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개변된 역사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문서.실존 인물들의 경우 ● 표시.
2. 조선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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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철
주인공의 장남. 주인공이 환생 전의 자신과 같은 이름을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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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주인공의 차남.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여 나라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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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왕후 조씨 ●
원래 역사대로 이형을 양자로 들여서 보위에 올렸다. 하지만 환생자인 이형은 즉위하기 무섭게 대놓고 청나라와 전쟁을 선포하는 등, 실로 파천황스러운 행보를 보이자 혼절을 하였다. 이후로 김좌근이 역모를 일으킬 때, 궁녀들과 함께 궁궐 밖으로 대피하다가 무사히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언급은 됐는데 친가인 풍양 조씨가 김좌근의 난에 얽혀 풍비박산이 나면서 다시 수렴청정을 하게 되지만 이름뿐인 수렴청정을 할 뿐이라고. 그래도 어쩌면 이 작품에서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에 무사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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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부인 민씨 ●
이하응의 정실부인이자 흥친왕 이희와 이형의 친어머니. 주로 등장했던 시기는 극초반이었던 이형의 즉위 직전과 즉위 초의 시기였다. 여기서의 이형은 환생을 한 사람이기에 딱히 그녀에게 친모로서의 정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아들로서 아껴주는 민씨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나름 신경을 써주는지 병오박해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말을 해줬다. 그리고 이형이 즉위하기 무섭게 천주교 박해를 중단하라는 왕명을 내리자 민씨는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이형을 아기 천사로 여긴다.[2] 장남인 흥친왕 이희가 대만의 국왕이 되어 남편인 이하응도 같이 대만으로 떠났어도 이형과 함께 대한제국에 남아있게 된다. 이후로는 이형의 만수무강과 황자 탄생을 기원하는 미사에서 다른 천주교 지인들과 함께 그를 걱정해주는 것 외에는 간간히 언급되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참고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다른 열강들이 고종이 해외 정세에 대해서 잘 알게 된 계기로 구교도인 민씨와 그녀의 인맥으로 이어진 다른 구교도들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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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근 ●
우리가 아는 안동 김씨의 수장인 그 사람. 미쳐날뛰는 왕을 엿 좀 먹여보겠다고 강수를 뒀다가 상대가 미친 짓으로 받아치는 바람에 인생 망했다. 이형이 청나라와의 사대교린을 청산하겠다고 주장하자 청과의 전쟁에서 "그럼 전하께서 선두에서 서서 북적을 무찔러 주시겠죠?" 라고 도발. 그러나 한 수 위의 미친 놈이던 이형은 "영상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날 지지해주니 어찌 거절하겠소?" 라며 김좌근을 전쟁의 주모자 중 한 명으로 몰아가버렸다. 갓 즉위했던 이형은 당시 겨우 12살이고 안동 김씨가 조선의 세도가이자 실세임은 공공연한 정보라서 청의 서태후 입장에서는 아무리봐도 김좌근이 이형을 충동질한 흑막으로 보였고[3] 이에 서태후는 "김좌근, 그 노괴 놈만큼은 반드시 목을 따주마!" 라고 분노하자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기를 쓰나 실패.
이후 미쳐 날뛰는 시대 상황을 따라잡지도, 상황 파악도 하지않고, 노망이라도 났는지 이형이 조청 전쟁으로 나간 틈을 타 역모 직행코스를 탔다가 그대로 꼬여서 안동김씨를 통째로 말아먹으며 사망. 살아있었으면 참수나 사약, 아니면 청나라까지 끌려가서 온갖 고문당하다 죽었겠지만[4] 운 좋게도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시신은 이형이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해 청으로 보내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반역이기에 세도정치 기간 내내 쌓아올린 안동 김씨 가문의 재산은 상당수가 국고로 환수되었다. 그나마 연좌제는 피했지만 가문에서 살아남은 장성한 남자들은 김병학, 김병국 형제들 뿐이다. 그리고 이 인간의 역모계획은 의외로 이형과 흥선대원군의 개혁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당대에 안동 김씨와 엮이지 않은 경기 양반지주들이 드물었기에 대부분의 한양 선비들이 역모계획에 엮여 박살나거나 숨죽이고 찍 소리도 못하게 되었고 지방 유림들의 집단 상경에도 힘을 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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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계 ●
금위대장. 환갑이 넘은 노인이지만 전투력이 막강해서 평양성 공방전에서도 활약한다. 승전 이후 이형이 이끄는 조선이야말로 천명의 국가라고 생각하나 이형에게 조선은 오히려 천명에 도전하는 신흥 강국(러시아)과 새로이 맞서야 한다고 듣고 경악한다. 이형의 전속호위나 마찬가지라 따라다니면서 음주를 막기도. 금위대가 시위대로 개편된 후에는 시위대장 직위도 겸하는지 간도에서 러시아와 대치할 때 지휘관으로 파병된다. 딱히 사대부도 아니고 유학자도 아니지만 유교적 가치관으로 환갑 너머까지 살아온 노인인지라 나이대에 걸맞게 이형의 탈 유교적 행적에는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물론 그래도 이형이 "그럼 다른 방도 있나?"라고 물으면 "없으니 어쩔 수 없군요..." 하고 납득한단 점에선 반란분자였던 지방 향림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 고령에 급변하는 개혁, 전쟁에 연속 참전하다 보니 기력이 다해가서 "슬슬 은퇴해야겠다..." 싶지만 이형은 사고방식이야 어쨌건 능력과 인성이 보장된 허계를 쉽사리 퇴직시켜줄 생각이 없다. 본인도 손자뻘인 주인공이 온갖 망나니 같은 행보를 보이는데 이를 두고 퇴직하기는 눈에 밟혀서 말도 못하고 있는 실정. 아버지(이하응)도 믿지 않는 이형이 가장 신뢰하는 조선 왕조의 신하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은퇴를 청하는데, 이형이 그냥 무작정 낙향시켜 줄 수도 없는지라 군관학교를 맡아달라며 떠넘겼다. 이후 군관학교의 첫 졸업식에서 재등장하여 이형의 연설을 들으며 자신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에 눈물을 흘리고 다음 날 사직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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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근 ●
제1차 조청전쟁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후, 허계가 군관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위대장을 그만두자 그 자리를 유창근이 이어받는다. 그리고 훗날 한성근이 그의 뒤를 이어서 세대교체를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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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
김병국 ●
안동 김씨[5]의 일원. 김좌근이 미쳐서 역성혁명을 꿈꾸자 필사적으로 말리려 했지만 실패. 결국 이하응과 협력해서 한양에 모인 군사의 절반인 4만여 명을 이끌고 평양까지 강행군한다. 이미 왕은 죽었거나 생포당했을 거라고 자포자기했으나 평양성 공방전은 조선군의 대승으로 끝난 상황이었고 얼떨떨해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고종에게 납작 엎드리며 명을 따른다. 이후 조선군을 지휘해 북방에 흩어진 청군 잔당을 추격하고 10만의 군으로 봉천을 공격하는 일에 참여한다. 덕분에 안동 김씨가 몰락할 때[6] 김병학, 김병국 형제는 전혀 벌 받지 않았고 벼슬도 유지할 수 있었다.[7] 그래도 가문이 줄초상을 치른 데다 최고 어른 김좌근은 시체가 돼서 청나라로 넘어간지라 인과응보라 해도 심란한 듯 하다.
이후로는 어떻게든 이형의 명을 따라 출세하기 위해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니며 청이 서역에게 힘을 못 쓰는 모습을 보며 이형의 처세가 옳았음을 실감한다. 물론 이들의 심정이야 어떻든 이형은 자신의 명으로 친척들을 대거 잃었을 김병학 형제를 잘 믿지 않는다. 이후 김병학은 영국으로, 김병국은 프랑스로 파견된다. 둘 다 민치상을 따라서 단발하고 양복을 입으며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이후 공기화...됐다가 귀국한 뒤, 이형의 명에 따라 각각 범아시아 조약기구 산하의 아시아 식량농업기구의 사무총장과 부총장으로 임명되어 강남 대기근 사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심지어 부총장인 김병국은 현장에서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데, 작중 묘사에 따르면 이는 자신들에게 씌워져 있던 멸문당한 안동 김씨의 이미지가 수년 간의 해외 추방이나 다름 없던 파견생활 동안 옅어진 걸 어떻게든 활용하여 자신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덧칠하려는 면이 강하다고.
강남 대기근 이후 공기화되나 싶었지만, 199화를 통해 조선애국당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체계를 세울 때 물밑에서 도와줬을 것으로 정황이 밝혀진다. 소속 의원이 역모죄로 죽은 김응균의 서자인 김가진이기 때문. 장동 김씨 내에서도 성골 중의 성골인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엔 부담되니 전면에 나설 선수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자들로 선발하고 정당 활동을 막후에서 지도-감독하는 듯하다.
이후, 의회에서 이형과 독대한 김가진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고는 그가 가둔 성과에 대해 매우 흡족해하면서도 서자라는 점 때문에 때가 되면 그가 스스로 물러나길 바라며,[8] 김옥균의 이야기가 나오자 문중의 적자 중에서 가장 총명한 인재였음에도 스스로 절연을 선언한 탓에 죽일 듯이 이를 갈며 그를 방해하려 한다. 후에 김가진이 이끄는 국민당이 선거에서 참패하자 그 책임을 물어 엄하게 질책하지만[9] 반대로 김가진이 절연하겠다는 식으로 대드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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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
직접 등장하지 않고 이형의 언급으로만 등장. 주제 파악을 너무 잘 해서 배신한 인물로 언급되는데 현재 잘 나가고 있는 대한제국에 어떻게 등장할 지는 의문. 의외로 아군화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10][11] 그리고 중화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환호하는 군중들 틈에 섞인 소년기의 모습으로 등장. 벌써부터 민족주의를 이용해 권력을 움켜쥐려는 계획을 꾸미는 떡잎부터 노란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조선애국당이라는 정당이 생긴 상황이기에 출사하여 민족주의 광풍을 부채질하는 내부의 적 포지션으로 등장할 것이 점쳐지는 상황.
이후 관직에 출사하고자 하나 이형에 의해 관로의 길이 막히면서 언론인으로 전향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각종 기사들을 자극적으로 기사화하는 한편, 장모인 민자영과 희대의 불륜을 저지르다가 이형에 걸리고 조선을 떠나려던 와중 김창암에 의해 선로로 굴러 떨어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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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혁 ●
작품 내 수혜자. 첫 등장은 130화 '민족주의자' 편으로, 본래 역사에서는 전봉준의 부친이란 것 외에는 탐관오리인 조병갑에게 항의하다 곤장맞아 죽는, 평범하게 가난한 서당훈장으로 끝나는 사람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단 조병갑이 날뛰기 전에 세도정치를 밀어내버려서 본래 역사처럼 맞아 죽을 일을 피했다. 등장했을 때 당시의 모습도 '조선이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실 역사상의 인물의 변화한 모습을 잠깐 보여준 단역' 정도로 끝. 이형의 행보로 조선에 본격적인 개화의 바람이 불자, 세마지기 땅을 전부 팔아서 외국어 백과사전과 서적을 구입해 독학을 시작한, 개화에 앞장선 지방 지식인이 되었고,마누라는 뒷목을 잡았다고.덕분에 교육부가 세워져 지방에 학교를 세울 때쯤에는 '인근에서 신식학문에 가장 해박한' 지식인으로서 명성이 퍼져 공식적으로 전주의 큰 학교에서 스카웃이 오면서 집안 살림은 펴졌는데... 그 학교가 학생 70명에 교사가 그 한 명뿐이라는 빈약한 학교 시스템에 골머리를 앓는다. 수입은 꽤 늘었지만 가족들이 보기엔 과로사하겠다 싶을만큼 업무에 치여산다고. 다만 그럼에도 '나라의 녹을 받으며 자신의 재주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사용하는' 유자의 필생의 소망을 달성한 덕분에 새로 배우고 새로 가르치는 과잉 업무를 자신의 의욕만으로 처리해내는, 자타공인 전주 제일가는 민족주의자.[12]
다만 아들놈이 천명대전에 한 손 보태겠다고 자원입대하겠다고 하자 펄펄 뛰며 반대했다가 아들놈이 가출하는 상황에 몰린다.[13] 여담으로 아들을 포함해서 눈 여겨본 제자가 3명 있는데, 이 3명은 전쟁에 참전했다 소식조차 오지 않게 된 청년들의 미래 패턴 3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14]
전쟁은 앳저녁에 끝났건만 가출한 자식놈에게선 1년 반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는 바람에 죽은 걸로 생각하고 일에 빠져지내면서도 생각날 때마다 한탄하는 나날을 보내며 속이 썩어가고 있었지만, 자식놈이 소리소문없이 해맑은 미소로 학교 교문에 나타나자 단숨에 매타작을 벌이는 이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다. 이후 자식놈이 얼굴 보이고 하루만에 도로 돌아가야한다고 하자 밀린 공부를 밤새도록 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여담으로 가장 앞장서서 신학문을 배운 앞장선 지식인이지만, 근본적으로 전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5]. 다만 그럼에도 학식과 안목은 상당해서, 새롭게 도입된 화폐(원화)의 모습을 보고 그 돈이 범아시아 전체에 퍼지게 될 거라고 직감하며 나라가 부강해지는 걸 볼 수 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기관을 해석하여 이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 전봉준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이형이 이런 전창혁의 지식 수준을 전봉준을 통해 알게 되면서 그를 성균관대학교의 인문학 교수로 삼을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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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기 ●
박규수가 총리대신에서 물러난 이후, 의회의 의원들은 하나같이 민승호를 차기 총리대신으로 추천했는데 이형은 이미 여흥 민씨 일가가 프랑스의 파리 외방선교회와 결탁하여 많은 이득을 거둔 것을 알고 그들을 경계하였기에 유홍기를 임시로 총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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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조선애국당을 국민당으로 개명한 이후, 국민당의 총재가 된 인물. 그리고 너무 급진적이며 만주족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김가진에게 만주족도 아주 오래전 고구려 때부터 한민족과 같이 지내왔으니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 설득하였고 김가진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후, 러시아가 동시베리아 재구입 의사를 이형이 거절하게 되면서 주한 프랑스 대사인 앙리 벨로네가 이형의 초청을 받게 되어 한불동맹의 재확인이 있었다. 그리고 김윤식은 이형으로부터 프랑스와 영국이 조만간 한 판 붙게 될 예정이며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한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이 같이 끌려다닐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아연실색한다. 김윤식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지에 대해 이형에게 묻고, 이형은 김홍집과 어윤중을 자신에게 오게 해달라 말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두 사람만큼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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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중 ●
초반부에 프랑스 유학을 떠나는 지방 유생 대표로 첫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예견한 이형이 어윤중을 불러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벌어지면 어떡할 지를 물어보았고, 어윤중은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리는 없다고 단언했다. 허나 혹시라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의 개입을 통해 중재하라는 발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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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길
제1차 조청전쟁 당시 평안도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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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석
제2차 조청전쟁 직전에 등장한 단역. 목포의 유생이다. 조선이 천주교 박해를 금지한 데다가 부산, 인천, 목포, 원산, 남포 5개 항구가 개항하면서 극동에 체류 중인 서역의 천주교 사제들이 항구를 통해 들어왔다. 그들은 조선에 정착하여 천주교를 전도하는데 이에 반발한 한유석이 주먹패를 이끌고 교회를 급습하여 외국인까지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알게 된 이형은 이를 보고하지 않은 목포 현감을 파직하고 한유석과 그 일당들에게 태형 50대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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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
러시아 내전 당시 장교로서 활약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는 러시아군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으며, 상관인 원세개에게 이를 항의하러 갔다. 이형이 홍범도를 일컬어 '반드시 크게 될 인물'이라 치하한 것을 알고 있어 출세지향적인 원세개(위안스카이)는 이형의 총애를 받는 홍범도를 계급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 쯤으로 살살 달래가며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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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
어전회의 때 짧게 등장.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국민당의 상원위원이다. 어전회의에서 복지정책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 황상의 은혜를 입어 다 잘 살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도 가난한 건 본인이 무능한 거고 이를 나라에서 보살펴달라는 건 나태한 것이다.' 라는 논리를 피며 반대하며 찬성파인 전창혁과 열띤 논쟁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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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
작중 인재를 논하면서 20대도 안 된 인재로 이름만 언급되었으며 이원철이 인도차이나로 갔을 때 1등 서기관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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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
성균관 대학교의 학생회장으로 짧게 언급된다. 아주의 큰형으로써 본밭고자 하는 다른 아시아의 나라를 가르치자는 선각자론을 주장한다.
3. 중국 대륙(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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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전 ●
태평천국의 교주로 원래대로라면 자살하게 되는 것을 청의 천명 쇠락 및 조청전쟁에서 조선이 이기자 이에 호응하여 태평천국을 다시 일으켜 궐기, 난징을 재점령한다. 그 후 상하이로 쳐들어가 파괴와 대학살을 벌이지만 이에 복수하기 위해 몰려온 연합군에 패배하고 롄윈강에서도 패배, 충칭까지 도망친다. 그 후 이홍장의 토벌로 쓰촨성까지 밀려난다. 그 후 병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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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귀복 ●
홍수전의 아들이자 태평천국 2대 교주. 홍수전 사후 쓰촨성에서 태평천국을 안정시키고 티베트, 러시아와 손을 잡은 후 중화제국과 동맹을 맺는다. 중화제국이 멸망한 이후 카간 이형에 의해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지만 카간도 이들의 사상이 위험한 것을 알기에 때를 잡아 뭉개버릴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본인도 이형이 언제까지 자신들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형이 3만 병사들과 몽골로 북상하자 러시아의 지원을 업고 그들의 뒤통수를 쳐 이형을 암살할 음모를 꾸민다. 이후 이형이 장안에서 당한 암습에 의해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오보를 접하게 되고, 이를 반기면서 대한제국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쓰촨 일대의 총력을 모아 구성한 5만여명의 군대를 기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태평천국 간부들 중 군을 다루는 소양이 있던 간부들은 거의가 청나라 및 중화제국과의 전쟁에서 죽거나 토사구팽되어서 사라졌기에 군사적으로는 이미 질적 저하가 심각했다. 그 역시 수십년간 신의 아들로 떠받들여지다 보니 스스로를 진정한 현인신이라 믿고 있어서, 태평천국에 인재가 없음을 알고는 있었음에도 출정을 명한다. 그러나 쓰촨성 일대를 벗어나자마자 한성근 준장이 지휘하는 대한제국군과 마주쳤고, 참패를 당하며 겨우 도망친다. 그런데… 쓰촨성으로 도망친 줄 알았는데, 하루 푹 쉬고 전사자 분류까지 마친 뒤 쓰촨성으로 간 대한제국군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초계중이던 병사들에게 붙잡혔고 참수된다. 이에 한성근은 도망치면서 민가를 괴롭혔기에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분석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올린 보고서를 읽은 이형이 이런 녀석이 왕이라니 말세구만이라고 혀를 찰 정도.[16] 이후 시신은 불에 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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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 ●
117화에서 고향에서의 소작 쟁의 때문에 중화제국에서 도망치고 청에 망명을 청했다가, 대한제국군의 징발을 보고 군관이 되겠다며 한성으로 떠나게 될 소년으로 등장한다. 잘못하면 중국인 '위안스카이'가 아니라 대한제국인 '원세개'가 탄생할 지경. 이후 대한제국에서 위병으로 근무 중이며 황비홍에 관한 사실 등을 이형에게 보고하면서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출세를 도모하려 한다. 그리고 여전히 천자로 즉위할 것과 그게 아니면 허수아비 천자라도 세우자고 이형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이하응이 나오자 그의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에게 황비홍이 위험인물이라고 모함하여 이하응이 무도대회 관계자들과 황비홍의 상대선수를 사주하여 그를 해하게 하려고 한다. 다만 이로 인하여 황후에게 찍히게 되어 황후가 이하응과 딱 찝어서 나가라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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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 ●
대한제국에서 열리는 무술대회 참가자로 등장. 개최 연도가 1873년이니 26세. 무술대회 참가를 신청하러 가는 길을 몰라 헤매던 중에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김옥균에게 도움을 청하고는 서로 통성명을 한 뒤 같이 관청으로 간다. 이 일을 계기로 많이 친해졌는지 얼마 뒤에 서로 길거리에서 대련을 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그리고 그걸 본 김가진은 아연실색
그러다가 두 사람의 대련을 뜯어말리려 나선 김가진과 안면을 트고는 직업 특성상 자신을 돌봐주기 어려운 김옥균에게서 김가진을 소개받고는 그에게서 숙식을 제공 받는 대가로 그의 건강 상태를 진단해주고 무술도 가르쳐주는데,이형이 영화에서나 나왔을 기술이라고 아쉬워했던무영각을 시전하여 그를 뒤로 자빠지게 만든다.
참고로 자신이 한양의 무도대회에 참가하러 왔다는 사실을 원세개에게서 보고 받은 이형이 자신의 대회 일정을 마지막날로 빼주고 자신이 친히 참관하겠다고 했는데, 이 사실에 황비홍 본인 또한 매우 기뻐한다. 하지만, 대회에서 우승하면 황제에게 뭘 바랄 거냐는 김가진의 질문에 뭔가 망설이는 걸 보아 보통 부탁은 아닌 듯하다. 참고로 이형은자신의 사심을 가득 담아황비홍을 군의 무술 교관이든, 의사든 간에 그를 어떡해야 대한제국 내에 붙잡아 둘까 고민 중.
예상됐던 대로 원세개의 모함에 넘어간 이하응 때문에 불량 보호구 착용을 강요받아서 맨몸으로 출전하고, 상대 선수 또한 이하응의 사주를 받았는지 살의가 느껴질 만큼 거칠게 나오지만,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고는 무영각을 날려 장외승을 거둔다. 당연히 이를 보고 싶어하던 이형의 입에서 경기장이 울리도록 탄성이 나오게 한 건 덤 아닌 덤. 참고로 이형에게 한 부탁은 서양의학을 배운 의사들을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란 것이었고 이형은 이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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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갸 후쥔 ●
제1차 조청전쟁에서는 청군으로 조선에 침공하였지만, 제2차 조청전쟁 당시 이형에게 항복한 만주족 장수. 이후, 이형을 따라 북경 함락에 기여하며 제2차 조청전쟁이 종전한 후에는 이형에게 기병 소장의 자리를 받아 1만 명의 병사들 중 쓸만한 병사 6천을 선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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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
등장은 없이 언급만 되며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읽은 손문으로 언급된다. 이토 히로부미의 잔당과의 연락을 꾀한다며 요시노부와의 대화중 언급된다. 요시노부는 그저 연락만 차단하면 되냐고 묻지만 이형은 그냥 암살하라 한다. 요시노부는 이자가 누군지 모르니 그냥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고 이해했지만 이형은 현대 지식이 있으니 나중에 중국의 국부로 불리는 큰 인물이라는걸 알기에 히로부미의 잔당 일도 있고 차후 중국의 주나라 체계 회귀에 방해가 될 것이기에 제거한걸로 보이며 나중에 요시노부는 손문의 처리로 바쁘다고 언급되기에 암살이 성공한걸로 보이며 결국 손문의 죽음으로 한족 민족주의가 한풀 꺾였다며 확인사살. 원 역사의 행적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게 뭣도 못해보고 암살로 끝나버렸다.
4. 열강
4.1. 프랑스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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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4세 ●
3세의 아들 루이 외젠 보나파르트. 원 역사에서는 영국으로 망명하고 줄루족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했지만 여기서는 아버지가 기병 돌격 끝에 전사한 이후 외국에서 귀국해 14살에 황위에 올라 유럽에서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지우기 전에 종전은 없다며 결사항전을 선포. 루이 장군을 책임자로 앉히는 등 전쟁준비를 지지한다. 다행히 루이가 유능했기에 파리 방위전과 라인란트 방어선 돌파, 하노버 점령과 오러 연합군 격퇴와 이탈리아 군 구원에 이어 뮌헨 포위 성공 등, 느려보이지만 확실히 우세를 점하고 있으니 아직은 현군 취급일 듯. 그러나 루이는 어떻게든 전쟁을 멈추고 싶음에도 순수하게 아버지를 상실한 황제의 분노를 멈추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신뢰해서 의견을 묻고자 전선에서 파리까지 소환한 루이 중장까지 섭정 의회와 마찬가지로 영국과의 협상에 응해야 할 것을 강하게 피력하자 영국과 손을 잡기로 결정한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면을 보면 군주로서의 기본 자질은 갖췄다.
결국 프로이센 공화국의 내전으로 프랑스군이 베를린을 점령해버렸는데 큰 타격을 입어 협상장으로 쓸만한 건물이 없는 베를린을 협상날까지 어떻게든 고쳐놓으라고 고집을 부린 모양. 선제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자신이 베를린에 승리한 군주로서 입성하고픈 모양이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협상 중에 벌어진 독일발 금융 공황으로 인해 급하게 군대를 후퇴시켜야 했고, 결국 호엔촐레른 왕가의 프로이센 복귀와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자국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공장을 국영화하며 군부대를 대량으로 동원해 폭동을 진압하는 등, 간신히 한숨 돌렸지만 섭정 의회가 약해지고 대부분의 책무는 황실과 군부가 지게 되었다. 이어 패장으로서 파리에 복귀한 루이 중장과 대면하는데 의기소침한 루이 중장 앞에서 애써 분노를 삭이며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면서 질타하고는 그를 원수 계급으로 승진시킴과 동시에 파리에서의 개선식 준비를 명령한다. 또한, 이형의 야망과 인도차이나 식민지에서의 경영실적 등을 그에게 물어보고는 장기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러시아 동맹에 맞서 국력을 키우기 위해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을 추진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 확보와 신-러 동맹 견제에 대한 대한제국과의 공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대한제국에 매각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계획한다.
이처럼 '공화정이 탄생하기는 할까?' 싶을 만큼 괜찮은 식견을 보여주지만, 사실 그렇게 나라 내부가 좋은 상황은 아니다. 국민의 지지는 높을지언정 황제 본인은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에 겨우 14세, 종전 때에 만 18세 밖에 안 된데다 첫 용단이었던 전쟁마저 패전에 가까운 결과로 끝나버린 바람에 프랑스 국내의 각 세력들이 어떻게든 황제를 이용해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유일한 장성 진급자인 루이 베르그송을 반 억지로 계속 빠르게 진급시킨 끝에 오성장군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겸 금융공황의 여파로 벨기에가 멸망한 뒤, 분열된 3개의 지역 중 프랑스인들이 주류 인종인 왈롱 주를 흡수하고자 원수로 진급한 루이를 지휘관 삼아 프랑스군을 파견한다. 그리고 그의 반도 안 되는 병력이나마 먼저 파견한 영국에서 제안한 협상에 자신이 보낸 루이가 프랑스 대표로 나온 걸 두고 협상 결렬 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영-란 측이 프랑스의 제안을 전면수용하면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왈롱 주를 합병한다. 이로써 1차 세계대전에서 손상된 위신을 세우고, 자신과 함께 체면을 세운 루이 원수와 손잡고 프랑스 내부의 부패기득권 세력들을 대거 숙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던 중 영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스톡홀름 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는 못 미더운 동맹국이었다고 해도 전쟁에서 같이 싸웠던 영국이 이렇게 빨리 등을 돌린 것에 분개하여 아프리카 정복을 더 빨리 추진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매각을 서두른다. 벨로네 공사를 전권대사로 특급승진을 시키고 프랑스 극동본부의 인력을 아프리카 정복과 대한제국과의 공조 강화에 투입하는 등 정력적인 행보를 보여주었고, 아버지대부터 이어온 친한 행보가 헛되지 않아 대한제국과 동맹체결을 성공한다. 일단 대한제국의 상황이 상황이라 인도차이나 매각대금은 당장 받지 못했지만 불과 10여년만에 지역패권국이자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제국을 예시로 들며 프랑스의 아프리카 정복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아프리카 정복을 개시한다.
물론 영국, 네덜란드 등의 다른 열강들이 집요하게 여론전을 벌이며 방해에 나섰지만 러시아가 남진을 개시하면서 당장 지중해가 위험해진 영국이 주춤하는 사이, 스페인-이탈리아와 이어지는 삼국관세동맹까지 체결해 영국의 영향 없이 경제침체를 타파할 계획을 구상한다. 두 국가에게 아프리카의 이권을 분배할 계획까지 상정한 것은 덤. 오스만 투르크가 러시아를 감당하지 못해 구원을 요청하지만 적당히 물자를 지원해주는 수준으로 입을 씻는다.저번에 그렇게 도와줬는데 그 꼴이었으니
이후 미국에서 이하응이 동방 성자 전설(...)을 찍는동안 벨로네가 보낸 밀서를 받게되고, 영국으로부터 대서양 - 태평양 주도권에서 우위를 차지할 기회로 여기면서 파나마 운하 건설을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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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 장 시메온 대주교(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
원 역사에서는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이며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로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된 성인. 또한 천주교 조선대목구[17]의 4대 교구장이었다.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이지만 본문에서 이 이름이 드러난 적은 극초반, 조청전쟁 직후밖에 없다.
주인공이 고종으로 역환생하면서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를 굳히려고 모태신앙 천주교인 코스프레를 한 덕분에 병인박해가 안 일어나면서 원 역사처럼 처형당하기는커녕, 한성에 성당을 짓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 중 일부 인사들을 들여서 이름도 한국식으로 정경일로 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포교활동을 하게 된다.
이후, 한국에서의 포교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교황청에서 대주교 서품을 받았고, 포교의 자유를 허락해 준 이형을 아기 예수처럼 받들어서 그가 필요할 때마다 부르면 즉시 달려간다.[18] 조러전쟁 당시에 자신과 시위대 기병연대가 쓰려고 밀수한 광기의 연초 10kg(...)을 부상병에게 쓸 모르핀으로 정제해달라는 이형의 부탁에 그게 새빨간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아편을 모르핀으로 만들어줬고, 명동에 성당을 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한국어의 문법체계를 정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는 그날 바로 입궁하고는 본국의 언어학자들과 한국 내에 있는 신자들 중 한국어에 능통한 이들,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 중 어학에 능한 이들을 불러 모아서 사업을 추진한다.
그런 탓에 작중 이형이 다른 의미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인물인데, 그가 상대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닳고 닳은 데다 거칠기 짝이 없는 능구렁이들이라 막 부려먹거나 이용해도 거리낌이 없는 데 반해 호구 잡힐 것 같이 눈빛이 너무 맑은 데다 순박해보이는 탓에 양심이 찔려서 부담스럽다고. 오히려, 베르뇌 대주교가 그를 자주 알현하고 싶어하는 데도 국정 운영을 핑계로 피할 정도라니 말 다한 셈. 추기경에 오른 후에도 이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어 정비 사업 확인차 방문한 이형에게 천주교 차원에서 고아나 상이군인 등을 돌봐주는 사회복지사업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부탁받는데, 이에 진심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형의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근대화'에 약간이나마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전봉준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이후, 한성에서 유행하는 홍역에 걸린 차남 이강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여 그의 건강을 신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이형에 의해 한밤중에 온, 최근 들어 성당에 성실히 나오는 전봉준에게서 황제의 부탁을 전달받고는 필요한 물건들을 손수 챙겨서 입궁, 세 사람만 참석한 자리에서 이강에게 유아세례를 내려준다. 노쇠한 후에도 이강의 대부와 같은 역할을 하며 자애로운 성품에 이강도 그를 존중하며 또 한 명의 아버지처럼 여긴다. 또한 이강의 결혼식 때 주례를 담당한다.
여담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서양인이다.
이강의 혼인 때 이강을 달래주면서, 노쇠한 나이에도 이형이 즉위하기 이전의 어려웠던 시절과 달리 아시아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대성당에서 신도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게 나온다. 이후 출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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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벨로네 공사 → 대사 ●
첫 등장은 주청 프랑스 공사의 자격으로서 조선에 첫 공식 방문하는 프랑스 사신단 대표다. 조선이 너무나도 손쉽게 개항과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했지만 곧 극동에서 제일가는 친프랑스 세력이 등장하는 것에 기뻐하며 전적으로 조선을 지원해주기로 한다. 이후,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하여 제1차 조청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가 조선을 독차지할 기회를 날려먹게 되어 크게 분노하였다. 그리고 제1차 조청전쟁에서 패전한 후, 봉천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파견온 청나라 대표 공친왕이 프랑스의 중재안에 불만을 제기하며 결사항전을 부르짖자[19][20] "제발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나오신다면 우리 프랑스 제국은 우리의 호의를 거부하고, 신앙의 형제인 조선에게 계속 위해를 가하려는 청나라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복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라고 웃으면서 협박하며 개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조선인들에게 세상이 정말 서역인들의 천하로 바뀌었음을 알리는데 기여하였다.
제1차 조청전쟁이 끝난 후, 총알 하나도 쓰지 않고, 조선이 완전히 친프랑스로 넘어가게 됨을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그 또한 친조선파가 된다.[21] 물론 자신이 얻게 되는 명예와 프랑스가 얻게 되는 이득 때문에 그런 거지만 말이다.
이후, 영국의 대책없는 쌀 사재기 때문에 강남에 대기근이 발생하자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고종의 호출을 받아 입궁하고는 중화제국의 난민들이 열강들의 중원 내에 확보한 이권을 뿌리째 흔드는 것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의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쌀을 공출하여 중화제국에 구휼미로 제공해달라는 부탁을, 그것도 이형이 처음으로 고개를 숙일 정도의 부탁을 받고는 곧바로 인도차이나 총독부에 전보를 보내어 범아시아 조약기구를 도와 강남 구호활동에 나서게 한다. 덕분에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프랑스가 군자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맞이하게 되면서 영국이 독단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과 협상을 한다. 이에 분개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4세가 아프리카 정복 착수를 서두르려 하면서 대한제국에게 인도차이나 반도를 매각하기 위해 특명전권대사로 정식 진급하게 되면서 대한제국에 상주하게 된다. 이는 대한제국과 외교적 거래를 시도하는 매 순간 순간이 다른 열강과의 전쟁에 준하는 중요한 시기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직후에 한불동맹을 체결하는데 성공한다.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끝난 후, 이형이 러시아가 이전에 팔았던 동시베리아를 재구입 의사를 거절하면서 벨로네 공사를 불러들인다. 벨로네 공사는 한불동생를 재확인 시키며 이형을 안심시키지만 이형은 프랑스가 영국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됨을 직감하며 프랑스가 지원하는 한국과 영국이 지원하는 일본의 갈등을 떠올린다. 그렇게 되면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형은 몸서리를 친다.
1876년 미국 대선에서 러더퍼드 헤이스가 당선된 직후, 이형을 찾아가 중원의 경향대운하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 요청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프랑스에게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우려한 이형에게 거절당한다. 대신, 파나마에서 운하 건설을 진행할 예정이니 대한제국이 인적 자원을, 프랑스가 기술 자원을, 미국이 재정 자원을 투입해보자는 이형의 제안을 받게된다. 비유럽계이면서 마치 유럽에서 산 것 같은 이형에게 놀라움을 느끼지만 그러면서 프랑스 혼자서도 가능한데, 미국과 대한제국이 지분 잡아서 이득을 얻는 것에 대한 부정적 생각으로[22] 우회적으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형이 우회적으로 운하 건설의 최대 난관인 말라리아(학질)과 모기에 대한 관계성을 말하며 운하 건설 성공의 힌트를 건내자 현재의 상황[23]과 나폴레옹 4세의 성향을 가늠하며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대한제국이 영국과 손을 잡고 파나마를 건설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프랑스가 파나마 운하를 계기로 대한제국과 미국과 함께 삼국동맹을 형성하여 영국을 견제하고 파나마 운하를 통해 사실상 영국이 지배하는 대서양 -태평양의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본국으로 밀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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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디에 제독 ●
사르네 제독이 등장하기 전까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다스리는 프랑스 식민제국의 총독. 등장시기는 제1차 조청전쟁이 끝난 시기다. 하지만 잠깐 얼굴을 비춰서 조선의 승전과 이형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사절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조선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려 하자 루이 베르그송의 능력을 극찬하면서 이형을 안심시킨다. 물론 단순히 그냥 안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프랑스가 가르치는 대로 충실히 이행한다면 조선도 3년 안에 극동의 군사 강국이 될 거라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이때 이형이 생각하기로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 전형적인 프랑스인이라고. 그리고 이때 프랑스 유학단 파견까지 승낙해준 것도 바로 그랑디에 제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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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네 제독 ●
위에 언급된 그랑디에 제독의 후임으로 오게 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극동 총독부의 총독. 중화제국과의 전쟁 당시 극동함대를 지휘하며 지원사격을 해주어 대한제국과 청나라 연합군의 승리에 일조한다. 이후 단오제에 참가하여 남산 사격장에서 대한제국이 새로이 개발한 '최지용 보총'의 시연에 참석한다. 최지용 보총이 샤스포를 모방한 것을 금방 알았지만 기본적인 탄환 규격이 같은 것을 보고 프랑스가 군수산업의 중요고객인 대한제국을 잃지는 않았다며, 기술 수준을 탐색할 겸 저작권료 대신 100자루를 달라고 요구한다.[24] 이후 갓 대사로 승진한 벨로네와 함께 대한제국에 인도차이나를 매각하려는 것을 의논하면서 인도차이나 매각이 프랑스 본국의 긴축재정과 관련이 있는지 우려하고 있었다. 허나 벨로네가 아프리카 정복 전쟁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추진한 거라며 사르네 제독을 설득하며 불안감을 지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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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드뷔시
제2차 조청전쟁이 종전할 때 등장하는 프랑스 제국 육군 소장. 프랑스가 청나라의 보호국임을 선언할 때, 그 원정군을 이끈 총지휘관이며 이형에게 극동의 호랑이라는 이명을 붙인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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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조프르 ●
마른 전투를 프랑스군의 승리로 이끈 그 사람 맞다. 스무 살에 갓 소위로 임관했지만, 전장에서 무공을 세워 대위로 진급하고는 현재 루이의 부관으로 있다. 일선에서 뛴 장교답게 참호선의 위력을 잘 알고 있고, 그러한 참호선을 적은 피해로 돌파하고 하노버까지 점령한 루이의 실력에 경애심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자책하는 모습에 답답해한다. 이에 "이딴 엉터리 신문은 모조리 태워버리고, 면도 좀 하십시오. 프랑스 대육군의 원수가 될 분께서 그렇게 지저분하시니 우습게 보는 놈들이 나오는 게 아닙니까.", "프랑스 대육군을 죽인 건 프로이센이고, 앞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 제국이 우리 병사들을 죽일 테니 우리 프랑스의 영웅이신 각하께서 제발 당당하시길 바랍니다."[25]라는 투로 질타와 격려가 섞인 직언을 쏟아내는 등 당대 프랑스 군인들답게 입담이 매우 걸쭉한 데다 대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인명 손실을 안타까워하는 그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오스트리아로 화제가 돌아가자 그에게 망원경을 건네주고는 자신들을 향해제발 죽여달라는 듯오와 열을 맞춰 몰려오는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본 뒤, 조금 전의 위축된 모습을 떨쳐내고 전의를 다진 루이가 하달하는 명령을 받고 투지를 끌어올린다.
상관을 질타하는 과감한 성격이라 프랑스군의 대승과 자신에 대한 찬양 일색인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던 루이에게서 신문을 빼앗아서 휴지통에 버려버리기도 했다.루이: "아직 다 못 읽었는데...!"성격이 유약한 상관에게 선정적인 기사만 써대는 신문이 독이 될 것으로 단정지은 것. 자신이 모시는 총사령관을마누라처럼내조하고, 이 과정에서 그의 후계자가 될 듯하다.
최근에는 루이를 보필하여 마르크스를 위시한 과격파가 수립한 미텔유로파 공화국 세력이 점령한 베를린을 프로이센 공화국 정부군 대신 재점령하고는, 종전 협의 전까지 시가전으로 파괴된 베를린을 복구하라는 지시에 투덜거린다. 그러나 나폴레옹 4세의 명령이라는 걸 루이에게서 듣고 식겁하는데, 루이가 사람이 좋아서 다행이지 잘못했으면 코로 바게뜨를 먹는 끔찍한 꼴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독일발 금융공황 때문에 국내 안정화가 다급해진 본국의 훈령에 의해 폴란드에서 철수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못 참은 나머지 피눈물을 흘리고 이를 갈 정도로 분해한다[26]. 그렇지만 자신과 달리 (겉으로나마)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신이 모시는 장군의 제지와 설득에 눈물을 머금고 명을 따른다.
귀국 후에는 원수로 진급한 루이 덕분에 그의 부관인 자신 또한 덩달아 소령으로 진급. 나폴레옹 4세에게서 명령받은 왈롱 주 흡수를 위해 파병된 프랑스군을 이끄는 그를 보좌하는데, 여전히 인명을 중시하는 루이가 이번 일을 성사시키면 자신의 영지가 생김에도 스스로가 원래 출신 성분이 귀족이 아니고, 황제의 명령에 따라 영-란에게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자 이에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중 영-란 측에서 제안한 협상에 응한 루이를 따라가서 협상을 지켜보는데, 솔즈베리 후작과 요한 백작 같은 문관들을 대표로 보낸 영-란 측에서 프랑스가 자랑하는 전쟁영웅이자 갓 40대임에도 육군 원수가 된 그가 프랑스 대표로 나온 것을 두고 '설마 협상이 결렬되면 전쟁인가?'로 받아들여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프랑스의 왈롱 합병을 수락했음을 간파하나, 정작 자신이 모시는 상관은 협상이 왜 이리 쉽게 타결됐는지 진심으로 모르는 모습에 '각하 때문이잖아요!'라는 답답함이 담긴,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4.2. 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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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 ●
초중반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만 나왔을 뿐 본격적으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세계대전이 가까워지자 짧게나마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 초중반에는 남편 앨버트 대공의 죽음에 의한 쇼크로 국정에서 물러나 있었기에 영국 정치가들을 한탄시키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대영제국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뇌사 상태라고. 그러나 이형이 기억하던 그녀의 호전적 성향은 죽지 않았기에 이형의 충동질에 결국 글래드스턴을 총리에서 해임시키고 의회를 해산시라는 명령을 내린 뒤, 조기 총선을 시행, 보수당을 지지하며 전쟁의 불씨를 던진다. 원래대로면 대외적으로는 인도제국 성립 후 영국령 아프리카와 보어전쟁, 아일랜드 독립 투쟁, 러시아와 오스만의 전쟁과 독일과 미국의 성장으로 인해 정점에서 서서히 쇠락하는 대제국의 상징으로 내부적으로는 시종 존 브라운과 압둘 등의 인연을 맺고 하는 등의 삶을 살아야 했으나 주인공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된 역사의 흐름으로 유럽 전체가 과거 7년 전쟁 이상으로 전쟁 분위기가 일어나고 자국 영국의 동아시아 정책 실패로 중국 대륙도 난장판이 되자 결과적으로 본래라면 손자와 증 손자시기에 벌어졌을 세계대전을 살아 생전에 보게 생겼다.
디즈레일리 수상의 비현실적인 중재안도 여왕이 앨버트 공의 넋을 기리기 위해 몰아붙인 걸 수상이 최대한 유화적으로 다듬은 거란 사실이 밝혀졌다.[27] 천만다행인 건 아직 완전히 미치진 않은 프랑스에서 협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명실상부 프랑스 신성동맹 측에 서게 되고 반대로 신성 로마 제국 부활을 꿈꾸는 오스트리아가 협상안을 거부하자 오스트리아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독일에서 촉발된 경제 공황으로 군사 유지도 힘들어지자 자신의 패물을 보태며 해군의 현상유지에 보탬을 준다. 하지만 본인이 갈아치운 정부가 벌인 전쟁에서 영국이 반쯤 패전한 것도 모자라 경제 위기까지 몰고 온 탓인지 의기소침해져서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는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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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
자유당 내각 시절의 영국의 수상. 온건파인데다가 인도주의적인 것도 모자라서 유화적인 성향의 외교정책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에게 신임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28] 결국 누구보다도 호전적인 성향인 빅토리아 여왕이 마침내 불만을 표하며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과 뜻이 비슷한 보수당의 집권을 위해 나섰고, 글래드스턴은 기존 내각 해산 및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 위해 해임당한다. 이에 그는 또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것에 대해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서유럽 금융공황의 여파로 영국 경제가 박살나면서 보수당의 지지율이 추락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음 총선에서 그가 소속된 자유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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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게스코인세실 ●[29]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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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그로스 베너●
주청 영국 공사 → 주한 영국 공사. 토마스 그로스 베너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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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어드 메어 로렌스 ●
영국령 인도의 총독. 남작위의 신분도 겸하고 있다. 첫 등장은 제1차 조청전쟁에서 조선이 청나라에게 승리한 직후였다. 조선의 승전과 이형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형이 무라비예프 백작과의 신경전을 재미있게 지켜보면서 이형에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찬사를 보냈다.[30] 이후 조선이 러시아와 전운이 감돌자 고종에게 영국의 병사들을 조선에게 배치하자는 제안을 하였지만 이형에게 거절 당한다. 대신 이형은 영국으로부터 포대를 구립하고, 포병훈련을 도와줄 군사고문단의 초청과 대포공장 건설 및 기술 이전, 상선 사관과 해군 생도를 받아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때 로렌스는 속으로 '되도 않는 허세나 부리는 원숭이 놈!'이라고 이형을 비웃는데 오히려 조선이 러시아를 완파하게 된다.
참고로 이형이 영국과 유럽에 대해 세세한 정보를 얻은 연유가 이형의 어머니인 부대부인 민씨가 구교도여서 구교의 성직자나 다른 구교도들에게 얻게 된 정보를 이형에게 전해줬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착각 때문에 이형은 본의 아니게 친모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떨치게 되었고.
4.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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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카네기 ●
철강왕으로 불린 그 사람이다. 작중 시점에서는 갓 독립해서 카네기 제철을 세운 신생 사업가로 1,500만 달러나 되는 사업을 발주한 이형을 알현할 때 이마에 땀이 맺히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여준다.[31] 그렇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지라 사업가 티가 제법 나는데, 그를 직접 알현하고는 제철소에 대한 기술 지원과 엔지니어 파견, 조선인 기술자 연수 등을 자신이 부담하는 대신, 향후 만주에서의 철도사업 우선 입찰권을 15년 간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한다. 이는 조선이 러시아를 이기고 만주를 석권한 것을 상정한 발언이었기에 이형은 그에게 내가 만주의 지배자가 될 것 같냐고 묻고, 이에 카네기 또한 왠지 모르지만 그럴 것 같다는 대답을 하면서 그를 기분 좋게 한다. 향후 대한제국이 만주 전역을 지배하고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일부 사업까지 카네기에게 발주한다면 돈방석에 앉겠지만, 그 전에 아래에 소개된 동포가 친 농간에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가 최대 변수일 듯.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형을 알현하여 전노급 전함을 구입할 국방성금을 조건으로 부산에서부터 한양-여순-심양-북경-정주(대한제국 직할령인 하남성의 도시)-남경-광주를 잇는 중원대륙 종단철도사업을 제안 받았는데, 그 엄청난 규모에 흥분한 나머지 코피를 뿜어버린다.[32] 그리고 새로운 재정고문의 추천을 부탁 받고는 이형에게서 들은 J.P모건의 탐욕[33]에 진절머리를 치며 라이벌 내지 대결 플래그가 서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형이 제안한 사업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길 정도라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그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나서서 미국에 있는 자신의 지인들을 움직여 경기 축소로 도산 위기에 몰릴 미국 조선소들을 대한제국으로 이전시켜 해군력 건설에 일조하기로 한 것은 덤.
여담이지만 카네기는 현재 자기 회사의 본사를 대한제국의 한양으로 옮기고 본인 또한 한양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는 등 여차하면 아예 대한제국으로 귀화하겠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는 듯하다. 현재로서는 대한제국의 산업을 전반적으로 키우면서도 건설적인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철도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경마 사업을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육군력과 직결되는 기병의 육성 때문에라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경마 산업의 육성을 승낙한 이형에게 "거울 좀 봐라.(네 꼴 보면) 고기라도 먹고 돌아가야 할 것 같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때서야 자신이 코피로 웅덩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절한다. 이후, 자신을 치료하러 입궁한 미국인 감리회 선교사 겸 의사인 헨리의 응급조치를 받고는 그가 일하는 병원에 실려가서 사흘 만에 깨어났다고 한다.
서유럽 금융공황이 터진 뒤에는 한달음에 입궁하여 이를 예견한 이형을 알현하며 그의 예지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현재 시국에 대한 한-미 양국의 대응방안을 의논하며 자신의 정체성이 대한제국에 기운 듯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그와 J.P 모건을 밟아놓자는 뜻을 공유한 뒤, 대영제국 국채 매수 작전을 논의하며 한-미 양국을 열강조무사 취급하던 대영제국에게 엿을 먹인다는 통쾌함에 크게 웃는다.
이후, 다시 이형을 만나면서 대한제국이 미국의 선거에 개입하여 공화당의 승리로 이끌거라는 이야기에 그를 선지자로 생각하여 절대 충성을 맹세한다.[34]
이형의 명에 따라 흥선군과 함께 방미친선단의 실무자로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는데, 자신을 환영하는 인파를 보고 개심한 흥선군에게 아시아계 노동자들의 일자리 알선을 부탁받고는 아시아에 이어 로키산맥 서부 지역을 강철의 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또다시 코피를 흘린다. 여담이지만, 이때 코를 틀어막은 손수건은 그 사건 때문에 명품 비단 손수건을 버린 탓에 공장에서 만든 싸구려 손수건이었고, 그때와 달리 급성 빈혈로 기절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동부로 가서 공화당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과 만나 교류를 한다. 이하응 덕분에 로비를 하지 않고 임무를 수월히 수행할 수 있어서 좋지만 언론의 설레발에 따른 미국인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다 러더퍼드 버처드 헤이스가 미 서부에 금융가를 조성하자면서, 대한제국과 협동하여 환태평양 금융가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코에서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다고 한다. 다행히 내성이 생긴건지 코피까지는 흐르지 않은 모양. 한편으로는 헤이스를 두고, 말 안 듣는 트러스트들을 물어뜯을 투견이라고 중얼거린다.
방미가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 서부로 가는 열차 속에서 '드디어 내 고향, 내 집, 내 지갑인 대한제국으로 돌아간다' 라고 환호성을 지른다. 모건의 손길이 닿은 기자들이나 세클라멘토 기적에 압도된 기자들에게 된통 시달린게 아니라서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완전히 증발해버린 상황. 게다가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안식과 평화를 제공해주는 대한제국과 조선인들을 위해서 조선에 사비를 털어서라도 뭐라도 해주고 싶어할 정도로 시달렸던 모양이다. 아예 '내가 미국 땅에 돌아오면 사람도 아니다. 만약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건, 이 땅에 황제 진리교를 설립하러 오는 날이다!'라고 쩌렁쩌렁 소리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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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피어폰트 모건 ●
일명 마지막 양키 금융가. 등장 자체는 꽤 빨라 주미대사로 파견된 지 얼마 안 된 민치상을 만나러 왔다가 상인이라고 우습게 본 민치상이 거절했다. 이후 정재계에 자국의 이권을 국유화당할 지 영국 보수당을 밀어줄 지 선택하게 만들라는 이형의 밀명을 받고 절망한 민치상을 만나 말 몇 마디만으로 밀명의 속 내용을 감 잡고[35]는 한 술 더 떠 중화제국이 청에 선전포고했고 대한제국이 그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이권을 국유화했다는 찌라시를 퍼뜨려 미국 증시에서 대한제국 국채를 포함한 한국 관련 주식과 채권들을 똥값으로 만들어 쓸어모으고 있다. 오죽했으면 주인공조차 어디의 누가 실행했는지도 모름에도, 이 계획을 꾸민 놈을 근대 자본주의의 제왕이 된 괴물이라고 평하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평했을 정도.[36] 중화 내전이 종료되면 이형과 여러 가지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민치상이 자신에게 정보를 흘릴 때에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함께 작전주를 뛰자는 신호로 받아들여 일을 벌였으나, 이후 민치상이 지분을 요구하는 등 후속 행동이 없어서 모건의 작전주를 이용해 다른 작전주를 하려는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으나, 단순히 민치상이 무능해서 그랬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허탈해한다. 하지만 자신이 엄청난 일을 벌였음을 깨닫고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려는 탐욕을 품는다. 이후 미국에는 엄청난 아시아 버블이 일어났고, 도를 지나쳐 거품이 꺼진 뒤에도 대한이 그때까지 키운 체력으로 버텨주어야만 연착륙을 할 수 있게 될 정도라 미국 정부조차 대한을 더 밀어줘야하게 되었다.
이후, 이형의 환심을 사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한 건지 호화롭게 만든 마차를 선물로 보냈지만, 그가 보낸 마차는 청 황실 출신으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해오면서 격조 있는 화려함에 대한 안목이 몸에 베인 황후에게 " 깊이 없이 양껏 치장하기만 해서 황실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하다."(...)라는 날카로운 비판만 받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의 대상이 된다.[37]
여기에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인 미국인이 말도 안 되는 조건[38][39]으로 국채를 발행하게 한 것 때문에 그 배후로 의심받아서 이형의 적이 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40]
이에 더해 이형을 통해 자신에게 적개심을 갖게 된 카네기[41]가 새로운 재정고문을 추천하게 됨에 따라 사실상 -쩐의-대결 플래그가 섰다고 봐야 할 정도.
그러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독일발 서유럽 금융공황의 여파로 자신이 투자한 서유럽 자산들이 줄줄이 박살나는 바람에 자산 비중이 대한제국 관련 자산, 특히 대한제국 국채에 쏠리게 되면서 이형에게 목줄이 단단히 채워진 꼴이 된다. 때문에 카네기를 접견하여 대화를 나누던 이형에 의하면 'J.P 모건이 자신을 알현할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한다.'라는데, 자기 영역을 탐내던 그를 밟아놓고 싶던 카네기가 '한 1년쯤은 굶겨놔야 뭔가 한 보따리 싸들고 오지 않을까요?'라는 투로 거절을 권하고 그 또한 그럴 생각인지라 대한제국을 이용해서 자신이 삼켰던 것을 일부나마 거하게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린다.
예상대로 이번 금융공황의 여파로 입은 타격 때문에 세계경제를 지배하려는 자신의 야망이 무너진 바람에 이성을 상실하여 길길이 날뛰고, 자신의 투자를 받아온 카네기[42]가 이형과 손잡고 영국에 차관+국채 매입 대금으로 금괴를 제공하여 자신을 물 먹인 것에 대한 분노를 감추질 못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의 지배 영역인 대서양 경제권이 맛이 가버리면서 자신의 지배권이 아닌 캘리포니아 등 카네기와 연계된 서부 연안 지대가 대서양 경제권에 맞먹는 위상으로 올라서거나 그 이상으로 추월할 것을 두려워 하는 건 덤.
여기에 대고 그간 자신에 의해 사치와 향락에 찌든 민치상이 애첩까지 끌고 찾아와서 눈치 없이 화를 돋구자 치미는 살의를 간신히 억누르고는[43] 그 자리에 들어온 부하 직원에게서 김옥균이 파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진 민치상의 부정부패에 대한 증거자료를 모두 넘겼다. 대한제국에서 모건이 김옥균을 통해 넘긴 민치상에 대한 정보를 받은 이형은 이러니까 모건이 자신을 우습게 봤다는걸 알고는 박규수와 한숨만 내쉴 뿐.
그리고 모건이 두려워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게 생겼는데, 러더퍼드 버처드 헤이스가 경제위기의 해결책으로 카네기에게 미국 서부에 새로운 금융가를 대한제국과 공동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해버렸다. 실제로 서부 금융가가 조성되면 대서양 경제권에 편향되었던 부가 태평양쪽으로 쏠리게 된다.
당연히 이에 대해 분노하며 유대인 자본가들이 공화당을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황, 특히 이형이 자신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에 반해 자신은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그의 역린과 임계점을 알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속만 앓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일단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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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데이비슨 록펠러 ●
미국 3대 금융인중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 정확히는 앞선 둘과 달리 직접적인 등장은 없었다.같은 오하이오주의 매킨리를 후원해준다고 언급되면서 뒤에서 암약하고 있다. 그러나 모건과 달리 이형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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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라인 공사 ●
첫 등장은 박규수가 통신사로서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도쿠가와에게 서양인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이형의 요청에 따라 만나게 서양인이다. 이때는 주일 미국공사의 신분이었지만 제1차 조청전쟁 때, 조선이 청나라에게 승리를 거두고 조선이 근대화에 시동을 걸게 됨에 따라서 이후부터는 주한 미국공사가 된다. 제2차 조청전쟁에서 조선의 승전을 축하하는 사절로도 등장했지만 영국령 인도의 총독 겸 부왕인 존 레어드 메어 로렌스 경,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 그랑디에 제독과는 다르게 이름 값이 떨어지는 로버트 공사가 오게 된다. 그 이유는 아직 남북 전쟁이 끝난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미국이기에 로렌스 경과 그랑디에 제독과 맞먹는 수준의 고위인사를 차출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형은 조러전쟁 직전에 개화를 위해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했는데 로버트 공사를 통해서 이 뜻을 전달하였고, 이에 로버트 공사는 각종 토목사업 외에도 지난 내전을 끝으로 군축이 예정되었으니 내전 기간에 사용한 무기들을 대거 처분하려고 하니 조선에서 이를 구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했다. 그리고 이때 들여온 것이 바로 개틀링이었다.
경제적인 분야 외에는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은 미국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등장이 없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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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 버처드 헤이스 ●
원 역사에서 애매했던 대선 투표 결과 때문에 정작 대통령이 돼서는 힘을 제대로 못썼지만 도덕주의자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현재 직책은 오하이오 주지사로, 같은 공화당 소속으로서 차기 대선주자로 그를 밀어주려는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명을 받고 미국측 전권대사로 파견된 듯하다.[44]
자신은 미국과 영국 간의 해운동맹 체결을 성사시켜 홀가분한 듯하지만, 옆 방 투숙객이자 명색이 열강의 한 축인 대한제국의 전권대사이자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베를린 종전 협상에 참여했으나 괄시만 당하는 박규수 총리가 안쓰러웠는지 그를 찾아와서 일전에 부탁받은 듯한 선물[45]을 건네고는 약소국에서 출발하여 열강 말석에 위치한 두 나라의 동병상련을 이야기하며 그를 위로한 뒤, 약소국이었던 조국이 과거를 잊어가는 현실에 개탄하고는 자국의 한 사업가 때문에 미-러 양국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다고 해도 괜찮을 거라며 러시아와의 협상을 주선한다.
같이 가는 길에는 공화국의 정치인다우면서도 자기 본연의 모습인 듯한 대범함[46]으로 박규수 총리를 감탄시키지만, 협상이 끝나고는 처음의 주눅 든 모습과 달리 대한제국에 유리하게 캄차카 조약을 체결한 그의 뛰어난 외교적 수완에 감탄한다.
대략적인 묘사를 보면 사적인 자리에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부족하다던 세간의 평과 달리 여기서는 꽤 인간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원 역사에서의 평처럼 공적인 영역에서 빛나는 그의 매력적인 모습이 드러나서 그럴 수도 있고, 박규수 총리가 공감하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종전 협정에서 어떡해야 이형이 주문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헤매던 그에게는 매우 큰 은인 같은 존재.
귀국 후에는 차기 대선주자로서 자신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지향하는 바를 설파하는데, 바로 유럽의 평화에 미국이 기여해야 한다는 개입주의이다. 유럽이 전쟁터로 변한 동안 우리가 큰 이익을 봤지만, 그 뒤에 몰아닥친 대공황의 여파에 휘말려 미국도 피해를 본 것을 언급하며 유럽의 항구적인 평화가 미국의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게 그 근거인데, 도덕주의자인 자신의 소신이 그대로 반영된 것. 지금까지는 대공황에 찌든 국내 사정 때문에 여론의 외면을 받아왔지만, 스톡홀름 조약의 체결을 계기로 대영제국의 증시가 반등할 모멘텀이 형성되고, 미국 증시까지 견인되자 그의 개입주의가 주목을 받으며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부상하고, 미국 내 개입주의자들의 얼굴이 된다. 이 기세로 쭉 밀어붙이면 원 역사와 달리 차기 대선은 애매한 투표 결과가 나오지 않고도 무난히 이겨서 대통령 임기가 꽤 수월해질 듯하다. 카네기가 10여년만에 방미하자 찾아와서,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 서부에 대한제국과 협동하여 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금융가를 조성하자고 제안한다.그리고 카네기는 다시 한번 코피를 흘릴 뻔 하고카네기는 헤이스를 두고, 말 안 듣는 트러스트들을 물어뜯을 투견이라고 중얼거린다. 장래 미대륙 경제전쟁에 신호탄을 쏠 모양. 그리고, 카네기와 이하응의 방미가 공화당에게 대형 호재가 되어서, 224-145라는 압도적인 승리로 19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되었다.
카네기의 독백이 그의 앞날에 대해 암시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별명이 될 트러스트 버스터(Trust buster; 트러스트 파괴자)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
당선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나마 운하 공사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만들 필요는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낸다. 그런데 질문을 한 기자가 파나마 운하는 반드시 해야되는 국가적 사업이며, 새 당선인이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라고 기사를 쓰는 바람에 반강제적으로 파나마 공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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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S. 그랜트 ●
작중 나올 시점에는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이며 한국에 방문하여 이형과 친분을 가지게된다. 그랜트도 군인 출신이며 이형도 현장에서 직접 뛰는걸 선호하며 격식을 좋아하지 않았길레 처음에는 공적인 업무로 만났지만 술도 같이 마시면서 진짜로 친분을 가진다. 하와이를 완충지대 삼아서 태평양 교역을 확대하기로 하고 아주 연구기금에 대한 투자도 의회에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하며 업무 이야기는 빠르게 끝내고 남은 시간은 모두 술을 마시며 놀았다. 다음에 다시 미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지만 이형은 그랜트가 후두암때문에 죽을걸 알기에 친분을 쌓은것도 있겠다 아쉬운 마음에 술 담배중 하나는 끊는게 어떻겠냐며 간접적인 충고를 해준다. 그랜트는 오래 살 이유가 생겼다고 생각을 해보지만 등장을 안하는걸 봐서는 역사와 같은 때에 죽었거나 약속을 지킬만큼 오래 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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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
우리나라에는 흔히 발명왕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 여기에서는 사업가로 나오며[47] 카네기랑 시종일관 대립하며[48]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에디슨이 아직 한국의 보수적인 사회상을 모르고 민씨 일가의 여자에게 츄파를 던지는 바람에 단단히 찍혀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했다. 이때 이후로 별 다른 투자를 못했는지 대부분이 외면한 아주연구기금의 푸른 곰팡이 사업에 투자를 진행하며 짤막하게 등장한다. 다만 에디슨도 푸른 곰팡이 연구가 성공할거라 생각한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연구 기기들을 생각해서 투자한거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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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
그랜트랑 같이 한국에 방문했으며 성균관대 인문학 교수로 재직하던 전창혁과 만남을 가진다. 이때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대해서 말하며 제국주의적 착취가 아닌 모두 같은 기구에서 동시에 발전을 이륙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며 1주1제와 더불어 아시아가 주도하는 세계평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힌다. 이때 서로에 대하여 진심어링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바로 전에 에디슨과 카네기가 서로 가식적인 말만 하며 속으로는 서로를 욕하는 장면이 나와 사뭇 대비되었다.
4.4. 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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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2세 ●
러시아의 차르. 본래 유럽방면에 관심을 두었지, 극동 남하에는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으나, 아끼던 심복 무라비요프 백작이 허가 없이 코사크 군단을 동원해서 조청전쟁에 끼어들 심산으로 독단적으로 남하하는 바람에 판에 끌려온다. 영국과 프랑스란 양대열강과 맞서게 되자 잠시 고뇌했지만 결국 백작을 버리지 못하고 본격적으로 조선과 대립각을 세운다. 이후 백작에게 극동의 지휘를 맡기고 있었으나.....막대한 예산을 들여 동원해준 정예 2 기병사단이 둥베이 평원 전투에서 대한제국 1사단을 상대로 9할의 피해를 보며 박살나자 격노, 백작을 실각시키고 연해주 근처에 러시아군을 재차 남하시켜 대한제국군의 접근을 막아버린다.
그렇지만, 보불전쟁이 제 1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됨에 따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진영에 가담, 대규모의 병력을 동프로이센을 거쳐 북독일 일대로 진군시켜서 오스트리아군과 합류하여 프랑스군에 맞선다. 그러나 당대 열강의 군대 중 최첨단의 군대인 프랑스군[49]을 상대로 졸전을 면치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령 폴란드 지역에서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독립세력들이 독립 전쟁을 일으키고, 극동에서는 천명대전에서 승리한 대한제국의 황제 이형이 총사령관으로서 3만의 몽고-만주 유목민 기병군단을 직접(!!!) 이끌고 중앙아시아 방면으로 진격한 데다, 연해주와 동시베리아 방면까지 만주에 주둔하던 대한제국 군대에게 침공 당하는 등 지금까지 차곡차곡 글로벌하게 적립했던 어그로의 대가를 한꺼번에 돌려받는다.
동맹국인 오스트리아가 종전 제안에 응한 것과 달리 알렉산드르 2세는 끝까지 주전을 외쳤지만, 이는 전비 조달을 위해 유력귀족과 대지주부터 은행가, 부르주아[50], 심지어는 유대인들에게까지 손을 벌려 융통한 바람에 전쟁이 끝나면 닥쳐올 채무 상환을 지연시키고자 블러핑을 친 것에 불과하다며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게스코인세실과 디즈레일리 총리에게 조소의 대상이 된다.[51] 그러나 영국의 대공황으로 전세는 역전되었고, 휘청이는 프랑스와 영국군을 몰아내고 폴란드를 재점령, 연이어 발칸 반도 인근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동맹인 오스트리아와 눈치를 보며 발칸계 소수국가들을 병탄하려 들면서 내정에 집중하려 한다. 그러나 태자의 주전론에 설득되어, 전시특별세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다시 한 번 전쟁을 결의한다. 흑해만 확보한다면 충분하고도 남는 장사라고. 결국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그의 도박은 성공한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피해에서 복구되기 전에도 튀르크에 의해 입은 피해까지 생기고 간신히 튀르크로부터 얻은 전리품으로 한숨 돌렸기에 일단 대한제국에게 판매하였던 영토를 다시 사겠다는 국서를 보낸다.
여담으로 아들인 황태자에게 여러 가지로 원망을 살 행동을 많이 취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억지로 떼어놓고, 원하지도 않는 여자를 약혼녀로 지정한 것. 그리고 정작 알렉산드르 2세 또한 여자 관계가 문란한 것 때문에 황태자가 불만을 품게 되었다. 결국 황태자의 주변에 멤도는 강경파들을 떼어놓고자 황태자를 시베리아로 보내게 되어 황태자가 폭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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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대공 ●
알렉산드르 2세의 차남이자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52]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협상을 위해 러시아 제국 대표단의 전권대사로 베를린으로 파견된다. 종전을 위한 협상이 군비 확충을 위한 시간끌기로 변질되면서 전력을 유럽에 집중하기 위함인지 미국 측 전권대사인 러더퍼드 헤이스와 함께 러시아 제국 대표단을 찾아간 박규수에게 "캄차카 반도를 얼마에 사겠냐"고 제의하며 대한제국에 캄차카 반도 판매 의사를 표명한다. 그 결과, 경륜에서 앞서는 박규수에게 말려서 예니세이 강을 한-러 국경으로 확정하는 것까지 협상에 추가당하지만 끝까지 자신이 고집한 900만 달러에 캄차카 반도를 매각하게 된다. 이후, 측근으로 기용한 체르나예프 중장과의 대화를 통해 오-헝 제국과 밀약을 맺고 영국과 프랑스가 눈치채기 전에 발칸과 폴란드 방면을 침공하려는 뜻을 비친다. 그뒤 종전을 하면서 내정에 충실하려는 아버지와 정계를 군부와 함께 오스만 정복을 설득하여, 체르나예프 중장을 실질 지휘관 삼아 총사령관으로서 남진을 개시한다.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되지만 러시아 제국의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영국과 대한제국을 깨뜨리며 지중해와 태평양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친 호전성은 젊은 장교단 외에 노장들과 관료들의 우려를 사게 되었고 이로인해 거의 유배나 다름없이 시베리아로 보내지게 되었다. 안그래도 그동안 아버지에게 쌓여왔던 악감정이 증폭되어 그만 증오로 이어지면서 변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이형은 이놈이 왜 시베리아로 온건지 생각해보다가, 대충 감을 잡더니, 러시아 내부를 흔들 책략으로 써먹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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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백작 ●
러시아 동 시베리아를 지배하는 권력자. 황무지였던 시베리아 개척과 터키인과의 전쟁, 그리고 코사크 군단을 노예에서 해방해 러시아의 군사력으로 만듦으로 차르의 총애를 받는 중년의 실력자다.[53] 러시아의 남하는 러시아 공사가 어설프게 이 인간에게 바람을 넣는 바람에 벌어진 일로 백작은 만주에 진입할 명분이 서자 조선을 돕는다면서 코사크 군단을 남하시켰다가 너무 빠르게 청이 패전하자 역으로 서태후와 접촉해 만주에 주둔할 명분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영, 프, 미 삼국이 악을 쓰며 반발했지만 차르는 결국 백작을 실각시키지 못하고 영, 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조선과 대립각을 세운다. 회담에서 이형과 만나서 오만하게 굴며 굴복하라고 말하지만 이형 역시 "친구가 될 기회를 차버린 것은 너다. 너나 후회하지 마라."라면서 3년 후에 만주에서 만나자면서 헤어진다. 차르가 함부로 중원 남부까지 가서 유럽국가들과 충돌하지 말라고 경고한지라 서태후의 지원요청에 소극적으로 나선다. 서태후가 조선을 치자고 제안할 때도 차르가 허락하지 않았다며 빠져나갈 생각으로 보고를 올리지만 당시 유럽 정세를 오판한 차르의 허락으로 진짜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간다. 그러나 영,프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십만 단위의 군을 배치할 기미까지 보였고[54] 차르는 곧바로 결정을 철회해 만주에서 러시아군은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 정확한 상황은 미정이지만 아마 백작의 코사크 군단 이상의 병력은 남지 않았을 거라고 추정. 이후 러시아의 외몽골 부족들을 회유해서 몽골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조선군과의 전투에서 필승을 자신하고 조선의 진지구축도 그러려니 넘어가고, 어처구니없는 정보를 물어온 첩보망을 해체해버리고는 전장에 나섰지만 독기오른 조선군인, 개틀링의 십자포화, 약빨고 돌진하는 시위대 기병부대에 의해 러시아군은 괴멸당하고 본인은 넋을 잃고 항복한다. 아무르강 이남에서 철수하는 거야 그렇다손쳐도 연해주는 어떻게든 지키려했지만 이형의 협박으로 결국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만다.[55]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도 수위권을 다투던 차르의 총애는 같은 양의 분노로 돌아왔고 백작을 포함해 조러전쟁 주전을 주장하던 많은 인원들이 러시아 군부에서 실각한다. 백작은 시베리아 수용소로 쫓겨가지만 순순히 인생을 쫑낼 생각은 없었기에 백작을 성군으로 떠받드는 코사크인들과 영국의 협조를 청해 영국령 인도에 망명한다.[56] 당연히 러시아 차르는 대노해 그 동안의 모든 공적을 박탈. 결과적으로 극동의 만주에 구축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그 지역의 러시아의 영향력을 쌓았던 1등공신인 백작의 실각과 함께 모조리 소멸해버렸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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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티예프 공사 ●
주한 러시아 공사. 로버트 프라인 주한미국 공사에 이어서 등장하게 된 서양인. 이 시기의 러시아와 미국은 우호적인 관계였기에 갓 근대화를 시작한 조선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암암리에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하필 제1차 조청전쟁에서 조선이 청나라에게 너무나 빨리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조선이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이권이 충돌하게 됨에 따라 재등장하였고, 이형에게 같잖은 위협과 협박까지 시도했지만, 끝내 조러전쟁에서 러시아가 조선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로 종결이 됨에 따라 대한제국에 팔아치운 땅을 다시 재구입하겠다는 국서를 가지고 이형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형은 이를 보란듯이 찢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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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체르나예프[58] ●
장안에서 이형을 습격한 자객들 중에 조선인 자객을 보낸 배후로 밝혀졌으며 이형의 유목민 기병에 대비를 할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었다. 계급도 안 되는 주제에 이형에게 러시아 동방영토를 다 내줄테니 영국이 의심하지 않도록 위장전쟁을 하자는 제의를 했고, 이형에게 신나게 얻어터진 끝에 이형도 어차피 저런 말단이 한 말은 이뤄질 리가 없지만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단결과 영국의 적대를 막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강력하게 남아있어야 하기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형이 겸사겸사 셍게링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매파 부족들을 위장 전쟁을 위한 제물로 보내자 기대에 부응하여 격퇴해버린다. 베를린에서 열리는 종전 협상 시점에서 중장으로 승진. 알렉산드르 대공(훗날 알렉산드로 3세)의 최측근으로 등장한다. 알렉산드르 3세가 재차 전쟁을 시작하고 그를 실질적인 사령업무를 맡아 극동에서 자신들이 당했던 것을 본받아 병사들에게 술과 흥분제를 먹이고 러시아 정교의 사제들에게 성전선포를 하게 만드는 등, 극도로 흥분시킨 군대를 끌고 튀르크 군을 박살낸다.
그렇게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끝난 후, 너무나도 호전적인 알렉산드르 3세를 보면서 차라리 사마르칸트에서 왕 노릇을 했던 때가 그리웠다면서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4.5. 북독일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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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1세 ●
원 역사에서는 90살까지 살면서 근대유럽의 격동을 모두 겪어보았던 군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가려있지만 애당초 비스마르크를 기용한 것도 빌헬름이고 그와 마찰해가며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때로는 자신이 옮았음을 증명한 유능한 군주다.[59] 보불전쟁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캐삭빵으로 확전되자 철퇴를 부탁하는 몰트케와 속전을 주장하는 비스마르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현실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결국은 재상의 편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프로이센 주력군 40만은 소멸해버린다. 이후 비스마르크와 함께 나라의 사력을 짜내서 남쪽에서 올라오는 오스트리아, 서쪽에서 라인란트 방어선을 공격하는 프랑스에게 둘러싸여서 사정없이 두들겨맞다가 결국은 오스트리아에게 굴복, 호엔촐레른 왕가는 다시 제후국으로 추락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이은 패전에 이어 국가의 격마저 추락하자 카를 마르크스가 선동한 국민들에 의해 오스트리아로 망명해, 불과 몇년 전까지 싸워 이겼던 오스트리아의 군대를 얻어서 자국 군대와 싸우는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된다. 그제서야 운이 따라주었는지 어찌어찌 복귀는 했지만 재상 비스마르크는 A급 전범이라 다시는 정계에 나올 수 없는 꼴이 되었고, 자신은 평소부터 어이없는 것이라고 여기던 입헌군주정을 받아들여야 했다.[60] 복귀는 했다고 해도 빌헬름을 증오하는 이들도 여전한지라 실의에 빠져있다가 아들 프리드리히 3세가 독단적으로 사회주의, 공화주의자들과 타협할 의지를 보이자 이에 항의하는 융커들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다 더 이상 늙은 자신이 정국을 돌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지지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양위를 공표하고 평소 의견차로 소원하던 아들에게 사과 겸 응원을 보낸다.근데 원 역사에서는 병사한 아들보다도 오래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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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3세 ●
프로이센 왕국의 새 국왕으로 낙심하여 정치일선에 물러난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암살위협을 무릅쓰고 주요 도시들을 시찰하며 지지와 안정을 이끌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제후회의에서 영국과의 공조 강화와 러시아의 오스만 침공에 개입하여 성전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제후회의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이 눈치를 보며 그를 외면하고 카이저가 그를 경멸함에도 꿋꿋하게 오러동맹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리스 왕국을 이용할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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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폰 비스마르크 ●
원 역사에서는 보불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 통일을 이룩한 철혈의 명재상이지만 여기에선 나폴레옹 3세의 전사로 인해 독일 통일 프로젝트가 막판에 꼬여버리고 말았다. 나폴레옹 3세의 죽음과 프랑스의 결사항전에 당황해서 모든 라인을 동원해 프랑스에 연락을 넣지만 죄다 무시당하고 프로이센 멸망의 기로에 놓였음을 직감하고 오열한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죽음에 분노하여 초당파적으로 일치단결한 프랑스는 국가간 캐삭빵을 불사할 기세이고, 설상가상으로 때 맞춰 프랑스 본국에 귀국한 루이 베르그송에 의해 파리가 참호로 빙 둘러싸임으로써 플랜 B였던 빠른 파리 제압과 황제 및 의회 의원 확보도 사실상 물 건너가는 바람에 보불전쟁의 승패가 뒤바뀔 상황에 놓였다. 결국, 북독일 연방군이 그 대병력을 쏟아붓고도 파리 점령에 실패하면서 프로이센은 망했어요가 됐는데,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이형임을 잘 알고 있기에 아주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낭만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진 프랑스 군부가 삽질하며 시간을 허비했고 그 사이에 파리에서 생환한 패잔병들과 참모들을 받아들이고 본국에 남은 예비 병력을 쥐어짜내 필사적으로 라인란트 국경지대에 참호를 파고 방어준비를 시작하는 등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다행히 프랑스군 총사령관인 루이가 인명 경시를 혐오한 덕분에 6개월 동안 라인란트에서 프랑스군을 막아냈고, 그 사이에 오스트리아에 고개를 숙여 합스부르크 주도의 독일 연방 재건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이끌어내고 동 프로이센에 러시아군이 주둔하는 것까지 받아들인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일류열강으로 올라갈 기회가 영원히 박탈된 거나 마찬가지. 역사에도 프로이센 쇠락의 원흉으로 기록될 것이다. 결국 베를린에서 들고일어난 시민들에게 쫓겨 빌헬름 1세와 호엔촐레른 왕조, 그 추종자들과 같이 오스트리아로 망명한다.
그러나 독일 연방 공화국발 서유럽 금융공황으로 인해 입헌군주정 수용 조건이나마 프로이센의 왕정 복고가 일어나면서 함께 복권될 듯하다. '독일을 몰락시킨 꼴이 된 공화정 수립'을 주도한 민주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안 좋을 터라 다음 총선에서 국내에 온존하는 귀족과 융커,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독일 몰락의 주범이자 A급 전범 취급을 받고 있기에 쉽지는 않을 듯.
최근 회차를 보면 정계에서 은퇴하며 프리드리히 3세에게 이것저것 조언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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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폰 몰트케 ●
원 역사에서 보불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로이센의 명장 대(大) 몰트케. 여기에서도 그 실력은 건재하여 나폴레옹 3세가 전사하자 공황 상태에 빠진 참모부에게 "겨우 난쟁이 한 놈이 뒈진 것 뿐이다! 동요하지 마라!"라고 일갈하여 냉정을 되찾게 하고 광기 상태로 돌격해오는 프랑스군 13만을 쓸어버리지만 그 대가로 20만 중 절반인 10만의 사상자를 내고 이 뒷수습으로 프랑스가 역습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게 되고 서둘러 파리를 점령해 전쟁을 끝내라는 비스마르크의 지시에 강행군을 하여 파리까지 도달하지만 파리 수비대 대장으로 임명된 루이가 말 그대로 파리의 모든 것을 투입해 만든 3중 참호선이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우리가 보게 될 미래의 전장인가!"하고 감탄을 토하지만 동시에 이 미래의 전장이 베를린이 아닌 파리에 세워졌다는 절망적 사실에 절규한다. 이후 이대로 물러날수도, 차근히 방법을 고려할 시간도 없었기에 병사들의 목숨을 탄환으로 사용하는 정공법을 택하고 1주일간의 맹공 끝에 2번째 라인까지 뚫고 3번째 라인도 뚫기 직전까지 밀어붙였지만 그 시점에서 40만에 달했던 병력이 완전히 고갈되고, 본인도 선두로 나서 공격을 진두지휘하다 왼손바닥에 검지손가락이 들락거릴 정도의 구멍이 뚫리는 부상을 입은 끝에 처량하게 프랑스군에 항복하고 만다. 이후에는 프랑스측에 귀족으로 정중히 대우받으며 포로 생활중. 희생을 줄이고 싶었던 루이가 찾아가서 프로이센 정부에 항복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했을 때는, 프랑스인 대부분과 나폴레옹 4세까지 프로이센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에 프로이센을 존속시켜 준다면 빌헬름 1세에게 항복을 권유하겠지만, 아니라면 베를린까지 가서 직접 멸망시키라는 말로 거절한다. 이후 행적은 불명으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화국화된 프로이센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옛 주군이 망명한 신성 로마 제국으로 갔는지도 나와있지 않다.
그렇지만, 서유럽 금융공황의 여파로 호엔촐레른 왕가가 입헌군주정 수용을 조건으로 복권돼도 독일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독일을 나락으로 몰아넣은 원수들'인지라 차기 총선에서 비스마르크 등의 왕당파가 정당을 만들면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 프로이센으로 복귀하면 재기용되어 군사력 재건에 힘쓸 듯하다. 러시아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여파로 흔들리는 독일-오스트리아 연방 에피소드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프로이센 왕실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의용군을 이끌고 출전하게 된다. 중요한 건 이 의용군이 일반인들의 상식을 벗어난 의용군이라는 것. 부대원 거의 전부가 장교단과 부사관들로 구성된, 최정예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것. 실제 역사 속 한스 폰 젝트 시절의 바이마르 공화국 독일 육군 구성의 축소판. 덕분에 그들은 파병지인 그리스에서 그리스군의 군제 개혁 작업과 동시에 참호전을 전개하여 투르크 군을 박살낸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몰트케가 파리공방전에서 자신이 당했던 참호전을 간부단에게 학습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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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
사회주의 사상을 제창한 희대의 사상가. 보불전쟁이 원 역사와 다르게 흘러가자 이형이 장차 독일이 공산화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프로이센이 공화국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오스트리아에 복속된다는 굴욕에 폭발 직전이던 프로이센 국민들을 선동하고 숨어있던 자유주의자들과 오월동주의 관계를 맺은 뒤 들고 일어나 황가와 정부세력을 뒤집어엎고 프로이센 공화국 건국을 선언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과는 끝내 맞지 않았고 그 결과 쿠데타를 일으켜 미텔유로파 공화국을 선포하고 초대 의장이 되나 자신들을 시작으로 모든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잠꼬대같은 생각을 가지고 한 쿠데타라 사후 대책도 전혀 없던데다 요새화된 베를린만 믿고 평등의 명분으로 군 계급까지 없애버리는 트롤짓[61]까지 저지르며 결국 한달만에 미텔유로파 공화국은 프랑스군에게 작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뒤를 보면 북해를 통해 스칸디나비아로 도주하려 했으나 영국군에 잡혀버렸다고 한다. 이제 뒤의 운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사형임이 확실하다. 216화에서 러시아 전권대사인 알렉산드르 대공과의 협상을 위해 그가 머무는 숙소로 걸어가던 박규수에게 동행하던 헤이스 대사가 유럽의 정국을 이야기하던 중 영국군이 성급하게 사형시킨 바람에 순교자가 되어 사회주의 세력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돼버렸다고 한다.
4.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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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제프 1세 ●
대한제국의 나비효과로 보오전쟁의 피해를 일거에 무효로 할 수 있게 되는데, 보불전쟁으로 프로이센이 패배하자 오스트리아도 이 기회에 프로이센 국경에 대군을 배치하고 양면전쟁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프로이센에서 급한 불을 끄려고 독일연방의 주도권을 오스트리아에게 넘겨주고, 그 여파로 오스트리아는 이 기회에 영향력을 증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유럽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전선을 펼쳐나가다가 프로이센의 충고를 무시하고 러시아와 합동으로 전열보병들을 내세워 프랑스를 공격한 결과 대참패를 당하며 고생한다.
그러나 북부의 프로이센 왕국이 패전과 함께 독일연방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베를린에서 일어난 공화 혁명으로 빌헬름 1세와 호엔촐레른 왕가, 비스마르크를 포함한 왕당파 귀족들의 과거의 라이벌인 오스트리아로의 망명, 동맹국인 러시아 제국은 극동의 대한제국과의 전쟁, 폴란드의 독립 진압, 발칸 반도로의 진출로 전력을 집중하고 싶어하면서 프로이센에 발을 빼려하는 등 점점 오스트리아에게 유리하게 보이자 영국과의 협상도 물리치고[62] 마침내 독일 전역의 귀족과 왕족과 성직자들 앞에서 ' 카롤루스 대제의 황관'을 꺼내며 근 100년 만에 독일 제후들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국 선거를 개최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카이저로서 대관식을 화려하게 개최, 나폴레옹 때문에 무너진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을 선포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다. 제위에 오른 그는 이탈리아 교황령을 문제삼아 친오스트리아 성향의 헝가리 주교 조셉 미할로비치를 대립교황으로 내세우는 등 잘만되면 제국의 멸망대신 제국을 부활시킨 중흥 황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다.
그러나 3년간의 장기전 끝에 유럽대전은 종결되는데 아직 근대전에 겨우 발을 들여놓은 수준이며 유럽 내에서도 전황이 지지부진해지고 기술력 부족 등으로 탱크니 독가스도 세상에 나오지 않는 등의 여러 문제와 함께 각국의 피로도도 높아져서 결국 총성은 멈추지만 사실상 10년 짜리 휴전[63]에 불과하기에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그 동안은 숨고르기와 상처의 치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프로이센과 통일된 제국은 실패하게 되었으나 프로이센 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독일연방을 재건된 신성 로마 제국이 장악하게 되었고 선 대 황제들의 복수도 하면서 반세기만에 부활하였으니 원래 역사와 비교하면 현재까지 정말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영향력도 막강한 상황. 거기에 참정권과 대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탄압하는 것이 아닌 타협한다는 최선의 선택을 하여 갈 길은 멀지만 실제 역사에서 보여준 것처럼 유능한 군주임을 과시하였다.
원 역사에서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무미건조한 성격이 문제였지만, 국사를 돌보는 데 매우 성실히고 유능한 군주였다. 게다가, 합스부르크 가문 자체가 수백 년에 걸쳐 자신들이 거느린 각 통치령에 대해 동군연합 통치를 하면서 폭넓은 자치권을 보장하는 데에 이골이 났고, 그 수장인 카이저 본인은 ' 그 지독한 마자르 인이나 독일 제후들과도 타협했는데, 그까짓 자유주의자들의 요구가 대수냐.'라는 대범한 태도를 갖췄으며, 시위대 또한 카이저에게 자비를 구하듯 입헌군주정 체제 수립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중점적으로 외쳤지, 체제 전복을 통한 공화정 수립은 일부 과격파의 목소리에 불과했던 터라 수월하게 타협한 것.
게다가, 독일발 서유럽 금융공황의 여파로 공화정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폭락하고, 프로이센 내의 호엔촐레른 왕가 복권과 대독일주의에 대한 찬성여론이 폭등하면서 프로이센을 비롯한 구 독일 연방 공화국 지역 모두를 아우르는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을 완성[64], 명실상부 마리아 테레지아를 뛰어넘는 중흥의 황제가 된다. 하지만, 60여 년만에 부활한 데다 지난 전쟁의 주 전장이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제국 내부의 문제를 수습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한다. 4개의 목소리를 내는 파벌 중에서 평화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재상 겸 외무장관인 귤라 안드라시를 스톡홀름에 파견하여 영국의 디즈레일리 수상과의 회담을 추진, 양국의 이해관계가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스톡홀름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와 프랑스 견제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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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러 언드라시 ●
오-헝 제국의 재상 겸 외무장관이었던 실존 인물.[65]
제국 내부를 수습하는 것과 동시에 발칸 반도에 10만이나 되는 대군을 주둔시킨 러시아의 끝모를 팽창에 경계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카이저의 승인을 받고 영국과의 회담을 추진, 스톡홀름에서 디즈레일리 수상과 만나서 실질적인 종전협약인 스톡홀름 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19세기판 동맹의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5. 기타 국가
5.1.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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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지기트 셍게린첸 ●
몽고친왕으로 칭기즈칸의 후손이다. 서태후의 조선원정 명령에 5-6만의 정예기병군이면 된다고 주장하나 억지로 16만의 대군을 맡아서 원정을 떠난다. 수만 많지 기동력도 사기도 낮은 원정군에 고생과 실망만 하다가 평양성 공방전에서 결국 대패배. 서태후가 자신에게 패배의 책임을 떠넘길 것을 예상하고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자기 직속의 몽골 팔기군 2만 8천만을 데리고 몽골로 도망쳐버린다. 이후 남은 만주족은 반 이상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서태후가 격노해서 소환령을 내리나 역으로 4만의 몽골병력으로 초원을 봉쇄함으로 반기를 든다. 이후에도 계속 따로 움직인다고 언급된다. 82화에서 오랜만에 등장하는데, 청의 몰락과 조선과 러시아의 급성장으로 인해 몽고가 친러시아의 외몽고와 이에 반발하는 내몽고로 분열해버린 현 상황을 한탄한다. 그리고 아예 인종이 다른 러시아와 손 잡는건 무리라며, 새로운 만주의 칸을 선언한 조선에게 공투를 위한 사신을 파견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외몽골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의사교환이 어렵다고 이하응의 입으로 언급된다. 무라비요프가 실각하고 외몽골에 끼치던 영향력이 사라지자 휘하 부족과 함께 칭제건원 의식에 참가해 그의 휘하 전사로서 노서아의 칸과 싸우겠노라 약속한다. 이때부터는 이형을 초원의 칸으로서 섬기기에 그에게 존칭하며 스스로를 '게르의 양치기' 정도로 낮춘다. 몽골내전이 발발하자 외몽골의 선제공격을 맞아 적극적으로 맞공격에 나선다. 대한제국의 근대화군단과 중원에서 올라온 의용군 수십만의 지원으로 나름 우세를 점해 전쟁 와중에도 직접 대한제국에 찾아올 여유가 있었고, 범아시아 조약 문제로 찾아와서는 청과의 동군연합 시절처럼 거둔 조세의 십분의 일과 화폐 발행권, 군 통수권과 외교권을 맡기되 이를 성문화하는 대신, 그 외 모든 것에서 자유를 허가해주자 충성을 맹세한다. 이후 몽골내전에서 민심까지 잡아 승기를 잡았으나 범아시아 조약의 회담에서 중화제국의 폭주가 머지 않아 대한제국의 지원이 대폭 감소할 위기란 것을 알자 동요했다가 이형이 몽골을 포기하지 않겠다 발언하자 안심한다. 중화제국의 폭주 대책에는 몽골내전에 집중하느라 비중이 적을 듯.
천명대전 종전 후에 다시금 등장한다. 미하일과 협상중인 이형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반역을 제안하는 몽골 족장들에게 당황해 게르를 박차고 나오지만 러시아에게 그렇게 당해놓고도 몽골제국의 환상을 꿈꾸며 몽골의 국력을 오판하는 젊은 족장들의 착각에 한숨을 내쉰다.[66] 결국은 이형에게 사실을 고하고 해당 족장들을 모조리 숙청하거나, 원치 않게 구심점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을 처형해달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형은 아직 러시아 전쟁이 진행중인 시점에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철없는 몽골 족장들에게 현실을 맛보여줄 겸, 숙청 겸 해서 그들을 러시아 침공의 선봉에 세우겠노라 말하고, 셍게링첸은 그들과, 그들이 이끄는 수천 수만의 몽고전사들의 끔찍한 미래를 직감하고 탄식한다. 이후 이형과의 술자리에서 그의 주정을 듣고 윤회와 환생을 떠올렸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단순한 술주정이라 생각하고 적당히 넘어간다.
조약기구의 2차 회동에는 내전으로 엉망이 된 몽골 지역을 관리하고 러시아를 견제하는 일이 우선이라 참석하진 못했으나 이형이 추진하는 가맹국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는 청국에서 실시할 육군훈련 겸 도적토벌에 일부 기병부대라도 파견하여 자신들보다 앞선 군사 제도를 이식받을 듯.
이쪽도 어떻게 보면 이형의 나비효과로 수혜를 본 쪽. 실제 역사의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은 1865년 염군의 난 당시 고루채 전투에서 53세의 나이로 전사했으나 여기서는 원래 역사보다 훨씬 명줄이 길어진 거로도 모자라 대한제국 덕분에 (아직 몽골 내전이라는 시련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내몽골이 독립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으니. 능력도 상당히 출중하여 이형은 이홍장과 더불어 자신과 패권을 논할 그릇으로 평했다. 이홍장은 운이 없었지만 이쪽은 대초원만으로는 패권을 논할 수 없어 실패한 케이스라고 이형은 보았다.
여기에 더해 베를린 종전 협의에서 대한제국의 외몽골 지배권까지 인정된 덕분에 동군연합 통치 방식에 근거하여 카간인 이형을 대신하여 통일된 몽골의 통치자가 될 듯하다.
참고로 그의 이름을 한국식 한자로 읽으면 승격임심이 된다.
5.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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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이사미 ●
통신사 일행을 호위하는 것으로 살짝 등장한다. 교토가 존왕파로 인해 최근 치안이 많이 나빠졌다며 통신사 정사인 박규수 앞인데도 존왕파를 심하게 까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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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고 다카모리 ●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와 함께 이형의 결혼에 맞추어 국왕사로 파견되었다. 거기서 이형을 떠보기 위해 대일본제국이라는 표현을 써서 조선의 대신들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로 대표되는 막부파까지 경악시켰으나 이형의 적절한 대처로[67] 오히려 사과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조선 측에서는 비호감 인사로 확정. 이형도 존왕파랑은 친해질 수 없겠다고 판단, 일본과의 동맹 논의를 막부파의 수장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와의 독대로 진행하게 되면서 존왕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 장본인이 돼버렸다. 이후 급변하는 아시아 정세에서 해군을 강화하고 개혁해서 조선을 선제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봐도 현실성이 전혀 없다. 교토 전투에서 막부파의 맹공에 밀려 황궁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영지까지 후퇴해서 항전중이다. 만에 하나의 경우로 존왕파가 영국이나 기타 열강 덕에 이긴다 해도 현재 동북아 최강의 국가인 조선왕에게 찍힌지라 별로 미래가 밝지 않다. 결국 각 번의 군대를 몰수하여 지휘권을 일원화한 막부군의 손에 삿쵸 동맹이 패배하고 류큐로 도망, 점령해 오키나와 공화국을 자칭했다가 대한제국군과 영국의 개입을 불러왔고, 석탄운반선을 이용한 조선 정예군의 공격으로 결국 사로잡혀 류큐 왕국의 법에 따라 해적으로 처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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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이라 카타모리 ●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제외하고 그 다음으로 자주나오는 막부파의 대표인사다. 주로 요시노부랑 세트로 등장하며 도쿠가와 가문에 강한 충성심을 가졌다. 요시노부도 그를 신임하며 사실 자기는 적당히 싸우다가 고의로 패배하고 권력을 넘겨줄 예정이었다고 실토를 하기도 한다. 무진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원 역사처럼 무리하게 아이즈번의 재화를 끌어다 쓸 일도 없어졌고, 요시노부의 가장 신임받는 충신으로 남으며 크게 수혜를 보았다.
5.3. 유구[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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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타이 → 상태 ●
류큐 왕국의 왕의 이름인 尙泰를 일본식과 한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이름 읽는 법 하나로 류큐를 장악한 세력이 어디인지를 단번에 보여주고 있다.
사츠마의 속국인 류큐 왕국의 왕. 무진전쟁에서 밀리던 사츠마 군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유폐되어 국가가 오키나와 공화국으로 개명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하지만 류큐를 지나던 미국 상선을 통해 대한제국으로 탈출, 황제 이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형의 지원으로 사츠마 군을 격파하고 해적으로써 처형했다. 원 역사에 비하면 한없이 나은 편인게, 상태왕 즉 쇼타이는 원 역사에서 류큐 왕국의 최후의 국왕이었지만 조선과 그 휘하인 일본이 유구를 흡수하지 않는 이 역사선에서는 보다 오래 왕조가 유지될 것이다.
다만, 중화제국의 식량난 원조나 대한제국의 문화 수용과 전파 정책 등에서는 유구의 비중이 꽤 높은데도 일단은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일원이 아닌 것 때문에 정작 등장하지를 않는다.[69]
한참을 등장하지 않다가 어전 시합 때 귀빈 중 한명으로 등장. 이형이 아이처럼 웃으며 환호하는 걸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의 독백에 의하면 거 나라까지 뺐고 왕인 자신을 연금한 사츠마 번과 일본에 비하면 흡수할 생각 없음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한국이 새 주인으로 섬기기에 좋다고, 이후 무기 시연회에서 장래 해군강국이 될 일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살아남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형에게 새로 개발한 소총의 수입을 요청, 이형은 최우선적으로 유구에 수출할 분량을 따로 준비하겠다고 말한다. 장래 해군강국이 될 일본에 대비해 유구를 요새화할 계획인 듯 하다.
5.4.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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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가리발디 ●
이탈리아 통일의 삼걸이자 주역이던 노련한 명장.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군이 졸전을 면치 못하고 본토 깊이 주요도시 밀라노까지 점령당하자 환갑이 넘은 노구를 끌고 붉은 셔츠 군단을 조직, 오스트리아와 맞붙어 밀라노를 비롯한 주요도시를 수복하고 베네치아까지 공격한다. 그러나 어설픈 참호전을 전개한 베네치아군에게 발목이 잡혀 시대가 백년은 되돌아간 듯한 치열한 공방중이다. 베네치아의 참호는 이형과 루이의 것에 비하면 조잡하지만 이탈리아군의 무장 상태도 형편없는지라 박물관에나 들어갈 갑옷과 무기까지 꺼내서 휘두르고 있다고...
본래도 이탈리아의 영웅이었던 걸물이지만 이 세계에선 뜬금없이 위인전의 제2막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이후 고전 끝에 베네치아군을 격멸하고 점령했지만 그 이상은 여력부족으로 더 싸우지 못했다고 한다.
검은 월요일의 여파로 이탈리아가 대혼란에 빠지자 노구를 끌고 동분서주하며 지방의 국민들을 진정시켰고[70] 덕분에 간신히 유혈사태 없이 대공황을 막아낸다.어르신!
[1]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 이후, 이형이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양이처럼 입고 다닌다거나 아편과 고량주를 마시고 기병 돌격까지 하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만가지 속앓이가 안 생길 리가 없다. 다만 원래 역사에서도 신정왕후 조씨는 진짜로 섭정을 마친 이후 단 한 번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긴 했다. 끽해봐야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가 "대왕대비께서도 돌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라고 말했던 게 전부다.
[2]
역사를 보면 이형은 괜히 시대에 맞지도 않는 천주교 탄압을 해
병인양요를 벌이느니 어차피 언젠가 천주교를 인정하게 될 거 빨리 인정하고 보는 게 낫다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덤으로 이로 인해 천주교 교도들이 자기 지지세력이 된다. 그들도 자신들의 종교를 인정해준 왕이 고맙지 않을 리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형 입장에서 천주교와 앙숙 관계가 될 유림은 버리는 대상이었다. 유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천주교를 탄압하느니 어차피 인정하게 될 거 미리 인정하고 버려야 할 유림의 비난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더 나을 것이다.
[3]
농담이 아니고 실세 + 어린 왕의 조합에서 국왕이 나서서 미친 짓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세가 미친 짓을 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훨씬 더 옳아보인다. 물론 이 때만 해도 조선 외엔 그 누구도 진짜 미친 놈은 다름아닌 이형이었음을 몰랐겠지만.
[4]
다만, 작중에서 언급된 바로는, 일단 조선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이기 때문에 처형은 조선에서 치르게 될 가능성이 컸다. 청은 그 후 시체를 능지처참하려고 벼르는 중. 다만 작중 인물들 입장에서는 주인공이라면 산 채로 팔아넘겨도 종전만 가능하다면 정말 하고도 남을 성품이라서... 다만 하필 김좌근 본인이……
[5]
정확히는 신 안동 김씨인 장동 김씨다.
[6]
연좌제는 하지 않았지만 수 대에 걸쳐서 쌓아온 재산과 장성한 남자들은 싸그리 몰살된다. 그렇게 막으려 했던 반역 혐의로 처형되었으니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는 가문 자체가 붕괴된 것.
[7]
실제 역사에서도 김병학, 김병국은 흥선대원군의 섭정기, 고종의 친정기에 아주 잘 쓰여진다. 이형 자신부터가 그 역사를 보고 온 만큼 '이 인간들은 쓸모가 있다.' 라고 판단해 목숨도 살려주고 벼슬도 내린 것.
[8]
역모 사건으로 문중 내 적자들의 출세길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김가진을 기용한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그가 너무 커져서 문중을 해할 것을 걱정한다.
[9]
사실 엄청나게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이미 이형도 국민당이 10년간은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며 미리 축하해주고 있었고, 국민당의 주 지지층은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세대. 그리고 대한당의 주 지지층은 반대로 나이 있는 유림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의해 큰 실책만 없다면 점점 대한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게 되고 국민당의 지지율은 오를 수 밖에 없는 구도다.
[10]
댓글 란에서 의견이 갈렸다. 능력은 있으니 중요직에는 올리지 않더라도 어떻게 잘 굴려보잔 독자들과,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고 대체할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독자들로 갈렸다. 양측 다 동의하는 점은 완전한 아군화는 절대 무리라는 점이며, 단지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자 vs 그냥 죽이자'의 차이일 뿐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녀석의 패거리들에게 미래는 없다.
[11]
이형에게 걸려 된서리 맞을 지도 모른다. 애당초 이형부터가 21세기 대한민국 사람이 빙의한 만큼 이완용의 행적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이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또 얼마나 구역질 나는 놈인지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단물이란 단물은 다 빼다먹고 버리든가, 이런 위험한 놈은 애초에 싹을 잘라버리든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지, 중용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리가 없다. 당연히 녀석의 패거리들도 마찬가지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일진회는 자동적으로 인생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반대로, 독립운동가 등 위인들은 출세하여 행복하게 살게될 듯 하다. 실제로, 고종은
전봉준,
앤드루 카네기 등에게는 상당한 호의를 보인다.
[12]
이 시점에는 이게 자랑이자 칭찬이다.
[13]
전봉준 입장에서는 평소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바쳐야한다'고 쉬지않고 말하던 사람이 '너는 내 자식이니까 위험한 짓하면 안된다'같은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모습이었고, 그렇기에 반발을 불렀다. 다만 이 부분은 여러모로 전창혁이 옳은 것이, 주인공 본인부터가 너무 많이 모였다, 이래서야 삐끗했다간 나라의 미래까지 완전히 절딴난다며 경악한 것이 당시 자원입대 행렬이었으며, 전창혁 입장에서는 '앞으로 미래를 지탱할 인재'들이 채 싹을 피우기도 전에 전쟁에서 소모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14]
한 명은 전장에서 '병사A'로서 산화. 다른 한 명은 '나라에 도움이 되겠다'고 학업마저 뒤로하고 참전한 주제에 무엇하나 이룬 것도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 죽치고 있다가 정당행,
마지막 한 놈은 '자기 일이 바빠서 연락조차 안한' 코스.
[15]
당장 본인부터가 '나라가 부강해지는'것에 기뻐하면서도 군관이 된 전봉준에게 '앞장서서 도적질에 손을 더럽히는 길을 선택'했다고 탓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16]
나레이션 : "실로 그러했다."
[17]
원 역사에서 조선대목구가 경성대목구(
서울대교구)와 대구대목구(
대구대교구)로 분리된 건 1911년의 일이다. 베르뇌 대주교는 1866년에 순교했기에 당시까지는 조선대목구의 교구장이었다.
[18]
당시에는 상식이었던 인종차별사상과 정치-종교계의 관계를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다. 부른 이형조차 뭐 이렇게 빨리 왔냐고 놀랐을 정도.
[19]
당연하지만 조선과 청의 화친에 너무나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승전국인 조선에서 파견된 김병학, 김병국 형제가 봐도 어이없어할 정도로.
[20]
게다가 프랑스가 제시한 중재안은 "심왕인 조선왕이 다스릴 봉토인 심요 지역 - 즉, 남만주 일대를 언제부터 통치하게 될 것이며, 또한 전쟁배상금은 얼마나 지불해야 할까?"에 관하여 대놓고 이권 뜯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프랑스는 은 1000만 냥의 전쟁배상금과 3년 이내의 심요 지역 할양조차도 조선이 너무나 관대하게 청을 용서한다고 여겼다.
[21]
이때 벨로네 공사는 이형이 타국의 국왕 신분만 아니었으면 힘껏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22]
이미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경험이 있고, 미국과 대한제국과는 달리 특히 영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아프리카 정복전쟁으로 재정이 부족하지만 본격적인 아프리카 분할통치가 시작되면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23]
대한제국은 영국에게 차관을 제공하여 기술을 공여받고 있으며, 해외로 대규모 이주를 진행하는데다가 미국으로 친선단을 파견함.
[24]
대한제국이 독자적인 규격을 쓰지 않고 프랑스의 것을 따른다는 건, 단순하게 군수산업의 중요고객을 잃지 않는다는 것 만이 아니라 근시일내에 대한제국이 프랑스와 적대할 일은 없을거라는 암묵적인 증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가 마무리 된 것. 현실에 비유하자면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동일한 NATO 탄약 표준을 쓰는 것과 비슷한 셈.
[25]
사실 이건 굉장히 순화한 표현인데, 프로이센은 '
냄새나는 양배추나 퍼먹는
소시지놈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
합스부르크
주걱턱놈들', 러시아는 '
스키타이
몽골놈들'로 비유하며 욕한다.
[26]
만족스럽지 않은 승리라도 잡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전우들의 목숨,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사령관이 고뇌와 노력을 거듭해서 일궈낸 각종 혁신들이 모두 물거품이 됐기 때문.
[27]
앨버트 공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가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의 형인 작센 코부르크 고타 공작 에른스트 2세가 앨버트 공의 이름을 팔아가며 북독일 연방의 존속을 도와달라고 빅토리아 여왕을 꼬드기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
[28]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은 이 시기 글래드스턴보다 신뢰한 사람이 바로 위에 언급한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게다가
보어 전쟁 당시에 소극적이었던 글래드스턴을 꾸짖어서 전시내각에 강경책을 주장한 것도 빅토리아 여왕이었고.
[29]
작중에선 솔즈베리 후작이란 명칭이 더 자주 사용된다.
[30]
사실 조선이 마침내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으면서 러시아는 주변국들에게 언제나 그래왔듯 조선도 그런 식으로 위협하면서 이권 뜯기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항상 대립을 하여
그레이트 게임을 이어나가던 영국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31]
물론, 이보다 더 큰 건을 수주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상대는 그런 건들을 한꺼번에 발주할 수 있는 국왕인지라...
[32]
거기에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카네기는 확실히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사업가로서 이익과 명예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인 셈.
[33]
이때 모건에 대한 그의 평은 "타향살이하다보면 같은 나라 사람이 가장 무섭다.", "눈 앞에 있었다면 면상에 새하얀 면장갑을 벗어던지고 결투(!!!)를 신청했을 것이다."
[34]
이형이 카네기를 미국으로 보내는 실정이 대선과 같아서 대선을 노리는거냐고 물어보고, 그렇다고 대답하며 큰 소란을 만들어 인구가 거의 없는 남부의 시선을 돌려 집권당에 힘을 실어주는 것, 거기에 확실히 시선을 돌릴 미끼인 흥선군을 씀으로 완벽한 대전략을 세우자 이렇게 세세한것까지 아시아를 한번도 안벗어나고 완벽히 정세를 읽어낸것은 하느님이 보우하는 성인이라고 여겨 충성을 맹세했다. 설령 뒤에 있는게 악마라 해도 돈을 좇는 자신에게는 악마가 신이며 하느님이면 자신은 이형이 아닌 뒤의 하느님께 올리는 절이니 충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이형은 카네기를 완벽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좋아했고 카네기또한 자신이 이형을 배신하는건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가 되는거라며 완벽히 충성을 맹세했다.
[35]
밀명의 내용 자체는 민치상에게 들었지만 그 이면의 이형의 속마음을 거의 완벽하게 읽어내고 동시에 하루도 안 돼서 그 상황에서 자신이 최대한 이익을 뽑아낼 판을 짜냈다.
[36]
전직 사학도로서의 지식으로 국제정세를 바꿔왔지만, 금융과 경제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기 때문. 결국, 국가 전체가 나아가야 할 부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지만, 경제 문제는 꼼꼼하게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을 듯하다.
[37]
말이 좋아 리모델링이지 작중 묘사를 보면 중국에서 불러올 장인들을 시켜서 모조리 뜯어고칠 생각인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차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다고...
[38]
10년 만기에 월말 이자가 2할씩 복리로 불어나고 저당 잡힌 담보는 경부선(...)인 국채다. 게다가, 이 재정고문이 "모건 회장님을 대신하여..."라고 변명한 걸 봐서는 모건이 꽂았거나 그에게 매수당한 인물인 듯하다. 참고로 저 10년 만기에 월말 이자가 2할의 복리라면 실제로 계산해보면, 10년동안 꾸준하게 쌓이는 총 합계는 매 달 지급액의 31억배에 달한다
[39]
이형에게 직접 이 국채에 대해 들은 카네기 왈 "생각은 해봤지만 사업가로서 신뢰를 깨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할 생각이 없기에 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게다가, 철도 이야기 때문에 입궁하여 이형과 대화하면서 그에게 그런 수작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의 행동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40]
아마도 이런 미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건
민치상 때문에 대한제국을 호구로 생각해서 그런 듯하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황제는 자기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모건의 치명적인 약점.
[41]
자신이 미국인들 중 가장 먼저 온갖 리스크를 안고 투자해 온 대한제국에 후발주자로 들어온 모건이 대한제국을 통째로, 그것도 날로 먹으려는 얕은 수작을 부렸기 때문. 전술한 것처럼 눈 앞에 있었으면 결투를 신청했을 거라 했을 정도니 그의 분노가 보통이 아닌 듯.
[42]
카네기가 무산철광을 개발할 때 모건의 자본을 끌어들였다.
[43]
책상 서랍에 숨겨둔 엽총으로 그를 쏴죽이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이를 구실 삼은 이형에 의해 대한제국에 투자된 자신의 모든 자산이 휴지조각이 될 게 두려워 간신히 참았다고 한다.
[44]
그랜트 정권이 부정과 부패, 비리로 얼룩졌기 때문에 재집권을 원하는 공화당으로서는 그랜트를 압박해서라도 헤이스를 키워야 했을 것이다.
[45]
서툰 한국어로 여기저기 첨삭이 된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헤이스 대사의 인간적인 면이 소소하게 드러나는 부분.
[46]
러시아 제국 대표단이 머무는 저택 앞에 횃불을 들고 모인 천 단위의 대학생 시위대에게 자연스럽게 길을 터달라고 부탁하고는 그 가운데로 터진 길을 태연히 지나가고, 스스럼없이 학생들의 격려를 받은 것.
[47]
세간에 나온 이미지와 달리 에디슨은 사업가로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다만 이때문에 에디슨의 안좋은 재평가가 진행되어 지나치게 이미지가 많이 까여내렸고, 본 작품에서도 여자에게 츄파를 던지는등 좋지 않은 이미지로만 나온다. 하지만 이는 에디슨에게도 어느정도 억울한 면이 있다. 자세한건 항목참조.
[48]
전기 분야에 대해서 카네기가 밀어준 기업이 아니라 에디슨의 기업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카네기도 자신은 황제 눈 밖에 날 일은 안했다며 의아해하고 너무 사업을 확장하여 황제가 견제하는 의미에서 그런건가 해서 기업을 조금 쪼개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형은 에디슨보다는 장차 에디슨의 기업에 입사할
니콜라 테슬라랑 연을 만들기 위해서 선택한 거다.
[49]
총사령관인
루이 중장이 이형에게서 참호전을 배우고 이를 당대 기술 수준에서 극한까지 발전시킨 데다, 상대방이 참호전을 구사해도 돌파할 수 있도록 풍족한 재정을 바탕으로 장갑 척탄병을 대규모로 편성했기 때문.
[50]
러시아어로는 인텔리겐차.
[51]
둘의 대화에 따르면 참호전 특유의 지독한 병력소모 때문에 철도교통이 빈약한 러시아령 폴란드는 물론이고 특히나 오러동맹의 주 전장인 프로이센에 죽어라 병력을 보내도 5년이면 러시아 병이 다 죽어서 한명도 안 남을 것이라고 한다.
[52]
현실 역사에서도 그는 차남이고 군사전문가였으나 형의 죽음으로 태자가 되었다.
[53]
실제 역사에서의 '니콜라이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는 시베리아 총독으로서 차르의 총애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고종이 즉위할 때는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장년이었고, 고종이 3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그리고
카자크 혹은 '코사크'들은 애초에 노예가 아니었고, 노예가 된 적도 없고, 농노 해방령 때도 카자키들은 해방령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이 외에도, 이 대체 소설에서 가장 역사적 고증에 어긋나는 캐릭터 중 하나다.
[54]
영국의 극동 함대가 동해로 이동해 연해주 근처까지 출몰, 프랑스가 이형에게 8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진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만일 진짜 조선을 침공했다면 크림전쟁 시즌 2 확정.
[55]
실제 역사였다면, 극동에 넘어온 카자키 부대만 만 단위이고 이전부터 몇 개 이상의 사단이 연해주에 와 있는 상황이라 사단 한 개 날라갔다고 연해주 전체를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에서 극동 함대를 끌어와서 블라디보스토크와 해안 도시들을 방어한다는 카드도 꺼내들 수도 있다. 게다가 1860년 북경 조약으로 빼앗아 낸 땅인데 이걸 8년만에 조선에 넘겨준다는 선택지는 러시아로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1만이나 되는 군대를 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까지 이동시켜서 공성전을 벌이고 보급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조선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리수이다. 그리고 이걸 알기에 작중에서도 싸인은 했지만,
알렉산드르 2세는
양키 놈들이 심판을 하겠다더니만 조선편을 들었다는 트집과 핑계를 대며 약속 이행을 거부했고, 이형 역시 실제로 연해주 먹을 거라는 기대는 쥐꼬리 만큼도 안 하고, 그냥 러시아 놈들이 지들이 싸인까지 한 약속도 아주 태연하게 어기는 무뢰배라는 식으로 이미지를 깎은 것에 만족했다.
[56]
진짜 이랬다간 데카브리스트들이 처음 받은 선고처럼 가족들까지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고, 본인은 황제원 요원들에게 암살당했을 것이다.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는 영국도 러시아와의 관계 파탄을 우려할 게 뻔하기에 이런 문제 인사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카자키들은 백작이 망명을 시도했다면, 백작의 목과 손목을 잘라 황제에게 바쳤을 것이다. 카자키들이 일개 시베리아 총독 따위을 따라갈 이유가 없다.
[57]
실제 역사의 니콜라이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백작은 1861년에 시베리아 총독부를 이원화하는 행정망 구축 계획에 실패해서 경질당했고, 1868년에 원로원에 들어가 황제의 자문역을 맡았다. 그리고 황제보다 7개월 정도 더 늦게 죽었다.
[58]
1865년에 1900명으로 3만명이 지키던 타슈켄트를 정복한 장군. 그런데 하지말라고 했는데 한거여서 정복했으니 훈장은 주는데 군대에서는 퇴역하라는 판결을 받고 퇴역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나중에(1882년) 러시아령 투르키스탄 총독으로 있다가 2년있다 퇴직하고서 자기집안 땅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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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은 보오전쟁 초기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승기를 잡자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타격하고 영토 할양까지 받아낼 것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저력을 경계한 비스마르크의 결사반대로 중단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이때의 결정이 일장일단이라고 해도 미래를 엄청나게 뒤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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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역사에서의 빌헬름 1세는 '백성들이 정치사상이란걸 갖는 것조차 불온하다.' 라고 여겼을 정도의 왕권신수론자였다. 즉 입헌군주정과는 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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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말 삽질로, 군대라는 조직이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으로 유지되는 조직인 걸 고려하지 않은 자폭수다. 그나마도 중국의 홍군 시절처럼 처음부터 계급이 없었다면 모를까 독일은 원래부터 군대간의 계급이 있던 데다가 아예
군국주의 국가이기까지도 했으니 그 부작용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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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이 신성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에 60여년 만에 다시 찾아온 독일 재통일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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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종전협정 자체가 10년의 휴전기간을 둔 것처럼 서술됐지만, 이는 종전협정에 대한 세간의 평이 그렇다는 걸 서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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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알자스-로렌은 여전히 프랑스가 점유 중이며, 신성동맹 측의 요구로
홀슈타인은 덴마크에 반환됐고, 라인란트는 비무장지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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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는 '안드라시 줄러'로 표기됐만,
헝가리어 특성상 성(姓)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오며, 'a'는/ɒ/로 발음되고 á가 /a:/로 발음되기 때문에 '줄러 언드라시(Gyula Andrássy)'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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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과 셍게링첸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는 것이, 이형은 청의 간접통치안을 그대로 수용, 게다가 대한제국의 장교진과 청의 의용군단을 동원해 외몽골을 제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초원의 칸을 지칭한 대가를 확실히 치르어주고 있는 것. 게다가 현실적으로 봐도 현재 몽골이 러시아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는 것은 대한제국의 힘이 있기 때문이지 몽골이 강해서가 아니다. 게다가 대한제국군은 청과 러시아를 꺾고, 중화제국군을 멸망시킨 동아시아 최고의 군대다. 대한제국 입장에서 몽골군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렇게 아쉬울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설령 이들이 이형의 뒤통수를 치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몽골의 전근대 유목기병들 상대로 러시아가 밀릴 정도로 약체가 아닐뿐더러 근대화된 화기로 무장한 러시아의 기병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전근대 유목기병들을 초원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요약해 말하자면
호가호위하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런게 아닌 자신들이 정말 강한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 만일 이형과의 관계를 끊으면 이형에게 맞든지 러시아에게 맞든지 어쩄든 열강에게 이리치고 저리치일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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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이 무엇이고 천황이 누구냐며 역으로 사이고 다카모리를 도발했다.
[68]
오키나와, 류큐라고도 불리며 실역사에서 오키나와 제도를 다스리던 왕국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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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과 일본의 보호령이라 조약기구 정책에 끼긴 하지만 영국이 눈독 들이는 곳이라 대놓고 조약기구의 일원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상태가 범아시아 조약기구 회담에 참가한 것은 대한제국이 강남 식량난을 제압해 아시아 패권을 공고히 한 이후부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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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를 보면 당시 일흔이 다된 노인이 엎드려 빌면서 눈물로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