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20:32:50

유정(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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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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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color: #800000"
1·2·3권 「태조기(高祖紀)」 4권 「공민제기(恭閔帝紀)」 5·6·7권 「성조기(成祖紀)」
주원장 주윤문 주체
8권 「인종기(仁宗紀)」 9권 「선종기(宣宗紀)」 10·11·12권 「영종·경제기(英宗景帝紀)」
주고치 주첨기 주기진 · 주기옥
13·14권 「헌종기(憲宗紀)」 15권 「효종기(孝宗紀)」 16권 「무종기(武宗紀)」
주견심 주우탱 주후조
17·18권 「세종기(世宗紀)」 19권 「목종기(穆宗紀)」 20·21권 「신종·광종기(神宗光宗紀)」
주후총 주재후 주익균 · 주상락
22권 「희종기(熹宗紀)」 23·24권 「장렬제기(莊烈帝紀)」
주유교 주유검
※ 25권 ~ 99권은 志에 해당. 100권 ~ 112권은 表에 해당. 명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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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f0c420> 113·114권 「후비전(后妃傳)」 ||
효자고황후 · 손귀비 · 이숙비 · 곽영비 · 효민양황후 · 인효문황후 · 소헌귀비 · 공헌현비 · 성효소황후 · 선묘현비 · 곽애 · 선묘현비 · 공양장황후 · 효장예황후
효숙황후 · 정혜경황후 · 오폐후 · 효정순황후 · 효목황후 기씨 · 효혜황후 · 공숙귀비 · 효강경황후 · 효정의황후 · 효결숙황후 · 장폐후 · 효열황후 · 효각황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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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귀비
115권 「종실전(宗室傳)」
주표 · 주우원
116·117·118·119·120권 「제왕전(諸王傳)」
주상 · 주강 · 주숙 · 주정 · 주부 · 주재 · 주기 · 주단 · 주춘 · 주백 · 주계 · 주영(朱楧) · 주식 · 주전(朱㮵) · 주권 · 주폐 · 주혜 · 주모 · 주영(朱楹) · 주경(朱桱) · 주동 · 주이 · 주남 · 주웅영 · 주윤통 · 주윤견 · 주윤희 · 주문규(朱文奎) · 주문규(朱文圭) · 주고후 · 주고수 · 주첨용 · 주첨선 · 주첨점 · 주첨은 · 주첨오 · 주섬강 · 주첨개 · 주첨게 · 주첨연 · 주견린 · 주견순 · 주견주 · 주견택 · 주견준 · 주견치 · 주견패 · 주견제 · 주우극 · 주우륜 · 주우빈 · 주우휘 · 주우운 · 주우저 · 주우팽 · 주우순 · 주우추 · 주우해 · 주후위 · 주재기 · 주재수 · 주재로 · 주재려 · 주재궤 · 주재숙 · 주익익 · 주익령 · 주익류 · 주상서 · 주상순 · 주상치 · 주상호 · 주상윤 · 주상영 · 주상부 · 주유학 · 주유즙 · 주유모 · 주유허 · 주유전 · 주자연 · 주자육 · 주자경 · 주자랑 · 주자훤 · 주자형 · 주자소 · 주자환 · 주자찬
121권 「공주전(公主傳)」
태원장공주 · 조국장공주 · 임안공주 · 영국공주 · 숭녕공주 · 안경공주 · 여령공주 · 회경공주 · 대명공주 · 복청공주 · 수춘공주 · 남강공주 · 영가공주 · 함산공주 · 여양공주 · 보경공주 · 복성공주 · 경양공주 · 강도공주 · 남평군주 · 영안공주 · 영평공주 · 안성공주 · 함녕공주 · 상녕공주 · 가흥공주 · 경도공주 · 청하공주 · 진정공주 · 덕안공주 · 연평공주 · 덕경공주 · 순덕공주 · 상덕공주 · 중경공주 · 가선공주 · 순안공주 · 숭덕공주 · 광덕공주 · 의흥공주 · 융경공주 · 가상공주 · 고안공주 · 인화공주 · 영강공주 · 덕청공주 · 장태공주 · 선유공주 · 태강공주 · 영복공주 · 영순공주 · 장녕공주 · 선화공주 · 상안공주 · 사유공주 · 영안공주 · 귀선공주 · 가선공주 · 봉래공주 · 태화공주 · 수양공주 · 영령공주 · 서안공주 · 연경공주 · 영창공주 · 수녕공주 · 정락공주 · 운화공주 · 운몽공주 · 영구공주 · 선거공주 · 태순공주 · 향산공주 · 천대공주 · 회숙공주 · 영덕공주 · 수평공주 · 낙안공주 · 곤의공주 · 장평공주 · 소인공주
122권 「곽자흥등전(郭子興等傳)」 123권 「진우량등전(陳友諒等傳)」 124권 「확곽첩목아등전(擴廓帖木兒等傳)」
곽자흥 · 한림아 진우량 · 장사성 · 방국진 · 명옥진 확곽첩목아 · 진우정 · 파잡라와이밀
125권 「서달등전(徐達等傳)」 126권 「이문충등전(李文忠等傳)」 127권 「이선장등전(李善長等傳)」
서달 · 상우춘 이문충 · 등유 · 탕화 · 목영 이선장 · 왕광양
128권 「유기등전(劉基等傳)」 129권 「풍승등전(馮勝等傳)」
유기 · 송렴 · 엽침 · 장일 풍승 · 부우덕 · 요영충 · 양경 · 호미
130권 「오량등전(吳良等傳)」
오량 · 강무재 · 정덕흥 · 경병문 · 곽영 · 화운룡 · 한정 · 구성 · 장룡 · 오복 · 호해 · 장혁 · 화고 · 장전 · 하진
131권 「고시등전(顧時等傳)」
고시 · 오정 · 설현 · 곽흥 · 진덕 · 왕지 · 매사조 · 김조흥 · 당승종 · 육중형 · 비취 · 육취 · 정우춘 · 황빈 · 엽승
132권 「주량조등전(朱亮祖等傳)」
주량조 · 주덕흥 · 왕필 · 남옥 · 사성 · 이신
133권 「요영안등전(廖永安等傳)」
요영안 · 유통해 · 호대해 · 경재성 · 장덕승 · 조덕승 · 상세걸 · 모성 · 호심 · 손흥조 · 조량신 · 복영
134권 「하문휘등전(何文輝等傳)」
하문휘 · 엽왕 · 무대형 · 채천 · 왕명 · 영정 · 김흥왕 · 화무 · 정옥 · 곽운
135권 「진우등전(陳遇等傳)」 136권 「도안등전(陶安等傳)」
진우 · 엽태 · 범상 · 송사안 · 곽경상 · 양원호 · 원홍도 · 공극인 도안 · 첨동 · 주승 · 최량 · 도개 · 증로 · 임앙 · 이원명 · 악소봉
137권 「유삼오등전(劉三吾等傳)」
유삼오 · 안연 · 오백종 · 오침 · 계언량 · 송눌 · 조숙 · 이숙정 · 유숭 · 나복인 · 손여경
138권 「진수등전(陳修等傳)」
진수(陳修) · 양사의 · 주정 · 양정(楊靖) · 단안인 · 설상 · 당탁 · 개제
139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전당 · 한의가 · 소기 · 풍견 · 여태소 · 이사로 · 엽백거 · 정사리 · 주경심 · 왕박 · 장형
140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위관 · 도후중 · 유사훤 · 왕종현 · 여문수 · 왕관 · 도동 · 노희 · 청문승
141권 「제태등전(齊泰等傳)」
제태 · 황자징 · 방효유 · 연자녕 · 유대방 · 탁경 · 진적 · 경청 · 호윤 · 왕도(王度)
142권 「철현등전(鐵鉉等傳)」
철현 · 포소 · 진성선 · 장병 · 송충 · 마선 · 구능 · 장륜(張倫) · 안백위 · 왕성 · 요선 · 진언회
143권 「왕간등전(王艮等傳)」
왕간 · 요승 · 주시수 · 정본립 · 황관 · 왕숙영 · 황월 · 왕량 · 진사현 · 정통 · 고외 · 고현녕 · 왕진(王璡) · 주진 · 우경선
144권 「성용등전(盛庸等傳)」 145권 「요광효등전(姚廣孝等傳)」
성용 · 평안 · 하복 · 고성 요광효 · 장옥 · 주능 · 구복 · 담연 · 왕진(王真) · 진형
146권 「장무등전(張武等傳)」
장무(張武) · 진규 · 맹선 · 정형 · 서충 · 곽량 · 조이 · 장신 · 서상 · 이준 · 손암 · 진욱 · 진현 · 장흥 · 진지 · 왕우
147권 「해진등전(解縉等傳)」 148권 「양사기등전(楊士奇等傳)」 149권 「건의등전(蹇義等傳)」
해진 · 황회 · 호광 · 김유자 · 호엄 양사기 · 양영 · 양부 건의 · 하원길
150권 「욱신등전(郁新等傳)」
욱신 · 조공 · 김충 · 이경 · 사규 · 고박 · 진수(陳壽) · 유계호 · 유진 · 양지 · 우겸(虞謙) · 여승 · 탕종
151권 「여상등전(茹瑺等傳)」
여상 · 엄진직 · 장담 · 왕둔 · 정사 · 곽자 · 여진 · 이지강 · 방빈 · 오중 · 유관
152권 「동륜등전(董倫等傳)」
동륜 · 의지 · 추제 · 주술 · 진제 · 왕영 · 전습례 · 주서(周敍) · 가잠 · 공공순
153권 「송례전(宋禮等傳)」 154권 「장보등전(張輔等傳)」
송례 · 진선 · 주침 장보 · 황복 · 유준(劉儁) · 여의 · 진흡 · 이빈 · 유승 · 양명 · 왕통
155권 「송성등전(宋晟等傳)」
송성 · 설록 · 유영 · 주영(朱榮) · 비환 · 담광 · 진회(陳懷) · 장귀 · 임례 · 조안 · 조보 · 유취
156권 「오윤성등전(吳允誠等傳)」
오윤성 · 설빈 · 오성(吳成) · 김충 · 이영 · 모승 · 초례 · 모충 · 화용 · 나병충
157권 「김순등전(金純等傳)」
김순 · 장본 · 곽돈 · 곽진 · 정진 · 시차 · 유중부 · 장봉 · 주선 · 양정(楊鼎) · 황호 · 호공진 · 진준 · 임악 · 반영 · 하시정
158권 「황종재등전(黃宗載等傳)」
황종재 · 고좌 · 단민 · 장창(章敞) · 오눌 · 위기 · 노목 · 경구주 · 헌예 · 황공소
159권 「웅개등전(熊概等傳)」
웅개 · 진일 · 이의 · 진일 · 이당 · 가전 · 왕우 · 최공 · 유자(劉孜) · 이간 · 원걸 · 팽의 · 모봉 · 하훈 · 고명 · 양계종
160권 「왕창등전(王彰等傳)」
왕창 · 위원(魏源) · 김렴 · 석박 · 나통 · 나기 · 장선 · 장붕 · 이유
161권 「주신등전(周新等傳)」
주신 · 이창기 · 진사계 · 응이평 · 임석 · 황종 · 진본심 · 팽욱 · 하시 · 황윤옥 · 양찬 · 유실 · 진선 · 하인 · 진장 · 장병 · 송단의
162권 「윤창륭등전(尹昌隆等傳)」
윤창륭 · 경통 · 대륜 · 진조 · 유구 · 진감 · 종동 · 장륜 · 요장 · 예경 · 양선(楊瑄)
163권 「이시면등전(李時勉等傳)」 164권 「추집등전(鄒緝等傳)」
이시면 · 진경종 · 유현(劉鉉) · 형양 · 임한 · 사탁 · 노탁 추집 · 익겸 · 황택 · 범제 · 요양 · 좌정 · 조개 · 유위 · 단우 · 장소 · 고요
165권 「도성등전(陶成等傳)」 166권 「한관등전(韓觀等傳)」
도성 · 진민 · 정선 · 왕득인 · 엽정 · 오기 · 모길 · 임금 · 곽서 · 강앙 한관 · 산운 · 소수 · 방영 · 이진 · 왕신 · 팽륜 · 구반 · 장우
167권 「조내등전(曹鼐等傳)」 168권 「진순등전(陳循等傳)」
조내 · 광야 · 왕좌 · 손상 · 원빈 진순 · 왕문 · 강연 · 진문 · 만안 · 유후 · 유길 · 윤직
169권 「고곡등전(高穀等傳)」 170권 「우겸전(于謙傳)」 171권 「왕기등전(王驥等傳)」
고곡 · 호영 · 왕직 우겸 왕기(王驥) · 서유정 · 양선(楊善) · 왕월
172권 「나형신등전(羅亨信等傳)」
나형신 · 후진 · 양녕 · 왕래 · 손원정 · 주감 · 양신민 · 장기 · 마근 · 정신 · 백규 · 장찬 · 공용 · 등정찬 · 왕식 · 유병
173권 「양홍등전(楊洪等傳)」
양녕 · 석정 · 곽등 · 주겸 · 손당 · 범광
174권 「사소등전(史昭等傳)」
사소 · 무개 · 허귀 · 주현 · 구신 · 왕새 · 노감 · 유녕 · 팽청 · 강한 · 안국 · 항웅
175권 「위청등전(衞靑等傳)」
위청 · 동흥 · 하홍 · 유옥 · 구월 · 신영 · 조웅 · 풍정 · 장준 · 양예
176권 「이현등전(李賢等傳)」 177권 「왕고등전(王翱等傳)」
이현 · 여원 · 악정 · 팽시 · 상로 · 유정지 왕고(王翱) · 연부 · 왕횡 · 이병 · 요기(姚夔) · 왕복 · 임총 · 엽성
178권 「항충등전(項忠等傳)」 179권 「나륜등전(羅倫等傳)」
항충 · 한옹 · 여자준 · 주영(朱英) · 진굉 나륜 · 장무 · 황중소 · 장창(莊昶) · 추지 · 서분
180권 「장녕등전(張寧等傳)」
장녕 · 왕휘 · 모홍 · 구홍 · 이삼 · 위원(魏元) · 강진 · 왕서(王瑞) · 이준 · 왕규 · 탕내 · 강관 · 강홍 · 조린 · 팽정 · 방반 · 여헌 · 엽신 · 호헌 · 장홍지 · 굴신 · 왕헌신
181권 「서부등전(徐溥等傳)」 182권 「왕서등전(王恕等傳)」
서부 · 구준 · 유건 · 사천 · 이동양 · 왕오 · 유충 왕서(王恕) · 마문승 · 유대하
183권 「하교신등전(何喬新等傳)」
하교신 · 팽소 · 주경(周經) · 경유 · 예악 · 민규 · 대산
184권 「주홍모등전(周洪謨等傳)」
주홍모 · 양수진 · 장원정 · 부한 · 장승 · 완성 · 부규 · 유춘 · 오엄 · 고청 · 유서
185권 「이민등전(李敏等傳)」
이민 · 가준 · 황불 · 장열 · 사종 · 증감 · 양경 · 서각 · 이개 · 황가 · 왕홍유 · 총란 · 오세충
186권 「한문등전(韓文等傳)」
한문 · 장부화 · 양수수 · 허진 · 옹태 · 진수(陳壽) · 번형 · 웅수 · 반번 · 호부 · 장태 · 장내 · 왕경(王璟) · 주흠
187권 「하감등전(何鑒等傳)」
하감 · 마중석 · 육완 · 홍종 · 진금(陳金) · 유간 · 주남 · 마호
188권 「유천등전(劉蒨等傳)」
유천 · 여충 · 조우 · 대선 · 육곤 · 장흠(蔣欽) · 주새 · 탕예경 · 허천석 · 장사륭 · 장문명 · 범로 · 장흠(張欽) · 주광 · 석천주
189권 「이문상등전(李文祥等傳)」
이문상 · 손반 · 호관 · 나교 · 엽쇠 · 대관 · 황공 · 육진 · 하양승 · 하준
190권 「양정화등전(楊廷和等傳)」 191권 「모징등전(毛澄等傳)」
양정화 · 양저 · 장면 · 모기 · 정이 모징 · 왕준(汪俊) · 오일붕 · 주희주 · 하맹춘 · 풍희 · 서문화 · 설혜
192권 「양신등전(楊愼等傳)」
양신 · 왕사 · 장충 · 유제 · 안반 · 장한경 · 장원 · 모옥 · 왕시가 · 정본공 · 장왈도 · 양회 · 장찬 · 곽남
193권 「비굉등전(費宏等傳)」
비굉 · 적란 · 이시 · 고정신 · 엄눌 · 이춘방 · 진이근 · 조정길 · 고의
194권 「교우등전(喬宇等傳)」
교우 · 손교 · 임준 · 김헌민 · 진금(秦金) · 조황 · 추문성 · 양재 · 유린 · 장요(蔣瑤) · 왕정상
195권 「왕수인전(王守仁傳)」 196권 「장총등전(張璁等傳)」
왕수인 장총 · 계악 · 방헌부 · 하언
197권 「석서등전(席書等傳)」 198권 「양일청등전(楊一淸等傳)」
석서 · 곽도 · 웅협 · 황종명 · 황관 양일청 · 왕경(王瓊) · 팽택 · 모백온 · 옹만달
199권 「이월등전(李鉞等傳)」
이월 · 왕헌 · 호세녕 · 이승훈 · 왕이기 · 범총 · 왕방서 · 정효
200권 「요막등전(姚鏌等傳)」
요막 · 장정 · 오문정 · 채천우 · 첨영 · 유천화 · 양수례 · 장악 · 곽종고 · 조시춘
201권 「도염등전(陶琰等傳)」
도염 · 왕진(王縝) · 이충사 · 오정거 · 방양영 · 왕광 · 왕월 · 서문 · 장방기 · 한방기 · 주금 · 오악
202권 「요기등전(廖紀等傳)」
요기(廖紀) · 왕시중 · 주기옹 · 당룡 · 왕고(王杲) · 주용 · 문연 · 유인 · 손응규 · 섭표 · 이묵 · 주연 · 가응춘 · 장영명 · 호송 · 조병연
203권 「정악등전(鄭岳等傳)」
정악 · 유옥 · 왕원석 · 구천서 · 당주 · 반진 · 이중 · 구양탁 · 도해 · 반훈 · 여경 · 구양중 · 주상(朱裳) · 진찰 · 손무 · 왕의(王儀) · 증균
204권 「진구주등전(陳九疇等傳)」 205권 「주환등전(朱紈等傳)」
진구주 · 적붕 · 손계로 · 증선 · 정여기 · 양수겸 · 상대절 · 해일귀 · 양선(楊選) 주환 · 장경 · 호종헌 · 조방보 · 이수 · 당순지
206권 「마록등전(馬錄等傳)」
마록 · 정계충 · 장규 · 정일붕 · 당추 · 두란 · 엽응총 · 해일귀 · 육찬 · 소경방 · 유세양 · 위양필
207권 「등계증등전(鄧繼曾等傳)」
등계증 · 주제 · 양언 · 유안 · 설간 · 양명(楊名) · 곽홍화 · 유세룡 · 장선 · 포절 · 사정천 · 왕여령 · 양사충
208권 「장근등전(張芹等傳)」
장근 · 왕응진 · 소명봉 · 제지란 · 원종유 · 허상경 · 고제 · 장교 · 여산 · 위상신 · 여관 · 팽여실 · 정자벽 · 척현 · 유회 · 전미 · 홍원 · 주사겸 · 안경
209권 「양최등전(楊最等傳)」
양최 · 풍은 · 양작 · 주이 · 유괴 · 심속 · 심연 · 양계성 · 양윤승
210권 「상교등전(桑喬等傳)」
상교 · 사유 · 하유백 · 서학시 · 여여진 · 왕종무 · 주면 · 조금 · 오시래 · 장충 · 동전책 · 추응룡 · 임윤
211권 「마영등전(馬永等傳)」 212권 「유대유등전(俞大猷等傳)」
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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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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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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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331·332권 「서역전(西域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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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綎
( 1558년 ~ 1619년)
1. 개요2. 생애
2.1. 초기이력2.2. 임진왜란2.3. 사르후 전투
3. 평가4.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1. 개요

명나라의 장수. 자는 성오(省吾).

임진왜란과 명과 후금의 전쟁 명청전쟁에서 활약했다. 사르후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2.1. 초기이력

강서성 남창 사람이다. 13세부터 아버지 유현도 명나라 장수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병법을 배웠다. 개인적 무술이 뛰어나 마상에서 120근의 빈철도를 휘둘러 '천하의 유대도'로 불렸고, 흑호장군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기마궁술에도 능하였다.

명나라는 16세기에 여러 방면에서 외적과 내란이 발발하여 위기에 처했는데, 유정은 아버지를 따라 사천성의 남방민족인 구사만(九絲蛮)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주목받았다. 1582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가 이끌던 병마를 물려받아 사천성에서 주둔하였다. 이때 총병이 되었으니, 명나라군 계급으로는 위에서 두 번째이고, 실전부대를 이끄는 계급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바인나웅이 지휘하는 버마군이 운남성을 침입하자, 나중에 임진왜란 때도 참전하는 등자룡과 함께 버마군을 물리쳤다. 이후 운남에서 발생한 반란도 진압했다.

2.2. 임진왜란

선조실록에 나온 유정의 말에 따르면 왜구들과도 싸운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정유재란 이여송이 병부 상서 석성에 의해 탄핵당한 후 명군의 지휘권을 인계받아 총병이 되었다.[1]

부총병일 때는 이총병이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며 비난한 기록이 있으나, 본인도 2차 진주성 전투에 자신과 서로군을 보내어 지원한다고 말만 하고서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당시 조선 관군인 권율이나 이순신도 진주성의 구원 요청에 응하지 않는 상황이였다. 실제로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여한 이들은 전라도의 의병들뿐이었다.[2]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이 해전에 연전연승하고, 마귀와 양호의 조명 연합군이 직산 전투에서 승리하여 왜군의 진군을 막자, 유정 본인은 제독으로서 남해안의 왜군을 소탕하는 전략으로 사로 병진 작전을 세웠다.

강화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선조 27년(1594), 명나라 조정에서 유정의 군대에 귀환할 것을 명하였으나 남원으로 남하해 주둔하며 의도적으로 철수를 지체하며 강화협상의 정세를 관찰하기도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이번에 유 총병(劉摠兵)이 영남(嶺南) 백성들의 굶주림을 생각해서 쌀과 콩을 멀리서 운반해 와 진휼했는데, 그 뜻이 참으로 범연하지 않습니다. 비변사에서 문안관(問安官)을 시켜 치사(致謝)하려고 하는데 온당치 않을 것 같으니, 승문원으로 하여금 오늘 중에 게첩(揭帖)을 만들게 하여 내일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
선조실록 선조 27년(1594) 8월 1일자 2번째 기사
접대 도감(接待都監)이 아뢰기를,

"유 총병이 아랫사람 다루기를 매우 엄격하게 해서 부하 군사가 도성(都城)에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염장(鹽醬)도 스스로 사먹었습니다. 근래 시중(市中)에는 염장이 희귀해져서 많은 군사들이 바꾸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부 중군(傅中軍)이 접반사 김찬에게 말하기를 '군중(軍中)에서 소금을 구할 수가 없으니 구해서 공급하라.' 하였습니다. 해사(該司)로 하여금 급속히 마련해서 제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선조실록 선조 27년(1594) 8월 17일자 6번째 기사
전술했듯 탐욕스럽고 교만하다는 명사의 평가와, 일본군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겨 퇴로를 열어준 사실 등 부정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많은 인물이지만, 바로 위의 실록 기사에서 보듯 굶주림에 시달리는 영남(嶺南)지방의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쌀과 콩 등의 양곡을 멀리서부터 운반해 오기도 하였고, 조선의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휘하 제장들을 엄히 단속하는 등[3], 덕장의 면모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4]

사로병진작전의 일환으로 조명 연합군 육군 수군이 순천 왜성에서 본인과 힘을 합쳐 고니시 유키나가를, 사천에서 명나라 장수 동일원 시마즈 요시히로를, 명나라 장수 마귀가 울산성에서 가토 기요마사를 쓰러트리는 작전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 작전이 성공했다면 남해안의 왜군을 모두 박멸하고 전쟁을 완벽하게 승리하는 전략이 될 뻔했다.

그러나 마귀가 울산성 전투에서 1차, 2차 전투 모두 열심히 싸웠으나 적의 원군 때문에 아쉽게도 울산성을 점령하지 못했다. 사천에서는 나름 영하의 난을 평정한 공이 있던 장수였던 동일원이 다수의 병력에도 불구하고 군량창고 방비도 제대로 못해서 군량을 태워 먹고, 병량 부족으로 조급하게 싸우다가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패했다.

유정 본인은 순천에서 육로로 진군하여 먼저 계책으로 회담을 진행한다고 속이고[5] 고니시 유키나가를 사로잡으려 했으나 이를 눈치챈 고니시 유키나가 본인이 나타나지 않아서[6] 계책이 실패한 후 좌협 이방춘이 기병을 거느리고 먼저 적의 길을 차단하니 적은 먼저 두장수를 보호하여 성안으로 들어가고, 미쳐 성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길에서 육박전을 벌였고, 왜교성 외각 입구에 있던 왜군들이 조총으로 공격했다. 이에 명나라는 왜군 수급 98급을 베었다. 하지만 명의 피해도 많았다.[7]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는 공성병기를 거느리고 성을 공략했으나, 공성병기가 너무 무겁고 왜군이 조총을 쏘아대는 바람에 성에 접근도 하지 못했다. 이후 대장기를 내리고 아무런 지휘도 내리지 않고 병졸들은 공성병기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틈타 일본군이 명군을 공격하자 부총병 오광이 이끄는 군대가 놀라서 도망쳤고[8] 이방춘이 이끄는 군대가 이를 겨우 막아냈다. 이날 명군의 전사자는 800명이었다.

게다가 유정은 그 와중 병사들에게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조선 여인이 왜군이 조명연합 수군을 상대하느라 성 북쪽은 모두 비어 있다고 말하고 이에 조선 장수들이 성을 공격하자고 했는데도, 유정은 이를 무시했다. 심지어 명군의 장수들도 유정을 업신여겼다고 한다.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뇌물을 받고서 남원에서 기생질이나 하고 남원에 관우 묘나 만들면서 전쟁을 회피했다.[9]
우의정 이덕형이 치계하였다.

"유 제독이 2일 왜적의 성을 공격할 때 모든 군사가 성 아래로 60보쯤 전진했는데, 왜적의 총탄이 비 오 듯하자 제독은 끝내 깃발을 내려놓고 독전하지 않았습니다. 부총병 오광의 군사들은 대장의 호령이 있기를 기다리다가 순거(楯車)에 들어가 잠자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조수는 차츰 빠지고 수군도 물러갔습니다. 왜노들은 육군이 일제히 진격하지 않는 것을 보고 밧줄을 타고 성을 내려와 오광의 군대를 공격하여 20여 명을 죽이자 오광의 군대는 놀라서 100보쯤 후퇴하고 각 진영의 사기도 모두 떨어졌으니, 그날 한 짓은 아이들 장난과도 같았습니다. 독전하지도 않고 또 철수도 하지 않아 각 군으로 하여금 반나절을 서서 보내게 하고 다만 왜적의 탄환만 받게 했으니, 제독이 한 짓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10월 12일자 5번째 기사
유 제독이 2일 왜적의 성을 공격할 때 모든 군사가 성 아래로 60보쯤 전진했는데, 왜적의 총탄이 비오듯 하자, 제독은 끝내 깃발을 내려놓고 독전하지 않았습니다. 독전하지도 않고 또 철수도 하지 않아 각 군대로 하여금 반나절을 서서 보내게 하고 다만 왜적의 탄환만 받게 했으니, 제독이 한 짓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3일 수군이 조수를 타고 혈전하여 대총으로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의 막사를 맞추자 왜인들이 놀라고 당황하여 모두 동쪽으로 갔으니 만약 서쪽에서 공격하여 들어갔다면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습니다. 김수가 문을 열어 젖히고 싸우자고 청하였지만, 제독은 노기를 띠고 끝내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았습니다. 성 위에서 어떤 여자가 부르짖기를 '지금 왜적이 모두 도망갔으니 중국 군대는 속히 쳐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기회가 이와 같은데도 팔짱만 끼고 지나쳤으니, 제독이 행한 일은 참으로 넋을 빼앗긴 사람과 같아서 장수와 군졸들이 모두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이덕형의 장계

결국 이순신 진린의 수군만이 단독으로 군대를 움직이고 장도 해전( 왜교성 전투)이 일어났는데, 이순신은 아군이 뒷통수를 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10] 이후 동일원의 패전 소식을 듣고 유정 자신도 병사를 이끌고 물러난다.[11] 사로병진 작전이 실패하고 왜군은 전력을 거의 온존한 채로 노량 해전이 일어나는데, 임진왜란 종결 이후에는 본국으로 귀국하여 사천에서 양응룡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응룡의 군대를 무찌르고 양응룡의 난을 진압했다.

명나라군은 왜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게 목적이라 굳이 철수하는 왜군을 추격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데 반해, 조선군은 돌아가는 왜군을 모두 섬멸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이 작전상 이견이 있었다. 이 때문에 철수하는 일본군 추격에 소극적인 유정이 이순신의 전사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대립에도 불구하고 유정은 이순신을 좋게 평가했으며, 종전 명나라로 철수하기 전, 후 선조가 송별회를 열어주자 “감사합니다. 재차 나와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이순신(李舜臣) 같은 자들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라고 말한 기록이 남아있다.(<선조실록> 1599년[선조 32] 1월 29일)

2.3. 사르후 전투

이후 발호하는 후금군을 막다가 마귀의 아들도 후금군에 의해 분사하고 요동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명은 양호를 총대장으로 하고 10만의 군대를 60만이라고 과장하면서 후금을 무찌르기 위한 사르후 전투를 준비하는데, 문제는 징비록에서 적을 경시하는 성향이 있다던 양호가 크게 많지도 않은 병력을 4개로 쪼갰다.[12] 그 중 한 부대인 이여백의 군대는 이여백이 누르하치의 일족이었기 때문에 내통 의혹이 있었으며, 특히나 유정은 양호가 유정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꼴랑 병력 수천 명만 편제받아[13] 가장 험지에 보내었다. 이 때문에 4로군인데 전쟁하기도 전에 벌써 2개 부대의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다.

특히나 유정의 명군이 조선군과 거의 함께 편제되어 있었기에 강홍립과 유정의 대화 내용이 광해군 일기에 상세히 기록되었다. 이때 강홍립이 유정에게 병력이 얼마냐고 묻자 유정은 서남 방면은 수만인데 이쪽은 수천밖에 없다고 말하고는 '내가 이끌던 사천 지역의 강병을 요청했는데 양호와 사이가 나빠 거절당했다. 아마 양호는 나와 사이가 나쁘니 내가 죽기를 바랄 것이다. 나야 나라로 부터 받은 은혜가 있으니 나는 죽기를 각오했지만, 내 아들들은 아직 국가의 녹을 먹지 않았으니 데리고 오지 않았다.' 하며 오로지 조선군을 의지할 뿐이라고 말하였다.[14]

그런데 대체 왜 이리 빨리 진군하냐고 강홍립이 묻자. 양호가 천시를 얻었다며 군령이라는데 어쩌겠냐고 유정이 대답했다. 심지어 강홍립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 측 병력에 대포와 대기도 없었던데다가, 지형 상태도 안 좋았다고 한다. 이에 광해군도 패배를 예측하고는 "조선의 군사들이 죽을테고 패배하면 저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변란이 닥칠 텐데 어쩌냐" 하며 비밀리에 비변사에 전교한 내용이 조선 왕조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광해군이 비변사에 전교하고 바로 다음 날에 이여백이 유정에게 보낸 사로군의 마림 군과 두송 군이 이미 전멸했다. 퇴각하라는 신호 또한 험한 지형 때문에 유정 군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로 아부다리 전투가 시작되었다. 후금군의 병력 규모는 이전 전투와는 다르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참전한 장수진이 다이샨 홍타이지, 망굴타이로 각기 팔기 중 한 기씩 거느리는 장수였으므로[15] 병력 규모는 2만 내외, 다만 조선의 이민환의 책중일기에는 3만으로 나온다.

이 전투에 누르하치 본인이 참전하지 않았던 것만 해도 후금군은 이미 승리를 자신했던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유정 군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군과도 따로 떨어져서 행군하다가 기습당해 격파당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유정은 남아 있는 화약과 장작을 쌓고 휘하 제장들과 함께 자폭했다고 한다. 만주족 기록에는 잡아죽였다고 나오므로 분전하다 사망했다는 등 이설은 있지만 어쨌든 처참하게 전사했다.[16]

명군이 전멸한 후 광해군의 예측대로 강홍립 김경서가 이끄는 조선군 역시 9천 명과 부원수 김응하가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고 후금군에게 항복했다.[17] 청나라 기록에는 조선군과 명군이 함께 싸웠다고 하지만 이민환의 책중일기나 명측 기록을 보면 명군이 전멸 후 조선군이 격파당한 모양이다.

3. 평가

명나라에서는 탐욕스럽고 교만하나 명나라의 모든 제장 중 가장 굳세고 용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명사明史 권247.) 정유재란을 예측한 것이나 평소 언행, 그리고 그의 전략 전술들을 볼 때 실제로는 맹장보다는 지장에 가깝다.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장수지만, 명나라와 조선의 전략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므로 딱히 유정을 탓할 수는 없다. 어쨌든 명군은 나름대로 열심히 싸워 일본을 조선에서 몰아내는 데 한몫했기 때문이다.

청의 건륭제는 자신들의 만주족에 맞서 싸운 유정이 항복하지 않고 전사했음을 높이 평가하여 충장이라는 시호를 추증했다.

이후 중일전쟁 시기 일본군이 안후이 성 리신 현에 있는 유정의 사당을 보고 그의 묘지와 사당을 폭파했다. 유정의 사당 앞에 왜구를 평정했다는 대목이 일본군은 기분이 나빠서 사당을 부순 것이다. 중일전쟁 후 이 사당은 재건되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손호균[18]이 연기했다. 양호/진린과 회의하면서 사로병진을 위해 수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면서도 수군을 이끌고 합류하려는 진린에게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됐으니 우리 수군을 굳이 투입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이순신을 높이 평가했다.

유정은 내가 이순신을 좀 아는데 이순신은 탁발한 장수라서 명나라 수군 장수 10명을 들이대도 당해내기가 어렵다면서 조선 함대가 한번 궤멸된 줄 이미 아는 상황이었는데도 어차피 이순신이 이길 건데 굳이 우리 군사들을 죽게 할 필요가 있냐는 논리를 펼쳤다. 진린이 불쾌해하자 이순신은 너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 니가 이순신과 견주어져서 너한테 좋을 게 없다고 우려인지 욕인지 모를 언사를 했고 진린은 분노한다.

결과적으로 양호는 이순신이 아무리 잘났어도 이순신 함대만으로 일본 수군을 전멸시킬 수는 없으니 그냥 투입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왜교성에서 자기가 먼저 제안하여 연합작전을 펼치기로 해놓고 고니시의 요청대로 진린에게 너무 깊숙이 들어오지 말라고 알린 후 성을 공격하는 척만 했다. 그런데 진린은 유정이 자기 혼자 공을 세우려는 걸로 착각하여 이순신의 신호를 무시하고 개돌했다가 큰 피해를 냈고, 이걸 숨기기 위해 조선 조정에 이순신을 모함한다. 이후 진린마저 이순신에게 감복하여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바뀌자 또 다시 이순신을 모함하여 선전관이 내려오게 만든다.
사르후에서는 정경찬이 연기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언급한다


[1] 참고로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 강화를 요청할 때 명나라 장수들이 모두 철군을 주장했으나, 오직 유정만이 일본이 다시 쳐들어올 것을 예측하고 철군에 반대했다. 그리고 명군이 철수하고 일어난 전쟁이 바로 정유재란. [2] 수만을 보내었으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등에게 패배했다는 이설도 있기는 하다. 다만 징비록에는 명군이 구원하지 않았다고 하니 아무래도 척후나 선발대 몇 명 보냈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으니 지원하지 않은 듯하다. [3] 명군이 조선 백성에게 피해를 끼치면 백성들이 자신에게 고발하라고 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에서 명나라 파병군이 저평가받는 이유가 조선에서의 약탈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행동이었던 셈이다. [4] 드라마나 소설 속 캐릭터들과 달리 실제 인물들은 영웅이라고 해서 무조건 영웅답지는 않고, 소인이나 악당이라고 해도 밑도 끝도 없이 소인이나 악당인 것도 아니다. [5] 9월 19일에 검단산성에 주둔한 유정은 고니시에게 9월 20일에 서로의 중간지점인 해룡창에서 만나 강화협상을 하고, 서로 화해하자고 합의하였다. 유정은 이를 계기로 고니시를 사로잡을 욕심으로 기패관 왕문헌을 유정 제독이라 속이고, 우후 백한남을 권율 도원수라 속여서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 명나라의 병사들이 고니시가 진영에 도달하기 전 지레짐작으로 포를 쏘았고 이를 눈치챈 고니시가 성으로 도주했다. [7] 일본 측 자료에 의하면 명나라 중상자, 전사자를 베어온 수급이 270급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8] 이덕형의 장계에 이 내용이 있다. [9]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8년 10월 6일자 기록에는 권율로부터 유정의 태업을 전해듣고 분노를 금치 못하는 내용이 나온다. [10] 다만 그래도 이순신의 참가 전투답지 않게 피해가 엄청 컸는데, 왜군 함선 30척을 격파하고 3천여 명을 전사시켰지만, 명 함선도 30여 척이 파괴되었고 2300명이 사망해 조선군도 진린과 명군을 구원하다가 130명이 전사했다. [11] 물러난 자리에는 병기와 식량이 가득했다고 한다. [12] 단순히 적을 우습게 봐서 부대를 나눈 게 아니다. 원활한 보급을 위해서 나뉘어 진격했는데, 진짜 문제는 4부대가 모일 집결지를 너무 깊게 잡은 것이었다. [13] 조선 왕조 실록의 강홍립의 말에 따르면 수천, 현재 중국 측의 예상 숫자는 1만 3천. [14] 선조실록에도 양호가 마귀와 유정과 사이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실력도 없는 놈이 명나라 최고의 명장이던 자신들보다 위에 있으니 사이가 안 좋음이 당연했다. [15] 추잉 사후 사실상 장남 역이었던 다이샨은 두 기. [16] 조선 측 기록에서는 패색이 짙어지자 휘하 장수들과 함께 집단 자폭하였지만, 만주족 측 기록에서는 유정은 아부다리 강에서 후금군과 싸우던 와중 처음에는 왼쪽 팔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으나 고통을 참으며 화살을 뽑고 한쪽 손으로 대도를 휘둘러 후금 병사 수십 명을 연달아 베어 살해했다. 유정은 얼굴이 갈라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수많은 후금의 장졸들을 죽였다. 후금의 암바 바일러 다이샨이 군사들에게 일제히 유정을 향해 활을 쏘라고 명을 내리자 유정은 마침내 화살을 몸에 무수히 맞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17] 이후 김경서는 조선으로 도주하려다가 강홍립의 고발로 처형당하였다. [18] 찬란한 여명에서 위안스카이를 연기한 바 있어서,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군에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한 유정이 훗날 위안스카이로 환생하여 후금의 후신인 청나라에 복수했다는 배우 개그가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