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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롯데 자이언츠, kt wiz, 두산 베어스 소속 우완 투수 최대성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2. 롯데 자이언츠
2.1. 2004~2011 시즌
롯데 자이언츠 시절.
부산고 야구부 시절 포수 출신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막은 좀 복잡하다. 원래 부산중 시절 에이스 투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부산고에 입학하자 동기 중 대동중 출신의 장원준이 두각을 나타내 에이스가 되었다. 게다가 나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부산고 감독 조성옥에게 찍혔다고 한다. 정확한 내막은 알길이 없으나 부산고에 입학한 후 포수로 포변하여 고2 때까지 포수로 뛰었다. 그러다가 고3 때 다시 투수로 포변했다. 3학년 때 54 1/3이닝을 던져 1년 후배 이왕기(59 1/3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1]
비공인 최고 구속 160Km/h, 국내 선수 공식 최고구속 역대 1위인 158.7km/h를 찍었을 정도로 빠른 구속[2]을 지녔으나 컨트롤이 미칠듯이 안 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또한 구속에 비해서 공이 좀 가볍다는 평가도 받고 있어서, 이를 일컫어 '최대성의 홈송구'라고 놀리기도 한다. 당시 한화 감독이던 김인식은 이 약점을 역이용해 '최대성은 안 휘두르고 가만히 있으면 볼넷이다' 라며 까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증명해버렸다.[3]
최대성의 공략법.jpg[4]
2005년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신인이었다. 그런데 이 시즌이 종료될 무렵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감독은 35홈런 102타점을 찍은 A급 타자 용병 래리 서튼의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 트레이드 카드로 쓸 생각이었는데,[5] 이때 맞상대로 부상한 선수가 최대성이었다. 당시 롯데는 투수 쪽은 그리 안 급해 보이지만 타격이 아쉽다는 여론이 팽배했던 상황이기에[6] 최대성을 트레이드 카드로 써서 검증된 외국인 타자를 데려와 타선을 보강하자는 의견이 팽배했고, 이 트레이드는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실제로 현대 김재박 감독도 최대성을 좋게 평가하며 트레이드를 적극 요청했고, 마찬가지로 롯데 양상문 감독 역시 타선 보강 생각이 있었다 보니 이 트레이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최대성이 그해 말 야구월드컵에 출전, 강속구를 뿌려대며 큰 가능성을 보이는 통에 롯데 쪽에서 돌연 마음을 바꿔서 이 트레이드는 없던 일이 되었다.[7]
허나 2006년에도 별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신통찮은 성적으로 까이면서 롯데 방화 3인조의 이름을 이어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의 일원이 되어 폭풍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2007년, 1군에 제대로 자리잡아 강속구를 뿌려대면서 반짝 활약을 펼치며 '최대성능을 이끌어냈다', 드디어 포텐이 터졌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반짝'이었다는 게 좀 문제.
2007년 잠깐 잘 나가던 시절 한화와의 대결에서 구대성[8]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유연성이 부족하니 러닝과 스트레칭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 구속에 눈이 멀어 자기 관리를 게을리했고, 그 체질에 전혀 맞지 않는 딱딱 끊어 던지는 투구폼도 치명타였다.
백인천이 노승욱을 부숴버리고[9] 양상문[10]이 임경완의 허리를 부러뜨리고[11] 미국에서 돌아온 송승준은 동계 훈련도 제대로 치르지 못해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전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투수진에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것도 문제.
그래도 이 시기에는 사직 아재들에게 몹시 인기가 많아서 아재들의 아이돌로 불렸다. 최대성이 사직에서 미니쿠페 타고 등장하면 아재들의 웅장한 함성소리가 사직의 하늘을 메운다 카더라. 한동안 부진할 때에도 욕을 하며 격하게 응원하는 아재들이 많아서 최대성 얼빠의 8할은 아재 팬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부산고등학교 출신 성골이라는 점과 롯데에 몇 없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이기 때문에 아재들의 편애가 심한 듯하다. 군에 가기 전 등번호는 11번을 달고 있었는데[12] 이 때문에 11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던 최동원 감독이 당시 11번의 주인인 최대성이 잘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현 등번호인 30번은 삼진을 많이 잡겠다는 의미라고.
2009년 11월 2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고, 2011년 시즌이 끝날 무렵 제대하였다.
2.2. 2012 시즌
2011년 말 전역하여 2012년 스프링캠프에 참가, 중도귀국하면서 우려를 자아냈으나 2군 연습경기를 거쳐 시범경기 막판부터 다시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최고구속 157km/h를 기록하며 재활이 성공적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과거를 알고 있는 팬들은 여전히 의문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4월 7일 개막전에서 경기 내내 불안하던 송승준이 팀이 1:3으로 앞선 6회 초에 1사 2, 3루를 만들고 내려갔고, 이양기를 잡고 내려간 강영식의 뒤를 이어 2사 2, 3루 상황에서 등판한 투수가 바로 최대성. 당연히 팬들은 "이 상황에서 최대성이라니?! 양감독 이게 무슨 소리요?"라며 절망했지...만, 연경흠을 상대로 초구부터 끝까지 제구가 잡힌 150km/h대 강속구[14]를 펑펑 뿌려대며 힘싸움에서 승리, 연경흠을 2루수 땅볼로 잡아내고 팀을 구원해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롯빠들은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최대성이 맞는거냐?' '제구가 되는 최대성이라니!'라며 우리도 오승환을 갖게 되었다며 불타올랐다.[15]
다음 이닝인 7회초에는 2사 후 안타를 2개나 맞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명우가 구원 등판한 후 강동우를 막아내고 이닝을 끝내면서 최대성은 이날 1이닝 25투구수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1,000일이 넘는 1군 등판에서 당당히 시즌 첫 홀드를 얻게되었다. 변화구 제구는 여전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남은 경기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4월 8일 팀이 스코어 5:9로 앞서던 6회초 1사 상황에서 이명우 다음 투수로 올라왔다. 1이닝 동안 1피안타만을 맞으며 전날에 이어 무실점행진을 계속하였다. 이 안타도 먹힌 공이었는데 하필 중견수앞에 떨어지며 안타가 되었다. 설렁설렁 던져도 150이 넘게 찍혀서 롯데팬들은 환호를 질렀다. 마지막 타자를 변화구로 잡아내었다. 점수차 때문에 홀드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4월 24일 경기 때는 롯데가 승기를 잡은 9회말에 등판. 3타자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4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3:3 동점이던 8회초 1사에서 등판, 정성훈, 이병규를 공 하나씩 던져서 각각 우익수 플라이,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팀이 8회말에 2점을 뽑으며 3:5로 승리하여 최대성은 2007년 5월 15일 마산 두산전 이후 1,810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4일 문학에서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3:3인 8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셰인 유먼의 다음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정과 이호준을 제구 되는 강속구로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추게 하며 모두 삼진으로 잡았는데, 그 다음 타자인 박재홍에게 노림수가 드러나 결승 투런포를 맞고 스코어를 3:5로 만들고 이재곤으로 교체되었다. 최대성은 이날 ⅔이닝 9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3:5로 패했다.
6월이 오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 롯데 불펜의 한 축을 완전히 꿰차게 되었다.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300여일만에 세이브를 따냈다. 오지환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박용택에게 안타를 맞긴 했으나 큰 이병규에게서 병살타를 유도해내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 날은 1이닝 3타자 8투구수 3타수 1피안타 무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 팀은 6:5로 승리했다.
9월 4일 기아전에 8회초 무사 1루 상황에 등판하여 나지완에게 몸에 맞는 볼을 하나 내주긴 했지만[16] 후속타자를 병살타와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며 홀드 추가.
9월 7일 한화전 7회초 1사 위기상황에 올라와 타자가 댄 기습번트를 향해 몸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주었다.(황재균의 호수비로 아웃) 그리고 장성호를 6구째 스탠딩삼진으로 잡아내고 포효하였다.
여기서 바깥쪽 꽉 차는 마지막 공은 전광판에 159km/h가 찍히며 최대성의 공식 최고 구속 기록을 경신했다.[17][18] 또한 1⅔이닝 2K 무실점으로 16홀드째 수확. 시즌 평균자책점도 3.26으로 소폭 내렸다.
8월이 지난 시점에서 최대성의 5월은 성장통이었다는 평이 지배적. 8월 한 달 간 정말 미친듯이 굴렀고(무릎 부상을 달고서)위기상황에서 주자를 잡아내는 것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던 4월만 해도 주자가 나가면 불안했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이 되었으며,결정적으로 변화구 제구가 제법 된다. 상기한 일시적인 마무리 보직도 훌륭히 소화해낸 것까지 한 시즌 동안 실력이나 멘탈이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긴 공백을 거쳐 복귀한 첫 해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최대성이기에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선수 중 하나.
9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이기던 9회말에 양승호 감독의 지시로 등판하였으나 긴장했던 탓인지 이승엽에게 볼넷만 주고 바로 김사율로 강판되었다. 팀은 1:2로 역전패. 이 날 최대성의 기록은 0이닝 5투구수 1볼넷 1실점 1자책점.
10월 2일 군산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선발 고원준이 4이닝만 던지고 5회에 최대성이 올라와 1⅔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고원준이 승리투수 요건인 5이닝은 채우지 못한 채 이기는 상황에서 최대성이 올라왔기에 의문의 승리투수를 따냈다. 시즌 8승 째.
10월 5일 SK와의 경기에 1이닝 1실점(비자책)을 끝으로 최대성의 패넌트 레이스는 마무리되었다. 시즌 최종 71경기 출장하여 67⅔이닝동안 8승 8패 1세이브 17홀드 ERA 3.59라는 빼어난 기록을 올렸다.
최대성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승패, 홀드, 세이브 없이 3경기 2⅓이닝 3피안타 3볼넷 1피홈런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1.57을 기록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10월 1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 스코어 5:4로 팀이 앞선 10회말에 뜬금없이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였는데 선두 타자 박정권에게 안타, 김강민에게 희생번트, 조인성에게 안타를 맞고 1사 1, 3루의 위기를 자초하여 불대성 모드로 돌입하는 듯했으나, 최윤석을 희생삼진[19], 임훈을 초구에 좌익수 플라이로 잡고 이닝을 끝내며 포스트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날 최대성의 기록은 1이닝 18투구수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세이브.
최대성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2⅓이닝 4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최대성은 2012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4⅔이닝 7피안타 4볼넷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5.79, 1세이브를 기록했다.
2.2.1. 문제점
타고난 강견에서 뿜어져 나오는 높은 구속의 직구가 최대 강점이다. 더군다나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2007년에 비해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다 도루 가능성이 있는 주자가 없을 때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2012 시즌 초 최대성의 투구폼은 전문 선수나 분석원이 아니더라도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주자가 없을 때나 만루 상황이나 3루에만 주자가 있을 때처럼 주자가 도루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경우에는 와인드업 자세에서 왼발을 들고 힘을 모으는 동작이 긴 편이다. 그러나 도루할 가능성이 높은 주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 동작을 대폭 생략하며 빨리 던지려고 하며, 제구력이 시망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떨어져 버린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피안타율과 볼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
롯데 스텝들도 이를 잘 아는지, 주자가 있을 경우에는 올리지 않으며 안타를 맞는 등 타자가 출루할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교체를 해주었다. 여유 불펜이 널널할 때라면 모르겠지만, 기나긴 정규리그동안 늘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는데다 항상 불안했던 것이 롯데의 불펜[20]인 탓에 한시라도 빨리 교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5월 들어선 결정적인 순간때마다 직구를 통타당하며 홈런을 양산했다. 결국 롯데의 5월 침체에도 한몫했지만 과부하에 시달리는 롯데 불펜 사정상 딱히 대안도 없기에 계속해서 신뢰를 받으며 등판하게 되었다. 사실상 셋업맨의 위치를 수행중이기에 성적의 안정화가 필수적이었는데, 등판하면서 주자 관리 능력은 차차 개선되어 5월 이후에는 상기한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3. 2013 시즌
2012년의 좋은 활약으로 2013 시즌에도 필승조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녀서인지 시즌 초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팬들은 하루빨리 수술받기를 바랐지만, 본인은 어차피 투수라면 달고 다니는 고질병이라 괜찮다고 하였다.6월 15일 경기 도중 3볼을 던지고 통증으로 인해서인지 자진강판되었다.
그리고 6월 18일 결국 우측 팔꿈치 수술 결정을 했다고한다. 수술 날짜는 6월 25일.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수술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4. 2014 시즌
김시진 감독이 김성배와 함께 더블 스토퍼 체제를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좌타에 부담감이 있다는 김성배를 대신해 좌타를 막는 클로저가 될 듯 하다.2월 16일 자체 청백전에서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최고 구속 151km/h를 기록하며 수술 성공을 알렸다.
7월 5일 SK와의 경기에서 7:5로 뒤진 9회초에 등판하여 혼자서 무사 만루를 만들어냈지만, 나머지 세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끝내고 팀이 9회말에 역전승을 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해당 시즌 성적은 41경기 출장 45.1이닝 동안 2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2.58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밥값을 해낸 시즌임에도[21] 잘 언급이 되지 않는다.
3. kt wiz
kt wiz 시절
3.1. 2015 시즌
5월 2일 kt wiz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이후 6월 17일 조범현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복귀가 목표라고. 하지만 13년도에 같은 부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주위에서 우려를 하고 있다.3.2. 2016 시즌
시범경기 개막전에 등판해 홍성흔에게 홈런을 맞고 0.1이닝 2실점 ERA 54.00으로 화끈하게 시즌을 시작했다. 결국 시즌 내내 1군에 오르지 못했다.시즌이 끝나고 12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롯데 시절 유니폼을 입은 뒷모습을 올리며 kt 팬들의 공분을 샀다. 롯데에서 다시 부른다면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에 "한번 버린 팀은 안갑니다"고 말했던 것과 대조되는 상황.
3.3. 2017 시즌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4. 두산 베어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됐다. 결국 kt에선 자신의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 채 이별하게 됐다. 두산 팬들은 대체 2군 20점대 투수를 공짜로 데려올 수 있었는데 왜 굳이 2차 드래프트로 3억을 주고 데려왔느냐고 성토 중. 그리고 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소프트뱅크전 5회말 최대성이 피안타 2개에 폭투로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아직 사사구는 고작 연습기간 내내 하나뿐이라고 한다. 10년만에 만개한 김강률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데 효과가 있을지는...
베어스포티비에 민병헌이 떠나고 새로 입단한 선수들이 들어오는 영상이 있는데 두산팬들은 극히 우려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4.1. 2018 시즌
3월 17일 LG와의 시범경기에서 10구를 던질 동안 볼넷 하나를 주고 곧장 이영하와 교체되었다. 이영하가 남은 2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져 자책점은 0.3월 31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한 이닝 만루홈런 2개를 허용하였다. 순간적으로 평균자책점이 121.5까지(!)[22] 치솟았다. 로하스 홈런 이해창 홈런
이해창에게 만리런을 맞은 후 평균자책점 |
오태곤을 땅볼 아웃 시킨 후 평균자책점 |
더 놀라운 점은 7번타자 박경수에게 던진 3구부터 1번타자 오태곤에게 던진 4구까지 전부 직구였다는 것이다.
결국 두산은 20-8로 대패했으며 다음날 4월 1일 경기에서도 이 충격이 가시지 않아 패배를 기록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날인 4월 1일에 말소되었으며 빈 자리에는 포수 박유연이 등록되었다.[23] 이 경기에 대해 김태형 감독도 "어제 최대성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본인이 잡아야 한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리고 5월 15일 kt wiz에서 한만두 기념 티셔츠가 나오며 두산팬들에게 다시 한 번 욕을 먹었으며, 5월 26일 시점에선 2군에서도 단단히 찍혔는지 한만두 경기 이후로 퓨처스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팬들은 그 분과 같이 팀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선수 1순위로 최대성을 꼽는 중.
이 경기에서의 기록은 이 쪽에도 서술되어 있다.
9월 11일에 거의 반년만에 1군으로 복귀했는데,[25]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8회에 올라와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14일 NC에게 13대 6으로 지고 있는 와중에 등판하여 8회를 삼자범퇴로 막아내고, 9회도 김형준에게 안타 하나 맞은 것 빼곤 무난하게 막아냈다. 9월 22일 NC에게 7대 1로 지고 있을 때도 등판하여 4~5회를 1실점만 허용하고 막아내며 이후 대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행히 4월에 비해선 그래도 좀 나아진 듯한 모습이긴 한데, 받은 돈을 생각해보면 제대로 밥값을 하려면 아직은 많이 먼 상황.
확대엔트리 시행 이후 최대성의 투구를 보는 두산팬들은 평균자책점이 던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대폭 삭감되는 상황을 보고 있다. 9월 22일 기준 15.00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9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제리 샌즈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이영하의 10승을 무산시킨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26]
9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2이닝 22구 1피안타 2볼넷 2삼진을 기록하며 기대치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올라온 유재유가 볼질을 하며 경기 자체는 지긴 했지만, 병살을 잡아낼 때 환호하던 모습에서 간절함이 느껴졌고, 이번 경기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어 잘 했으면 좋겠다는 두산 팬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시즌 중 보여준 궤멸적인 투구내용 및 한국시리즈 대비 교육리그에서의 성과로 인하여 결국 장민익[27]과 함께 2018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배영수가 최대성과 김도현 보상금의 차이인 1억을 받고 두산으로 이적한 후 양의지가 최대성과 김도현 보상금의 합인 5억 차이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자 다시 까이고 있다.
2018년 최종 성적은 ERA 11.70, FIP 7.83, WAR -0.44로, 본인 야구인생에서 WAR를 기준으로 한 팀 공헌도로 볼 때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탈삼진수(10개)보다 ERA가 더 높게 나온 건 덤.
4.2. 2019 시즌
2019년 오키나와,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였고, 두산팬들은 최대성을 데려갈 바에는 차라리 다른 선수를 데려가라며 까고 있다.그리고 최대성의 2018 시즌 실패 이후 두산은 보상선수로 이형범, 보류선수 제외 픽으로 박정준, 배영수, 권혁[28], 진재혁, 육성선수로 윤산흠을 영입하는 등 투수 보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윤명준과 강동연의 전역 이후에도 아직 불펜은 불안하며, 정병곤과 최지원을 제외하고 영입한 선수가 모두 투수이고 게다가 이들 중 둘은 좌완일 만큼 두산의 투수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반증.
시범경기에서는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김태형 감독의 최대성 띄워주기 발언은 선수 기 살려주기용도 있는 만큼 공과는 정규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3월 24일 선발 이용찬 - 이형범을 이어서 등판했으나 결과는 연속 볼 + 수비실책과 겹쳐 무사 만루 핵폭발. 이에 두산 팬들은 더 이상 최대성이 연봉을 받는 꼴을 볼 수가 없으니 최대성을 즉각 방출하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으며, 후속 등판한 이현호의 제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한 게임 만에 2019년 3월 25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그 이후로는 줄곧 2군에서 뛰다가 방출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거론되었고 예상대로 시즌 종료 후 11월 22일 방출자 명단에 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팀 | 출장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ERA+ | FIP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sWAR |
2004 | 롯데 | 6 | 6⅓ | 0 | 0 | 0 | 0 | 2.84 | 150.3 | 5.79 | 8 | 1 | 3 | 2 | 1.74 | 0.11 |
2005 | 11 | 14⅔ | 0 | 1 | 0 | 0 | 9.20 | 44.7 | 5.54 | 25 | 2 | 9 | 8 | 2.05 | -0.21 | |
2006 | 23 | 30 | 1 | 3 | 1 | 0 | 6.60 | 53.1 | 3.77 | 43 | 2 | 20 | 27 | 2.00 | 0.03 | |
2007 | 41 | 57⅓ | 3 | 2 | 0 | 7 | 2.67 | 143.4 | 2.50 | 39 | 0 | 31 | 53 | 1.13 | 1.88 | |
2008 | 2 | 1 | 0 | 0 | 0 | 0 | 9.00 | 44.8 | 12.15 | 1 | 0 | 3 | 0 | 3.00 | -0.04 | |
2009 | 1군 기록 없음 | |||||||||||||||
2010 | 군 복무( 공익근무요원) | |||||||||||||||
2011 | ||||||||||||||||
2012 |
71 (3위) |
67⅔ | 8 | 8 | 1 | 17 | 3.59 | 106.7 | 3.78 | 65 | 5 | 29 | 50 | 1.32 | 1.23 | |
2013 | 13 | 9⅓ | 0 | 0 | 0 | 1 | 5.79 | 75.5 | 4.74 | 13 | 1 | 6 | 9 | 2.04 | 0.03 | |
2014 | 41 | 45⅓ | 2 | 2 | 0 | 1 | 2.58 | 211.2 | 4.10 | 41 | 1 | 28 | 43 | 1.46 | 1.32 | |
2015 | 3 | 1⅓ | 0 | 0 | 0 | 0 | 6.75 | 74.7 | 10.37 | 0 | 0 | 3 | 0 | 2.25 | 0.01 | |
<rowcolor=#fff> 연도 | 팀 | 출장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ERA+ | FIP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sWAR |
2015 | kt | 5 | 1⅓ | 0 | 0 | 0 | 0 | 20.25 | 24.8 | 22.37 | 4 | 1 | 4 | 0 | 6.00 | -0.11 |
<rowcolor=#373a3c> 2015 합계 | 8 | 2⅔ | 0 | 0 | 0 | 0 | 13.50 | 37.3 | 16.37 | 4 | 1 | 7 | 0 | 4.13 | -0.10 | |
2016 | kt | 1군 기록 없음 | ||||||||||||||
2017 | ||||||||||||||||
<rowcolor=#fff> 연도 | 팀 | 출장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ERA+ | FIP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sWAR |
2018 | 두산 | 8 | 10 | 0 | 0 | 0 | 0 | 11.70 | 43.2 | 7.83 | 15 | 3 | 8 | 10 | 2.30 | -0.44 |
2019 | 1 | 0 | 0 | 0 | 0 | 0 | ∞ | - | - | 0 | 0 | 2 | 0 | - | 0.00 | |
<rowcolor=#373a3c>
KBO 통산 (11시즌) |
225 | 244⅓ | 14 | 16 | 2 | 26 | 4.49 | 97.5 | 4.10 | 254 | 16 | 146 | 202 | 1.55 | 3.82 |
[1]
반면
장원준은 3학년 때 단 10이닝을 던져 1학년(43 1/3이닝), 2학년(25 2/3이닝) 때보다도 훨씬 적었다.
[2]
리즈가 2011년 160km/h를 찍기 전까지 공식경기 최고 구속 기록을 갖고 있었다.
[3]
이에 대해 김인식 감독은 그 발언에 오해가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 롯데전에서 경기 전 최대성을 따로 불러 오해를 풀고 좋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4]
저 당시에는 카운트를 셀 때 볼-스트라이크 순이 아닌 스트라이크-볼 순서로 표시했다.
[5]
당시 현대 스카우트 팀은 외국인 선수를 보는 안목이 대단히 탁월했을 정도로 평가가 좋았다. 그리고 서튼을 포기한다고 쳐도 일본 오릭스로 이적했던
클리프 브룸바의 보류권이 여전히 유효했던 상황이라 든든한 보험이 있었다.
[6]
당시만 해도
이대호는 1군에서 꽤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미완의 거포 유망주로 불리는 등 포텐이 제대로 터지기 직전이었고,
펠릭스 호세는 지난 2002년 이중계약 파동으로 인해 받은 영구제명 징계가 풀리기 전이었다.
[7]
참고로 서튼은 이듬해인 2006년 부상과 노쇠화 기미를 보이며 전년도보다 떨어진 성적을 기록한 뒤 현대와 재계약하지 않았고, 2007년에는 KIA로 이적했지만 시즌 초 웨이버 공시되어 한국을 떠난다. 야만없이겠지만 만약 이 트레이드가 성사됐다면 롯데가 역대급 빅엿을 먹을 뻔 했다. 이후 서튼이 16년 뒤 롯데의 감독이 된 걸 생각하면 뭔가 아이러니하다.
[8]
그래서 못 할 때는 대성필패라고 불린다.
[9]
어떻게 보면
백인천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다. 투수진 연쇄 붕괴의 시발점이 되었으니...
[10]
불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이상목을 영입하고
손민한을 마무리로 돌렸지만 실패했다.
[11]
양상문 감독 시절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84구를 던진 적도 있다.
[12]
이후 이정민이 잠시 채갔다가
제 주인을 찾아갔다.
[13]
이 짤은 2013시즌 시범경기에 나온건데, 71경기 8승 8패 1
S 17
H라고 작성한 성적의 텍스트가 너무 많아 경기수의 텍스트를 덮어버린 것이다.
[14]
최고 155km/h가 찍혔다.
[15]
이 경기의 중계를 맡은 KBS의 유지철 아나운서는 상당히 흥분한 톤으로 최대성이 공을 뿌릴 때마다 칭찬했다
[16]
나지완은 발끈하며 식빵을 구웠지만 최대성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벤치클리어링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지완은 9월 2일 한화전에서도 2연속으로 공을 맞은 바 있다.
[17]
KBO 공식 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 기준으로는 158.7km/h가 나왔는데 이는 2011년 이후 국내 역대 선수 최고 구속 TOP 10에 당당히 1위에 랭크된 기록이며, 외인 용병 포함하더라도 무려 6위의 기록이다. 앞에 다섯 외인은 각각
리즈,
카스티요,
페르난도,
소사,
알칸타라.
[18]
이 기록은 아쉽게도 2023년 4월 12일 한화 대 KIA전에서
문동주에 의해 깨졌다.
[19]
최윤석이 삼진을 당함과 동시에 1루 대주자
김성현이 도루를 성공했다.
[20]
2012년 4월 한정으로 그 문제의 불펜이 믿을 수 없는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이 페이스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21]
2014년은 KBO 역사에 남을 타고투저 시즌으로, 평균자책점만 보면 밥값을 해낸 수준이 아니라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다.
[22]
3번째 아웃을 잡기 전까지 0.2이닝 9실점. 9x27÷2 = 121.5이다.
[23]
그리고 박유연을 대신해 4월 3일 경기를 앞두고 또 한 명의 투수가 올라오는데 이 선수가 바로
김정후.
[24]
선발투수 장원준의 경우 왼손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난조를 보인 것도 있고, 15~17년 투구수가 누적되어 피로가 가중된 상황에서 장원준을 계속 쓴 김태형에게 비판이 집중되는 중이다. 오죽하면 중계진들도 비판했을 정도. 황경태의 경우에도 1군 경험이 부족해 콜업된 상태에서의 압박으로 이해해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최대성의 경우 롯데에서 제구력 난조로 순위싸움이 달린 1군 경기를 말아먹은 전적이 많고 무엇보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쓸데없이 3억을 써서 데려왔기 때문에 쉴드를 받기가 힘든 상태.
[25]
이 이전에도 2군 등판기록이 없고 부산 목격담이 자주 들려왔는데,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기도 하여 두산팬들이 뒷목을 잡기도 했다.
[26]
돡갤에서는 이 순간 쌍욕이 도배되었고 이영하의 기자회견 사진을 갖고 "우리 팀에 승부조작범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드립을 쳤다.
[27]
이후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정경배 코치가 두산으로 왔다.
[28]
게다가 두산 프런트는 배영수와 권혁을 둘이 합쳐 최대성 2차드래프트 보상금인 3억에 영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