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 |
<colcolor=#005ba6,#59b3ff><colbgcolor=#f0f0f0,#191919> 후보 | <colbgcolor=#fff,#1f2023> 경선 ( 더불어민주당 · 자유한국당 · 국민의당) |
대권주자 · 최종 후보 | |
여론조사 | 여론조사 · 출구조사 |
변수 | 변수 (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TV 토론회 |
결과 | 개표 결과 (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결론 |
기타 | 타임라인 · 2017년 5월 보궐선거 |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1. 개요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정당별 결과를 분석한 문서. 대선 승자인 문재인 후보가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모두가 향후 난국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1] 승자인 더불어민주당도 여소야대에 비록 다자구도이지만, 40%를 겨우 넘은 41.1% 득표율 등을 감안하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58.9%는 다른 정당 지지자이기 때문이다.물론 그렇다고 5자 구도에서 득표율 40%를 넘었다는 것이 결코 폄하될 만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5자 구도에서 40%라는 득표율은 많은 평론가들이 분석한 것처럼 올라갈 대로 올라간 현실적으로 최대치에 가까운 수치일 수도 있다는 것. 이번 19대 대선은 사실상의 5자 대결로 대부분이 양자 구도로 펼쳐졌던 이전의 대선과는 구도 자체가 전혀 다른 데다, 가장 약체로 평가받던 유승민, 심상정 후보만 해도 초창기부터 둘을 합치면 적어도 10%는 얻을 것으로 예측되었을 정도로 소신투표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았다.
이러한 조건에서 문재인 후보가 41.1%를 기록한 것을 전임 대통령들의 득표율과 비교하며[2] 평가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는 것.[3] 거기다 득표수로 따지면 문재인은 역대 당선자 중 박근혜에 이어 2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고, 박근혜의 경우 18대 대선이 사실상 완벽한 좌우 양자구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반면 문재인은 5자 구도의 틀 안에서 안철수가 호남 표를 일부 잠식하고, 심상정이 진보 표를 어느 정도 가져갔으며, 집권을 위해선 확장해야 하는 중도층 표도 안철수와 유승민에게 분산되는 상황이었음에도 1,300만이 넘는 막대한 득표를 얻은 것이니[4] 단순히 득표율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
문재인 캠프 측에서 가장 우려했던 선거 구도는 문재인vs안철수 양자 대결 구도였을테지만[5][6] 결국 그런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선거 결과 여유롭게 당선된다.
2. 원내 정당
2.1. 더불어민주당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기뻐하는 추미애, 이해찬, 송영길과 당 지도부
더불어민주당은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시절을 포함해 직선제 이후 대통령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화 없이 승리를 일궈냈다.[7]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은 선거 기간 내내 그 지지층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승리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호남에서의 지지세를 완벽하게 회복함과 동시에 경남에서도 표차가 줄어들었고, 부산, 울산, 강원 등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지역구도를 상당수 깨뜨렸다. 지역별로 고른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대선을 넘어 향후 민주당의 활동에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하며 세대별 대결에 집중한 것이 확실히 주효했다.
이번 대선에서의 가장 큰 성과는 다른 세력과의 단일화 없이 역대 최다 표차인 5,570,951표라는 엄청난 차이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두 번의 선거에서 김대중, 노무현 후보는 각각 김종필, 정몽준과 단일화를 하여 중도보수로의 외연확장을 하여 간신히 승리를 거머쥐었는데[8], 이번 선거에서는 어떠한 단일화도 없이 독주체제로 선거를 치러 17.05%라는 엄청난 격차로 가볍게 승리를 했기에 진정한 정권교체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들 수 있었던 것이다. 2007년 12월 19일에 치른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이 한나라당의 이명박에게 5,317,708표 차이로 대패했던 것을 정확히 9년 6개월 만에 원금에 이자까지 제대로 쳐서 자유한국당에 정산해준 셈이 되었다. 그러니 그 기쁨은 두 배가 될 것이다.
지역별로 따져보면 문재인 후보는 수도인 서울특별시에서 42.3%(2,781,345표)로 1위를 차지했고 최대 승부처인 경기도에서도 42.1%(3,199,812표)로 1위, 인천광역시에서도 41.2%(747,090표)로 1위를 차지했다. 수도권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곳은 인천광역시의 강화군과 옹진군, 여주시, 포천시[9], 연천군, 양평군, 가평군까지 단 7곳에 불과했다. 수도권 다음으로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부울경에서도 부산광역시에서 38.7%(872,127표), 울산광역시에서 38.1%(282,794표)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경상남도에서는 36.7%(779,731표)로 2위에 그쳤지만 그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한 홍준표 후보와는 단 0.5%밖에 차이나지 않는 초박빙 접전을 벌였다.[10] 국민의당을 상대로 진정한 민주당의 적자가 누구인지를 심판해 줄 지역인 호남에서도 안철수 후보를 더블 스코어 차로 물리치며 호남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이 곧 민주당의 진정한 적자임을 인정받았다. 광주광역시에서 61.1%(583,847표), 전라남도에서 59.9%(737,921표), 전라북도에서 64.8%(778,747표)로 60% 안팎의 득표를 올리며 각각 30.1%, 30.7%, 23.8% 득표에 그친 안철수 후보를 더블 스코어 차로 물리쳤다. 대선 때마다 알쏭달쏭한 표심을 보여준 충청권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충청남도, 세종특별자치시 두 곳을 합쳐 40%(554,428표)의 득표율을 올려 1위를 차지했고 충청북도에서도 38.6%(374,806표)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보수 정당의 제 2의 텃밭인 강원도마저도 34.2%(324,768표)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11] 실상,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등 대경권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한 통합 대통령이 된 셈이다.
18대 대선에서의 득표율 추이와 비교해보면, 18대 대선 때 박빙의 승부를 보여줬던 지역에서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대략 20%p 차이로 누른 경향을 확인할 수 있고, 이게 두 대선의 비교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게다가 당내에서 어떠한 잡음도 없이 당 차원에서 똘똘 뭉쳐 일관적인 선거 전략을 취한 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다. 수치상의 득표율보다 더 의미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그 스스로가 민주화에 앞장선 거대 인물로서 당 내 독주 체제였지만 1987년 김영삼과의 결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민주화 세력의 상당수와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겪었고 결국 민주화 세력의 상당수를 독재 후신 경쟁 정당인 한나라당에 내줘야 했기에 매끄럽게 선거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없었고[12],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단협으로 시작되는 엄청난 당내 분란 속에서 선거를 치러 민주당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는 커녕 시작부터 끝까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시기였다. 결국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대북 송금 특검으로 당이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었고, 끝끝내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채 훗날 민주당계 정당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갈라지는 씨앗이 되어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아왔다. 또한 이후에 패배한 두 선거에서도 당내의 끝없는 분열과 갈등 끝에 당내에서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선거를 펼쳤다.
반면에 이번에는 당내에서 분란을 조장했던 인물들의 대다수가 국민의당으로 미리 갈라져 나가는 바람에 큰 잡음 없이 선거를 치렀고,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인 지지율을 유지한 덕분에 기존의 당내 반문 세력까지 그대로 흡수하면서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압도적인 승리에 도움을 줬다. 이러한 선거 과정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당내에서 큰 잡음 없이 일관되게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분명히 민주당 안에서도 의견 차이와 경선 과정에서의 갈등이 없을 리가 없는데도 당내 인물들 스스로가 내분을 자제하고 일관된 행보를 보여준 것은, 향후 민주당에 대한 신뢰도를 유권자들에게 크게 심어줬을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큰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보여준 것이었기에 선거에서의 승리를 넘어 정당의 미래까지 밝힌 긍정적 요소로 평가받았다.
일편단심 보수 성향인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를 깨버린 건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대단한 업적이다. 물론 보수 지지자들의 절대 성역인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는 끝내 건들지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이 부산과 울산을 더불어민주당에게 빼앗김으로서 정당의 존폐를 걱정하게 만들 정도로 큰 위협을 가했다. 지지율을 떠나서 더불어민주당이 부산과 울산에서의 1위는 가히 국민이 무슨 당을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이끄는 차기정부는 최대한 국민의당, 정의당과 같은 기존 야권계 정당과의 협치를 중심으로 보수결집을 최대한 막으면서 지방선거 준비를 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고 보면 되겠다. 또한 정권 초기에 있을 내각 구성과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수사와 재판과정, 무너진 대한민국의 기강등을 정비하면서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전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국정농단과 그로 인해 무너진 정부의 기강과 권위를 다시 세워야 하는 일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준비/인수 기간도 없이 전부 떠맡은 상황.[13]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오죽하면 대선 전에 전원책이 썰전에서 차기 정권에서는 잘하고도 욕을 엄청 먹을 것이라고 하며, 왜 이런 어려운 자리를 서로들 하려고 난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14] 정부에 혹독한 평가를 하는 전원책 입장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결국 이번 문재인 정부의 행정능력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의 진정한 수권 능력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적폐청산'이 자칫 보복으로 변질될 경우 새 정부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공약을 걸었던 청산과 개혁이 미적지근할 경우, 오히려 고정 지지층의 강한 불만을 초래할 수 있으니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선 승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이 컸던 만큼 이를 온전히 자신들이 잘 해서 거둔 승리로 오판하게 되면 2018년 7회 지선, 나아가서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0년 지방 선거와 2011년 보궐 선거의 승리에 취해 있다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맞았는 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TK와 60대 이상 유권자들에게는 여전히 20% 초반대의 득표율에 머물러 아직도 지역 갈등, 세대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 이러한 한계를 문재인 정부 아래에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가장 큰 숙제로 남게 되었다. 경남의 경우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줄곧 타 정당 후보들과 큰 격차로 1위를 유지하다 막판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의 결집으로 결국 0.5% 차이로 1위를 내준 것은 민주당 입장에선 뼈아프게 느껴졌다. PK 지역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보수주의, 지역주의, 세대갈등과 막판 보수 결집 효과가 무섭다는 것을 선거 결과를 통해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선이 끝나고도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는 커녕 안철수에게 반사이익을 내줘 갑자기 양강 구도로 추격을 허용하게 된 점, 안철수 후보가 연이은 삽질을 거듭하며 지지율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지지율이 제자리를 걸었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게 되었다. 역대 모든 선거에서는 양당을 가리지 않고 마지막 여론조사보다 실제 득표율이 5% 내외는 더 높게 나왔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개인이 받았던 최고치보다 오히려 5% 가량 줄어든 득표율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선거를 앞두고 2~3주간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 추세를 보였으며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나온 40% 지지율을 더 올리지 못하고 이 수치 그대로 득표율을 받았다. 처음부터 높은 지지율로 고공행진을 보였기에 막판 지지층이 이완되어 표의 분산이 크게 일어난 것이다.
결국 민주당 입장에서는 막판 보수 결집을 방어하고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이 중요한 필승 카드로 남게 되었다. 이번처럼 특수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에선 압도적인 격차가 났기에 넉넉한 승리를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정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이어질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5자구도에서 41%라는 득표율과 역대 최다 표차라는 타이틀은 분명히 대단한 성과였지만, 세부적으로는 이러한 한계점이 곳곳에 드러났기에 향후 선거에서도 이러한 구도가 이어질 경우 여유롭게 앞서가다가 막판에 뒤집히는 결과를 충분히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상 처음으로 20대의 지지율이 30~40대보다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났는데, 떠나간 일부 20대 표심을 사로잡는 방법 또한 요구된다.
2.2. 자유한국당
낙담하는 정우택 원내대표와 안상수, 원유철 공동선대위원장. |
우선 대선 당일 밤 10시 30분경 홍준표 후보가 출구조사의 결과를 승복하고 받아들이며 자유한국당의 복원에 만족하겠다고 연설했다. 언론에서는 사실상 패배를 인정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대선에서 전국정당으로써의 존재감을 위협받을 정도로 패배했다. 그동안 보수당계 정당 역사에서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진 선거는 전무했는데, 물론 탄핵 직후에 열린 선거였고 선거전 초반에는 15%는 커녕 심지어 10% 득표도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는 점에서 이 부분에서는 선전한 점이 분명 있지만, 과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펼쳐진 17대 총선에서도 지역기반만큼은 지켜냈던 보수정당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대패임이 분명하다. 가히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겪었던 상황과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이 겪었던 상황을 10년 이후 자유한국당이 그대로 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세부적인 결과를 보면 오히려 17대 대선의 정동영 후보보다 홍준표 후보가 더 심각하다. 물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도 선거 결과 호남 자민련 수준으로 텃밭인 호남만 간신히 지키긴 했지만, 그래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에선 80% 가까운 득표율을 보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홍준표의 경우 텃밭인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조차 50% 언저리에 묶였으며,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는 20% 후반~30% 초반에 그치며 아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함락당했다.[15] 경상남도 또한 득표율 40%를 넘지 못하고 문재인과 접전 끝에 0.5% 차이로 간신히 이겼을 정도였다. 즉, 텃밭인 호남이라도 완벽하게 지키며 버틴 정동영과 텃밭인 영남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 홍준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3당 합당이후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의 지역기반이 이런 식으로 무너져 내린 것은 가히 역사에 남을 대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16][17]
그나마도 민주당계 정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안철수가 문재인의 표를 상당 부분 갈라먹은 게 있어서 그나마 557만 표 차이로 패배했을 뿐이고 문재인과 안철수의 표를 합치면 무려 1,257만 표 차이로 크게 불어나 홍준표 후보가 얻은 표보다 1.5배 더 많아질 정도다. 게다가 당시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의 범개혁진영 표는 35%였던데 비해, 이번 이재오, 홍준표, 유승민, 조원진,
일각에서는 17대 대선에서 패한 정동영에 15대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후보까지 합쳐놓은 거 같다는 평가도 나올 정도. 결론적으로 보수표는 홍준표의 지대한 삽질과 막말이 겹치는 바람에 보수표를 제대로 가져와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네 명이 TK표를 나눠가지는 바람에 자유한국당이 TK에서 50%를 못 넘는 유래없는 참패를 당해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도 참패도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선거전 초반에는 고작 10% 이하의 지지율이 나오면서[20] 아예 정의당이나 바른정당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으니까.
반면, 그나마 위안이라면 선거 결과 2위를 하며 국민의당과의 대결에서는 승리함으로서 그래도 보수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기록한 24.03%라는 득표율이 자유한국당 및 홍준표 입장에서는 선방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홍준표 후보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유리한 상황에서도 3위로 낙선하면서 당내에서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은 안철수 후보와는 달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2위로 선거를 마감한 덕에 향후 당내에서 입지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거둔 거의 유일한 소득이다.
홍준표 본인은 낙선한 사람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엄청나게 해맑고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었는데 저건 홍준표가 미친 게 아니라 홍준표 본인이 스스로 " 그래도 당은 살려내서 다행이다."라고 말해 왜 본인이 낙선하고도 싱글벙글하는지를 설명했다. 한 자릿수 지지율로 멸망 직전까지 갔던 당을 끝내 최종 2위로 올려 기본적인 지지기반은 회복했다고 스스로 평가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대선 직후에 홍준표는 당대표까지 올라갔는데, 이는 당 차원에서 최악의 대패라는 평가를 내렸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대선의 패배를 홍준표에게 전가했을테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홍준표 본인이 잘했다기보단 안철수 후보가 여러 영향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자유한국당은 강한 쇄신과 절대적인 분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마디로 생명줄만 겨우 유지한 셈. 참고로 자유한국당은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당사를 담보로 230억 원을 대출했는데, 이번 선거에서 24%를 득표하면서 선거 비용을 모두 보전받아 다행히 당사가 사라지는 것은 막게 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대구, 경북, 경남을[21] 제외한 전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했다.
우선 수도권부터 보면, 서울 경기 인천 전역에서 20.79%의 득표율에 그쳐 지난 대선 득표율(49.62%)보다 무려 29% 가까이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부촌지역 절대 다수에서 참패를 했는데, 서울 전체에서 홍준표가 이긴 동은 고작 13개동에 불과했다. 그나마 2개동은 중구 4대문안으로 고령화가 심한 지역이었다. 홍준표가 이긴 동네는 중구 2개동, 용산구 1개동, 영등포구 1개동, 서초구 2개동, 강남구 6개동, 송파구 1개동으로 강남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 동부이촌동, 이태원동, 서초1~3동, 반포본, 1, 3, 4동, 방배4동, 역삼동, 삼성2동, 대치2동, 오륜동, 문정1동, 문정2동, 잠실4동, 잠실6동 등등 서울 부촌의 절반 이상 지역에서 문재인이 1위를 했다. 홍준표가 앞선 부촌 지역에서도 득표율은 30%대 초반에 그쳤으며, 그나마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압구정동마저 41.9%에 그치면서, 이들 지역에서 60~70% 정도를 꾸준히 얻었던 과거에 비하면 수치스러울 만큼 몰락했다.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외곽 지역의 5개 시군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참패했다. 부촌 및 보수강세지역[22], 중간권역 전부,[23] 일부 외곽도시[24] 등 전통적인 수도권 보수 강세지역이 대거 넘어가는 대패를 했다. 인천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선 부평구, 계양구를 제외한 전지역에서 이겼지만 이번엔 강화군, 옹진군만 남기고 전부 패배했다. 구도심 지역에서도 일부 동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패하면서 수도권에서는 사실상 노년층을 제외하면 기반이 꽤 상실되었다.
그뿐 아니라 보수정당 텃밭이었다가 신도시 개발로 민주당세가 강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도농복합지역 및 1기 신도시로 인해 보수세가 만만치 않던 화성시와 고양시 일산서구가 홍준표 후보가 최저 득표율로 진 5대 지역에 들어가게 되었고, 서울 지역에서 보수세가 만만치 않았던 서대문구와 노원구가 금관구 같은 민주당계 정당 강세 지역처럼 홍준표 후보가 최저 득표율로 진 5대 지역에 들어가게 되었을 정도로 큰 패배를 당했다.
강원도 역시 만만치 않게 타격을 받았다. 횡성군을 제외한 영서 지역에서 전패했고, 심지어 영동지방에서도 속초시를 빼앗겼다. 또한 영동 지역에서도 삼척, 양양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5% 이내의 격차로 박빙 승부를 벌였는데, 특히 정선군에서는 1위를 거두기는 했으나 2위 문재인 후보와의 표 차이가 53표에 불과했다. 충청권에서도 모든 시 단위에서 패배한 것은 물론 박근혜의 어머니 육영수의 고향 옥천군을 비롯해 음성, 진천, 증평, 홍성, 금산, 서천, 태안 등등 절반 이상의 군 지역에서도 문재인 후보에게 졌다. 특히 대전에서 20.3%, 세종에서 15%에 그친 것은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도시 지역에서는 발붙일 곳이 사라졌음을 유권자들이 스스로 보여주었다.
호남에서도 대략 10% 가량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이번엔 광주 1.55%, 전북 3.34%, 전남 2.45%에 그쳤다. 20대 총선 때 당시 이정현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호남에서의 교두보로 여겼던 순천시조차 대선에서는 지지율이 2.5%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그나마 호남에 있던 극소수의 기반마저 완전히 날아가고 말았다.
이전엔 보수정당의 지지세를 견인했던 부산경남 지역에서 무려 10만 표 차이로 패배했는데, 이는 30년 만에 보수 정당이 민주당계 정당에 패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산에선 서구, 동구, 중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선 죄다 패배했고, 심지어 부촌인 센텀시티과 보수 강세 지역인 금정구에서도 패배했다. 특히 서부산에선 무려 10% 이상 차이로 완전히 참패했다. 울산에선 더욱 참패를 했는데, 북구, 동구에서 더블스코어 차이로 패배한 건 물론[25], 보수 강세 지역인 중구, 울주군에서도 패배했다. 그럼으로써 민주당계 정당에게 올킬을 당했다. 이전엔 접전지역만 몇 곳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셈이다. 경남은 팽팽한 접전이 이루어진 결과, 결국 10,760표 차이로 겨우 신승했는데, 이는 보수정당이 치른 대선 중 역대 최소 표차 1위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김해, 양산, 거제, 창원시 성산구에서 더블스코어 차이로 참패했고, 의창구, 진해구도 빼앗겼다. 그나마 서부경남에선 문재인에게 15% 차이로 앞섰지만,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낙후 지역에 속하는 마산합포구와 통영시, 사천시 등지와 농촌 지역에서 10% 이상 차이로 압승했을 뿐이다. 그나마 그 서부권에서도 문재인이 이긴 곳이 있다. 이전에는 문재인이 이긴 곳이 거제시의 장승포등 몇 곳 밖에 없었다는 것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보수정당 후보인 홍준표에게 58.9%라는 높은 지지율을 보낸 걸 감안하면 완전히 참패한 셈이다.[26]
심지어 보수 정당의 최후 보루 방패인 최전방 지역도 강화, 옹진, 연천, 고성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1위를 빼았겼다. 게다가 같은 최전방 지역인 고성군과 연천군에서도 불과 4% 격차에 불과했고, 그나마 강화와 옹진에서 10% 이상 벌어져 사실상 NLL 지역에서만 우위를 가져갔다.[27]
그나마 보수 초강세 지역인 대구, 경북에서는 다자 구도에도 불구하고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승리하면서 압도적인 기반을 지켜냈으나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균열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여기에서 마저도 구미, 김천, 포항의 일부 공단지역과 신도시에서 문재인에게 1위를 내주어[28], 이는 젊은층의 민심 이반이 매우 심각했음을 보여준 지표였다.
과거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야당 강세 지역이나 야당이 유리해진 지역에서도 호남을 제외하면 최소 40%~45%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며 선전하였지만, 이번엔 대구와 서부경남, 옹진군을 제외하면 어느 곳에서도 40%를 넘긴 기초자치단체가 없었다. 물론 수도권, 충청권, 강원도의 상당수 농어촌 지역 단위로는 40%를 넘긴 곳이 많았으나, 읍면 단위에서도 40% 이하의 저조한 득표율을 올린 곳이 많아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인 지지도가 크게 내려갔다.
사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이번 대선이 더 뼈아픈 것은 지역 구도보다는 세대 구도에서 완패했음에 있다. 출구조사에서 홍준표 후보는 2040 세대를 통틀어 10% 내외의 지지율[29]에 머물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출구조사가 도입된 15대 대선 이래 최저 1/3 정도의 지지를 얻었던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의 후보들 중 압도적인 최저치이다. 여태까지 그 어떤 양대 정당에서도 이 정도로 처참한 지지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실제로 20대에선 유승민, 심상정에도 밀린 5위, 30대에선 유승민에게 밀린 4위를 기록했고, 40대조차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영남권의 선전에도 불구하고[30] 겨우 10% 턱걸이, 최종 3위에 그쳤다. 심지어 반대 진영인 민주당이 역대급으로 무너졌던 17대 대선의 정동영조차 모든 세대에서 20% 내외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10년을 제외하고 항상 집권여당 노릇을 해오던 정당이 40대 이하에서 이 정도의 처참한 득표율을 받았다는 것은 청년층, 중년층의 지지 기반이 완전히 뿌리가 뽑혔음을 뜻하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동안 보수정당 지지기반으로 군림했던 50대 이상에서도 큰 폭으로 지지도가 하락했다. 특히 50대에선 지난 대선의 62%에서 26.8%까지 득표율이 내려가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386 민주화 세대가 50대에 접어들면서 더이상 구시대적, 극우적 전략으로 이 세대를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이 뼈저리게 드러났고, 콘크리트 기반 세대에서도 지지층이 대부분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나마 60대 이상에서 50%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도를 보여 박정희 시대에 머물러 있는 유권자들을 어느 정도 붙잡아두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지지기반은 딱 여기까지라는 것이 선거 결과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직접적인 영향하에 있었던 이번 선거의 특수성에도 이유가 있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젊은 세대를 위한 경제-복지 공약을 걸었으며 '보수'의 포지셔닝 역시 스스로 강하게 하려 하지 않았던 과거 보수정당 후보와 달리 공약 선정이나 선거 운동 등 모든 측면에서 젊은 표심을 도외시하고 사실상 기존 지지층 결집에 올인했던 홍준표 후보의 전략이 야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 많은 정치 평론가들은 상술한 홍준표 후보의 막말 퍼레이드 역시 스스로에게 스트롱맨 기믹을 부여하여 지지층의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도 성향 유권자 및 새누리당 이탈자들의 자유한국당을 향한 혐오감이 더욱 커져 19대 대선에서 드러난 젊은이들의 악화된 인식은 개선될 여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이는 자유한국당의 향후 전망을 암운에 빠뜨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정리해보면 극우+수구 콘크리트의 지지를 극대화하는 대가로 확장성을 포기한 것이 이번 홍준표 후보와 자유한국당의 선거전략이었고, 이는 당장의 선거에서 유의미한 지지율을 안겨줬지만 그 이후의 자력생존 가능성에는 의문부호를 안겨 주었다.
자유한국당은 향후 당권을 두고 홍준표+ 김무성계와 친박계가 상당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통령 선거야 홍준표 후보를 중심으로 치렀다고 하지만 홍준표 후보는 엄연히 한국당 내에서는 비주류에 속하며, 아직도 한국당의 주류는 친박계다. 홍준표 후보는 본인이 어찌되었든 자유한국당 지지율을 회복시켰다며 지분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나, 친박계의 경우 결국 홍준표 후보는 역대로 가장 약했던 보수 후보였다고 하면서 공격할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리고 홍준표 후보를 도우러 선거 보름전 급하게 바른정당에서 합류한 김무성계가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선거 전보다 더 큰 자중지란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그리고, 본인 입으로 당권도전을 안 한다고 한적도 있었고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재판이 대법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따라 그의 정치생명도 결정되는지라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조심스런 입장이다.[31]
다만 김무성 본인이 예전의 영향력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다가 결국 김무성계도 홍준표에게 숙이고 들어온 형세이기 때문에 당장 자중지란을 일으키기 보다는 일단 당내 세력들이 어느 정도 홍준표에게 협조하여 당 재건을 시도하고, 그 시도가 실패하거나 어느 정도 당이 재건된 뒤에야 당권 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32] 결국 홍준표 후보가 바른정당에서 복당한 세력을 제대로 당 내에 정착시킬 수 있느냐, 확실한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자유한국당의 향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2.3. 국민의당
걱정스레 중계 화면을 바라보는 천정배 전 공동대표, 박지원 대표, 주승용 원내대표.
이번 19대 대선이 사실상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의 3파전으로 굳어졌고 경쟁도 가장 치열했던 만큼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꼽힌 것이 바로 3위였는데 3위라는 독배를 받아 마신 후보는 그 누구도 아닌 안철수였다. 오죽하면, 안철수 지지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안철수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34]라고 개탄하면서 3위라는 성적에 큰 충격을 받고 안철수를 뽑지 않은 국민들, 그 중에서도 홍준표 지지자들에게 홍찍문이 적중했다고 주장하며 이들에게 혐오와 증오를 쏟아내기도 했다. 다만 흥분한 지지자들과 달리 안철수 후보는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사실, 일부 안철수 지지자들의 논리는 홍준표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황당한 논리이긴 한데 3위를 한 후보의 패배원인을 2위가 추궁당하는 결과였기 때문. 그래서 홍준표 지지자들도 이러한 안철수 지지자들의 매도에 크게 반발하며 "홍준표가 처음부터 문재인과 양강구도를 형성했다면 오히려 홍준표가 당선됐을 수도 있었다!"라고 크게 분노하기도 했다. 물론 실제 선거 결과를 보면 둘 다 김칫국 마시는 수준이었지만... 다만 상술했듯 제19대 대통령 선거/지역별 결과를 봐도 안찍문은 비교적 설득력이 약하지만 홍찍문은 그래도 안찍문 보다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맞는 말이긴 하다. 속사정을 보면 홍준표로 단일화했을 경우엔 절대 문재인을 못 이기지만, 홍준표가 양보해서 문안 양자구도를 만들었을 경우에는 안철수가 당선될 수도 있었다는 희망론적 관측에서 나온 분노로 보인다. 물론, 안철수나 홍준표 후보 본인들은 애초부터 단일화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물론 홍준표가 최종적으로는 안철수를 찍어 누른 2위이기에 안철수 측도 할 말은 없다. 다 떠나서 이제 와선 의미가 없는 논쟁이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안철수 후보는 선거 국면 초반만 해도 상당한 지지율을 얻으면서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는 후보로 급부상했었다.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문재인의 지지율을 능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선거전략을 매우 잘못 짰다.
지난 2016년 총선 때 기존 지역별 프레임을 깨부순 국민의당은 분명히 성공했다. 국민의당의 포지션은 1당도 2당도 아닌 3당이라는 것이었고, 이것이 국민의당에게 38석이라는 상당수의 국회의원을 안겨줬다. 더군다나 그해 늦가을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새누리당이 폭삭 주저앉게 되고 그 결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보수 정당이 갈라진 뒤 박근혜를 최측근에서 모시던 조원진이 새누리당을 차려 국민의당은 실질적인 2당의 포지션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초반에 선택한 전략은 반문이었고, 그게 결국 이번 대선의 패착이 되었다.
안철수는 반문표가 본인에게 쏠릴 것을 생각하면서 보수적인 포지션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자세히 따져보면 상황판단부터 잘못되어 있었는데, 왜냐하면 19대 대선의 구도는 기본적으로 정권심판론을 기반으로 한 박근혜 vs 반 박근혜, 자유한국당 vs 반 자유한국당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를 듣던 자유한국당마저 겉으로나마 박근혜와의 단절을 말한 비주류 홍준표를 대선후보로 선출했을 정도. 다만, 일련의 탄핵 사건으로 인한 반사이익의 대부분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먹음으로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국민의당의 전략과 그에 동조하는 언론 때문에 겉으로만 문재인 vs 반문재인 구도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이 전략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거냐면, 민주당 후보가 "말 그대로의" 종북 세력을 등에 업고 보수당 후보와 싸운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전략이다. 그 결과 안철수가 취한 보수적인 포지션은 오히려 안철수의 지지기반이었던 호남과 중도-진보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불신만을 심어주었다. 비유하자면,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놓친 격이다. 아래에도 언급하겠지만 사실 정말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었으면, 보수층과 호남층 중에서 호남층의 구미를 잡았어야 했다. 보수층은 어차피 양강 구도라면 안철수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고, 호남은 안철수가 싫으면 문재인에게 넘어갈 수 있는 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국면에 들어가자마자, 사립유치원 행사장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안철수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주 수요계층인 30대 기혼여성 사이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였을 때, 제대로 된 해명과 대처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보와 보수 문제에서도 선거 초반 지지율 하락세를 걱정했는지 본인이 말하는 중도/상식파 모습을 당당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뭔가 양쪽 눈치를 보는 듯한 인상을 보이며 하락세를 자초했다.
또한 20대 총선에서는 친노 이야기, 호남홀대론이라는 주장으로 호남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호남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도 again 20대 총선을 노리면 된다고 생각했겠으나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역풍으로 되돌아 왔다. 특히 호남에서 지나친 지역감정 발언이 오히려 호남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변해 지지층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대선과 총선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실제로 지역의 대표자라는 인식이 강한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서는 지역색을 드러내는 것이 나쁜 전략은 아니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 특정 지역을 강조하는 것은 악수가 되기 쉬운데다가, 결정적으로 총선에서야 민주당은 남부영남당, 국민당은 호남당이겠지만, 대선에서는 문재인이고 안철수고 둘 다 똑같이 영남 사람이다. 이렇게 호남 지지층이 떨어져나가자 전략적 지지를 하고 있던 보수층도 같이 이탈하였다. 또한 선거 막판에 공작에 가까운 네거티브 또한 역풍으로 되돌아가 안철수=구태 정치인 공식을 사람들 머릿속에 새겨졌고 아무리 미래를 외처도 진정성 없는 정치구호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특히 토론회에서 이런 단점이 잘 드러났는데, 선거 국면 초반만 해도 문재인 후보의 약점을 공략하며 먼저 양자 끝장 토론까지 제안했지만, 정작 토론에 들어가선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안철수의 강점이라 생각되었던 경제 분야 발언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만 외칠 뿐 제대로 된 구상을 내놓지 않아 '4차무새' 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또한 미래로 나아가자고 해놓고는 네거티브 발언을 하거나, 문재인도 토론을 썩 잘하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을 말빨로 찍어누르는데 실패하는 등 오히려 실망감만 주는 장면을 계속 보였다. 결국 '갑철수', 'MB 아바타' 발언 같은 자신의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는, 쉽게 말하면 자폭하는 발언을 해서 지지도 하락 추세에 결정타를 박았다.[35]
사실 이 발언 이전까지는 인터넷 안티들이나 '갑철수', 'MB아바타' 소리를 했지, 세간엔 그다지 큰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스로 갑철수를 검색어 1위로 만드는 자폭을 하며 갑철수, MB아바타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버린다. 굳이 억울한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그 말을 넌지시하면서 "이제 이런 유치한 네거티브 서로 그만하고 정책 경쟁합시다"라고 대인배스러움을 풍겼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스스로 네거티브를 하는 마당에 이런 전략이 무슨 소용이었을까? 이는 문재인이 "제가 문죄인입니까 문재인입니까?", "제가 김정은 아바타입니까?" 소리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기 자신에 해가 되는, 자기 자신이 떨쳐내야 할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그나마 막판에 뚜벅이 유세로 전국 도보를 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줘 하락세는 감소시키며 20%대의 득표율은 간신히 기록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의원들이 안철수의 옆에서 같이 지지를 호소하지 않고 혼자서 뚜벅이 유세를 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다른 정당들이 유력한 측근 국회의원들을 같이 대동하고 화려하게 지지자들을 모아서 결집하고 공개적인 지지를 호소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히 임팩트가 약하단 반대되는 시각도 있었고 애초부터 국민의당 의원들이 다른 당에 비해서 안철수 후보를 부실하게 서포트한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처음 안철수를 문재인의 대항마로 선택해주었지만 안철수 본인이 이러한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한편, 안철수는 한때 결선투표제, 사드 문제로 협력하기도 했던 심상정에게 저격을 맞기도 했는데 안철수에 대한 심상정의 발언 중에서 포괄임금제, 사장님 마인드 등의 발언은 안철수에게 서민에 반대되는 기업가란 인상을 덧씌우기도 했다. 거기에 안보 문제에서도 안 후보는 진보와 보수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대답을 하려다 얘기가 꼬이며 집토끼, 산토끼 줄줄이 빠져나가 지지율이 거의 반토막이나 추락했고 여기서 되려 홍준표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또한, 문재인을 향한 지나친 네거티브 공세도 문제였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주변인들의 반박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도 문재인의 아들 문준용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정동영과 비슷한 양상으로 정동영 역시 공약은 내세우지 않고 이명박의 BBK만 주야장천 물고 늘어졌다. 결과적으로 그 선거는 이명박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문재인이 외치는 적폐청산의 구호는 분명히 자유한국당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국민의당을 타겟으로 한 발언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36] " 문재인을 반대하면 모두 다 적폐세력이냐?", "친박 패권주의도 잘못이지만 친문 패권주의도 잘못이다."같은 양비론을 거론하기도 했고 결국 양비론 또한 역풍으로 다가왔다. 정작 안철수는 "친박, 친문보다 안철수는 뭐가 낫길래?? 오히려 안철수가 더 질 떨어지는 정치꾼 아닌가??"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문재인이 박근혜 정부에서 무슨 대단한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각의 직책을 맡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정권이 가장 악독하고 불법적으로 탄압하려했던 정치인이 문재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을 심판하자!"라는 발언이 왜 야당인 국민의당에서 나와야 하는지 생각을 곰곰히 해본다면 문재인의 지지자들은 그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친노가 당 내에서 자신을 심하게 탄압했다고 여기므로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할 순 있지만[37] 오로지 그것만 물고 늘어지면서 정작 자신들의 공약과 정책같은 집권의 비전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안철수의 강점을 설명해야 할 시기에 문재인에 대한 흑색선전에 집중하는 바람에 ' 문모닝'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무릇 정치의 기본 중 하나가 선거에 나와서 "저는 이 후보보다 더 좋은 공약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어필하며 왜 자신을 찍어야 좋은지를 강조해야 하지만 안철수 후보 측은 과거 정동영 후보 측이 범했던 동일한 실수를 또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반문연대랍시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문재인을 상대로 네거티브를 했지만 이런 식으로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세는 오히려 대중들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거기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문에 이뤄지는 대선인데, "저것들은 자유당을 까지 않고 왜 야당끼리 팀킬하고 앉아있냐? 국민의당은 여당인가?"라고 묻는 것은 덤이다. 이는 국민의당 차원에서 적극 내세운 안찍안 홍찍문이라는 프레임에서 잘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서 홍준표를 심판의 "대상"이 아닌 심판의 "걸림돌" 정도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정당의 자유이나, 이 경우 (상대적으로 머릿수가 더 많은) 민주당 지지자로부터 "적폐 2중대", "MB 아바타" 소리를 들어도 방어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자신들이 민주당과 한국당을 패권세력이라며 동일시했으니.
그리고, 이는 후술하다시피 도리어 안철수와 국민의당에게 부메랑이 되어 반대로 돌아오게 된다. 안철수의 지지층 중에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무분별한 비문계열 후보자 네거티브에 질려버려서 안철수를 지지한 경우가 많았던 것을 고려해볼 때,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네거티브를 최대한 자제하고 오히려 대인배스러운 풍모를 보였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의 10차 개헌 합의와 대선후보 단일화를 거론하는 기사까지 나오자, 사실상 국민의당을 자유한국당과 똑같이 도매금 수준으로 바라보면서 과거 3당 합당과 비슷해보이는 비열한 정치적인 여권연대의 야합을 떠올리게 되면서 "친박과 야합하려는 또 다른 적폐청산의 대상이다!"라는 시각까지 생겼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3당 후보가 모두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면서 대선후보 단일화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측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단일화에 찬성해야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홍준표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갈 기미를 보이자 유승민을 배신하고 바른정당을 탈당하면서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을 하는 희대의 정치코미디까지 벌어졌었다. 그만큼 범보수성향 후보 단일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국민의당도 반문연대랍시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호남을 배신하고 적폐세력들과 후보 단일화 여권연대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이 의견의 일부 논점에 대한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문재인은 안철수에게는 대권에서 넘어야 할 벽이었고, 문재인 캠프에서도 안철수의 세를 곱게 보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의 주요 공세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실제로 선거 유세 내내 두 지지층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검증 공세도 과격해져 갔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든 후보 측이 다 취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문재인 후보를 패권세력이자 기존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유한국당과 동급 취급을 해버렸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가장 강력하게 박근혜 정부에 맞서서 싸워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도 그러한 구 여당과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같은 집단으로 묶어버린 것은 무리한 시도였고 반대로 역풍으로 돌아온 실책이 되고 말았다.
사실, 국민의당이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은 문모닝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에 박근혜 탄핵정국이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차기 대선 지지율 단독 1위로 치고 나가자, 이에 국민의당은 "12월 2일이냐 9일이냐" 탄핵안 의결을 놓고 정치적 꼼수를 쓰려고 시도했다. 이에 국민들은 12월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에 232만 명이 집결하여 즉각 탄핵할 것을 외치는 걸로 응답했다. 그래서, 이 역풍으로 인해 안철수는 대구광역시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대구 시민들에 의해 쫓겨났고, 문재인은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에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의 거부로 발언권을 얻지 못 했으나, 광주 시민들이 문재인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외쳤고, 이를 본 주최 측이 앉아 있는 문재인에게 다가가서 발언권을 줬다. 반면, 광주 서구 을 국회의원이었던 천정배는 발언권을 뺏겨버렸다.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반문 정서를 이끌어 내고 호남에서 대승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문 정서를 위해 탄핵안 의결마저 이용해먹다가 역풍을 먹어버린 것이다.
차라리 문재인 후보보다 더 먼저 진보진영을 선점하려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르지만, 결정적 순간에 항상 발을 뺀 것은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이었고 이는 뚜렷한 지지층 확보의 실패라는 뼈아픈 결과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유리한 프레임 구도를 먼저 선점하고 형성하는데 있는 것이지 탈프레임화에 있지 않다는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 탓이다.
둘째로,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 " 문재인을 반대하면 모두 다 적폐세력이냐?"라는 식의 발언은 충분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선거 초반부터 각종 대형 포털 사이트, 유튜브의 각종 채널 등지에서 안철수 후보를 두고 "MB 아바타." 혹은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고 주장하는 포스팅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한 차단을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미리 했어야 했다. 어떻게 되었든간에 문재인 후보 측에선 선거의 프레임을 '적폐 VS 적폐청산'의 프레임으로 짜고 있었고 안철수 후보에게 적폐세력, 혹은 그쪽 세력과 연관이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은 자명했는데 실제로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폐' 와 '세력', '적폐세력'의 범위와 정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 이 점은 두 후보와 각자 지지층간에 벌어지는 설전의 단골소재였다. 그곳에는 논리적 이슈가 있었다.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 자체를 적폐로 규정한다면, 자유한국당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유권자들의 지지를 누군가는 받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적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스스로 적폐가 되어야하는 애매함이 생긴다. 그들로부터 얼마만큼 지지를 받는 것이 적폐인가도, 자유한국당 유권자를 규정하는 것도 애매하다. 예전에 박근혜를 찍었던 상당수도 문재인을 지지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이 적폐세력일까? 박근혜를 찍었다고 자유한국당 유권자일까? 적폐세력과 적폐청산이란 안철수의 새정치 못지않게 애매하다. 그러나 문재인은 누구보다 박근혜 정부를 앞장서서 비판했기 때문에 이런 논쟁에서는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후보들 본인이 단일화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계속 언급을 함에도,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적폐연대"에 대한 경계심을 유권자들에게 불어넣는 말들을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또한 문재인 후보 역시 "적폐 청산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노라고 생각한다."라는 인터뷰 답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 문재인을 반대하면 모두 다 적폐세력이냐?"라고 물어 본것은 후보의 철학을 알아보는 자리에서 충분히 정당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그러한 반박은 토론회 전부터 꾸준히 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강점을 어필해야되는 토론회 때 제한된 시간을 사용해가며 하는 것은 상당한 실책이었다.
안철수의 지지층 내에서도 다수 공감하는 사항은 이렇다. 안철수 후보가 토론중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이미지를 많이 노출했으며, 후보 본인과 조직 전반의 프로답지 못한, '아마추어리즘'적인 모습들[38]이 누적되어, 본인이 그렇게 주장하던 '국민에 의한 단일화'를 선택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권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양강구도라면 모를까 다자구도에서는 '국민에 의한 단일화'를 받으려면 그것을 위한 뛰어난 역량과 가치를 보여주고 강조했어야 했지만 충분히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안철수가 문재인의 대항마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자각한 보수층은 결국 안철수를 버리고 다시 부랴부랴 홍준표에게 지지가 결집되고 말았다. 심지어, 안철수와 비슷한 성향[39]이라고 평가하는 유승민은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줄이고 담담히 본인의 정책과 공약의 장단점을 홍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자, "도대체 안철수는 문모닝같은 네거티브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안철수의 공약과 정책은 무엇인가?"에 의문을 품고 차라리 당선되지도 못할 유승민을 찍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정작, 안철수 본인은 "저는 문모닝 같은 네거티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제대로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다뤄주지 않는다."라면서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불만이었다면 "이제는 네거티브를 그만하고 정책 홍보를 하겠습니다!"라고 인터뷰하면서 담담하게 자신이 원하는 정책 홍보를 하면서 유승민처럼 토론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안철수는 그저 문재인을 상대로 네거티브만 일삼는 캐릭터였다. 공교롭게도, 박지원은 자신의 트위터에다 "과거 우리는 네거티브만 일삼다가 야당이 되었습니다!"라는 비판을 자유한국당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도 과거의 교훈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50대 이상에서 좋았던 지지율이 다시 내려가고, 보수, 고연령층 유권자가 홍준표 후보에게 쏠리는 현상으로 가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안철수를 지지하던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안철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저 문재인을 막아내기 위한 전략적인 교차투표였을 뿐이었다.[40] 4~5년뒤 보수 측에서 제대로 경선을 거쳐 후보 단일화를 성공한다면 이들은 절대 안철수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이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가 되었고, 여론조사 블랙아웃 기간 직전, 실버크로스를 기록한 여론조사가 나올 정도로 홍준표 후보에게 내준 지지율 상승의 기세로 인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국정농단을 자행한 자유한국당과 이들이 배출한 홍준표에게 또 다시 대권을 내주면서 대통령에 당선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철수와 문재인 사이에서 갈등하던 야권 지지층에게 안겨다 주었다. 특히 이는 국민의당의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에게 치명적인 계기를 초래했다. 그렇지 않아도, 위에 언급한 '문모닝' 수준의 네거티브 공세와 범보수 단일화 논의는 단순히 '국민의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그 놈이 그 놈 수준'이라는 양비론 인식을 넘어서 호남 고립화를 초래한 3당 합당과 비교되는 수준으로 비겁한 정치야합을 연상하게 했다. 여기에다 홍준표의 지지율 급상승은 호남 유권자들이 더 이상 안철수만 밀었다간 정권교체마저도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호남권의 유권자들은 유력한 야권후보 문재인으로 대동단결하여 압도적으로 밀어주면서 결집해버리는 쏠림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게 만들었다.
즉, 자신의 지지기반이자 장점이었던 호남권까지 최대 60% 이상이나 내어주는 최악의 대참패를 당하고 전부 무너져버리면서 결국 20% 후반에 머무르는 저조한 득표율을 보여주고 말았다. 물론, 안철수가 스스로 취약지대이자 험지였던 영남권과 강원권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서 지지율을 많이 얻어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주광역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호남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지지를 끌어낸 전례가 있다.
결국, 이렇게 최악의 대참패를 당한 안철수는 국회의원직도 사퇴하면서 강한 배수진을 쳤던만큼 정치권에 계속 머무를지 아니면 정계은퇴를 선언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민의당 창당의 핵심 주주이자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안철수가 정계은퇴로 떠나버리면 국민의당은 존속조차도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전북 지역의 경우는 트리플 스코어 이상 차이가 나면서 국민의당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면서 약화된 상태이다.
그래도 희망적으로 보자면, 안철수 후보가 얻은 20%대의 득표율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87년 대선 이후 제3당 후보가 얻은 가장 많은 득표율이다.[41] 또한 몇몇 지역에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기 때문에[42] 이 부분도 결코 간과할 수 없기는 하다. 그 대신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이라는 '적폐세력'을 다시 똘똘 뭉치게 해 인공호흡기를 붙여주는 대업을 달성해버려서 상대적으로 빛이 바랠 뿐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번 19대 대선에서 2위도 아닌 3위로 패배하면서 당내 갈등이 격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텃밭이었던 호남에서도 참패한데다가 선거 결과 자체가 국민의당에 안철수 본인 역량의 한계까지 명백하게 확인한 꼴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지기반이었던 호남권에서도 대참패를 당하게 되면서 반문 정서가 많다고 스스로 자신했던 주장까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한 지난 9년간의 실정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서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당의 상황도 절망적이었고 강간 모의 논란을 비롯한 숱한 개인적 논란으로 인해 후보 본인의 상황도 좋지 않았음에도 끝끝내 고정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선거 결과를 2위로 마감하고 최악의 패배는 모면한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보다 더더욱 상황이 좋지 않다.
그리고,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재판을 진행하는 중이기까지 한 홍준표에게도 패배했다는 점과 시군구 단위로 보았을 때, 1위를 차지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명백하게 국민의당과 안철수 후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이번 19대 대선에서 최악의 대참패를 하게 되면서 정치적인 커리어와 입지를 가장 많이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본인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구 병에서도 10.9%p의 차이로 참패했다.
안철수가 대통령에 걸맞은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동안의 행적은 토론회에서 심상정에게 지적당했고 뚜벅이 유세 역시 참모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부분은 관점에 따라 다른 부분이긴 하다.
결국, 19대 대선 직후 당의 진로에 따라서 안철수의 정치행보와 움직임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다음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되는 입장에서는 호남권의 지지회복이 시급한 편이고 그동안 흘려갔던 반문연대에 대한 포지션 변경도 불가피하다고 보인다. 또한, 차기 문재인 정부의 공동정부 연정으로 몇몇 국민의당 출신 인물들이 문재인 정부의 내각으로 입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점도 충분히 고민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결국, 안철수는 정치적인 기반을 가장 많이 잃어버린 상황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정치적으로 완전히 재기불능까지 되는 상태까지 갈 수도 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호남 유권자 중에는 안철수를 더 선호하고 문재인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지만 전략적인 목적에서 자유한국당을 저지하기 위해서 문재인에게 투표를 한 사람도 있는지라 지방선거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또한 영남을 제외하면 각종 연령 지역별로 다른 후보에 비해서 고른 비율로 지지를 받으면서 중도로서의 색을 더 다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중도라는 색이 안철수의 정당인 국민의당과 잘 맞는 옷인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론과 바른정당과의 통합론 등 타 정당과의 통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추후 정국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의 국민의당은 19대 대선에서 참패한 이후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대선이 끝난 후 드러난 선거 중 조작 사실 때문에 당의 지지도가 폭락했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발생한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
2.4. 바른정당
이종구 정책위의장과 김무성 고문[43], 주호영 원내대표.[44]
유승민 후보도 대선 패배를 승복했다. 유승민 "문재인 후보에 축하드렸다…좋은 정치로 보답할 것".
유승민 후보가 막판에 선전했으나 결국 10% 득표율을 넘기지 못했다. 이미 당 내 의원들 중 절반 가까운 사람이 이탈한 가운데, 재정난이 확실한 상황에서 대선 이후에도 당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의문인 상황이다.
유승민 후보 본인에 있어서는 배신자 프레임속에서 지지율 1%를 기록한 조사도 있을만큼 저조했던 인기와 후보를 무시하고 당차원에서 단일화를 추진하고 무산되자 아예 집단 탈당을 하는 등 여러 당내 흔들기를 감안하면 6.8%라는 수치는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출구조사 결과를 근거로 20~30대 3위를 기록하는 등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홍준표 후보보다도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며, 사표방지심리와 배신자라는 오명 속에서도 TK 지방에서 10% 내외의 득표율로 보수 지지층 일부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으나[45] 바른정당 입장에서는 끝내 10% 미만의 지지율을 기록함으로써 재정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46] 그리고 대부분의 김무성계가 빠져나간 상황이라 추가 탈당 가능성도 점쳐진다.
희망을 가져볼만한 부분으로는 20~30대의 지지율 중 문재인, 안철수 다음으로 오는 3위를 차지했다. 이는 자유한국당을 TK지역정당, 50대 이상만을 위한 보수로 가두고, 확장성 있는 보수의 영역을 획득한 것이다. 기존 3위권 후보는 진보정당계의 후보가 차지했음을 볼 때에 매우 의미있는 수치이다.
결국 바른정당 입장에서는 다음 재보궐이나 총선까지 얼만큼 새로운 보수라는 가치를 관철하여 지지세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느냐가 당을 유지시킬 수 있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47] 지지자들 중에 허수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미 대선 기간 중에도 "저는 ○○○ 지지자이지만 보수의 가치를 지켜내는 유 후보만큼은 존경합니다" 라고 발언한 네티즌들이 꽤 있었던 것을 볼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결과 승복 후 유승민 후보는 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선 경쟁후보로는 유일하게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이와 같은 행보로 인해 중도~진보 여론에서 인식되었던 부역자 인상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보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젊은층이 유승민에게 투표하여 젊은 보수층이 조금이나마 생겨났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참고로 유승민 후보가 이렇게 젊은 층의 지지를 상대적으로 많이 받은 이유는 세대별 결과 항목에 잘 서술되어 있는데, 확실히 안보는 보수이면서 경제나 사회 분야는 민주당계에서 갈라져 나온 국민의당보다도 더 개혁적인 스탠스를 가져간 게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는 국민의당이 선점하고 있던 포지션이었는데 바른정당은 안보에서 좀 더 강경한 선명성을 띄우며 이를 양분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2.5. 정의당
왼쪽부터 권영길 상임고문, 노회찬 원내대표, 강상구 부원장[48], 그리고 천호선 전 대표.[49]
10일 개표가 완료된 19대 대통령 선거 결과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17,457표, 6.2%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종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8~9%, 높으면 10%대 초반까지 나왔던 것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진보정당 역사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는 평가도 나왔다.
선거 막판, 심상정 후보가 토론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오른 지지율을 바탕으로 내심 10%대 득표율까지 노려봤으나 막판 홍준표 후보가 상승세를 타면서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그렇지만 이는 역대 진보정당 대선 후보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로 충분히 기뻐할만한 일이긴 하다. 이전 최고 득표율은 2002년 16대 대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3.9%였다. 한편, 6.2%라는 득표에 대해 간만에 진보정당이 끝까지 완주했는데 결국 군소 정당의 한계만 확인한 선거가 되어버린 것 아니냐는 비관론도 나왔지만, 일각에선 이 지지율을 계기로 도약할 수 있으며 201만이라는 득표수가 결코 무시할 표가 아니다란 낙관론도 나왔다.
실제 의석수도 20석으로 더 많은 바른정당과 비슷한 지지율을 내고, 과거 10명이었던 민주노동당보다도 더 높은 지지율을 올린 건 충분히 자축할만한 일이라는 것. 게다가 이번 대선 기간에 뚜렷한 이미지와 정의당을 각인시킨데다, 심상정과 정의당을 좋은 이미지로 바라보는 유권자가 늘었다는 것이 여론조사로 드러났기에 지선, 총선에서 좀 더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말이 있다. 실제로 TV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가 강점을 보이며 유권자들에게 진보 정당의 이미지를 확실히 한 점, 진보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극심한 보수 진영에서도 일부 심후보를 응원했던 모습 등은 정의당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애초 심상정 후보는 당선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완주가 더 빛난 측면도 있다. 심상정의 도전은 진보정당의 새 희망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는 평. 올해 초 2∼3%대에 머물던 심 후보의 지지율은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가파르게 상승하다 이달 들어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를 넘보기도 했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사태로 보수층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진보층 유권자가 증가한 유리한 상황 #에서 겨우 6% 득표율을 올린 것이 유의미한 결과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진보 대 보수의 1대1 승부가 아닌 문재인의 지지율 1위 독주 상황이었기에 진보층 유권자들이 굳이 전략적 투표로 차악인 민주당 후보를 선택할 필요가 없이 소신투표로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주기 좋은 구도였다.
그럼에도 유승민에게도 밀린 5위로 선거를 마친 것과 정의당의 주요 지지층인 20, 30대 청년들로부터 유승민보다 뒤진 득표율을 기록한 것 #에 대해 심상정 후보 및 정의당은 자기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선거 이후 진보정당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해 보이며, 이 부분은 정의당에게 있어 분명히 이번 선거의 어두운 단면이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젊은 층의 지지만으로는 당의 지지세를 확산시키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장년층에도 어필할 수 있는 아젠다 구성이 필수적이다. 그 외 메갈리아 사태 당시 발단이었던 문예위를 포함하여 반대를 열렬히 표한[50] 노회찬과 관련이 사실상 없었던 천호선, 윤소하를 제외한 심상정 대표와 휘하 중진들이 보여준 미숙한 대처와 언행들도 제대로 수습해야할 문제다.[51]
2016년 이후 여러 부적절한 발언들로 인한 논란과 정의당의 속사정을 들춘 내부고발[52] 등이 터지면서 인터넷 여론이 예전보단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장기적으로는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는 하지만,
다만, 리버럴 성향이나 문재인 지지층들 사이에선 약간의 비토가 있다는 점이 흠이다. 과거, 민주당에 난민사태가 일어나길 바란다는 심상정 대표의 발언에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공세적으로 반격을 가하자 정의당에서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난하는 등 민주당과의 갈등도 있었고 당내 참여계와의 갈등 수습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 정의당 같은 소수정당의 한계점이기도 한 것이 선명성을 드러내며 속시원한 행보를 보이긴 하는데, 집권 정당으로서 과연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의문, 또 앞서 말한 메갈리아 사태 등으로 일부 지지층이 이탈하며 당 예산이 줄어든 점도 향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심상정 후보는 표의 확장성이 없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에서 정의당에 투표한 사람과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은 노동당과 녹색당에 투표한 사람의 표, 그리고 민중연합당에서 이탈한 표 일부를 더하면 심상정 후보가 받은 표가 거의 비슷해진다. 특히나 진보정당의 고정 지지층인 노동조합을 보더라도 한국노총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민주노총은 심상정과 김선동 후보를 동시에 지지했으나 상당수 노조원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해 버렸다. 즉, 어느 한 노조도 단일한 지지를 받지 못했음은 심각한 약점으로 꼽힌다.
2.6. 새누리당
대선 이후 첫 주말인 5월 13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박사모 회원들과 기타 참가자들이 조원진 후보 낙선 원인으로 박사모 회장 정광용을 지목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원내 정당 중에서는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군소후보들 중에서는 1위. 사실 군소후보들이 얻은 표를 모조리 합해봐야 170,955표로 대략 0.48% 정도에 불과하니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
500만 태극기 표심이 조원진을 향할 것이라는 박사모의 설레발이 있었으나 현실은 500만 표는 커녕 5만표에도 미치지 못했고 득표수에서 47배를 해야만 5위 심상정을 겨우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시원하게 망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53]에서는 무소속 김민찬 후보에게까지 밀리는 굴욕을 겪었다.
이 당은 친박 중에서도 강성 친박 조원진의 사실상 1인 정당이었고 한계점이 명확했던 만큼 예견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박사모 공지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빚이 4억 3천만 원인데, 득표율 10%
조원진 후보의 0.1% 득표율은 가장 든든한 지지층이 되어줘야할 박근혜 지지층조차 조원진을 외면한 탓으로 보이는데 이들도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조원진보다는 그나마 박근혜에게 우호적으로 보이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희망을 건 듯하다.[55]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홍준표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자 망설이던 조원진 지지자들의 표가 더욱 급속도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박근혜의 두 동생들인 박근령과 박지만도 홍준표 지지를 선언했다.
빚더미 속에서 치른 선거에서 0.1% 득표율로 대참패하면서 당의 존립조차 불투명해진 판국에 선거 이후 정광용 새누리당 공동대표가 조원진을 음해하고 홍준표와의 단일화를 종용한 것이 알려지자 친박 집회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는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배신자라고 외치며 서로 좌파라 하는 등 내홍이 깊어질 듯 보인다. #
결국 조원진 의원은 자신을 따르던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모조리 끌고나가 대한애국당을 창당했고[56], 사실상 이곳이 탄기국 세력의 본진이 되면서 새누리당은 이름밖에 남은 게 없는 껍데기뿐인 정당이 되어버렸다.
3. 원외 정당
강력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후보자가 5명이나 존재했던 선거라서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었고,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들에게 갈만한 표도 매우 적었다.3.1. 경제애국당
경제애국당은 사실 과거부터 이리저리 당명을 바꾸고 합당하는 과정을 거쳐가며 어찌어찌 버텨온 군소 정당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를 내긴 하겠다는 일념으로 하하그룹의 오영국 후보를 입당시켜 내보낸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개혁국민신당이 박세준 힐링바이오 회장을 영입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그렇지만 오영국 후보가 이상한 발언들로 삽질을 한데다, 포스터와 색 선택도 괴팍하였기에 무소속 김민찬이나 신생정당 홍익당보다 못한 13위, 즉 완주한 후보들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며 최종 6,040표 득표로 꼴찌로 낙선했다. 그리고 이로써 2007년 대선 당시 최저 득표를 한 새시대참사람연합의 전관 후보를 뛰어넘고 역대 최저 득표수를 기록하는 자랑스러운(?) 후보가 되었다.
대선 이후 경제애국당은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2019년에 이전 이름인 국민희망당으로 환원하였다. 아마도 경제애국당 세력이 이탈한 모양. 그러다가 이듬해에 다른 세력에게 넘어가 한국경제당으로 변경되었고 미래통합당과 기독자유통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은재 의원이 입당해 잠시 원내 정당이 되긴 했으나 원내 정당 중 최하위 성적을 받는다.
3.2. 국민대통합당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는 21,709표 득표, 0.1% 득표로 최종 9위를 기록했다. DJ키드 이후 떠오르던 동교동계 인사인 장성민은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출연 이후 극우적인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왔다. 그가 존경한다고 말하고 지금도 계속 언급하는 김대중의 최대 텃밭인 호남의 민주화 운동을 모욕하고 성소수자 혐오 발언과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박지원 등을 공격하며 원내 정당의 어그로와 진보, 중도 세력에 어그로를 끌었기에 결국 그 어떤 정당도 그를 받아주지 않아 세운 정당이 국민대통합당이었다.[57][58] 물론 비교적 선전했다는 평도 있지만 장성민 위에 있는 후보가 김선동과 김민찬인 것을 생각해 보면.3.3. 늘푸른한국당
출구조사 때부터 이재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완주한 13명의 후보 중 12위. 득표수는 1만 표에도 미치지 못하는 9,140표에 불과하다. 그의 뒤에 있는 후보는 깜짝 출마한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 뿐이다. 5선 의원에 특임 장관까지 지낸 그의 정치경력을 생각하면 사실상 꼴찌다.사실, 냉정하게 말해서 그의 공약은 도대체 그를 왜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주지 못했다. 1년만 취임하고 개헌을 실행한 후 퇴임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1년 후 또다시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로 치러지는 조기 선거로도 짜증나는 판에, 1년 만에 보궐선거를 해야 하는 대통령의 취임을 국민들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1년만 취임한다는 전제라면 당선이 되더라도 왜 당선됐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서 뽑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재오의 득표는 그의 지인들 위주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재오 후보는 사실상 정치 재기에 실패한 채 은퇴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72세,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들 중 최고령이다. 게다가 다음 대선은 그의 나이 77세에나 치러진다. 그 와중에 본인의 지역구인 은평을에서도 작년에 버림받았다. 더 이상 국민들이 이재오라는 정치인을 원치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는 사실상 친이계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재오 후보는 이후 당을 해산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3.4. 민중연합당
민중연합당의 김선동 후보는 27,229표 득표, 0.1%의 득표율을 보이며 8위로 무난히 낙선하였다. 과거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김선동, 김재연, 이상규 등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린 정치인이 꽤 포진되어 있었다. 새누리당, 늘푸른한국당보다도 더 많은 전직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이다. 사실상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통합진보당 시절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만 해도 정당비례 4.2%를 기록하며 3.6%를 기록한 정의당을 누르기도 하였으나 이후 민중연합당으로서 치른 20대 총선에서는 0.6%로 내려앉은 것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는 0.1%로 추락해 완전히 몰락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통합진보당 시절 그나마 지지세가 있었던 호남에서도 기껏해야 0.2-0.3% 정도 득표율에 그쳤고 울산에서도 민주노총에서 심상정 후보와 함께 공동 지지후보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0.1%로 미미한 득표율을 보였다.무소속 김민찬 후보에게도 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을 통해 형성된 자신들의 조직만 믿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는 부정적 이미지도 있겠지만 가장 큰건 역시 2010년대 이후로 국민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악화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2000년대 햇볕정책으로 남북교류 등이 이루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지금에 비해 꽤 좋았던 시절에는 친북성향을 보인 NL 계열에 대한 인식도 나쁘지 않았지만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이후로 북한이 동족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 되면서 북한에 우호적이라 할 수 있는 NL계열 또한 종북으로 불리며 부정적인 인식이 대세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조직은 건재하니 끈질기게 재기를 추구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선거 전략에서 이들의 현실인식의 부족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세상을 바꾸자"라는 슬로건은 결국 촛불이 자기들 편이고 촛불의 주인이 되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식의 인식이지만 이러한 인식은 '국민들은 우리 편인데 박근혜가 독재자라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는 80년대식 관점으로 국민 여론의 약 60% 가량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찬성한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촛불 시위에 나온 진보적 국민들조차도 대부분 민중연합당을 종북이미지로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종북 논란에 대한 논리적 해명 등에는 거의 소홀했으니 아무리 열심히 현수막을 붙히고 조직력을 보여줘도 국민들 눈에는 고집불통, 외골수의 이미지 이상으로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의 진보진영의 주류가 1990년대까지 주류를 이뤘던 민족주의 좌파인 NL계열에서 서구식 좌파인 PD의 사회민주주의 계열로 완전히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후 민중연합당은 2017년 9월에 울산연합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새민중정당과 2017년 10월 합당, 민중당으로 확대 개편되어 원내로 들어갔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기초의원 11명에 그치는 참담한 성적을 내었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단일화 실패로 인해 유일한 현역 의원이던 김종훈 의원 까지 낙선하여 원외정당으로 밀려나, 여전히 그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싸늘하다는 사실만 재확인한 꼴이 되어버렸다.
3.5.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는 윤홍식 후보와 더불어 이번 대선 후보들 중 가장 젊은 후보[59]인데다 군소후보들 중에서 가장 홍보물을 정성들여 만들었기에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토론에서도 비교적 발군의 실력을 보였으나 군소정당인 한국국민당의 한계를 보았다는 평이 강하다.게다가 민주사회주의 성향이 있는 한국국민당과 달리 진보지만 안보 중심적 성향이 있는 이경희 후보는 사실 다소 이상한 조합이기도 했다. 이경희 후보는 11,355표 득표로 11위에 올랐는데, 이는 역대 최소 득표인 오영국과
3.6. 홍익당
홍익당 윤홍식 후보는 최종 18,543표 득표로 10위를 기록했다. 양심의 회복을 통한 국정 운영이라는 주장 자체는 참신했지만 양심이라는 키워드 자체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국정 운영의 각론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꼽힌다. 자기 공약집에서조차 외교, 정치, 사회, 행정 모든 분야에서 "양심에 따라" 할 것만을 주장하다 보니 결국 공허한 신선놀음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양심이라는 경쟁력 있는 키워드를 가지고 각 분야에 있어서 통찰력 있고 새로운 정책 구체화가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4. 무소속
4.1. 김민찬
예상을 깬 무소속 김민찬 후보의 선전이 돋보였다. 원외 정당 + 무소속 후보들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하며 완주한 13명 중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울산광역시,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조원진까지 제치고 군소후보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래봐야 33,990표에 불과하긴 하지만.선거 전 이메일을 통한 홍보[60]도 있었지만 네티즌들은 김민찬 후보가 마지막 번호를 받은 행운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 분석했다. 또한, 군소후보 TV토론에서 펼친 남침땅굴음모론의 임팩트도 어느정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17대 대선에서 허경영을 찍어준 표심이 이번에도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61]
이후 김민찬 후보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남구 을에 출마하여 0.9%를 득표했다.
[1]
그나마 가장 기대치가 적었던 정의당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딱 그 기대치만큼 표가 나왔다. 오래 전부터 겪어왔던 일이라 그나마 익숙하다.
[2]
노태우 36.6%, 김영삼 42.0%, 김대중 40.3%, 노무현 48.9%, 이명박 48.7%, 박근혜 51.6%. 참고로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노태우 32.0%, 김영삼 33.9%, 김대중 32.0%, 노무현 34.3%, 이명박 30.5%, 박근혜 38.9%이다.
[3]
단, 이명박은 예외. 당시에는 지금의 1강 2중 2약 구도에 한 술 더 떠서 1강 2중 3약 구도로 대선이 진행되었다.
[4]
전체 유권자수 대비 득표율은 31.6%로 사실 이명박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수치다. 물론 이는 투표를 하지 않거나 문재인에게 직접 표를 주지 않은 이들을 모두 반대표로 간주한 것이니, 실제로는 이보다도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5]
안철수 후보가 의도적으로 보수 후보와 단일화했다면 적폐연대라고 엄청난 역풍이 불었겠지만, 예를 들어 홍준표 후보가 자진 사퇴했을 경우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6]
이유는 간단한데 문재인과 안철수의 지지층이 많이 겹치는데다, 두 사람에게 있어 블루 오션인 보수로의 확장성면에서 안철수쪽이 낫기 때문. 괜히 '홍찍문'이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7]
새정치국민회의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연합을 앞세워 승리를 거뒀고 5년 뒤인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다만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는 알다시피 선거 직전에 깨졌는데 이에 대한 동정표가 되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8]
16대 대선 때는 선거 전날이었던 2002년 12월 18일에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취소가 있었지만 이것을 뒤집기엔 시기가 너무 늦었고, 오히려 역으로 진보층의 결집을 불러왔다.
[9]
그나마도 포천시의 경우는
홍준표가 겨우 0.44% 차이로 신승했고, 여주시에서도 1% 차이로 신승했다.
[10]
구 창원, 김해, 양산, 거제, 구 진해를 빼앗고, 마산회원구, 진주시에서 불과 8~9% 차이로 져서 격차를 크게 줄였다.
[11]
심지어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같은 전방에서도 이겼다.
[12]
특히 기존
민주당은 대선 한 달 전에
한나라당과 합당을 선언하여
김대중 및 민주계 세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13]
자유한국당이 인수위 설치를 반대했다.
[14]
'썰전' 전원책, "다음 대통령은 잘해도 욕먹고 나갈 운명"
[15]
표차를 고려하면 더욱 뼈아픈데 부산광역시에서는 151,643표라는 꽤 큰 차이로 대패했고 울산광역시에서도 79,192표 차이로 크게 졌다.
[16]
게다가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더 뼈아플 수 있는게 출구조사 결과 TK에서조차 20~30대층은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구의 경우 40대층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홍준표 후보는 50대 이상에서만 1위를 차지했다.
[17]
하지만 그야말로 텃밭만 지킨
정동영에 비해
홍준표는 경기, 인천, 충청, 강원 일대에 전국적으로 승리한 지역이 어느 정도 있었다. 선거 전부터 판이 워낙 기울어진 상태였는데, 개인기로써
안철수 후보에게 한참 밀리던 지지도를 다시 결집시켜 어떻게든 2위라도 해낸 것 때문에라도
자유한국당이 홍준표를 '최악의 패장'이라는 말로 공격하지 못한 것. 당시 정동영 후보는 비호남권에서
충청북도
보은군 단 1곳만을 98표 차이로 건졌다.
[18]
2017년 4월 29일에 후보 사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단일화
[19]
안철수가 민주당계 정당에서 출마하긴 했지만 대선을 앞두고 우클릭을 많이 해서 실제론 보수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표를 받았다.
[20]
득표율 10% 미만이면 선거비용 보전이 아예 불가능하다.
[21]
사실 경남에서도 10,760표 차이로 신승했다. 만약
문재인이 경합지였던 진주시와 마산회원구 중에 단 한 지역에서라도 안 패했으면 경남에서도 뒤집을 수 있었다.
[22]
수원시 팔달구, 성남시 분당구, 의정부시, 구리시, 과천시, 하남시
[23]
동두천시, 남양주시, 용인시, 파주시, 김포시, 화성시, 광주시, 양주시
[24]
평택시, 안성시, 이천시
[25]
심지어 농촌지역인 강동동에서도 패했다.
[26]
그나마 서부경남권도 현재 그 지역 상황을 보면 서부경남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형급 도시에 속하는 진주시와 창원 마산회원구에선 외지인이 유입할 만한 신도시를 개발, 혹은 재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역에서
홍준표가 관외투표를 제외하곤 10% 차이로 앞섰지만, 만약 이 두 곳 중에 단 한 곳이라도 보수세가 무너지면
자유한국당은 경남마져도 열세지역에 놓일 수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사천시에선 우주플랜트 단지를 개발하고 있고, 함안군에서는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27]
강화군과 옹진군은 과거부터 최전방 지역에 위치해 있어 대표적인 보수성향 텃밭으로 유명했으며, 서부경남 시골과 비슷한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몇 안되는 수도권의 민주당계 사지로 유명했다. 대략 7:3 정도의 격차를 보였으나 이번 선거로 10% 초반까지 격차를 줄인 것이다. 물론 이정도면
자유한국당의 든든한 텃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둘을 합해도 인구가 10만 명이 안 돼서 판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28]
경상북도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에 1위를 내준 지역은
구미시 공단2동, 진미동 및 양포동,
김천시 율곡동,
포항시
남구 효자지곡동,
칠곡군 석적읍이다.
[29]
20대 8.2%, 30대 8.6%, 40대 11.5%
[30]
대구경북 40대
홍준표 득표율은 30% 내외로,
문재인과 오차범위 이내의 접전을 보였다. 부울경 40대에서도 홍준표는 전국 평균에 가까운 20%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다. 결국 비영남권에서는 40대에서도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쳤다는 이야기이다.
[31]
일단은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날 가능성이 더 크기는 하지만, 고등법원에서 홍준표쪽에서 성완종에게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입을 맞추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심리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있는지라 이것을 다루게 되면 안심할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32]
한나라당 시절부터 이 쪽 양반들이 위기 상황에서 결집하는 능력만큼은 민주당 측에서도 대놓고 본받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다만 현재 상황은 예전과 매우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선거에 실패해도 '조금만 더하면 다시 정권 잡을 수 있다' 정도로 여유 있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까딱하다간 당이 해체될 수도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33]
두번째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뭐야?" 가 아닌 "뭐↗야↘"라는 탄식임에 유의.
[34]
특히 국민의당의 새로운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의 참패가 결정적이었다. 거의 1년만에 민심이 뒤바뀌고 만 것.
[35]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국민의당에서
친이계 출신의
이태규(정치인)가 있어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36]
다만, 안철수 후보가 분명히 보수세력과의 단일화에는 선을 그었음에도 불구하고, 적폐세력과 연대를 한다고 문재인 후보가 지적한 적은 있다. 그리고 이것을 안철수 후보에게 초반 토론회에서 지적당하자 이후부턴 언급하지 않는다.
[37]
사실, 패권주의랍시고 나눠먹기하자는 것을 더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지지자들이 원하는 사람에게 당권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당원의 의사가 배제된 인물을 앉히자는 것은 그저 "정치자영업자"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덤이다.
[38]
토론 전략, 포스터 제작, 조직의 지원 부실, 박지원 상왕론에 대한 대응.
[39]
안철수의 정책은 당의 색깔과 정책이 전혀 맞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의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에 가깝지만, 안철수의 정책을 보면 도대체가 정책 하나하나마다 어느 편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정책마저도 개인전? 결정적으로, 사드와 관련된 정책에서도 말바꾸기가 많았던데다 유치원 관련 정책에서도 의문점을 많이 제기했다. 안철수는 중도가 과연 무엇인지, 본인이 주장하는 '상식파'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더 상세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했어야 했다.
[40]
조갑제가 대표적이다. 안철수를 싫어하지만 문재인만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안철수 지지를 호소하였다. 하지만, 안철수의 하락세가 지속되자 조갑제 본인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41]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19대 대선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새누리당의 몰락 때문에 국민의당은 실질적인 2당의 포지션이었다. 20%대의 득표율은 2당에게는 그리 만족스런 성적이 아니다.
[42]
텃밭인 호남을 비롯해 수도권과 대전, 세종, 제주 등에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2위에 올랐다. 전체적으로 홍준표 후보에게 밀린 충남과 충북에서도 도시 지역인 천안시, 아산시, 계룡시, 논산시, 청주시 등에서 홍준표 후보보다 앞섰다.
[43]
아랫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있다.
[44]
공교롭게도 추후 세 명 모두 자유한국당으로 갔다. 그리고,
21대 총선에서
이종구는 낙선,
김무성은 불출마,
주호영은 당선되었다.
[45]
덧붙여, 광주는 득표율이 2%대로 낮기는 하지만, 모든 지역구 가운데 유일하게 홍준표 후보보다 높은 득표를 하였다.
[46]
다만 애초에 바른정당에서 선거보조금 위주로 완주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TV찬조연설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스쿠터, 자전거 등을 개조해서 유세활동을 하는 등 최대한 아껴썼기에 그렇게까지 재정난이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후술될 정의당과 달리 교섭단체라 지원금이 나온다.
[47]
당장 내년인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과 맞붙게 된다.
[48]
뒷줄에 노란색 세월호 뱃지를 착용한 사람이다. 더 정확한 직책은 정의당 교육연수원 부원장이고, 심상정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다.
[49]
사진에선 웃고 있지만, 다른 사진들에선 낙담하는 표정도 보였다. 사실 여론조사 지지율에 비하면 득표율이 조금 낮게 나왔다.
[50]
그런 적 없다는 의원실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서술은 여러군데서 발견되고 있다. 잘못된 사실에 대한 확신?
[51]
문재인이 동성애 관련 발언 ''
나중에"으로 인터넷에서 꽤 논란이 되긴 했지만, 결국 지지율에선 크게 깎인 것이 없는 것처럼 (물론 일부가 심상정 후보에게 넘어가긴 했다), 인터넷 안에서만의 폐쇄적 논란은 그리 크게 번지지 못한다는 것이 다수 정치학자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메갈리아 사건은 오해가 겹친 감도 있지만 어쨌든 이례적으로 정의당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심상정 등 당 지도부는 메갈리아 옹호 논란에 대해 아직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기만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정의당의 지역기반이 매우 약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것만 아니었더라면 10% 선을 넘었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하는데, 반면 메갈 논란이 되려 20대 여성표를 득표하는데는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관측도 있긴 하다. 실제로 출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심상정 후보는 20대 여성에게서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둘의 상관관계와 얼마나 영향을 미쳤냐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52]
다만 심상정 지지자들의 의견으로는 내부고발이라기엔 기고자의 자의적 판단이 매우 크다는 반론도 있긴 하다.
[53]
울산광역시,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
[54]
몇 쪽 안되는 조원진 후보의 선거 공보를 인쇄하는 데에만 5억원이 넘게 들었다고 한다.
[55]
탄기국 다음 카페 회원수가 약 8만 9천 명인데, 조원진 득표수가 약 4만 3천여 표이다. 친박의 가장 중심적인 카페 회원 조차 절반 이상이 조원진을 찍지 않았단 소리다.
[56]
그러나 이곳 역시 다음 해 지방선거에서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며 사실상 존폐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다.
[57]
당초 장성민은 국민의당에 입당해서 안철수와 맞붙으려고 했는데 이미 언급한 행보들이 문제가 되어 입당이 불허되었다.
[58]
참고로 장성민은 2007년에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민선택이라는 독자적인 당을 창당한 적이 있었으나 출마는 하지 않았고, 결국 얼마 못 가서
통합민주당에 합류하여 해산되었다.
[59]
1974년 생으로 1969년 12월 31일 이후 출생자는 이경희와 윤홍식밖에 없다.
[60]
덕분에 대선 후보 김민찬이란 이름은 몰라도 웬 스팸 메일러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결국 대선 이후 스팸메일 관련 수사를 받고 있다.
[61]
당시 이런 심정으로
허경영을 찍었던 사람이 무려 10만명에 육박했다. 심지어 허경영 본인도
"내 지지율이 이인제 후보와 비슷한데 다른 군소후보들과 비교하면 너절해진다"고 했을 정도. 기타 후보들 대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