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반니 에우베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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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7 · 1998-99 · 2002-03 |
지오바니 에우베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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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앰버서더 | ||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V. Ambassado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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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052d><colcolor=#ffffff> 이름 |
지오반니 에우베르 Giovane Él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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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에우베르 지소자[1] Élber de Sou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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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2년 7월 13일 ([age(1972-07-13)]세) | |
파라나주 론드리나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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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2cm | |
직업 |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colbgcolor=#dc052d><colcolor=#ffffff> 선수 |
에스테그랄 아르다빌 (1983~1988 / 유스) 론드리나 EC (1989~1990) AC 밀란 (1990~1991)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1991~1994) VfB 슈투트가르트 (1994~1997) FC 바이에른 뮌헨 (1997~2003) 올랭피크 리옹 (2003~200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05) 크루제이루 EC (2006) |
기타 | FC 바이에른 뮌헨 (2007~2011 / 스카우트) | |
국가대표 | 15경기 7골 ( 브라질 / 1998~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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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며 현재 FC 바이에른 뮌헨의 클럽 대표를 맡고 있다.선수 시절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특히 2002-0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VDV 올해의 선수를 차지하였다. 다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 국가대표팀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비운의 선수.[2]
2. 클럽 경력
2.1. AC 밀란
18세의 나이에 AC 밀란에 입단을 했지만 당시 후덜덜한 스쿼드를 보유한 AC 밀란의 선수단을 비집기엔 너무 어렸고 결국 코파 이탈리아에 1회 출장한 것을 끝으로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스위스 무대로 발을 돌린다.2.2.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1991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에 입단을 한 이후 3년 동안 69경기 출장을 해 41골을 넣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1994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한다.2.3. VfB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실적 또한 대단했다. 87경기에 뛰면서 41골을 기록하면서 빅리그에서도 순도높은 득점력을 뽐내며 1996-97 시즌 DFB-포칼 우승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는 리그에선 별다른 성과를 못내고 DFB-포칼 우승 시즌에 4위로 마감한 것이 최고의 순위일 정도로 에우베르의 클래스에 상응하는 성적을 내질 못했다. 에우베르는 이에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2.4. FC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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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시즌 바이에른 이적 첫 시즌엔 미미한 활약을 선보였고 이 당시엔 바이에른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카르스텐 얀커가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8-99 시즌엔 얀커와 똑같이 리그에 13골을 기록하면서 서서히 입지를 다졌으나 1998-99 UCL 결승전 명단에 제외되었다. 하지만 1999-00 시즌 본격적으로 바이에른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얀커를 밀어냈고 2000-01 시즌엔 15골, 2001-02 시즌엔 17골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특히 이 시즌에 바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 신기록까지 세우게 된다. 하지만 2003년 이 후
2.5. 이후
그리고 2003-04 UCL에서 리옹과 바이에른은 조우하게 되고 에우베르는 바이에른 올림피아 슈타디온[3]에서 벌어진 원정경기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와 동시에 친정팀에 비수를 꽃게 된다. 2005년 잠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몸을 담은 후 자국리그인 크루제이루로 이적했고 6골을 더 넣은 뒤 200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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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U-21 브라질 대표로 출전하여 4골을 넣는 등 맹활약 했으며 특히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한 한국 대표팀과의 8강전에서 두 골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골든제너레이션 세대인 포르투갈과의 결승 경기서 승부차기까지 가였고 두 번째 키커로 나서다 실축하면서 준우승에 머문다. 이 후 호마리우, 베베투 등 우주최강급 브라질 공격수들의 포스에 밀려 한 동안 국대와 인연이 없다가 98년 부상으로 빠진 호나우두의 대타로 승선해 어느정도 활약하게 된다.
특히 1998년 A매치 6경기 6골이나 기록하며 경기 당 1골이라는 포스를 달리며 브라질 스트라이커 계보의 클래스를 보여주었으나 이 후 99년 평가전에 연이은 무득점 및 월드컵 지역 예선 부진으로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영향력이 약화된다. 친선전에서는 어느정도 골을 뽑아냈지만 정작 중요한 월드컵 예선 경기에선 단 1골도 넣지 못하였고 2001년 9월 경 아르헨티나와의 2002 월드컵 남미 예선을 끝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면서 쓸쓸한 국대 커리어를 마감한다.
4. 플레이 스타일
182cm의 다소 평범한 체격이지만 유럽형 스타일에 걸맞은 피지컬을 보여주었으며 브라질리언 특유의 유연함과 간결한 테크닉을 겸비한, 분데스리가 역사에 길이 남을 외국인 공격수. 운동능력이 폭발적이거나 테크닉이 화려하진 않지만 간결하고 정확한 퍼스트 터치 후의 아크로바틱한 슛팅으로 무수한 골을 만들어낸 정통 포워드였다.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기록을 갈아 치울 정도로 득점 순도 또한 높았다.
그러나 하필 에우베르와 동시대의 브라질 스트 라이 커들은 슛팅, 드리블, 테크닉 모든 면에서 탑클래스였기에 상대적으로 에우베르의 테크닉은 저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5. 평가
바이에른 뮌헨의 명예의 전당에 들 정도고 분데스리가를 넘어 유럽무대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가운데 한 명이었다. 테크닉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것은 브라질 축구의 기준이였고 일반 축구팬들은 저 정도 테크닉이면 무난하지 라고 말할 정도로 그가 활약을 했던 시기의 브라질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들은 그만큼 모든 면에서 탑클래스였다. 만약 2014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스쿼드라면 네이마르와 함께 대체불가의 존재가 될 정도로 기량만큼은 뛰어났다.[4]그러나 그가 전성기를 열릴 당시의 브라질은 호마리우, 베베투, 호나우두, 히바우두 같은 역대급 포워드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에우베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나마 호나우두의 부상시즌에 틈틈히 기회를 잡았고 나름 골결정력도 나쁘진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우루과이전과 아르헨티나전과 같은 중요경기에 존재감 없는 모습으로 월드컵 무대도 못 밟아본 안타까운 케이스.[5] 만약 에우베르가 공격수가 부족한 2010년대의 브라질에서 뛰었다면 당장 주전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6][7]
6. 경력
6.1. 대회 기록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1991~1994)
- 스위스컵: 1993-94
- VfB 슈투트가르트 (1994~1997)
- DFB-포칼: 1996-97
- FC 바이에른 뮌헨 (1997~2003)
- 분데스리가: 1998-99, 1999-00, 2000-01, 2002-03
- DFB-포칼: 1999-00, 2002-03
- DFB-리가포칼: 1997, 1998, 1999, 2000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0-01
- 인터컨티넨탈컵: 2001
- 크루제이루 EC (2006)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006
6.2. 개인 수상
-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실버볼: 1991
- 스위스 슈퍼 리그 득점왕: 1993-94
- 스위스 슈퍼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 1993-94
- 분데스리가 득점왕: 2002-03
- VDV 올해의 선수: 2002-03
- 키커 올해의 팀: 1996-97, 1998-99, 2002-03
- DFB-포칼 득점왕: 2002-03
- 독일 올해의 골: 1999
- 독일 이달의 골: 1999년 2월, 2003년 1월
- 바이에른 뮌헨 올타임 XI: 2005
-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6.3. 통산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89 | 론드리나 | 세리 B | - | - | - | - | - | - | - | - |
1990 | 론드리나 | 세리 B | - | - | - | - | - | - | - | - |
1990-91 | AC 밀란 | 세리에 A | - | - | - | - | - | - | - | - |
1991-92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 슈퍼 리그 | 21 | 9 | - | - | - | - | - | - |
1992-93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 슈퍼 리그 | 21 | 11 | - | - | - | - | - | - |
1993-94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 슈퍼 리그 | 27 | 11 | - | - | - | - | - | - |
1994-95 | VfB 슈투트가르트 | 분데스리가 | 23 | 8 | 1 | 0 | - | - | - | - |
1995-96 | VfB 슈투트가르트 | 분데스리가 | 33 | 16 | 1 | 0 | - | - | - | - |
1996-97 | VfB 슈투트가르트 | 분데스리가 | 31 | 17 | 6 | 3 | - | - | - | - |
1997-98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8 | 11 | 6 | 5 | 2 | 2 | 8 | 3 |
1998-99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1 | 13 | 5 | 2 | 2 | 3 | 9 | 3 |
1999-00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6 | 14 | 3 | 2 | 0 | 0 | 12 | 3 |
2000-01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7 | 15 | 1 | 0 | 0 | 0 | 16 | 6 |
2001-02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0 | 17 | 3 | 1 | 1 | 0 | 11 | 6 |
2002-03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3 | 21 | 6 | 6 | 1 | 2 | 8 | 2 |
2003-04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4 | 1 | - | - | 1 | 0 | - | - |
올림피크 리옹 | 리그 1 | 27 | 10 | 0 | 0 | 0 | 0 | 9 | 3 | |
2004-05 | 올림피크 리옹 | 리그 1 | 3 | 1 | - | - | - | - | 0 | 0 |
2004-05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분데스리가 | 0 | 0 | 0 | 0 | 0 | 0 | - | - |
2005-06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분데스리가 | 4 | 0 | 1 | 0 | 0 | 0 | 0 | 0 |
2006 | 크루이제루 | 세리 A | 40 | 18 | 0 | 0 | 0 | 0 | 0 | 0 |
7. 여담
- 과거 본토 발음을 빠르게 숙지하지 못하고 표기법이 정립되기 이전 시절 국내팬들에게는 이름(Èlber)을 그대로 영어식으로 발음해서 '엘버'라고도 불린적이 있다.
- 은퇴 이후로 바이에른 뮌헨 엠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엠버서더중 유일한 남미인이며 리자라쥐와 더불어 유이한 비독일인이다. 레전드 매치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리는 경기도 꼬박꼬박 보러오는데다가 유튜브 컨텐츠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엠버서더들 중에서 제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스위스 리그의 그라스호퍼와 슈트트가르트를 거쳐 뮌헨까지 독일어권 국가에서만 12년을 뛰어서인지, 모어인 포르투갈어 못지 않게 독일어가 매우 유창하다. 바이언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에서도 독일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1]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와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기 때문에 'de Souza'는 '지소자'가 된다.
[2]
에우베르의 전성기 때 국가대표 경쟁 상대가 하필이면
호마리우,
베베투,
호나우두,
히바우두였다.
[3]
2004/05 시즌까지 홈 구장으로 활용한 후 다음 시즌부터
알리안츠 아레나를 홈 구장으로 사용
[4]
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최전방을 지킨 프레드, 조 등과는 비교불가 수준이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원톱으로 라리가에서 준수한 스코어러였던 파비아누 역시 에우베르에겐 미치지 못한다.
[5]
차범근은 브라질의 축구선수층이 두터운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에우베르가 한창 활약하면서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당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국가대표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가 씩 웃으며 "브라질 국민들은 나라는 선수가 있는지도 모를 걸?"하고 답했다고 한다.
[6]
2014년 월드컵 때의 스트라이커였던
프레드와
조가 한국에서 프주영 혹은 프동궈, 밥조 등의 별의별 멸칭으로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고 만 것과 2014 월드컵 이후 브라질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로 뽑히던
지에구 타르델리는 둥가의 양아들이라고 비판받고 만약 90~2000년대의 선수였다면 대표팀에 뽑히기는 커녕 브라질 4, 5군 취급받았을 선수였을 것이라고 평가절하되었던 것만 봐도 2010년대의 브라질 대표팀의 스트라이커가 상당히 암울했던 걸 알 수 있고 2020년대인 지금만 봐도 그렇다. 현재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 자원들을 보면
히샬리송과
가브리에우 제주스가 있는데 냉정히 이 둘이 에우베르보다 클래스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7]
네이마르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가브리엘 마르티넬리 등은 유사시에는 스트라이커 자리도 뛸 수 있기는 하지만 공격 전개를 이끄는 공격수이자 엄연히 주 포지션은 윙어들이지 득점을 책임지는 순수 스트라이커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