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이재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부대부인 민씨의 적장자이자 고종에게는 친형인 사람이다.이름 변경은 이재록 → 이재면 → 이희. 원래대로라면 이재면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처음 언급했을 때부터 그를 이희로 호명되었다.
2. 행적
처음으로 언급이 된 순간은 이형에게 권력 다툼에서 밀린 이하응이 때마침 신생국인 대만으로부터 대한제국의 황족들 중에서 대만의 국왕을 옹립하고 싶어하는 제안을 받고, 대만의 국왕으로 이희로 추천할 때였다. 이때 작위는 흥친왕이었는데 언제 친왕 작위를 받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으나 대략 이형이 칭제건원을 선언한 시기로 추정된다.그후, 이희는 이하응과 같이 대만으로 건너가서 대만의 국왕이 되었지만 정작 동생인 이형의 반응은 "그런 녀석도 있었나?"였다. 애당초 주인공의 환생 타이밍이 즉위식 직전이라 친형을 본 적도 없고, 청나라의 동군연합 구조나 빅토리아 여왕의 성향 따위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기묘한 방향으로 역사광이었을지라도 역사상 전혀 비중이 없었던 이희는 완전히 기억 바깥. 사실 대만왕으로 즉위한 뒤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출연이 없다.
허나 231화가 돼서 직접 등장했다. 아직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보이며 언젠가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려는 이하응과 대립하는 것으로 첫 등장을 하게 된다. 이하응이 대만의 국왕인 자신에게 일말의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대만의 금을 모아서 사유재산 축재에나 사용하여 대만의 백성들이 땅을 잃게 되고, 이에 대만의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오던 이희에게 막대한 민폐가 되자 아버지를 제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하응이 계속해서 자신을 무시하자 이에 분노하여 계속 마찰을 빚다가 이미 추종자들을 상당수 거느린 이하응을 이길 수 없자 이듬해 정월에 제후들의 책봉 의식에서 이희 본인이 직접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고 싶다는 국서를 동생에게 보내게 된다.
사실 이희는 아버지인 이하응과 뜻이나 행동 모두 다 극단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희는 대만인들을 진심으로 자기 백성으로 여기는 반면, 이하응은 전형적인 중화사상 기반의 유학자답게 대만인들을 오랑캐 짐승으로 생각했다.[1] 게다가 이희는 대만에 정착하고자 하지만 반대로 이하응은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니 처음에는 아버지 뜻대로 정사를 진행해도 잠자코 이를 따르며 호족들과 친분을 다져왔지만, 이 시기부터는 반항기를 적극 표출하여 자신이 직접 정사를 주도하려 한다.
이희는 동생의 빽으로 대만의 국왕이 되었지만 그 또한 본디 유학자이기에 백성을 소중히 생각했고, 이하응이 백성들을 핍박하면서 자기 야망을 도모하려드니 그런 아버지와 대립하게 된 것이다. 비록 이희는 제왕학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적어도 군주로서의 자각과 책임감은 강하다는 것이 아이러니. 이쪽 역시 흔하게도 왕의 자리에 앉게 되었기에 강력한 왕권을 쥐고 싶어하는 욕망과 그에 따른 아버지 이하응과의 갈등을 벌이고 있다. 백성들의 건 역시 지지세력이 부족한 문제 때문에 민심에 더욱 신경을 쓰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이형이 이하응의 부정 축재와 더불어서 이희가 사실은 친일파인 이재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어린 시선으로 코웃음을 쳤었다.[2] 하지만 박규수의 설득으로 제후 책봉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 이후, 이하응이 실각되어 별궁에 유폐되자 비록 부족한 능력이나마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며 이하응이 소유한 토지를 국유화시켜서 농민들에게 나눠주며 대만을 참된 유자들의 나라로 건설할 거라 다짐한다.
그 후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일원으로서 나라를 통치해왔으며 귀족들과 합의를 해 군주귀족정을 이루었다고 언급된다. 반초동맹 사건에선 월국의 도움 요청을 받고 기회를 받아들여 반초동맹의 수장이 된다.
3. 평가
원래 역사대로라면 그저 시류에 휘둘리는대로 살다가 친일파로 전락했겠지만 이원철이 빙의한 이형에 의해 모든 것이 뒤바뀌면서 이희의 운명 또한 극적으로 바뀌게 되었다.일단 간접적으로 언급만 되고 비중이 투명인간 수준이었던 작중 초중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빛을 발하는데 왕이 될 때부터 어차피 이하응의 꼭두각시로 여겨져 실권은 이하응이 잡고, 이희는 그저 기존 대만의 주요 호족들과 만나는 상징적인
3.1. 이형과의 관계
동생인 이형은 이희의 이름은 고사하고 존재를 완전히 망각할 정도로 하나도 신경쓰지 않은데다 대만에서 일이 벌어질 당시에는 그가 원 역사의 친일파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자 아예 속으로 업신여기기 까지 한다. 그나마 이완용 같이 사고치고 다니지 않고 얌전히 지내니 알아서 잘 살라고 무시하는 정도에 그쳤지만이렇듯, 아무리 황제라지만 동생에게 푸대접을 받고 있는 처지지만 의외로 이희는 동생에게 나름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정확히는 할 일 없이 놀고 먹던 자신이 동생 덕분에 대만의 국왕 노릇까지 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지만.[3]
또한 이형의 친형이라는 이름값 덕에 아주에서 권위만이라면 한손에 들 정도로 높다고 언급된다. 즉 자기보다 훨씬 국력이 강한 일본이나 초나라 왕들도 이희에게 대놓고 개기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는 뜻.
[1]
웃긴 사실은 현재 대만인의 인구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대다수는 한족이다. 물론 이때는 국부천대 이전이긴 하다만 이미 정성공이 대만을 정복한 이래 한족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2]
실제로 이쪽은 각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대충 알기에 그것에 따라서 각 인물들을 중용하느냐, 버리느냐가 갈려진다.
김가진의 경우에도 의원들의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는데 김가진의 이름을 듣고는 독립운동가였던 것을 생각하고는 그래도 의견을 들어보았을 정도이니 원 역사에서 친일파였던 이들에 대해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친일파는 정말로 쓸모없던 인물들이 대다수였으니 말이다. 참고로 친일파는 능력 측면에서 쓸모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이완용조차 관료, 지식인으로서의 능력은 우수했다. 즉 쓸모없다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 쓸모없는 게 아니라 그 능력을 사리사욕 채우는데 쓰기 때문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3]
농담이 아니고 조선시대 왕족들은 명예직 아니면 벼슬할 일도 없었고 뭘 딱히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런 것보다는 다른 나라에서라도 왕이라도 된 것이 더 나았다고 여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