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5 14:35:36

석감(팽성왕)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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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1a6d2><colcolor=#fff> 후조의 반역자
石堪 | 석감
시호 없음
작위 팽성왕(彭城王)
(田) → 석(石)
(堪)
불명
생몰 ? ~ 333년 9월
부황 고조 명황제
출신 상당군(上黨郡) 무향현(武鄉縣)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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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조의 황족. 본래 성씨는 전(田)씨이나 석륵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개성하였다.

2. 생애

석륵 거병 초창기부터 석륵을 따라 여러 전장을 누비며 숱한 전공을 세웠고, 나중에는 석륵의 양자가 되어 성을 석(石)씨로 고쳤다.

태화 원년(328년) 4월, 동진의 영토인 완(宛)을 공격해 남양태수 왕국(王國)의 항복을 받아내고, 회수(淮水) 이북까지 나아가 예주자사 조약이 지키고 있는 수춘(壽春)까지 압박하였다. 이때 조약의 장수 진광(陳光)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조약을 공격하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조약은 큰 위기에 빠졌으나, 측근 염독(閻禿)이 조약으로 위장하고 진광에게 붙잡힌 덕에 조약은 담을 넘어 겨우 빠져나왔다. 진광과 그 부하들은 염독이 진짜 조약이라 생각해 그를 붙잡아 석륵에게 바치고 후조에 투항하였다.

태화 원년(328년) 6월, 조약 휘하의 여러 장수들이 후조와 몰래 통하여 내응을 약속하였다. 이에 석륵이 석총과 석감을 파견해 회수를 건너서 수춘을 치게 하니, 조약의 무리들은 붕괴되어 역양(歷陽)으로 패주하였다. 석총과 석감은 수춘의 백성 20,000여 호를 이끌고 귀환하였다.

태화 원년(328년) 11월, 전조의 황제 유요가 친히 갑병 100,000명으로 낙양의 금용성을 100여 일 동안 포위공격하여 형세가 위태로웠다. 석륵은 안팎으로 계엄령을 내린 후, 외지에서 군대를 보유하고 있던 석감, 석총, 도표에게 모두 군대를 인솔해 형양(滎陽)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태화 원년(328년) 12월, 석륵이 직접 40,000 대군을 거느리고 대알(大堨)에서 황하를 건너 성고(成皋)에 도착하였다. 석감 등도 성고로 나아가 석륵과 합류하니, 보병은 60,000명이었고 기병은 27,000명에 달했다. 이후 석륵은 낙양을 구원하기 위해 험로로 쉬지 않고 진군하여 공현(鞏縣)과 자현(訾縣) 사이에 이르자, 금용성을 포위한 채 술판을 벌이던 유요는 석륵이 이미 황하를 건넜다는 소식 듣고 놀라 금용성을 포위하던 100,000 병력을 거두어 낙수(洛水) 서쪽에 배치해 후조군을 대비하였다.

낙양성에 이른 석륵은 전조군의 진영을 보고 기뻐하며, 진로를 북쪽으로 우회하여 전조군을 피해서 보•기 40,000명을 이끌고 먼저 낙양성에 들어갔다. 이후 중산공 석호로 하여금 보병 30,000명으로 낙양성 서쪽에서 전조군의 중군을 치게 하고, 석감과 석총은 각기 정예 기병 8,000명으로 낙양성 북쪽에서 전조군의 선봉군을 치게 하였다. 두 군세는 낙양성 서양문(西陽門)에서 크게 싸웠고, 석륵도 친히 갑주를 두르고 창합문(閶闔門)으로 나가 서양문에서 전조군을 공격했다. 유요도 서양문에서 친히 군사를 지휘했으나, 전투 전에 술을 한 말 넘게 마시는 바람에 너무 취하여 중간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유요가 도중에 퇴각하자 전조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고, 석감은 이를 기회로 기세를 타 전조군을 더욱 세차게 밀어붙였다. 결국 석륵, 석호, 석감의 협공으로 전조군은 마침내 크게 무너졌고, 유요는 전투가 끝나고도 술에 깨지 못한 채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얼음 위로 자빠져 석감에게 사로잡혔다. 전조군을 대파한 석륵은 적군 50,000명을 참수하여 낙양을 구원하였다.

건평 원년(330년) 2월, 석륵이 군신들의 권유에 따라 대조천왕(大趙天王), 행 황제사(行皇帝事)를 자칭하자, 석감은 팽성왕(彭城王)에 봉해졌다.

건평 3년(332년) 가을, 동진의 태위 도간이 무창(武昌)에서 장수들을 보내 번성(樊城)을 함락하고 양양(襄陽)을 위협했다. 동진의 장수 조윤(趙胤)이 도간의 명령에 따라 마두(馬頭)를 공격하자, 석감은 장수 한옹(韓雍)을 보내 마두를 구원케 하였으나 제시간에 이르지 못해 남사(南沙)와 해우(海虞)가 동진군에게 유린당하고 5,000여 명이 잡혀갔다.

건평 4년(333년) 6월, 명제 석륵의 병환이 점점 악화되니, 중산왕 석호는 멋대로 조서를 고쳐 진왕(秦王) 석굉과 팽성왕 석감을 수도 양국(襄國)으로 소환했다.

건평 4년(333년) 7월, 명제 석륵이 붕어하고 태자 석홍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중산왕 석호는 양위하겠다는 석홍의 제안도 마다하고 섭정하면서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여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 석감은 이러한 석호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마찬가지로 석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었던 태후 유씨와 더불어 석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건평 4년(333년) 9월, 어느 날 유태후가 석감에게 말했다.
"선제께서 승하하신 이래로 승상의 횡포와 이와 같으니, 황조의 멸망이 오래지 않아 도래할 것 같구려. 이른바 자신이 기른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자와 다를 바 없는 신세인데, 왕께서는 장차 어떻게 그를 도모하려 하시오?"
석감이 답했다.
"선제의 옛 신하들은 모두 배척되거나 살해당했고, 군대 또한 석호가 신임하는 이들만이 맡고 있어, 궁전 안에서는 그를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청컨대 신이 연주(兗州)로 가서 늠구(廩丘)를 근거지로 삼고, 남양왕 석회(石恢)를 맹주로 받들어 거병하겠습니다. 태후께서는 각지의 목(牧)과 태수, 장수들에게 조서를 내려 각자 의병을 이끌고 걸왕과도 같은 역적을 토벌하라 명하십시오. 이리하면 제아무리 석호라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유씨가 말했다.
"일이 급하니 그대는 가능한 속히 출발하도록 하시오. 가만히 있다가 변고가 생길까 두렵소."
태후의 허락을 받은 석감은 허름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연주에 도착해, 남양왕 석회를 받들어 경기병을 이끌고 늠구에 위치한 연주 치소를 습격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패하고 말았다. 석감은 석호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달아나 초성(譙城)으로 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승상 석호는 장수 곽태(郭太) 등을 파견해 석감을 추격케 하였고, 석감은 초성 남쪽인 성보(城父)에서 곽태에게 붙잡혀 양국으로 끌려갔다. 석호는 양국에 도착한 석감을 화형시켜 죽이고, 아울러 그 배후에 있던 태후 유씨도 주살하였다. 남양왕 석회도 양국으로 소환되어 석호의 감시 속에서 살다가, 훗날 석호가 천왕(天王)을 칭할 때 죽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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