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 이름은 옛 행정구역명인
경상남도
동래군 남면[3]
광안리(里)가 그대로 내려온 흔적이다.[4] 정확히 말하면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안리라는 이름이 탄생한다. 당시에는 이 지역이 해안과 모래펄을 가진 곳이라서 '넓을 광(廣)' 자에 해안을 뜻하는 '안(岸)' 자를 붙여서 광안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후에 풍수상으로 '편안할 안(安)' 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하여 광안(廣安)으로 표기하게 되었다.[5] 그리고 이 상태로 부산광역시에 흡수되면서 광안리는 이름 그대로
동으로 승격하게 된다.
2022년에는 빅데이터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을 제친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광안리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은 2003년 광안대교 완공 때부터다. 7420m에 걸친 바다 위 다리의 장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다시 광안리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광안리 특성을 살려 보드 위에서 노를 젓는 패들보드(paddle board) 특화지구 조성을 추진했다. 아침엔 바다 수면 위 보드에 앉아 요가를 하고, 저녁엔 노을을 감상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게 전국 서핑족에게 제대로 먹혔다.
#
온통
호텔과 식당, 유흥업소 일색인 해운대와 달리 해변 주변은 주로 주택가로 형성되어 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상권은 광안 회센터 근처에 많이 몰려있었다.
2000년 들어서 광안대교가 개통해 특유의 경치가 완성되면서 입소문이 퍼져 해변 전역에
카페가 늘어나고 상권이 바글바글해졌고 해변 주위가 재개발되었다. 최근에는 식당들과 호텔들도 많이 들어섰다.
여름철에는 항상 해운대에 밀려 입장객 수에서
콩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해수욕하는 인원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부산시가 해운대에 비해 그렇게 많은 지원을 하지 않는 인상을 준다.[10] 모래사장에도 자갈이나 딱딱한 돌들이 간혹 있는 것으로 보아 모래사장 품질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이쯤되면 부산시는 본래의 목적인 해수욕 대신 거의 행사용 해변으로 용도를 잡고 운영하는 듯 하다.
이는 해운대와 달리 광안리는 해수욕장으로서 기능을 먼저 잡고서 발전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부산의 대표 해수욕장은 송도해수욕장이었고, 해운대는 당시 교통 수준으로는 너무 외곽지역이라 21세기의 명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듣보였으나 그래도 조선팔경으로 꼽힐 정도였던데다
온천까지 있는 등 교통 문제만 해결되면 휴양지로 엄청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동해남부선 철도 개통으로 이는 현실이 되었다.
광안리는 애초부터 휴양지로 개발될 것을 목표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곳이 아닌 어촌에 해수욕장 기능 부가적으로 추가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도 민락동에는 아직도 꽤 큰 수준에 어항(漁港)이 있고, 남천동에는 1990년대까지 해수욕장과 바로 붙어있는 쪽에 어선 선착장이 있었다. [11] 현재 해운대에 있는 어항(漁港)인 미포항과 광안리의 민락포구와 비교하면 그 규모 차이가 엄청 나는데,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광안리와 해운대가 같이 어촌이었으나, 광안리가 어촌으로서 성격을 더 오래 유지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민락포구에 어민들이 직접 좌판을 깔고, 그 날 잡아온 물고기를 팔기도 했다.[12]
도심 속에 위치한 붐비는 해변임에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다. 어민들이 괜히 해수욕장 개장 이후에도 떠나지 않고, 어업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광안리 해변에서는 점성어와 문어, 보리멸, 장어, 도다리가 나오고, 민락어항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갈치, 개상어, 전갱이 우럭, 놀래미, 학공치, 등이 잡힌다. 단순히 잡힌다가 아니라 점성어는 미터급도 나오고, 우럭은 40cm급 개우럭도 나오는 수준. 도심 속 해수욕장이란 걸 생각하면, 어자원이 상당히 풍부한 곳이다. 다만 해수욕장 쪽은 낚시 금지이다.
광안리는 본래 해수욕장이 아닌, 멸치 등 고기잡이를 하던 어촌이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러 여름 방학이 될 무렵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심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즉, 휴양지로서 시작된 곳이 아니라 동네 앞바다를 수영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던 것에서 해수욕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에 송도와 해운대에 몰리던 해수욕객들이 광안리에도 해수욕객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점차 다른 지역에서도 피서객이 모여들자 1950년대에 해수욕장으로 정식 개장한다.[15]
특히 바로 옆에 있던 수영해수욕장이 수영비행장 공사 등으로 점차 작아지면서, 반대급부로 광안리해수욕장이 커지기 시작한다.[16]
이 과정에서 광안리의 개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주택가와 해변가가 혼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도 적었듯이, 처음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주택가 주변에 있는 해변가에 해수욕장 기능을 부여한 결과였다.
[18] [19]
특히 70년대를 기점으로 수영구가 개발되면서 인구가 몰려들자, 광안리는 접근성이 좋은 주택가 주변의 해수욕장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광안리가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간척사업이다. 1970년대부터 광안리에 간척사업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천동에 있던 중골산을 없앤 후에, 이 과정에서 얻은 흙으로 남천동과 민락동에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천동에는 1980년대 최고의 부촌 중 하나인 남천 삼익비치가 들어섰고, 민락동은 재래식 어항과 구시대적 횟집이 가득했던 어촌을 없앤 후에 현대적 어항과 민락회센터, 민락회촌, 민락회 타운의 부지를 확보한다. 이 부지를 확보하면서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구시대적 시설은 거의 사라지고서, 현대적 수산시설을 확보를 완료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 광안리 해수욕장의 명소인 민락수변공원도 완성된다.
그렇게 9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광안리 해수욕장이 모습이 되었는데, 여기에 광안리 해수욕장의 가치를 크게 높이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광안대교 건설. 1995년부터 시작된 광안대교 공사가 2003년 개통된다. 이와 동시에 해운대와 크게 차별화할 요소를 확보한 광안리 해수욕장은, 이전에는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민의 공간에서 전국구 해수욕장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https://m.ppomppu.co.kr/new/bbs_view.php?id=freeboard&no=5993949 광안리의 50년대와 민락동의 90년대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링크
1980~90년대의 광안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광안리의 수질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는 1970년대에 주택가가 대거 건설되면서, 여기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그대로 광안리 바닷가로 흘려보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남천해변공원과 광안리해양스포츠센터 위치에 하수펌프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바다로 바로 흘러가는 생활하수를 볼 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광안리해수욕장의 수질은 크게 안 좋은 편이었고, 특히 태풍이 한 번 몰아치고 나면 온갖 쓰레기가 바닷가에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이러한 광안리 수질에 큰 변화가 생기는 일이 생기는데, 바로 하수처리시설을 설치하게 된 것. 수영구에는 광안리로 흘러드는 하수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는데, 여기에 펌프장을 설치해서 하수를 용호하수처리장으로 보내게 된 것. 이를 기점으로 광안리의 수질이 크게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펌프가 망가지거나, 폭우로 수용선 이상의 하수가 펌프장으로 몰려들면 하수가 바다로 넘쳐흘러갔다. 이전보다는 수질이 크게 좋아졌지만, 특정 상황에서까지의 수질은 보장하지 못한 것.
이 때문에서 지속적으로 펌프수용용량을 증가시키고, 펌프방식을 바꾸어 우수와 오수가 섞이지 하는 공사도 진행 중이며, 2015년에는 부산 지역 해수욕장 수질 관리에 5819억원을 투입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로 광안리의 수질은 1980~90년대에 비교하면 크게 좋아졌다. 2011년부터는 광안리에
맛조개가 다시 돌아올 정도.
주변은 상당히 잘 개발되어 있어 해변가에 식당과 카페 등이 즐비하다. 그리고 동쪽 해안으로 가면 횟집이 즐비하며 조금 더 걸어가면 민락수변공원과 회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회를 사와서 해변가에서 먹어도 좋다.
때문에 현재 광안리와 해운대의 숙소를 비교하면 광안리에는 고급 숙소는 극히 적고, 1990년대까지는 그 차이가 더 심했다. 애초에 외지사람보다는 부산 사람[20]들이 자주 가다보니, 숙박보다는 식사를 중심으로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광안리가 외지 관광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건 2003년
광안대교가 생기면서 해변 뷰가 다른 해수욕장과 차별화되고 이런저런 행사를 하게 되면서, 광안리에도 외부 관광객이 몰리자 숙박업소가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아직도 광안리는 고급 숙소보다는
게스트 하우스 같은 중저가 숙소가 많다. 물론 해운대에도 중저가 게스트 하우스가 있지만, 바다가 보이는 위치는 고급 호텔들이 거의 독식하고 있다.[21] 반면에 광안리의 게스트 하우스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아주 많다. 원래 고급호텔이 많이 없다보니, 보통 고급호텔이 차지하고, 중저가 호텔은 꿈도 못꾸는 오션뷰(ocean view) 위치를 중저가 숙소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광안리에 빠른 속도로 고급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호텔들은 자리를 잃고 폐업하거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동시에 장급여관들은 거의 퇴출되었으며,
게스트하우스 역시 재건축으로 주거지역으로 빠져나가 그 수가 줄고 있다. 높은 건물이 적었던 광안리가 해운대처럼 고층 건물이 늘어선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22]
광안리가 휴양지로서 개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 또 있다. 해운대와 달리, 광안리는 주거지역이 바닷가와 바로 붙어있다는 점이다. 해운대는
바닷가에 숙소가 있고, 그 뒤에 해운대 시장이나 쇼핑센터 같은 상업지구가 있고 그 뒤에 주거지구가 있다. 이에 반해 광안리는 바다 앞에 바로 보이는
바닷가에 주거시설이 숙박시설과 음식골목이 바로 붙어있고 해운대라면 쇼핑시설이 있을 위치에도 주거시설이 있다. 우선적으로 주거시설이 유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상업시설이 들어오다보니 서로 섞여있게 된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버스킹을 많이 하기도 하고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 그리고 주변이 주택가가 많다보니 운동이나 산책을 하러나온 시민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23]
실제로 부산 시민들은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전국에서 피서객이 모여 바글바글하다못해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해운대보다 조금이나마 한산한 광안리를 더 많이 찾는 편이다. 대신 해수욕이 목적이 아닌 헌팅/놀이/눈보신(?)등을 목적으로 한 젊은이민폐손님들은 해운대로 간다. 사실 며칠 일정으로 관광을 왔다면 호텔이 많은 해운대가 좋겠지만, 그냥 당일치기로 놀러온 거라면 주변에 식당이나 놀 곳이 많은 광안리가 훨씬 낫다.
무허가 불법 숙박업소가 부산광역시 내에서는 광안리에 가장 많이 있다보니 예약할 때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불법 숙박업소가 많다보니 단속이 매우 심해 무허가 숙박업소에서 투숙하다 단속반에 발각이 되면 환불을 받지도 못하고 경찰관과 함께 동행하여 인근 지구대 또는 경찰서에 방문하여 참고인으로 여러차례 조사를 받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반드시 예약 전에 숙박업으로 정식허가를 받은 곳인지 확인을 해야한다.
광안해변로 광안리만남의광장 삼거리 남천동 방향으로 2차선은 우회전 전용차선이자 직진금지 구역이다. 이 곳은 교통법규 위반 블랙박스 신고가 많은 편이며 경찰이 상시대기하여 위반차량을 단속하고 있으니 차로를 준수해야 한다.
교통은 편리하게 잘 되어 있다. 인근에 위치한
지하철 역으로는
부산 도시철도 2호선
광안역,
금련산역이 있는데 이름이나 안내방송과 달리 광안역보다는 금련산역이 해변에서 조금 더 가깝다.[25]
광안역에서 해변까지 오려면 15분 정도는 걸어야 하며
금련산역에서는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버스를 타면 그나마 좀더 해변과 가까운 지점에서 내릴 수 있다. 광안리해수욕장에 하차 후 5분 정도 걸어가면 해변에 도착한다.
부산역에서
41번을 이용할 경우 광안리해수욕장이 아닌 광일맨션, 광안리카페거리입구 정류장에 하차 후 2분만 걸어가면 해변이 나온다.
대회 시작부터 논란이 불거졌는데, 일단
Play XP에 한 유저가 1시쪽 입구막기가 불편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맵의 디자인이나 물리 및 광원 효과의 디테일로 간혹 랙이 벌어지는 일이 잦아져서 문제가 생겼다. 이 때문에 스타리그 경기 내에서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도 몇 번이나 일어났기 때문에 관전자나 게이머 모두에게는 짜증이 나는 부분.
우주 정거장, 뉴커크 재개발 지구와 함께 테란과 저그에 유리하고 프로토스에게 절대적으로 암울한 맵이라 더더욱 까이고 있다. 다만 온게임넷의 특징 중 하나인 컨셉맵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많이 까지 않고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 주말에 수영구청, 광남지구대, 광민지구대에 주민 불편신고가 폭증하고 있다. 신고 건 중 소음, 사생활침해, 불법주차 신고가 가장 많으며 새벽에도 해수욕장과 인근 주택가 골목 등에서 고성방가 등으로 인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불법주차 관련한 단속요청 신고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19시부터 23시 사이에 광안대교 인근 수영만 일대 관광용 요트에서 폭죽을 터뜨리다보니 소음과 냄새로 인해 주민들의 민원이 폭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어 단속을 못하고 있다.
광안리해수욕장 일대가 관광지로 발전함에 따라 최근들어 일대 상가의 월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 부담을 느끼는 자영업자들이 버티지 못해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데, 광안리해변가 일대에 위치한 카페와 식당 등이 잇따라 폐업을 하고 광안리해수욕장에서 30여년간 영업을 하였던 게스 후 레스토랑 또한 2025년 월 임대료 5,000만원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옆 건물에 신축하여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잇따른 폐업으로 인해 공실된 상가는 현재 무인사진관과 무인오락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1]
1위는 같은 부산에 있는
해운대해수욕장, 2위는
대천해수욕장이다.
[2]
즉, 광안동 해안선을 다 차지하고도 양 옆 동네까지 갈 정도로 넓은 것. 예전 명칭인 광안(
廣
岸), 즉 , "넓은 언덕"이라는 이름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참고로 옛날에는 더 넓었다. 아래의 50년대의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70년대 간척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현재의 민락수변공원자리를 포함한 위치까지가 광안리였다. 즉, 지금보다 약 500m 더 넓었다.
[3]
현재의
수영구와
해운대구(반여동, 반송동, 석대동, 송정동 제외)에 해당된다.
[4]
부산 광안리나 서울
청량리,
수유리처럼
'OO리'로 끝나는 지명은 대부분 과거에 진짜로 행정구역이 리였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동으로 개칭됐음에도 관습적으로 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5]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6]
부산의 모든 해변에서 치러지는 행사이다.
[7]
해운대보다 파도가 잔잔하여 개최하는 듯. 광안대교 효과도 있고.
[8]
9.1번 항목의 스타크래프트 2 맵이 나왔을 정도.
[9]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이외에도
스페셜 포스 프로리그 등이 열렸다.
[10]
매년 여름철만 되면 백사장을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개선을 하는 해운대에 비해 거의 방관하는 수준.
[11]
남천동 친수공원 자리. 현재는 이전함
[12]
민락어민활어직판장이 있는 지금은 볼 수 없다.
[13]
현 남천자이
[14]
다만 이건 시기별로 차이가 나는데, 삼익비치가 부산 최고의 부촌으로 등극을 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79년에 11월에 입주한 직후에는 분양가도 높지 않았고, 막 매립된 매립지 특유의 치수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때까지는 남천동의 부촌은 부산KBS 총국 뒤의 부산시장관사 주변이었다. 하지만 오션뷰가 유명해지면서, 점차 부자들이 새로 이사오고, 결정적으로 치수 문제도 해결이 되자, 커뮤니티 시설도 붙어 있는 남천 삼익비치의 입지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부산의 부촌으로 자리를 잡는다.
[15]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6]
당시 해운대해수욕장은 60년대까지 미군의 휴양지로 쓰여서, 한국인들은 수영해수욕장이 작아지자 광안리로 모일 수 밖에 없었다.
[17]
감이 잘 안오지만, 1954년의 광안리를 보면
민락동과
광안동과
남천동 그리고
수영동까지 밭이었다는 뜻이다. 현재 이들이 속한
수영구의 크기가 10.21km2인데, 여기서 사진에 나오지 않는
망미동을 제외하면 7.58km2가 밭이라는 뜻이다. 작아보이지만 평으로 환산하면 230만평에 육박한다. 여의도의 크기가 2.9 km2이고, 밤섬과 한강유역을 포함한 여의도동(洞)의 크기가 8.48 km2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크기이다.
[18]
현재의 광안리하고 지형적으로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데, 바로 민락동의 진조말산 앞 부분이다. 지금과는 달리 민락수변공원 자리가 바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80년대 이후에 광안리는 민락동과 남천동에
매립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남천동에 있던 중골산을 없애고 매립하여, 그 자리에
남천 삼익비치를 세운다. 그리고 진조말산 앞에도 매립을 하여 수변공원과 회센터 부지를 마련한다.
[19]
79년사진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이 있다. 바로 사진 아래에 붉은 벽돌로 세워진 남부산교회. 1978년 10월에 완공된 교회로, 아직도 해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당 교회를 기준으로 지금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광안리로 몰려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20]
특히 남구와 수영구 사람들.
[21]
해운대에 바다가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비율이 광안리와 비교가 안되게 적을 뿐
[22]
그래도 광안리의 재건축 건물 중에
오피스텔 같은 주거시설도 올라가고 있어, 해운대와 다른 주거시설의 혼재라는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다.
[23]
차없는거리 시간에도 시민들이 모여 즐겁게 돌아다닌다.
[24]
신기하게도 잘만 터뜨리고 다닌다.
[25]
단 광안역에서 이어지는
광안로는 해변 중심부와 연결되고 금련산역에서 이어지는
남천바다로는 해변 서쪽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