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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7589><colcolor=#ece5b6> 전량 8대 국왕
장현정 | 張玄靚 |
|||
출생 | 350년 | ||
서진 양주
안정군
오씨현 (現 간쑤성 핑량시) |
|||
사망 | 363년 (향년 14세) | ||
능묘 | 평릉(平陵) | ||
재위 기간 | 8대 국왕 | ||
355년 ~ 36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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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7589><colcolor=#ece5b6> 성씨 | 장(張) | |
휘 | 현정(玄靚)) | ||
부모 |
부친
장중화 모친 왕태비 곽씨 |
||
형제자매 | 2남 ?녀 중 차남 | ||
자 | 원안(元安) | ||
시호 | 전량: 충공(衝公)[1] | ||
서진: 경도공(敬悼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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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량의 제8대 군주.자는 원안(元安)이었다. 제5대 세종 환왕 장중화의 차남으로 폭군으로 군림한 제7대 위왕 장조가 피살된 후 반란을 일으킨 장관과 송혼 등에 의해 옹립되어 5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나이가 매우 어려 조정은 장관, 송혼, 장옹 등 권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대신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벌였다.
2. 생애
어린 나이와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천성이 매우 유약했다. 이후 백부 장조가 황제를 칭하면서 양무후(涼武侯)에 봉해졌다.355년, 장조가 살해되고 반란을 일으킨 대신들이 어린 장현정을 옹립했다. 장현정은 즉위한 후 연호 화평(和平)을 버리고 원래 쓰던 건흥(建興)으로 되돌아갔으며, 칭제도 하지 않았다. 반란의 주모자 장관을 위장군에 임명하여 병권을 그에게 일임했다.
355년 9월, 농서의 백성 이엄(李儼)이 호족 팽요를 주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장현정은 우패를 보내 진압하게 했는데, 우패의 관군이 농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평에서도 백성 위림(衞綝)이 반란을 일으켰다. 등 뒤에서 예상치 못한 반란군의 등장으로 인해 우패의 군대는 협공을 받아 전멸했고, 우패 혼자 도성으로 도망쳤다.(위림의 난)
356년, 위장군 장관은 자신의 동생 장거에게 군대를 주고 위림을 치게 하고, 사마 장요에게도 군대를 주어 위림에게 호응한 주천태수 마기, 전선 등을 공격하도록 했다. 장거는 위림의 주력군을 대파했고 장요 역시 승리하여 마기와 전선을 참수했다. 장거와 장요가 위림의 반란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돌아오자 장관 형제의 권세는 더욱 높아졌고, 급기야 왕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359년, 보국 송혼과 그의 동생 송징이 권신들인 장관 형제를 제거하고 장관의 무리들을 궁에서 축출했다.(송혼의 정변) 국왕 장현정은 송혼을 도독중외제군사, 기마대장군에 임명하여 국정을 보좌하도록 했다.
361년, 송혼이 사망하자 장현정은 송징을 영군장군으로 임명해 송혼을 대신하게 했다. 송징이 정권을 장악하고 정사를 좌지우지하자, 우사마 장옹(張邕)이 이를 시기하여 정변을 일으킨 후 송징과 송씨 가문을 멸족시켰다.(장옹의 정변) 장현정은 장옹을 중호군, 숙부 장천석을 중령군에 임명하여 함께 국정을 보좌하게 했다. 그러나 장옹은 거만하여 궁녀를 희롱했고, 붕당을 조직해 국정을 독점했다. 또, 형벌을 남발하여 꺼리낌없이 사람들을 살육해대니 전량의 백성과 관리들이 모두 그를 원망했다. 이에 장천석은 자신의 측근인 유숙 등과 장옹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361년 11월, 장천석과 장옹이 함께 입조할 때, 유숙과 조백구가 그 뒤를 밟았다. 장옹이 궁문을 지나려는 순간 유숙이 칼을 뽑아들고는 장옹을 향해 휘둘렀지만 명중하진 못했다. 뒤이어 조백구도 칼을 뽑고 장옹을 베려했으나 둘의 칼날이 장옹에게 닿지 않았다. 단번에 죽이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유숙과 조백구는 장천석을 따라 궁 안으로 도망쳤고, 죽을 위기를 넘긴 장옹은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 뒤 사병 300명에게 갑주를 입히고 궁문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이내 장천석의 반격을 받고 붙잡혔으며 장옹과 장옹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다. 국왕 장현정은 장천석을 관군대장군에 임명하고 국정을 보좌하게 하니 조정은 장천석의 손아귀에 넘어가버렸다.(장천석의 제1차 정변)
363년, 폭군 장조와 간통하고 국정을 망친 태비 마씨가 사망하자 장현정은 자신의 어머니 곽부인을 태비로 봉했다. 곽태비는 평소 장천석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들에게 위협이 될까 염려하여 장흠 등의 대신들과 장천석을 제거할 방법을 모의했다. 하지만 중간에 일이 누설되어 곽태비는 유폐되었고, 장흠 등 관련자들은 사형당했다. 장현정은 몹시 두려워하여 장천석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했으나 장천석이 사양했다. 며칠 뒤, 장천석은 유숙 등에게 명령을 내려 야밤에 군사를 이끌고 왕궁을 쳐 장현정을 살해하도록 했다. 장현정은 그날 밤 살해당했고, 장천석은 다음날 장현정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공표했다.(장천석의 제2차 정변)
장천석은 장현정을 충공(衝公)으로 추시했고, 동진의 열종 효무제는 장현정에게 경도공(敬悼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다만 방현령의 《 진서》와 사마광의 《 자치통감》과는 달리 최홍의 《 십육국춘추》에는 장현정의 시호가 충왕(衝王)이라고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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