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7:28:51

정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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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정수성(1946)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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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68 최승준 · 70 이호준 · 71 김경태 · 73 김일경
· 80 박경완 · 81 김정준 · 83 정수성 · 84 박용근
· 85 염경엽 [[감독#s-1.1|
]] · 97 모창민 · 99 김광삼'''
2군
72 서용빈 · 74 경헌호 · 75 김용의 · 76 윤진호
· 82 최경철 · 86 신재웅 · 89 양원혁 · 94 김재율
잔류·재활군
77 정주현 · 78 양영동 · 79 손지환 · 92 최상덕 · 93 장진용
트레이닝 파트
69 양희준 · 87 안영태 · 88 김용일 · 91 이권엽
· 95 고정환 · 96 배요한 · 98 박종곤
· 유현원 · 최재훈 · 김종욱
프런트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 입대 선수 등록 선수 1군 엔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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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3 2004

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8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50번
김흥만
(1991~1992)
<colbgcolor=#000f24> 정수성
(1997~2001)
베라스
(2002)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8번
김인호
(1996~2001)
정수성
(2002~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서울 히어로즈|서울]]/[[넥센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번}}}
팀 창단 <colcolor=#ffffff> 정수성
(2008~2013)
고종욱
(201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6번
박흥식
(2011)
정수성
(2014~2016)
김지수
(2020~2023)
SK 와이번스 등번호 86번
김상진
(2005~2016)
정수성
(2017~2020)
플레처
(2021~2022)
kt wiz 등번호 86번
김연훈
(2018~2020)
정수성
(2021)
김연훈
(2022~)
두산 베어스 등번호 81번
강동우
(2014~2022)
정수성
(2023)
김지용
(2024~)
LG 트윈스 등번호 83번
임훈
(2021~2023)
정수성
(2024~)
현역
}}} ||
파일:24LG 1군외야수비코치 정수성.png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83
정수성
鄭守盛 | Jung Soo-Sung
출생 1978년 3월 4일 ([age(1978-03-04)]세)
서울특별시 광진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성동초 - 건대부중 - 덕수정보고[1] - ( 초당대)[2]
신체 173cm, 72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1997년 2차 12라운드 (전체 95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7~2007)
우리- 서울- 넥센 히어로즈 (2008~2013)
지도자 화성 히어로즈 수비·주루코치 (2014)
넥센 히어로즈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15)
넥센 히어로즈 1군 작전코치 (2016)
SK 와이번스 1군 작전코치 (2017~2020)[3]
SK 와이번스 2군 주루코치 (2020)[4]
kt wiz 2군 주루코치 (2021)
두산 베어스 1군 작전코치 (2023)
LG 트윈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작전코치 (2022)
종교 불교 개신교[5]
응원가 동요 '미소'[가사]
가족 정수근[7]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방송 경력5. 연도별 성적6. 기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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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LG 트윈스의 코치.

前 야구선수인 정수근의 동생이며 둘다 등번호 8번을 달고[8] 외야수로 뛰었다. 형제 모두 좌타자이지만 좌투좌타인 정수근과 달리 정수성은 우투좌타, 그리고 입단 초기에는 스위치 히터로도 활약했었다.[9] 타격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우수한 주루와 수비력으로 오랫동안 팀에 공헌한 선수다.

그리고 선수로서의 실력, 기록은 자신보다 훨씬 좋았으나 자기 관리의 문제로 불명예스럽게 야구계를 떠난 형 정수근과는 달리[10], 자신은 성실함을 바탕으로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더 오랫동안 야구인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파일:attachment/정수성/머큐리2.jpg

199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되었는데,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매우 낮은 순위로 입단했다. 사실상 구단에서도 별 기대 없이 즉석복권 긁는 정도의 기분으로 지명했던 모양.[11] 입단 동기로는 친구 김일경과 대졸인 최만호, 최영필이 있었다. 입단 후로도 1군에 얼굴도 못 비추고 오랜 기간 무명 세월을 보냈다.[12] 정수성도 노력이야 열심히 했지만 이 시기의 현대는 탄탄한 선수층으로 왕좌를 지키고 있던 터라 자리가 없었다.[13]

그나마 밑에서 설명할 KBS의 인간극장 출연으로 정수근의 동생이라는 인지도만 있었다. 참고로 고교야구에서 뛰었을 때 형 정수근의 프로-대학 간 스카웃 경쟁 여파에 휘말려 야구를 못 할 뻔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 동문회의 압력으로 간신히 공을 다시 잡게 됐다고. 이 이야기는 이전까지 형 정수근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14] 프로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고 계약한 문제 때문에 동생 앞길을 막은 형 이미지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정수근과 정수성의 부모님이 프로팀 스카우트와 논의를 해서 정수근을 먼저 프로팀으로 보낸 거라고 한다.[15] 정수성은 연좌제로 찍힌 것이고.

2005년경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전력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고[16], 정수성은 전준호의 이탈로 기회를 얻어 주전 중견수로 리드오프를 맡으면서 2할 7푼의 타율에 100안타, 29도루를 기록하며 데뷔 9년만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때 정수성의 활약을 본 현대 수뇌부는 2005년 말 상무에서 곧 제대하는 발빠른 좌투좌타 외야수 1명을 제대하자마자 방출해 버린다. 그리고 그 선수는 친구 손시헌이 있는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는데, 그 선수가 바로 두산에서 도루왕으로 맹활약하는 이종욱이다.[17] 그러나 2006년이 되자 정수성은 부진에 빠졌고,[18][19] 그나마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후 기량이 늘어나고 있던 이택근[20]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2.2.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2.1. 2010 시즌

2010년에는 A형 간염에 걸려 이택근의 LG행으로 생긴 주전 중견수로서의 기회를 날려먹고 많은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2.2.2. 2012 시즌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테이블 세터의 부진이 계속되자 4월 중순부터 1군에 합류했다. 4월 24일 경기 때도 승부의 쐐기를 박는 2루타를 쳤지만, 이 때 역시 앞선 파울 타구에 맞아 다친 상황이었기에 절룩거리면서 2루로 달리는 눈물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5월 6일 KIA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는 무려 1,044일만에 통산 6호 홈런을 때려냈다.

5월 10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중견수로 나와 11개월만에 선발로 나온 김영민을 도와주는 호수비를 선보이면서 맹활약했다. 그리고 플레이 자체가 허슬 그 자체라서 팬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았다. 머큐리 甲이라는 새로운 별명도 생겼다. [21] 그런데 하도 허슬 플레이를 해대서 경기 끝나고 퇴근할 때는 몸이 말이 아니라는 모양.

5월 17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1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서 5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면서 팀의 9:1 승리의 첨병이 되었다.

5월 19일, 홈구장인 목동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맞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4월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25게임 연속출루 기록. 넥센의 상승세와 거의 일치하는 기록이다. 이거 하나만 봐도 얼마나 땀 흘려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그러나 5월말부터 체력이 방전되면서 하향세를 그리는 통에 성적이 많이 나빠졌다. 3할에 가까웠던 타율이 2할 3푼대가 되었다. 그래도 6월 24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 2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내내 안타를 치지 못했지만, 연장 10회말 1사 1,3루 찬스에서 극적인 끝내기 2루타를 치면서 팀의 6:5 대역전승의 주역이 되었다.

6월 28일 7회말에 상대방에 송구실책을 틈타서 정말 빠르게 3루까지 갔다. 팬들은 내야 3루타라면서 흥분할 정도. 거기다 이혜천의 와일드피치로 추가점까지 획득하였고 결국 이 점수는 넥센의 결승점이 되었다. 그러나 본인은 슬라이딩 과정에서 경미한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체력 저하로 인해 7월 30일에 2군으로 내려가고, 1군 복귀를 위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다가 그만 8월 7일 왼손목 실금 부상으로 인해서 전력 이탈.

헌데 부상을 무릅쓰고 9월 초에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손목뼈에 생긴 금이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라 타격은 힘들고, 대주자나 대수비로 주로 뛰었다.

2012년의 몸을 사리지 않는 활약으로 대부분의 넥센 팬과 야구 팬들이 정수성=허슬플레이라는 인식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물론 허슬 플레이도 좋지만, 넥센 팬들은 연세도 많으신데[22] 무리하지 말고 부상 없이 오래 뛰길 바라고 있었다.

2.2.3. 2013 시즌

염경엽 감독에게 부여받은 역할은 외야 백업과 출루용 대타. 시즌 초반에 약간 출장하다 부진한 타격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고, 9월 확대엔트리 때 다시 복귀하였다.

팀의 첫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그의 롤과 비슷한 장기영, 유재신, 송지만이 엔트리에 들면서 제외되었다. 정수근 사사구에서 이를 두고 정수성의 엔트리 제외는 실수를 한 것이라고 반 농담 섞어 지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반쯤 사실이 되었다.

11월 4일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2군 주루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3. 지도자 경력

3.1. 넥센 히어로즈

파일:attachment/정수성/머큐리.jpg

은퇴 후 곧바로 2군인 화성 히어로즈의 주루코치로 선임되면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1군 작전코치인 최만호 코치가 혈압 오르는 주자 돌리기를 자꾸 보여주는 바람에 팬들은 정수성 코치와 보직을 변경하길 바라는 중.

2015년부터 1군 코치로 올라왔다. 하지만 또 최만호가 3루 작전코치를 맡게 되었고, 대신 정수성 코치는 심재학이 타격코치로 보직변경되며 공석이 된 1루 주루코치 및 외야수비코치를 맡는다. 아직 초보 지도자라 부족한 면이 많지만, 1루에서 선수들을 잘 다독이는데다가 선수들 기본 주력도 파악 못하고 손만 돌리는 최만호 코치보다는 평이 좋다.

정수근의 열렬한 실드는 덤. 다시보기영상 5시간 15분부터[23]

2015 시즌 종료 후 최만호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공석이 된 3루 작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의 1루 주루코치는 타격보조코치였던 강병식 코치가 겸직한다. 그런데 2016 시즌이 시작되면서 존재 자체가 언급이 없다. 사실 시즌중에 코치에 대해서 언급이 자주 나오면 그만큼 작전수행을 못한다는 의미이므로 전임자 최만호와 달리 코치로서 주루에서 큰 실수나 착오 없이 성실하게 코칭에 힘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2016 시즌에는 넥센의 팀 컬러가 뛰는 야구로 변하면서 정수성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전반적으로 큰 실수 없이 잘 해냈다는 평. 다만 가끔 선수가 주루사를 당하면 염경엽 감독에게 까일까 봐 쫄아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러나 2016 시즌 후 염경엽 감독이 사퇴함에 따라 넥센을 떠나게 되었다. 함께 팀을 떠난 이강철, 박철영은 이해하지만, 정수성과 재계약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의아하다는 팬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염경엽 색채 지우기 일환으로 염경엽의 사람 내치기 또는 갈등이 있어서 아닌가라고 보는 의견도 많다. 팬덤이 뒤집혀진 것은 덤.

3.2. SK 와이번스

주루 지도능력은 부족한 점이 없기에 주루코치를 필요로 하는 다른 팀에서 러브콜이 올 듯싶었고, 실제로 넥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SK 와이번스의 작전코치로 영입되었다. #. 기존의 3루 작전코치였던 김인호가 워낙 평이 좋지 않아서 SK 팬덤은 대환영 분위기이다.

그리고 2016 시즌 71개로 1위였던 팀 주루사가 정수성 코치가 부임한 2017 시즌에는 33개로 리그 최저로 대폭 줄어들면서 명 코치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점차 주루사가 늘어갔고 2019 시즌 주루사 비율 4.44%로 리그 2위를 달성하며 좋았던 평도 옛말이 되었다. 2020 시즌에도 달리지지 않은 주루사 비율을 보여주면서 좋지 않았던 팀 성적까지 겹쳐 까임의 빈도가 늘어났고 결국 8월 3일 2군 주루코치로 내려갔다.

2020 시즌 후 염경엽 감독이 물러난 뒤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SK를 떠났다.

3.3. kt wiz

2020년 11월 25일 kt wiz의 코치가 되었다. 보직은 2군 주루코치.

그런데 2021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1년만에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2022년에는 소속팀 없이 야인으로 지냈다. 최강야구에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을 하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 공모에 지원했고, 합격하면서 작전코치로 발탁되었다. 다만 중국의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인해 아시안 게임 개최가 2023년 9월로 1년 늦어지고 이후 두산 베어스의 코치를 맡게 됨에 따라 류지현으로 변경되며 대표팀 코치에서 자연스럽게 하차하였다.

3.4. 두산 베어스

2022년 10월 18일, 두산 베어스와 코치 계약을 맺으면서 이승엽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형 정수근이 뛰던 두산에 입단하게 되면서 형제가 모두 두산 베어스에 몸담은 경험이 있게 되었다. 보직은 1군 작전코치.

등번호의 경우 11월 20일 81번이 적힌 바지를 입은 사진이 포착됐다.

시즌 개막 후에는 GO&STOP에 있어선 확실히 안정된 사인을 보여주고 있다. 전임자인 전형도, 김주찬 등이 3루 코치를 볼 때 황당 주루사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수성에 대한 평가가 오를 만한 부분. 다만 유난히 포수에게 피치 아웃으로 잡히는 도루자가 많다는 점은 비판을 받는다. 주루사가 심각하게 많지 않은 건 그나마 나은데, 김재환이나 양의지같은 발 느린 주자들도 무리하게 돌리고 있어 이것도 비판이 좀 있다. 요약하자면 전임 두산 3루 코치들 중에서 전형도, 김주찬보다는 압도적으로 나으나 공필성, 김민재보다는 아쉽다는 평.[24]

그러나 2023 시즌 후 두산 구단과의 면담을 통해 최종적으로 재계약하지 않게 됐다. 다만 복수의 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기에 조만간 새 팀을 구할 수 있을 듯.

3.5. LG 트윈스

2023년 11월 28일 서용빈이 LG 2군 감독으로 간다는 기사가 뜬 다음에, 정수성도 LG 트윈스의 코치로 간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기존 주루코치였던 이종범이 2023년 시즌 후 미국 연수를 위해 팀을 떠나는 바람에 1군 주루코치 자리가 공석이다 보니 해당 보직이 유력시된다. 이후 2024년 1월 4일 LG의 2024 시즌 코칭스태프 보직 발표 과정에서 1군 외야수비 겸 주루코치 보직을 맡는게 확정됐다.

4. 방송 경력

특유의 인품과 지도자 경력에 힘입어, 2022년 청춘야구단: 아직은 낫아웃, 최강야구 등에 모두 "코치"로 참여하였다. 청춘야구단의 경우 주루, 외야코치를 담당한다.

최강야구에서는 이승엽 감독을 보좌하면서 수석코치 겸 주루, 외야 코치를 맡았다가 이승엽이 두산 감독에 취임하며 같이 데려가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최강야구 감독 및 수석코치 자리는 각각 김성근과 이광길의 몫이 되었다.

한편 아직 2군 선수 시절이었던 2000년에 인간극장에 출연한 것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 #. 20대 초반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있다. 또한 저 때는 형인 정수근은 매우 잘나가는 스타 플레이어였는데 비해 한참 무명이라 형한테 비교 당하기도. 하지만 사고뭉치로 전락한 형과는 달리 코치가 된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ab93d>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7 현대 1군 기록 없음
1998 6 .000 0 0 0 0 0 1 0 0 0 0 .000 .000 .000
1999 1군 기록 없음
2000 12 .250 4 0 0 0 1 1 2 0 0 6 .250 .250 .500
2001 33 .267 4 0 0 1 1 7 7 1 0 3 .313 .467 .799
2002 50 .154 2 0 0 0 0 6 6 1 1 4 .267 .154 .421
2003 26 .375 3 0 0 0 0 3 2 1 0 2 .444 .375 .819
2004 88 .125 4 0 0 0 1 17 13 2 1 5 .200 .125 .325
2005 118 .273 100 14 5
(1위)
0 19 53 29
(5위)
21 20
(3위)
76 .344 .339 .683
2006 71 .221 17 0 0 0 4 17 7 6 3 15 .299 .221 .520
2007 23 .257 9 1 0 0 0 3 1 0 2 5 .297 .286 .583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8 우리-서울-넥센 76 .252 32 6 2 1 14 27 16 7 0 32 .287 .354 .641
2009 87 .230 32 5 0 3 9 29 21 3 4 32 .264 .331 .594
2010 8 .238 5 0 0 0 0 3 1 1 0 8 .273 .238 .511
2011 1군 기록 없음
2012 87 .217 44 7 3 2 9 37 19 29 5 42 .328 .310 .638
2013 37 .111 2 1 0 0 0 8 3 1 0 7 .158 .167 .325
KBO 통산
(14시즌)
722 .241 258 34 10 7 58 212 127 73 36 237 .309 .311 .620

6. 기타

  • 팀 내에서 상당히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렸을 적 형 정수근이 야구는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줘서 그 뒤로는 항상 웃으면서 야구를 한다고 한다.[25] 팬들에게도 매너가 상당히 좋다.[26] 팬들은 정수근의 재능에 정수성의 성실함이 더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이는 정수근의 아들이자 정수성의 조카인 정호준에게 야구 팬들이 바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 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형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풍운아 이미지로 거칠 것만 같은 정수근도 동생에게는 따뜻한 형이다. 정수성이 한창 무명이고 정수근이 잘 나갈 때 동생의 생활비를 보태줬다.
  • 2015년 9월 3일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의 선수였던  권용관이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정수성 코치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런데 아프리카 TV에서 해설을 하던 형 정수근이 이걸 보고 있었고, 대노하여 권용관을 두고 폭언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 훌륭한 수비력, 빠른 발, 상당한 야구센스, 누구나가 인정하는 성실한 노력파,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 동안에다 미녀 아내까지. 야구 선수로서 가질 수 있는 건 체력과 타력만 빼고 다 가지고 있다.
  • 팀 동료이기도 했던 이숭용 해설위원이 뽑은 운 없는 넥센 선수 3인방( 김영민, 오재일, 정수성)중에 하나다. 연습량은 최고인데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두산으로 가 펄펄 날고 있는 이종욱과 늘 대비가 되었으니. 김영민은 김세현으로 개명한 뒤에 마무리투수로 몇년 쏠쏠한 활약을 했고, 오재일은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후 주전 자리를 꿰차고 이후 대형 FA 계약을 맺고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하지만 정수성은 선수로 성공하진 못했다.
  • 아직 1군에서 제대로 된 모습도 못 보여줬던 2000년에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출현한 적이 있다. 타이틀은 아직은 스물 세살, 역전은 있다였다. KBS 공식 유튜브에서 복원한 요약본 1부, 요약본 2부 당시 인기스타였던 정수근과 비교당하는 심정과 그럼에도 그에게 도움을 받고 그를 응원하는 모습, 2군 생활 모습 등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무명이었던 그의 팬카페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참고로 현재 아내분도 여자친구로 인간극장에 등장한다.[27][28] 두 부부는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10년간 사귀다 2004시즌이 끝나고 결혼하여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이것도 정수근과는 정반대인 모습이다.[29] 그리고 22년 후 정수성 본인은 형 정수근을 기뻐하며 지켜봤던 잠실구장의 외야석에서 사무실, 덕아웃으로 가게 된다.
  • 나이에 비하면 꽤 동안이다. 현역 시절 같은 팀메이트였던 조용준이나 김수경보다도 어려보이는 외모였지만 이쪽은 한 살 더 많았다. 은퇴 후 코치가 된 동시에 나이가 40대를 넘겼음에도 여전히 현역 선수라고 해도 보일 동안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 미세먼지로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정철원의 말을 듣고 뒤늦게 알았는데, 베어스티비 담당자에게 이를 빼달라고 말했지만 이를 베어스티비에 넣어달라고 말하는 정철원과 투닥투닥하는 모습이 잡혔다. [30]

7. 관련 문서



[1] 친형인 정수근도 2년 차이로 같은 초-중-고교를 다녔다. [2] 군 입대 연기를 위한 학적 등록 [3] ~8월 2일 [4] 8월 3일~ [5] 정수근을 따라 개종하였다. [가사] 넥센 정수성 안타치는 모습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넥센 정수성 도루하는 모습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정말 좋아요~ X2 [7] 3형제 중 막내로 큰형이 한명 더 있다. [8] 단, 정수성은 50번을 단 시간이 제법 길었다. 12살이나 많은 대선배 김인호가 이미 8번을 달고 있었기 때문. [9]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감독과 김용달 코치는 스위치 히터 성애자로 유명했으나 후임 감독인 김시진 감독은 스위치 히터에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시진 감독 부임 이후로 좌타석에만 들어섰다. [10] 불명예 은퇴에 한술 더 떠 음주운전을 집행유예 기간에 또 저질러서 현재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11] 정수근의 동생이니 재능은 있을 것이라는 판단쯤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12] 입단 동기 3명 역시 무명 세월이 길었다. 최영필은 현대에서 실패한 1차 지명 투수였는데, 97년에 5선발로 나왔지만 4승 11패로 부진했고, 99년에 계투요원으로 나섰지만 성적은 그닥이었다. 김일경과 최만호 둘 다 2군 붙박이었고. [13] 정수성이 현역이던 시절에 현대 외야를 거친 선수들이 박재홍, 전준호, 심정수, 송지만, 심재학, 왕조 말년에는 이택근. 쟁쟁한 선수들에 간혹가다 클리프 브룸바, 래리 서튼같은 외국인 선수들도 코너외야로 뛰었으니 정수성 아니라 누구라도 주전을 장담할 수 없는 선수진이었다. [14] 중앙대와 고려대 진학을 고려했다고 한다. [15] 유튜브 마토브리그 특집에서 정수근이 직접 밝힌 일화. [16] 연고지 이전 문제에 모기업의 자금난 등으로 구단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팀의 주전 유격수 박진만와 4번 타자 심정수가 FA로 풀리자 돈이 없어 모두 내보내야 했던 2005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몰락이 가파르게 진행되었다. 팀은 마지막 불꽃을 2006년에 붙였지만 한화 이글스에 패해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가을야구는 끝났다. [17] 이종욱의 석연치 않은 방출이 정수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안그래도 이종욱이 발 빠른 정수근의 1번타자 자리를 잘 막아주면서 후에는 국가대표 승선도 이룬다. [18] 이는 전통적인 양적 통계를 기준으로 본 것이다. [19] 사실 세이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출루율과 OPS만 봐도 포텐을 터뜨렸다기엔 부족한 성적이다. 다만 시기는 2005년, 메이저에서조차 투승타타가 꽤 남아있던 시기이니 한국은 말할 것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2할 7푼이라는 나름 괜찮은 타율과 도루 수만으로 저런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20] 센터 빼고는 코너 수비만큼 재앙이었다. 그나마 현대 시절에는 내일 모레 40을 내다보는 대도 전준호의 체력 안배를 위해 가끔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수비 이동을 했지만 기대이하였고 송지만이 주 포지션이 였던 우익수를 잠시 유한준에게 넘겨주고 좌익수와 중견수 커버를 꽤 했었다. [21] 수성=Mercury니까 머큐리 갑. [22] 오랜 무명 세월을 보낸 데다가, 의외로 동안이라면 동안이라 신인급 정도 될 거라고 착각하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978년생으로 2012년 기준으로 35세. 프로 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게다가 1997년 고교졸업 이후 곧바로 프로에 입단한 케이스라서 프로 연차는 무려 16년차. [23] 한화 내야수였던 권용관이 경기 중 정수성 코치에게 불만을 표시를 했던 경기. 나이는 권용관이 2살 더 많고 프로 입단 역시 권용관 쪽이 2년 더 빠르지만 정수성은 엄연히 상대 팀 코치다. [24] 때문에 두산의 도루 시도는 리그에서 두번째로 많은 반면 도루 성공률은 뒤에서 두세번째로 낮다. [25] 정수근 본인도 실제로 은퇴 후 후배 박명환의 유튜브 방송인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야구선수라는 직업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살았다고 밝혔다. [26] 이 역시 형에게 배운 부분. 정수근 역시 현역 시절 팬 서비스는 엄청 좋았다. 구장 입구에서 사인해주다 지각이라며 구단 직원에게 끌려간 적도 있다. [27] 감독의 지시로 동아리 후배들과 땡땡이를 치고 있던 정수근을 찾으러 갔는데, 그렇게 형의 동아리 후배였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28] 이렇게 학교 선후배 관계에서 부부가 된 커플이 야구계에 또 있는데, 장정석 전 기아 단장이 바로 이 케이스. 공교롭게도 이 커플도 덕수상고 출신으로 정수성의 선배다. 다만 이 쪽은 아내가 선배인 것이 다르다. [29] 형인 정수근은 두번이나 이혼했고 현재 같이 사는 부인은 3번째 부인이다. [30] 두산 뿐만 아니라 정수근과 달리 워낙 성격이 유한 탓에 선수들과 코치진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투닥이는 모습도 정수성 코치가 실제로 선수들과 많이 대화하고 어울리면서 먼저 다가갔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