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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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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anorama_of_Tabriz.jpg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타브리즈 역사 지구
영어 Tabriz Historic Bazaar Complex
아랍어 مجموعة البازار التاريخي في تبريز
프랑스어 Ensemble du bazar historique de Tabriz
국가·위치 이란 동아제르바이잔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0년
등재기준 (ii)[1], (iii)[2], (iv)[3]
지정번호 1346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도시
‎تبریز‎

타브리즈 | Tabriz
지역 동아제르바이잔
면적 325km²
인구 1,560,000 명
도시권 인구 1,800,000 명
인구밀도 4,800명/km²
고도 1,351m

1. 개요2. 역사
2.1. 상고대2.2. 고대2.3. 중세2.4. 13세기2.5. 일 칸국의 수도2.6. 14세기2.7. 15세기2.8. 사파비 왕조의 수도2.9. 대 오스만 투쟁2.10. 18세기의 수난2.11. 카자르 왕조2.12. 러시아의 간섭
3. 관광

[clearfix]

1. 개요

# #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

페르시아어· 아제르바이잔어 تبریز‎
영어 Tabriz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주의 도시. 인구는 174만명으로, 이란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13세기 말에 일 칸국의 수도로, 16세기 초에 사파비 왕조의 첫 수도로 번영하였고 특산물로 카펫과 금속세공품, 특히 사모바르가 유명하다.

아제르바이잔주라는 이름답게 주민 대부분이 튀르크계의 아제리인이다. 튀르키예 도시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튀르크계가 많다.[4] 애초 이곳을 수도로 했던 일 칸국부터 튀르크계 국가다. 정확히는 훌라구 칸의 자손들이 튀르크화된 튀르크화한 몽골 제국으로 칭기즈 칸 혈통을 물려받은 엄연한 튀르크 이슬람 국가였는지라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또한 통념상 서남아시아인 이란이 대한민국보다 위도가 한참 아래라고 생각하지만 타브리즈는 서울과 위도가 비슷하다.[5]

도심의 그랜드 바자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우르미아 호의 동안의 해발 1500m의 고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2. 역사

파일:Blue_Mosque.jpg
흑양 왕조 시대에 지어진 블루 모스크 (카부드 마스지드)

2.1. 상고대

타브리즈는 기원전 714년, 아시리아 제국의 왕 사르곤 2세의 비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에 세워진 헬레니즘 왕국인 아트로파테네 왕국 (BC 323년 ~ AD 3세기) 의 수도가 되어 번영한다.

여담으로 타브리즈 근처에 구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 위치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꽤 있다고한다.

2.2. 고대

그러나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3세,로마의 안토니우스의 원정과 이후 이어진 로마 제국 파르티아 간의 전쟁의 혼란 속에 도시는 파괴된 채로 방치되었다.

다만 사산 제국 시기에 도시는 재건되어 중세 페르시아 어로 타우레스라 불리었다.

2.3. 중세

파일:Tabriz-16.png
중세 타브리즈의 지도

이슬람 정복 이후에 타브리즈에는 남부 아라비아 ( 예메니) 출신의 아즈드 부족이 정착하였다. 한 세기 후, 지진으로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러자 791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의 왕비 주브이다흐가 손수 거금을 투입하여 도시를 아릅답게 재건, 현재까지도 타브리즈의 건설자로 불린다. 10세기 타브리즈는 쿠르드계 국가인 라와드 왕조의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1042-43년 재차 지진을 겪어 4만의 사상자가 나는 피해를 입었으나 라와드 조의 명군 바수다의 노력으로 금새 복구되었다. 하지만 타브리즈의 번영을 일군 라와드 조는 1070년 셀주크 제국에 병합되었다.

2.4. 13세기

1208년의 라마단, 조지아 왕국의 타마르 대왕이 도시를 점령하였고 부활절에 무슬림들이 아니에서 학살한 기독교도 1만여명에 대한 복수로 타즈리즈 근교의 아르데빌에서 무슬림 1만여명이 학살되었다.

1221년, 타브리즈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몽골 제국군에게 별 저항없이 항복하였다. 그리고 덜 파괴된 도시의 이점으로 1265년, 일 칸국 아바카 칸이 수도로 정하며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2.5. 일 칸국의 수도

이 시기에 타브리즈에는 여러 도서관과 교육 기관, 카라반 숙소들이 세워졌다. 특히 아바카 칸의 치세에 현재 남아있는 중세 건축물의 대부분이 지어졌다.

1275년에 이곳을 지난 마르코 폴로는 타브리즈를 아름다운 정원들로 둘러싸인, 위대한 도시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묘사하였다. 또한 금과 비단을 특산물로 생산했고, 서양 상인들이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2.6. 14세기

일 칸국의 수도는 1306년에 신도시 술타니야로 이전되었지만 타브리즈는 여전히 그 상징성이 있었다. 따라서 1335년에 일 칸국이 분열되자 여러 제후국들이 정통성을 얻기 위한 경주를 시작하였다.

14세기 중반, 타브리즈의 주인은 추판 왕조, 잘라이르 왕조, 무자파르 왕조, 흑양 왕조 순으로 바뀌었고 결국 최종보스 티무르 제국 령이 되었다. (1392년)

2.7. 15세기

그후 타브리즈는 1468년 까지는 흑양 왕조, 1469년 ~ 1501년 까지는 백양 왕조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2.8. 사파비 왕조의 수도

파일:사파비 제국 국기.svg
사파비 제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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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501년, 사파비 조의 이스마일 1세가 타브리즈에 입성하고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1514년, 찰디란 전투에서 셀림 1세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이 사파비 군대를 대파하고 일시적으로 도시를 점령하였다.

비록 회복되어 계속 수도 기능을 유지하였지만 1534년에 재차 오스만군에게 재점령 당하고 1548년에도 포위를 당하는 등 위협을 느낀 타흐마습 1세는 1555년에 아마시아 평화 조약으로 메소포타미아를 내주는 대신 타브리즈 일대를 유지하였음에도 후방의 카즈빈으로 천도하였다.

2.9. 대 오스만 투쟁

1585년, 오스만 제국이 타브리즈를 점령하였고 1603년이 되어서야 아바스 1세가 탈환하였다. 그러나 1635년에 무라드 4세가 이끈 오스만 군대가 재점령 하였고, 1639년의 조하브 조약 이후에 다시 이란 령이 되었다.

2.10. 18세기의 수난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 1673년의 도시

1721년, 대지진이 도시를 덮쳐 8만 여명의 시민이 사망하였고 1724년, 호타키 왕조와의 전쟁에서 오스만 군대가 타브리즈를 함락하고 이듬해까지 영위하며 그동안 20만 여명이 학살되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후 나디르 샤의 통치 동안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구가 더 감소하였다.

그후 잔드 왕조 시절인 1780년, 대지진이 발생, 20만명이 사망하면서 도시 인구는 3만명으로 줄며 많은 건물들이 버려졌고, 유령도시가 되었다.

2.11. 카자르 왕조

18세기의 혼란을 거치며 도시는 여러 가문의 통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가 1799년에 카자르 왕조의 왕자 아바스 미르자가 총독으로 부임하며 안정을 회복하였다.

그 후로도 카자르 왕자들이 총독을 맡으며 웨일즈? 타브리즈는 다시금 그 중요성을 회복해 나갔다.

2.12. 러시아의 간섭

굴리스탄 조약 (1813년)으로 러시아 제국에게 캅카스를 빼앗긴 카자르 왕조는 1827년, 러시아 제국군의 타브리즈 입성을 막지 못하였다. 러시아군은 이듬해의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물러났지만 그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그 후 총독 미르자는 타브리즈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 현재의 시가지를 확정하였다. 20세기 들어 이란 북부를 점령한 소련은 타브리즈를 수도로 한 괴뢰국 아제르바이잔 인민 정부를 세우는데 1947년 이란에게 재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3. 관광

주변국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튀르키예로 넘어가는 국제버스가 운행된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4] 튀르키예어 아제르바이잔어를 할 줄 알면 현지인들이 반가워하며 매우 친절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이곳 어르신들 중에는 페르시아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5] 엄밀히 말하면 북위 38도 4분으로 철원군과 동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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