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라틴어: Quintus Mucius Scaevo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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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209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아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아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손자)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손자)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손자) |
직업 | 로마 공화국 법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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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법무관.2. 생애
플레브스 출신인 무키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 354년 크로노그래프>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220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사료들에는 그 해의 집정관은 가이우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와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가 이 해 집정관을 역임했는지는 불확실하다.기원전 215년 법무관에 선임되어 사르데냐에 부임했으나 섬에 도착한 직후 병에 걸려서 몸져 누워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함프시코라가 카르타고에 호응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사르데냐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에 원로원은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에게 병력을 맡겨 그를 대신하여 반란군을 토벌하게 했고, 토르콰투스는 데키모마누 전투에서 카르타고-샤르데냐 민병대 연합군을 격파하고 반란을 평정했다. 그 후 회복된 그는 기원전 212년까지 샤르데냐를 통치했다.
말년에 시빌라 예언서를 관리하는 '데켐브리 사크리스 파시운디스(decemviri sacris faciundis: 10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를 맡았다가 기원전 209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아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는 기원전 175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또다른 아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는 기원전 174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기원전 175년 집정관 푸블리우스의 장남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는 기원전 133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기원전 130년부터 115년 이전까지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역임했으며, 차남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는 기원전 174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장남 푸블리우스의 첫째 아들인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는 기원전 133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둘째 아들인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는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문에 입양된 뒤 기원전 132년부터 130년까지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맡았고 기원전 131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또한 차남 퀸투스의 아들인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는 기원전 117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