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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대 중후반 성립되어 90년대 NL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운동권을 양분하던 정파 중의 하나. 민중민주주의 혁명론(People's Democracy Revolution, PDR)의 주장을 차용하며 형성되었기에 PD(민중민주파)로 불리웠다.[1] 2000년대[2] 이후로는 '자주파'로 불리는 NL과 대비하여 평등파로 부르기도 한다.민족 문제를 중시해 북한과 힘을 합쳐 미 제국주의를 축출할 것을 핵심 과제로 보았던 NL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계급 문제로 보고 노동운동과 연계해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80년대까지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추종했으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다양한 사회주의 흐름으로 이론과 실천 방식이 분화된다.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한 사람들, 이론 연구에 집중한 사람들, 다양한 신좌파 이론들을 받아들인 사람들, 심지어는 아예 보수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3][4]
현재는 정의당, 노동당 등의 진보정당이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을 비롯한 노동운동,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2. 형성
조직이나 이론의 형성이 NL보다 늦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운동권의 원형이 해방 이전부터 형성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데다, 일제 강점기의 토착 공산주의자들은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죄다 월북하거나 전향을 택한 바람에 이어갈 만한 계통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1970년대까지는 사회주의 운동의 기반이 될 도시 노동자층의 형성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라는 충격 이후 우리나라를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대두되는데 우리나라의 근본 모순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사회구성체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게 된다. 80년대에는 NL- CA가 학생운동의 양대 파벌이었으나, CA그룹이 분열되면서 좌파 학생운동을 대표하던 '민민학련(민족민주학생연맹)'이 무력화되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 운동이 활성화되자 노동자 계급 운동을 내세운 PD그룹이 80년대 후반부터는 CA를 밀어내고 학생운동 좌파를 대표하게 된다.
노동 운동에 투신한 70년대 중후반 학번들이 PD의 조상 격이라고 여겨지는데, 노회찬이 소속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과 심상정과 김문수의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대표적이다.[5] 인민노련과 서노련 등의 노동 운동 선배 그룹의 영향을 받던 학생 운동가들 사이에는 NL에 맞서는 이념을 정립하기 위한 활발한 사상 논쟁이 계속됐다. NL은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라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발달하지 못한 봉건사회라 주장했는데, PD는 이를 비판하고 경제적 종속이 이루어진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신식민지)이며 남한은 봉건사회가 아닌 멀쩡한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 물론 그 형태는 국가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제어하는 국가 독점 자본주의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종속이론을 받아들이고 NL의 미국 제국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인정하면서[6] 중요한 것은 독점 재벌의 해체와 이를 통한 혁명이라고 보았다.
3. 분파
북한이라는 이상사회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통 큰 단결을 중시했던 NL과 달리,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 노선을 바탕으로 했던 PD는 원전 해석과 정세 분석에 따라 다양한 분파가 나타났고, PD 계열 내부의 논쟁(소위 '사상 투쟁')도 활발했다. 90년대 초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더욱 다양하게 분화하여 무수하게 많은 조직들로 나누어졌다. 학생 조직 위주로 분류하자면3.1. 제파PD 그룹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을 주장하던 그룹. 민민투 내 다수파인 제헌의회그룹에 대한 반발로 생긴 민민투 내 소수파로 출발했다. '선언' 조직이라 불리는 AP 그룹과 '반파PD'라 불리는 AF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노동운동 현장 중심성을 내세우며, 합법정당 노선을 반대하였다. 1990년대 초에는 PD 그룹의 주류였으나, 각 지역별로 현장 노동조직과 관계를 맺으며 소규모로 발전했기에 큰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세력이 약해지면서 다른 PD 계열 쪽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많았고, 남아 있는 세력들은 '노동자의 힘',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노동 현장을 기반으로 한 전위 정당 노선을 고수하며 노동운동 현장파를 구성했다.3.2. 제독PD(반독점PD, AMC) 그룹
'반제 반독점 민중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던 그룹. '현실과 과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던 소장파 마르크스주의 학자[7]들과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던 '노동계급(LC)'이라는 정파의 영향을 받던 학생운동 그룹으로, NDR내 비 NL파들이 형성한 정파이다. 이들은 세련된 이론으로 변혁 이론에 목 말랐던 좌파 학생 운동권을 사로잡게 되나, 노동 현장보다는 캠퍼스 내 서클 중심의 이론 투쟁이 위주가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1992년 '대장정학생연합'[8]을 형성하며 PD계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3.3. 진보학생연합(진학련) 그룹
인민노련을 비롯한 노동 운동 조직들을 기반으로 한 합법 진보정당 건설 노선[9]을 따르던 학생그룹은 92년 '진보학생연합'(진학련)을 설립하고 서울시립대, 이화여대를 비롯한 10여개 대학 총학생회를 수권한다. 이들은 1992년 총선에서 민중당, 대선에서 백기완 선본에 결합했고 1994년 비주사 NL그룹[10]과 통합해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을 결성한다.[11]3.4. 전국학생연대(사회당계) 그룹
1992년 대선에서 '사퇴 없는 민중 후보로 대선 투쟁을 정면 돌파'[12]를 주장하던 일부 학생 운동가들[13]은 '전국학생연대'(약칭 전학련, 학생연대)를 조직하여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일명 자인공)'를 주장하며 '코뮨주의'를 표방한 학생 운동을 주장하였다. 사회당으로 결집했기에 사회당계라고 불리기도 한다.이들은 NL그룹과 명확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은 다른 좌파 조직과 민주노총이 국민승리21를 창당 때도 NL 그룹이 참여한다며 반대[14]해 '청년진보당'을 결성하였고, 99년에는 한총련에 대항하는[15] 학생회 운동 연대체인 '전국학생회협의회'(전학협)을 결성하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들은 수도권에서 상당한 위세를 자랑했고, 기존의 AMC계열이 주도하던 전학투위[16]에서 떨어져나와 별도의 전학투위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2년 사회당 대선 참패 이후 사회당-전학협 내의 치열한 논쟁 이후 전학협은 스스로 해체하고, 잔류 그룹은 대학생사람연대- 청년좌파 등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기본소득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3.5. 그 외
- 단기PD 그룹 : 90년대 민중민주학생연대-이후 학생행동연대(SAS)로 이어지는 PD계열 소수 계파. 서울, 전북지역 일부에 영향을 미쳤다
- ND 그룹 : 제헌의회그룹(CA)- 사노맹의 뒤를 잇는 그룹들. 계통으로는 PD와 다른 흐름이나 90년대 이후 활동상 PD계열과 큰 차이가 없어져 좌파 학생운동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90년대 '전국학생정치연합'[17]으로 활동하였다.
- 국제사회주의(IS) 그룹 : 동구권 붕괴 과정에서 ND, PD 계열 출신들 일부가 토니 클리프의 사상을 받아들여 ' 국제사회주의자들'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4. 노동 운동, 진보정당 진출
PD 계열 학생 운동가들은 노동 현장으로 투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파PD계열은 지역 노동현장 중심으로 소그룹을 형성해 민주노총 현장파를 형성하여 급진적 노동운동을 추진하였다.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의회주의, 개량주의라 비판하며 노동자의 힘-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의 전위정당 운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진학련- 21C 계열과 일부 AMC 활동가들은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전념하면서 건설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창당에 앞장서는데, 민주노총 중앙파와 함께 의견 그룹을 형성해 평등파, 범좌파로 불리며 NL계열- 민주노총 국민파가 연합한 자주파와 대립하였다. 자주파의 민주노동당 완전 장악 이후에는 진보신당으로 분당해 나가고, 이후 통합진보당, 노동당으로 나누어졌다가 현재는 정의당의 주요 구성원이다.
전학련-전학협 계열은 기존의 PD와 NL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환경 운동, 장애인 운동, 아르바이트 노동자 운동 등에 집중하여 청년좌파와 알바노조를 주도했다. 청년진보당- 사회당- 기본소득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5. 사상
과거 NL과 PD, 그리고 PD끼리 치고받고 싸웠던 것은 대개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와 그 원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 NL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정부든 대기업이든 기본적으로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하수인에 불과하므로, 미국을 몰아내고 자주적 통일을 이뤄야만(NL) 근본적인 변혁(PDR)이 가능하다고 보았다.[18] 그렇다고 해서 PD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안 외쳤던 것은 아니다. 다만 21세기의 주한미군 주둔이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북한뿐 아니라 중국[19]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압박 카드로 사용된다는 점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PD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의 존재 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자체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원조[20] 없이도 독자적인 생존/재생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미 한국에서 국가와 자본의 지배가 어느 정도 견고하게 자리잡았으므로, 사회 내부의 계급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더 주요한 과제라고 본 것.[21]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듯 이들의 주장이 모든 면에서 서로 갈리기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의제에 있어 비슷한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NL이 노동 이슈에 대해 함구하는 것도 아니며, PD가 북한과 미국 헤게모니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22] 멀리 갈 것도 없이 경기동부연합이 NL진영에서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세력이다.
국제 정치에 대한 인식 면에서 PD는 NL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들도 있다. 그러니 PD계열이 북한을 비판 한다고는 해도, 국제 정세상에서 중대한 사건이 터졌을 때 취하는 입장은 제3자의 시각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6.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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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PD 계열의 숙원이었던 합법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한 이후 짧았던 영광은 잠시.. 이후 NL이 민주노동당을 장악하며 PD 출신들은 쫓겨나다시피 2008년 진보신당으로 분당하고, 여러가지 논란 끝에 2011년 말 통합진보당으로 재결합(잔류파는 사회당과 함께 노동당 형성) 이후 2012년 정의당으로 재분당 하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들을 보내며 PD계열 자체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많이 상실됐다.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정의당으로 집결한 대부분의 PD 출신의 성향은 '의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으로 우경화되었고[23] 일부 노동조합과 지식인층의 지지는 남았지만 민주노동당 전성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NL 계열이 정치계에서 아예 공중분해되는 바람에 다시한번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 정의당에게 기회가 왔다.
20대 총선에서 노회찬, 심상정, 여영국이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재기의 불꽃을 지폈고, 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에서는 심상정 의원만 고양시 갑에서 생환에 성공하나, 정당지지율 9.67%를 기록하며 NL계열의 민중당(1.05%)은 완전히 압도하게 된다.
2020년 9월 정의당 제6기 전국동시당직선거 당대표 선거에서 AMC그룹 출신 김종철 후보가 NL 계열 인천연합의 지지를 받는 배진교 후보를 결선투표에서 55.57%이라는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정의당, 노동당 외에도 더불어민주당에 박용진 등 소수의 PD출신 정치인들이 있다.
- 정의당 : PD 계열 출신들의 대표정당.
- 노동당 : 사실 PD계열의 상당수가 진보정의당이 탄생했을 때나 진보 대통합을 시도했을 때 정의당에 합류했지만, PD계열 중 제파 PD가 아닌데도 남아있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
- 기본소득당 : 전학련-전학협(사회당계) 출신들이 활동중.
- 전국학생행진 : AMC의 맥을 잇는 대장정학생연합-전국학생연대회의의 후신 학생운동그룹. 사회진보연대와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다.
- 민주노총 중앙파, 현장파
[1]
흔히 PD 진영의 양대산맥인
제독PD는
NLPDR 진영에서
제파PD는
CA 진영에서 기원하며, 이 둘은 모두 제1차
사회구성체 논쟁 당시 NDR 진영의 후예들로 이름과 달리 당시 PDR 진영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2]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후 두 그룹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주류 언론에 다루어 지던 시기
[3]
친이계 좌장이 된
이재오,
친박까지 가버린
김문수 등.
이해찬이 "
좌절하면 변절한다"라고 한 것처럼 이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붕괴라는 큰 사건으로 그들이 믿었던 확고한 믿음과 그들이 가졌던 세계관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4]
한편
NL 계열 중에서도 소련의 붕괴로 인해 보수로 전향한 케이스도 있는데, 이들이 바로
뉴라이트다.
[5]
PD와 이들이 선후배 사이이고 친연성이 있는 것은 맞지만 노회찬, 김문수, 심상정 등은 스스로를 PD로 칭하지 않았다. PD계열이 형성된 80년대 학번 세대보다 이른 70년대 학번 세대로 학생 운동보다 노동 운동을 중시한 이들로 학생 운동의 독자적 역할을 강조했던 PD 주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히려 이들이 가까워진 것은 2000년대 진보정당이 출현하며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당 운동을 하면서라고. 심지어는 노동 운동과 학생 운동 노선을 두고 선후배간의 치열한 공방이 있기도 했다고.
[6]
물론 맥락은 좀 다르다. NL(자주파)의 제국주의는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악에 가까운 반면, PD(평등파)가 규정하는 제국주의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최종 진화 형태에 가깝다.
[7]
이진경,
윤소영 교수 등이 주축
[8]
전국학생행진의 전신.
[9]
노회찬,
주대환 등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당시에는 급진성, 선명성을 중시하던 다른 PD 그룹들에게 합법주의, 개량주의라고 무지하게 까였다
[10]
CA의 후신으로 관악자주파 등으로 불리던 그룹
[11]
이후로는 레닌주의 노선에서 완전 이탈했기에 PD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NL주류와는 대립했기 때문에 범좌파로 분류되기도 하고, 아예 비운동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2]
오세철 교수가 중심이 된 '민중회의' 그룹의 주장
[13]
민민투-CA소수파로 이어지던 ND의 흐름,
제파PD그룹 중 AF 계열 잔류그룹, AMC 탈퇴파 등 다양한 정파가 합류했다.
[14]
이후 민주노동당과 합당 논의가 나올 때도 계속 조선로동당 반대를 표방할 것을 주장했다.
[15]
이들은 NL 내부를 개혁해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주류 PD의 입장에 반대하며 애초에 한총련에 참여하지 않았다.
[16]
전국학생투쟁위원회.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공동 투쟁과 전야제를 준비하던 PD계열 학생운동 연대체
[17]
사회당계 전국학생연대(전학련)과 구별을 위해 'ND전학련'으로 불림
[18]
이러한 관점의 배경에는 미국(
주한미군)의 지원 없이는 한국의 정부 체계나 경제 구조가 금방 붕괴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NLPDR 문서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참조. 그래서 지금도 NL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가 주한미군 철수인 것이다.
[19]
미국 국채의 반 정도를 사들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재정적자를 누적하고 있는 미국과 큰 연결을 갖는 반면에, 독자적인 군사력을 유지, 강화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20]
협력이 아니다. 퍼준다는 의미의 원조
[21]
피디론의 주요 골자가 되는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 자체가 남한은 이미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라는 의미였다. 이는
1988 서울 올림픽에 대한 문화적 충격도 한 몫 했다.
[22]
단 그렇다고 '민족' 통일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PD는 민족주의가 내포하는 보수성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23]
제파PD 진영에서는 주로 이점을 비판한다. 민노당 시절 PD들은 NL 계열이 민노당의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려 시도할 때 반대했었는데, 정작 진보신당부터는 강령에는 사회주의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이후
참여계의
사회자유주의 세력이 합류하며 더욱 비판받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