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9:00:21

피켈하우베

🎩 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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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83-R68588%2C_Otto_von_Bismarck.jpg

피켈하우베를 착용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

파일:external/polpix.sueddeutsche.com/image.jpg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개량과 퇴역2.3. 퇴역 이후
3. 대중매체4. 참고 링크

1. 개요

Pickelhaube



'Pickel'은 송곳이나 꼬챙이, 'Haube'는 모자, 투구, 후드를 말한다. 따라서 직역하면 '꼬챙이 투구'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쓰였던 독일군 헬멧[1]으로 주로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보병의 장비로 알려져 있다.[2] 하지만 눈에 잘 띄는 점, 낮은 방호력, 높은 생산 단가 등의 문제가 있어 1916년에 슈탈헬름으로 대체되기 시작해 1차대전 말에 전군에 보급되면서 퇴역했다.

2. 역사

2.1. 초창기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의 독일 제국군 육군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지만 기원은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42년에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채택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졌다. 참조 한편 영어 위키백과에선 이 군모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른 가설을 하나 설명했는데 빌헬름 4세가 러시아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니콜라이 1세의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어떤 헬멧의 시제품을 보고 이를 채택/양산하여 빠른 시일 내에 보급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러시아 육군은 비슷한 시기에 매우 유사한 헬멧을 채택하였다. 참조[3][4][5] 이후 일설에 의하면 군사강국이었던 프로이센이 채택하자 곧이어 바덴, 바이에른, 작센, 헤센 등 독일의 다른 왕국들이 이를 모방하여 채택했다고 한다. 이 형태의 헬멧을 채용한 독일 이외의 나라는 대표적으로 기병용 헬멧으로 도입한 영국이 있으며 영국의 영향을 받아 미국[6]도 채용했고 스웨덴, 루마니아, 남미, 심지어 대한제국에서 채택되기도 했다.[7] BBC에 따르면 영국 경찰의 상징이기도 한 커스토디안 헬멧(근위대 헬멧)도 프로이센군의 피켈하우베에 기반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엄밀이 따지자면 영국군 근위기병대가 도입한 피켈하우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육군 이외에도[8] 공무원의 관모로서 채택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경찰, 철도 공무원이나 각종 관공서의 경비원 등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찰이 대표적이다. 소방관은 정수리에 완만한 형태의 장식이 달린 것을 보다 실용적인 보호를 목적으로 착용하기도 하였다.[9] 심지어는 민간은행의 경비의 제모로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소속에 따라서 정수리의 장식물 뿐만 아니라 정면의 장식이나 측면의 장식 및 턱끈까지 달랐는데[10] 당연히 직책이 높을수록 화려한데 뿔의 높이와 형태, 재질, 세공 등이 섬세해지고 여타 장식들도 섬세하고 화려해졌으며 고위관료나 황족 및 귀족, 근위대의 예식용 피켈하우베는 풍성한 깃이나 말총 장식을 달기도 했다.[11]

피켈하우베의 재료는 시기에 따라서 다르다. 근대까진 보병이나 포병 등의 일반 야전 병과에서는 주로 가죽에 놋쇠 장식을 단 것을 사용하였다. 고위장교, 흉갑기병이나 근위대 등 특별한 병과에서나 화려하게 은이나 황동 등 광택 있는 금속 재질 피켈하우베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수리의 장식은 보병 등 일반적인 경우에는 뿔 형태 장식이 가장 많았지만 포병은 구식 화포의 후미 혹은 구형(球形)의 포탄을 연상시키는 둥근 장식을[12], 창기병은 이전부터 유럽의 창기병들이 그래왔듯 폴란드식 군모인 로가티프카에서 유래된 마름모꼴 장식을 달았다.[13] 앞서 말했듯이 의장용으로 사용할 때에는 깃이나 말총 장식을 추가로 달기도 하였다.[14]

정면의 장식과 측면의 장식은 직책이나 소속주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는데 정면에는 소속된 기관의 문장 혹은 각 주의 상징 문장이 들어가고 측면 장식에도 왼쪽에는 주의 상징색을 사용했다. 반대편에는 국가 상징색[15]을 사용했다.

턱끈도 기본적인 가죽 재질에서 부터 겉을 금속비늘로 장식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파일:99C7DD415C0721B738.jpg

대한제국군의 피켈하우베는 조선 시대 양식 간주형 투구를 참고했는데 조선식 간주형 투구의 일자챙을 그대로 채택했고 정수리 장식도 간주형 투구의 삼지창 장식을 참고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저런 일자챙 형태만 있는 건 아니었고 일반적인 피켈하우베식 챙이 달린 것도 있다.[16]

2.2. 개량과 퇴역

1892년에 놋쇠 장식 등이 빛을 반사해 적군의 눈에 잘 띄는 문제가 지적되자 가벼운 천을 덧댄 가죽제 피켈하우베 M1892 Überzug가 표준이 되었다. 적에게 시인성이 높은 것도 피켈하우베의 고질적인 문제였다.[17] 일단 탄생목적 자체가 착용자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을 겸한 것이라 혼잡한 상황에서 봐도 여기 독일군이 있으니 잡아줍소 하고 먼거리에서도 눈치채기 좋게 반짝거렸다.

파일:external/www.kaisersbunker.com/uberzug_5.jpg

제1차 세계 대전기에 Überzug 피켈하우베를 착용하고 있는 독일 육군 병사.[18] 위장성을 고려하여 위장피를 씌우고 경우에 따라서 정수리의 뿔장식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장식의 결속 방식이 나사로 돌려 조여넣는 식이라 착탈이 쉬웠다.[19][20]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도 천이 덮인 가죽 피켈하우베가 육군의 정규복식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군사적인 추세에서 구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크게 문제는 세 가지였다. 눈에 잘 띄고, 안전하지 못하며 생산이 느리고 비쌌다. 피켈하우베 세트를 맞추려면 적어도 17.50 마르크정도가 필요한데, 17.50 마르크는 당시 일반 병사 두달 월급 정도이다.

특히 참호전에서는 피켈하우베의 단점이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참호전의 양상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 몸을 가리고 머리와 상반신의 일부만 내놓는 형태였는데, 뿔이 솟아나 있어 머리를 다 내밀기도 전에 착용자의 위치를 돋보이게 해 줘 저격 대상이 되거나 정확한 좌표 파악이 필요한 포병들에겐 좋은 관측대상이 되었다. 좁은 참호에서 걸리적거리기도 했을 테고...

게다가 기본적으로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백병전시에는 어느 정도 방호력은 있었지만 총알에 대한 방탄 성능은커녕 포탄이나 수류탄 등 파편 방호조차 이미 버거웠다.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총탄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포탄이나 수류탄 등 파편에 맞아 죽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피켈하우베의 훤히 드러난 귀와 후두부는 파편에 매우 취약했다. 이 때문에 과도기적인 피켈하우베 중에는 뒤쪽을 길게 만들어 후두부를 완전히 덮은 형태도 나왔다.

높은 생산 단가도 문제였다. 전쟁기간동안 영국의 해상 봉쇄로 인해 주로 남미에서 가죽을 수입하던 독일 내의 가죽 재고량이 거덜나기도 했거니와 다양한 재질의 각종 장식들은 생산 속도도 떨어트렸다. 과도기적으로 철로 만들어진 피켈하우베가 도입되기도 했지만, 금속 소재를 사용한 데다 위장무늬까지 도색한 경우 여전히 높은 단가, 까다로운 공정 때문에 전쟁이 심화되면서 펠트, 종이로 만드는 사례도 있었다.

전근대적인 헬멧은 다른 유럽국가의 군대에서도 문제를 일으켰고, 적국인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철모를 채택하고 뒤이어 영국도 철모를 채택하면서 다른 연합군 국가들에도 철모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21] 전쟁이 심화되자 화려하게 장식하여 사기를 증진하는 효과는 점점 더 의미를 잃었다. 반대로 현대화된 전선을 극복하고자 실용성이 대두되었고 독일군부에서도 철모 채택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철모는 직사화기로부터 제한적인 보호도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파편사상율을 극적으로 줄여주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의 획기적인 발명으로 손꼽힌다. 철모는 튼튼한 데다 보호 범위가 넓었고, 시인성이 낮아 위장에 적합했으며 주변환경에 최대한 녹아들게 하려는 배려가 있어서 구식 군모와 비교했을 때 생존성이 월등했다. 생산 시간과 단가에서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뚝딱 찍어내는 철모와 수공으로 섬세하게 장식을 만들던 피켈하우베 같은 구형 군모가 비교될 리가 없었다.

결국 1916년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철모인 슈탈헬름을 채택함으로써 피켈하우베가 정식 전투복식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피켈하우베보다 나아졌지만 생산 시간 및 단가를 많이 잡아먹었고, 거기에다 독일군의 만성 물자 부족도 더해져 채택 이후인 1916년에 벌어진 베르됭 전투 솜 전투 당시 최정예 사단의 장병들조차 상당수가 여전히 피켈하우베를 쓰고 있었고, 대전 말에야 전군에 보급이 완료되었다.[22]

2.3. 퇴역 이후

하지만 전방의 전투복식에서만 사라졌다는 말이지 후방의 장성이나 황족, 근위대 등에서는 종전, 패전 때까지 애용되었다. 과거에 여러 국가에서 채택되었었기에 일부 국가/단체에서는 현재까지도 의장용으로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스웨덴 왕실 근위대[23]와 남미 국가들[24]+중화민국.[25] 정작 거의 원조격인 독일의 의장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데 독일 연방군의 특성상 과거의 군사 문화에 대해 다소 민감하여 정규군의 복식 면에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전통이 있는 것들을 찾기 어렵다.[26] 다만 명칭이나 군악 등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과거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Pyramid%2Bof%2Bcaptured%2BGerman%2Bhelmets%252C%2BNew%2BYork%252C%2B1918%2B%25281%2529.jpg

미국은 독일에서 노획한 피켈하우베로 1918년 그랜드 센트럴 역 앞에 기념물을 만들기도 했다. 전시 국채를 홍보하고자 이 피라미드에 피켈하우베 1만 2천 개 이상을 사용했고 돈 받고 팔기까지 했다고 한다.

3. 대중매체

3.1. 게임

3.1.1. 도미네이션즈

유물로 등장한다.

3.1.2. 아이언 하베스트 1920+

독일계 팩션인 작센 제국 병사들이 쓰고 등장한다. 1차 대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쓰고 있다.

3.2. 기타

Eddsworld 토드가 이 모자를 " Moving Targets"와 " The End 2편"에 쓰고 나온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에선 비프로스트 공국의 여군집단인 발키리의 투구로 피켈하우베를 쓰고 나온다.

4. 참고 링크

- 참고 사이트(피켈하우베들을 보고 싶다면 'Helmets' 항목에 들어가면 된다). 피켈하우베뿐만 아니라 1차 대전 이전의 독일군 위주로 피복을 비롯한 다른 군장들도 잘 정리되어 있다.

- https://blog.naver.com/wellshit/221062025331 국내 블로그에 게시된 자료들, 생소한 정보들을 잘 정리했다.

[1] 방호용이 아닌 장식 목적의 착용물이다. 기병과 해병을 제외한 17~19세기 거의 모든 군인의 머리 착용물은 장식과 전통, 상징용이었다. [2] 모포를 둘러싸 동여매고 반합을 결속한 배낭이 눈에 익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는 국가의 구분 없이 고전적으로 사용되었던 형식의 군장의 모습이다. [3] 챙의 각진 정도 등 디테일이 부분적으로 다르지만 다자인이 거의 비슷하다. [4] 이 가설은 상당히 신빙싱이 있는데, 우선 러시아는 킵차크 칸국의 치하에 오래 있었다보니 본의 아니게 몽골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근대화 이후에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 영향 중 하나가 바로 뿔처럼 높이 솟은 모자인데 이는 몽골등 북방 유목민족들의 전통적인 투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러시아 특유의 방한장비였던 부됸노프카가 뿔같은 것이 달린 것도 그런 이유이다. [5] 또한 프로이센은 한때 전통적 친러국가로서 러시아군의 장식을 많이 따라했다. 프로이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칼라와 손목휘장은 러시아 제국군이 먼저 디자인하고 채용한 것이다. 사실 군대 의복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건 프로이센 뿐만 아닌 온 유럽 군대의 관행이었다. [6] 파일:external/p2.la-img.com/10886619_1_x.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ickelhaube_US_Marines_corps,_casque_%C3%A0_pointe_des_marines_am%C3%A9ricains.jpg [7] 사진은 대원수 군복을 입은 고종과 원수 군복을 입은 순종. 피켈하우베는 1895년 육군복장규칙의 제정과 함께 조선 육군의 복장으로 지정되어 차츰 모든 군사에게까지 범위를 넓혔으나 1897년 규칙이 개정되며 캐피모 형태 군모로 바뀌었다. [8] 해군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9] 참조 [10] 당시 유럽의 군사 복식들이 다 그렇듯이 소속 지역, 직급 등에 따라서 장식이 무궁무진하게 다양하고 화려하다. [11] 참조1, 참조2 [12] 참조 [13] 참조, 창기병이라는 병과는 나폴레옹 전쟁 때 생겼는데, 폴란드에서 유래된 병과이기 때문에 폴란드식을 따른 듯하다. - 참조 [14] 참조, 창기병용 피켈하우베에 말총 장식을 추가로 부착한 것이다. [15] 독일 제국의 국기 색상인 흑, 백, 적 [16] 일자챙 형태는 예복용이고 일반적인 챙은 상복용이다. [17]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에 한국군이 계급장 색을 바꿨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세한 맥락은 해당 항목 참조. [18] 피켈하우베 정면에 써있는 숫자는 해당 장병의 소속 연대를 적어놓은 것이다. 후에 슈탈헬름이 차차 도입되며 피켈하우베가 도태되어갈 때 쯤엔 연대 숫자를 정면에 써놓지 않게 된다. [19] 사실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피켈하우베 뿔이 생각보다 충격에 약했기 때문에 전투중에 휘어지거나 부러지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20] 그리고 말 그대로 장식이지 이걸로 박치기하라고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제거해도 전투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시피했다. [21] 유럽에 위치한 연합국들에서는 주로 프랑스식 '아드리안' 철모를 채택하였고, 영연방권이나 미국 등 국가들에서는 영국식 '브로디' 철모를 채택하였다. [22] 이러한 낮은 생산성 및 경사가 작은 디자인으로 인해 떨어지는 방탄 능력을 해결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말에 디자인을 변경한 파생형이 개발되었으나 아돌프 히틀러의 반대로 생산이 늦어져 대전 극후반에서야 극소수만 사용되었고, 대전 후 동독군에 채택되었다. 다만 생긴 게 영락없는 바가지.. 착용자가 상당히 모자라보이는 효과가 있는지라 히틀러가 반대할 만 했다. [23] 파일:external/cdn.theaussienomad.com/stockholmpalaceguards.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wedish_Royal_Guard_Bastille_Day_2007_n2.jpg [24] 파일:external/s05.radikal.ru/319ceeda4f10.jpg [25] 중독합작 관련 산물이다. 실제로 쌍십절 의장대(남색과 백색)를 비롯해 국부기념관, 중정기념관 근위대들을 보면 전부 다 피켈하우베에 백색(국부기념관) 혹은 남색(중정기념관) 정복이다. 다만 뿔은 없다. [26] 나치와 관련된 과거사 청산이 이유다. 전쟁 이전의 독일에서 탈피하고 개과천선하였다는 의미에서 당시 대부분의 자유진영 국가들이 그러했듯이 기술적(구조나 재질 등)으로도 진보적이었던 미군식 군장의 형식을 많이 참고하고 도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