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22:04:58

이규로

이규로의 역임 직책
{{{#!folding ▼
포천시민축구단 역대 주장
정우인
(2018)
이규로
(2019)
양준모
(2020)
}}} ||
Gimpo Football Club U-18
파일:FB_IMG_1655457653697.jpg
<colbgcolor=#203D41> 이름 이규로
李奎魯 | Lee Kyu-Ro
출생 1988년 8월 20일 ([age(1988-08-20)]세)
전라북도 순창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68kg
직업 축구 선수 ( 미드필더, 풀백 / 은퇴)
축구 코치
학력 옥과초등학교 (졸업)
광양중학교 (졸업)
광양제철고등학교 (졸업)
소속 <colbgcolor=#203D41> 선수 전남 드래곤즈 (2007~2009)
FC 서울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2)
전북 현대 모터스 (2013~2015)
서울 이랜드 FC (2016)
FC 서울 (2016~2019)
포천시민축구단 (2018~2019 / 군 복무)
대전 하나 시티즌 (2020~2021)
서울 이랜드 FC (2021)
포천시민축구단 (2022)
김포 FC (2022)
코치 김포 FC U-18 (2023~ )
국가대표 2경기 ( 대한민국 / 2010)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역대 등번호 <colbgcolor=#ffffff,#191919> 전남 드래곤즈 - 12번, 25번
FC 서울 - 3번, 27번, 88번
인천 유나이티드 - 29번
전북 현대 모터스 - 2번, 22번
서울 이랜드 FC - 88번, 80번
포천시민축구단 - 88번
대전 하나 시티즌 - 16번, 37번
김포 FC - 88번
서명 파일:이규로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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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코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

2. 선수 경력

2.1.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유스 출신으로 광양제철고를 졸업하고 2007년 데뷔하여 그해 FA컵에서 맹활약, 전남이 2년 연속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허정무 감독이 상당히 애정을 갖고 육성한 선수로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던 박성화 감독에게 발전 속도가 빠른 미드필더 자원이라며 추천하여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8년 리그 16경기 출전, 2009년 리그 24경기 출전하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이 활약으로 2010년 1월 잠비아전을 앞두고 소집되어 A매치 데뷔전도 치렀다.

2.2. FC 서울 1기

2010년 2월 계약 기간이 끝나자 FC 서울로 이적했다. 그러나 2010시즌을 앞두고 폭풍영입 으로 스쿼드를 불린 서울에서의 경쟁은 힘겨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쪽에는 당시 K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이였던 최효진과 백업으로 국가대표팀 출신 이종민(1983)이, 시즌 중후반엔 광주상무에서 맹활약한 최원권까지 전역했다. 왼쪽엔 2002 월드컵 출신 현영민과 백업으론 다른포지션이지만 김치우 아디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자리를 못잡아 R리그에 머물렀고 이 때문에 미니홈피에 불만 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2010시즌은 2경기 출전에 그치며 기회를 허무하게 날린다. 이듬해엔 최효진, 이종민, 김치우 좌우윙백 세명이 모두 입대하고 같이 주전경쟁을 할 것 같던 최원권이 제주로 이적하면서 오른쪽 자리가 무주공산이 되었다. 김동진이 영입되어 왼쪽에서 뛰고, 오른발잡이 왼쪽윙백인 현영민이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긴 하다.

시즌 초반부터 주전으로 기회를 부여 받았으나 시종일관 상대 윙어에게 뚫리는 등 수비에서 약점을 크게 보였다. 센터백도 아디를 제외하곤 모두 부상이라 방승환이 포지션 변경해서 뛰거나 프로경험이 적은 여효진이 뛰는 등 본인 앞가림 하기도 바빠 센터백들이 이규로의 부족한 수비력을 커버해주긴 힘들듯. 또한 부상까지 겹치며 경쟁자가 없었음에도 주전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였다.

발빠른 윙어인 김태환을 기용했으나 마찬가지로 수비에서 계속 허점이 있었고[1][2] 수비형 미드필더 한태유가 부상에서 복귀하자 주전으로 뛰던 최현태를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했다. 수비엔 일가견이 있던 선수라 수비는 잘했으나 공격력이 매우 부족했고, 김동진을 왼쪽으로 현영민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방법도 사용했으나 이번엔 왼쪽의 김동진이 문제 현영민도 오른쪽에선 왼쪽만큼의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 미드필더 전 지역을 뛰던 최종환도 기용해봤고 꽤나 잘했지만 미드필더 라인에도 부상이 많아 최종환은 미드필더로 뛰게 되었다. 이규로가 부상없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최용수감독은 마지막으로 부상에서 복귀한 고요한을 풀백으로 전향시킨다. 플레이오프 직전에 기용했으나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플레이하였고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선발로 기용하며 다음시즌 주전자리를 낙점한듯 하며, 이로인해 이규로는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FC

결국 2012년 2월 1일 이재권과 트레이드되어 은사 허정무 감독이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처음 영입됐을 당시에는 이재권이 인천에서 상당히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던 것과 비교되어 이규로 영입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오른쪽 풀백으로 정착에 성공. 정인환, 이윤표, 박태민 등과 함께 인천 수비진을 이끌며 좋은 활약을 했다.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인해 전지훈련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폼을 끌어올렸으며, 이규로를 기대하는 팬들도 꽤 있었다.

인천에서의 최종 기록은 23경기 1골 2도움.

2.4. 전북 현대 모터스

2013시즌을 앞두고 분노의 영입을 하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사정권에 들어 정인환, 정혁과 함께 전북으로 이적한다. 인천 수비진을 그대로 뜯어내다시피 한 이적이라 당시 인천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전북에선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그나마 2013, 14년에는 15, 14경기에 출전했으나 점점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2015년에는 완전히 경쟁에서 밀려나 2경기 출전에 그쳤다.

2.5. 서울 이랜드 FC 1기

이에 기회를 잡기 위해 챌린지의 서울 이랜드 FC로 적을 옮긴다. 서울E에선 박건하 감독의 신임을 받아 프로 10년만에 2경기 연속골도 넣는 등 쏠쏠히 활약했으나 부상 때문에 출전이 다소 들쭉날쭉했다.

2.6. FC 서울 2기

그리고 2016년 7월 26일 심상민을 시즌 말까지 임대하는 조건으로 FC 서울로 적을 옮겼다. 측면 자원을 중시하는 황선홍 감독이 심상민의 올림픽 대표팀 차출과 고요한의 부상으로 측면에 공백이 생기자 이를 보완할 방안으로 이규로를 낙점한 것.

FC 서울 팬들은 10~11시즌의 이규로를 떠올리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이적 하자마자 포항 스틸러스전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좋은 수비로 승리를 이끌었다. 수원 블루윙즈와의 슈퍼매치에선 송곳같은 크로스로 2도움을 올리며 팬들은 과거에 보던 그 선수가 맞나 싶을정도. 이후론 고광민과 로테이션을 이뤄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며 백업으론 괜찮은 활약을 했다. 시즌 종료 후 군입대 예정이었으나 팀에 오른쪽 풀백 백업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지 군입대를 하지 않고 괌 전지훈련에 동행했다.

2017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신광훈에게 밀려서 초반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으나 신광훈의 부상 공백을 완전히 메우며 황선홍 감독과 팬들의 신임을 완전히 얻었고 신광훈이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에는 주 포지션이 아닌 왼쪽 풀백으로 이동하였고, 노쇠화로 인해 폼이 많이 떨어진 김치우를 압도하는 활약을 보여주면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2018시즌을 앞두고 군입대가 예정되어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규로와 마찬가지로 좌우 모두 소화가 가능한 고광민이 전역하려면 아직 1년이나 남았고, 폼이 떨어진 김치우는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심상민을 믿고 한시즌을 통으로 맡기기에는 너무 불안하기 때문. 마땅히 영입할만한 선수도 없고, 구단은 그러할 의지도 없어보인다. 그리고 이 우려는 현실이 되며 많은 팬들이 이규로를 그리워하였다.

2.7. 포천시민축구단

2017시즌 종료 후 포천시민축구단에 공익 근무로에 입단해 2년간 소속되었다.

하지만 소집 해제된 이후 FC 서울은 이미 감독이 최용수로 변경된 상황이었고, 구단이 선수단 규모 축소에 나서면서 FC 서울과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다.

FC 서울 구단과 계약을 해지한 것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최용수는 4-4-2도 쓰지만 대체로 3-5-2를 많이 애용하는 지도자로서 한마디로 양 윙백은 수비는 당연하고 공격도 참가하라는 만능형[3]이 우대받는 반면 황선홍은 4-4-2 혹은 4-3-3에서 수비시에는 공격의 3에서 양 윙백이 돌아와 4-5-1의 형태를 갖추니 공격부담이 조금 줄어드는 방식을 애용한다. 이렇게 두 감독이 풀백의 쓰임새가 다른 편이다보니 이규로가 FC 서울에 있기 애매했다고 추측되고 있다.

2.8. 대전 하나 시티즌

2.8.1.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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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4일, FC 서울을 떠나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은사인 황선홍 감독, 허정무 이사장과 재회하게 되었다.

수원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장하였으며, 2,3 라운드에서도 쭉 선발 출장했으며, 제주와의 3라운드에서는 크로스로 윤승원의 극장골을 어시스트했다.

안산과의 4라운드에서는 황선홍 감독이 쓰리백을 들고 나오면서 센터백으로 기용되었지만 이후 다시 포백으로 전환하면서 측면으로 재배치되었다.

하지만 부천과의 9라운드에서 당한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못나오다가 10월 24일 전남 드래곤즈전에서 교체로 간만에 경기에 출장하였다.

승격이 걸린 경남과의 준플레이오프 원정 경기에서 바이오가 패널티 킥을 득점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다가서나 싶었는데, 바이오가 킥을 하기도 전에 패널티 에어리어에 들어오는 바람에 득점이 취소되어 버렸다(....). 결국 주심의 지시로 다시 바이오가 시도했지만 실축하며 앞서나갈 수 있던 천재일우의 기회를 박살내버렸다.

결국 대전은 막판 바이오의 득점이 다시 취소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이규로의 그 실책이 아니었다면 대전이 경남을 앞선채로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갈 수도 있었고, 스코어 그대로 끝났다면 경남을 꺾고 당시 2위였던 수원 FC와 한번 더 대결할 수 있었다.

2020시즌 리그 12경기 1도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8.2. 2021 시즌

2021년 이민성 감독 체제에서도 대전에 잔류하였고, 등번호를 37번으로 변경하였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리그 2라운드에서 선발 출장하며 시즌 첫 출장하였고, 이날 경기에서는 이규로부터 시작되는 공격이 잘 되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에디뉴도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었다.

특히 이규로는 넓은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반대쪽에서 넘어오는 횡패스나 수비에서 전해지는 횡패스는 없었고, 이에 답답한 이민성 감독 마져 이규로의 이름을 외치며 유도했지만 선수들은 짧은 패스로 빌드업 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끊겨버리자 이규로는 황급히 수비에 복귀하는등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3라운드 김천 상무도 선발 출장했으나 크로스가 김천의 파이브 백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부정확한 패스로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 기회를 제공했으며, 대전은 1:2로 패했다.

결국 4라운드 FC 안양전부터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5월 5일 전남 드래곤즈전에서 간만에 선발 출장했고, 후반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6월 12일 충남 아산 FC전에서 이종현과 교체 출장으로 간만에 출전, 준수한 활약을 보였는데, 측면에서 볼 소유하면서 정확한 양 발 크로스를 바탕으로 이종현이 있던 전반전보다 팀 공격작업 훨씬 나아지고 박스 안으로 더 좋은 패스들이 들어간 데 절대적인 공로를 했다.

전반기동안 총 5경기에 출장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 본인의 SNS에 대전 구단과의 작별을 암시하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이적이 예상되었고, 이에 대전 구단과의 불화설도 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었다.

2.9. 서울 이랜드 FC 2기

파일:FB_IMG_1625396906459.jpg

2021년 7월 4일, 서울 이랜드는 5년만에 돌아온 이규로의 재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7월 5일 열린 K리그2 19라운드에서 이규로는 안산 그리너스를 상대로 오피셜 하루만에 선발로 나왔다.

8월 7일 충남 아산 FC와의 24라운드 홈경기에선 선발 출전한지 14분만에 퇴장당했다. 팀은 3대1로 패배. 2021시즌 서울 이랜드에서의 출전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11경기 출전 2도움을 기록한채 2021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로 반년만에 서울 이랜드를 떠났다.

2.10. 포천시민축구단 2기

2022년 K3리그 포천시민축구단에 재입단하였으며, 등번호는 기존의 88번을 배치 받았다.

2.11. 김포 FC

2022년 6월 17일 김포로 이적하면서 다시 프로 무대로 복귀했다. # 원래 최고참이었던 구본상 양준아가 89년생인고로, 팀 내 최고참이 되었다.

이적 다음 날은 쉬고, 21일 전남과의 홈경기부터 선발로 나섰다. 곧바로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를 잡아, 특유의 지능적인 플레이로 수비 라인을 지휘하며 김포FC의 수비의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광양제철고 후배인 황도연이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를 잡자 7월 2일 광주전에서는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하며 예의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보여줬다. 7월 26일 부천전에서는 왼쪽 윙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 줄곧 왼쪽 윙백으로 출전하고 있으며 8월 14일 경남FC와의 32라운드에서 K리그 통산 2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8월 21일 34라운드 친정팀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무려 2,244일 만에 골맛을 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패배 직전의 경기를 되살린 것은 물론이요, 이날 경기 후 200경기 출전 시상식도 함께하면서 자축포를 터뜨린 셈이 되었다.

경기 중 다리 경련, 발목 통증 등 부상을 자주 입음에도 코치진의 만류에도 불구,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투혼을 발휘하며 고정운 감독으로부터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수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 비록 여름이적시장 도중 팀에 합류했지만 김포FC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반년간 김포에서 17경기 1골을 기록했다.

3. 지도자 경력

시즌 종료 후 SNS를 통해 23시즌에는 김포와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밝혔고, 은퇴했다. # 이후 김포FC의 U-18코치로 부임하며 은퇴한 팀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4. 대회 기록

5. 여담

  • 서울 연고 두 프로팀에 모두 두번씩이나 입단했는데, FC 서울에는 2011년까지 뛰고 2016년에 복귀했었고 서울 이랜드 FC에는 2016년에 뛰었다가 2021년에 복귀했다.
  • 2019년 5월 5일, 집에서 TV로 슈퍼매치를 보던 도중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에 대한 역대급 손절력을 보여주며 공익으로 가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
  • K리그 우승을 꽤 많이 경험했다. 활약도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서울에서 2010 시즌, 그리고 전북에서의 2014, 15시즌 우승,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와 2016 시즌 우승까지 무려 4차례의 정규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2020시즌 중반 머리를 밀었는데, 팀 동료인 이지솔 정희웅도 같은 시기에 머리를 밀면서 해설위원들이 셋을 햇갈려했다.
  • 두번째로 FC 서울에 입단했을때에 한쪽팔의 대부분을 문신으로 덮었으며, 2021년 나머지 한쪽 팔도 문신으로 덮었다.
  • ‘규로로’라는 귀여운 별명이 있다. 이외에도 크로스가 좋아 ‘규로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 신기한 것이 분명 경기력이 안좋았음에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조광래 감독이 김태환을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였다. 일본대지진으로 취소된 몬테네그로 전 대신 치러진 대구FC와의 연습경기에서 출전하였다. [2] 후에 이 선수는 K리그 최고의 라이트백중 한명이 된다. [3] 고광민이나 고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