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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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1995~1997) |
김기선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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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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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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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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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000,#e5e5e5> 이름 |
김봉길 金奉吉|Kim Bong-k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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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6년 3월 15일 ([age(1966-03-15)]세) | |
경기도
인천시 (現 인천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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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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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6cm | |
학력 |
부평동중학교 (졸업) 부평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 85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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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 선수 (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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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color=#000000,#e5e5e5> 선수 |
유공 코끼리 (1989~1994) 전남 드래곤즈 (1995~1998) |
감독 |
부평고등학교 축구부 (1999~2001) 백암종합고등학교 축구부 (2002~2004) 전남 드래곤즈 (2005~2007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8~2012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0 / 감독 대행)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2 / 감독 대행)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2~2014) 초당대학교 축구부 (2017)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7~2018) 경기대학교 축구부 (2018~2019) 산시 창안 (2020) 옌볜 룽딩 (2023~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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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4경기 ( 대한민국 / 1996) | |
가족 | 아들 김신철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2013년 인천 유나이티드 상승세의 원동력인 봉길매직의 주인공이었으나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물러났다.
2. 선수 경력
인천에서 태어나 부평동중- 부평고라는 인천 축구의 명문트리를 탄 인천 순혈이다. 부평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축구부에 진학한 뒤 당시 1988년 AFC 아시안컵에서 황선홍, 홍명보와 함께 대학생 선수로[1] 선발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였다.연세대학교 졸업 후 1989년 드래프트에서 당시 인천 연고 팀이었던 유공 코끼리에 지명되며 프로 선수가 됐다. 신인 시절 5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하며 팀의 한국프로축구대회 우승에 기여하는 등 유망주로 활약했다. 이듬해에도 5골로 팀내 최다 득점자에 올랐지만, 부상에 시달리면서 1990 월드컵에 선발되지 못했고, 3년차에 리그에서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슬럼프에 빠지며 국가대표팀과 멀어졌다. 그러나, 1993년 박성화 감독 아래서 부활해 리그 8골 4도움으로 리그 공격포인트 공동 3위에 오르며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이듬해 리그 1골에 그치며 다시 부진에 빠졌고, 1995년 신생팀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전남에서 초대 주장으로 선임돼 노상래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특히, 팀 창단 3년 만인 1997년에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컵을 주장으로서 가장 먼저 들어올리는 등,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98년 리그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고,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경력
은퇴 후 모교인 부평고등학교의 감독으로 활동했다.2002년부터 연대 선배 허정무의 부름을 받고 용인시축구센터 산하 백암종합고등학교 감독에 부임해 고교 무대를 평정하였다.
2005년부터 허정무를 따라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다.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로 있던 중 고향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안으로 수석코치를 맡게 되었고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2]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다. 페트코비치 감독 시절 인천은 유병수의 등장으로 2009년 시즌에는 6강 PO에 진출하면서 승승장구했고 김봉길 역시 페트코비치 감독 밑에서 묵묵히 임무를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트코비치 감독이 2010년 시즌 도중 사임하게 되면서[3] 급작스럽게 감독 대행을 맡게 된다.
3.2. 감독 경력
3.2.1.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대행 (2010, 2012)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시작한 후반기 시즌에서 김봉길의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단 2달 간의 감독대행이었지만 폭풍 5연패... 첫승까지 무려 15경기가 걸렸고[4] 감독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있긴 했지만 팬들의 욕을 많이 먹게 된다. 결국 시즌 막판에 취임한 허정무 감독이 취임하면서 다시 수석 코치로 복귀한다.2011 시즌 허정무 감독과 함께 팀을 꾸려나갔지만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이라는 13위로 마무리했다. 허정무 감독의 팀 리빌딩 실패, 유병수의 부진과 이적으로 인한 공격수의 부재, 유준수 등의 신예들이 기대만큼의 활약을 못한 것 등 많은 이유가 있었다.(그리고 유준수는 2012 시즌 후 방출당한다.) 또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홈 구장도 옮기는 2012 시즌에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2012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2012 시즌 초 인천은 그야말로 막장의 성적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의 서포터 폭력 사태로 징계까지 받고 순위는 15위로 강등권에 몰리면서 팬들의 원망은 자자했고 결국 구단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맞물려[5] 허정무 감독이 결국 사임하며 김봉길은 또 감독대행을 맡게 된다. 페트코비치 시절 시원하게 팀을 말아먹었던 기억이 있는 팬들이 김봉길에게 바란건 그저 강등만 면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새 감독이 올 때까지 팀을 잘 수습하는것. 그야말로 큰 바람도 아니었고, 김봉길이 감독이 된다는 생각보단 다음 시즌에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게 낫다는게 팬들의 중론이었다. 그리고 2010년처럼 몇 경기 동안은 승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FA컵 16강에서 내셔널리그의 고양 국민은행에게 패배하면서 까임은 절정에 다다르다시피 했다.
그 다음 경기인 상주전이 사실상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상주는 수비의 주축들이 부상당하고 골키퍼마저도 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주에게 홈에서 지면 당연히 짐싸고 가야 할 상황인 것. 그렇지만 설기현의 결승골로 김봉길 개인의 프로 지도자 커리어 첫 승을 거두었고 그 뒤에 경남과의 무승부 이후 7월달 부산과의 경기에서 원정에서의 400일 만의 승리를 거둔 이후에는 승승장구하다시피 했다. 특히 서울전의 3-2 역전승은 그야말로 올 시즌 인천 최고의 경기라 불릴만했다.
3.2.2.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2012~2014)
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인천 구단은 7월 16일 김봉길 코치를 감독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시켰고[6] 탄력을 받은 인천은 강등권 탈출은 물론이고 상위 스플릿까지 노리는 전력으로 급성장했다.
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찬양 모드. 초반만해도 "역시 그렇지 뭐..." 이런 반응이었던 팬들도 매 경기 때마다 올라가는 순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고 심지어 시즌 초만 해도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상위 리그 진출이 꿈이 아닐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는 중이다.
그 이후 포항에 2:1로 패배하고 수원에도 3:1로 패배하면서 위험하긴 했지만 8월달에 전남, 대전은 물론이요 디펜딩 챔피언인 전북을 전주성에서 꺾고 울산 원정도 승리하며 마지막인 제주 경기만 이기면 자력으로 상위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제주와 비기고 순위 경쟁을 하던 경남이 이기게 되면서 승점은 같지만 골득실로 아쉽게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게 된다.
비록 감독경력은 짧지만 이런 지도력을 계속해서 발휘한다면 선수로서는 실패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성공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7]가 나오고 있는게 대부분인 상황이다. 앞으로의 일을 지켜볼 수 있는 신인감독이라 할 수 있다.
31라운드부터 나눠진 하위 스플릿 리그에서 김봉길의 인천은 인천 구단 사상 처음으로 19경기 연속무패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2012년 K리그 9위라는 성적으로 감독 첫 시즌을 마쳤다. 2013시즌에도 선수들과 팬들의 절대적인 믿음 속에 상위 스플릿 리그에서 순항중이다. 그의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구단에서 선수도 아닌 김봉길 감독과 함께를 하는 이벤트를 열정도다.
이렇게 그가 선수들과 팬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 이유로 물론 '봉길매직'이라 불리는 전략전술과 용병술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인터뷰 스킬을 꼽고 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언제나 자기 자신은 낮추면서 경기를 뛴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 즉 못하면 내 탓이요 잘하면 선수 덕. 언제나 열심히 뛴 선수들, 열심히 응원해 준 팬들에게 공을 돌리는 감독을 어느 누가 미워할수 있겠는가. 입만 열면 사고를 치는 감독들이 많은 한국 프로스포츠계에서 이래저래 귀감이 되는 사람중 한 명이다.
2013시즌 3월 9일 인천의 역사적인 경기가 열린 경인더비 서울 원정. 전반 28분 아디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가던 서울이 7분 뒤에 이석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인천은 후반 6분 디오고가 역전골을 넣었지만 후반 23분 서울의 박희성이 동점골을 만들어 2:2가 된다. 인천은 동점골 실점 3분 후 김남일을 빼고 문상윤을 투입하는데 후반 33분 인천의 역습상황에서 찌아고의 폭풍 드리블 이후 패스를 받은 문상윤이 역전 결승골을 넣어 인천 유나이티드가 리그에 참가한 2004년 이후 9년만에 서울 원정 첫 리그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김봉길 감독은 베르너 로란트 초대감독이 2004년 8월 삼성하우젠컵 서울 원정경기에서 후반 40분 마에조노의 PK골로 1:0으로 승리한 이후 9년만에 서울 원정 승리를 거두었고, 리그에서는 경인더비 서울 원정 최초의 승장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2014 시즌 전반기에는 영 기를 못 썼다. 2시즌간 돌풍을 일으킨 김봉길 감독의 전술이 이제 K리그 내 다른 감독들에게 파악당하며[8] 인천 특유의 축구가 실종되었고 김남일과 한교원이라는 핵심선수 2명을 빼앗긴 상황에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까지 골고루 부진을 거듭하면서 최하위까지 순위가 내려갔다. 팬들은 그동안 해준게 있으니 꾹 참고 지지해주었지만 팀내에서는 입지가 불안해졌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후에도 성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7월 23일 포항 스틸러스전이 끝난 후 구단에서 '다음 3경기에서 2승을 올리지 못하면 경질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9] 더욱이 3경기 중 2경기가 상위팀인 울산, 전남과의 경기였기에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무려 3연승을 했고 강등권도 벗어났다. 또한 그 기간 동안 터진 6골이 모두 후반전에, 4골이 교체 선수가 넣으면서 자신의 경기 운영 능력도 입증했다.
전반기만 해도 최하위였지만 후반기 각성 후반기 승점으로만 따지면 4위다. 전반기 힘을 못 쓴지라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지만 우선 8위로 강등권 걱정에서는 벗어났다.
3.2.2.1. 해임
유정복 당시 인천광역시장 겸 인천 유나이티드의 구단주 등 구단 수뇌부가 보기에는 성적 부진이었으며 외국인 선수 선발의 실패 등을 이유로 2014년 12월 19일에 김봉길 감독의 해임을 결정했다. 그것도 전화 한 통화로. 이로써 김 감독은 인천과의 계약 기간을 1년 남겨 놓은 채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해임 이후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야인' 김봉길의 5개월, 백수와 공부 사이
이후 2017년 10월, 이승렬이 김 모 에이전트와 20년 노예계약을 맺고 휘둘렸다는 인터뷰가 나오며 이 때의 상황이 재조명되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전북에 정혁, 정인환, 이규로를 세트로 뜯긴 것이 저 김 모 에이전트의 작품이었고 ( 참고기사), 한교원 또한 저 김 모 에이전트에 의해 전북으로 넘어갔었는데 구단측에서 김 모 에이전트에게 계속 휘둘리는걸 막기 위해 김봉길 감독을 잘라버렸다는 것.
3.2.3.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 (2017~2018)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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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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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20138; font-size: .8em;" 14대 미정 (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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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김봉길호 문서 참고하십시오.
2017년 9월 26일,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까지였다.
야인으로 지내는 감독 중 확실한 성과를 보여 준 최용수, 광주 FC에서 젋은 선수들과 소통하고 선수를 발굴하는 능력을 보여준 남기일이 있음에도 왜 하필 김봉길이냐는 반대론과, 그리고 재정이 부실한 것에 더해 주전력들을 전북 현대 모터스에 쉴새없이 삥뜯기며 스쿼드가 처참해지던 인천을 어떻게든 중위권에 앉혀 놓고 잔류시킨 정도면 그래도 믿어볼만하다는 찬성론이 맞붙었다.
이런 여론에 더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은 병역 혜택 찬스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손흥민, 석현준, 권창훈에 황희찬, 김민재 등등 그야말로 쟁쟁한 선수들이 잔뜩 합류할 예정이기에 김봉길 감독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었다.
일단 김봉길 본인은 U-20 멤버들과 U-23 멤버들을 혼합해 평가전을 가진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U-20 멤버들 중심으로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하지만 첫 국제 대회인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박항서의 베트남을 상대로 2-1 진땀승에, 시리아와 무득점 무재배로 경기를 비겨 비난을 들었다. 게다가 시리아전에서 고전 끝에 겨우 비기면서 " 시리아가 초반 강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했으나 예상하던대로 강하게 나와서 고전했다."라는 기자회견 인터뷰를 하면서 어이없다는 반응. 3차전 호주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도 3-2[10]로 이기면서 조 1위를 확정지었다. 그렇게하여 8강전 상대는 말레이시아가 되었다.
8강 말레이시아전에서는 경기시작 12초만에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비교적 약체에 속하는 말레이시아 상대로 대놓고 수비축구를 하고 단순히 "내려와 내려와!!! 올라와 올라와!!!" 와 같은 단순한 전술 지시로 인하여 축구 팬들의 비난 세례가 이어졌다.[11] 애초에 말레이시아 수준의 팀과 접전을 벌인 것 자체가 김봉길의 전술적 무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오죽하면 최약체로 평가받던 말레이시아가 8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말레이시아에선 축하하며 감독도 찬사를 받았으며 더욱이 졌다고 해도 8강전에서 한국이랑 대등하게 경기를 벌인 것도 엄청 선전했다라고 언론이나 여론이 호평하고 있을 지경이다. 여담으로 말레이시아 감독인 옹 킴 스위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축구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 U-23 감독으로 참여해 고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이광종호에게 0-3으로 완패했던 인물이다.
결국 4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전후반 1:1로 끝난후 연장전에서 4-1로 완패했다. 더구나 박항서 감독이 한국보다 한참 전력이 뒤지는 베트남을 이끌고 결승진출이라는 호성적을 낸 지라 더더욱 비교되며 비난을 받았다.[12] 딱 호주전 전반 45분을 제외하면 모든 경기에서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카타르전 하루 전날인 25일에는 " 이번대회 3위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 와 "선수들이 지쳐서 우즈벡전 패배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나아질 것" 이라는 발언을 해 맹비난을 받았다. 물론 3위 하겠다라는 말은 이해가 가는 게 이번 대회 3위팀까지 3나라와 2020년 이 대회 개최국, 모두 4개 팀이 1시드를 받기 때문. 그런데 우습게도 2018년 대회에서 일본과 호주가 일찍 탈락해서 이들이 2시드를 받게 되어서 1시드 팀이 되면 이들과 맞붙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4위 하라고 비웃음 아닌 비웃음도 나온다. 4위하면 2시드로 배정받은 한국이 1시드가 된 우즈베키스탄이나 베트남을 다시 맞붙을 수 있기에 변명거리가 되는 거 아니냐는 것. 그리고 카타르에도 1:0으로 패했다. 그리고 "운이 없었다" 라는 인터뷰를 남겨 더욱 비난을 받았다.
선수 구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K리그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측면 자원인 나상호와 이광혁을 제외시켰고, 중앙에서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한찬희도 제외하고 엉뚱하게 측면 자원인 윤승원에게 플레이 메이커 룰을 맡겼다. 게다가 왼쪽 풀백으론 챌린지 하위권 팀 소속에 측면 공격수인 이건을 뽑았다. 참고로 이번 세대는 이미 2014년 김상호 감독 때도 크게 데인 적이 있다.
일단 김봉길이 인천 시절 이룬 성적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없는 살림에 상위 스플릿까지 올려 보냈고, 그것이 2017년까지는 인천의 마지막 상위 스플릿 기록이니. 다만 앞서 말했듯 U-23 감독을 맡은 뒤로는 선수 선발 과정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았고, 1골 넣은 뒤 선수들에게 '내려와!'를 거듭 외쳐대는, 전형적인 약팀식 축구로 일관해 대는 것은 인천 시절 도대체 뭘 어떻게 했던지를 절로 궁금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팀이 이 모양이면 손흥민이나 김민재, 권창훈, 황희찬 등의 와일드카드를 더한다고 해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이 컸다.
결국 2018년 2월 6일에 전격 경질됐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은 대략적인 브리핑을 가지며 대충 이런 부분들에 대해 김봉길 감독을 평가했다고 말했다.
-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즌 중에 뛰는 선수와 뛰지 못하는 선수, 그에 따른 변수를 잘 극복할 수 있는가.
- 짧은 시간 안에 개인적 능력을 잘 평가해서 체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는지 등 피지컬 관리 능력이 있는가.
- 짧은 기간 동안 매의 눈으로 선수를 평가해 가장 좋은 선수들로 최상의 조합을 짜고, 그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전술과 그 조합을 통해 강력한 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 우리를 평가하고 상대를 분석하여 적절히 경기에 대비하고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있는가.
- 경기를 하는 도중에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플랜B, 플랜C를 준비하고 의사소통을 통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를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그러나 대회 준비 및 과정에서 김봉길 감독이 이런 부분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준결승 패배 후 3~4위전에서라도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이 있길 기대했으나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계약 해지라는 결과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후임은 김학범. 그리고 이 때 대표팀에 나가지 못한 나상호도 아시안 게임에 합류했고, 김학범호는 금메달에 골인했다.[13]
3.2.4. U-23 대표팀 이후
2018년 4월 30일 경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2년간 경기대를 U리그 상위권에 안착시켰다.2019년 12월 중국 갑급 A리그의 산시 창안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특유의 빠른 압박과 공격적인 축구를 앞세워 중국에서도 '봉길 매직'이라는 수식어를 유지했으며 2020 시즌 2부 리그 그룹 B에 포함돼 10경기 4승 3무 3패를 기록, 같은 조 6팀 중 3위가 된 산시 창안은 강등 라운드에서 2위를 차지해 2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산시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본격적으로 중국 무대에 정착했다. 2021년부터 중국 운남성 U-18 대표팀 감독에 취임해 2년간 젊은 선수 육성에 힘쏟았다.
3.2.5. 옌볜 룽딩 감독
2023년 중국 을급 리그를 3위로 마치며 갑급 리그 승격에 성공한 옌벤 룽딩[14] 감독으로 부임하며 중국 무대에 복귀하였다. #2023 시즌 홈 무패 행진을 달리는 등 승승장구하며 8위에 안착, 팀의 잔류를 이끌었다.
최근 계약을 해지하였다. #
4. 여담
-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훈련방식을 바꾸게 되면서 발전했다고 한다. 허정무 감독 시절엔 새벽 훈련이라는 별 해괴한 훈련을 했다. 전문가들이 인천의 부진에 대해서 분석한 결과 훈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새벽 훈련이었다고. 이후 김봉길이 새벽 훈련을 폐지하고 나서는 승승장구하게 되었다고 한다.[15]
- 2013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신생 구단 확장 드래프트 포함)에서 김봉길 감독의 아들인 김신철이 2부 리그 부천 FC 1995에 지명됐다.
[1]
황선홍은
건국대학교,
홍명보는
고려대학교 소속이었다.
[2]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감독을 맡았고 인천 감독 취임 직전에는 팀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3]
페트코비치 감독 본인은 병중인 부인의 간호를 위해 사임한다고 했지만 사임 후 바로
카타르 스타즈 리그 팀
알 아흘리의 감독을 맡으면서 이래저래 말이 좀 많았다.
[4]
2012시즌
허정무 사임 이후 감독대행기간까지 포함.
[5]
시즌 초 부터 선수와 직원들의 월급이 나오지 않았고 사장 선임 문제로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6]
감독대행 때까지 언제나 트레이닝 웨어를 입고 다녔는데 선수들이 정식 감독이 되었는데 양복입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양복을 사줘서 입었다고 하는 훈훈한 이야기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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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디까지나 젊은 시절 기대치에 비해서다. K리그만 놓고 보면 김봉길은 충분히 족적을 남긴 선수라고 할 수 있다.
[8]
사실 인천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김봉길의 축구 스타일은 짧고 빠른 패스 위주의 역습 스타일이라 상대팀이 수비라인을 뒤로 내려버리면 아무것도 하질 못한다. 덕분에 강팀을 상대로는 제법 선전을 했지만 인천보다 약팀을 상대로는 매번 고전을 면치 못했다.
[9]
다만 이 내용은 3경기가 끝난 후에야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그 전까지는 구단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인천 구단이 김봉길 감독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 셈.
[10]
그것도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에 2골 먹힌 거였다.
[11]
다만 원래 세부 전술 등은 다 짜놓고 들어간 다음 큰 틀 내에서 운영을 하기 때문에, 경기 안에서 지도자의 지휘가 그 정도에 불과하다고 이상한 것은 아니다. 감독들이 선수 교체나 잠시 멈춰 있을 때를 이용해서 쪽지를 통해 전술을 전달한다거나, 교체 선수를 통해 전술을 전달하는 것도, 상세한 지시를 하기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12]
박항서가 김봉길보단 훨씬 급이 높은 감독이긴 하다. 김봉길은 지도자 경력 통틀어 내세울게 인천에서 상위스플릿 한 번 간 게 다지만, 박항서는 코치로서 김호와
거스 히딩크를 보좌하고 아시안게임 감독을 거쳐 경남, 전남, 상주 3팀 감독을 역임하며 경남과 전남을 6강 플레이오프 보내고 상주에서 챌린지 우승 2번 한 감독이다.
[13]
그리고 2년 후인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김봉길은 김학범과 비교까지 당하며 더더욱 까임을 받아야 했는...데 2022년엔 아예 이 대회
8강에서 탈락한 감독이 나와버렸다.
[14]
옌볜 푸더가 해체한 이후 옌벤 FC로 재창단한 후 옌벤 룽딩으로 개칭한 것이다.
[15]
훈련 방식도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허정무 감독이 재정이나 조직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영입하였기 때문이다.
김호 감독이 대전에서 실패한 이유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