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23:58:44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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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3d69><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세이부철도 로고.svg 세이부 철도
과거 모기업 파일:서일본 철도 로고.svg 서일본 철도
일본시리즈 우승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리그 우승
(23회)
1954 · 1956 · 1957 · 1958 · 1963 · 1982 · 1983 · 1985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1993
1994 · 1997 · 1998 · 2002 · 2004 · 2008 · 2018 · 2019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1982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8 · 2010 · 2011 · 2012 · 2013 · 2017 · 2018 · 2019 · 2022
시즌 문서 2013-2021 · 2022 · 2023 · 2024 월별문서
현역 선수 경력 쿠리야마 타쿠미/선수 경력 · 겐다 소스케/선수 경력 · 이마이 타츠야/선수 경력 ·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후지테레비2 로고.jpg 후지 테레비 2
주요 인물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와타나베 히사노부 · 감독 마츠이 카즈오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구단 상세 정보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틀 문서
세이부 그룹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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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영구결번3. 준영구결번4. 출신 선수들
4.1. 투수4.2. 포수4.3. 내야수4.4. 외야수
5.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개요

역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재적했던 선수들을 이 항목에서 정리한다. 현역 선수단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선수단 항목 참고.

2. 영구결번

  • 24. 이나오 가즈히사: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 님. 이나오가 은퇴한 때부터 1972년까지 24번을 달고 감독직을 지냈다. 그런데 구단이 다이헤이요로 매각된 1973년에 이나오 자신은 81번으로 번호를 바꾸고 24번을 후배 선수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하며 준영구결번으로 남겼다. 이후 라이온즈 24번의 계보는 고가 마사아키(古賀正明)- 아키야마 코지-히라노 겐(平野謙)-마쓰나가 히로노리(松永浩典)로 이어지다, 결국 2012년에 이나오 탄생 75주년을 맞아 동년 5월에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3. 준영구결번

  • 3. 오시타 히로시: 1960년 은퇴 후 오시타의 커리어를 기리기 위해 당시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구단사장이었던 니시 마다지로(西亦次郎)가 '당분간 오시타의 3번을 결번으로 처리하겠다'라고 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나, 1968년 오시타가 토에이 플라이어즈에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슬그머니 영구결번을 해제했다. 이에 대해 오시타의 동의가 있었는지는 불명이라고. 어쨌든 세이부가 구단을 인수하고 나서는 라이온즈의 3번은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이후 이 번호를 받은 선수로는 나카지마 히로유키, 아사무라 히데토가 있었고 2020년부터는 야마카와 호타카가 달다가 2023시즌후 FA로 소프트뱅크로 이적하게 되어 2024시즌 현재 결번상태이다.
  • 6. 나카니시 후토시: 1970년에 은퇴 당시 나카니시에 견줄만한 선수가 등장하면 그 선수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여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위의 이나오 카즈히사와 비슷한 이유로 해제가 됐고, 당시 감독이었던 이나오가 추천한 기쿠카와 소지로(菊川昭二郎)가 이 번호를 사용했다. 세이부로 바뀌고 나서 그나마 이 등번호를 달만한 자격이 있던 플레이를 했던 선수는 90년대 초반 유격수로서 황금시대를 떠받친 타나베 노리오. 2017년부터는 사회인야구 출신의 신인 유격수 겐다 소스케가 이 번호를 달고 플레이하는 중이며, 빈틈없는 수비주루와 정교한 타격을 보여주며 2017년 신인왕을 수상해 이 등번호의 전망을 밝게 하는 중.
  • 27. 이토 쓰토무: 은퇴 후 이토 스스로가 인정한 후배 포수에게 넘겨주기로 하여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후 2006년 호소카와 토오루(細川亨)가 사용했으나 2010 시즌 종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FA 이적하면서 결번 상태였다가, 2012년부터 스미타니 긴지로가 사용하고 있다가 2018 시즌 후 FA 이적한 후로는 그의 보상선수로 요미우리에서 넘어온 우츠미 테츠야가 달고 있었고 2022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하고 전업 코치로 전향하면서 97번으로 변경, 2023년 현재는 공석이다가 2024년 6년만에 돌아온 스미타니 긴지로가 다시 이 등번호를 시용하게 되었다.

4. 출신 선수들[1]

4.1. 투수

4.2. 포수

  • 와다 히로미 (1955 - 1972)
    선수생활 전부를 니시테츠에서만 활동했던 레전드 포수. 니시테츠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 1972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라이온즈에 남아 산호세 독립리그로 유학을 가는 선수들을 인솔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09년에 72세의 나이로 췌장암으로 별세. 여담으로, 당시 세이부 소속이었던 오쿠보 히로모토에게 "데이브 오쿠보" 라는 별명을 붙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덧붙여 자기 자신은 "행크 와다" 라는 별명을 붙였다.
  • 와카나 요시하루 (1972 - 1978)
  • 오쿠미야 타네오 (1978 - 1980)
  • 타부치 코이치 (1979 - 1984)
    세이부에서는 주로 1루수, 지명타자를 보았다.
  • 노무라 카츠야 (1979 - 1980)
    오랫동안 지내왔던 난카이 호크스에서 내쫓겨나다시피 하며 떠난 뒤 롯데 오리온즈를 잠깐 거쳐 여기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 이토 쓰토무 (1982 - 2003)
    2012년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로 지낸 그 이토 맞다. 라이온즈 프렌차이즈 사상 최고의 포수하면 떠오르는 인물. 선수시절 수많은 리그우승은 물론 일본시리즈 재패에도 큰 기여를했으며 2012년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로 재임하기도 했다. 당시 최재훈을 발굴해냈으며 한국에선 이토센세라고 불렸다. 2013년 지바롯데로 떠나 2019년에 주니치 수석코치가 되며 2021년 현재까지 주니치 코치로서 생활하고 있다.
  • 오쿠보 히로모토 (1985 - 1992)
  • 나카지마 사토시 (1998 - 2002)
  • 호소카와 토오루 (2002 - 2010)
    멘도사 라인의 수비형 포수. 그러나 의외로 거포 스타일이라서 전성기 때는 15홈런 정도 쳤다. 물론 홈런만 치지 컨택 선구안 모두 쓰레기라 전형적인 공갈포였었다. FA로 세이부를 떠난 후에도 여러 팀을 거쳐오면서 2019년에도 뛰는 중. 물론 지금은 한국나이로 40세라 장타툴마저 사라졌다.
  • 스미타니 긴지로 (2006-2018, 2024~)
    일본의 제프 매티스. 철벽수비를 자랑하지만 타율은 진짜 NPB에서도 역대급 멘도사 타격이다. 3000타석을 넘게 나왔는데 통산 타/출/장이 2/2/2에 OPS가 5할대 중반으로, 그 정도 타석을 소화한 선수로서는 일본 야구 사상 손꼽힐 정도의 암울한 타격을 보여주었으며 세이부 시절로만 한정하면 그 기간 찍은 OPS와 홈런 수(.3455타석 OPS .532, 31홈런)가 투수 가네다 마사이치의 그것(2054타석 OPS .525 38홈런)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는 선배인 호소카와 토오루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암울한 공격력. 호소카와가 FA를 선언하고 소뱅으로 이적한 이후 8년째 주전포수 하고 있는 데 8년 동안 100안타를 친 해가 없고 타율도 2할 1푼만 찍어줘도 고마운 수준이다. 거기다가 장타력도 풀 시즌 뛰어서 홈런 5개 칠까말까한 수준에 3할을 넘긴 해가 거의 없으며, 볼삼비는 에르네스토 메히아보다 안 좋으니[8]... 하지만 수비력만큼은 NPB 최강이라서 주전 자리를 굳건히 유지해온데다 국가대표까지 승선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2005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을 때의 평가와는 전혀 딴판인데 드래프트 때는 수비와 투수리드는 뛰어나지만 공격이 안 되는 호소카와 때문에 고교 통산 48홈런의 공격형 포수의 소질을 보고서 스미타니를 지명한 거였다. 고교 3년동안 친 홈런의 갯수가 프로에서 13년동안 친 홈런의 갯수보다 많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상기한대로 흘러갔고, 2018년 시즌부터는 그래도 포수 수비가 가능한 정도로까지 성장한 공격형 포수 유망주 모리 토모야에게 완전히 주전자리를 뺏기고 백업으로 밀려났으며 오프시즌에 바로 FA를 통해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냉정하게 크보나 대만야구 와도 수비형 포수할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요미우리에 이적하자 무슨 보약을 먹었는지 58경기에서 2할 6푼의 타율에 6홈런, OPS .723을 기록하며 갑자기 쓸만한 타격을 보여주었다가 2021시즌 라쿠텐으로 현금트레이드 되었다가 23시즌 전력외통보를 받고 6년만에 세이부로 복귀했다.
  • 모리 토모야 (2014~2022)

4.3. 내야수

4.4. 외야수

5.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괄호 안은 재적 연도 [2] 한자: 郭泰源.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가쿠 다이겐. 중국식 발음으로는 궈타이위안.나이 든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곽태원이 더 익숙하다. [3] 등록명은 데니였으며, 일본식 이름은 유이 토모리이다. [4] 사이토 유키의 동기로, 6개 구단에 1지명을 받은 와세다대학의 영건이었지만 연이은 부상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은퇴. [5] 일본판 톰 션. 작년의 밴헤켄보다 더 허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 말기인 9월에 방출당했다(...) 세이부에서는 똑같이 전력 외로 밀려난 다른 외국인 선수들을 10월 시즌 끝 까지 기다려줬는데 이 선수는 얼마나 빡쳤는지 중도에 방출. [6] [7] 외국인 선발 10승 이상은 2002년 이후 마지막이며, 비 대만인 출신으로는 라이온즈 사상 최초. [8] BB/K가 메히아는 .334인데 스미타니는 .212 (...) 참고로 볼넷을 절대로 못 얻어나간다고 개까이는 박종윤의 통산 BB/K가 .277이다... [9] 후에 본인이 결백을 주장하여 재조사 후 영구제명은 취소되었다. [10] 2016년 아라이 타카히로가 경신할 때까지 센트럴리그 최고령 MVP였다. 다만 아라이의 MVP 수상은 베테랑 예우가 꽤 많이 반영되어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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