은 없을 것이라 발언해서 100억 드립의 범인은 이택근으로 거의 굳혀졌다.

그러나 11월 19일 송신영도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LG팬들은 반 시즌 쓸려고 그 난리를 치고 데려온 거냐며 프런트를 까고 있다.

당시 심경을 본인이 직접 밝힌 기사 [이영미 人터뷰] 송신영이 그렸던 19년 야구인생 마무리 기사를 읽으면 당시 LG 트윈스의 프런트가 얼마나 병신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5. 한화 이글스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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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1기 시절.

2011년 11월 20일, 한화 이글스와 3년 13억원+@에 계약에 합의했다. +@ 옵션이 비공개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13억이라는 그리 큰 액수가 아닌 걸 보고, LG 트윈스에서 어떤 금액을 불렀길래 파토가 났느냐며 성토하는 여론이 많다. 2년에 7억 불렀단다. 그러면서 김기태 감독은 2012 시즌 마무리로 낙점했었다고 하니 이뭐병. 금액도 금액이지만, 한화는 20일 0시가 되자마자 이상군 운영팀장이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한 후 직접 차를 몰고[14] 달려갔다고 하니 선수를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고 밖에.[15] 결국 송신영은 한화로 이적하고, LG는 보상 선수로 나성용을 지명했다.

그 와중에 이런 기사가 발굴되었다.

12월 26일 한화 이글스 구단 사무실에서 입단식을 가졌는데, 배번은 19번으로 동갑내기 투수인 박정진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화로 간 후 든든한 불펜이 아니라 분식회계의 달인이 되어 버렸다. 박찬호가 한화에서 선발로 처음 등판한 날 2점을 분식회계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까였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후로도 주자 있을 때 등판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분식회계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5월 14일까지 기준으로 피안타율이 .360인데 득점권 피안타율은 .250.

5월 14일까지 전 경기 승계주자 실점률은 83%(5/6)였지만 자신의 평균자책점은 3.18로 준수하게 기록하며 분식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17일엔 8회 3점차에 간만에 주자 없이 등판하여 2타자를 정리하고 박정진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나, 1이닝이 아닌 ⅔이닝을 막았기 때문에 홀드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때까지의 모습을 보면 일단 볼넷은 별로 없지만 안타를 너무 많이 맞는 게 문제. 거기에 실책이라도 나와서 비자책 상황이 되면 또 여지없이 얻어맞는다. 그나마 줄 점수 다 주면 급호투로 방어율 관리 중. 많은 한화 팬들은 송신영을 주자 없을 때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중. 사실 송신영은 이전부터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 올라가는 스타일의 투수가 아니었다. 결국 한 박자 늦은 투수 교체가 송신영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것.

5월 20일 SK전에서는 7회 초에 등판해 최정을 상대로 빈볼성 투구를 해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시즌 1호 퇴장 선수가 되는 불명예를 안았다.[16] 이미 초구부터 타자의 몸 뒤쪽으로 빠지는 폭투를 범해 심판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 3구째에 다시 다리를 맞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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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 명령을 받은 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글러브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17][18][19]

이후 KBO는 송신영에게 벌금 200만원 + 5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는 가중처벌[20]이라고.

이후 5월 29일 삼성전에 등판했으나 올라오자마자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았다. 이쯤 되면 거의 뭐 FA잔혹사라고 불릴 만 하다.

6월 1일 LG전에서 7회 말 윤근영이 주자를 내보내고 강판을 당해 송신영이 등판을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7회를 잘 막았다. 뒤이어 8회에서도 볼넷 2개를 내주었지만 실점 없이 막아내었다.

한화 이적 이후 팔의 각도가 완전히 사이드암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버린 상태다. 작년의 혹사와, 본인이 몇 번 투구폼 변경을 생각해본다고 사이드암으로 던진 것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친 셈.

결국 6월 7일 자로 2군행.

이후 한달여 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콜업되었다. 이 기간동안 퓨처스리그 13경기에 출전하여 1승 2홀드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경기에서의 피안타와 볼넷 허용이 크게 줄어들어 다시금 팬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4경기 23⅔이닝 1승 3패 2홀드, 평균자책점 4.94. 경기당 1이닝도 채 소화해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명백한 FA로이드 부작용.

사실 12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3점대를 기록한 것이 단 4시즌에 불과했던 투수가 2011년에 갑자기 2점대 평균자책점을 보인 건, 반드시 플루크를 의심해봐야 했다. 그리고 2011년 후반기, 아웃카운트를 플라이볼로 많이 잡는 송신영의 투구 패턴이 잠실구장과 LG 외야진의 넓은 수비범위에 도움을 받아 방어율 플루크에 명백히 도움이 되었는데, 이것이 대전구장과 한화 외야진과의 결합을 만나 참사가 벌어졌던 것.

하지만 송신영 같은 경우는 대전에서 혼자 지내는 방을 얻었는데 소음과 침수 때문에 3번이나 이사를 하고 그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는 등 컨디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그 뒤로 한화 이글스는 FA 선수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아파트를 알아봐주는 등 그 주변 관리도 시작하게 되었다. 정근우, 이용규 등이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6.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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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시절.

결국 2012년 11월 15일, NC 다이노스의 20인 보호선수 외 지명을 통해 이적하게 되었다. 한화는 정말 모처럼만에 FA 시장에서 돈을 풀어 송신영을 영입했지만 농사에 실패한 셈.

2013년 4월 13일 마산 SK전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K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이적 후 첫 홀드를 챙겼다.

다음날 4월 14일 SK전에 2:2로 동점인 9회 초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동안 2개의 볼넷과 3루수의 실책으로 인한 1실점을 하였으나, 9회 말 이호준의 적시타와 박으뜸의 결승 스퀴즈 번트로 인하여 4:3으로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그리고 이 승리는 NC 다이노스의 창단 1호 구원승으로 기록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NC 다이노스에서는 상당히 잘 지냈고, 팀의 젊은 투수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NC의 특성상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그 선수들에게 의지가 되었다고. NC의 젊은 투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 송신영의 이름을 꽤 언급하고, 노성호는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송신영 사랑을 보여주어 송성애자, 송퀴벌레, 송리타 등의 별명을 획득했다.

7. 넥센 히어로즈 2기

7.1.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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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일 만에 다시 넥센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모습. 그 순간 전 넥센팬이 울었다.

2013년 4월 18일, NC와 넥센 간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 트레이드되었다. 이택근에 이어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급 스타가 돌아왔다![21]

같이 온 투수인 신재영이 2016년에 포텐이 터져서 신인왕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넥센이 큰 이득을 봤다. 지석훈은 그럭저럭 평타를 쳤지만 박정준, 이창섭은 엉 시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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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발 빠르게 등번호 19번이었던 한현희를 63번으로 돌린 후 송신영에게 19번을 준 다음 공홈에는 이택근의 나이트 찌라시와는 비교되는 노란 손수건 환영인사를 올렸다. 넥센으로의 복귀 첫 날 목동 야구장으로 출근하면서 "넥센을 떠나기 전 늘 다니던 출근길을 다시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으며 선수들과의 미팅 시간에서는 선수들이 송신영에게 "여러팀을 이적한 게 아니라 장기간 재활훈련을 다녀온 것 같다"고 말하며 환영했다.

다음 날, 바로 경기에 출전에 8회를 1삼진등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잘 막고 자신의 귀환을 화려하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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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1⅓이닝을 틀어막고 2011년 5월 5일 이후 2년만에 넥센 유니폼을 입고 세이브를 올렸다.

넥센의 불펜에서 스윙맨으로 자리를 잡았다. 승리조-추격조-대패조로 나눠지는 넥센 불펜에서 2이닝을 먹어줄 수 있는 송신영은 귀중한 승리조. 61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3.21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다만 10월 5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2점을 허용, 경기가 2:1로 끝나면서 플레이오프 직행 실패의 대역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안타를 1개밖에 치지 못한 깝깝한 타선이 더 문제이기는 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61경기 61⅔이닝 평균자책점 3.21로 이정훈과 함께 불펜 베테랑으로서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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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1⅓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7.2. 2014년

2014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5월 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말도 안 되는 실책을 하면서 난타당해 주자를 쌓고 내려와 손승락 블론세이브의 빌미를 제공해 손승락과 함께 까였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좋지 않은 투구 내용을 보이면서 넥센 히어로즈 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만 송신영이 마흔을 앞에 둔 노장투수라는 걸 감안하면, 은퇴할 시기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시즌 최종성적은 41경기 42⅔이닝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6.59로 타고투저 시즌이라지만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해 10년 만에 맞이한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22] 피안타율 .331, WHIP 1.72로 중간계투로써의 안정감은 전혀 보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피OPS가 2013년보다 2할7푼 정도 높아진 편이라, 팬들은 2015년에도 이러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였다.

결국 연봉이 3억 원에서 1억 5천만원으로 삭감되었다. 다만 지난 시즌 연봉은 FA로 받을 3년치 연봉의 마지막해인지라 어느 정도 소폭의 삭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중론. 또한 2014시즌의 방화가 어느 정도 삭감폭이 큰 것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7.3. 2015년

4월 19일 광주 KIA 3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6⅔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며 3200일 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탈삼진 6개에 4피안타도 놀랍지만, 무사사구까지 보면 속이 대단히 시원해진다. 본인은 동생들이 1구 1구 던질때마다 화이팅 해주는 소리가 고마웠고 울컥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할 때 손승락이 일부러 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4월 25일 수원 KT 3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무실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경기 후 자신도 안 믿긴다며, 자신의 퀄리티 스타트는 4이닝 2실점, 선발로 나가면 알이 배기곤 한다고 말했다. 토종투수의 두 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는 2015시즌 넥센의 첫 기록이다. 1회 말 2사 만루의 위기를 송민섭의 좌익수 뜬공으로 막은 후, 별다른 위기 없이 kt의 타자들을 요리했다.

5월 1일 잠실 LG 1차전에서도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놀라운 것은 7이닝 동안 단 79개의 공만 던졌다는 것. 볼넷은 하나, 안타는 단 둘만 내주었다. 그 중 하나가 홈런. 하지만 그 홈런 이후로, 15타자를 연속으로 범타 처리했다. 삼진을 잡은 것은 많지 않지만, LG 타자들의 성급한 방망이가 그것을 도와줬다. 외야 펑고 하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7이닝 동안 11개의 외야 뜬 공을 잡아내었다. 경기 후 LG 좌타자들을 잡기 위해 포크볼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5월 7일 목동 삼성 3차전에서는 4⅓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2회에 제구난조로 볼넷을 남발하며 3실점하였고, 투구수도 급격히 늘어나 결국 강판되고 말았다. 팀은 13:4로 대파당했고 송신영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13일 사직 롯데 2차전에서는 1회부터 3실점하며 두들겨맞아 2회에 바로 교체되었다. 패는 먹지 않았지만 경기는 8:9로 패배.

5월 19일 목동 LG 1차전에서는 선발투수로 나와 5이닝 3실점 84구의 호투를 했다. 이후 불펜이 방화하면서 7실점을 더했지만 타선의 지원으로 최종 스코어 12:10. 승리투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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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초 정성훈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송신영의 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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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고 조상우와 노닥거리는 모습.

5월 24일 목동 NC 3차전에서는 2⅓이닝만에 내려간 선발투수 김택형의 뒤를 이어 2⅔이닝 동안 1실점하고 내려갔다. 팀은 12:11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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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대구 삼성 2차전에서는 등판하지는 않았으나 덕아웃에서 손승락과 포크볼 연구를 하며 소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5월 30일 문학 SK 2차전에서 선발투수로 출장, 4이닝 동안 8K를 잡아내는 위력투를 보여주었으나 4회 초 앤드류 브라운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1실점, 그리고 5회에는 볼넷과 3루타를 연속으로 내주며 1실점하여 내려왔다. 3회에 석연찮은 합의판정 오심도 있었고 4회까지 86구를 던져 5회에는 힘이 떨어진 듯. 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6월 5일 목동 두산 1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6이닝 5실점 4자책이라는 넥리티 스타트를 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5회 병살이 되었어야 할 타구가 2루수 김민성, 유격수 김하성의 연속 실책으로 두 번이나 병살되지 못하면서 투구수도 늘고 실점도 하게 되었지만, 기어이 6회까지 이닝을 먹고 내려와준 덕에 불펜을 아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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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초 민병헌을 삼진으로 잡는 마지막 공 로케이션.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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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으로 승리 후 문성현의 손길을 쳐내고 있다(...).

이날까지 8경기에 선발로 나와 5승 1패를 기록했다.

6월 13일 수원 kt 2차전에서는 7이닝 97구 무실점 1볼넷이라는 엄청난 호투를 하여 전날 에이스 밴헤켄이 무너진 후 불안하던 마운드를 진정시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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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수원과 좋은 인연이 있었음을 설명하는 자막. 이날도 좋은 인연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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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초 김하성이 호수비로 아웃을 잡아주자 1따봉을 시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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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동원과 궁합이 아주 잘 맞았으며 박동원이 앉아있으면 코너워크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배터리에게 공을 돌렸다. 또한 상대 타자들이 노림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스윙해오는 데에 맞서 노리는 코스로 더 정확히 던지려고 노력했다고. 기사 그리고 이날 선제 투런을 날리며 활약한 김하성을 "막둥이가~" 라는 표현으로 예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6월 19일 목동 LG 1차전에서 1이닝 만에 미세한 어깨 통증으로 LG의 1번 타자인 박용택만 상대하고 강판되었다. 결과는 선두타자 홈런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결국 급히 김동준으로 교체됐고 송신영은 큰 부상은 아니였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휴식 겸 치료차 1군 엔트리에 말소됐다. 단 완전히 2군에 간 것은 아닌지 21일 경기에서 박동원이 극적인 스퀴즈로 역전에 성공하자 덕아웃에서 박동원을 격하게 칭찬하는 모습이 잡혔다.

7월 7일 목동 KIA 1차전에서 근 2주만에 등판해 선발투수로 나섰으나, 1회에 1점을 내주고 5회에 손가락 부상으로 내려갔고, 팀은 타선의 부진으로 패배했다. 그리고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7월 29일 목동 kt전에서 7월 7일 이후 처음으로 오랜만에 올라왔으나 부상 여파가 아직 남은건지 오랜만에 올라와서 감이 떨어졌던 것인지 3이닝 6피안타(1홈런) 4K 1사사구 4실점으로 조기강판되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8월 4일 목동 KIA전에서 6⅔이닝 2실점으로 다시 보란 듯이 호투. 팀도 11:6로 이겼다. 상대투수가 양현종이였기에 더 두드러졌던 투수전이었다. 이 경기로 시즌 7승을 찍게 되었다.

그러나 8월 11일 NC전에서는 2이닝 7피안타(1홈런) 1K 1사사구 4실점으로 처참히 두들겨맞으며 지금까지의 호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털리고 내려가버렸다. 염경엽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나름대로 상대전적이 썩 안 좋은 NC에 송신영 카드를 내밀어본 건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8월 18일 수원 kt전에서는 ⅓이닝 4피안타 1볼넷 5실점으로 또 조기 강판당했다. 수원 참사라는 제목을 쓴 기사가 있었을 정도.

7월 말부터 엔트리에 다시 들면서 컨디션 관리차였는지 7일 간격으로 등판하고 있으나 아직 결과가 썩 좋질 않다. 7일 로테이션상으로 등판해야 하는 8월 25일 kt 넥센전은 우천으로 걸렀으나 우천이 아니었어도 피어밴드로 예고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6월 부상여파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할 듯하다.

그리고 9월 23일 목동 SK전에서는 오랜만에 등판해서 릴리프로 7이닝부터 8이닝까지 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무실점 피칭 후 배힘찬과 교체되었다.

올해 주로 KIA, kt, LG 상대로 선발출장을 하다 오랜만에 나와서 여전히 2이닝정돈 꿀꺽해주시는 모습을 보였고 팀은 무려 영봉승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8. 한화 이글스 2기

8.1.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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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떡볶이가~ 왔어요~ 떡볶이~
뒤에서 박정진이 이상하게 쳐다본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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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2기 시절.
2015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한화에서 보내게 되었다. 살려조의 혹사로 투수가 부족한 한화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부분. 넥센 입장에서는 유망주 묶기도 벅찬데 송신영까지 묶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2차 드래프트 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엠팍에서는 2차 드래프트로 지명되면 보통 최고참이 인터뷰를 하는데 어째서 송신영은 인터뷰를 하지 않느냐며 비판했고, 이후 송신영이 넥센을 떠나기 싫어서 연락 두절 후 잠적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김성근 밑에 있기 싫어서 은퇴할 것이다, 고려대 코치로 내정되었다 등의 온갖 소문이 돌면서 졸지에 송신영만 죽일 놈을 만들었다. 그러나 며칠 후 기사로 위 소문들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났다. 송신영은 친구들이 보내 준 엠팍 찌라시의 캡처들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여전히 19번을 단다고 한다.

6월 11일 LG전에서 선발투수로 나가게 되었다. 부상으로 빠진 로저스를 제외하고 윤규진, 송은범, 장민재, 이태양 순으로 현재 돌고는 있으나, 이태양이 일단 꽤 불안한 피칭을 보이는 상황이라 현재 빈 로테이션을 채우는 겸, 작년 선발 7승으로 나름대로 깜짝 호투를 보였던 송신영을 써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4⅓이닝 1실점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7월 12일 LG전에서 선발로 나섰지만, 1회 정성훈의 땅볼 타구를 잡고 1루로 뛰어가다가 종아리에 통증을 느끼고 ⅓이닝만에 강판당했다. 그리고 장민재가 급히 등판해야 했고, 팀은 4:5로 패하였다.

9월 18일, 드디어 콜업됐다.

20일 LG전에 올라와 ⅔이닝 동안 1피안타 1K로 무난히 던지고 내려갔다.

28일 두산전에 9회 초 등판하여 1이닝 10구 2피안타 1실점 1자책으로 무난히 막았다.

8.2. 2017년

4월 2일 모든 필승조를 투입하다 선발 후보인 안영명까지 투입하였음에도 12회 말 1사 1, 2루 위기가 오자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였으나, 민병헌에게 끝내기 중전안타를 허용하면서 분식회계로 시즌을 시작하고 말았다. 당연히 패전 투수는 안영명.

4월 23일 kt전에서는 9회 말에 등판하여 삼자범퇴로 게임을 끝냈다. 팀이 14대 1로 완승했기에 큰 의미는 없다.

4월 26일 롯데전 1⅓이닝 무실점.

4월 28일 넥센전에서 4⅓이닝 4실점한 송은범의 뒤를 이어 등판, 분식회계 후 본인도 책임주자를 실점하여 둘이 8실점을 합작했다. 전날까지 평균자책점은 0점이었으나 이날 20.25를 찍음에 따라 시즌 평균자책은 단숨에 4점대를 돌파했다.

전반적으로 추격조 혹은 패전조로 기용되고 있으며 패전조로서는 무난한 활약을 하고 있는 편이다. 의외로 김성근답지 않게 송신영에 한해서는 등판간격도 그럭저럭 지켜줘서 혹사도 당하지 않고 무난히 던지는 중.

4월 29일 무릎 통증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가게 됐다. 대신해서 콜업된 것은 이동걸.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후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이 예고된 상황에서, 2017년 6월 23일 조인성, 이종환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됐다. 확실한 추격조로 낙점받은 이동걸, 강승현이 분전하고 있고 육성선수들 역시 성장 중이라 부상에 시달리는 베테랑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는 해석. 선술한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공을 김성근 감독[24]에게 주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애석하게도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25] 팬들은 대체로 영입 이후 크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아 수고했고 안타깝긴 하지만 야구를 정으로 하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 그리고 19년의 야구선수 인생의 막을 내렸다.


[1] 흔히 프로 지명 말번은 그냥 로또 식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예외도 있겠지만. [2] 참고로 이 해 현대의 말번 지명자는 당시 대졸이었던 윤상원 현 KBO 심판이다. [3] 전체 95학번(편의상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진출한 선수도 학번으로 지칭) 출신 중에서도 그나마 프로에서 성과를 보인 선수는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 박정진, 황두성, 조성환, 정수근 뿐인 수준이다.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다른 연도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4] 손인호는 프로 와서 별 활약을 못해서 그렇지, 고교와 대학 시절에는 최고 스타였다. [5] 사실 강병식도 프로 입단 후에는 백업과 대타요원으로 전락해서 그렇지 고교, 대학시절엔 아마야구 기대주였다. [6] 이승엽의 절친이었던 고교 유망주 김건덕(2016년 작고)의 인터뷰에도 나온다. [7] 당시 현대의 1군 중간계투진이 신철인, 마일영, 전준호 등의 준수한 불펜이 많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송신영이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정명원의 은퇴, 조웅천, 김홍집의 트레이드로 인한 공백도 있긴 하지만. [8] 그럼에도 스탯티즈 기준 FIP는 3.90으로 오히려 리그 평균 이상의 모습을 보였으며 WAR도 0.81로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불펜투수 중 한 명이었다. [9] 모자 위에 있는 숫자는 각각 이숭용, 정수성, 송지만 등 히어로즈 베테랑들의 등번호이다. [10] 작년에 비해 FIP도 5.17로 리그 평균보다 다소 아래의 기록을 남겼지만 WAR은 작년과 같은 0.81이었다. [11]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무등경기장 물방개 사건. [12] 부상에서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잠시 동안은 불펜 생활이 필수겠지만. [13] 트레이드 기사가 어느 언론매체에서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 LG 프런트 관계자 지인이 정확하게 심수창+ 박병호+@와 김모씨+송신영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는 글을 썼다. 이후 +@의 정체는 15억인 것으로 밝혀졌다. [14] 그러나 송신영의 말에 의하면 잠깐 갔다 온 거라고 한다. [15] 심지어 모 야구 팬사이트에 올라온 카더라에 따르면, 한 팬이 한화 2군 경기 직관을 갔다가 송신영에게 싸인을 받으며 "왜 LG를 떠났나요"라고 물어보니 한 LG 프런트 직원이 그에게 욕을 했다고 송신영이 대답했다 한다. 팀을 위해 뼈빠지게 던졌는데 정작 프런트란 놈들은 욕이나 하니 누가 그 팀에 남고 싶었을까? 게다가 돈도 후려치는데? 은퇴 이후 모교인 고려대 잡지 인터뷰에서 협상 담당자가 협상 당시 아주 개떡같이 대접했다는 게 드러났다. [16] 사실 2012시즌 1호 퇴장의 주인공은 한대화 감독이다. [17] 퇴장 명령에 불복하여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을 던지지 못한 자신에게 화를 냈다. [18] 하지만 시즌 초 한화의 팀 사정, 그리고 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홈팬들 앞에서 글러브를 내던진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 행동이 빌미가 되어 구단 자체 징계는 물론 후술하는 KBO의 징계 또한 받게 되었다. [19] 이 때 심판이 송신영을 퇴장시킨 이유가 압권인데 송신영의 제구력이면 고의가 아닌 이상 저런 빈볼이 나올 수가 없으므로 퇴장을 결정했다고 한다. [20] 이미 2006년 현대 시절, 2009년 히어로즈 시절에 빈볼을 던져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21] 참고로 이 트레이드에 대한 비화가 있는데 2013 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넥센과 NC의 시범경기를 가졌을 때 송신영이 넥센 덕아웃에 죽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김경문 감독이 염경엽 감독에게 "저 놈 넥센으로 보내야겠네"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2] 넥센 히어로즈 팀 내에서 한 번이라도 KS 경험이 있는 선수가 단 3명이었는데, 송신영이 부진으로 빠지고 KS 有경험자인 이택근, 오재영 2014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했다. [23] 여담으로 둘 다 1976년생으로 동갑이다. 박정진이 송신영 아들인줄 [24] 고교 시절 커브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25] 사실 2군에 내려간 뒤 공부를 하며 미리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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