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5:01:51

배힘찬

배힘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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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조규제
(1998. 7. 31.~2000)
배힘찬
(2002)
조규제
(2003)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69번
안희봉
(1998~2000)
배힘찬
(2003)
결번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조규제
(2003)
배힘찬
(2004)
손승락
(2005~2007)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22번}}}
팀 창단 배힘찬
(2008)
유선정
(2009~2011)
{{{#fff [[서울 히어로즈|서울]] / [[넥센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8번}}}
신철인
(2008)
배힘찬
(2009~2015)
김해수
(2016~2018)
KIA 타이거즈 등번호 12번
차일목
(2006~2015)
배힘찬
(2016~2016. 6. 29.)
임창용
(2016. 6. 30.~2018)
KIA 타이거즈 등번호 37번
신창호
(2015~2016. 6. 29.)
배힘찬
(2016. 6. 30.~2017)
박지훈
(2018~2019)
}}} ||
파일:tigers_co_kr_20171016_143728.jpg
배힘찬
Bae Him-chan
출생 1983년 12월 8일 ([age(1983-12-08)]세)
서울특별시 강동구
(현 서울특별시 송파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가동초 - 서울경원중 - 서울고
신체 186cm, 89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2년 2차 1라운드 (전체 10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2~2007)
우리- 서울- 넥센 히어로즈 (2008~2015)
KIA 타이거즈 (2016~2017)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6~2007)
등장곡 MC몽 - 서커스
종교 불교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현대 유니콘스 시절2.3. 넥센 히어로즈 시절
2.3.1. 2009 시즌2.3.2. 2010 시즌2.3.3. 2011 시즌2.3.4. 2012 시즌2.3.5. 2013 시즌2.3.6. 2014 시즌2.3.7. 2015 시즌
2.4. KIA 타이거즈 시절
2.4.1. 2016 시즌2.4.2. 2017 시즌
2.5. 이후
3. 피칭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여담6. 논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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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KIA 타이거즈 소속의 우완 투수.

매년 스프링캠프에서 감독 및 코치진에게 기대를 갖게 하지만, 정규 시즌만 시작했다 하면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없이 2군으로 잠적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동학, 이대환, 조태수 등과 비슷한 유형. 2군에서라도 잘 하면 2군 페드로라는 별명이라도 붙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는 것이 문제.

의외로 1군 통산 성적은 71게임 출장, 3승 8패 1세이브 2홀드 ERA 7.44이다. 가비지 타임 위주로만 출장했기에 영 존재감이 없었고, 후술할 몇 차례의 기록적인 폭망 때문에 그 쪽 이미지만 남아버린 것.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고 입학 당시 170대 초반의 키였으나, 1년 사이에 훌쩍 자라 건장한 체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50km/h에 달하는 빠른 포심을 던질 수 있으나, 제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점으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공을 던지면 140km/h대를 간신히 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문제는 신인 시절부터 프로 입단 15년차였던 2017년까지도 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현대에 2002년 2차 1순위로 지명되었다.[1] 2차 1순위라는 지명 순위에서 보이듯 입단 당시에는 나름대로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다. 입단 이후에는 2군 붙박이가 되었다. 중간에 공익으로 병역도 해결했다.

2.3.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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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이 현대에서 넥센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2군 터줏대감. 입단 이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1군에서 총 15이닝 던졌다.

2.3.1. 2009 시즌

해당 시즌에 김시진이 2대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쓸놈쓸로 불리는 이후의 행보와는 달리 이 때까지는 비주전 선수들도 비교적 잘 활용했으며, 배힘찬도 패전처리 역할을 부여받고 21경기 31이닝 평균자책점 4.35 1승 1패 2홀드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커리어 내내 꾸준히 2이닝당 볼넷 하나씩을 적립한 그였지만 이 시즌만은 31이닝 9볼넷으로 그럭저럭 제구력도 봐줄만 했다.

김시진 감독은 시즌 이후 배힘찬에게 팀 내에서 오랜만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여담으로 타자로는 6년동안 2군 및 군대에서 복무하고 2008년 후반기 엔트리에 추가된 내야 유틸리티 김민우를 꼽았다.

다만 이 때부터 기아로 쫓겨나기까지 달았던 번호가 28번이었는데, 그렇다. 바로 정명원이 달았던 번호였다. 팬들은 뭐 이 딴 놈이 그 번호를 다냐고 대폭발했다. 여담으로 이 등번호는 김해수, 박주성 같이 배힘찬보다는 아주 조금 낫던 폐급들이 달다가 2020년에 김재웅이 달았는데 김재웅이 대폭발하면서 드디어 제 주인을 찾았다.

2.3.2. 2010 시즌

4월에 중간계투로 조금 나오다 5월에 붕괴된 선발 로테이션을 채우기 위해 땜빵 선발로 출전했다.

5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5와 1/3이닝 1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선발승을 가져간다.

그리고 5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0실점으로 드디어 터지는 것인가 했는데...

5월 1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이닝 3실점을 하며 불안해지더니 5월 20일 SK전에서 2이닝 3실점 3볼넷, 5월 26일 한화전에서 1⅓이닝 4실점을 하며 자멸했다.

26일 이후로 다시 중간계투로 올라오다 화끈한 볼질과 함께 2군으로 사라졌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페드로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2.3.3. 2011 시즌

3월 12일 KIA 타이거즈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2회부터 슬슬 무너지던 김성현에 이어 4회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한다. 모두가 대량실점을 예상하던 상황에서 이현곤 김다원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버리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날 성적은 2⅔이닝 1피안타 4K 0실점. 최고구속은 149km/h. 구속도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밋밋하던 변화구를 개선해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이후로의 활약은 거의 없다시피했고 확대 엔트리에 올라왔으나 밀어내기로 실점만 하며 2011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2.3.4. 2012 시즌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기록이 전혀 없었다. 대체 뭘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수준.

그래도 기대가 아직 남아있는 건지 구단에서 방출이나 트레이드 없이 보호하고 있다. 두산에서 이성열의 맞트레이드 대상으로 오재일과 배힘찬을 요구했으나, 이장석의 거절로 배힘찬은 빠졌다고 한다.[2][3]

상기했다시피, 배힘찬의 등번호 28번은 정명원의 선수 시절 등번호라서, 이 때 별명이 28놈이었다.[4][5] 나이도 30을 넘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기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제구는 안 되는데 구속이 쓸데없이 높았다.[6]

2.3.5. 2013 시즌

2013년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염경엽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배힘찬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선수로 언급했고 2013 시즌 스프링 캠프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1군에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채 시즌내내 2군 붙박이로만 지냈다. 팬들은 사실상 기대를 거의 접은 상태이다.

2013년 마무리캠프 투수조 MVP를 받으며 다음 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2.3.6. 2014 시즌

2014년 스프링캠프 애리조나 캠프와 오키나와 캠프에 모두 승선해 팬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으나 오키나와 캠프에서 뚜껑을 열어본 결과 2경기 3⅔이닝 동안 4피안타 5사사구 5실점(4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9.82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2014년 3월 15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강윤구에 이어 2번째로 등판해 1과 1/2이닝 동안 2피안타 5볼넷 3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렇게 화성에 있던 중 5월 8일 2014년도에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1군에 올라오고도 한경기도 등판하지 않다가 5월 18일 다시 화성으로 돌아갔다. 이쯤되면 전설의 동물 수준.

2군에서도 딱히 돋보이는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도 6월 7일 1군에 등록되었다.

6월 8일 두산전에서 선발투수 김대우와 릴리프 강윤구가 차례로 조기강판되면서 간만에 그 모습을 보게될까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다. 다행히 마정길, 한현희가 각각 2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안봐도 되겠다며 안심했으나 결국 마무리 손승락이 희대의 극장을 열게 된 후 다음 투수로 등판, 3년만에 1군 마운드를 밟았다.

이후 고향에 돌아가지도 않고 엔트리만 차지하다가 6월 22일 SK전에서 10:5로 이기는 상황에 9회 초 등판했다. 선두타자 박계현에게 실책성 안타를 맞았지만 남은 이닝을 막아냈고 시즌 1.1이닝 무실점 투수가 되었다.

6월 25일 삼성전에서 2:11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 올라와서 3점을 추가실점했다. 그나마 3이닝 동안 던졌으니 다행인듯.

6월 28일 두산전에서 등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7월 2일 롯데전에서도 8회 등판, 삼진 한개를 곁들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7월 6일 기아전에 올라와서 4실점(3분식 1자책)했다. 다음 이닝에 타선이 6점까지 따라잡은걸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

이후 7월 7일에 올라온 오재영 대신 말소되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명언에 걸맞게 그는 2014년 100만원 연봉 상승과 함께 살아남았다.

2.3.7. 2015 시즌

5월 17일 대전 한화 3차전에서 팀이 6:0으로 앞서가다가 끈질긴 추격을 당한 끝에 6:6 동점으로 9회를 끝낸 후 10회말 등판했다. 조상우는 휴식, 손승락은 3연투에다 9회 블론, 다른 계투들도 이미 소진된 상황이어서 하영민 정도 외에는 나올 만한 투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영민도 이미 전날에 41구를 던지며 2.1이닝 롱릴리프를 한 상황인데다, 10회초 타자들이 추가점수를 내지 못하면서[7] 그냥 감독이 무리하지 않고 경기를 내려놓은 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다. 배힘찬이 혹시라도 막아내면 자신감 상승이고. 그러나 배힘찬은 볼질로 자초한 2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강경학을 상대로 헛스윙-볼-파울로 이어지는 1-2의 유리한 볼카운트임에도 또다시 볼질을 남발하여 밀어내기 볼넷을 내 주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다음날 말소되었다.

그 이후에는 시즌 후반에 간간이 등판하면서 의외로 별로 실점하지 않았다. 다만 5월 17일 경기의 영향인지 주로 승부가 많이 기운 뒤에 등판해서 부담이 덜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9월 26일,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식물타격 송주호에게 홈런을 맞았다. 홈런타자도 아니고 그냥저도 아닌 대수비/대주자 김성근의 양아들로 유명한 송주호에게 맞았다는 점에서 넥센 팬들은 해탈했고, 혀갤에선 이제 그냥 빨리 방출하라며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었다. 심지어 이 홈런은 송주호 커리어 중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이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가을야구 엔트리는 진작에 못 들고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

2.4.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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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2.4.1. 2016 시즌

이적하면서 기존에 달았던 28번 대신 12번을 선택했는데, 타이거즈 역사상 12번은 주로 포수들이 달았던 번호라는 점에서 특이한 선택이 되었다.

2월 19일 삼성과의 연습경기에서 연속 4안타를 맞고 5실점 뒤 혼자 총 6실점을 해 결국 배힘찬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3월 15일 시범경기 NC전에서는 일단 무실점으로 1이닝을 막아는 냈으나 2안타에 첫타석 이호준을 향한 헤드샷을 날렸다. 다행히 이호준이 피했지만 속구였기에 맞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 여기에 3월 24일 롯데전에서는 4연속 볼넷의 원흉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개막은 함평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5월 5일 시즌 첫 등판하여 9타자를 범타로 막으며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커리어 첫 세이브는 덤. 사실 이게 배힘찬의 커리어 하이다.

5월 17일 두산전에서 8회말 2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 3자범퇴를 기록하였다.

5월 18일 두산전에서 석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등판하여 힘차게 14구 연속 볼을 기록하고 연속 볼넷도 모자라 밀어내기로 두점을 준데 이어 적시타로 경기를 조공하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기아 팬들은 2차 드래프트 1라운드로 3억을 주고 사온 프런트의 안목에서 치를 떨고 있다.

임창용이 오랫동안 달고 있던 37번에서 12번으로 바꾸면서, 선배인 임창용의 상징이나 다름 없던 37번으로 바꿨다.

2016년 시즌 1군 기록은 3게임 0승 0패 1세이브 ERA 7.94으로 여전히 답이 없다는 것을 인증해주었다. 문제는 2군 기록도 신통치 않다는 것. 13게임 0승 4패 ERA 6.50으로 제대로 폭망했다. 이쯤되면 당장 방출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

2.4.2. 2017 시즌

2군에서도 7월까지 등판 기록이 없었으며,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예 3군[8]으로 빠져 있는 상태다. 그런데 1, 2군 실적이 존재하는 외야수 김다원[9]마저 방출되는 상황에서 그에게만은 아무런 소식이 없어 의구심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2017년 8월 2일 2군 화성전에 선발로 등판, 5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챙긴 데 이어, 김기태 감독이 드디어 배힘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목은 김기태의 히든 카드인데, 그냥 KIA의 4, 5선발 임기영, 정용운이 무너진 판국에 속는 셈치고 마지막 복권이라 생각하고 긁는 것 같다. 선수 본인에게도 마지막 기회일 듯. 팬들은 2군에서도 못 하니까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10]

그리하여 8월 13일 LG전 선발 투수로 예고되었으나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면서 등판 기회는 미뤄졌다.

8월 17일 잠실 두산전 8회에 중간계투로 나와서 1이닝 2탈삼진을 기록하며 의외의 역투를 보여줬다.

마침내 8월 19일 SK 와이번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무너졌다. 그날 경기 결과. 9실점으로 내려왔으나 박진태가 2점을 분식하면서, 11실점으로 주권에 이은 최다 실점 투수 확정. KIA 타이거즈의 2017 시즌 홈 경기 중 사상 최다 실점 경기이자, 배힘찬 본인에게도 한 경기 최다 실점 경기가 되었다.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김기태의 기대를 확실하게 져버렸고,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2017년 최악의 경기를 남겼다.

자세히 보자면, 2⅓이닝 동안 18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12피안타(3피홈런) 11실점(11자책) ERA 42.43으로 3회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강판. 던지는 공마다 죄다 안타가 되는, 2군에서도 안 통할 법한 기가 막힌 투구로 챔피언스 필드를 도서관으로 만들며 배팅찬이라는 별명을 다시 확인시켜준 계기만 되었고, 이것도 모자라 최정 동생 최항의 데뷔 첫 홈런까지 허용했다. 이 경기로 투수판 짐짝이란 별명이 붙은 건 덤. 재밌는 건 짐짝도 플루크 시즌이 있었다. 당연히 ERA29.70으로 치솟았다.

등판하자마자 노수광에게 내야 안타를 맞고, 최항에게는 커트질하면서 얻은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볼질을 했고, 7구째에는 이게 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졌고, 그 사이 노수광에게 도루를 허용했다. 볼질로 풀카운트까지 간 뒤 결국 안타를 맞고, 뒤이은 나주환에게도 또 안타를 맞으면서 벌써 1실점. 로맥에게는 삼진으로 첫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자막으로 배힘찬의 오늘의 운세가 나왔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오늘은 보답을 받을 수 있는 날. 속한 집단 내에서 인정을 받고 인기가 높아지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다."고 나왔다. 그리고 박정권에게도 열심히 볼질을 하다가 4구 째에는 폭투, 9구 끝에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쓰리런을 맞고 4실점째. 최승준은 초구에 좌측 펜스를 때리는 안타를 쳤는데, 2루까지 진루하다가 주루사를 당하는 바람에 아웃 카운트 두 개째 수확. 뒤이은 이대수를 겨우 삼진으로 잡아내며 1회초가 끝났고, 2회초는 어떻게 땅볼 유도로 삼자범퇴를 시키며 배힘찬 치고는 쉽게 매조지었다.

하지만 문제는 3회초. 선두타자인 최항에게는 초구 홈런(5실점)을 포함, 나주환, 로맥, 박정권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면서 6실점,[11] 그리고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쳐냈으나 2루로 가는 도중에 주루사를 당했던 최승준에게 첫 타석에서 맞았던 안타와 비슷한 코스로 가는 쓰리런을 맞으면서 9실점. 이대수 또한 초구를 쳐냈으나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고, 이는 배힘찬의 올해 1군에서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되었다. 조용호가 2구 째에 버나디나 키를 넘어가면서 중앙펜스를 때리는 2루타를 쳐내자 아예 김기태가 외면해 버렸는데, 그 와중에도 본인 구위가 답이 없다는 걸 전혀 모른 채 그 놈의 갸우뚱만 몇 차례. 여기에 이성우 또한 초구 안타를 쳐내자, 중계진조차 할 말을 잃었다.

2.1이닝 동안 59개 투구, 18명을 상대했으니, 타자당 평균 3.2개를 던졌으며, 1구 또는 2구 내에 승부를 보고, 그 게 죄 다 안타 아니면 홈런이었다.

이종범 해설위원은 "속구와 변화구가 모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정확히 문제점을 짚었다. 카메라로 된 사진을 보아도 누구에게나 깨끗한 공인게 보인다는 것. 구속은 잘 나오는데 공에 힘이 없으니, 장타가 엄청나게 잘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해설위원인 양준혁과 이종범이 조금씩 할 말을 잃더니, 이성우의 안타까지 나오자 캐스터인 정병문까지 모두 말문이 막혀버린 건 덤. 결국 강판되어 내려가는데 홈 팀의 관중들 반응은 그야말로 싸늘 그 자체. 오늘의 운세가 반대로 적중한 셈. 책임 주자를 노수광 포함하여 세 명이나 만들어내고 내려왔다.

그리고 교체된 투수 박진태는 노수광을 상대로 병살타를 유도했으나, 노수광의 발이 워낙 빠른지라 앞 주자였던 이성우만 잡아냈고, 노수광을 그대로 출루시키면서 3루에 있던 조용호가 홈으로 들어오며 아웃 카운트는 한 개만 올라가고 이로 인해 1점을 분식. 그 다음 올라온 최항은 집요하게 승부한 끝에 3루수 옆을 빠져나가는 페어볼로 최형우 앞에까지 굴러가는 장타 코스를 만들어내고, 이 타구에 노수광까지 들어오며 또 다시 분식. 배힘찬은 이로써 11실점을 달성하며, 주권에 이은 한 경기 두 자릿수 이상 실점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나마 주권은 시범경기였다.

여기다 KIA는 6회에 김주찬을 이명기로, 최형우를 나지완으로, 김선빈을 유재신으로, 김민식을 한승택으로 교체. 박진태가 6회에는 최승준에게 장타를 맞으면서 1실점, 7회에는 최항과 김성현에게 연속 몸에 맞는 볼을 주면서 밀어내기로 2실점을 했고, KIA는 8회 말에 최원준의 2루타와 이명기의 안타로 1점을 따라간 것 빼고는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1-13으로 대패하고 말았다. 당연히 패배 원인은 배힘찬이었고, 이 날 경기가 끝난 뒤 KIA 타이거즈 갤러리를 포함한 모든 기사에서 배힘찬은 입자의 최소 단위로 까이고 또 까이고 방출 기사조차 짐주형에게 밀리는 굴욕까지 겪었다. 그야말로, KIA 팬들에게는 2017년 8월 19일이 기억하기조차 싫은 날이었다.

결국 이 경기가 배힘찬의 마지막 1군 경기가 되었다. 다음날 2군으로 강등되었으며, 콜업되는 일은 당연히 없었고 그대로 방출되면서 선수 생명이 끝났다. 1983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35세인데, 그 답 없는 KIA 불펜에서도 제일 못하니 영입할 구단이 있을 리 없다.

2.5. 이후

구단이 방출 선수들에게도 우승 보너스를 줬기 때문에 우승 보너스를 받아갔다.

2019년에 야구연습장을 열었다고 한다.

3. 피칭 스타일

최고 150㎞/h의 포심과 슬라이더, 커브를 던질 수 있어 유망주로 꼽혔고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제구가 안 된다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결국 당시 현대는 그저 150km/h이 찍히는 구속 하나만 보고 지명했다는 얘기. 현대는 이 당시 3연속 신인왕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신인 영입과 육성에 일가견이 있었지만 배힘찬만은 어떻게 하지 못했다. 지명 순위가 낮았으면 덜 아쉬웠겠지만 2002년 2차 1라운더, 그것도 1차 지명이 불가능하던 시절에 뽑은 선수라 더 뼈아프다.

하지만 프로 입문 1년만에 밑천이 드러나며 좀처럼 1군에 정착하지 못했다. 하긴 공끝이 더러운 것도 아니고, 구위도 깃털인 데다 제구도 형편없어 스트라이크를 던지려면 140대 초반까지 구속을 내려야 했으니 잘할 수가 없다. KBO 리그에 숱하게 많았던, 구속만 빠르고 나머지는 1군급이 아니었던 선수.

물론 140대 초반 구속으로도 대성하는 선수가 없진 않다. 허나 그런 선수들은 일단 코너웍이 좋거나 공끝이라도 좋거나 구종이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으로 여러 구종의 구종가치가 높기라도 했지, 이 선수는 스탯티즈 기준으로 어떤 구종조차 플러스를 기록한 적이 단 한 시즌도 없다.

당시 맞춰 잡는 유형의 땅볼 유도나 뜬공 유도 등을 하던 투수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기를 해서 타구 스피드를 높이는 소총수들을 잡아냈다. 여기에 내야 수비가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도 아니어서, 이 당시 히어로즈는 우수한 레전드 수비영상이 종종 떴다. 이 시기 히어로즈에는 대형 유격수 강정호, 1루수 박병호, 2루수 서건창, 3루수 김민성, 외야수 이택근, 유한준처럼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주전을 잡고 있었기에 부실한 내야진도 아니었다. 그런데 배힘찬만 올라왔다 하면 이들이 뭘 할 수가 없는 볼넷을 내주거나 강습 타구가 나오거나 강한 타구가 나와버리니 수비진이 2022년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같아도 실점을 막는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넥센 히어로즈 시절 팀 동료들이 결성했던 이른바 싸융짱문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싸'의 김세현도 160에 가까운 공을 던질 수가 있으나 제구 잡으려면 한때 143km/h까지 내려야 할 정도였다.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김세현은 그래도 2015년과 2016년에 사람 역할이라도 해내는 등 은퇴 전까지 700이닝 가까이 던지며 30승, 59세이브, 22홀드나 올렸으니 배힘찬하고는 비교되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그것도 백혈병과 싸워가면서 이런 성적을 올렸고, 2015년 마지막 경기에는 대체선발로 올라와서 완봉승까지 거머쥐었다. 게다가 김세현은 2016년에 구속을 더욱 올리며 제구가 잘 안되더라도 스트라이크 근처까지 우겨넣으며 헛스윙을 유도하는 등, 한현희, 조상우가 혹사로 인한 수술로 빠진 시즌의 마무리를 맡아 제대로 밥값을 해줬다.

'융'의 강윤구는 가끔 긁히긴 했으니 홀드도 있었고, '짱'의 장시환도 홀드는 종종 챙겼고, '문'의 문성현은 일년에 석달이라도 밥값은 해냈고, 2023년에도 불펜으로 살아남으며 원클럽맨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오'의 오주원도 역시 2014년 포스트시즌에는 선발을, 그 뒤로는 선발, 불펜, 마무리까지 돌면서 열심히 던지다 원클럽맨으로 은퇴했고, 나중에 추가된 '납'의 금민철은 2015, 2017년에 선발로 돌며 120~130대의 느린 구속으로 선발승도 따내는 등 밥값이라도 한 시즌이 있었다.

싸융짱문오납은 그게 좀 흔하지 않아서 그렇지, 긁히는 시기가 자팀이든 타팀이든 있긴 했던 반면, 배힘찬은 1군에 올렸다 하면 앞서고 있는 경기도 실점을 연거푸 하면서 터뜨려버렸고, 풀타임 선발로 썼다면 피홈런왕이 됐을지도 모를 정도로 71경기 나와서 홈런만 22개를 얻어맞았다.[12] 이러면서도 통산 3승 1세이브 2홀드나 올린 게 신기할 정도.

같은 팀에 있던 언더핸드 투수인 김대우의 평균 커리어인 4점대가 이 선수한테는 커리어 하이고, 그 시즌에도 단 21경기에만 출장했다. 그런데 21경기 출장도 커리어 하이다. 통산 ERA는 7점대로 1군 활약을 했던 경력이 있는 선수들과는 비교 자체가 미안해질 수준이다. 2군에서도 딱히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고 9점대까지 찍었다. 오로지 시속 150km의 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게 벼슬이라서 남아있었지만,[13] 2군서 QS를 찍고 1군에서 기회를 받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피안타를 맞아대며 경기를 위기상황으로 끌고 갔다. 이 시점에서 경기는 이미 터져 있으니, 그 뒤에 나오는 선수들이라고 잘 막을리가 없으므로 신나게 분식을 당하며 자책점을 본인이 다 가져가곤 했다.

그래서 2차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에 지명되자 히어로즈 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지명한 김기태나 타이거즈나 왜 데려왔냐고 욕을 먹었을 정도. 그리고 이런 우려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KIA는 이 선택 때문에 이적료도 지불하고 경기도 터지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2 현대 1 0 0 0 0 81.00 4 0 0 0 0 12.00
2003 1 2 0 0 0 0 36.00 8 2 1 0 2 4.50
2004 1군 기록 없음 및 군복무( 공익근무요원)
2005
2006
200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8 우리 5 11⅓ 0 0 0 0 7.15 16 2 4 2 5 1.77
2009 히어로즈 21 31 1 1 0 2 4.35 24 5 9 2 12 1.07
2010 넥센 14 35 2 5 0 0 6.94 40 7 21 5 11 1.74
2011 11 15⅓ 0 0 0 0 5.87 20 0 8 3 14 1.83
2012 1군 기록 없음
2013
2014 6 6⅔ 0 0 0 0 5.40 11 1 1 0 4 1.80
2015 7 6⅔ 0 1 0 0 6.75 10 1 6 0 1 2.4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16 KIA 3 5⅔ 0 0 1 0 7.94 7 1 3 0 2 1.77
2017 2 3⅓ 0 1 0 0 29.70 12 3 0 0 4 3.60
KBO 통산
(3시즌)
71 117⅓ 3 8 1 2 7.44 152 22 53 12 55 1.75

5. 여담

  • 파일:attachment/배힘찬/Example.jpg
    여기서 NEXEN을 NAXEN으로 표기했는데, 오타인지 의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넥센 팬들 사이에서는 "저 선수는 센 선수가 아니라 센 선수다."라는 드립이 흥하게 된다.
  • KIA 타이거즈 이적 후 배힘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부 팬들이 검증 안 된 신인 선수를 왜 쓰냐며 말이 많았는데 배힘찬은 1983년생으로 2002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선수이다. 얼마전 김기태 감독이 선발 투수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뜬금없는 갤러가 신인이냐고 쓴 것이 발단이 되었다.

6. 논란

파일:f067Cif.jpg

2015년 5월 17일 한화전에서 고참급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한심한 경기를 보여준 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자 팬들이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지적하였는데, 아무리 봐도 이 팬들을 욕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돌려버렸다.

히어로즈 갤러리에서는 문성현이 양반일 줄이야![14] 이 참에 제발 좀 방출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 SNS에서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은 수많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 중에서도 대놓고 욕을 시전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찾자면 노진용 정도가 있다. SNS가 아니라 실생활으로 확장해도 욕을 시전한 사례는 김병현, 김진규, 이천수 정도가 전부다. 노경은도 팬들과 키배를 뜬 적은 있지만 카트라이더를 하러 튀어서 그렇지[15] 욕은 안했고, 김영민, 임태훈, 손영민 등은 사생활에서 물의를 일으켰지 욕설로 대응하진 않았다. 연예계 등으로 범위를 넓혀도 이현도처럼 개별적으로 욕을 시전한 경우는 있어도, 다수의 팬들을 겨냥해서 떡하니 욕설을 걸어둔 경우는 좀처럼 찾기 힘들 정도. 다만 이 사건 이후로 한국 야구계에 장성우, 강정호, 김상현, 2017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의혹,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등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서 2017년 기준으로 보면 법규 하나 걸어둔 건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7. 관련 문서



[1] 배힘찬 외에 2002년 드래프트에서 현대가 지명한 선수 중에는 이현승 장원삼이 있다. 이현승이 3라운더, 장원삼이 11라운더. 이 두 명은 대학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하였다. [2] 정명원 투수 코치가 넥센 시절에 애지중지해서 뺐다는 이야기가 있다. [3] 만일 두산에게 배힘찬을 주고 오재일을 빼버렸다면, 두산은 윤석민을 주고 장민석 받아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넥센은 기어이 그 선수를 받아오고 장민석을 내주며 두산에 빅엿을 먹였다. 그 후, 두산은 히어로즈와 트레이드는 일절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2차 드래프트에서 양현을 넥센에게 뺏겼고, 양현은 제대 후 어엿한 불펜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또 당하고 만다. 그리고, 두산은 몇년 뒤,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최재훈 주고 신성현을 받아오는 짓을 또 저지르고야 만다. 사실 배힘찬까지 보냈으면 나름 윈윈했을지도 모른다. 4년 뒤에 오재일이 대폭발했기 때문. 그리고 두산은 2020년에 들어서야 류지혁을 보내고 홍건희를 받아오며 윈윈에 성공했다. [4] 2009년에 욕먹고 다음 시즌부터는 그냥 18번으로 바꾸라며 영웅게시판이 대폭발했다. 그 뒤로 28번은 김해수, 박주성 같은 폐급들을 거쳐서 드디어 28번을 김재웅이 달게 되고 드디어 제 주인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 번호가 되었다. 2022년에는 그 정명원처럼 마무리도 했다. [5] 당시, 3위까지 올라갔다가 후반기에 DTD를 당했던지라 혀갤의 분위기는 그 날 못하면 무조건 잡아죽일 듯할 기세였다. 2015년 이전에 염경엽이 죽어라 까인 시기가 바로 이 때. 후반기 들어서 뇌 빼고 팔을 돌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루사가 나오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까였다. [6] 최대성도 구속 때문에 선수생활을 꽤 오래했는데 그나마 최대성은 터진 시즌이라도 있다. [7] 박병호- 유한준- 윤석민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었다. 1사 1, 3루 상황까지 만들었으나 하위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8] KBO 리그에서는 공식적으로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만 3군을 운영하고 있으며, 보통 육성이 필요한 어린 육성선수들이나 재활 후 실전 연습단계에 있는 선수들이 주로 3군 엔트리에 포함된다(경기 출전 없이 재활만 하는 선수는 재활군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윤석민이 재활군이다). [9] 배힘찬보다 2살이나 어리다. [10] 2010년 12경기 5승 3패 4.19, 2011년 9경기 3승 1패 1세이브 5.79, 2013년 20경기 4승 4패 1세이브 1홀드 4.55, 2014년 13경기 2승 5패 2세이브 2홀드 5.40, 2015년 33경기 1패 5세이브 3홀드 2.89, 2016년 13경기 4패 6.50. 1군이어도 2군 가야 할 성적인데, 2군 성적이 이렇다. 그마저도 12시즌에는 나오지도 않았다. [11] 로맥에게 안타를 맞은 걸 본 김기태는 주저없이 불펜을 호출했다. 이 때 보였던 선수는 박진태, 홍건희. [12] 이닝은 117이닝. 다만 해외 사례까지 따지면 통산 100이닝도 못 던지면서 22홈런을 맞은 선수도 있다. 공인구의 차이까지 생각하면 배힘찬은 이 선수보다는 구위가 나았다고 볼 수 있다. [13] 사실 이 선수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1라운더였다는 것. 보통 지명 순위가 높을수록 선수가 망해도 오래 기다려주는 편이며, 소신픽으로 뽑은 1라운더가 망하면 스카우터가 책임을 물기도 하는 만큼 상위픽 중에서도 1라운더는 어지간하면 지켜주려고 하는 게 있다. 즉 구단에서 포기하게 된 1라운더라면 엄청나게 기대치가 박살났다는 것이다(1차 지명은 애매한 것이 서울 같은 곳에서는 1차 지명>2차 1라운더였으나 지방의 경우 1차지명 풀이 워낙 별로라 하위픽 수준인 선수를 1차로 뽑은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1차 지명 선수를 빠르게 포기한 사례도 꽤 있다). [14] 문성현은 그저 댓글 삭제와 계정 비공개로 귀를 막아버렸을 뿐이지 욕은 안 했다. [15] 공교롭게도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중 박천원이라는 선수가 팬들이랑 키배를 뜨면서 현피드립에 쌍욕까지 한 적 있다. 그런데 카트라이더 판이 좁아서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고, 후에 불법 프로그램 사용(야구로 치면 약물 복용과 비슷하다)으로 영구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