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19:38:51

서태후(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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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평가4. 기타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로 청나라의 섭정으로 첫 등장. 참고로 작중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사악하고 부패한 미치광이다.

2. 행적

이형이 조선을 근대화시킬 목적으로 청나라와의 사대를 끊기 위해 청에게 선전포고, 이에 분노한 서태후는 조선이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전에 철기로 짓밟으려 했지만 상황이 꼬이면서 제1차 조청전쟁에 패배한다. 그런데 패전한 상황에서 2만 명의 팔기군 포로의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거부하는 미친 짓으로 주인공을 역으로 질리게 만들었다.

이게 왜 미친 짓인지 이해하려면 청이 어떤 나라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청은 근본적으로 한족 중화제국이 아닌 이민족 중화제국으로 '만주족이 한족을 억누르는' 구조를 지닌 국가다. 이를 위해서 수많은 특권을 만주족에게 부여해서 ' 만주족의 힘을 늘리고 단합시키는 것'이 청의 근본 국시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여차하면 튀어서 힘을 되찾기 위한 기반'의 확보를 위해 '요동'은 '성지'로 지정하고 개발을 금지하기도 했다. 문제는 팔기군, 그 중에서도 제1차 조청전쟁에 투입했다가 포로로 잡힌 만주 팔기군[1]국내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듬어왔고 보듬어야만 하는, 만주족으로만 구성된 친위군이건만 그 친위군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고작 자기 재산 나가는 게 아깝다는 이유로 은 200만 냥의 몸값 지불을 거부한 것. 이건 완전히 부러진 다리에 깁스하는 비용이 아깝다고 다리를 자른 꼴이다.[2] 어찌나 황당한 일인지 이형과 이하응 두 사람 다 서태후의 태도에 대해서 어이를 완전히 상실한다.

이렇듯 부하들과 정적인 공친왕이 만주족의 자긍심과 명맥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는 데 반해, 서태후는 자신의 부와 권력만 지키면 그만인지라 상식적으로 보면 만주 황실로서는 절대로 줄 수 없는 심왕 작위[3]를 이형에게 주고, 수백 년간 대적해온 러시아군까지 끌어들였다.

결국 조선과의 전쟁의 패배로 태평천국의 교세는 재차 부흥해서 갓 탈환했던 남경이 위기에 빠지고 셍게링첸의 몽고도 반기를 든다. 더군다나 이형은 2만 명의 팔기군 포로를 만주에 무조건으로 풀어줬고[4], 봉천 조약이라는 아주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까지 맺게 된다.[5][6] 결국, 서태후는 만주의 민심조차 잃게 되자 조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리고 정적들을 압박하기 위해 러시아군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러시아군의 만주 진출을 용인하면서 민심이 한층 더 떠나간 것은 덤. 늑대들을 쫓아내자고 불곰을 불러들인 셈. 게다가 이 때문에 영국, 프랑스, 미국의 반발을 사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민심을 잃어가며 불러들인 러시아는 만주를 얻게 된 조선과 마침내 국경을 맞대게 되어 조선군과의 살벌한 대치에 집중하느라 서태후에게의 지원이 미미했고, 덕분에 태평천국군은 더욱 기세를 올린다. 이홍장이 겨우 태평천국군을 잠재우는 것에 성공하지만 이홍장이 민심으로 자신을 쫓아내려고 한다는 걱정을 하다가 조선을 다시 공격할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밀약 내용이 대놓고 새어나가면서 러시아는 발뺌하고 조선에게 침략당할 구실만 주게 된다. 결국 제2차 조청전쟁이 발발. 조선군이 심요에서 멈추지 않고 서태후 본인에게 단단히 적개심을 품고 있던 만주 팔기까지 합세해 쳐들어오자 도망친다. 일단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지만, 이미 모든 열강과 중원의 주요 세력들에 찍힌 이상 다시 나올 일은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러시아를 제외한 열강들은 청과 서태후를 포기하고 대신 조선(러시아 견제)과 이홍장(태평천국 상대)을 밀어주고 있고, 러시아도 서태후와 손을 잡았다가 극동에서 2차 크림전쟁을 치를 뻔했었기에 서태후에 대해 학을 때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과 공친왕(청), 이홍장(중화제국)은 아예 서태후 처단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나중에 서태후 일당의 위치가 포착되었다. 정확히는 조선에서 러시아 일대를 염탐을 실시한 대원군의 촉에 들어온 건데 다름 아니라 "연해주에서 특급기밀(극동 도독부 기밀서류)조차 제집 드나들 듯 가져올 수 있다."라는 사실에 황당해서 조금 생각해보니, 연해주의 관청보다 중요한 것을 숨기려고 정신이 팔렸다라는 결론이 나왔고, 현재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답은 서태후 일당이라는 것이 확연해졌기 때문. 결국 정확한 위치가 나왔는데, 사마르칸트 총독의 별채에 동치제와 함께 머물고 있다. 그러나 오랜 도피생활과 러시아 정부도 이들 모자를 싫어하고, 주변에 깔린 영국의 정보원에게서 숨기느라 대우가 말 그대로 죽지는 않을 정도로만 먹여주는 반 노숙자 꼴에 가깝다. 게다가 대충 포기하고 싶어하는 동치제를 닦달하며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 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대한제국의 등을 찌르기 위해 은밀히 태평천국을 지원하는 러시아가 중화제국과 태평천국간의 협상 테이블에 청의 고관이나 입는 복식을 한 사람을 보냈는데 어쩌면 서태후 관련자일 가능성이 있다. 천명전쟁 이후 러시아 본국이 유럽대전에 몰린 상태에서 고립된 동방영토에 몽골군이 몰려오자 동방령 독자적으로 이형과 이면협의를 맺으며 서태후 일당의 가치는 더욱 낮아졌는데, 서태후는 사실 권력욕에 미친 척 하면서 알음알음 정보를 주워듣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동방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생긴 영국이 마지막 남은 똥패로나마 써볼까 접촉하고, 결국 서태후는 영국의 도움으로 동치제를 보쌈하여 사마르칸트를 탈출해 티베트로 숨지만, 동치제가 사망하고 나서 이강과 빅토리아 멜리타가 결혼하게 될 때 영국이 혼례품으로서 넘기게 된다. 이후 대한제국령 정주의 천궁에 감금되어 있다가 공친왕의 의뢰를 받은 김가진과 대한제국 비밀 요원들에게 붙잡혀서 끝내 누각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게 되었다.

3. 평가

이형:그대가 생각하기엔 어떻소? 그대가 청의 태후라면 만주족 포로 2만 명을 버리시겠소?

박규수: 버리지 않을 겁니다, 전하.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 위정자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형: 그렇다면 저들은 뭐요? 역적 김좌근과 그 일당들은 도대체 뭐고? 청이고 조선이고, 도대체 왜 이렇게 자기 나라 백성들조차 책임지기 귀찮아하는 것들이 위정자 흉내나 내고 있냔 말이오?[7]
- 49화 소년왕의 고뇌 중에서.

위의 언급된 내용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자기 욕심 때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백성들을 저버리고, 나라를 망친 정신나간 폭군이자 암군의 표본인데, 아무리 그녀가 등장하는 작품이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라지만 그 정도를 넘어섰다. 그래도 주인공인 이형은 유교적인 관점에서의 폭군인 것이지,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막장 군주라는 의미에서의 폭군이 아니다.[8] 하지만 서태후는 아무리 문란한 군대라지만 고작 사비 털리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자신을 위해 싸워준 만주족 병사들을 손쉽게 저버렸다. 그 때문에 만주족들은 일제히 분노하여 이형에게 달려가서 기꺼이 그를 만주의 칸으로 추대하여 그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래도 자기보신에는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데, 조선 정예사단과 만주 팔기가 몰려올 때 눈치 빠르게 동치제만 데리고 도망친 일이나[9] 러시아의 푸대접 와중에도 미친 척을 하면서 영국과 접촉하는 등 "국정운영에 그거 절반만 했어도 이렇게까진 몰락하지 않았을 텐데..." 싶을 능력을 보인다.

4. 기타

리첼렌의 후속작인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도 등장한다.



[1] 몽고 팔기군은 셍게린첸의 결정에 따라 전선에서 이탈했다. [2] 그 와중에 청나라 조정은 소양공주를 조선에 보내기 직전, 상국이 번국을 상대로 결혼 지참금을 흥정하는 막장 행보까지 일삼았다. [3] 심왕의 영지는 심양과 그 주변으로 다시 말해 만주다. 그리고 만주는 '만주족'이라는 말 자체가 '만주에 사는 부족'을 뜻하는데서 보여지듯이 청나라가 기원된 성지이며, 동시에 '여차하면 튀어서 힘을 되찾기 위한 기반'이다. 청나라를 하나의 집안으로 보자면, 문중의 족보와 선산을 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서태후는 "그깟 심왕 작위 하나로 당장 만주가 안전해질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심왕 따위의 직위가 뭐 그리 대수라고?" 말하며 신료들의 반대를 뿌리쳤다. [4] 단순 숫자만 보면 얼마 안 된다고 생각되지만 이 시기의 만주족 자체가 고작 100만 명에 불과했다! 즉, 자기 부족 50명 중 1명이 포로로 잡힌 꼴이다! [5] 톈진 조약 이상의 굴욕인데 그 조약이 발생했던 제1차 아편전쟁 시기에는 영국이란 강한 오랑캐에게 패했다는 정신승리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제1차 조청전쟁은 언제나 한 수 아래로만 여겼던 조선에게 패한 것이다. 굴욕의 스케일이 다른 셈. [6] 여기에 조선은 서양 열강들이 주로 쓰는 조약 내용을 삽입하여 다른 서양 열강들로 하여금 조선이 어떻게 이런 수법을 알고 있는 건지 의아해할 정도였다. 봉천 조약을 체결하러 온 공친왕 또한 "당했다! 조선이 이렇게 빨리 근대화를 진행할 줄이야!"라고 생각했다. [7] 여담으로 이형은 21세기에 살다가 고종의 몸을 빌어 환생한 존재다. 그러니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의 시선으로 서태후와 조선을 대차게 깐 것이다. [8] 유교적인 관점만 벗어나고 본다면 사실 중흥을 이룬 성군에 가깝다. 거기다 중흥도 그냥 중흥이 아니라 세도정치를 거치며 썩을대로 썩고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나라를 되살리는 것도 모자라 동아시아 패권강자로 만들었다. 이쯤이면 세종대왕 이상의, 세계적으로도 성군 순위에 꼽아도 무방할 수준이다. [9] 덕분에 이형은 청나라 황실의 관리들을 상대로 피의 심문을 했는데도 서태후를 못 찾았고, 그 후에 청 정부를 장악한 공친왕도 전혀 못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