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2:29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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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3d69><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세이부철도 로고.svg 세이부 철도
과거 모기업 파일:서일본 철도 로고.svg 서일본 철도
일본시리즈 우승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리그 우승
(23회)
1954 · 1956 · 1957 · 1958 · 1963 · 1982 · 1983 · 1985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1993
1994 · 1997 · 1998 · 2002 · 2004 · 2008 · 2018 · 2019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1982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8 · 2010 · 2011 · 2012 · 2013 · 2017 · 2018 · 2019 · 2022
시즌 문서 2013-2021 · 2022 · 2023 · 2024 월별문서
현역 선수 경력 쿠리야마 타쿠미/선수 경력 · 겐다 소스케/선수 경력 · 이마이 타츠야/선수 경력 ·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후지테레비2 로고.jpg 후지 테레비 2
주요 인물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공석 · 감독 니시구치 후미야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구단 상세 정보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틀 문서
세이부 그룹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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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3d69><colcolor=#fff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ruby(埼玉, ruby=さいたま)][ruby(西武, ruby=せいぶ)]ライオンズ
구단 법인명 ㈜세이부 라이온즈
株式会社西武ライオンズ
창단 1949년 11월 26일([age(1949-11-26)]주년)
연고지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연고지 변천 후쿠오카현 (1950~1978)
사이타마현 (1979~)
구단명 변천 니시테츠 클리퍼스 (1950)
니시테츠 라이온즈 (1951~1972)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1973~1976)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1977~1978)
세이부 라이온즈 (1979~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
홈 구장 가스가하라 구장 (1950)
헤이와다이 구장 (1951~1978)
베루나 돔 (1979[1]~)
2군 구장 CAR3219 필드 (1979~)
모기업 서일본 철도 (1949~1972)
후쿠오카 야구 주식회사 (1973~1978)
세이부 철도 (1979~)
감독 74 니시구치 후미야 (西口文也)
선수회장 5 토노사키 슈타 (外崎修太)
주장 6 겐다 소스케 (源田壮亮)
킷 스폰서 Fanatics[2]
마스코트 파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마스코트.svg
레오 & 라이나
구단기 파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백인천 (1975~1976)
송재박[3] (1975~1982)
역대
한국인 코치
정대현 (2018)[4]
홈 경기 중계 채널(CS) 파일:후지테레비2 로고.jpg
링크 파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심볼.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

일본시리즈 우승 (13회)
1956, 1957, 1958, 1982, 1983,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2004, 2008
퍼시픽 리그 우승 (23회 / 최다 우승)
1954, 1956, 1957, 1958, 1963, 1982, 1983, 1985,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7, 1998, 2002, 2004
2008, 2018, 2019
전, 후기 리그 우승 (1회)
1982 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08
플레이오프 우승[5] (2회)
1982, 2004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8
포스트시즌 진출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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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2024,#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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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bfff> 일본시리즈 1954년, 1956년, 1957년, 1958년, 1963년, 1982년, 1983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7년, 1998년, 2002년, 2004년, 2008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8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2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1982년, 2004년, 2005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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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니시테츠 시절2.2. 고난의 시기: 타이헤이요클럽-크라운라이터 시절2.3. 세이부의 인수
2.3.1. 1980년대 황금기2.3.2. 황금 시대 이후~2012년 시즌2.3.3. 모기업의 위기와 매각위기2.3.4. 2013년~2021년
2.4. 2022 시즌2.5. 2023 시즌2.6. 2024 시즌
3. 관중 수 추이4. 홈구장5. 2군 시설 및 클럽하우스6. 유니폼7. 응원8. 마스코트9. 팬덤10. FA 최다 배출 구단11. 이야깃거리12. 영구 결번13. 선수단14. 역대 선수15. 역대 감독16. 역대 성적1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모기업은 세이부 철도이다.

195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총 3차례나 일본시리즈 3연패를 차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6] 특히 80년대~90년대 라이온스는 이 기간 동안에만 퍼시픽 리그 우승 9회, 일본시리즈 우승 8회를 달성하며 요미우리의 V9 시대에 버금가는 왕조를 구축했었다. 23회 퍼시픽 리그 우승, 13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일본 야구 그 자체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다음가는 성적으로 퍼시픽 리그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제외하면 독보적인 기록이다.

한국 언론에는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세이부 라이온즈'라고 쓰지만, 현지 매체 등에서는 '세이부', '사이타마 세이부' 식으로 쓴다. 하지만 그냥 일반적으로는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저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굳이 귀찮게 사이타마까지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역사

2.1. 니시테츠 시절

파일:external/star.ap.teacup.com/1337494116.jpg
니시테츠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 우승팀으로, 1949년 창단하고 1950년 양대 리그 시행 이후 후쿠오카 헤이와다이 구장[7]을 연고지로 한 니시테츠 클리퍼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같은 후쿠오카의 센트럴 리그 구단 니시닛폰 파이리츠와 합병하여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되었다. 애초에 후쿠오카 정도의 지방 도시에 야구팀이 두 개나 있는 게 무리였으나, 당초에는 철도회사인 서일본철도와 신문사인 서일본신문(西日本新聞)의 합작으로 후쿠오카의 단일 연고 팀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센트럴 리그, 퍼시픽리그 중 어느 리그에 속할 것인가를 두고 두 회사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결국 각자 팀을 창단했고 1년 후에 니시닛폰이 니시테츠에 합병되면서 퍼시픽 리그 소속이 되었다. 1950~60년대의 강팀으로 군림하면서 1956~1958년에는 명감독 미하라 오사무, 명 투수 이나오 카즈히사와 강타자 오시타 히로시, 나카니시 후토시의 활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 3연패를 차지했다.

그 후 1963년 리그 우승을 끝으로[8]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원래 지방 사철이 모기업이라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 데다 당시 비인기 팀들이 모여 있던 퍼시픽 리그 소속에 소규모 지방 도시를 홈으로 쓰는 덕분에 관중 동원도 여의치 않아 팀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프로야구 최악의 흑역사인 검은 안개 사건으로 주전들 대부분이 줄줄이 구속→영구 제명 크리를 먹어 팀이 순식간에 약체화되었고, 그 때문에 니시테츠가 더 이상 팀을 유지할 수 없어서 1972년 구단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2.2. 고난의 시기: 타이헤이요클럽-크라운라이터 시절

파일: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jpg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9]

고난의 시기 구단가, 君こそライオンズ.[10]

이후의 사정은 현대 유니콘스 우리/서울/넥센/키움 히어로즈가 짬뽕된듯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니시테츠가 1972년 시즌을 끝으로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롯데 오리온즈 구단 오너였던 나카무라 나가요시[11]에게 구단 매각을 의뢰했는데,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자 자신이 직접 후쿠오카 베이스볼(주)라는 구단 운영법인을 만들어 팀을 인수하고 팀 운영비는 자신이 구단 경영을 맡았던 롯데 오리온즈 시절처럼 팀의 명명권을 팔아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스폰서의 변천에 따라 1973년 타이헤이요 클럽(太平洋クラブ)[12] 라이온즈, 1977년 크라운라이터(クラウンライター)[13] 라이온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라이온즈는 어찌저찌 존속하게 된다. 그러나 롯데와는 달리 라이온즈의 스폰서로 나선 기업들은 업종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야구 구단을 인수할만한 능력은 전혀 되지 않아서 이 당시의 라이온즈는 계속해서 자금난에 시달리며 키움 히어로즈 창단 이후 2년간과 거의 비슷한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바로 히가시오 오사무로, 니시테츠 말기-타이헤이요/크라운라이터 시대-세이부 최전성기를 모두 거쳤던 라이온즈 구단 역사의 산 증인 그 자체로써 라이온즈 한 팀에서만 꿋꿋이 20년간 뛰며 간판 스타이자 에이스로서 암흑기였던 팀을 지탱해 나갔다.

결국 미덥지 못한 스폰서의 쥐꼬리만 한 재정 지원으로 강팀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팀의 막장화만 가속되었다. 끝내 얼마 안되는 스폰서 자금과 나카무라의 개인 인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GG를 치고 팀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해 있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광명이 비추었으니 당시 부동산, 사철 재벌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세이부 그룹이 구단 인수에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마침내 후쿠오카의 시민들도 든든한 구단주를 얻어서 옛 영광을 다시 재현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후쿠오카의 라이온즈 팬들은 이것이 후쿠오카 야구의 영광스런 부활이 아닌, 라이온즈와 후쿠오카의 작별일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14]

2.3. 세이부의 인수

2.3.1. 1980년대 황금기

파일:세이부 라이온즈 엠블럼.svg
9회 우승을 함께한 로고[15]

1978년 말 세이부 그룹은 라이온즈 구단을 인수할 것을 표명했다. 세이부 그룹은 라이온즈 프랜차이즈를 인수하기 전에 두 차례나 야구단 스폰서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일본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나눠지기 이전에 존재했던 일본야구연맹(JBL)에 참여했던 도쿄 세네터스(東京セネタース)-츠바사군(翼軍)의 재정적 스폰서를 해줬다.[16] 당시 귀족원 의원이었던 아리마 요리야스와 세이부 그룹의 모종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후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너터스가 재건에 실패하자 1970년대에는 다이요 훼일스 요코하마 스타디움 건립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다이요의 2대 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이부는 구단 인수의 조건에 자신들이 한창 부동산 개발 중이던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로의 이전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사철인 도쿄- 사이타마 지역의 세이부 철도를 기반으로 하는 세이부 그룹에게 있어서 거의 적자가 안 발생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 스포츠단인 라이온즈를 그나마 적자가 최대한 안 나게 운영하고, 연고지 주변 지역의 관중을 끌어들어 수익을 올리려면 반드시 사철이 자리잡은 곳 근처에 스포츠단 연고지를 두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애초에 간토 도쿄- 사이타마 간사이 시가[17] 지역의 세이부가 드럽게 멀리 떨어진, 자기네 철도도 안 다니는 규슈 후쿠오카 지방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넌센스였다. 당장 훗날의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왜 해체됐는지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온다.

어쨌거나 당시 라이온즈 구단은 그런걸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연고지 이전의 조건을 내거는 기업이라도 인수하겠다고 해주면 넙죽 받아야 하는 게 당시 구단이 처한 현실이었다. 결국 팀은 세이부 그룹에 인수되어 후쿠오카를 떠나 사이타마로 이전했고, 후쿠오카의 팬들은 옛 영광의 재현은커녕 크나큰 상실감만 맛보아야 했다. 결국 후쿠오카는 1989년 서로 죽이지 않고는 못살던 예전의 라이벌 호크스가 후쿠오카 이전을 발표할 때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을 연고팀 없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야 했다.

세이부에게 인수된 뒤 인기 만화였던 밀림의 왕자 레오의 레오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레오의 일러스트는 실제로 테즈카 오사무에게 저작권료를 주고 정식으로 사용권을 승인받았다.[18] 후쿠오카에서 도쿄 근교로 이전해 오면서 일단 기존 팬층은 개척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만화 주인공을 마스코트로 해서 어린이들부터 공략하자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공략당한 어린이들이 밑에서 기술한 세이부 황금 시대를 거치면서 3, 40대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 세이부 팬층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세이부 라이온즈로 바뀐 이래,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팬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일념하에 구단주인 츠츠미 요시아키는 감독 겸 관리부장( GM 역할)이던 네모토 리쿠오(1982년부터는 관리부장 직에만 전념)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했고, 네모토는 각종 방법을 동원[19]하여 팀의 전력을 강화시켰다.[20] 결국 이러한 전력 보강 등을 이어간 끝에 1982년, 팀은 드디어 퍼시픽리그 전기리그 우승에 이어 플레이오프 에서도 후기리그 우승팀 닛폰햄 파이터즈를 격파하며 퍼시픽리그 우승을 이루고[21] 뒤이어 일본시리즈에서도 주니치 드래곤즈를 격파. 24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룩하며 그 결실을 이루어냈다. 그 뒤로부터 1992년까지 10여년의 기간, 그러니까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동안은 가히 세이부의 황금 시대, 왕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세이부는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키스톤과 아키야마 코지- 키요하라 카즈히로-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의 일명 AKD 클린업 트리오, 모리의 계승자 이토 쓰토무가 버티는 백스톱까지 갖춘 철벽 야수진을 갖췄고, 투수진에는 와타나베 히사노부- 쿠도 키미야스 원투펀치에 '오리엔탈 특급' 곽태원(궈타이위안, 카쿠 타이겐)가 선발진에 버티고 있고 구원진에는 카토리 요시타카. 시오자키 테츠야 등이 건재했다. 이 시기 세이부는 V9 시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버금가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강 전력의 팀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명장 모리 마사아키의 지도 아래 이 기간만 리그 우승 9회, 일본시리즈 우승 8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리그 우승으로 일본시리즈 진출 후 패한 경우는 한신 타이거즈 양대 리그제 실시 이후 두 번 한 일본시리즈 우승 중 하나인 1985년... 리그 우승을 못한 경우는 1984년의 한큐 브레이브스에 1위 자리를 내준 경우와[22] 1989년의 긴테츠 버팔로즈에게 리그 3번째 우승을 헌납한 경우.[23]

그렇게 해서 세이부(西武) 라이온즈로 30년 가까이 이어졌으나, 인기도 떨어지고 모기업 세이부 철도의 상태가 영 좋지 않게 되자 2008년 지역 이미지 부각을 위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되었다. 도쿄에 미련이 남아 있던 세이부 그룹으로서는 끝까지 사이타마라는 명칭의 사용을 거부해왔으나[24] 결국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팬베이스가 자신들이 원하던 도쿄 중심부가 아닌 사이타마의 베드타운 지역에 형성된 탓에 결국은 고집을 꺾었다. 오죽 사이타마라는 명칭을 쓰기 싫었으면 세이부(西武)라는 명칭은 과거 전국시대의 도쿄와 그 주변 지역을 의미하는 무사시노(「武」蔵野)의 서부지역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주장하며[25] 본거지와 팬베이스가 도쿄의 서부 지역이니 세이부라는 명칭도 지역명칭이라는 해석을 굳이 강조하면서까지 사이타마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면서 버텼다.[26]

2.3.2. 황금 시대 이후~2012년 시즌

1992년 이후 세이부 황금 시대 주역들이 노쇠하거나 타 팀으로 트레이드[27] 및 주축 선수들의 FA(자유계약선수) 선언[28]으로 1980년대의 황금기는 끝난다...라고는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도 세이부는 여전히 파리그의 강호였고,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이룬 1982년부터 2007년[29]까지 B클래스로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문제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 해서 그렇지. 모리 마사아키의 뒤를 이어 팀을 맡은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이 지휘한 1997~1998년에는 2년 연속으로 파리그 우승을 하였지만, 당시 일본시리즈에서는 각각 노무라 카츠야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머신건 타선'을 앞세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발목을 잡혔다. 그 이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제4대 괴동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명 유격수 마쓰이 카즈오, 대형 슬러거 알렉스 카브레라 등이 투타의 기둥으로 활약하면서 이하라 하루키 감독 지휘 하에서 2002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오랜 기간의 감독 수업을 거친 이토 츠토무가 감독으로 취임한 2004년에는 정규시즌에 2위를 하였으나 플레이오프를 통해 닛폰햄과 다이에를 차례대로 꺾고 리그 우승을 하고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992년 이후 12년 만에 다시 일본시리즈를 우승하게 된다.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이 지휘한 2008년 시즌에는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대결하여 4승 3패를 기록,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신인 니시테츠 시절을 포함하여 1950년 양대리그제 시행 후 현재까지 리그 21회, 일본시리즈 13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엠블렘[30], 홈 덕아웃 위치(1루에서 3루로), 유니폼을 변경하고 출발한 원정 유니폼이 희대의 좆망 유니폼으로 바뀐 뒤에는 2009년에는 B클래스를 기록하였고 2010년에는 퍼시픽리그 2위를 기록했지만 PS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패배하며 탈락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2011년과 2012년에서 UTU을 하다가 각각 2011 클라이맥스 2스테이지에서, 2012 클라이맥스 1스테이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파일:external/www.seibulions.jp/ph_illust01.jpg
애니메이션 아노하나의 배경이 사이타마라서 정식으로 콜라보하여 이런 이미지도 나왔다.

2.3.3. 모기업의 위기와 매각위기

라이온즈는 세이부 그룹에 매각된 이후 산하의 주요 핵심 회사이자 세이부 그룹의 수장 츠츠미 요시아키가 사장으로 있으면서 그룹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부동산 회사 코쿠도(コクド)가 운영을 맡았으나, 버블 붕괴의 여파로 코쿠도와 함께 세이부 그룹까지 경영 위기에 빠지게 되면서 그 여파로 세이부 라이온즈 역시 이전과 달리 자금 여유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세이부는 2004년 세이부 돔과 2군 구단의 명명권을 인보이스에 매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였다. 2004년 킨테츠-오릭스 구단 합병으로 인한 프로야구 재편 논의를 전후해 세이부 라이온즈도 치바 롯데 마린즈, 닛폰햄 파이터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합병을 논의하였으나 닛폰햄은 삿포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합병에서 발을 뺐고 롯데와 다이에도 세이부가 아닌 서로 간의 양자 합병을 모색하게 되면서 세이부의 합병 시도는 무산되었다.[31]

이후 세이부 철도의 뇌물 공여 및 유가증권 허위 기재 등 비리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결국 상장폐지까지 되자 세이부 그룹에서는 구단 매각 방침을 세웠고 킨테츠 인수, 신구단 창단 등에서 연달아 물을 먹은 라이브도어에서 적극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히면서 순조롭게 매각 협상이 진행되나 싶었지만 200억~250억에 이르는 구단 인수 비용과 세이부 돔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인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세이부 그룹에서는 구단 매각을 포기하게 되었고, 라이온즈는 2006년 코쿠도를 흡수합병한 프린스 호텔을 거쳐 최종적으로 2009년 세이부 철도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2.3.4. 2013년~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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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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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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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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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중 수 추이

<rowcolor=#ffffff> 연도별 총 관중 일일 평균
2009년 1,515,045명 21,042명
2010년 1,591,303명 22,101명
2011년 1,591,651명 22,106명
2012년 1,526,028명 21,195명
2013년 1,600,841명 22,234명
2014년 1,498,365명 20,811명
2015년 1,616,827명 22,456명
2016년 1,618,194명 22,791명
2017년 1,673,219명 23,239명
2018년 1,763,174명 24,833명
2019년 1,821,519명 25,299명
2020년[32] 300,120명 5,002명
2021년[33] 620,346명 8,737명
2022년 1,212,233명 16,837명
2023년 1,422,853명 20,040명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관중 수가 적은 구단 중 하나로 롯데, 라쿠텐과 꼴찌를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단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는 홈타운이 사이타마라는 점이 꼽힌다. 사이타마는 원래 도쿄의 베드타운으로 발달한 도시로,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이 지방 상경민으로 도쿄에 직장을 가지고 사이타마에 집을 사서 도쿄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여기 사람들은 놀 때도 이케부쿠로로 가서 놀지 사이타마에서는 안 논다. 다들 도쿄의 번화가로 가서 일부터 놀이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사이타마에서는 잠만 자니 아무것도 없다고 다사이타마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 당연히 사이타마 거주민들은 사이타마에는 별로 애정이 없으니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고향 팀을 응원하거나, 도쿄 팀이자 전국구 팀인 교진을 응원하는 것.

80년대에 이주해 왔으므로 그때부터 사이타마에 지역 밀착 마케팅을 진행했으면 80년대생들이 성인이 된 2010년대쯤부터는 성과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세이부 구단 자체도 사이타마에 별 애착이 없었다. 세이부가 서부 무사시노의 약자라 우리의 팬베이스는 도쿄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을 정도로 사이타마를 등한시했고 이벤트나 마케팅 자체를 잘 안 한다. 모기업인 세이부 철도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어, 허투루 쓸 돈이 없기도 해서 마케팅조차 잘 안 했으니 시민들이 좋아해줄 리가.

또한 홈구장인 베루나 돔은 관람 여건이 별로 좋지 않은 구장이라 보러 가고 싶지 않은 구장이라는 점도 있다.

두 번째로는 재미없는 야구를 하는 팀이라는 점. 홈 구장도 중립구장이라 투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무난무난한 야구를 해서 팀 컬러도 무색무취한데, 프랜차이즈 스타도 없다. 정확히는 있어도 FA되면 다 미국이든 교진이든 팀을 나가버리니 팬들이 정 붙이고 응원할 만한 구심점이 될 선수가 없다. 그렇다고 카프처럼 아예 빡세게 허리띠를 졸라매서 가난하지만 젊은 친구들 이미지도 아닌, 적당한 준척급은 몇 명 또 잡는다.

세 번째 이유로는 이 지역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때문에 축구 인기가 굉장한 곳이다. 우라와는 투자도 많이 받고 성적도 좋기 때문에 팬덤이 아예 정착되어 버렸고 조금 있던 야구팬들도 대부분 점점 우라와로 넘어가는 추세여서 라이온즈의 인기가 있을 수가 없는 구조이다. 게다가 오미야 아르디자도 성적이 좋진 않지만 역사가 깊은 팀이기 때문에 인기가 나쁜 편은 아니다. 라이온즈보다 많으면 많지 절대로 적은 편은 아니다.

성적 역시 80년대 세이부 황금기 시절에는 대단했지만 그 이후로는 별볼일이 없다. 잘 나갈 때는 가끔씩 리그 우승도 하고 뜬금없이 십수년에 한 번 정도 잊어버릴만 하면 일본시리즈도 먹는데 압도적인 강팀은 아니라 B클래스로 떨어지기도 한다. 잘해도 최고는 못 되고, 못해도 꼴찌는 아닌 정도의 무난무난한 시즌을 반복중이다. 엄청나게 잘하면 그 압도적인 강함에 반한 팬이 생기고, 엄청나게 못해버리면 세리그의 베이스타즈나 옆 나라의 한화 이글스, 꼴데라는 별명을 지닌 롯데 자이언츠처럼 놀림감이 되며 컬트적인 팬이 생기는데, 정말 이도저도 아닌 것.

10년간 스토리도, 스타도 없는 팀이다. 단순히 구장이 접근성이 별로라 보러 가는 사람이 적은 게 아니라 경기의 시청률조차 낮다. 여튼 그래서 인기가 많이 없는 구단. 비슷한 처지인 라쿠텐은 그냥 도호쿠 지방 인구수 자체가 적어서 어쩔 수 없는 경향이 있고(대신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봐 주니까 시청률은 관중 수에 비해서는 약간 낫다), 롯데는 구장 시설 개보수 및 마케팅, 스타선수 영입과 발굴에 적극적인 편인데, 세이부는 개선의지도 별로 없는 팀이다. 애초에 그룹 자체에서 구단을 매각하고 싶어하는데 조건이 안 맞아 못 하는 것에 가까운지라 선수들도 별로 팀에 남고 싶어하질 않는다. 당장 팬들이 보고 좋아해줘야 할 선수들마저 팀에 애정이 없고 FA일수 채워서 나갈 생각만 하는데 인기가 있을 수가 없고 그렇게 그냥 인기 없는 채로 적당히 시즌을 때워가는 중인 팀. 그나마 2010년대 들어 뒤늦게나마 사이타마 지역 밀착 마케팅을 시작해 사이타마 현민들의 마음을 얻어가고 있기는 하다.

현재 팬덤은 사이타마에서 태어나 사이타마가 고향이면서 80년대 세이부 황금기를 함께한, 70년대 후반~80년대생 정도의 40대와 00년대 전국구 스타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 마쓰이 카즈오로 유입된 약간의 90년대생, 2010년대 들어 사이타마 지역 밀착 마케팅을 시작한 이후로 팬이 된 어린이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4. 홈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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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시즌 홈 경기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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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3d69> 베루나 돔 70경기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2경기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1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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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테츠로부터 구단을 인수한 후 베루나 돔을 홈구장으로 쓰고있다. 세이부 연선과 유원지에 있어 구장에 올 때 자차 이동이 아니라면 세이부 철도 이용이 강제되는 구장이다. 문제는 세이부 철도는 오미야 쪽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34] 그래서 주중과 주말 관중 편차가 크다.

그 외에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제2 홈구장이다. 여기선 1년에 3경기 정도 치른다.

여담으로 과거에 나가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매해 1~2경기 열렸으나 2008년까지만 개최하고 이후에는 경기가 배정되지 않았다.

5. 2군 시설 및 클럽하우스

세이부 제2구장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한때 공단에 있는 컨테이너 기숙사나 군부대의 BEQ처럼 생겼었다. 열악했던 세이부의 선수 기숙사 현지에서는 도호쿠 대지진 등으로 집을 통째로 날린 이재민들을 수용하는 가설 주택이라고 까였었다. 사진에는 안 나와 있지만 세이부 돔 안에 있는 1군 라커룸도 열악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한 때 구리기로 유명했던 요코하마 스타디움만 하더라도 DeNA가 구단을 인수한 후로 적극적인 투자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개수가 이루어져 지금은 메이저리그가 부럽지 않은 클럽하우스가 됐는데 이 팀의 클럽하우스는 팬들로부터 "만화 가게냐"라면서 까였을 정도.

츠츠미 일가가 그룹 총수 자리에서 야구단에 아낌없이 투자하던 80년대만 하더라도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12개 구단 중에서 손꼽히는 시설이었으나 츠츠미 일가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로는 시설이 낡아가는데도 그냥 방치하는 바람에 현재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중 열악한 쪽으로 선두를 다투는 기숙사, 훈련 시설이 되어버렸다.[35] 경영 주체가 바뀐 이후로 모기업인 세이부 측에서 야구단을 짐짝으로 보고 있는 시선이 많아지다 보니[36] 제대로 된 개/보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홈구장인 세이부 돔의 개/보수에도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키시 타카유키의 FA 이적, 세이부 선수단의 집단 성명 등이 이어지자 그제서야 공조 시설 확충 등의 시설 개선을 하였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종료 이후 세이부 돔과 2군 시설, 기숙사 시설 리모델링에 180억 엔을 투자해 2021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다. 2019년 7월 현재 스토어 샵, 실내 연습장, 기숙사가 최신 시설로 완비되어 있는 상태. 이젠 더 이상 컨테이너가 아니다. 기사+탐방 동영상

6.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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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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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스코트

파일:seibulions_m.jpg

예전에 쓰던 로고는 밀림의 왕자 레오의 레오를 로고 겸 마스코트로 사용했다. 지금은 마스코트만 레오와 라이나로 사용 중.

이에 대해서 나오는 이야기 중 유명한 것이 데즈카 오사무가 자신은 마스코트로 판쟈를 그렸는데, 세이부 라이온즈 측에서 멋대로 레오라고 주장한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일본위키백과에서도 언급은 하지만 출처제시가 안되는 부분이고, 세이부는 레오라고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글대제 출판본을 기준으로 보면 미묘하게 다르게 생겼다 같은 이야기를 제외하고 보면, 판쟈와 레오의 외모 차이를 두는 부분은 귀 끝의 검은 부분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물론 판쟈의 귀끝도 검게 그리는 예가 없지는 않지만[37], 전집을 포함해서 둘의 차이를 둘 때는 판쟈는 그야말로 순백으로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마스코트는 판쟈보다는 레오의 성체 버전일 가능성이 높다...기 보다는 판쟈라는 근거가 저 카더라와 느낌적 느낌밖에 없다. 사실 이런 것 다 필요없이 세이부 측이 레오라고 사용하고 있고, 이름 들어가는 부분은 다 레오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마스코트는 레오가 맞다.

프로야구 초창기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점퍼의 마스코트가 저 마스코트를 약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수준에서 모방한 것이었다. 어느 어린이 회원은 삼성 라이온즈 점퍼를 입고 민속촌에 갔다가 일본 관광객들이 '세이부 라이온즈네' 하는 바람에 약간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팀명을 바꾸면서 사이타마현 캐릭터인 코바톤을 비공식 마스코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레오는 무려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공중제비를 30초에 31개를 해서 30초 안에 가장 많은 공중제비를 돈 마스코트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9. 팬덤





팀명에 '사이타마'라는 지역명이 들어가 있으나 정작 사이타마 시즈오카와 함께 '일본 축구의 성지' 라고 불릴 정도로 축구의 인기가 야구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이라 세이부는 비인기 구단에 속했다.[38] 실제로도 사이타마 현에서 세이부는 과거 현대 유니콘스보다는 낫고 현재 kt wiz보다 못한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다.[39][40][41]

그래도 2010년대 들어서는 지역 밀착 마케팅과 사이타마 배경의 만화와의 콜라보[42]나 2008년부터 시작한 오미야구장 홈경기, 2017~2018 시즌의 호성적으로 인해 세이부 구단의 홍보물이 오미야역 근처에도 걸리는 등 사이타마현 동부지역에서도 인기가 늘어나는 중. #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2018시즌에는 구름 관중이 모여들었다. 이후 2019 시즌에도 관중이 더 늘어 총관중 180만·평관 2만 5천 시대를 열었고 2005 시즌 이래 최다 관중 수를 갱신했다. 그러나 2020시즌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경기 수가 120경기로 단축된 데다 유관중 경기도 그 절반인 60경기로 한정되어 300,120명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2021 시즌은 작년과 다르게 8월 18일 기준으로 401,197명, 관중 수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가장 먼저 40만 관중에 진입한 것은 덤이다.

유니폼 교체 이후 응원문화가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 1루 외야 홈 시절엔 작은 배트를 사용한 비교적 전통적 응원이었는데, 서포터즈들은 배트를 놓고 손뼉응원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 손으로 드는 작은 깃발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거기다 게이트기도 심심찮게 보여 축구장이 다 되어가고 있다. 누가 응원으로 경쟁하는 팀 아니랄까 봐 롯데처럼 점프 응원도 즐겨 한다. 그러나 응원콜을 좋아해서 응원가를 안 부르는 타석도 많은 롯데와는 다르게 응원가를 많이 부르며 선발 라인업 발표 직후에 모든 선수의 응원가를 한번씩 불러주는 것도 여전히 하고 있다.[43]

2013년에 비교적 가까운 치바 롯데 마린즈와 라이벌전을 선포하고 양 측 홈에서 3연전을 아노하나 vs 오레이모[44] '사이타마 vs 치바 라이벌 시리즈'로 각 한번씩 치렀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도호쿠행 티켓을 놓고 붙게 되었다.그리고 3위였던 롯데에게 하극상당했다.[45]

특이하게 본거지인 사이타마현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밀리지만 유일하게 가장 인기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뜬금없이 본거지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간사이의 시가현이다. 그 이유는 세이부 그룹의 창립자인 츠츠미 야스지로가 시가현 출신이기도 하고, 지금도 세이부 계열의 오미 철도가 영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10. FA 최다 배출 구단

2023년 종료 시점에서 FA 제도로 21명의 선수를 유출하며 일본프로야구에 1993년 FA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많은 선수를 유출한 구단이기도 하다. 아래 명단을 보면 팀의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음을 알수 있다.
이적년도 선수명 이적구단
1994年 쿠도 키미야스 다이에
1994年 이시게 히로미치 다이에
1996年 키요하라 카즈히로 요미우리
2003年 마쓰이 가즈오 MLB
2005年 토요타 키요시 요미우리
2007年 와다 카즈히로 주니치
2010年 도이 요시히로 MLB[46]
2010年 호소카와 토오루 소프트뱅크
2011年 호아시 카즈유키 소프트뱅크
2011年 쉬밍치에(허명걸) 오릭스
2012年 나카지마 히로유키 MLB
2013年 와쿠이 히데아키 롯데
2013年 카타오카 야스유키 요미우리
2015年 와키야 료타[47] 요미우리
2016年 키시 타카유키 라쿠텐
2017年 노가미 료마 요미우리
2018年 아사무라 히데토 라쿠텐
2018年 스미타니 긴지로[48] 요미우리
2019年 아키야마 쇼고 MLB
2022年 모리 토모야 오릭스
2023年 야마카와 호타카 소프트뱅크
2022년 11월 16일 주전 포수 모리 토모야가 오릭스로 이적하면서 세이부에서 FA로 팀을 떠난 20번째 선수가 됐다. 아키야마 쇼고의 이적 후 3년 만의 사례.

선수들의 계속된 유출은 노후화된 시설, 돔구장 전환 이후 선수들에게 쾌적하지 못한 구장 환경과 구단의 좋지 않은 경영 사정이 맞물린 결과다. KBO 리그 두산 베어스도 FA유출이 많은데 이쪽은 그냥 주전 선수들이 나잇대가 비슷비슷해서 좋은 선수들이 비슷한 시기에 FA로 많이 풀리다보니 원팀에서 다 잡을 수가 없어서 흩어진 것 뿐이고, 막상 떠난 선수들도 조건만 맞춰 줬으면 남았을 거라며 두산을 꽤 그리워하고 실제로 홍성흔이나 양의지 등 조건을 맞춰주자 돌아온 선수들도 있는데, 세이부는 그딴 것도 없다. 오히려 두산은 선수끼리는 끈끈한데 돈을 못 맞춰줘서 뺏겨버리는 카프에 가깝지 세이부는 애초에 동시다발적으로 FA가 많이 풀리지도 않으며 선수들도 구단에 별 애정이 없다.

그냥 구장이 놀 거리 없는 도코로자와 구석에 박혀있고, 강가라서 벌레 많고 습한데다 어설프게 뚜껑을 씌워 놔서 매우 습해서 선수들이 일하는 환경도 최악이고 기숙사나 트레이닝 시설도 낙후되었는데, 상술했듯 팀도 별로 인기가 없다. 그래도 돈이라도 많이 주면 남을 텐데 모그룹 세이부 철도가 경영난을 겪고 있어서 연봉도 매우 짜게 준다. 매년 연봉협상 때마다 한푼이라도 더 깎겠다고 윽박지르니 선수들도 정나미가 떨어져서 FA가 되는 족족 나가버리는 것.

일반 회사도 회사마다 직장문화, 분위기가 다르듯 프로야구팀도 구단마다 문화와 분위기가 다른데, 교진 같은 자팀에 프라이드가 있는 구단은 FA로 나가면 배신자 취급을 하는 분위기고 실제로 나가는 선수를 기사로 때리기도 하는지라 FA는 정말 꿈도 안 꾸는 분위기인데, 세이부는 이렇게 선배들부터 빨리 등록일수 채우고 개인기록 챙겨서 팀을 나갈 생각만 하니 덕아웃이 그리 끈끈하지도 않고, 후배들도 그걸 보고 배워서 그냥 FA되면 탈출하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린 팀.

11. 이야깃거리

  • 한국 국적 선수와는 인연이 별로 없지만 감독과 코치진은 물론 외국인 선수까지도 인연이 많다. 무려 세이부의 감독 출신인 타나베 노리오는 크게 스텝다운하여 2017년 한화의 타격코치를 맡았고 (김성근 당시 감독의 입김이 크다는 게 중론), 역시 감독 출신인 이토 츠토무도 2012년 두산의 1군 수석코치를 맡았었다. 외국인 선수로서는 악명높은 브라이언 오그레디 버치 스미스가 이 팀에서 뛰다가 2023년 한화의 외국인 투수로 와서 전설을 써내렸고, 다음 해 2024년엔 데이비드 맥키넌 디트릭 엔스가 삼성과 LG의 외국인 선수로 낙점되었다.
  • KBO 리그 두산 베어스과 행방이 비슷하다. 모기업이 가난해서 FA로 선수들을 자주 유출시키는 것, 전성기 때의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시켰다는 점 등이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두산은 KBO 대표 인기 구단 중 하나지만, 세이부는 NPB 대표 비인기 구단이라는 것.
  • 공식이 아닌 팬 사이트긴 하지만, 러브 라이브!를 패러디한 러브세이부 사이트가 있었다. 현재는 닫힌 상태지만 그 전의 흔적들을 보면 오피셜 사이트의 업데이트에 맞춰서 계속 갱신을 이어온데다 뉴스 페이지나 스토리 패러디, 맴버 소개, 일러스트 패러디 등도 상당한 고퀼에 완성도가 높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었다. 게다가 2020년에도 아마추어 선수 대상 입단 모집을 기깔나게 패러디했었다... # # # #
  • 적이 많은 편이다. 가까운 치바 롯데는 치바 쪽이 저격 응원가를 만들 정도로 라이벌리고[6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는 치바보다도 길고 질긴 악연 그 자체. 니시테츠와 난카이 시절부터 일본시리즈를 놓고 오래 대결해 왔는 데다 다이에 인수 이후 후쿠오카 야구의 적통이라는 자리까지 더하면서 끊고 싶어도 끊기 어려워졌다. 도호쿠 라쿠텐도 FA 계약으로 세이부 선수들을 털어가다시피 해 적대시하고 있다.
  • 최후의 9인 선발제 일본시리즈 우승 구단이다. 1986년 히로시마를 꺾고 우승할 당시 전년도인 1985년부터 시리즈에 도입된 지명타자 제도를 격년제로 채용하기로 했기에 이 해 시리즈는 지명타자가 없었던 것. 이듬해부터 각 리그의 룰을 서로의 홈구장 경기에서 채용하기로 하면서 현재의 제도가 확립되었다.
  • 역사적으로 드래프트에서 제비를 잘 뽑는 팀이기도 하다.[62] 특히 일본프로야구의 판도를 바꿀만한 초대형 신인[63]이 나오는 해의 경우 유난히 제비를 잘 뽑아서 팀 전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키요하라 카즈히로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있고[64] 2009년에도 6팀의 경쟁을 뚫고 코시엔 여름 대회에서 154km/h를 뿌린 좌완 투수인 키쿠치 유세이를 뽑아내는 강운을 과시했다. 2010년에도 또다기 6구단 경합이 벌어진 와세다 대학의 마무리 투수였던 오오이시 타츠야를 한방에 뽑아서 2년 연속 6개 구단 경합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65] 그리고 이 드래프트 1픽 운은 2010년대 들어서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가져가려고 할 찰나 2021년 4팀의 경쟁을 뚫고 대졸 좌완 대어 투수 스미다 치히로를 교섭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2년 뒤인 2023년 3팀의 경쟁을 뚫고 그해 대졸 좌완 최대어 타케우치 나츠키까지 교섭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2024년 니시구치 후미야 감독이 제비뽑기에서 무려 세이부 역사상 최초로 제비뽑기 2연패를 해버렸다.
  • 노모 히데오가 나왔던 1989년[66] 다르빗슈 유가 나왔던 2004년[67]의 경우에는 아예 지명 자체를 하지 않아서 제비뽑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명을 안 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뽑겠다고 달려들면 사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제비뽑기 운이 좋은 팀이다.
  • 1980년대 황금 시대에 보여줬던 퍼시픽 리그의 끝판왕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교류전 성적은 신통치 않다. 2017년 현재 교류전 통산 승률은 5할을 살짝넘는 정도로 12개 구단 중 정확하게 중간인 6위이고, 교류전 우승은 한 차례도 없다. 저 정도면 본전치기는 한 게 아니냐고 생각도 할 수 있겠으나 2020년대 이전까진 교류전이 퍼시픽 리그가 계속해서 센트럴 리그를 누르는 양상으로 전개가 되어온지라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

    실제로 퍼시픽 리그 내로만 따지면 리그 내 4위에 해당하고 2~3위권인 롯데와 닛폰햄과는 통산 승 수에서 10승 정도 차이가 나고 5위인 오릭스와도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성적이라 교류전에서 별로 재미를 못 봤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이후 2023년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첫 교류전 우승을 달성하며 퍼시픽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교류전 우승이 없는 팀이 되고 말았다.
  • 왠지 2000년대 말부터 몇 년 간은 ' 중간계투 불을 지르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니코니코 동화 같은 곳에서는 '세이부의 중간계투'라는 전용 태그가 따로 있으며, 2군에서는 통하는데 1군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볼질에 불만 지르는 중간계투의 모습을 풍자한 '우리들'(俺達, 오레타치)라는 네타가 정리되기도 했다. 오레타치 그래도 이 네타가 처음 등장한 2010년대 초반 즈음에는 와쿠이, 키시, 마키타 등 우수한 선발들이 있기라도 했는데 산적타선으로 다시 강팀으로 올라선 2018~19년엔 옛날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를 연상시키는 타고투저의 팀이 되어서... 중간계투뿐만 아니라 선발진도 기쿠치 유세이가 메이저로 간 2019년에는 폭망하면서 2020년에는 12구단 중 유일하게 개막 투수이자 1선발로 외국인 선수(잭 닐)을 내세웠다.[68] 2020년대에 들어서는 세이부가 오히려 산적 타선이 FA 이적으로 해체되고 투수 육성에 성공하며 투고타저 팀이 되어버린 바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중간계투가 불을 지르는 팀의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다.
  • 다만 2019년의 잭 닐이 특이한 거지 용병 선발, 특히 대만인이 아닌 미국, 중남미 용병 선발은 죄다 망하기로 유명하다. 용병 선발 중 10승을 넘긴 미국, 중남미 출신 선수는 창단 이래 잭 닐이랑 디트릭 엔스가 유일하다! 당장 최근 세이부의 용병 선발들은 2020년의 션 놀린, 2018년의 파비오 카스티요[69], 2017년의 알렉시스 칸델라리오, 스테판 파이프, 2016년의 앤디 밴 헤켄, 2015년의 웨이드 르블랑, 궈쥔린[70] 등 실패 사례만 수두룩했다.
  • 유달리 보복성, 고의성 빈볼 및 힛 바이 피치가 많은 팀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빈볼 공세는 후쿠오카 시절 말기~세이부 인수 초창기 팀의 에이스였던 히가시오 오사무의 전매특허였고, 히가시오가 1990년대 중~후반 7년동안 감독을 맡으면서 투수들을 육성한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 그 영향이 이러한 빈볼 투구를 비신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대 팀의 심리를 흔들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인식하는 배터리. 히가시오 오사무와 그의 동기 내지 후배들이 스태프 및 감독을 맡으면서 "몸쪽 공을 공략 못 하거나 못 피하고 맞는 쪽이 기술이 없는 것"의 마인드가 있으며, 이후 팀에 입단하는 후배 투수들도 이러한 마인드를 이어받아 자연스레 빈볼을 자주 던진다. 그냥 인상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수치상으로도 드러나는데 실제로 2010년대에 12개 구단 중 팀 최다 힛 바이 피치 1위를 7번이나 기록했으며(2011~2016, 2018, 2019) 그 중에서도 몇 번은 2위와 상당한 차이가 나는 1위이다. 2020년도는 교진에게 1위를 빼았겼지만 2021년에 다시 소뱅과 공동 1위, 2022년에도 교진보다는 하나 적지만 파리그 안에서는 1위가 사실상 확실한 상황이었으나 기어이 빈볼 하나를 더 기록하며 교진과 함께 힛 바이 피치 공동 1위가 되었다. 당연히 타 팀에선 이런 고의성 짙은 힛 바이 피치 성향을 곱게 봐줄리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한 벤치 클리어링이 자주 발생한다.
  • 우승이 귀한 요코하마의 위안거리로 세이부가 두들겨맞는 거 다시 보기라는 말이 있다. 1998년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를 꺾은 게 마지막 일본 제패였었기 때문.[71] 또한 퍼시픽 리그에서는 유이하게[72] 센트럴리그 6팀과 최소 한 번씩[73] 일본시리즈에서 맞붙어본 적이 있는 팀이기도 하다. 일단 요코하마가 70여년 간 리그 우승을 2번밖에 못했다 보니 기록 달성이 상당히 빡세다.
  • 2017년 기준으로 과거 9년간 홈 구장에서 6번이나 우승을 허용한 전적이 있다. 특정 구장에서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를 치를 확률은 크게 잡아야 1/6인데 이것 또한 엄청난 확률이다. 정작 2018년과 2019년에 우승할 땐 원정 경기에서 우승이 확정되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2년 연속으로 소뱅에게 일본시리즈 진출을 허용하는 굴욕을 안았다.
  • 한신 팬들에게는 첫 일본시리즈 제패이자 2022년까진 유일한 시리즈 제패를 달성한 성지다 보니 교류전에서 베루나 돔 원정 경기가 잡히면 세이부 돔이 한신 팬들로 꽉꽉 찰 정도로 농담삼아 코시엔, 쿄세라돔에 이은 제3홈구장 취급받는 중. 2013년 교류전 롯코오로시 2018년 교류전에서도 1루를 가득 메운 한신 팬들이 롯코오로시를 합창하였다. 참고로 베루나 돔은 칸사이 주요 도시에서도 기본 4시간은 걸릴 정도로 심각하게 접근성이 나쁜데도 저렇게 많이 찾아오는 것.[74]
  • 묘하게 8로 끝나는 해에는 우승 아니면 팀 역사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8로 끝나는 해인 1958년에는 이나오 카즈히사를 앞세운 기적의 리버스 스윕으로 일본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1968년에는 5위에 그쳤는데 그 다음 해에 검은 안개 사건이 터지는 등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된 해였다. 하지만 이 해 드래프트에서 히가시오 오사무를 지명하며 훗날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유망주를 발굴하기도 하였다. 1978년은 세이부 그룹이 구단을 인수해서 후쿠오카에서 사이타마로 이전하고 세이부 라이온즈로서 출범한 해이다. 세이부가 구단을 인수한 이후로는 매년 무슨 일이 있어도 8로 끝나는 해에는 최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에는 주니치 드래곤즈를 4승1패로 꺾고 1958년 이후 30년 만에 일본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고, 1998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해에는 머신건 타선을 앞세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무릎을 꿇었다. 2008년에는 그 직전해 25년 연속 A클래스의 기록이 중단되고 B클래스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성적으로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탈환했다. 그 후 10년 동안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가 2018년에도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선두로 나서 10년 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한편 현재의 구단 역사와는 관련 없는 얘기기는 하지만, 1948년엔 옛 모기업이었던 서일본 철도 소속 사회인야구팀이 도시대항야구대회[75]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 구단기가 존재하지만 구단이나 응원단 측은 해당 구단기를 사용하기 꺼리고 남색 바탕에 신 로고를 넣은 깃발을 밀고 있다. 위에서 보면 알듯 장기 사용권이 만료되어 기존 구단기를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저작권 소송이 걸려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줘야 하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 리그 깃발 옆에 계양하는 건 비영리인 데다 자주 비춰주지도 않아서 문제 없이 쓰고 있으나, 그곳을 빼면 구단기는 거의 안 보인다. 같은 이유로 코나미에서 제작한 야구 게임들은 수출판에서 공식 구단기가 아닌 새 구단기를 썼으나 프로야구 스피리츠 2021에서 깼다. 그러나 2023년 다시 장기 사용권을 취득하면서 복귀 여지가 생겼다.
  • 2023년 8월 26일 마스코트인 레오가 기네스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도전 종목은 '30초간 마스코트가 뒤돌기를 한 최다 횟수'로 총 31회 뒤돌기를 하였다. # 이를 기념하여 각종 굿즈를 판매하기도 했다.
  • 수도권 구단 중에 흔치 않게 ' 분카 방송 라이온즈 나이터'라는 라디오 편파 중계방송을 갖고 있다. 라이온즈가 세이부에 인수되어 사이타마현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1979년 당시 분카 방송은 함께 NRN 네트워크를 구성한 닛폰 방송을 배려하기 위해 평일에 프로야구 중계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를 본 세이부 라이온즈 측에서 분카 방송 측에 접근하여 1시간 짜리 라이온즈 관련 정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고, 이것이 1985년부터 편파 중계로 발전하게 된 것.

12. 영구 결번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43d69> 파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엠블럼.svg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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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24
<rowcolor=#ffffff> 이나오 카즈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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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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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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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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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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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미야자키
파일:일본 국기.svg
(1950)
미하라
파일:일본 국기.svg
(1951~1959)
카와사키
파일:일본 국기.svg
(1960~1961)
나카니시
파일:일본 국기.svg
(1962~1969)
이나오
파일:일본 국기.svg
(1970~1974)
<rowcolor=#fff> 6대 7대 8대 9대 10대
에토
파일:일본 국기.svg
(1975)
듀로셔
파일:미국 국기.svg
(1976)
키토
파일:일본 국기.svg
(1976~1977)
네모토 파일:일본 국기.svg
(1978~1981)
히로오카
파일:일본 국기.svg
(1982~1985)
<rowcolor=#fff>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모리
파일:일본 국기.svg
(1986~1994)
히가시오
파일:일본 국기.svg
(1995~2001)
이하라
파일:일본 국기.svg
(2002~2003)
이토
파일:일본 국기.svg
(2004~2007)
와타나베
파일:일본 국기.svg
(2008~2013)
<rowcolor=#fff> 16대 17대 18대 19대
이하라
파일:일본 국기.svg
(2014)
타나베
파일:일본 국기.svg
(2014~2016)
츠지
파일:일본 국기.svg
(2017~2022)
마츠이
파일:일본 국기.svg
(2023~2024)
감독 대행
와타나베
파일:일본 국기.svg
(2024)
<rowcolor=#fff> 20대 21대 22대 23대 24대
니시구치
파일:일본 국기.svg
(2025~)
}}}}}}}}}}}}}}} ||


12대 감독인 히가시오 오사무(1995~2001)부터 현임 감독인 20대 감독 니시구치 후미야(2025~)까지 계속 세이부 OB만 감독을 맡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순수혈통주의와 유사한 면이다.

16. 역대 성적

­ 리그 우승[76]
­ 2위
­ 3위
B클래스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 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0 5위/7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5위 니시테츠 클리퍼스 120 51 67 2 .432
1951 2위/7팀 2위 니시테츠 라이온즈 105 53 42 10 .558
1952 3위/7팀 3위 120 67 52 1 .563
1953 4위/7팀 4위 120 57 61 2 .483
1954 1위/8팀 우승 140 90 47 3 .657 일본시리즈 (3-4 vs 주니치)
1955 2위/8팀 2위 144 90 50 4 .643
1956 1위/8팀 우승 154 96 51 7 .646 일본시리즈 (4-2 vs 요미우리)
1957 1위/7팀 우승 132 83 44 5 .648 일본시리즈 (4-1-0 vs 요미우리)
1958 1위/6팀 우승 130 78 47 5 .619 일본시리즈 (4-3 vs 요미우리)
1959 4위/6팀 4위 144 66 64 15 .508
1960 3위/6팀 3위 136 70 60 6 .539
1961 3위/6팀 3위 140 81 56 3 .589
1962 3위/6팀 3위 136 62 68 6 .477
1963 1위/6팀 우승 150 86 60 4 .589 일본시리즈 (3-4 vs 요미우리)
1964 5위/6팀 5위 150 63 81 6 .438
1965 3위/6팀 3위 140 72 64 4 .529
1966 2위/6팀 2위 138 75 55 8 .577
1967 2위/6팀 2위 140 66 64 10 .508
1968 5위/6팀 5위 133 56 74 3 .431
1969 5위/6팀 5위 130 51 75 4 .405
1970 6위/6팀 6위 130 43 78 9 .355
1971 6위/6팀 6위 130 38 84 8 .312
1972 6위/6팀 6위 130 47 80 3 .370
1973 전기 4위/6팀
후기 5위/6팀
4위 다이헤이요클럽
라이온즈
130 59 64 7 .480
1974 전기 3위/6팀
후기 4위/6팀
4위 130 59 64 7 .480
1975 전기 2위/6팀
후기 4위/6팀
3위 130 58 62 10 .483
1976 전기 6위/6팀
후기 6위/6팀
6위 130 44 76 10 .367
1977 전기 6위/6팀
후기 5위/6팀
6위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130 49 73 8 .402
1978 전기 4위/6팀
후기 5위/6팀
5위 130 51 67 12 .432
1979 전기 6위/6팀
후기 5위/6팀
6위 세이부 라이온즈 130 45 73 12 .381
1980 전기 6위/6팀
후기 4위/6팀
4위 130 62 64 4 .492
1981 전기 2위/6팀
후기 5위/6팀
4위 130 61 61 8 .500
1982 전기 1위/6팀
후기 3위/6팀
우승 130 68 58 4 .540 플레이오프 (3-1 vs 닛폰햄)
일본시리즈 (4-2 vs 주니치)
1983 1위/6팀 우승 130 86 40 4 .683 일본시리즈 (4-3 vs 요미우리)
1984 3위/6팀 3위 130 62 61 7 .504
1985 1위/6팀 우승 130 79 45 6 .637 일본시리즈 (2-4 vs 한신)
1986 1위/6팀 우승 130 68 49 13 .581 일본시리즈 (4-1-3 vs 히로시마)
1987 1위/6팀 우승 130 71 45 14 .612 일본시리즈 (4-2 vs 요미우리)
1988 1위/6팀 우승 130 73 51 6 .589 일본시리즈 (4-1 vs 주니치)
1989 3위/6팀 3위 130 69 53 8 .566
1990 1위/6팀 우승 130 81 45 4 .643 일본시리즈 (4-0 vs 요미우리)
1991 1위/6팀 우승 130 81 43 6 .653 일본시리즈 (4-3 vs 히로시마)
1992 1위/6팀 우승 130 80 47 3 .630 일본시리즈 (4-3 vs 야쿠르트)
1993 1위/6팀 우승 130 74 53 3 .583 일본시리즈 (3-4 vs 야쿠르트)
1994 1위/6팀 우승 130 76 52 2 .594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1995 3위/6팀 3위 130 67 57 6 .540
1996 3위/6팀 3위 130 62 64 4 .492
1997 1위/6팀 우승 135 76 56 3 .576 일본시리즈 (1-4 vs 야쿠르트)
1998 1위/6팀 우승 135 70 61 4 .534 일본시리즈 (2-4 vs 요코하마)
1999 2위/6팀 2위 135 75 59 1 .560
2000 2위/6팀 2위 135 69 61 5 .531
2001 3위/6팀 3위 140 73 67 0 .521
2002 1위/6팀 우승 140 90 49 1 .648 일본시리즈 (0-4 vs 요미우리)
2003 2위/6팀 2위 140 77 61 2 .558
2004 2위/6팀 2위 133 74 58 1 .561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닛폰햄)
세컨드 스테이지 (3-2 vs 다이에)
일본시리즈 (4-3 vs 주니치)
2005 3위/6팀 3위 136 67 69 0 .493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롯데)
2006 2위/6팀 2위 136 80 54 2 .597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소프트뱅크)
2007 5위/6팀 5위 144 66 76 2 .465
2008 1위/6팀 우승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44 76 64 4 .543 세컨드 스테이지 (3-2 vs 닛폰햄)
일본시리즈 (4-3 vs 요미우리)
2009 4위/6팀 4위 144 70 70 4 .500
2010 2위/6팀 2위 144 78 65 1 .546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롯데)
2011 3위/6팀 3위 144 68 67 9 .504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닛폰햄)
파이널 스테이지 (0-4 vs 소프트뱅크)
2012 2위/6팀 2위 144 72 63 9 .533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소프트뱅크)
2013 2위/6팀 2위 144 74 66 4 .529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롯데)
2014 5위/6팀 5위 144 63 77 4 .450
2015 4위/6팀 4위 143 69 69 5 .500
2016 4위/6팀 4위 143 64 76 3 .457
2017 2위/6팀 2위 143 79 61 3 .564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라쿠텐)
2018 1위/6팀 우승 143 88 53 2 .624 파이널 스테이지 (2-4 vs 소프트뱅크)
2019 1위/6팀 우승 143 80 62 1 .563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소프트뱅크)
2020 3위/6팀 3위 120 58 58 4 .500 [77]
2021 6위/6팀 6위 143 55 70 18 .440
2022 3위/6팀 3위 143 72 68 3 .514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소프트뱅크)
2023 5위/6팀 5위 143 65 77 1 .458
<rowcolor=#000000> NPB 통산 74시즌 리그우승 23회 9993 5074 4528 391 .528 일본시리즈 우승 13회

17. 둘러보기

파일:NPB 로고.svg 일본프로야구 역대 왕조팀
★★★★★★
1938추계~1943
도쿄 교진군*
★★★
1951~1953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56~1958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5~1973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75~1977
한큐 브레이브스
★★★
1986~1988
세이부 라이온즈
★★★
1990~1992
세이부 라이온즈
★★★★
2017~202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단일리그 시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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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K 역대 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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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장 당시에는 야외 구장이었으나 이후에 지붕을 덮었다. [2] 2019년 오버워치 리그 유니폼 제작을 담당했던 적이 있다. [3] 일본식 이름은 요시모토 히로시(吉本博). 재일교포. [4] 2군 연수 코치 [5] 1983-85시즌에 1, 2위의 게임차가 5게임차 이내일 시 플레이오프로 리그 우승팀을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1983, 1985년 당시 1위였던 세이부와 1984년 당시 1위였던 한큐 모두 2위 이하 팀들과 10게임차 이상 격차를 벌리면서 플레이오프가 개최되지 않았다. [6] 다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2010년대 들어 단 10년간의 기간 동안 총 7번의 우승과 센트럴리그 전 구단 격파, 특히나 2020년 일본시리즈의 우승으로 세이부조차 이뤄내지 못한 퍼시픽리그 구단의 JS 4연패를 달성함으로서 이 기록을 경신했다. [7] 후쿠오카 돔이 지어지기 전까지 오사카에서 이사온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홈구장이기도 했다. 그러다 구장 보수를 하던 도중 이 구장 부지가 헤이안 시대에 있었던 코로칸(鴻臚館)이 위치했던 유적지였음이 밝혀졌고, 결국 1997년 폐장 후 철거된 뒤 역사공원이 조성되었다. [8]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배했다. 근데 누가 알았을까. 이로부터 불과 2년 뒤가 진정한 요미우리의 캐사기 리즈 시절인 V9의 시작이란 걸. [9] 활동 기간이 얼마 안돼서인지 구글에 일본어로 검색해도 구단기를 거의 찾기 힘들다. [10] 이전의 단가가 니시데츠 라이온스의 노래이다 보니 당연 이전 회사 이름이 빠진 새로운 단가가 필요했다. 이 단가는 타이헤이요, 크라운라이터 시절에 모두 사용했으며 세이부 인수 후에는 연고지가 바뀌는 관계로 또다시 단가가 바뀌게 된다. (이후의 단가는 응원 문서 참고) [11] 당시 오리온즈는 1964년 마이니치 신문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 후에 영화회사 다이에이의 사장인 나가타 마사이치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이때 팀 이름이 도쿄 오리온즈로 바뀌었다가 1969년 롯데 네이밍 스폰싱을 받으면서 롯데 오리온즈로 재차 이름이 변경되었고, 1971년 다이에이가 경영난으로 구단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롯데가 1971년부터 정식으로 오리온즈 구단 운영을 맡게 된다. 나카무라는 롯데 네이밍 스폰서 시기였던 1969~70년에 부오너를, 구단 정식 모기업이 된 1971~72년에 오너를 맡았다가 라이온즈 매입을 위해 1972년 시즌 종료 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리온즈 구단 주식을 롯데에 완전히 매각하고(야구협약상 개인 혹은 한 기업에 의한 복수 구단 경영은 불가능하다) 오너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참고로 나카무라는 키시 노부스케의 비서를 지낸 경력이 있으며 오리온즈 구단 경영을 맡게 된 것 역시 나가타 마사이치와 친분이 있었던 키시의 지시로 맡았던 것이었다. [12] 골프장, 리조트 개발회사이다. [13] 크라운 가스라이터(クラウンガスライター), 현 코사이도(広済堂) 홀딩스. 본래는 코사이도와 별개의 라이터 제조사였으나, 라이온즈 매각 직전이었던 1978년 6월에 인쇄업 회사인 코사이도와 합병하여 코사이도 크라운 주식회사가 된 이후 1981년 4월에 사명에서 크라운을 떼면서 완전히 코사이도에 흡수되어 회사의 자취가 소멸되었다. [14] 훗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도 구단 운영 포기로 인하여 한국가스공사 매각이 되는 과정이 유사하다. [15] 세이부 철도가 운영하는 철도차량과 버스 도장에도 이 사자 로고가 많이 붙어 있다. [16] 나중에 도쿄 세네터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팀이 바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다. [17] 세이부 그룹이 시가현에서도 영업하는 이유는 오미 철도 문서에 간략하게 나와있다. [18] 그 전에도 1960~70년대에 산케이-야쿠르트 아톰즈(現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철완 아톰 아톰을 마스코트로 쓴 적 있다. 참고로 테즈카 오사무는 한신 팬이다. [19] 마유미 아키노부 등을 보내고 거포 타부치 코이치를 데려오는 등의 대형 선수 트레이드는 기본이고, 드래프트에 지명이 확실한 전국의 고교 유망주를 뒷공작과 다른 구단과의 물밑 협상으로 선수 자격이 아닌 구단 직원 채용 형식으로 확보해둔 뒤, 드래프트외 선발로 입단시키는 방법(20년간 세이부의 안방을 지켜온 이토 쓰토무 치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 이런 케이스)이나 그룹 계열사 내 일본의 사회인야구 팀인 프린스 호텔 야구부로 빼돌려서 아예 다른 팀의 지명을 포기하게 하는 방법(세이부 황금기의 팀의 주장을 맡은 이시게 히로미치가 이런 케이스. 방법은 간단하다. 학교를 졸업할 때 "난 프로 안 갈래" 하고 일단 프린스 호텔에 입단한다. 그러고 나서 다른 팀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다음 드래프트 때는 미리 포기하는 것)까지 동원했다. [20] 1990년대 후반의 현대 피닉스가 연상된다면 이는 착각이 아니다. [21] 여담이로 이 해를 끝으로 퍼시픽리그는 1973부터 운영해 온 전후기리그-플레이오프 제도를 폐지하고 센트럴리그처럼 6구단 중 리그 우승(1위)팀만 일본시리즈에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니 세이부가 전후기리그-플레이오프 제도 시대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우승팀인 것이다. [22] 그러나 한큐는 일본시리즈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패배. 참고로 이게 현재 카프의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 기록이다. [23]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3연승 후 4연패로 내리 역관광당하며 처참하게 패배했다. 참고로 이때 긴테츠 감독은 공교롭게도 전신인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였던 오기 아키라였다. [24] 이것도 수도권 수원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끝까지 서울 연고를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 현대 유니콘스와도 비슷하다. [25] 세이부라는 그룹 명칭의 기원인 것은 맞다. 하지만 타지 철도 회사이자 도시권이나 공업 지대 지역 이름으로도 많이 쓰이는 '한신'과는 달리 '세이부'는 어떤 곳에서도 지역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6] 사실 세이부 돔은 다른 사이타마 지역보다 도쿄 중심부에서의 접근성이 더 좋다. 사이타마현의 중심지 오미야에서 세이부 돔 가는 게 많이 어렵다. [27] 대표적으로 1994년 오프시즌의 세이부 - 다이에 간 2-3 트레이드. 아키야마 코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건너갔다. 참고로 당시 다이에의 단장은 공교롭게도 1980년대 세이부의 황금기를 구축한 그 네모토 리쿠오였다. [28] 쿠도 키미야스가 FA로 다이에로 이적하고, 기요하라 카즈히로도 1996년 FA로 그토록 원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다. [29] 이토 쓰토무의 세이부맨 커리어가 이로 인해 끝장나게 된다. [30] 이때 밀림의 왕자 레오 사용권이 만료되었다. [31] 롯데 - 다이에의 양자 합병 논의도 마지막에 호크스 구단을 소프트뱅크가 인수하게 되면서 무산되었다. [32]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관중 출입 제한 [33]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관중 출입 제한 [34] 세이부 신주쿠선 혼카와고에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카와고에역까지 걸어가서 카와고에선을 타면 되긴 하지만,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35] 세이부급으로 열악한 훈련 시설로는 비만 좀 오면 그라운드가 침수되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야쿠르트 토다 구장, 공장 부지의 자투리 땅에 대충 그라운드만 만든 치바 롯데 마린즈의 롯데 우라와 구장 등이 꼽힌다. 어째 전부 사이타마에 있다 [36] 이는 세이부 구단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츠츠미 가문이 분식회계, 허위 공시로 축출되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뀐 때부터 이어져온 기조로, 매년 주주총회에서 한신만큼은 아니지만 야구단 운영에 대해 불만이 나온다. 이를 보다 못한 세이부홀딩스 주주가 2017년 구단 2군 시설 및 인재 육성 시스템에 대해 주주총회에서 GM, 그룹 오너 앞에서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단 사장이 라쿠텐보다 연봉 많다는 개드립을 쳐서 세이부 팬들에게 까였다. [37] 데즈카 오사무 스스로 정글대제는 6번 단행본이 나왔고, 뭐가 맞다고 할 수 없다고 전집에서 언급했다. [38] 당연히 이곳을 연고지로 둔 J리그 우라와 레즈는 일본의 인기 프로축구 팀이며, 서포터들의 규모 역시 일본 최대다. [39] 참고로 사이타마 시는 세이부 철도의 영업구간이 아니라 토부 철도의 영업 구간이며, 야쿠르트와 롯데 2군 구장이 오히려 사이타마 시에서 더 가깝다. 그리고 세이부의 홈구장은 사이타마 시에서 접근하기 좀 골룸한 위치에 있는데, 평일에도 경기가 있는 야구는 경기장 접근성이 관중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히려 세이부를 지지하는 팬층은 사이타마 현보다도 도코로자와 시에 인접한 도쿄 도의 시 지역 부분(우리가 생각하는 도쿄가 아닌 그 외곽의 위성도시들로 이루어진 도쿄 도의 영역), 특히 세이부 이케부쿠로선 세이부 신주쿠선 연선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이부가 도쿄에 집착한 것도 일리는 있지만 홈구장이 사이타마 현에 있어서... [40] 일각에서는 사이타마를 연고로 하는 J리그 최고의 인기구단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존재와 그에 못지 않은 오미야 아르디자의 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둘의 더비 매치는 '사이타마 더비'로도 불릴 정도다) 실제로는 같은 사이타마현이지만 세이부 라이온즈가 있는 도코로자와시와 사방에서 우라와 레즈깃발이 펄럭이는 사이타마시는 완전히 다른 동네다. 베드타운인 사이타마현의 특징 덕분에 도쿄로 가는 교통 시설만 잘 정비돼 있기 때문에 사이타마 동부와 서부는 같은 현이라도 교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장 사이타마 시에서 야구를 보러 가려면 도쿄 돔이 오히려 더 가깝고 가는 시간은 세이부 돔의 절반 정도밖에 안 걸린다( 무사시노선 참조). [41] 사이타마TV, 분카 방송, NACK5 FM이 전담 중계를 하는 세이부와는 다르게 오릭스는 그 어떤 간사이권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전담중계를 하지 않으며, 제작해도 타국으로 보내버린다. [42] 동부와 서부를 가리지 않고 '사이타마'의 통합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위에서 서술했듯이 동부의 카스카베시를 배경으로 한 크레용 신짱, 러키스타와도 콜라보를 했다. 물론 서부를 배경으로 한 아노하나 야마노스스메와도 열심히 콜라보 했다. [43] 롯데는 현재 선발 라인업 발표 후에 응원가를 불러주지 않는다. [44] 2013년 시즌 당시 타이업한 작품들. [45] 그러나 그 롯데도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라쿠텐에게 패하면서 2010년의 하극상은 이루지 못했다. [46] MLB도전에 나섰으나 계약에 실패하고 미국 독립 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47] 단, 이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데뷔 후 계속 뛰던 도중 2013 시즌 끝나고 FA를 선언한 카타오카 야스유키의 보상 선수로 세이부에 이적해 2년간 뛴 후 2016년 FA로 요미우리에 복귀한 사례라 세이부 원클럽맨이었던 다른 FA 대상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48] FA로 세이부를 떠났다가 6년뒤에 세이부로 다시 돌아왔다. [49] 입단은 1980년 세이부로 했고 이후 1984년까지 세이부에서 뛰었으나, 정작 활약은 198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 이후였다. 요미우리에서는 1991년까지 백업 외야/유격수로 제법 쏠쏠한 활약을 했고 특히 1987년에 94경기에 출장해 69안타 .292의 타율로 대활약했다. 1994년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타자로 뛰기도 했으며, 당시 등록명은 한국명 홍순기였다. 다만 롯데에서는 코치와의 불화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진 못하고 몇 달 만에 방출당했다. 방출 후에는 회사원으로 일했다. 페이스북 [50] 대타, 대수비, 대주자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51] 사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원조이다. 1966년 철완 아톰 사용 계약을 맺어 산케이 아톰즈-야쿠르트 아톰즈라는 이름을 썼고, 마스코트도 아톰을 사용했다. [52] 2011년 10월 21일 방영분인 나는 프로야구 선수라구(オラはプロ野球選手だゾ, 한국에서는 미방영)는 노하라 신노스케(짱구)가 세이부에 입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세이부 돔이 배경으로 나왔고 나카무라 타케야, 와쿠이 히데아키, 기쿠치 유세이,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출현했다. 특히 나카무라는 본인이 직접 본인의 캐릭터를 더빙하기도 했다. 물론 그 외 캐릭터 상품이나 일러스트 등의 콜라보도 하고 있다. [53] 배경이 사이타마현 한노시라서 역시 콜라보가 성사된 바 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유니폼 항목에서 콜라보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해당 성우들의 시구 모습도 찾아보면 볼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세이부의 야구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54] 콜라보를 맺고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55] 치어리더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서 콜라보가 수월하게 이뤄진 듯하다. [56] 콜라보 상품이 꽤 자주 발매되고 있다. 2017년 사례 근데 정작 작중에서는 야구보다 축구가 더 많이 나오고 있고, 그나마 야구를 좋아하는 캐릭터인 핫토리 헤이지도 오사카 출신이라 이쪽이랑 연관이 더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57] 2016년 드래곤볼 슈퍼데이를 지정했다. # [58] 다만 이쪽은 야구 소재 만화라 그런지 전국 순회 형식 콜라보를 했다. [59] 이쪽은 특히 성우 아이바 아이나, 아이미, 쿠도 하루카 시구를 한 바 있다. 시구 항목에서도 해당 사진을 볼 수 있다. [60] 참고 [61] 사실 둘 다 현 연고지에 정착하기 이전 헤이와다이 사건이나 라이온즈와 오리온즈의 원한 등 대구아재나 꼴리건을 능가하는 구장 난입이나 투척전도 벌인 바 있다. 지금 팬이야 연고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빠지는 게 되지만... [62]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1차 지명은 전 구단 제비뽑기로 뽑는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 문서 참조. [63] 당연히 복수의 구단이 1순위로 지명한다. [64] 특히 키요하라가 있던 10년간 세이부는 퍼시픽리그 우승 8회에 일본시리즈 우승 6회를 차지하는 리즈 시절을 누렸다. [65] 다만 오오이시 타츠야는 프로에서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9년 만에 은퇴하고 말았고, 오히려 그 다음으로 뽑은 2순위 마키타 카즈히사와 3순위 아키야마 쇼고가 훗날 메이저리그까지 도전할 정도로 성공했다. [66] 대신 1990년대 세이부 불펜진의 핵심인 시오자키 테츠야를 지명했다. [67] 대신 와쿠이 히데아키를 지명했고 세이부의 에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주축들처럼 FA를 선언해버렸다 [68] 한국에서는 개막 투수로 한국 선수를 내세우는 게 특이할 정도로 용병들이 에이스를 맡지만, 일본에서는 선발 용병은 보통 3~5선발을 맡는 경우가 많고 개막 투수는 어지간하면 토종 선발을 내세운다. 수준급 선발투수가 한국에 비해서 많다 보니 각 팀별로 못해도 토종 선발 3명 정도는 두기 때문. 세이부도 100이닝 이상 던져줄 토종 선발은 그래도 3~4명 가까이 있기는 하다. [69] 그나마 중박은 쳐서 1년 더 재계약은 했다. [70] 2019년까지 일본에서 버텼지만 잘한 시즌은 없었다. [71] 이 목록에 한신 타이거스도 있었으나 2023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한을 풀었다. [72] 2018년 소프트뱅크와 히로시마의 맞대결이 성사되며 소뱅도 세리그 6팀을 모두 만난 팀이 되었다. [73] 요미우리 : 1956~1958, 1963, 1983, 1987, 1990, 1994, 2002, 2008 / 한신 : 1985 / 주니치 : 1954, 1982, 1988, 2004 / 야쿠르트 : 1992, 1993, 1997 / 히로시마 : 1986, 1991 / 요코하마 : 1998. 승리한 연도는 볼드체 표시. [74] 도쿄역에서조차 2번 환승해야 돼서 1시간~1시간 반이 걸린다. [75] 일본에서 거의 정상급 위치를 차지하는 사회인야구 대회 [76]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77] 코로나19로 인해 퍼스트 스테이지가 취소되었고, 그로 인해 3위임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참가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