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라틴어: Lucius Valerius Flacc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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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발레리우스(조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아버지)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아들) |
참전 | 제1차 포에니 전쟁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61년 |
전임 |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퀸투스 마밀리우스 비툴루스 |
동기 | 티투스 오타킬리우스 크라수스 |
후임 |
스키피오 아시나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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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집안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그의 조부와 아버지 모두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발레리우스 씨족으로서 플라쿠스(Flaccus)라는 코그노멘을 사용한 첫번째 인물이다.기원전 261년 티투스 오타킬리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집정관이 되기 이전의 생애는 알려진 바 없다. 그는 크라수스와 함께 시칠리아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대부분을 복속시켰지만, 카르타고 해군의 지원을 받는 해안 도시들을 복속시키는 데엔 실패했다. 이후 남은 임기 동안 크라수스와 함께 카르타고 해군을 제압하기 위한 로마 최초의 대규모 함대 건설에 힘을 쏟아 5단층 갤리선 100척과 3단층 갤리선 200척이 건설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아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는 기원전 227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발레리우스 씨족의 플라쿠스 지파는 6세대에 걸쳐 집정관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