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明史)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800000"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color: #800000" |
1·2·3권 「태조기(高祖紀)」 | 4권 「공민제기(恭閔帝紀)」 | 5·6·7권 「성조기(成祖紀)」 | |||
주원장 | 주윤문 | 주체 | ||||
8권 「인종기(仁宗紀)」 | 9권 「선종기(宣宗紀)」 | 10·11·12권 「영종·경제기(英宗景帝紀)」 | ||||
주고치 | 주첨기 | 주기진 · 주기옥 | ||||
13·14권 「헌종기(憲宗紀)」 | 15권 「효종기(孝宗紀)」 | 16권 「무종기(武宗紀)」 | ||||
주견심 | 주우탱 | 주후조 | ||||
17·18권 「세종기(世宗紀)」 | 19권 「목종기(穆宗紀)」 | 20·21권 「신종·광종기(神宗光宗紀)」 | ||||
주후총 | 주재후 | 주익균 · 주상락 | ||||
22권 「희종기(熹宗紀)」 | 23·24권 「장렬제기(莊烈帝紀)」 | |||||
주유교 | 주유검 | |||||
※ 25권 ~ 99권은 志에 해당. 100권 ~ 112권은 表에 해당.
명사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6><tablewidth=100%><tablebgcolor=#f0c420> 113·114권 「후비전(后妃傳)」 ||
효자고황후 · 손귀비 · 이숙비 · 곽영비 · 효민양황후 · 인효문황후 · 소헌귀비 · 공헌현비 · 성효소황후 · 선묘현비 · 곽애 · 선묘현비 · 공양장황후 · 효장예황후
효숙황후 · 정혜경황후 · 오폐후 · 효정순황후 · 효목황후 기씨 · 효혜황후 · 공숙귀비 · 효강경황후 · 효정의황후 · 효결숙황후 · 장폐후 · 효열황후 · 효각황태후
효의장황후 · 효안황후 · 효정황후 · 효단현황후 · 효정황황후 · 공각귀비 · 효원정황후 · 효화황태후 · 효순황태후 · 이강비 · 효안황후 · 장유비 · 장열민황후
공숙귀비115권 「종실전(宗室傳)」 주표 · 주우원 116·117·118·119·120권 「제왕전(諸王傳)」 주상 · 주강 · 주숙 · 주정 · 주부 · 주재 · 주기 · 주단 · 주춘 · 주백 · 주계 · 주영(朱楧) · 주식 · 주전(朱㮵) · 주권 · 주폐 · 주혜 · 주모 · 주영(朱楹) · 주경(朱桱) · 주동 · 주이 · 주남 · 주웅영 · 주윤통 · 주윤견 · 주윤희 · 주문규(朱文奎) · 주문규(朱文圭) · 주고후 · 주고수 · 주첨용 · 주첨선 · 주첨점 · 주첨은 · 주첨오 · 주섬강 · 주첨개 · 주첨게 · 주첨연 · 주견린 · 주견순 · 주견주 · 주견택 · 주견준 · 주견치 · 주견패 · 주견제 · 주우극 · 주우륜 · 주우빈 · 주우휘 · 주우운 · 주우저 · 주우팽 · 주우순 · 주우추 · 주우해 · 주후위 · 주재기 · 주재수 · 주재로 · 주재려 · 주재궤 · 주재숙 · 주익익 · 주익령 · 주익류 · 주상서 · 주상순 · 주상치 · 주상호 · 주상윤 · 주상영 · 주상부 · 주유학 · 주유즙 · 주유모 · 주유허 · 주유전 · 주자연 · 주자육 · 주자경 · 주자랑 · 주자훤 · 주자형 · 주자소 · 주자환 · 주자찬 121권 「공주전(公主傳)」 태원장공주 · 조국장공주 · 임안공주 · 영국공주 · 숭녕공주 · 안경공주 · 여령공주 · 회경공주 · 대명공주 · 복청공주 · 수춘공주 · 남강공주 · 영가공주 · 함산공주 · 여양공주 · 보경공주 · 복성공주 · 경양공주 · 강도공주 · 남평군주 · 영안공주 · 영평공주 · 안성공주 · 함녕공주 · 상녕공주 · 가흥공주 · 경도공주 · 청하공주 · 진정공주 · 덕안공주 · 연평공주 · 덕경공주 · 순덕공주 · 상덕공주 · 중경공주 · 가선공주 · 순안공주 · 숭덕공주 · 광덕공주 · 의흥공주 · 융경공주 · 가상공주 · 고안공주 · 인화공주 · 영강공주 · 덕청공주 · 장태공주 · 선유공주 · 태강공주 · 영복공주 · 영순공주 · 장녕공주 · 선화공주 · 상안공주 · 사유공주 · 영안공주 · 귀선공주 · 가선공주 · 봉래공주 · 태화공주 · 수양공주 · 영령공주 · 서안공주 · 연경공주 · 영창공주 · 수녕공주 · 정락공주 · 운화공주 · 운몽공주 · 영구공주 · 선거공주 · 태순공주 · 향산공주 · 천대공주 · 회숙공주 · 영덕공주 · 수평공주 · 낙안공주 · 곤의공주 · 장평공주 · 소인공주 122권 「곽자흥등전(郭子興等傳)」 123권 「진우량등전(陳友諒等傳)」 124권 「확곽첩목아등전(擴廓帖木兒等傳)」 곽자흥 · 한림아 진우량 · 장사성 · 방국진 · 명옥진 확곽첩목아 · 진우정 · 파잡라와이밀 125권 「서달등전(徐達等傳)」 126권 「이문충등전(李文忠等傳)」 127권 「이선장등전(李善長等傳)」 서달 · 상우춘 이문충 · 등유 · 탕화 · 목영 이선장 · 왕광양 128권 「유기등전(劉基等傳)」 129권 「풍승등전(馮勝等傳)」 유기 · 송렴 · 엽침 · 장일 풍승 · 부우덕 · 요영충 · 양경 · 호미 130권 「오량등전(吳良等傳)」 오량 · 강무재 · 정덕흥 · 경병문 · 곽영 · 화운룡 · 한정 · 구성 · 장룡 · 오복 · 호해 · 장혁 · 화고 · 장전 · 하진 131권 「고시등전(顧時等傳)」 고시 · 오정 · 설현 · 곽흥 · 진덕 · 왕지 · 매사조 · 김조흥 · 당승종 · 육중형 · 비취 · 육취 · 정우춘 · 황빈 · 엽승 132권 「주량조등전(朱亮祖等傳)」 주량조 · 주덕흥 · 왕필 · 남옥 · 사성 · 이신 133권 「요영안등전(廖永安等傳)」 요영안 · 유통해 · 호대해 · 경재성 · 장덕승 · 조덕승 · 상세걸 · 모성 · 호심 · 손흥조 · 조량신 · 복영 134권 「하문휘등전(何文輝等傳)」 하문휘 · 엽왕 · 무대형 · 채천 · 왕명 · 영정 · 김흥왕 · 화무 · 정옥 · 곽운 135권 「진우등전(陳遇等傳)」 136권 「도안등전(陶安等傳)」 진우 · 엽태 · 범상 · 송사안 · 곽경상 · 양원호 · 원홍도 · 공극인 도안 · 첨동 · 주승 · 최량 · 도개 · 증로 · 임앙 · 이원명 · 악소봉 137권 「유삼오등전(劉三吾等傳)」 유삼오 · 안연 · 오백종 · 오침 · 계언량 · 송눌 · 조숙 · 이숙정 · 유숭 · 나복인 · 손여경 138권 「진수등전(陳修等傳)」 진수(陳修) · 양사의 · 주정 · 양정(楊靖) · 단안인 · 설상 · 당탁 · 개제 139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전당 · 한의가 · 소기 · 풍견 · 여태소 · 이사로 · 엽백거 · 정사리 · 주경심 · 왕박 · 장형 140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위관 · 도후중 · 유사훤 · 왕종현 · 여문수 · 왕관 · 도동 · 노희 · 청문승 141권 「제태등전(齊泰等傳)」 제태 · 황자징 · 방효유 · 연자녕 · 유대방 · 탁경 · 진적 · 경청 · 호윤 · 왕도(王度) 142권 「철현등전(鐵鉉等傳)」 철현 · 포소 · 진성선 · 장병 · 송충 · 마선 · 구능 · 장륜(張倫) · 안백위 · 왕성 · 요선 · 진언회 143권 「왕간등전(王艮等傳)」 왕간 · 요승 · 주시수 · 정본립 · 황관 · 왕숙영 · 황월 · 왕량 · 진사현 · 정통 · 고외 · 고현녕 · 왕진(王璡) · 주진 · 우경선 144권 「성용등전(盛庸等傳)」 145권 「요광효등전(姚廣孝等傳)」 성용 · 평안 · 하복 · 고성 요광효 · 장옥 · 주능 · 구복 · 담연 · 왕진(王真) · 진형 146권 「장무등전(張武等傳)」 장무(張武) · 진규 · 맹선 · 정형 · 서충 · 곽량 · 조이 · 장신 · 서상 · 이준 · 손암 · 진욱 · 진현 · 장흥 · 진지 · 왕우 147권 「해진등전(解縉等傳)」 148권 「양사기등전(楊士奇等傳)」 149권 「건의등전(蹇義等傳)」 해진 · 황회 · 호광 · 김유자 · 호엄 양사기 · 양영 · 양부 건의 · 하원길 150권 「욱신등전(郁新等傳)」 욱신 · 조공 · 김충 · 이경 · 사규 · 고박 · 진수(陳壽) · 유계호 · 유진 · 양지 · 우겸(虞謙) · 여승 · 탕종 151권 「여상등전(茹瑺等傳)」 여상 · 엄진직 · 장담 · 왕둔 · 정사 · 곽자 · 여진 · 이지강 · 방빈 · 오중 · 유관 152권 「동륜등전(董倫等傳)」 동륜 · 의지 · 추제 · 주술 · 진제 · 왕영 · 전습례 · 주서(周敍) · 가잠 · 공공순 153권 「송례전(宋禮等傳)」 154권 「장보등전(張輔等傳)」 송례 · 진선 · 주침 장보 · 황복 · 유준(劉儁) · 여의 · 진흡 · 이빈 · 유승 · 양명 · 왕통 155권 「송성등전(宋晟等傳)」 송성 · 설록 · 유영 · 주영(朱榮) · 비환 · 담광 · 진회(陳懷) · 장귀 · 임례 · 조안 · 조보 · 유취 156권 「오윤성등전(吳允誠等傳)」 오윤성 · 설빈 · 오성(吳成) · 김충 · 이영 · 모승 · 초례 · 모충 · 화용 · 나병충 157권 「김순등전(金純等傳)」 김순 · 장본 · 곽돈 · 곽진 · 정진 · 시차 · 유중부 · 장봉 · 주선 · 양정(楊鼎) · 황호 · 호공진 · 진준 · 임악 · 반영 · 하시정 158권 「황종재등전(黃宗載等傳)」 황종재 · 고좌 · 단민 · 장창(章敞) · 오눌 · 위기 · 노목 · 경구주 · 헌예 · 황공소 159권 「웅개등전(熊概等傳)」 웅개 · 진일 · 이의 · 진일 · 이당 · 가전 · 왕우 · 최공 · 유자(劉孜) · 이간 · 원걸 · 팽의 · 모봉 · 하훈 · 고명 · 양계종 160권 「왕창등전(王彰等傳)」 왕창 · 위원(魏源) · 김렴 · 석박 · 나통 · 나기 · 장선 · 장붕 · 이유 161권 「주신등전(周新等傳)」 주신 · 이창기 · 진사계 · 응이평 · 임석 · 황종 · 진본심 · 팽욱 · 하시 · 황윤옥 · 양찬 · 유실 · 진선 · 하인 · 진장 · 장병 · 송단의 162권 「윤창륭등전(尹昌隆等傳)」 윤창륭 · 경통 · 대륜 · 진조 · 유구 · 진감 · 종동 · 장륜 · 요장 · 예경 · 양선(楊瑄) 163권 「이시면등전(李時勉等傳)」 164권 「추집등전(鄒緝等傳)」 이시면 · 진경종 · 유현(劉鉉) · 형양 · 임한 · 사탁 · 노탁 추집 · 익겸 · 황택 · 범제 · 요양 · 좌정 · 조개 · 유위 · 단우 · 장소 · 고요 165권 「도성등전(陶成等傳)」 166권 「한관등전(韓觀等傳)」 도성 · 진민 · 정선 · 왕득인 · 엽정 · 오기 · 모길 · 임금 · 곽서 · 강앙 한관 · 산운 · 소수 · 방영 · 이진 · 왕신 · 팽륜 · 구반 · 장우 167권 「조내등전(曹鼐等傳)」 168권 「진순등전(陳循等傳)」 조내 · 광야 · 왕좌 · 손상 · 원빈 진순 · 왕문 · 강연 · 진문 · 만안 · 유후 · 유길 · 윤직 169권 「고곡등전(高穀等傳)」 170권 「우겸전(于謙傳)」 171권 「왕기등전(王驥等傳)」 고곡 · 호영 · 왕직 우겸 왕기(王驥) · 서유정 · 양선(楊善) · 왕월 172권 「나형신등전(羅亨信等傳)」 나형신 · 후진 · 양녕 · 왕래 · 손원정 · 주감 · 양신민 · 장기 · 마근 · 정신 · 백규 · 장찬 · 공용 · 등정찬 · 왕식 · 유병 173권 「양홍등전(楊洪等傳)」 양녕 · 석정 · 곽등 · 주겸 · 손당 · 범광 174권 「사소등전(史昭等傳)」 사소 · 무개 · 허귀 · 주현 · 구신 · 왕새 · 노감 · 유녕 · 팽청 · 강한 · 안국 · 항웅 175권 「위청등전(衞靑等傳)」 위청 · 동흥 · 하홍 · 유옥 · 구월 · 신영 · 조웅 · 풍정 · 장준 · 양예 176권 「이현등전(李賢等傳)」 177권 「왕고등전(王翱等傳)」 이현 · 여원 · 악정 · 팽시 · 상로 · 유정지 왕고(王翱) · 연부 · 왕횡 · 이병 · 요기(姚夔) · 왕복 · 임총 · 엽성 178권 「항충등전(項忠等傳)」 179권 「나륜등전(羅倫等傳)」 항충 · 한옹 · 여자준 · 주영(朱英) · 진굉 나륜 · 장무 · 황중소 · 장창(莊昶) · 추지 · 서분 180권 「장녕등전(張寧等傳)」 장녕 · 왕휘 · 모홍 · 구홍 · 이삼 · 위원(魏元) · 강진 · 왕서(王瑞) · 이준 · 왕규 · 탕내 · 강관 · 강홍 · 조린 · 팽정 · 방반 · 여헌 · 엽신 · 호헌 · 장홍지 · 굴신 · 왕헌신 181권 「서부등전(徐溥等傳)」 182권 「왕서등전(王恕等傳)」 서부 · 구준 · 유건 · 사천 · 이동양 · 왕오 · 유충 왕서(王恕) · 마문승 · 유대하 183권 「하교신등전(何喬新等傳)」 하교신 · 팽소 · 주경(周經) · 경유 · 예악 · 민규 · 대산 184권 「주홍모등전(周洪謨等傳)」 주홍모 · 양수진 · 장원정 · 부한 · 장승 · 완성 · 부규 · 유춘 · 오엄 · 고청 · 유서 185권 「이민등전(李敏等傳)」 이민 · 가준 · 황불 · 장열 · 사종 · 증감 · 양경 · 서각 · 이개 · 황가 · 왕홍유 · 총란 · 오세충 186권 「한문등전(韓文等傳)」 한문 · 장부화 · 양수수 · 허진 · 옹태 · 진수(陳壽) · 번형 · 웅수 · 반번 · 호부 · 장태 · 장내 · 왕경(王璟) · 주흠 187권 「하감등전(何鑒等傳)」 하감 · 마중석 · 육완 · 홍종 · 진금(陳金) · 유간 · 주남 · 마호 188권 「유천등전(劉蒨等傳)」 유천 · 여충 · 조우 · 대선 · 육곤 · 장흠(蔣欽) · 주새 · 탕예경 · 허천석 · 장사륭 · 장문명 · 범로 · 장흠(張欽) · 주광 · 석천주 189권 「이문상등전(李文祥等傳)」 이문상 · 손반 · 호관 · 나교 · 엽쇠 · 대관 · 황공 · 육진 · 하양승 · 하준 190권 「양정화등전(楊廷和等傳)」 191권 「모징등전(毛澄等傳)」 양정화 · 양저 · 장면 · 모기 · 정이 모징 · 왕준(汪俊) · 오일붕 · 주희주 · 하맹춘 · 풍희 · 서문화 · 설혜 192권 「양신등전(楊愼等傳)」 양신 · 왕사 · 장충 · 유제 · 안반 · 장한경 · 장원 · 모옥 · 왕시가 · 정본공 · 장왈도 · 양회 · 장찬 · 곽남 193권 「비굉등전(費宏等傳)」 비굉 · 적란 · 이시 · 고정신 · 엄눌 · 이춘방 · 진이근 · 조정길 · 고의 194권 「교우등전(喬宇等傳)」 교우 · 손교 · 임준 · 김헌민 · 진금(秦金) · 조황 · 추문성 · 양재 · 유린 · 장요(蔣瑤) · 왕정상 195권 「왕수인전(王守仁傳)」 196권 「장총등전(張璁等傳)」 왕수인 장총 · 계악 · 방헌부 · 하언 197권 「석서등전(席書等傳)」 198권 「양일청등전(楊一淸等傳)」 석서 · 곽도 · 웅협 · 황종명 · 황관 양일청 · 왕경(王瓊) · 팽택 · 모백온 · 옹만달 199권 「이월등전(李鉞等傳)」 이월 · 왕헌 · 호세녕 · 이승훈 · 왕이기 · 범총 · 왕방서 · 정효 200권 「요막등전(姚鏌等傳)」 요막 · 장정 · 오문정 · 채천우 · 첨영 · 유천화 · 양수례 · 장악 · 곽종고 · 조시춘 201권 「도염등전(陶琰等傳)」 도염 · 왕진(王縝) · 이충사 · 오정거 · 방양영 · 왕광 · 왕월 · 서문 · 장방기 · 한방기 · 주금 · 오악 202권 「요기등전(廖紀等傳)」 요기(廖紀) · 왕시중 · 주기옹 · 당룡 · 왕고(王杲) · 주용 · 문연 · 유인 · 손응규 · 섭표 · 이묵 · 주연 · 가응춘 · 장영명 · 호송 · 조병연 203권 「정악등전(鄭岳等傳)」 정악 · 유옥 · 왕원석 · 구천서 · 당주 · 반진 · 이중 · 구양탁 · 도해 · 반훈 · 여경 · 구양중 · 주상(朱裳) · 진찰 · 손무 · 왕의(王儀) · 증균 204권 「진구주등전(陳九疇等傳)」 205권 「주환등전(朱紈等傳)」 진구주 · 적붕 · 손계로 · 증선 · 정여기 · 양수겸 · 상대절 · 해일귀 · 양선(楊選) 주환 · 장경 · 호종헌 · 조방보 · 이수 · 당순지 206권 「마록등전(馬錄等傳)」 마록 · 정계충 · 장규 · 정일붕 · 당추 · 두란 · 엽응총 · 해일귀 · 육찬 · 소경방 · 유세양 · 위양필 207권 「등계증등전(鄧繼曾等傳)」 등계증 · 주제 · 양언 · 유안 · 설간 · 양명(楊名) · 곽홍화 · 유세룡 · 장선 · 포절 · 사정천 · 왕여령 · 양사충 208권 「장근등전(張芹等傳)」 장근 · 왕응진 · 소명봉 · 제지란 · 원종유 · 허상경 · 고제 · 장교 · 여산 · 위상신 · 여관 · 팽여실 · 정자벽 · 척현 · 유회 · 전미 · 홍원 · 주사겸 · 안경 209권 「양최등전(楊最等傳)」 양최 · 풍은 · 양작 · 주이 · 유괴 · 심속 · 심연 · 양계성 · 양윤승 210권 「상교등전(桑喬等傳)」 상교 · 사유 · 하유백 · 서학시 · 여여진 · 왕종무 · 주면 · 조금 · 오시래 · 장충 · 동전책 · 추응룡 · 임윤 211권 「마영등전(馬永等傳)」 212권 「유대유등전(俞大猷等傳)」 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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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C420><colcolor=#ffffff> 진린 陳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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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별묘의 진린 장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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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진린(陳璘) |
자 | 조작(朝爵) |
호 | 용애(龍崖) |
출생 | 1543년 |
대명 광동성 소주부 옹원현 | |
사망 | 1607년 (향년 64세) |
대명 호 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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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나라의 장수. 자는 조작(朝爵). 호는 용애(龍厓). 시호는 충강(忠康).국내에서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 원군으로 파견되어 이순신과 우애를 나누며 함께 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성씨 중 하나인 광동 진씨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1]
2. 생애
2.1. 군복을 입고 공을 세우다
광동성 옹원현 사람으로 세종 가정제의 치세 말기에 지휘첨사가 되었으며, 영덕현의 도적을 토벌하는 데 참가하여 광동수비가 되었다. 도적 뇌원작을 평정하고 영동의 도적들을 물리쳤으며, 신종 만력제의 치세 초기에는 고요현의 도적 등승룡, 계양현의 도적 종월천 등을 평정했다. 문무를 겸비한 유능한 무장으로, 특히 남방 평정에서 많은 공훈을 세웠다.여러 차례 승진해 도지휘첨사, 첨서광동도사에 임명되었으며, 이성립이 도적을 평정하기 위해 제양보를 공격했지만 패배하자 그의 뒤를 이어 참전하여, 도적을 평정하고 조경유격장군, 고주참장이 되었다. 남방의 묘족을 정벌해 부총병으로 옮겨 동안첨장사가 되었지만 그 곳에서 살아남은 자가 백성을 살해한 일이 일어나 책망을 받고 죄를 얻었으며, 주문달과 함께 석우 및 청수의 여러 망루를 깨뜨려 36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용서를 받았다.
동안현이 평정되자 토목공사를 일으켜 영채, 관성, 사당 등을 지었는데, 재물을 반출하는 것도 금지해 병졸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현을 약탈하자 나응학에게 탄핵받아 관직이 박탈되었다가 적을 사로잡으면서 죄가 사해져 낭산 부총병이 되었다. 모략이 있어 병사를 잘 부렸지만 다시 탄핵을 받고 관직을 빼앗겼으며[2], 조정의 신료들은 진린의 재주를 아깝게 여겼지만 천거하지는 않았다.
2.2. 정유재란 참전
1592년에 적에게 패배한 일이 참작되어 관직이 회복되었고, 광동의 병사 5,000명을 이끌며 조선을 구원했다. 1593년 2월에 어왜총병관이 되어 마귀, 유정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병사 3,000여 명, 전함 수백 척을 나누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해구에 포진시켰다. 어위도총관 겸 전군도독부도독(前軍都督府都督)이 되어 수군 5,000명을 이끌고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함대에 합류했다.진린이 처음 이순신 부대에 합류할 때부터 조선 조정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징비록》에 의하면 류성룡을 비롯한 많은 조선 조정의 대신들이 우려를 표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통제공이 진린의 횡포[3]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고, 분명 명나라 군대와 갈등이 생길테니 패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순신은 진린의 성정을 어느 정도 미리 파악한 후 즉시 고기와 생선 등을 푸짐하게 차려 진린뿐 아니라 모든 명군의 장병들까지 배부르고 취하게 하여 인심을 샀으며, 왜적을 격퇴한 후 수급 40개를 진린에게 순순히 양보하여 더욱 관계를 돈독히 했다고 한다. 또한 이순신은 처음 명나라 수군의 행패를 핑계로 백성들과 함께 본진에서 떠나려는 척을 해서 진린에게 명나라 수군의 지휘권까지 넘겨받는가 하면, 이후 진린에게 자신이 세운 공로를 전부 넘겨주는 식의 '채찍과 당근'을 병용해 그를 마음으로 감복시켜 진심으로 존경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순신의 지휘력과 인품을 직접 겪어서인지 초기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이던 진린도 점차 이순신에게 감복하게 된 것으로 묘사한다.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라는 최고의 찬사를 하는가 하면,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이순신 장군을 '이야'(李爺) 혹은 '노야'(老爺)[4]라는 호칭으로 높여 불렀고, 자신이 탄 가마가 감히 이순신이 탄 가마보다 먼저 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을 정도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진린은 아예 이순신에게 조선에서 왕이나 신하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 바에, 함께 명나라로 가서 황상을 모시며 제 능력을 떨치고 부귀를 누려보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심지어 진린은 어느날 천문을 보다 대장별이 떨어짐을 알고는 이순신의 안위가 걱정되어 제갈무후의 고사를 따라 제단을 쌓아 기도를 올려 명을 늘려보라 간곡히 청하기도 했다. 이에 이순신은 자신의 충성과 덕망과 재주가 무후만 못하니 하늘이 어찌 들어주겠느냐며 사양했다. 당시 명나라 사람이 충의와 지혜의 상징과 같은 인물인 제갈량에게 빗댈 정도였으니 이순신에 대한 진린의 호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 하다.
최후의 결전인 노량 해전 당시, 명군은 일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일본 열도로 내쫓는다는 전략 목표를 달성했기에 명나라 본국으로부터 퇴각하는 일본군을 그냥 보내주라는 지령을 받았고, 그 이후 일본군과의 전투를 잠시 주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린은 본인의 성정 자체도 강경파이기도 했고, 그간 이순신에 대한 개인적인 부채감과 존경심도 있어서 이순신과 함께 일본군과 벌일 마지막 전투에 나섰다.
여러 대중매체에서는 진린이 노량 해전 이전에 일본군에게 뇌물을 받아 그냥 보내주려다 이순신에게 들켜 호령을 듣는 식으로 묘사되는 일이 흔한 편인데, 진린이 일본군의 로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5] 곧바로 이순신을 찾아가 그 사실을 전하며 대책을 의논했다고 한다. 당연히 오랜 전란으로 일본군에게 원한이 사무친 이순신은 퇴각할 길을 터달라는 적을 상대로 마지막 결전에 나섰고, 진린은 이러한 이순신을 따라 함께 전선에 나갔다.[6] 다만 매체 속 진린의 묘사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운게,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이충무공행록에 따르면 뇌물을 받은 일로 이순신이 항의하자 진린이 그를 회유하려다 실패한 기록이 나오고, 결국 분개한 진린이 황제의 검을 운운하며 이순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자 두 사람이 한참을 다퉜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7]
하여튼 정유재란 최후의 전투인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이전처럼 포격전을 벌이는 대신 포위한 후 전면으로 돌격해 일본군 함대와 들이받고 곧이어 치열한 선상 백병전과 난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이 전사했고, 진린 본인도 왜군에 둘러싸여 고생한다. 전투가 끝난 뒤 진린은 이순신을 찾아가 전투 중 자신을 구해준 데 대해 사례하고자 했으나, 이미 이순신은 총탄에 맞고 전사한 뒤였다.[8] 진린은 이때 이순신의 죽음을 알고 후회와 죄책감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른께서 오셔서 나를 구해주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함께 일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하며[9] 세 번이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배에 몸을 던지며 대성통곡을 했고, 명군 또한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노량 해전 이후 진린은 마음을 추스르고 남해왜성 소탕전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선조를 만난다.
(전략)상이 이르기를,
"대인의 신묘하신 계책을 힘입어 8년간의 강적이 하루아침에 섬멸되었으니 고마우신 은덕은 형용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자, 진린이 말하기를,
"한창 적이 포위해 올 때 내 배는 큰북을 치고 먼저 나아가고 등자룡(鄧子龍)과 이순신(李舜臣) 두 장수가 좌우에서 협공하였는데 그 두 장수는 다 적에게 죽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죽기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동요하지 않아 다행히 패배를 면하였으니 이 또한 운수입니다."(후략)
선조실록 109권, 선조 32년 2월 7일 정사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대인의 신묘하신 계책을 힘입어 8년간의 강적이 하루아침에 섬멸되었으니 고마우신 은덕은 형용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자, 진린이 말하기를,
"한창 적이 포위해 올 때 내 배는 큰북을 치고 먼저 나아가고 등자룡(鄧子龍)과 이순신(李舜臣) 두 장수가 좌우에서 협공하였는데 그 두 장수는 다 적에게 죽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죽기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동요하지 않아 다행히 패배를 면하였으니 이 또한 운수입니다."(후략)
선조실록 109권, 선조 32년 2월 7일 정사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그러나 공식 기록 상에서 확인되는 내용은 위의 훈훈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진린과 이순신은 작전 수행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으며, 진린이 이순신을 우호적으로 생각한 계기였다고 알려진 수급 40개와 관련된 일화는 《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순신의 장계와 괴리가 상당하다. 심지어 진린은 수급을 빼앗은 일을 숨기고자 이순신의 입을 막으려 하기도 하였다.
'이순신(李舜臣)이 절이도(折爾島)의 전투에서 적의 머리 71급(級)을 베었는데 진 도독(陳都督)이 40급을 빼앗고 계 유격(季遊擊)이 5급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도독이 순신에게 독촉하여 다만 26급을 벤 것으로 장계를 꾸미게 하였으므로 순신은 도독의 말대로 26급을 베었다고 거짓 장계를 만들어 보내고 또 별도로 장계를 만들어 사실대로 치계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일을 두고 선조가 이순신을 질시한다는 것을 간파한 진린이 이순신의 공적을 일부러 숨겨 선조의 의심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벌인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순신이 장계에 ‘협박을 받았다.’라며 실제 자신의 공적을 자세히 기술한 것만 보더라도 당시 진린과 이순신의 관계가 우호적이지는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진린이 이순신을 존중했다는 내용도 당대 《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숭명배금을 기치로 한 인조 즉위 후 어떻게 하면 상국인 명나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명나라 사람 가운데 이순신을 이야(李爺)라고 하더라.’ ‘이순신이 죽자 명나라 사람들도 통곡하였다고 하더라.’라는 설이 있었다는 정도의 언급만 나올 뿐이다. 함께 명나라로 가서 황상을 모시자고 권했다는 것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양호를 비롯하여 군문 형개 등이 선조에게 이순신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을 표하는 대목이 확인되지만 진린의 경우 이를 드러낸 기록이 없다.
또한 진린이 다른 명나라 장수들과 달리 진린은 상대적 강성파로 왜적을 토벌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이순신도 그런 진린을 믿고 함께 작전에 나갈 수 있었다는 내용도 사실과는 다르다. 1598년 당시 사로병진 계획을 수립한 후 대다수의 명나라 장수들이 출격을 머뭇거린 것처럼 진린 역시 여러 핑계를 대며 출진을 미루었다. 심지어 조선 수군의 독자적인 출격도 저지하였다. 선조 이하 비변사는 이순신의 장계를 바탕으로 진린의 교체를 명나라 지휘부에 건의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전후의 통제사(統制使)의 장계를 보건대, 진 도독(陳都督)이 통제사(이순신)의 공격을 정말 허락하지 않았다 하니, 그의 소행이 매우 한심스럽다. 이로부터 주사(舟師)의 일이 잘못되고 수로(水路)를 차단하여 협공하는 계획도 허사가 되게 생겼으니 본사(本司)는 의당 잘 도모하여야 한다. 반사에게 혹 그러한 자취를 군문(軍門)에게 약간 비치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수병(水兵)에는 계 유격(季遊擊)이 있으니 바라건대 진 도독은 육지로 돌리어 한 지역을 맡게 하면 천병(天兵)의 세력이 더욱 강대해질 것이다.’고 말을 잘 만들면 어떻겠는가?‘
이처럼 노량해전 직전까지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진린에 대한 이순신과 조선 조정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와 같이 임진왜란 당시 진린에 대한 조선의 기억은 당대와 후대의 기록 사이에 차이를 보인다. 이는 전쟁이 끝난 뒤 17세기 이후 숭명의식이 고취되며, 효종 연간에 김육이 지은 이순신 신도비를 시작으로 이순신이 상국의 장수를 잘 대접하고 이에 감복한 진린이 이순신과 협력하여 전란을 극복하였다는 내용이 확산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3. 명나라로 돌아간 뒤
명나라에 돌아가서는 임진왜란 때의 공적으로 도독동지, 지휘첨사에 임명되었고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졌으며, 1년 전인 1597년에 양응룡이 파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1598년에 호광총병관에 임명되어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했으며, 이어서 피림을 토벌했다.1605년에는 신첨장관사로 옮겨 산묘를 토벌하는 것에 종군했으며, 광동성을 진무하고 관직을 마쳤다. 파주를 평정한 공으로 좌도독을 더하면서 지휘사에 임명되었으며, 1607년에 세상을 뜨자 묘족을 평정한 공으로 태자소보에 추증되고 시호로 충강(忠康)을 받았다.
3. 기타
- 진린의 자식, 손자들은 격동의 시대였던 명청교체기 당시 청나라와 끝까지 싸웠다. 진린의 아들 진구경(陳九經)은 나라의 국운을 두고 1646년[10]에 애산[11]에서 청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그리고 진린의 손자이자 진구경의 아들이었던 진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가 명나라가 1644년에 멸망하고, 얼마 뒤에 애산에서의 부친의 비보를 접하고는 "원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면서 식솔들을 데리고 고금도를 거쳐 해남에 정착해 조선에 귀화했다. 그 후 진영소의 후손들은 광동을 본관으로 하고, 진린을 시조로 모시는 광동 진씨가 되었다. 즉, 진린의 직계 후손 명맥은 현재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이런 식으로 당시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12] 현재 해남에 정착한 광동 진씨의 집성촌을 '황조리'라 하며, 진린을 모시는 사당인 황조별묘(黃朝別廟)가 있다. 2013년 3월에는 한국의 후손이 광동으로 가 중국에 남은 진린의 후손들과 같이 제례를 올리기도 했으며( 한중 공동제작 특집다큐), 지금도 광동 진씨는 덕수 이씨와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 세관 공무원 출신으로 중국사에 대한 흥미 본위의 수필집을 쓴 당년명월(본명: 시위에)은 진린이 이순신을 고평가한 것을 일종의 고도의 용인술이라고 묘사함과 동시에 진린의 탐욕과 능구렁이 같은 성품을 두고 "나는 진린과 같은 사람은 화성에 가서도 굶어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대체로 진린에 대해서는 유능하면서도 탐욕이 가득해 난세가 아니었으면 기용되지 않았을 문제적 인물이라며 풍자적인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13]
4. 대중매체에서
4.1. 영화
- 2023년 영화 <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배우 정재영이 연기했다.
4.2. 드라마
- 1992년 다큐멘터리 < 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에서 등장하지만 배우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매체들과 달리 해당 작품의 다른 명나라 측 인물들도 마찬가지지만 고증에 맞지 않게 청나라 관복에 가까운 형태의 복장으로 나온다.
- 2016년 드라마 < 임진왜란 1592>에서 배우 조항훤이 연기했다.
4.3. 소설
- 소설 《 칼의 노래》에서는 부패한 명나라 수군 제독으로 등장하는데,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거대한 체구의 인물로 묘사된다. 주연에서 사슴 다리를 통째로 뜯어먹으며 생마늘을 으득으득 씹어먹고 공훈을 세우는 것에 집착하여 전투 중 바다에 떨어진 수급에 욕심을 부리는 면모를 보인다. 충무공과의 첫 만남에서도 천병(天兵)이 천자의 곡식을 먹는 것은 민망한 일이라며 조선 수군에게 군량을 부담시키고 싣고 온 곡식은 횡령하려는 모습을 보이나 충무공이 여러 방면으로 잘 어르고 달래가며 길들인 이후에는 충무공을 중국에서 높은 벼슬을 하며 큰 판을 주물러야 할 사람이라며 치켜세우고 크고 작은 일들에 대체적으로 원만히 협력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노량해전 때 왜군들에게 뇌물을 받아 활로를 터준 것으로 묘사되고 이것 때문에 충무공이 베어버릴까 고민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4.4. 게임
- 게임 < 임진록 2>에서는 명나라의 화승총 영웅으로 나온다. 이는 수군 영웅들이 모두 원거리 무기를 쓰기 때문. 다른 장수들마냥 그냥저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성능은 딱 거기까지만이고 종합적인 능력은 별거 없다. 나중에 이순신이 조선의 반격에서 멋진 스킬까지 들고나온 반면 이 양반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 외에 조반에서 추가된 기술 기공신포는 본래 진린이 사용하던 기술이었으나, 정식 버전으로 오면서 이순신의 기술로 변경했다. 그리고 시나리오 진행시 <임진록 2> 조선 시나리오 8장에서 잠깐 언급된 것을 빼면 직접 스토리 진행(브리핑)에 나온 적이 없다.
[1]
진린의
손자인 진영소가
명나라 멸망 이후 조선으로 귀화하여 광동 진씨가 한국에도 퍼지게 되었다. 물론 중국에도 후손들이 남아있다.
[2]
이에 대해 탐욕이 심해 탄핵을 받았다는 주장이 한동안 있었는데, 중국 측 사료의 검토 결과 진린이 시행했던 토목공사 등의 사업들은 전몰한 군사들과 백성들을 위한 기간 시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뿐, 개인적인 치부를 위한 것은 없었다는 새로운 평가도 나오고 있다. 다른 기록에서도 진린은 조선에 참전했을 때 조선 왕실에서 보내준 선물들을 대부분 거절하고, 종이 정도만 받았다고 한다.
[3]
과거 진린이 조선 관리 찰방(역참 하급 관리) 이상규를 본인의 송별회에 늦게 참석했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그의 목에 밧줄을 묶은 후 말에 매달아 질질 끌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로 다른 지휘 체계와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이 더 커진 측면도 있었다.
[4]
손윗사람을 표현할 때 라오예(老爺)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어르신' 정도로 높여 부른 것이다. 이보다 높은 존칭은 尊, 賢이 들어가는 존칭이 많으나, 사실 진린이 이순신보다 두 살 많은 상국의 인물인데 조공국의 인물에게 저런 표현을 했다는 것 자체로 놀라운 일이며, 진린의 성정과 본국에서의 공적을 봤을 때 조선인에게 그 정도의 예를 보였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호의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고사는 동시기 인물인
이항복의 문집 '백사집'에 실려 있으므로 신뢰성이 높다.
[5]
합리적인 일본군이라면 일본 침략자들과 타협은 없다 그 자체인 이순신보다는 명군을 상대로 로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예외로 일본군 중에서
항복하고 전향한 일본인은 잘 대해줬다고 한다.
[6]
특히 명량해전 직후 일본군이
이순신의
고향인 아산에 보복기습을 가해 막내
아들 이면을 참살했기에 그 원한이 실로 깊을 수 밖에 없었다.
[7]
물론 진린 개인의 탐욕성에 대해선 오늘날 학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있다. 개인적인 치부를 위한 것은 없었다는 평가도 있고, 다른 기록에선 진린이 조선에 참전했을 때 조선 왕실에서 보내준 선물들을 대부분 거절하고, 종이 정도만 받았다는 말도 있다. 사람들에게 진린이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로 인식된 시발점은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 전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친일 성향이었던 이광수의 행적을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진린을 험악한 인물로 평가하여 중국과 조선의 유대관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8]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의 마지막 명령에 따라 그의 죽음은 전투 종료시까지 함구되었던 것이다.
[9]
전자는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후자는 백사집(白沙集)의 기록으로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진린이 한양으로 향하던 중 이순신 장군의 고향에 들러 곡하고 그 아내와 아들을 조문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러 기록이 있으나 동시대 사람인 이항복이 기록한 보다 동등한 시점의 뉘앙스가 진린이 실제로 한 말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10]
이때는 이미 명나라가
이자성의 반란군에 의해 멸망(
1644년)한 뒤였다.
[11]
공교롭게도 360여년 전 송나라의 마지막 저항
애산 전투의 그 애산이다.
[12]
명나라 기준에서 조선 역시
오랑캐의 한 부류였지만, 신토가 주류인 일본, 탱그리 신앙과 이슬람교가 우세한 오이라트(몽골)이나 서하와는 다르게 유교를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고 국가 이념으로 삼은 나라는 조선과 명나라가 유이했기 때문에 앞선 사례들과 다르게 문화적 관점에 대한 공통점을 많이 공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명 멸망 이후 많은 한족 지식인들이 조선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조선이 중화사상의 정통 후계자임을 주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3]
물론 이 작가는
시오노 나나미류의 인물이며, 기본적으로 임진왜란 관련 묘사가 중국인 특유의 중화
국뽕에 가득차 있는 점은 감안하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