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긱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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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18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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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23대 |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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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스피드 (1997~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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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긱스 (2004~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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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벨라미 (2007~2011) |
라이언 긱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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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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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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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3 · 1997-98 · 2000-01 · 2001-02 · 2006-07 · 2008-09 |
라이언 긱스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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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퍼드 시티 FC 구단주 | ||
Salford City Football Clu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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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라이언 긱스 Ryan Gig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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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라이언 조지프 긱스 Ryan Joseph Gig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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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3년 11월 29일 ([age(1973-11-29)]세) | |
영국 웨일스 카디프시 칸톤 구역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웨일스|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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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79cm, 체중 74kg | |
후원사 | 리복 | |
직업 |
축구 선수 (
윙어[1]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경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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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000><colcolor=#fff> 선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7~1990 / 유스)[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0~2014) |
감독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 / 감독 대행)[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2016 / 수석 코치) 웨일스 대표팀 (2018~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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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솔퍼드 시티 FC (2014~ / 구단주)[4] 솔퍼드 시티 FC (2024~ / 풋볼 디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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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64경기 12골 ( 웨일스 / 1991~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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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윙어.트레블 1회[5], UCL 2회 우승, PL 13회 우승[6], PFA 올해의 팀 6회 선정, PFA 올해의 선수 수상, PL 통산 최다 도움[7]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자 원클럽맨이다. 다만 약체인 웨일스 대표팀 소속이었기에 월드컵이나 유로 출전 경력이 없는 비운의 선수 중 한 명이다.[8]
현역 은퇴 후에는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경질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대행을 맡았고 2018년부터 웨일스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유로 2020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여자친구 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2022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후 수석코치인 롭 페이지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스카이 스포츠에서 만든, 라이언 긱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Football's Greatest - Ryan Giggs[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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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출장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도움 1위
1991년 3월 2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데니스 어윈과 교체 투입되어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맨체스터 더비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괜찮은 외모에[10] 화려한 플레이스타일, 젊은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것 등 스타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데뷔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11] 이에 퍼거슨 감독은 긱스에게 2년 간 인터뷰 금지령을 내렸고 긱스는 당시엔 그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든 후 덕분에 자신은 인기 스타가 아닌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도움 1위
1991-92 시즌에는 당시 주전 레프트윙이었던 리 샤프의 부상으로 1군 기회를 얻게 되었고, 나이를 뛰어넘은 빼어난 활약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 1992-93 시즌에는 등번호 11번을 받게 되었고 팀은 시즌 초반 부진했으나 후반기에 팀을 바로잡고 프리미어 리그로 새로이 출범된 리그 첫 우승을 이루게 된다. 이듬해에는 리그와 FA컵 더블을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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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스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도 철저한 자기 관리와 뛰어난 프로정신 또한 유명하며, 수많은 팀의 동료, 후배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선수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12]
나이가 들자 "몸은 느려지는데 머리는 더욱 빨라진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실제로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고 있다. 실제 긱스는 30세를 맞은 2002-03 시즌[13] 이후 두자리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팀 또한 세대 교체를 위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앨런 스미스 등 신진 선수가 다수 영입되면서 긱스 또한 인테르 이적 추진을 겪는 등 위기를 맞았다.[14] 긱스는 이에 맞춰 포지션을 중앙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옮겨 다니며 풍부한 경험과 번뜩이는 클래스로 여전히 클럽의 핵심 선수 중 하나로 활약하여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축구계의 명언을 실증했다. 포지션 변경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 극찬을 받았으며, 2007-08 시즌에는 리그 최종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가 하면,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결승전에 교체 출전하여 9년 만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8-09 시즌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15]되고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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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10-11 시즌
지금까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매 시즌마다 득점을 한 유일한 선수다. 10-11 시즌 개막전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이 기록을 이어 나갔다. 1월 17일 토트넘 홋스퍼 상대로는 리그 6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1월 22일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리그 2호 골을 기록하며 5-0 완승에 기여했다.이어서 3월 6일 리버풀전을 통해 리그 607번째 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바비 찰튼의 기록을 깨고 맨유 역대 최다 출장 선수가 되었으며, 현재 맨유에서 경기 출장할 때마다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킥에 있어서는 '왼발의 마법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뛰어야 하는 윙 포지션에서는 세월을 이기기 어렵나보다. 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이후 챔스에서 말 그대로 날아다녔고 8강에서는 1, 2차전에서 첼시를 무너뜨리는 어시스트 3개를 만들어보이는 미친 활약을 펼치면서 축구 커뮤니티에서 찬양을 받았다.
이어서 샬케와의 챔스 4강 1차전에서는 웨인 루니의 스루 패스를 받아 그때까지 엄청난 선방쇼를 보여 주던 마누엘 노이어에게 알까기를 시전, 선제골을 득점했다. 37세에 2010-11 챔스 주간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결승 바르셀로나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웨인 루니의 동점골을 어시스트[16]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팀은 3-1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1.2. 2011-12 시즌
시즌 시작 전 문제의 외도 스캔들이 터졌다. (후술) 선수 본인이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난 상황에서 스캔들이 미친 듯 터져 나온 탓에 사실 여부를 떠나 긱스 본인의 마음 고생은 장난이 아니었던 듯, 공항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10년은 더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팬들은 "긱옹 제발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줘요"라며 피눈물을 흘렸으나 당사자 긱스와 구단 측에서는 일언반구 없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아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맨유와 PL 역대 최고의 레전드 중 하나로 칭송받던 선수의 말년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에 대해 맨유 팬들은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고 타 팀 팬들은 아주 신나게 까고 있다. 때마침 폴 스콜스와 에드윈 반 데 사르의 은퇴가 겹쳐 일각에서는 "그냥 조용히 은퇴나 하셈"이라며 까고 있으나 2011-12 시즌이 개막된 현재까지 맨유 1군 스쿼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사생활이 깨끗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으나 경기장에서만큼은 프로 선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긱스였기에, 최소한 경기장에서라도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떠나는 것이 남아 있는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다.
2011-12 시즌 2라운드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후반 80여분 교체되어 들어오더니, 들어오자마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띄운 로빙 크로스로 웨인 루니의 헤더 골을 어시스트하는 위엄을 보였다.
3라운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도 교체 투입된 후 애슐리 영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이어서 챔스 조별리그 벤피카전과 칼링컵 리즈전에서 2경기 연속 전성기 빙의 골을 만들어 내는 위엄을 보여 주고 바르셀로나전에서도 촌철살인 킬패스로 2도움을 찍어 주시는 활약을 보였다. 시즌 초반의 활약상만을 두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경기장 밖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것과는 달리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변함없을 것 같아 팬들은 그나마 미소를 머금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그래 까라. 난 축구 하련다"라는 모드인 듯 경기장에만 서면 클래스 인증샷을 찍었고 전 시즌부터 이어진 전성기 빙의 활약으로 2011 골든 풋을 수상했다. 그리고 맨유 측에서는 1년 재계약 떡밥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11월 들어서며 팀의 중원과 수비진이 부상 크리 및 컨디션 난조로 대붕괴되는 상황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아무래도 부상 재발과 로테이션으로 돌려야 할 수준의 체력에 몇 경기를 풀타임 출전하다 보니 무리가 간 듯. 단적인 예가 챔스 조별예선 최종전 바젤 전이었고, 풀타임 출전하여 피를 토할 듯 뛰어 다녔으나 별다른 성과는 올리지 못하고 팀의 패배와 챔스 탈락을 지켜봐야 했다. 그 날의 경기는 로이 킨의 한 마디로 정리된다. "제일 나이 많은 긱스가 제일 뛰어 다니더라."[17]
그리고는 분노가 폭발했는지, 17라운드 풀럼전에서 풀타임 출장하며 1골 2어시를 찍어버렸다.
22라운드 아스날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전성기 빙의 드리블로 아스날 수비진 3~4명을 순식간에 농락하더니 전반 내내 크로스 띄운다고 삽질하던 나니를 보다가 짜증났는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올린 크로스 한 방에 발렌시아의 헤더 골을 어시스트하는 위엄을 보여 줬다. 이로써 이번 시즌 3골 10도움, 어시스트 수 팀 내 2위. 이 양반, 한국 나이로 39세. 다만 리버풀과의 FA컵 경기에서는 그답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 주며 데 헤아, 웰백과 함께 팀 내 워스트 3인방에 꼽히는 굴욕도 당했다. 확실히 매 경기 날아다니지는 못하는 듯.
25라운드 리버풀전은 파트리스 에브라와 루이스 수아레스가 최고의 관심을 받은 경기였다. 맨유는 긱스, 스콜스를 동시에 투입하며 템포를 늦추며 점유율을 가져가는 작전을 세웠다. 이에 리버풀은 거의 공을 못잡으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 결국 후반전에 루니가 멀티골을 기록했다. 그 후 수아레즈에게 한골을 내주긴 했지만 그렇게 2:1로 맨유가 승리. 이로서 맨유와 리버풀은 이번시즌 1승 1무 1패에 골득실차까지도 똑같게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2월 26일, 노리치와의 26R 경기에서 자신의 900번째 경기에 출전했고, 웰벡이 경기내내 본인의 꿀패스를 날려먹는것을 지켜보다 결국 91분에 본인이 직접 극적인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기념비적인 출장기록을 자축했다.
32라운드까지 맨유는 연승을 달린 반면, 맨시티는 1승 2무 2패 부진 속에 8점이나 승점이 벌어져서 맨체스터 더비와 상관없이 리그 우승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33라운드 위건 애슬레틱 원정에선 처음으로 위건에게 0:1로 패했다. 위건 골키퍼인 알리 알 합시의 선전도 눈부셨고 위건도 심판 판정으로 날뛸 법함에도 침착하게 경길 진행하면서 승리했고 강등권을 탈출했다. 같은 33라운드 웨스트 브로미치를 4:0으로 이긴 맨시티와 승점차는 아직 5점으로 큰 걱정은 없지만 앞으로 1경기라도 진다면 맨체스터 더비 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34라운드 아스톤 빌라를 4:0으로 이기면서 분위기가 잘 되어가나 했더니만 35라운드 에버턴과의 안방 경기에서 4:4로 비겨 버렸다. 80분대까지만 해도 4:2로 앞서다가 막판 골을 연이어 허용한 타격이 컸다. 이로 인하여 맨시티가 울버햄턴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다음 경기인 36라운드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시티에게 지면 리그 1위를 다시 넘겨줄 상황이 되어버렸다. 승점은 같아도 득실에서 맨시티가 앞서있기 때문이다. 결국 맨시티에 1:0으로 지면서 2위로 밀려났으며 자력 우승은 매우 힘들어졌다. 자력 우승을 위해서는 남은 두 경기에서 매우 큰 점수차로 이겨 8점이라는 득실차를 역전시키거나, 아니면 남은 스완지 시티와 선더랜드 경기를 이기고 맨시티가 뉴캐슬 원정에서 지거나 비기길 기원해야 한다. 결국 리그 준우승을 거두면서,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2.1.3. 2012-13 시즌
시즌 초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기동력 저하로 발목이 잡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제 슬슬 끝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지만 전반기 말부터 서서히 올라오더니 후반기에는 여전히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FA컵 재경기에서 웨스트햄을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은 39살 먹은 아저씨가 경기장 헤집는 모습을 보며 해설자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2월 10일 26R 에버튼전에서 이번시즌 리그 마수걸이 골을 터뜨렸다. 이어서 펼쳐진 QPR전에서는 나니의 패스를 받아 2-0을 만드는 득점을 기록하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2013년 3월 1일, 팀과 1년 재계약을 하면서 2014년까지 올드 트래포드에 선수로서 남게 되었다. #
3월 5일, 본인의 성인무대 커리어 1000경기 및 라울 곤살레스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다 출장 공동 1위(144경기)를 달성하는 대기록의 역사를 세웠다. 상대는 챔스 16강 2차전 레알 마드리드. 본인도 선발출장하여 풀타임 소화하면서 공수 양면에서 그 후덜덜한 레알 미들진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에 해가 되는 행동은 그 어떤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선수의 이단옆차기로 인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는 이후 2014년 11월 27일 바르셀로나의 사비 에르난데스가 아포엘과의 경기에서 61분 이반 라키티치와 교체되며 깨졌다. 사비는 총 151경기 출장으로 1위로 올라섰고, 이에 대해 긱스는 "사비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단독으로 보유했던 기록이 깨진 건 아쉽지만, 그 기록을 깬 주인공이 사비여서 아픔이 덜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즌 종료와 동시에 은사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폴 스콜스의 은퇴,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과 필립 네빌마저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수놓았던 '퍼거슨의 아이들'은 이제 정말 긱스만 남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합류했던 긱스가 가장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남는 모습은 축구팬들에게 상당한 아이러니함을 가져다 주었다. 데이비드 모예스 체제로 재편될 2013-14 시즌 맨유에서는 플레잉 코치를 맡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나 현재로서는 확정된 것이 없는 상태. 하지만 팬들로서도 아마 다음 시즌이 '선수' 라이언 긱스를 보게 되는 마지막 시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2.1.4. 2013-14 시즌
7월 1일자로 데이비드 모예스 체제로 재편된 맨유에서, 필립 네빌과 함께 정식으로 맨유 코칭스탭 라인에 합류, 플레잉 코치(선수 겸 코치)를 맡게 되었다.공식적으로 맨유의 코치진에 합류하면서 경기 출전을 보기 힘들 듯 했는데 가끔씩 뜬금없이 출전해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체력 문제 때문에 풀타임은 불가능하지만 킥력은 여전하다.
긱스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다름 아닌 챔스 조별예선 레버쿠젠전과, 16강 2차전 올림피아코스전. 그날 레버쿠젠의 미드필드진은 나이 40살 긱스 한명에게 완전히 관광당했고, 1차전을 승리로 가져갔던 올림피아코스 또한 미들진에서 긱스에게 휘둘리다 로빈 반 페르시에게 해트트릭을 얻어맞고 침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금 과장 섞어서, 경기 한번 나올때마다 시즌 내내 파멸적으로 눈 썩는 경기력을 보여준 맨유 미들진에서 제일 훌륭한 활약을 보여준다 할 정도.
그리고 4월 26일, PL 36라운드, 긱스가 감독대행으로 나선 첫 경기에서 루니와 마타의 멀티골로 노리치를 4-0으로 개발살냈다.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5월 3일, PL 37라운드 2번째 리그 경기인 강등권 선더랜드와의 안방경기에서 0-1로 패하면서 올시즌 리그컵에 이어 선더랜드에게 2번째 패배를 당했다. 덕분에 선더랜드는 리그 잔류 가능성을 높였고 맨유는 12패를 기록했다.
현재 맨유팬들 대부분은 반 할 감독도 괜찮기는 하겠지만 퍼거슨 밑에서 제일 오래 있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맨유의 레전드인 라이언 긱스의 체제로 가는게 낫지 않겠느냐라는 목소리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맨유의 우드워드 사장은 긱스를 바로 감독으로 올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아무래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인 루이스 반 할 감독이 2014-15 시즌을 책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에 반 페르시는 아주 좋아할 것 같다. 웨인 루니는 걱정이다.
시즌 최종전이 열린 5월 11일, 이날 맨유가 사우스햄튼전에서 이기고 토트넘이 아스톤빌라에게 패하면 승점은 같아지고 골득실에서 앞서 6위를 차지해 유로파리그로 나갈 수 있었으나 결과는 맨유는 1:1 무승부, 토트넘은 3:0 승리로 끝나면서 맨유는 7위가 되어 유로파리그 진출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5월 19일에 루이 판 할이 차기 감독으로 선정되었고, 긱스는 수석 코치직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긱스는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러나 맨유와 PL을 통틀어 역대 최고 중 하나였던 선수의 커리어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맨유 통산 963경기 168골 254도움을 기록했다.
2.1.5. 긱스가 세운 기록들
- 한국시각으로 2011년 1월 17일 토트넘 홋스퍼와의 PL 경기에 출장하면서 리그 6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1년 3월 17세의 나이로 데뷔한 후 꼭 20년 만에 세운 기록. 2011-12 시즌이 시작된 현재는 바비 찰튼 경의 기록을 (606경기)을 이미 넘어섰다. 통산 리그 출장 기록은 672경기이며 클럽 최다 출장 기록은 963경기로 역시 맨유 최다 출장자이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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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5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 출장하면서 통산 성인 경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 데뷔 이후 프리미어 리그 출범 원년인 1992-93 시즌부터 2012-13시즌까지 22년간 매 시즌 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 그와 함께 EPL 최다출장 & 매년 출장 & 매년 득점 등등의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13-14 시즌은 골을 넣지 못하고 은퇴했다.
- 프리미어리그 통산 162어시스트. 맨유는 물론 프리미어 리그 최다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이다.
- 현재 UEFA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다 출장 3위(145경기)이며 챔스 역대 최고령 득점 2위(37세 289일[19]). 더불어 챔스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면 이 사람은 챔스 최다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49개). 다만, 공식 기록은 01-02 시즌부터 집계되어서 30개이다.[20]
- 1998/99 FA컵 4강 재경기(vs 아스날)에서 보여준 매직 드리블은 맨유 역사상 최고의 골로 선정되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요약하자면 클럽 선수로서는 화려한 커리어를 누렸지만, 국가대표로선 녹록지 못한 조국의 국가대표팀 전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FIFA 월드컵은 물론이고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마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조지 웨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21] 등과 더불어 명성에 대비되는 부실한 국대 커리어로 곧잘 거론되는 선수다.
FIFA 월드컵 대회 중에 언제나 나는 늘 작은 방에 틀어 박혀 있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기억해주겠지요. 이 영광의 대회 팬 중에는 영국의 작은 나라의 한 선수,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라이언 긱스가 FIFA 월드컵의 꿈이 좌절된 소감을 웨일스의 축구 전문지에다 직접 기고한 편지의 내용에서.
라이언 긱스가 FIFA 월드컵의 꿈이 좌절된 소감을 웨일스의 축구 전문지에다 직접 기고한 편지의 내용에서.
잉글랜드 대표가 되길 희망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질문이 여전히 날 괴롭힌다. 난 웨일스인이다. 이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끝이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내 부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잉글랜드를 위해 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라이언 긱스에게 "왜 잉글랜드 대표가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라이언 긱스에게 "왜 잉글랜드 대표가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영국에 나뉘어 있는 네 개의 축구협회를 선택하는 것에서 우선하는 것은 출생지와 부모 및 조부모의 출신지였다. 외국에서 태어나는 등의 일정한 특수요건이 있다면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한데 라이언 긱스의 친할아버지는 시에라리온 국적, 친할머니, 외조부모는 모두 웨일스 출신에 어머니와 아버지마저도 웨일스 출신이었다.[22] 그나마 긱스 자신의 출생지도 웨일스의 중심지 카디프. 현재 개정된 영국 국대 선발 규정대로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뛸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잉글랜드 대표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이언 긱스가 프로 데뷔하던 당시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도 그를 뽑으려 했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뽑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긱스는 어렸을 적 잉글랜드 학생선발팀의 주장으로 뛴 적이 있어서 오해를 부른 듯 하나 규정상 당시 학생선발팀의 발탁 기준은 선수의 출신이 아니라 거주지였다. 즉 국가대표와는 연관이 아예 없었다. 월드컵 비운의 별 긱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결국 라이언 긱스는 1991년 웨일스 U-21 대표팀에서 단 한경기를 뛰고 바로 웨일스 성인 대표팀에 차출, A매치에 데뷔하게 된다. 물론,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규정이 있더라도 어차피 같은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니 규정을 뜯어 고쳐가며 데려올 수도 있을 위인들이지만 그것은 라이언 긱스 자신도 그렇게 해서라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영국 현지,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긱스와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왼쪽 윙 자리는 20년이 넘도록 답이 없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잉글랜드는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게다가 조직력까지 갖춰져 있었던 명실공히 우승후보였다. 당시 맨유가 자랑하던 좌긱스-우베컴 라인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가동했다면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한 번 정도는 우승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레스 베일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웨일스 국가대표 최연소 데뷔였으며, 웨일스 국가대표 역대 최장기간 주장 역임이었다. 사실상 긱스 이외에는 전력이 참 눈물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라도 있다치면 베컴, 네빌, 퍼디난드 등 클럽팀에서 똑같이 우승을 맛봤던 동료들을 상대로 다구리를 맞아야 했던 긱스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긱스는 "분명 내가 공격하고 네빌이 나를 수비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모습은 (웨일스의 전력이 약해서) 늘 반대였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2007년 여름, 체코와의 유로 2008 예선 경기[23]를 끝으로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그의 국가대표 경력을 끝냈다. 팬들은 사방에 플랜카드를 걸고 주장 완장을 내려놓는 국가의 레전드의 뒷모습에 박수와 함께 눈물을 뿌렸다. 이렇게 긱스의 국대 경력이 끝났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Team GB)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올림픽 대표팀은 일반적으로 국대라 불리는 A 대표팀이 아니라 U-23 대표팀이고, 긱스가 평생 뛰었던 웨일스 대표팀이 아닌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팀이지만 그의 국제대회 마지막 도전이라 그의 팬들은 은근히 호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주장 자리에도 낙점되었다. #
2012 런던 올림픽 조별리그 2차전 UAE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24] 주장으로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8강 대한민국 전에서도 승부차기에서 영국 단일팀의 4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시켰으나, 불행히도 팀은 5번째 키커였던 다니엘 스터리지의 킥이 이범영 골키퍼에게 막히고 대한민국의 5번째 키커 기성용의 킥을 막지 못하며 승부차기에서 패배함에 따라 긱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항전 도전도 막을 내렸다. 유럽과 남미 국가들에게는 올림픽 축구는 A매치가 아니기에 결코 메이저 대회라고 할 수 없지만 긱스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선수 본인의 클래스에 비해 워낙 부실하다보니 탈락에서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웨일스 대표로 월드컵에 한번도 못 나간 것에 한이 맺혔는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집에서 혼자 노는 긱스라는 주제로 몇개의 웃긴 리복 CF를 찍었다. 혼자서 집 정원에서 웨일즈 국대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를 상대로 월드컵 결승전에 나간 상상을 하며 노는 것이 특히 웃기다. #
끝끝내 긱스가 은퇴할 때까지 웨일스는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은퇴 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드디어 64년 만에 진출에 성공한다.
2.3. 플레이 스타일
조지 베스트의 재림 혹은 왼쪽의 절대자라 불렸던 전성기 긱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귀신같은 드리블. 영국 축구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를 꼽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전성기 긱스의 드리블은 말 그대로 알고도 못막는 레벨이었고, 입이 벌어지는 스피드의 돌파에 이은 다이렉트 러닝크로스의 정확도는 당시 누구와도 비교를 거부했다.[25]주특기인 드리블을 이용한 돌파와 스피드,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왼발 크로스 능력과 패스가 강점이다. 거기다 득점력[26], 전술 이해도, 개인기 등 윙어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선수다.[27] 심지어 헤더마저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킥의 정확도 역시 천하의 데이비드 베컴과 번갈아가며 프리킥을 찰 정도였으며 베컴이 레알로 떠난 후에는 팀의 전담 키커였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베컴과 동시에 프리킥을 차는 듯한(페이크) 영상은 꼭 찾아보길 바란다.
젊은 시절의 긱스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술과 스피드, 판단력, 차분함을 갖춘 선수였다. 특히 드리블을 할 때면, 긱스가 가진 덕목들이 모두 시너지가 되어 말그대로 눈이 즐거운 드리블이 펼쳐졌다. 공을 발에 붙였다, 멀리 떨어뜨렸다를 반복하는, 제동 및 가속을 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깔끔한 볼 터치로 민첩한 방향전환을 하며 자유자재로 공을 몰았다. 원체 균형감각과 밸런스가 좋아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할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우아함을 뽐냈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이 맞붙은 FA컵 4강전이 좋은 예. 여기서 나온 일명 사과나무 골은 맨유 역대 최고의 골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28]
나이가 들면서 발이 다소 느려졌지만[29] 그래도 타고난 속도와 가속력 자체가 워낙에 뛰어나서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치고 달리기로 돌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 더 이상 상대 수비를 젊을 때 만큼은 따돌릴 수 없었고, 순발력도 젊은 시절보다 떨어지면서 일대일 상황에서 위력이 반감 되어있었다.[30] 그러나 긱스는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고, 화려함을 버리는 대신, 영리함과 정교함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은퇴를 바라보는 30대의 나이에 중앙 미드필더로의 변신을 시도한 긱스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 능력, 빠른 두뇌 회전을 무기로 새 포지션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31]
다만 굳이 단점을 찾는다면 반댓발(오른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32] 길고 긴 그의 커리어에서 그가 오른발로 넣은 골의 개수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무려 24년 간의 긴 클럽 경력에서 단 한 번도 퇴장을 당하지 않았을 만큼 페어 플레이어이기도 했다.[33]
3. 지도자 경력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3-14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기도 전, 플레잉 코치 역할을 수행하던 중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경질로 시즌 잔여 경기를 지휘한 것이 첫 감독 경력이다. 상기 선수 경력에 함께 서술. (2승 1무 1패)3.1.1. 2014-15 시즌
2014년 5월 19일 맨유의 차기 감독으로 루이 판 할 감독이 선임되면서 수석 코치에 내정되었다. 아무래도 구단 차원에서 차차기 지도자를 맡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키우는듯. 반 할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구단에 정식으로 합류할 계획이다.그리고 이에 따라,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현역 생활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맨유 통산 963경기 출장.
은퇴 후 그의 등번호는 유망주 아드낭 야누자이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야누자이의 소시에다드 이적 이후 앙토니 마르시알이 2016-17 시즌에 11번을 달게 되었다.[34]
3.1.2. 2015-16 시즌
저번 시즌에 이어서 판 할의 수석 코치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은 작년과 다르게 판 할 감독이 훈련장과 경기 당일에서의 권한을 부여했고[35] 전술적인 부분에서 긱스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과 스완지 전에서 2:1로 승리한 것. 이 경기 모두 긱스의 전술로 경기를 했다.
이번 시즌 판 할의 부진으로 다음 시즌 무리뉴와 함께 감독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판 할이 경질되고 무리뉴가 맨유 감독에 선임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긱스가 수석 코치 직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주제 무리뉴가 감독으로 공식 선임 되었다. 팀은 긱스가 U-23(2군)의 감독이 되기를 원하고, 긱스는 판 할의 후임 감독이 되기를 원했으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긱스가 떠난다고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 무리뉴는 어떻게든 긱스가 남게 하기 위해 원하는 어떤 자리든 내주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무리뉴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에도 7월 2일 자신의 야망을 위해 맨유를 떠났다. 29년간 오로지 맨유를 위해 헌신했던 왼발의 마법사도 끝내 막을 내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난 후에는 2016년 카디프 시티 감독 경쟁에서 밀렸었다.
3.2.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8년 1월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후 공석으로 남아 있던 모국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첫 경기인 중국전을 6-0 대승으로 잡으면서 좋은 시작을 보였다. 2018년 9월에 개막한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리그 B 4조에 속해 첫 경기 아일랜드전을 4-1로 이기고 덴마크에는 0-2로 패했다.
유로 2020 예선에서는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등이 포진된 E조에서 치열한 순위 경쟁 끝에 헝가리와의 최종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면서 조 2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긱스는 선수 시절 이루지 못했던 메이저 대회의 꿈을 감독으로서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감독 경력을 이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0년 11월 2일, 긱스가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 이로 인해 웨일스 축구 협회도 선수단 발표가 연기되었다고 밝혔고,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폭행 혐의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1월 3일 웨일스 축구 협회는 긱스가 11월에 지휘봉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롭 페이지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그리고 2021년 3월에 있을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 #, 6월에 있을 유로 2020까지 불참이 결정되었다. #
결국 2022년 6월 21일에 사퇴하고 롭 페이지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에 밟지 못한 꿈의 무대 참석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아라얀에서 열리는 웨일스 - 잉글랜드간의 영국 축구 더비 또한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긱스의 기여도가 사실상 없기도 했고 범죄 행위로 재판을 받는 와중이라 팀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4. 기록
4.1. 클럽 기록
<rowcolor=#ffe500> 시즌 | 클럽 | 리그 | FA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36] | 기타[37] | 전체 | |||||||||||||
<rowcolor=#fff> 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990-91 | 맨유 |
퍼스트 디비전 |
2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2 | 1 | 0 |
1991-92 | 38 | 4 | ? | 7 | 0 | ? | 8 | 3 | ? | 1 | 0 | ? | 1 | 0 | ? | 51 | 7 | ? | ||
1992-93 |
프리미어 리그 |
41 | 9 | 5 | 2 | 2 | 0 | 2 | 0 | 0 | 1 | 0 | 0 | - | 46 | 11 | 5 | |||
1993-94 | 38 | 13 | 7 | 7 | 1 | 0 | 8 | 3 | 0 | 4 | 0 | 2 | 1 | 0 | 0 | 58 | 17 | 9 | ||
1994-95 | 29 | 1 | 11 | 7 | 1 | 4 | - | 3 | 2 | 0 | 1 | 0 | 0 | 40 | 4 | 15 | ||||
1995-96 | 33 | 11 | 10 | 7 | 1 | 1 | 2 | 0 | 1 | 2 | 0 | 1 | - | 44 | 12 | 13 | ||||
1996-97 | 26 | 3 | 5 | 3 | 0 | 0 | - | 7 | 2 | 0 | 1 | 0 | 1 | 37 | 5 | 6 | ||||
1997-98 | 29 | 8 | 9 | 2 | 0 | 3 | - | 5 | 1 | 2 | 1 | 0 | 1 | 37 | 9 | 15 | ||||
1998-99 | 24 | 3 | 1 | 6 | 2 | 1 | 1 | 0 | 0 | 9 | 5 | 2 | 1 | 0 | 0 | 41 | 10 | 4 | ||
1999-00 | 30 | 6 | 12 | - | 11 | 1 | 2 | 3 | 0 | 1 | 44 | 7 | 15 | |||||||
2000-01 | 31 | 5 | 7 | 2 | 0 | 0 | - | 11 | 2 | 4 | 1 | 0 | 0 | 45 | 7 | 11 | ||||
2001-02 | 25 | 7 | 3 | 1 | 0 | 0 | 13 | 2 | 4 | 1 | 0 | 1 | 40 | 9 | 8 | |||||
2002-03 | 36 | 8 | 9 | 3 | 2 | 0 | 5 | 0 | 0 | 15 | 5 | 3 | - | 59 | 15 | 12 | ||||
2003-04 | 33 | 7 | 11 | 5 | 0 | 8 | 8 | 1 | 4 | 1 | 0 | 0 | 47 | 8 | 23 | |||||
2004-05 | 32 | 5 | 10 | 4 | 0 | 0 | 1 | 1 | 0 | 6 | 2 | 1 | 1 | 0 | 0 | 44 | 8 | 11 | ||
2005-06 | 27 | 2 | 10 | 2 | 1 | 0 | 3 | 0 | 0 | 5 | 1 | 2 | - | 37 | 4 | 12 | ||||
2006-07 | 30 | 4 | 7 | 6 | 0 | 2 | - | 8 | 2 | 8 | - | 44 | 6 | 17 | ||||||
2007-08 | 31 | 3 | 6 | 2 | 0 | 3 | 9 | 0 | 2 | 1 | 1 | 0 | 43 | 4 | 11 | |||||
2008-09 | 28 | 2 | 6 | 2 | 0 | 2 | 4 | 1 | 2 | 11 | 1 | 3 | 2 | 0 | 3 | 47 | 4 | 16 | ||
2009-10 | 25 | 5 | 11 | 1 | 0 | 0 | 2 | 1 | 1 | 3 | 1 | 1 | 1 | 0 | 1 | 32 | 7 | 14 | ||
2010-11 | 25 | 2 | 8 | 3 | 1 | 1 | 1 | 0 | 0 | 8 | 1 | 5 | 1 | 0 | 0 | 38 | 4 | 14 | ||
2011-12 | 25 | 2 | 8 | 2 | 0 | 0 | 1 | 1 | 0 | 5 | 1 | 2 | - | 33 | 4 | 10 | ||||
2012-13 | 22 | 2 | 3 | 4 | 1 | 2 | 1 | 2 | 0 | 5 | 0 | 1 | - | 32 | 5 | 6 | ||||
2013-14 | 12 | 0 | 2 | - | 2 | 0 | 0 | 7 | 0 | 1 | 1 | 0 | 0 | 22 | 0 | 3 | ||||
24시즌 | 통산 | 672 | 113 | 161 | 74 | 12 | 27 | 41 | 12 | 5 | 157 | 30 | 49 | 23 | 1 | 9 | 963 | 168 | 251 |
4.2. 대회 기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0~2014)
- 프리미어 리그[38]: 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FA컵: 1993-94, 1995-96, 1998-99, 2003-04
- 풋볼 리그컵: 1991-92, 2005-06,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3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8-99, 2007-08
- 유러피언 슈퍼컵: 1991
- 인터컨티넨탈컵: 1999
- FIFA 클럽 월드컵: 2008
4.3. 개인 수상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LW 8위)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6-07
- PFA 올해의 선수: 2008-09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1-92, 1992-93
- PFA 올해의 팀: 1992-93, 1997-98, 2000-01, 2001-02, 2006-07, 2008-09
- PFA 세기의 팀 (1997~2007)
- PFA 메리트상: 2016
- FWA 공로상: 2007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어워즈 (1992-93~2001-02)
- 내국인팀: 2002
-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어워즈 (1992-93~2001-02)
- 최고의 선수: 2012
- 팬 선정 팀: 2012
- 패널 선정 팀: 2012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6년 8월, 2007년 2월
- 인터컨티넨탈컵 MOTM: 1999
- 브라보상: 1993
-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 2009
- BBC 올해의 웨일스 스포츠 인물: 1996, 2009
- BBC 올해의 골: 1998-99
- 웨일스 올해의 축구 선수: 1996, 2006
- 맷 버스비 올해의 선수: 1997-9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 2005-06
- 지미 머피 올해의 신인 선수: 1990-91, 1991-92
- GQ 올해의 운동 선수: 2010
- 골든풋: 2011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웨일스 드림팀: 2022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5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 어워드: 2019
- 원클럽 어워드: 2020
- 풋볼 리그 레전드 100인: 1998
4.4. 수훈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OBE): 2007
5. 개인사
5.1. 가정사
아버지와 찍은 사진. 아버지는 시에라리온 혈통의 웨일스인이자 유명 럭비 선수 대니 윌슨이었다. 그는 웨일스 출신의 16세 소녀 라이네 긱스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라이언 윌슨.
하지만 윌슨의 바람기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라이네와 결혼한 후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러 다녔고 그 모습을 소년 라이언이 보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라이언은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이후 윌슨이 이적함에 따라 라이언은 맨체스터로 이사하게 되고,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였던 데니스 스코필드에게 발굴되어 딘스 유스클럽에서 축구를 하고있었는데 귀신 같은 드리블을 치는 꼬마가 있다라는 스카우트의 보고를 받은 알렉스 퍼거슨이 14세 생일날 긱스의 집에 직접 찾아가 라이언의 첫 유스 계약을 성공시킨다.
라이언이 14세가 된 어느 날, 아버지 윌슨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이혼을 하게 된다. 이미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던 라이언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른 "긱스"로 바뀌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라이언에게 퍼거슨 감독은 많은 위로를 해주었고 라이언은 퍼거슨을 아버지처럼 따르게 된다.
긱스의 할아버지가 시에라리온 출신이기 때문에 긱스 역시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39] 그 때문에 어렸을 때 인종차별[40]로 인한 힘든 시절을 보낸 듯, 그 당시를 잊지 못하고 성년이 된 지금 유니세프의 인종차별 추방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41]
6. 논란 및 비판
6.1. 악질적인 불륜 행각
그동안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가장의 이미지를 쌓아 왔으나 선수생활 말미에 불륜 행각이 폭로되면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 과거 자신이 아버지의 불륜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타 선수들에게 귀감 및 모범이 되어야 할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벌인 불륜이라 배신감을 느끼는 팬들이 많으며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럴만도 한게, 그렇게 증오하던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아졌기 때문이다.결국 시간이 흐른 뒤 아내와는 이혼하였고, 그 이후에도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다가 이를 문제삼은 여자친구를 폭행하여 기소당하는 등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웨일스 대표팀 감독에서도 사실상 사임한 상태다.
긱스의 이런 갑작스런 막장극장을 풍자한 한국 누리꾼의 댓글 원문
2007년경 카카가 AC 밀란 시절 긱스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있어서 까인 적이 있는데 2011년 긱스의 스캔들이 드러나자 타 팀 팬들에게 찬양받았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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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불륜: 연예계 최고의 모델
언론에 알려진 첫번째 불륜 상대는 이모겐 토머스(Imogen Thomas)라는, 1982년생 웨일스 출신의 유명한 슈퍼 모델이다. 2010-11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EPL에서 오래 뛰고 타이틀을 많이 얻은 웨일스 선수가 불륜을 했고 아내에게 고백해서 결국 아내를 울리게 했다.'고 현지 언론 및 신문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건이 워낙 한정적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누군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당사자가 안팎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기에 그냥 뻘루머로 여기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선 이미 널리 퍼질 대로 퍼져나갔고 특히 5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간의 경기를 앞두고 런던 원정에 긱스가 아무런 이유없이 불참하면서 SNS 및 팬 포럼에 상주하던 사람들은 사실상 확정짓게 되었다. 결국 더 선이 냄새를 맡고 제대로 터뜨리려고 하자 재빠르게 본인은 아내에게 사실대로 고백하고 법정에 보도 금지 명령을 신청해서 막았는데, 다른 법역[43]인 스코틀랜드에서 보도하는 것은 보도 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악용한 영국 언론이 거의 대놓고 당사자의 사진을 올리며[44] 이 사진 스코틀랜드에서 보도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앞두는 중요한 시점에서 맨유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터졌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출전은 했고 루니에게 어시스트를 올렸으나 오프사이드 상황이었고, 맨유에서 가장 많이 뛰었지만 멘탈 초토화로 인한 공황사커 끝에 그라운드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축구계의 슈퍼스타에게 젊은 애인이 하나 생겼거니 하는 "쯧쯧쯧" 정도의 시각과, 이모겐 토머스란 여성이 과거부터 축구선수에게 자주 달라붙었다는 사실에 "에휴 긱옹 어쩌다가..." 하는 반응과 더불어 눈물겨운 맹구들의 억지 쉴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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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불륜: 동생의 아내 (제수씨)
전설의 시작. 폭탄이 제대로 터졌다.
상대가 동생과 만나기 전부터 나이트에서 만나 관계를 가졌으며, 동생에게 그녀를 소개해줬고 그녀가 동생과 약혼한 후에도 8년간 계속 관계를 가져왔다고 한다.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 테리: 긱스는 나보다 나은 선수. 나는 동료의 아내였지만 그는 동생의 아내였다.', '긱스 조카가 귀신같은 왼발 드리블을 치기 시작하는데...' 같은 드립을 치면서 긱스를 깠다. 형에게 NTR을 당한 긱스 남동생이 2006년 태어난 자신의 아들 친자 확인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만일 검사 결과 긱스 남동생의 아들이 긱스 아들로 밝혀진다면 역대 스포츠 스타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전설로 등극할 것이다. 사실 지금 터진 것만 따져도 충분히 역대급 전설이다.[45]
그런데 긱스와 8년간 불륜을 저지른 나타샤가 긱스와 사귀면서 긱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와도 불륜을 저질렀다고 한다. 나타샤가 긱스가 아닌 다른 맨유 선수[46]와 사귄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나타샤가 긱스와 남편 로드리, 또다른 맨유 선수와 동시에 만날 수 있었을까 매우 궁금해 했고, 특히 긱스는 나타샤가 자신의 팀 동료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나타샤 긱스가 드와이트 요크 이외에도 맨유 선수 출신 2명과도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상대는 필 바슬리(선덜랜드), 대니 심슨(뉴캐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타샤가 뉴스 오브 더 월드에 충격적인 고백을 했는데, 나타샤가 긱스의 아이를 임신하자 낙태를 종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낙태 확인만 했을 뿐 곁에 있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긱스는 언론에게 집중 포격을 받았다. 또한 나타샤는 그 외에도 긱스의 동료들과는 잠시 만났을 뿐 그들과의 관계는 언론이 부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타샤가 일방적으로 "자신은 피해자다"라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현지에서는 "나타샤 역시 가해자이다"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긱스와 밀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은 선수와 원나잇 스탠드를 가진 것을 비롯하여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 이모겐 토머스의 등장과 자폭하는 심정으로 일을 터트렸다는 것으로 현지에서는 긱스만큼이나 '미친 년'으로 까이고 있다. 긱스의 아내인 스테이시 역시 "나타샤가 긱스를 망가트리고 빼앗기 위해 터트린 폭탄이다.", "내 남편을 빼앗기지 않겠다."라며 긱스를 용서하겠다고 하여 더욱 더 까였다. 이쯤되면 단순한 불륜극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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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장모 불륜설
파문 와중에 타블로이드지인 미러에서 나타샤의 어머니.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부인과도 일이 있었다는 기사가 터졌다. # 긱스가 가족 모임에서 동생장모까지 꼬시려고 했고, 심지어는 동생장모와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찌라시인데 이걸 국내 정론지에서 인용하여 기사들을 쏟아내는 바람에[47] 일반인들에게 팩트로 각인되어버렸다. 하지만 국내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해외의 모든 긱스의 동생장모 유혹설을 언급한 기사들의 출처가 위의 미러 지 기사 딱 하나인데 미러 지야 더 선과 더불어 갖가지 찌라시 소설들을 매일 같이 업데이트하는 황색언론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 더 이상의 후속 보도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동생장모 유혹설의 신빙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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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과거 최고 모델
이번에 나온 상대는 과거 미스 카디프 출신 모델인 1968년생 리사 제인스. 본인이 데일리스타에서 폭로한 뒤 알려졌다. 위의 이모겐 토머스처럼 웨일스 출신의 인기 모델에 금발이고 유명 리얼리티 쇼 '빅브러더'의 영국판에 출연한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의 관계는 13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사실 이건 불륜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것이 당시 긱스는 물론 제인스 역시 싱글이었다. 1년 정도 만남을 가지다 헤어졌다고 하는데, 영국 현지에서도 "10년도 지난 일을 이제 와서 꺼낸다는 건 긱스 스캔들 여파에 물타기로 돈이나 뜯어내려는 수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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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막장 드라마
긱스와 스테이시는 지난 11일 맨체스터 근교 워즐리의 한 중화요리 레스토랑 밖에 나타샤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봤다. 이들은 지난 6월 나타샤가 긱스와의 근친상간을 폭로한 뒤 이날 처음 만난 뒤 말싸움으로 번졌고 이 와중 긱스는 "난 네게 신경도 쓰지 않아. 그저 잠자리 상대였을 뿐이야"라고 나타샤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 결국 나타샤의 남편이자 본인의 친동생인 로드리 긱스에게 우리형은 '벌레'(bug)라는 욕설까지 듣게 되며 라이언 벅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종합해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넘어 EPL의 출범과 함께 그 시작을 함께 했던 레전드 중의 레전드지만, 스캔들 한방에 모든 영광을 싸그리 날려버렸다. 차라리 원래부터 여성 문제로 시끄러웠다면 충격이 덜했겠지만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긱스의 이미지는 바른 생활하고 가정적인 건전한 스포츠인이었다. 게다가 과거의 일도 아니고 8년이나 계속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배신감과 가증스러움을 느꼈다는 팬들도 많다. 축구 관련 웹툰에서도 종종 등장하여 동료들의 아내를 탐하는 모습으로 자주 비춰진다. 결국 선수 말년에 그리고 맨유 수석 코치에 이어 웨일스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지금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2015년 긱스의 동생이 한 인터뷰의 내용이 화제가 되었는데, 자기 때문에 친동생의 가정이 완전 파탄났음에도 이에 전혀 뉘우치는 기미 없이 뻔뻔하게 "단지 성관계였을 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대응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더욱 파문이 일고 있다.[49] 기사 그러다 얼마 후, 동생과 화해했다는 기사가 떴다. 로드리가 나타샤와의 관계 지속에 실패하고 이혼 절차를 밟고 난 후, 라이언이 로드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이후 형제 간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나...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정작 그 사건 이후로 긱스는 동생이 아내와 이혼하면서 정신적인 고통으로 마약에까지 손을 대면서 불운한 가정사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2016년 결국 라이언 긱스 자신도 아내와 이혼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긱스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에게 작업을 걸다가 이걸 아내에게 들켜버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세월도 있고 그 사건 전후로부터 누적된 것이 폭발하여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17년 결국 아내 스테이시가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한 이혼 소송을 걸었고, BBC에 따르면, 긱스의 재산의 절반을 위자료로 청구하였다 한다. ‘불륜남’ 긱스, 재산 절반 날릴 위기 그리고 12월에 최종적으로 이혼했으며 자세한 합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법률 대리인이 한다는 말이 이혼했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낼 거라고 한다.
이혼할 무렵 긱스는 호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때 비즈니스적으로 도움을 준 8세 연하의 케이트 그레빌과 2018년에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0년 11월, 두명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들키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여자친구를 폭행해 체포되었다. 가족의 인터뷰도 실렸는데 아버지 데니 윌슨은 "라이언은 여자를 많이 밝히지만 폭력 쓸 사람은 아니다. 아들을 믿는다."였고, 동생 로드리는 "형은 섹스 중독. 여자랑 사귀면 무조건 섹스를 생각한다. 그냥 딱할 뿐이다."라는 인터뷰를 올렸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클럽 감독이 되었을 때, 성적 안 나오면 가정 방문하겠다 등의 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결국 2021년 4월에 작년 11월 폭행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폭행 사건으로 기소되기 전에 긱스는 란제리 모델이자 11살 연하인 자라 찰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생활 문제 때문인지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은 커녕 후보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50][51] 선수 시절 커리어만 보면 1순위로 들어가야 하지만, 여자친구 폭행 문제로 재판이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22년에 입성한 루니도 불륜 논란이 있었지만 과거의 일인데다가 적어도 아내를 폭행하진 않았다.[52] 그리고 이 놈의 사생활 문제로 자신이 감독으로서 이끌던 조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했음에도 감독직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2022년 9월 4일(한국시간) 영국 언론 '더선'은 "긱스의 이모인 조안나 윌슨은 2018년 긱스가 웨일스 대표팀 감독이 되자 한 편의 시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조안나는 가레스 베일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아내를 지키라는 농담조의 경고를 했었다"고 밝혔다. '바람왕' 경고한 긱스 이모, "조심해" 웨일스 대표팀에 시로 전달
202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전 부인인 스테이시와 그의 아이들, 그리고 현 여친인 자라 찰스와 함께 맨체스터의 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사진을 올리며 네티즌들로부터 역시 정상적인 멘탈의 소유자는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2023년 7월 18일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폭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
7. 여담
- 2020년 1월 ,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30대 중반에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해 자리잡는 데에 큰 도움을 준 동료로 마이클 캐릭, 웨인 루니, 파트리스 에브라, 박지성을 꼽았다.[54]
-
아들 잭 긱스(Zach Giggs)도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생으로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현재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유스 소속이다.
맨체스터 태생으로
잉글랜드-
웨일스 복수 국적이며, 웨일스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된 적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불륜만큼은 닮지 마라.
- 현재는 불륜 사건 때문에 평판이 상당히 안 좋아졌지만 선수 시절 인품에 대해 평가하면 상당히 고평가 받는다. 당시 맨유의 주장 에릭 칸토나는 락커룸에서 후배 선수들을 폭행하는 등의 횡포를 하였는데, 특히 체격이 왜소한 스콜스와 긱스를 자주 괴롭혔다고 한다. 그런데 칸토나가 갑작스레 은퇴를 발표한 이후 긱스는 부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이러한 꼰대 문화를 모조리 없애버리고 팀원들 간의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성격적인 면에서 긱스가 논란이 되었던 적은 선수 시절에 없었고 퇴장도 긴 클럽 경력동안 단 하나도 받지 않았다.
- 골닷컴 선정 UEFA 챔피언스 리그 시대별 최고의 선수에서 1990년대 부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아르연 로번 같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탈모로 인해 과거 풍성한 곱슬머리를 잃어버리고, 국내 팬들이 기억하는 폭삭 늙은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2009년부터 관리를 꾸준히 받아서 현재는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부족한 느낌은 없다.
8. 라이언 긱스에 대한 헌사
그가 뛰는걸 보게된다면, 그는 매우 영리하단걸 알 수 있을꺼야. 그는 모든 미드필드 지역을 커버할 수 있지만, 내 생각에 역시 그의 최고의 포지션은 왼쪽 윙어야. 그는 모두의 눈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선수였어. 물론, 그의 상대방에겐 아니었겠지만.
- 프랑코 바레시
- 프랑코 바레시
나는 내 현역 시절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언만큼은 결코 넘을 수 없었다.
-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판타지스타? 그 말은 라이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축구선수를 보며 운 적이 두 번 있다. 첫번째는 로베르토 바조이고 두번째는 라이언 긱스다.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축구선수를 보며 운 적이 두 번 있다. 첫번째는 로베르토 바조이고 두번째는 라이언 긱스다.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트레이닝할 때 그를 딱 봤는데, 모든 걸 쉽게 하더라고. 패스하고, 좋은 런을 하지. 라인플레이도 잘하고, 크로스는 거의 택배라고. 그리고 윙어인데 골도 잘 넣을 수 있는 선수야
- 야프 스탐
- 야프 스탐
긱스가 프랑스 사람이었다면, 나와 피레스 중 한 사람은 벤치에 있었을 것이다.
- 지네딘 지단
- 지네딘 지단
축구장 왼편은, 긱스의 영지다.
- 루이스 피구
- 루이스 피구
절대자란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라이언은 왼쪽 라인의 절대자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가 하는 것을 모두 해낼 자신이 없다. 라이언이 체코 선수였다면, 벤치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선수는 다름이 아닌 나일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 파벨 네드베드
- 파벨 네드베드
프리미어 리그를 11번 제패한 선수를 두고 무슨 잔소리가 필요한가? 그 경력이 그를 증명해주고 있다.
- 주제 무리뉴
- 주제 무리뉴
그는 놀랍고 또 놀랍습니다. 단지 17세의 소년으로 믿을 수 없는 재능을 보여줬던 그 때부터 36살의 노장으로 필드에 오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경이로움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26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내 제자들 중 월드클래스 선수는 오직 4명이다. 에릭 칸토나와 라이언 긱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폴 스콜스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재능인 긱스와 스콜스는 환상적인 재능이었다. 두 선수는 오랫동안 뛰면서 수준을 증명했다. 그렇게 리그에서 오랫동안 수준 높은 경기를 한 선수는 없었다.
- 알렉스 퍼거슨
26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내 제자들 중 월드클래스 선수는 오직 4명이다. 에릭 칸토나와 라이언 긱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폴 스콜스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재능인 긱스와 스콜스는 환상적인 재능이었다. 두 선수는 오랫동안 뛰면서 수준을 증명했다. 그렇게 리그에서 오랫동안 수준 높은 경기를 한 선수는 없었다.
- 알렉스 퍼거슨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만나본 상대 중 가장 힘든 선수.
- 하비에르 사네티
- 하비에르 사네티
9. 관련 문서
[1]
말년에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2]
1985년부터 맨시티 유스에 속해 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당시 맨시티 스카우트였던 데니스 스코필드의 딘스 축구 클럽에서 뛰었던 것일 뿐 정식 맨시티 유스 계약은 아니었고 상주하는 유스 선수도 아니었다. 게다가 긱스는 어릴 적부터 맨유 팬이었고 당시 학교에서 럭비 선수로도 뛰고 있었다. 14세 생일 날 맨유와의 정식 유스 계약이 공식적인 유스 커리어의 시작이다.
[3]
모예스 경질 후 2013-14 시즌의 남은 경기를 감독대행으로 수행했다.
[4]
10% 소유
[5]
1998-99 시즌
[6]
PL 역대 개인 최다 우승자이며, 맨유의 PL 우승 13회를 전부 경험한 선수다.
[7]
162도움
[8]
화려한 클럽 경력과는 달리 월드컵 본선 무대는 한 번도 못 밟아 본 슬픈 역사 때문에
이런 광고도 있다.
[9]
PL 역사상 가장 많은 리그 트로피를 든 선수가 되었으며 평생 하나 들기도 힘들다는 트로피들을 문자 그대로 쌓아 놓고 있다. 긱스의 커리어가 바로 맨유의 전성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10]
젊었을 때 나름대로 잘 생기긴 했지만 뭐 연예인 수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11]
무시무시한 드리블 실력과 깔끔한 외모를 갖추었기에 조지 베스트의 재림이라고 미디어가 치켜세웠다.
[12]
다만 맨유 클럽하우스에서 오랜 세월 일했던 어느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때는
친구들하고 놀러다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13]
리그 36경기 8득점, 전체 59경기 14득점.
[14]
이 과정에서
니키 버트,
필립 네빌 등의 베테랑들이 밀려나갔다.
[15]
다만 긱스보다
스티븐 제라드 혹은
네마냐 비디치가 더 적합한 수상자였다는 논란이 있다.
[16]
다만 긱스가 루니의 패스를 받는 과정에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기에 오심이라 할 수 있다.
[17]
근데 사실 20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도 맨유에서 가장 많이 뛴 선수였다. 당시 2위는
마이클 캐릭, 3위는
박지성.
[18]
참고로 2위인 바비 찰튼 경의 기록은 758경기이다.
[19]
2014년 9월 30일
프란체스코 토티가 만 38세 3일에 득점하며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는 역대 최고령 기록이었다.
[20]
이 기록 또한 2016년 10월 21일 호날두가 통산 31도움을 기록하며 경신되면서 2위로 밀려났다.
[21]
물론 즐라탄은 팀의 전력보다는 본인이 메이저 대회에서 못한 탓이 가장 크다.
[22]
아버지인 대니 윌슨이 잉글랜드 출신 또는 대표팀이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사실 대니 윌슨은 웨일스 럭비 대표에 뼛속까지 웨일스 사람이었고, 잉글랜드 럭비 리그에서 뛸 때도 자신이 웨일스 출신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23]
이 경기는 양쪽 모두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다. 참고로 웨일스는 체코와 독일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24]
이 득점은 올림픽 축구 역대 최고령 득점으로 기록. 1924년 파리 올림픽 당시 이집트의 헤가지가 보유했던 기록(27세)을 갈아치웠다. 최고 기록이 27살의 나이라 언제든지 깨질 기록이었다만 무려 만 38세의 11살차이라는 압도적인 나이차로 기록을 세워버렸다.
[25]
베컴의 경우 러닝크로스는 전문이 아니었다. 베컴은 잠시 키핑→택배배달이 메인. 중앙에서 스콜스가 패스를 뿌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세계 최고를 다투는 좌우 윙어가 측면에 있었다.
[26]
맨유 역대 최다 득점 8위다.
[27]
이 이상의 극찬을 받은 선수로는
루이스 피구가 있다. 당대 최고의 윙어로 같은 포지션에서 긱스, 베컴조차도 한 수 접어줘야 했을 정도. 좌 긱스-우 피구는 그야말로 꿈의 조합.
[28]
1대1로 비기고 있던 상황, 연장전 후반에 하프라인에서 패트릭 비에이라의 패스를 인터셉트하고 그대로 골 박스까지 수비수들을 모두 드리블로 제끼고 왼발로 강하게 때려 골든골을 넣었다. 80년대에 태어나서 90년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본 축구 팬들에게는 살면서 본 가장 인상깊은 골 중 하나로 기억된다.
[29]
젊은 시절의 긱스는 아르연 로번 부럽지 않은 주력을 가진 폭발적인 드리블러였다.
[30]
물론 젊을 적 보다 떨어진 것이어서 13-14 시즌 나이 40에도 여전히 간간히 나오는 위력적인 돌파와 빠른 순간속력을 자랑했다.
[31]
박지성이 맨유 커리어 끝끝내 긱스를 밀어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이가 들고도 긱스는 노련함으로 여전히 EPL 탑클래스 미드필더였다.
[32]
해외 선수들의 경우 주발이 아닌 반댓발의 정확도가 확연히 차이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있다. 그래서인지 반댓발을 써야할 상황에서도 굳이 주발을 고집해서 답답하게 기회를 날리는 경우가 많다. 양발잡이라는 유형이 축구에서 유독 중요한게 드리블이나 킥에서 전혀 예측할수 없고 페이크 모션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히딩크가 우리 대표팀 감독을 맡고나서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
[33]
국가대표 경기에서 딱 한 번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34]
마르시알이 막 맨유에 온 15-16 시즌에는 9번을 달았다. 이후, 마르시알은 19-20 시즌에 다시 9번을 달았다.
[35]
훈련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선수들이 불평하던 판 할의 반복적인 훈련 방식 대신 퍼거슨 시절의 훈련 루틴을 도입하였다.
[36]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37]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
[38]
프리미어 리그 개인 최다 우승 기록.
[39]
그래서 풋볼 매니저시리즈 할때 긱스 프로필을 보면 이중국적란에
시에라리온이 적혀있다. 만약 웨일스 국가대표도 안가고 시에라리온 국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웨일스보다 더 부실한 국가대표 경력을 쌓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조지 웨아의 시에라리온버전이 될지도. 공교롭게도 하필 둘이 이웃나라다.
[40]
우리가 얼핏 보기엔 그냥 백인으로 보이지만, 서양인 눈에는 백인의 혼혈 구분이 다 간다고 한다. 긱스옹과 비슷한 케이스로 한국계와 프랑스계 혼혈인
줄리엔 강 역시 서양에서는 동양인 얼굴이 보인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받았다.
[41]
그 때문인지 경기장에서도 인종차별 느낌이 드는 제스처가 발생하면 표정이 급 안좋아진다. 단적인 예로 2009년 맨유 방한 경기 당시 논란이 됐던
마케다의 골 세리머니. 선수단 짬밥 No.1인 긱스가 정색을 하고 달려와서 마케다를 뜯어말렸다.
[42]
카카는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현역 시절 술담배는 물론이고 축제를 즐기러 다니느라 축구에 소홀해 본 적도 없고 선수은퇴 이전엔 한 명의 여자만 바라보고 혼전순결로 결혼한 선수다.
[43]
영국(본국)의 법역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셋으로 나뉜다. 해당 보도 금지 명령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만 효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4]
눈을 가렸지만 딱 봐도 긱스인지 알 수 있는 수준의 사진을 실어서 보도했다.
[45]
긱스 동생이 둔기를 들고 긱스에게 쳐들어가려 했다는 뉴스가 떴다. 이런 상황에서 친자 확인 결과 긱스 남동생의 아들이 알고보니 긱스의 아들로 밝혀진다면 충격이 더 클것이다.
[46]
긱스와 함께 맨유에서 100경기 정도 출전했으며 세번의 정규 리그 우승을 함께 만들었고, 아직 미혼이라는 이 선수는 맨유를 떠난 상황이라고(former teammate)하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력한 용의자였는데 알고보니
드와이트 요크였다.
[47]
조선일보,
동아일보,
YTN,
디스패치,
연합뉴스
[48]
따지고 보면 둘다 싱글인 상태에서 만났고 긱스가 결혼하기 이전에 헤어졌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안이다. 이건 애초에 불륜이라 할 수도 없다.
[49]
그래도 로드리는 바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는데, 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겪은 걸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형 라이언은 이혼 당시 14-15세라서 맨유 유소년 클럽 동료들과 축구를 하거나 놀면서 고통을 잊고, 아버지같은 존재인
알렉스 퍼거슨이 있어서 안정을 찾았지만 훨씬 어린 자신한테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라이언이 동생한테 신경을 좀 써줬다면 어느 정도 상처는 덜했을지도 모른다.
[50]
하다 못 해 선수 시절 실적이나 리더십은 엄청났지만 지나치게 불같은 성격으로 알렉스 퍼거슨과 불화가 생긴
로이 킨마저 헌액되어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긱스가 경기 내적으로 헌액되지 못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 정도로 긱스의 사생활 문제가 평가에 상당히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로이 킨은 긱스와 달리 사생활 면에서는 논란을 일으킨 적이 거의 없다.
[51]
비슷한 이유 때문인지
존 테리 역시
프랭크 램파드,
페트르 체흐,
디디에 드록바보다 더 늦게 헌액됐다. 하지만 어쨌든 테리조차도 결국 헌액되기는 했다.
[52]
성에 개방적인 서구 문명권에서도 불륜은 매우 비도덕한 행위로 여겨진다. 하지만 유럽에서 축구선수의 불륜 스캔들은 예로부터 워낙 흔한(...) 일이기도 하고 어쨌든 성 관념이 비교적 개방적이기 때문에 불륜과 같은 개인 사생활 문제를 선수 평가와 같은 공적인 영역으로까지는 끌고 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긱스는 불륜 스캔들 이후로도 선수 및 감독 생활을 잘만 했고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그러나 여성 폭행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서 단순히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직업과 명예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53]
제대로 보고 싶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선정된, 99년 FA컵에서의 아스날 전을 보자. 긱스가 셔츠를 벗고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지금은 보기 어려운 흥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나이가 20대 중반임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흥분했을 가능성이 높다.
[54]
전술적인 호흡 때문인 걸로 보인다. 종종 섀도우 스트라이커도 봐 왔지만, 긱스는 05-06 시즌을 기점으로 중앙 미드필더도 보는 빈도가 늘어났는데, 정확히 위 네 명이 입단하는 시기와 거의 겹친다. 특히 박지성과 에브라가 영입되고부턴 긱스와 전술적 호흡이 매우 좋았다. 긱스는 하프윙같은 컨셉으로 중앙에서 왼쪽으로 돌아 나가는 움직임을 보이면, 박지성이 왼쪽에서 가운데로 들어와서 스위칭을 가져가준다. 이는 맨유 내 다른 윙어들에겐 기대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에브라는 발이 매우 빠르고 공수를 오고가는게 부지런 해서 늘 수적 우세를 유지시켜줬다. 에브라-긱스-박지성 삼자 간의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10-11 시즌엔 아예 이 멤버를 베스트 11으로 해서 챔스 결승까지 갔다. 루니 역시 활동량으로 스위칭을 해 주면서 긱스와 좋은 호흡을 보였고, 캐릭은 긱스의 옆에서 계속 노하우를 가르쳐 주며, 좋은 포지셔닝을 가져가 준 덕분에 긱스가 좀 더 편하게 중앙 미드필더로 뛸 수 있었다.
분류
- 1973년 출생
- 카디프 출신 인물
- 웨일스의 축구 선수
- 시에라리온계 영국인
- 흑인계 쿼터
- 미드필더
- 개명한 인물
- 웨일스의 축구감독
- 1990년 데뷔
- 2014년 은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원클럽맨/축구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역대 감독
- 선수 겸 감독/축구
- 감독 대행/축구
-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영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올림픽 축구 와일드카드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 윙어
- 중앙 미드필더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자
- PFA 올해의 선수 수상자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