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4:22:27

박노자

박노자
朴露子 | Pak Noja
파일:박노자교수.png
<colbgcolor=#FF0000> 본명 티코노프 블라디미르[1]
출생 1973년 2월 5일 ([age(1973-02-05)]세)
소련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사학 / 학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한국고대사학 / 박사)
직업 사학자, 철학자
현직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 교수
종교 불교
정당

| 적색당[2]
가족 부모, 배우자 백명정, 슬하 1남 1녀, 장인 백낙삼, 장모 최필순, 처남 백남문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영어)

1. 개요2. 생애
2.1. 한국에 오다
3. 성향
3.1. 비판주의자3.2. 정치 성향
4. 비판
4.1. 의견 관련4.2. 친중 성향?
4.2.1. 이면
4.3. 한국 불교 비판 관련한 이중잣대 논란
5. 저서6. 여담7. 소속 정당8.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철학자이자 사학자, 한국학자, 작가이다.

러시아계 한국인으로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러시아어 한국어, 노르웨이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아슈케나짐쪽 유대계 러시아인 가계로, 귀화하기 전의 러시아어 이름은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Тихонов)'이다. 한국에서 쓰는 필명인 '박노자'는 한자로는 '朴露子'라고 쓰며 '러시아 사람'이란 뜻이다. 성은 대학 시절 은사인 박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교수의 성을 땄다. 귀화 후의 성명은 '티코노프블라디미르'이다.[3] 외국에서는 그냥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본래의 러시아어식 이름을 사용하며, 오슬로 대학 홈페이지에도 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2. 생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4]를 졸업하였다. 원래는 인도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소련 말 인도학과는 정신의 안녕을 찾으려는 인문학적 지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리는 최고 인기 학과였으며[5] 빽 없이는 입학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대학교들이 조선학과에 들어가게 되면 '북한 평양에서 1년동안 조선어 실습' 이라는 조건이 있었는데 평양에서의 1년간의 삶이 고립적이고 심심할 것 같아서 조선학과에 들어가는 것을 원래 꺼렸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북한에 관심이 많았고, 북한 서적 중 춘향전을 읽고 나서 평양에서 조선어 실습이라는 조건이 없었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동방학부 조선사학과에 1989년 입학하였다고 한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북한의 다른 서적들은 소련에서 코미디 취급을 받았지만, 춘향전만큼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학과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은 직접 평양으로 가서 조선어 실습을 하였지만, 박노자는 평양의 생활이 고립적일 것을 걱정하여 1991년 교환학생으로서 남한으로 가 3개월 유학하였다. #

러시아로 돌아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대학원 한국고대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한민국에 돌아왔다. 1995년에 바이올리니스트 백명정[6]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1996년 경희대학교 러시아어 전임강사로 근무하다가 2000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 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로서 근무 중이다. 2001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다.

2.1. 한국에 오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다룬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한국에서 대박난 이후로, 《 한겨레》에서 정기적으로 연재, 기고를 한다. 원래 한국어보다 중국어를 먼저 배워 놨기 때문인지 외국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한자를 구사할 뿐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인용하는 자료들도 폭이 넓은 편이다. 강연회에 가보면 한국인들도 어려워하는 고급 어휘와 한자성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심지어 " 이황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창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지만 음주가무 중에서 가무엔 능하지 못하다고. 그리고 취미가 나무하고 말하기라고 한다.

3. 성향

본인의 주장으로는 탈국가, 탈민족을 주장하는 아나키스트적인 사회주의자이며 무엇보다도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라고 자칭한다. 따라서 국내 진보정치 상 NL파와는 거리가 멀고 PD 계열과 더 연대하는 편이다. 그 외에도 불교신자이며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3.1. 비판주의자

비판주의자로 현대 대중문화의 폭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7] 또한 군사화된 사회에 특히 비판적인 편으로, 한국 사회의 이러한 부분을 공격적으로 지적해 왔다. 본인부터가 러시아군의 그 악명높았던 가혹행위를 익히 알고 있던 러시아인이었기에 한국군 병영부조리, 가혹행위도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그가 어린 시절 책을 읽느라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면 그의 할머니가 "대학에 못가면 군대에 끌려간다. 너같은 약골은 군대에서 살아남지 못해."라고 겁을 줬었다고 한다.[8]

한국의 민족주의 풍조와 관련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며, 한국의 민족주의를 본래 의미보다는 민족 중심의 국가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할 것을 주장한다.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식민사학 극복을 주장하는 환단고기 관련 "재야사학"을 두고 파쇼적 판타지의 인기 상승이 우려스럽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

3.2. 정치 성향

노르웨이에서는 중도좌파 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온 사회주의좌파당의 당원이었으나, 사회주의좌파당이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한 것 때문에 탈당했다. 현재는 혁명적 좌파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적색당 당원이다.[9] 그의 급진적 좌파 성향에는 젊은 시절을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보냈다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박노자는 진보적 국가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기준으로도 상당한 강경 좌파에 속한다.

본래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보냈었으나 2008년 대선 이후 NL(자주파)과의 문제로 진중권, 홍세화 등과 함께 분당을 주장하였다. 2012년 총선에 '티코노프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을 써서 진보신당의 6번째 비례대표로 출마하였다.[10] 현재는 노동당의 당원이다.

2009년 10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노벨 전쟁상, 그리고 사민주의자들의 순진한 세계정치론으로 비판했다. 2014년 6월에는 세월호 사건을 '잘못된 사회구조에 의한 학살'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2015년 6월에는 한겨레 기고문에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 최대의 문제, 반사회적 지배층

2015년 11월 파리 테러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가체 후보생'이나 나름없는 이슬람 국가의 프랑스에 대한 폭력이나 프랑스의 시리아 폭격이나 민간인 학살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전자만을 슬퍼하고 후자에 대해서 관심이 덜 가는 것은 체제 논리가 그렇게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평화를 위해서는 유럽 국가들의 중동 침략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탱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박노자 본인이 부인하기도 했다. 박노자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그의 정치성향이 전반적으로 노르딕 스타일의 좌익~극좌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의 정견이 그가 소속된 적색당과 유사다는 것이 그 논지이다.
스딸린주의 국가는 왜 하필이면 강제이주라는, 다수에 대한 야만적인 폭거를 저질렀을까요? 고려인도 당했지만 총잡아 강제이주를 당한 소수자 집단들은 스딸린 시기에 20개나 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은 있었지만 하나의 기본적 배경으로 깔려 있었던 것은 개발주의적 체제의 "통제" 집념이었습니다. 조상이 일꾼 땅에서 자연스럽게 세거하여 월경해서 만주, 조선에서의 동족들과 계속 왕래가 잦은 소수자를, 개발주의 권력이 완벽하게 통제, 감시하지 못합니다. 한데 뿌리가 뽑혀 그 어떤 월경적 소통도 불가능한 중앙아세아 내륙지방으로 강제 이주 당하면 그 군, 그 현의 내무성, 보위부의 완벽한 콘트롤 아래 두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소수자들으 문화, 언어를 파괴하면서 그 소수자들에 대한 "통치성"을 높이려 했던 겁니다.
절대 반복돼서 안될 야만 중의 야만, 강제이주의 폭거입니다...
- 2017년 10월 14일 박노자 페이스북
스탈린 시절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의 극우주의를 모조품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무작정 한국 비하와 일본 극우 지지를 한국의 극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사실상 지금 러시아보단 이전 소련 체제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는 평들이 있는데 막상 페이스북 상에서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 관련 포스팅을 올리고 있다.

박노자: 한국 대선은 현상유지하려는 이들과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이들이 싸우는 것 같아(2022년 1월 19일)

북한 체제를 미화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북한을 극우나 파시즘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북한을 극우, 일제식 파시즘의 연장선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브라이언 마이어스에 대해 뉴라이트와 동일시하며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11] 그는 마이어스가 한국의 뉴라이트와 비슷한 견해를 취하고 있다고 보고 지적했다. # 실제로 마이어스는 한국의 ' 민족'(minjok) 개념을 "nation"이나 "ethnic"이 아닌 인종을 뜻하는 "race"로 번역하며 #, 1945년 광복절이 아닌 1948년 건국절을 지지하는데다가 심지어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까지 비난하는 등 #[12] 한국 뉴라이트스러운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마이어스는 미국 녹색당을 지지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 자신을 "반북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이에 대해 러시아의 국제 전략을 군사-자원 제국주의라면서 미국식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러시아식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좌익 인사들을 비판했다. 또한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내의 분열은 대체로 상위 ~ 중산층의 적극적 찬성과 하위 계층의 암묵적 반대로 이뤄져 있기에, 이후 러시아 좌익, 즉 볼셰비키와 소비에트의 부활이란 역사적 업적을 이룩하기 위해선 러시아의 패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논문을 통해 발언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진 이후 노동자연대 등 일부 좌익 단체들이 서방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지 집회를 벌이자 이를 비판했다. 극우단체 하마스는 민간인 조준사격, 납치, 구금 등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국제법을 위반하는 전쟁범죄로 인식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으며 이를 점령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평화적 해결책과 접점을 찾아야 하며 하마스의 행동은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박노자는 과거 <아! 팔레스타인>이라는 만화의 추천사에서 하마스를 옹호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4. 비판

스스로는 아나키스트적인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비스탈린주의적[13] "마르크스-레닌주의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모두 현 국가체제를 부르주아 질서의 수호자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국가가 사라져야 한다는 반국가주의적 요소는 공유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가 "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14] 언급한 노동계급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시적인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하일 바쿠닌은 노동자 출신인 이들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노동자 국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유물론적인 발생학적 오류에 불과하며, 권력이 그들을 타락하게 할 것이고, 노동자 기관은 지배 기관이 되며, 노동자 대표는 그대로 새로운 계급이 된다고 반박했다.

역사에서는 실제로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 철저한 국가주의, 권위주의 논리를 주입시키고 그 입장에 따라 반대파인 아나키스트 세력을 혁명 과정에서 학살한다. 볼셰비키 혁명이후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라는 말은 사실상 레닌주의자를 의미하게 되었고(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은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걷게된 것이다. 말하자면 본래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국가를 비판할 수는 있으며, 그 정도 비판하는데 아나키즘까지 필요 하지도 않다는 말이다.[15]

정리하자면 박노자는 피상적으로 보면 아나키즘, 노르딕 신좌파를 옹호하는듯 보이지만 각종 역대 이슈들이나 국제 관계 인식에 있어서 그의 시각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옛 구공산권 권위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의 관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16] 박노자는 여러차례 인터뷰 등에서 본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러시아인'보다 1917-1991년이란 특정한 시대 속에만 존재했던 '소련 유대인'으로 본다고 말한적이 있다.[17]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따금 립서비스성으로 현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 포함하여 누구든지 할수 있는 스탈린주의 비판, 중국 공산당의 폭정 중 일부 유명한 사례 비판을 제외하면 사회적 군국주의, 우리 사회 내부의 비민주성 비판 등은 일견 아나키스트적인 시각으로 보이나, 여전히 맹목적인 반미, 반서방 정서에 기반한 그의 대외관과 이에 딸려오는 중공 등 현실 사회주의권에 대한 침묵과 옹호를 보면 그 본질은 미국과 서방이 하는 군국주의, 비민주성은 나쁘고 막상 본인이 더 가깝게 여기는 구공산권의 똑같은 행위에는 그만큼 문제의식을 못느끼는 것이다. 이건 결국 말하자면 옛날 소련 공산당 자체의 포지션 그대로와 별로 다를바가 없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은 막상 그 소련 시절 당시에도 흐루쇼프 시대 이후론 충분히 주류 의견이었고, '망국노'들이 만들고 다스리는 현대 러시아에 대해 그가 품는 적개심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외인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다.

만약 그가 아나키즘 운동이 활성된 나라에서 논객활동을 했다면 그가 정당 활동을 하는것 만으로도 아나키스트들한테 국가주의자라고 비판받았을 것이다.[18] 소련 뿐만 아니라 레닌주의 혁명가들이 권력을 장악한 곳은 어디든지 아나키스트들은 숙청 당했다. 이런 일은 러시아, 중국, 쿠바등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일어났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좌파 단결(Left unity)은 장기적인 자살행위라고 믿게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 그는 국가자본주의론을 부정하는데[19] 이는 국가없는 사회주의(stateless socialism)의 정통성을 버리는 아나키스트 입장에서는 매우 반동적인 주장이다.

또한 사학관련 지식에서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인용한다는 비판도 있으며 러시아의 조선사학과 전공 출신으로서 다른 학과 지식은 깊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당시 소련과 해체된지 얼마 되지 않은 러시아에서 동아시아 관련 학과는 전적으로 중국 학계에서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고 조선사학과에서 배우는 것들은 북한 쪽 사학 관점이나 남한 쪽 사학 관점 같은 중립적 관점이 아닌 중국 관점에서의 조선 사학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노르웨이에서 한국학을 한다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또한 일본 민족주의 파시즘, 중국 민족주의 파시즘이 말할 만한 역사를 운운하면서 대한민국의 파시즘은 주장하지 마라 등 외세에 침략에 시달린 주제에 등 외국들도 중국도 수 많은 외세에 시달렸는데도 이러한 발언을 보면 여타 일뽕중뽕혐한과 다를바 있는가아는 비난도 있다. 아울러 그의 발언과 글들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표현이 많이 있고 근거없는 음모론도 굉장히 좋아해서 자주 부풀려 써먹는다.

그의 사상이 굉장히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파 성향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좌파 성향인 사람들조차도 박노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극도의 반미 국까 내지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인임에도 혐한으로 취급하는 의견도 있는데 일부러 귀화한 다음에 깨시민 행세 하는 거 아니냐는 게 이유다. 성향만 다르지 미국의 극우 정치인 테드 크루즈와 언행이 매우 유사한 편이다.

가끔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특정 사건의 범인들에 대하여 옹호적인 칼럼을 쓸때가 있는데 특히 군이 개입한 사건일 경우엔 더더욱 이런 논지가 심화되는 편이다. 이런 논지의 칼럼은 박노자 본인에 대한 호불호와 관련없이 비난받는다. 예를 들면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난하는 칼럼에서는 무조건적인 인간애와 생명중시를 위시하여 한국도 옛날부터 외세에 시달려왔으니 소말리아 같은 못 사는 나라를 보고 해적들도 이해해줘야한다는 논리를 보여줬다. 소말리아 해적과 같은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그 범죄자가 검거된 것을 기뻐했다는 이유만으로 "외세에 시달려본 한국인들은 과연 그들의 아픔을 약간이나마 이해해줄 만한 아량마저도 없는 것인가?" 라고 국민들을 비난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한국은 그 외세를 다 이겨냈지만 외세에 시달린 것을 넘어 독일이라는 게르만족 외세에 오랫동안 국가도 성립 못하고 지배받던 슬라브족 러시아인이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비판을 받았다. 이때문에 감정적 공감대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비난까지도 받았다. 현재 일본학, 중국학에 비해 한국학의 경우 해외 유럽 대학에서 중국, 일본학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서양학자들에 의해 많은 왜곡이 되어 있는 것이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 한국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유럽 유명 대학들에서 한국학 교수를 하고 있으면 왜 한국학이 왜곡되었다는 말들이 많은지 알겠다는 비판들이 나왔다. 박노자는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단지 '해적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검거에 안도하는 사람들 조차도 비난하여 문제가 되었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한국전쟁의 전범인 박헌영을 띄워주는 주장들이다.[20]

2002년 시사잡지 한겨레21에 "나치 포로는 사람도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미군을 비난하는 칼럼을 쓴 바 있는데 그 근거중 하나에 James Bacque라는 인물이 쓴 소설이 포함되었다. 미군이 독일군의 대량 항복 당시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사실인데,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독일군의 대량 항복이 발생한것은 나치 독일의 패배가 확실시 되가던 전쟁 말기인데, 이당시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몰려오는 소련군을 막는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서방측 연합군도 막아내야 했으나, 잡히면 굴라그행과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소련군 대신에 그나마 인간 취급을 해주는 서방측 연합군에게 잡히거나 투항하길 원했다. 때문에 독일군은 소련군을 상대로는 죽기살기로 싸웠으나, 서방측 연합군에게는 기본적인 저항을 펼친 후 항복을 하거나, 아니면 자진 투항하는 경우가 많았다.[21] 특히 대전 말기에는 대다수의 피난민과 독일군, 국민돌격대등이 섞여 다량으로 연합군에게 투항하기 위해 이동했고, 이렇게 섞여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패잔병과 난민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미군은 대다수의 투항한 독일군을 무장해체 후 조사하여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으면 그냥 돌려보냈다. 이때문에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는 포로를 학대하거나 가혹행위를 시키는등의 어떠한 '행위' 로서 대우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닌 포로를 잡아 포로의 '신분' 으로서 대하지 않았다는 말이므로서 이는 당시 상황을 보면 그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박노자의 출신국인 러시아가 포로의 대우에 대한 논란에서는 더 많은 잡음이 들린다.

2013년 9월 16일 낮, 일본에서 강제추방된 뒤 월북하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 거주했던 40대 남성이 임진강에서 부표를 매달고 월북하려다 대한민국 육군 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두고 사람 죽여놓고 이렇게 자축하는 이 존재들은 정말 인간 맞나 싶어요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칼럼 역시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판한 칼럼의 논리와 비슷한 맥락이다. 군의 임무에서 사살한 것은 정당하다 쳐도 사람에 대한 애도가 없으니 사람이 맞느냐, 군은 이것을 철통경계라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에서 강력한 비판을 한 것인데, 국가의 헌법이나 질서에 따른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월북시도자 형편이나 사정을 내비치면서 동정을 유도하는 식의 말을 하면서 그것을 임무라고 죽인 군대를 비판하는 논조는 기본적으로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군의 입장과 일반인의 입장차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완용을 암살하려다가 인력거꾼 박원문을 죽이게 된 이재명 열사의 행위에 대해 비판한 칼럼도 이야깃거리가 되긴 하는데 사실 칼럼 내용을 훑어보면 이재명 열사의 도덕성에 대한 고발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들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 합리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수 있고 김립 피살 사건에 대한 지적을 보면 오히려 꽤 괜찮은 칼럼이다. 다만 이 편에서 진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 사건을 위의 두 사건에다 갖다붙이고 일본 민간인들의 희생이 컸다며 이를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의 반미 테러 행각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난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홍커우 의거 당시 민간인 사상자는 기록된 바가 없었고 박노자 본인도 당연히 따로 증거나 출처를 제시하지 않았다.

가수 싸이가 우리 모두가 군인이라고 한 발언을 가리켜서 살인이라느니 전체주의라느니 나는 운동권 노래와 음악이 좋다느니 하며 날이 선 비난을 퍼부었는데, 그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들은 "이러니까 대학 운동권이 망했지, 박노자도 이제 꼰대가 되었구나, 알고보니 박노자는 지독한 교조주의자였구나' #라면서 조롱을 하고 있다. 말로는 항상 민중이 어쩌고 하면서 정작 그 민중(대중)과 소통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자신들의 낡은 이념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들기 때문에 민중의 거부감을 사서 결국 대중적인 지지를 잃었던 좌파 지식인들의 몰락을 따르고 있는 셈. 한편 댓글에 의견을 쓴 어느 네티즌은 박노자의 저 칼럼을 가리켜 "예술에 대한 전체주의적 시각 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경직되고 편협한 시각을 두루 내재하는 反문화적, 反예술적 사고가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보았는데, 소련이나 중국,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중 예술 작품들에 무조건 사회주의적 혁명 이념을 넣어야 한다고 강요했고, 그러한 이념이 없는 순수 예술을 반동적 부르주아라며 탄압한 바 있다.

이렇듯, 국제적인 시각은 현존하는 현실 사회주의 세력을 포함한 구공산권에 경도되어 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 중국에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이정도면 뭐 중국에 귀하하지 왜 한국에 귀화했냐는 발언도 과도한 게 아닐 정도다. 문제는 이런 우호적인 시각이 지나칠 때가 있어서 엄연한 해당 사회들의 문제점이나 전체주의적인 폭력 행위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아예 옹호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대개 한국의 진보/좌익 세력에서도 꽤나 나타나는 행태다.[22] 하지만 박노자의 경우 아예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 아예 친중의 연장선상에서 동북공정을 지지한 적도 있다.[23] 박노자의 국제적인 시각은 민족주의에 경도된 한국 좌익에 비해 좀 더 원리적인 사회주의적 국제관을 가졌다는 차이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소위 NL 및 운동권과 유사해보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진영 논리에 입각하여 중국의 경쟁국이자 현대의 패권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가루가 되도록 깐다.[24] 또한, 미국의 세력권에 속한 나라라는 관점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판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민족 볼셰비키주의자를 좌익 민족주의자라고 옹호한 바 있다. # # 좌파민족주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민족 볼셰비키는 애초에 좌파 민족주의 사상조차 아니다. 1차대전 이후 경제가 파탄나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가득할때 급진적 보수주의자들이 반자본주의 이론을 섞어서 만든 " 보수 혁명" 이론이 민족볼셰비즘을 비롯한 제3의 위치 사상이다.[25] 그 외에서 한국의 내셔널리즘 깐다고 "예컨대 최근 러시아에서는 공산당원이나[26] 민족볼셰비키당 당원 등 급진주의자들이 러시아 국기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국가란 민중을 억압하는 적대세력일 뿐이니 그런 행동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요런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 이건 전간기 독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혐오하는 보수혁명론자나, 나치당원들이 국가(바이마르 공화국)를 모독하는 행위를 가르켜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진보인사라고 부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보수 정치의 3대 코드를 반여성, 반중국, 반난민으로 지적하였다. # 물론 한국의 반 난민 정서가 가짜 뉴스 범람으로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해당 기사에서는 중국에서도 반난민 정서가 심각한 것은 얼버무렸다. 차라리 박노자가 혐오하는 오늘날 러시아 연방이 중국보다 난민에게 훨씬 관대한 편이다. 러시아의 경우 야지디교, 아시리아인 난민 포함 상당수를 받아들였고 2019년 기준 228,990명의 난민이 체류하는 상황이다. # 반면 중국의 경우 중동이나 아프리카 출신 난민을 두 자리수 수준으로 수용하는 상황이며, 탈북자는 아예 북송해버린다. 아프간 난민 수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 했다가 분청들에게 조리돌림당한 중국의 대학교수[27] 대한민국 보수가 반중이라는 것도 지나친 일반화인데,[28] 박근혜 정권 당시의 친중 외교가 여야 막론하고 비판받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보수, 진보 막론하고 여당 정권은 친중, 일반 대중은 국민 감정 문제로 반중인 상황이다.

2023년에는 한국인들이 현대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잘나가게 된 것이 순전히 자신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냉전 체제와 미국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면서 그런 식으로 보면 오히려 북한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선진국'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4.1. 의견 관련

메갈리아 워마드에 긍정적이다. 이 글과 같이 성향이 비슷하다 볼 수 있는 유시민이나 시사인[29]과 같이 한국을 '여성에게 그야말로 지옥이 된 이런 사회'라며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에 대한 비난을 한다. 이 글에서는 워마드와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남성을 통틀어서 '없는 남자[30]', '"고추 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화이트 트래시랑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여성이 남성 임금의 63%만 받는다는 정보를 삽입하였다. #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여성 인권이 북한이나 필리핀보다 못하다는 식의 비하가 곁들어진 근거없는 과격한 표현이다. #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 차이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데서 기인[31]한다.

문제는 박노자의 페미니즘 관련한 발언이나 기사들이 대개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언급이 부실하고 대신 "고추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 "여성에게 지옥이 되어버린 사회" 같은 과격한 감정적인 발언을 삽입하는 것에서 보듯, 진영논리에 목적을 두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독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을 비하하기를 즐기던 박노자는 동독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현재 대한민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교는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은근슬쩍 삼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박노자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미국 진보 진영에서 노엄 촘스키를 옹호할 때 사용하는 "이런 식의 비판은 Whataboutism 아니냐"라면서 졸지에 인문학계의 거장 노엄 촘스키와 박노자를 동일시하는 당혹스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애초에 그의 논란들의 기원은 평소 박노자의 노골적인 이중잣대와 과격한 발언에 있다. 진정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의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을 걱정한다면 남성 입장에서도 페미니즘 관련한 오해와 편견을 풀 수 있는 글을 써야 맞겠지만, 박노자는 이런 노력 대신에 "없는 남자", "고추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 같은 과격하고 감정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박노자가 서양의 페미니즘과 한국의 페미니즘은 기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발언들인데 서양의 페미니즘 서프러제트 등 자율적인 운동을 통해 시작되었다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20세기 초에 개신교의 영향으로 타율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르다.[32] 박노자는 둘을 동일시하여 같은 페미니즘이라고 오해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애초부터 뷔페미니즘 성격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이러한 비판을 우파세력의 백래시 수작으로만 간주하고 있다.

성범죄에 대해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도 좋다고 한 바 있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 글[33] 이는 여성에 대한 언더도그마에 휩쓸려 인권의 기본적인 원칙을 부정하는 감정적인 발언이다.[34] 일부 여론이 성범죄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 주장하는 것에 대한 대응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선 유죄추정의 원칙을 하는 이중잣대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시스젠더 남성에 대한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노르웨이 같으면 대다수의 남녀(전체의 75~80% 정도)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거부는 소수의 몫이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로 페미니스트가 소수자다."라는 주장 역시 체리피킹으로 해석 가능한데, 노르웨이는 남녀가 모두 징병 대상이며 징병제도 한국처럼 가혹행위나 폐단이 심각하지 않다. 그리고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남녀가 학교/호스텔 등에서 같은 샤워실을 쓰는데다가 인터넷 검열이 없는 나라이다. 명목상으로는 통계를 들이밀지만, 정작 노르웨이의 페미니즘과 한국식 페미니즘의 차이, 그리고 한국 사회 전반의 사회보수주의을 고려하지 않은 그냥 감정에만 호소하는 주장일 뿐이다.

그는 평소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를 맹렬히 비난하고 페미니즘 등 의제에 있어서 좌파 학자 답게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인종이나 여성 의제가 아닌 부분에서는 둔감한 인권 감수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령 박노자는 비평글을 쓸 때 비판 대상에게 '자폐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원본 아카이브[35] 황교익이 방송에서 저 표현을 사용했다가 소수자 혐오로 큰 논란이 되었다는 것과, 노르웨이 등 서구권에서 자폐 권리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4.2. 친중 성향?

한국경제 대안은 중국 영향권 편입

전세계적으로 이에 따라 무역 질서가 곤란에 빠질 경우에는 한국으로서는 아마도 유일하게 4~5% 이상의 성장을 계속하는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하는 것은 유일한 선택일 겁니다. 그런 상황으로 봐서는 한미 FTA를 고집하려는 국내 일부 ‘친미 완고파’들의 행동은, 1890년대 초반의 친청 민씨 세도가들의 행동과 거의 똑같이 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무역 질서가 곤란에 빠질 경우) 한반도 전체가 중화 영향권으로 편입되는 경우에는, 사실 남북한의 평화 공존, 교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몇십 년 후에 만약 이북의 왕조와 이쪽 지배자들 사이에 통일조약이 맺어진다면 북경에서 맺어질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걸 가치 평가하시기 전에 이게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신장에서의 이슬람계 주민에 대한 박해 등 수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인도네시아나 이집트와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마저도 중국에 호감을 갖는 이들이 늘 50%를 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쟁을 밥 먹듯이 해온 미국과 대조적으로 1979년 이후 전쟁을 삼가 온 중국의 평화지향적 외교정책이 호감을 끈 것으로 이해된다. 출처

과거 공산권에 속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등과 한국을 비교하며 한국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 후 은근슬쩍 중국과 북한 칭찬을 집어넣는 전략이나, 한국 군대에 입대한 미국 교포 병사가 질병을 얻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면 조롱조의 기사를 올려놓는 행태[36] 등도 문제가 된다.

민주노동당의 몰락 이전과 이후로 발화 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 전에는 서구 좌파의 입장에서 한국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거의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적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으며 탈국가, 탈민족 그리고 민족주의에 탈한다고 겉으로 말은 하고 있으나 결국은 식민사관, 중국사관[37], 끝에서야 개인적 반한감정까지 포함한 발언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이 많다. 한국 귀화 전부터 매우 친중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인용하는 자료들의 폭이 넓다고 주장하지만 사학지식에서는 일반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내용까지 인용한다는 평도 있다. 특히 임나일본부에 대한 일부 찬성 발언에서 일본 극우들이 주장하는 왜5왕 기록이 한국,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중국 기록이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인용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기록은 깡그리 무시하고 남조가 일본이 조공까지 했다는 남조의 권위를 위해 기록된 왜5왕 기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지식이 전문적이지 못하고 사학 등 많은 지식을 위키 등 인터넷에서 보고 주장하는 거 아니냐는 평이 있다.

2009년 진보 인터넷 매체에 한국경제 대안은 중국 영향권 편입 출처이란 주장을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는데, 해당 주장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비판에 대한 재반박이 있다. 박노자 왈, "한반도가 중화권 안으로 흡입이 돼가는 것이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지 '좋은 일'로 보거나 '긍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하였으나 진보신당 내에서도 비판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중화권이네 마네하는 말 자체가 박노자가 즐겨 인용하는 사학 지식이란 것이 전부 중국 민족주의 왜곡 역사관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38]

그리고 웬만한 보수적인 한자 지지자들을 능가할 정도로[39] 한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언어순화를 반동으로 격하하는 인물 #1 #2인데, 과거 한겨레 블로그에 한자 문화권을 공고하게 구축하기 위해 한자 사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논설을 게재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한자 문화권 집착은 중국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블록 건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박노자는 "중국은 미국처럼 세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 #로 중국을 중립적인 파트너로 간주한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중국의 한복공정을 은근슬쩍 옹호하는 기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

4.2.1. 이면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뭐라고 부정적으로 말하기가 힘듭니다. De mortuis nil nisi bonum이라고, 망자에 대해 비판할 일은 없죠. 특히나 감옥에서, 암으로 돌아가신 분 같으면...뭐라고 하기 전에 일단 그를 불법 체포, 구속하여, 병보석도 불허한 관헌의 태도부터 비판함이 정당할 겁니다. 의견을 가지고 사람을 잡아 하옥시키는 것은 개명한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더군다나 어차피 중국에서 동정을 얻기 어려운 의견이고, 그 문제점이 자명한 의견인데, 그냥 가만두는 것은 당으로서는 맞기도 하고 더 이롭기도 했을 겁니다. 劉暁波 교수를 하옥시키는 것은 분명히 당의 범죄이자 정치적 오류죠.
- 2017년 7월 16일 박노자 페이스북

류샤오보를 구금했던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친중 성향과는 별개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 및 사회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다. 박노자의 류샤오보 비판은 류샤오보의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300년의 서구열강 식민지배”와 같은 발언을 두고 그가 식민주의를 옹호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박노자의 류샤오보 비판
이 지구촌에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것은 늘 어렵다. 한데 그들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이 최근에는 마녀사냥과 같은 광란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을 무조건 수용소에 집어넣으면서 부모와 영유아들을 떼어놓는 등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거의 100만명에 이르는 위구르족 등 이슬람 신자들이 각종 ' 재교육 캠프'에 강제 수용돼 반인도적 인권 유린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한다. 미국의 공식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고 중국의 공식 이념은 사회주의지만, 양국의 마이너리티 정책에서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의 흔적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타자를 강제로 쫓아내거나 ‘우리’와 동화시키려는 국가의 폭력만 눈에 띌 뿐이다. 미증유의 생존권 위협에 놓인 위구르족에 대한 정책들은 한민족이 일제강점기 말에 겪은 민족말살책을 방불케 한다. #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중국의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자국의 문제점에 눈 감으며 타국 비판만을 일삼는 한국의 극단적 혐중론자들을 논박하는 글을 여러 번 쓰기도 했다. # #

4.3. 한국 불교 비판 관련한 이중잣대 논란

한국 활동 초창기에는 한국 불교 관련한 그의 발언들이 다 틀린 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좋은 평가를 받긴 했으나, # 요즘 들어서는 한국 불교계 또한 (대놓고 저격은 하지 않더라도) 그와 거리를 두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 한국 불교계는 그동안의 고루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 서양인이 한국 불교로 개종한 경우를 띄어주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박노자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과격한 주장을 하더라도 좋게 넘어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호국불교 사상을 이중 잣대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비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보이는 점이 문제였다. 비교하자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제강점기 때 징병을 거부한 일 역시 외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고, 호국 불교 역시 외세의 침탈과 약탈로부터 민간을 보호하는 바이지만, 박노자는 전자만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후자는 다른 관점을 적용한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박노자는 한국 불교계의 어떤 승려도 종교인이 군사훈련을 받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40] 한국 불교계가 군국주의화되었다는 다소 공격적인 주장 하에 다른 나라 불교계의 사례와 체리피킹으로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41] 그러나 이는 상좌부 불교 문화권과 동아시아 대승불교 문화권의 발전 및 현지화 역사를 간과하는 주장이라는 반박이 가능하다. 불교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게 오호십육국시대인데, 당시 달마대사와의 일화로 유명한 무제(양)가 불교를 광신하면서 국가를 파탄낸 사례가,(당시 농민들은 병역 요역을 피하기 위해 개나소나 다 가짜로 승려가 되었는데 불심이 지나치게 깊었던 양무제가 이를 방치하여 양나라 국가 재정이 박살났다.) 후대 왕조에 두고두고 언급될 정도로 유명했다. 이후 동아시아 왕조들은 불교를 존중하되 농민들이 세금이나 군역을 지기 싫어서 절로 도망가는 일에는 강경 대응했고, 도저히 컨트롤이 안된다 싶으면 대규모 폐불 정책을 펼쳐서 사찰 수백수천여개를 한 번에 허물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성리학이 출현하기도 이전 당나라에서도 대규모 폐불 정책이 벌어졌고, 성리학이 발흥한 송나라 이후에는 성리학계의 불교 공격이 더 심해졌다. 유생들이 출가한 승려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국가에 요역이나 군역을 지지않는다며 불교가 국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일이 흔했고,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결국 타협안으로 나온 것 중 하나가 고려와 조선시대의 호국불교이다. 박노자는 한국의 호국불교 및 국내 승려들이 병역 거부를 하지 않는 것을 마치 전부 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동아시아 불교는 유교 및 도교와 서로 교류 및 견제하면서 발전해온 문화이고 호국불교는 결코 박노자의 주장처럼 일제강점기 때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게 아니다. 동아시아 불교사 관련한 기본 상식마저 누락하고 곡해하는 것은 둘째치고, 미얀마나 스리랑카의 불교계 관련한 엉터리 인용도 문제이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병역 문제가 해결된 중장년층들이 출가하는데 비해 태국 같은 나라는 불교와 일상생활이 워낙 밀접하다보니 청년 시절에 출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즉 서로 다른 상황을 굳이 억지로 같은 맥락인 것처럼 비교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박노자 "호국 불교는 일제 잔재, 스님 입대는 파계 해당 기사에 소개된 박노자의 발언 역시 박노자 특유의 과격한 어휘사용과 노골적인 진영논리에 입각한 체리피킹이 문제가 되는데, 박노자가 언급한 불살생 아힘사 교리는 엄밀히 말하면 불교 교리보다는 자이나교 교리에서 강조되는 내용으로 아함경 예기하면서 그 아함경에서 비판하는 대상인 자이나교 교리를 예기하는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조계종 간부도 아닌데 함부로 파계 운운하는 자체가 해당 인물이 불교 관련한 기초 상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노자 기준으로는 이런 스님도 중국의 혈맹 북한과 대치한다는 이유만으로 파계승이 되는 셈이다. 오히려 불교계 내에서는 박노자가 자신의 평소 과격한 한국 비판 및 한중합방과 동북공정까지 옹호하는 중빠 성향을 쉴드치기 위해서 불교 신자를 사칭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5. 저서

저서로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2권,《나를 배반한 역사》,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열패의 신화》, 《우리가 모르는 동아시아》, 《비굴의 시대》, 《거꾸로 보는 고대사》, 《러시아 혁명사 강의》[42] 등이 있다.

영화 김복동에서 진짜 깨알같이 스쳐지나가는데 누구인지 설명하는 자막도 없고 대사 한마디도 없어서 오로지 김복동 할머니의 노르웨이 방문이라는 정황+박노자의 얼굴로만 간신히 유추 가능하다.

6. 여담

그의 장인이 바로 55년 간 무료 결혼식을 집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사진사 백낙삼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신신예식장에서 사진 촬영비만 받고 가난한 신혼부부들을 위해 결혼식을 공짜로 치러줬는데, 이런 선행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면서 1988년에 국민포장을, 2019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에 서훈되었다. 2023년에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박노자 본인도 장인인 백낙삼의 주례 하에 이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학교폭력을 겪었고 PTSD에 시달린다.
처음 학교 시절에 폭력을 당한 것은 약 9살 때인데, 그 뒤로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주먹을 쓸 줄 모르는 책벌레라는 이유로,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중학교 마칠 때까지 시달려왔습니다. #
나만 해도 불량배처럼 보이는 일군의 젊은이들을 거리에서 보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몸이 약간의 경련을 일으키게 돼 있다. #
저는 중학교 시절에 왕따 가해에 노출된 뒤로는, 그 가해자들을 약 30년 동안 악몽에서 계속 봤습니다. #
그래서 학교폭력에 관심이 많고 학교폭력을 다루는 글도 종종 썼다. # # # 학교폭력이 인류 보편 적폐라는 걸 밝히고 원인이 계급사회의 모순임을 통찰한다.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 - 2008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8 탈당


[[진보신당|
파일:진보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2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2 정당 해산


[[진보신당연대회의|]]
2012 - 2013 재창당


2013 - 현재 당명 변경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진보신당|
파일:진보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42,995 (1.13%) 낙선 (6번)

[1] 대한민국 주민등록 서류상으로 등록된 이름이다. 2012년 총선에서 이 이름으로 비례대표 후보에 등록되었었다. 본래 러시아어 이름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의 성과 이름의 순서만 한국어식으로 바꾸어서 등록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티호노프가 맞지만, 티코노프로 등록한 이름을 계속 사용 중이다. [2] 노르웨이에서 거주해서 그런지 노르웨이 적색당과 이중 정당을 보유하고 있다. [3] 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할 때에는 전에 쓰던 성명을 발음나는 그대로 한글로 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한국식 성명으로 바꾸려면 성본창설허가 내지 개명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족관계등록비송 문서 참조). 조선족의 경우는 한국식 한자성명을 그대로 쓸 수 있는 특례가 있지만, 다른 한자문화권 외국인(조선족이 아닌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베트남인)은 자기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쓰고 싶다면 위와 같은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현재는 박씨로 창성창본 허가를 받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고 한다.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1편에서는 열녕(列寧, Lièníng) 박씨를 언급했다. 참고로 열녕은 레닌의 중국어 표기이다. [4] 졸업 당시에는 한국학과로 개명. (중간에 한소수교가 있었다.) [5] 이로 인해, 힌두교와 밀교를 일부 섞은 교리의 옴진리교가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에서 잠시나마 교세를 누릴 수 있었다. [6] 아내의 아버지는 창원시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어려운 형편의 부부를 위해 무료 결혼식을 주최하는 신신예식장의 사장 백낙삼씨이다. # [7] 그런데 정작 자기 아들은 그 폭력적인 문화를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8] 소련은 징병제 국가였으며, 대학생에게는 병역을 면제해 주었다. [9] 독자연구가 아니라 실제로 박노자가 자기가 소속된 정당임을 밝혔다. # [10] 총선 출마자는 주민등록명을 써야 하는데, 상술된 대로 귀화 후의 등록명도 박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 [11] 해당 출처에서는 '브라이언 마요즈'라고 표현하고 있다. [12] 김기현도 비슷한 발언을 해서 뉴라이트 논란이 있었다. # [13] 반스탈린주의라고 표현하지 않은건 그가 스탈린 시절의 소련에 대하여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14]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마르크스주의자들 마다 의미가 다른데, 민주사회주의자들은 보통선거를 통한 무산 계급의 우위 상태로, 레닌주의자들은 전위정당(공산당)에 의한 국가권력 쟁탈과 자본 계급의 물리적 배제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는 "노동자 민주주의"로 이해했다. [15] 박노자 교수의 국가주의 비판도 한국의 평균적인 진보파의 주장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가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이론가의 글을 인용하거나, 감옥폐지, no victim no crime 같은 주장을 한적이 있는가? 일반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스트의 대립이 국가에 대한 입장이라는 것인데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언급했듯이 현실의 마르크스주의자(레닌주의자들)들이 국가숭배 경향을 표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히 국가가 모든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아니다. [16] 박노자의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스탈린은 잔인하지만 그의 정책은 당시 소련에 불가피한 필요악이었으며, 스탈린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은 극우적 반혁명파의 주장이라는 것인데 과거 흐루쇼프가 비슷한 소리 했다가 형가리가 소련의 영향력에서 이탈하려하자 탱크로 밀어버렸다. [17]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이 일치하는게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한국인들에겐 이게 뭔소린가 싶지만 유럽 근현대사에선 그렇게 희귀한 경우도 아니다. 익히 알려진대로 폴란드 분할 이후 유럽에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우크라이나-벨로루시-리투아니아-폴란드 일대를 흡수한 제정 러시아는 포그롬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억압적인 정책을 많이 폈으나, 대러시아 민족주의 반대와 사회주의적 피지배민족간 연대를 주장하며 집권한 소련 정권은 적어도 눈에 보이는 제도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은 전면 철폐하고 반유대주의를 봉건적인 사회악으로 비난했다. 이런 소련의 메세지에 호응하여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동유럽의 도시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유대인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대거 투신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동시대 성장하던 전간기 유럽 파시스트들에게 '공산주의=유대인'이란 선동을 할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18] 실제로 이는 미국에서 DSA(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와 연관된 아나키스트들에대한 다른 아나키스트들의 태도다. [19] 그는 국가자본주의론이 클리프주의자들의 광신이라는 맥락의 주장을 한적이 있는데, 국가자본주의는 클리프주의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며, 클리프주의란 것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애초에 아나키스트들은 볼셰비키 혁명이후 소련이 급속도로 관료화 되자 국가자본주의라는 비난을 했었다. [20] 박헌영의 6.25전쟁 주도는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김일성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냐, 정말로 한반도를 공산화하려고 했느냐) 주도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21] 이유는 간단하다. 나치 자체가 서유럽으로 대표되는 게르만족을 최고로 놓았기 때문에 그들과는 전쟁을 하면서도 학살 등의 잔학행위는 하지 않은 반면, 자신들이 열등하다고 상정한 슬라브족 위주의 동유럽인들을 엄청나게 학살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독일이 소련에 한 짓 1/10만 해도 독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다. [22] 단, 좌익 내에서도 국제관에 대한 문제는 일관되어있지 않고 어느 정도 분열되어 있다. 일례로, 한겨례 신문에서 중국의 패권주의나 미국과의 대립을 적극 옹호하며 친중사상을 설파하다가도 중국의 티베트/위구르 탄압에 대해 비판 기사를 싣기도 한다. [23] 물론 박노자를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측은 박노자가 중국을 동양의 나치제국이라고 칭한 사례를 들며 친중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박노자의 SNS나 글 전반적인 논조는 빼도박도 못하게 " 중빠"에 가까우며, 중국을 나치독일이라고 표현한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 동북공정을 옹호한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24] 후술하듯이 러시아에 대한 그의 비판 역시 중국의 잠재적 경쟁국 중 하나 혹은 소련 계승권 논란 등 관련하여 친중 진영 논리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25] 슈트라서주의라는 유사한 사상도 있는데 볼셰비즘에 나치를 부었는가(민족 볼셰비즘), 나치에 볼셰비즘을 부었는가(슈트라서주의)의 차이일 뿐 똑같은 놈들이다. 이들은 주류 나치에게 당했다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좌파 운동에 엔트리즘 시도 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들도 주류 나치 처럼 군국주의 쩔어있고 유대인 혐오하고 전체주의 좋아하는 것은 똑같다. [26] 이쪽도 정상적인 부류는 아니다. [27] 박노자가 허구한 날 비하하는 대한민국의 경우 정우성 같은 대표적인 난민 인권 운동가들마저 사이버 테러로 글을 하루만에 삭제해야 하는 일 따위는 보기 힘들다. [28] 박노자 기준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권 역시 보수우익 정당에 가깝다. [29] 글의 제목인 "성난 남자"들의 문제는 과거 시사인에서 문제가 됐던 달의 잡지 제목인 '분노한 남자들'과 비슷하다. [30] 재산의 유무를 가리킨다. [31] 필리핀처럼 국내 제조업이 빈약하고 저임금 서비스업이 주 산업인 경우 통계상으로는 여성 임금 수준이 남성보다 높은 평등 사회로 나오기도 한다. [32] 서양의 페미니즘은 "여성은 가부장제의 편견과 달리 약하거나 어리석지 않다."는 모토가 있다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여성은 약하고 가련한 존재이다."라는 모토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페미니즘은 서양의 초기 래디컬 페미니즘조차 반대했던 젠더결정론을 수용하고 여성배려라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규범을 요구하는 모순이 있다. 이는 한국의 보수주의 페미니즘이나 래디컬 페미니즘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심리이다. [33] 반면 윤미향 정의연을 진영 논리를 바탕으로 옹호할 때는 # 어떤 의혹이 제기돼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을 범인 취급하는 것은 원칙의 위반이라는 주장을 한다. [34] 게다가 성범죄는 시스젠더 남성만 자행하는 것이 아니고 무고, 셋업, 누명으로 인한 피해도 막심하기 때문에 인권 개념이 없었던 전근대와 달리 근대에 이르러 무죄추정의 원칙이 성립된 것이다. [35] "예컨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을 ‘강력히 규탄’한 뒤 다음과 같은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지금 유럽에서는 중국인들이 버젓이 한식당을 열어 한류를 돈벌이에 이용하며 한식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오슬로에서 흔히 스시(초밥) 식당들을 운영하는 한국 교민들은 ‘남의 나라 음식’을 팔지 말고 자진 폐업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이와 같은 농도의 자폐적 국수주의가 국회에서 발설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문화 공정 반대’를 외치는 등 이 배타주의적 감정의 분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승하기 바빴다." [36] 마치 일본 언론에서 한국의 자연 재해를 보도하는 듯한 논조 [37] 중국 문헌만을 증거로하는 사관 [38] 심지어 박노자의 모국 소련-러시아 학계에서도 한국사를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발해/역사귀속과 계승인식의 러시아 관련 서술 참조 [39] 솔직히 한자 한정으로는 조선일보에서 모셔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40] 물론 틀린 말이다. 일부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던 승려들도 존재한다. [41] 오슬로 대학에서 그가 개설한 강좌명은 Buddhism and Military Violence in Colonial and Early Post-Colonial Korea, 1920s-1950s로 강좌명을 보면 한국 불교에 대해 별로 긍정적으로 다루는 강좌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42] 클리프주의 계열 단체인 노동자 연대에서는 트로츠키를 저평가하고 그에 비해 스탈린을 고평가했다며 아주 혹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