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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농구인 전창진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코치 시절
프로 출범 후에는 수비코치 자리를 처음 얻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허재의 이적을 둘러싼 것이 있었다. 자신의 친정팀에서 매니저(당시 주무)를 맡은 이후 KBL 출범과 함께 코치로 승진하게 된다. 당시 삼성의 신임 사령탑이었던 김동광 감독은 허재 영입을 노리게 된다. 허재를 노리던 삼성은 허재와 가장 가까웠던 전창진을 코치로 임명하면서 허재 영입을 노렸으나 실패를 하게 된다. 삼성은 허재 영입에 결국 실패했지만, 전창진은 이렇게 코치로 처음 발을 내밀게 되었다. 하지만 삼성이 암담한 성적을 내면서 1년만에 잘리게 되는데, 1999년 허재를 통제할 인물이 필요했던 삼보가 그를 코치로 영입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여담으로 최희암 감독이 삼성 감독 후보에 있는걸 알아챈 전창진은 스스로 크게 화를 냈고 자신의 발로 삼성을 떠날 각오까지 하면서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계적인 매니저에서 혹독한 초보 코치 시절을 보낸 격이었다.3. 감독 생활
3.1. 원주 TG삼보-동부
3.1.1. 원주 TG삼보 엑서스
2001-02 시즌 중반 성적 부진으로 김동욱 감독이 사임하자, 감독대행으로 부임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마침 프런트의 이홍선 구단주 대행과 최형길 부단장이 그의 용산고 선배였던지라 인맥으로 감독 자리를 얻었다는 썰도 있었고, 실제로 전창진의 감독 능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창진은 신인 지명에서 큰 행운을 얻게 된다.
자신의 절친 후배인 허재와 함께 기도하며 뽑은 2002 KBL 드래프트 1 라운드 1 순위의 센터 김주성을 뽑으면서 명장으로 첫 시작을 하게 된다.
1년전 자신의 모교 선배인 김진 동양 오리온스 감독이 포인트 가드가 없어서 고생을 했는데 2001 KBL 드래프트 1 라운드 3 순위로 김승현을 뽑으면서 코치-감독대행을 거쳐 감독 승진 첫해 KBL 통합우승을 하면서 명장이 되었는데 후배가 그 길을 가게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TG 삼보는 절친 후배인 허재가 팀을 장악해주고 양경민이 슈터로서 역할을 하고 김주성도 잘 적응하면서 약점인 높이와 골밑을 해결하더니 외국인 선수이자 슈터였던 데이비드 잭슨이 미쳐버리면서 PO에서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3위가 우승을 차지하는 일을 만들게 된다.[1]
하지만, 1년 뒤 신선우 감독과 이 조 추 트리오가 있는 전주 KCC 이지스에 막히면서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우승좌절과 함께 허재는 현역을 은퇴했다.
당시 전창진 감독이 공을 들였던 포인트 가드 신기성이 상무에서 허재형의 연속우승을 이끌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이후 전창진 감독은 KCC를 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더니 1년만에 리벤지에 성공하게 된다.
자금난에 시달렸던 모기업이 컴퓨터 회사였던 TG 삼보의 유일한 2004-05 시즌 KBL 통합우승을 이끌면서 한시름 놓게 된다.
3.1.2. 원주 동부 프로미
TG 삼보는 매각설로 인해 FA로 신기성을 잃게 되면서 포인트 가드가 약해지게 되었다. 1년전 허재도 은퇴하면서 슈팅 가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허재는 당초 원주에서 지도자가 아닌 용산고 선배가 있는 KCC 이지스의 신임 감독이 되면서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더 걱정되는 건 전력약화보다 선수단의 심리적인 안정이었다. 대신 LG 세이커스에서 은퇴 이후 코치를 보았으나 성적부진으로 LG를 떠나 미국연수를 검토했던 강동희를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하지만, TG 삼보 구단이 동부그룹으로 매각된 뒤에도 지도자 전창진은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물론 전창진을 폄하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나왔던 말이 외국인 코치 제이 험프리스가 실제 전략을 짜고 전창진은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인데 이건 잘못된 오해다. 전창진 감독은 명 수비코치 출신이다. 이 비판은 제이 험프리스가 프로농구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전자랜드 감독으로 가서 폭망하면서 쑥 들어갔다. 김주성 버프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는데, 사실 김주성이 부상을 당했던 2006-2007 시즌에는 6강 PO 진출에 실패하면서 사실처럼 보였다.[2][3]
TG 삼보에서 동부로 바뀌면서 LG 세이커스에서 은퇴 이후 1년 코치를 했으나 신선우 감독과 유도훈 수석코치에 의해 갈 곳이 없었던 허재의 친동생인 강동희에게 학연조차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석코치직을 주고 그 밑에 은퇴했던 김승기를 코치직으로 주었다. 추가로 허재와 강동희의 기아 후배인 명품 포워드 김영만과 KTF의 슈터였던 손규완도 불러들였다.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모교 후배 출신을 자신의 감독 첫 참모였던 정한신도 있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은 편이다. 미디어에서는 이 부분을 전창진 사단이라 정의했다.
2005-2006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를 했으나 공교롭게도 6위였던 대선배 김진 감독이 이끄는 오리온스에 3년전 KBL 파이널에서 승리했고 4강에 오를꺼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리버스 스윕을 당하는 굴욕을 맞이했고 2006-2007 시즌 또한 주축 선수의 부상과 외국인 악재로 인해 정규리그 8위로 KBL 감독 이후 첫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최고명장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2006-2007 시즌 중 고등 친후배인 허재가 이끄는 KCC 이지스에 김영만을 내주는 대신 표명일을 데리고 왔다. 김영만은 KCC에서 은퇴식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2007-2008 시즌 김주성이 복귀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트레이드로 데리오 왔으나 쩌리처럼 보였던 슈팅 가드 강대협과 포인트 가드 표명일 그리고 이왕돈의 아들인 이광재와 이세범이라는 백코트를 꾸리고도 최고명장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2위였던 허재의 KCC와의 게임차가 2~7위와의 게임차보다 더 큰 그야말로 압도적인 KBL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런 말도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후 KBL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을 하게 된다.
4강에서 돌풍의 KT&G 카이츠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결승에서 당초 허재가 이끄는 KCC가 아닌 삼성과의 파이널에서 4승 1패로 완벽한 KBL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지도자로 두번째였다.
물론 2008-2009 시즌은 유재학의 모비스와 허재의 KCC에 막히면서 정규리그 2위와 플레이오프 4강에 그치게 되지만 2006-2007 시즌 성적부진으로 인해 당초 최상위권에 오른 팀 사정상 로터리 루키를 얻지 못했으나 2008 KBL 드래프트에서 1 라운드 3 순위로 윤호영을 선발하며 동부산성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3.2. 부산 kt 소닉붐
2008-09 시즌을 마친 후, 계약기간이 끝나자 전창진은 전시즌에 창단 이후 꼴찌 팀이었던 추일승 감독이 계약만료로 떠나게 된 부산 KTF 매직윙스로 자리를 옮긴다.[4]
사실 동부를 포함해서 kt 포함 추가 2팀이 영입전에 나섰는데 조건은 동부가 좋았지만 강동희 수석코치의 승진을 위해 10년간 코치 시절부터 자신을 만들어주었고 정들었던 원주를 떠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당시 동부 단장에게 승진을 요구했고 이루어지면서 비교적 홀가분하게 원주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팀을 단숨에 2등으로 만들면서 자신이 단순히 김주성 버프로 감독한 것이 아님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물론 송영진 버프는 있었지만 200cm가 없는 kt에서 3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 진출했다. 그 동안 선배 김진 감독에 비해 지도력에서 비판이 있었지만 과거 TG 삼보-동부 시절의 지도력을 더 업그레이드 했다. 그리고 이듬 해인 2010-11 시즌에는 2009-10 시즌 해내지 못했던 kt 소닉붐의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까지 이뤘다. 다만, 두 시즌 모두 아끼는 후배인 허재와
2011-12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끝난 뒤 친정인 삼성 썬더스를 포함해서 다구단 이적 설도 나돌았지만, kt와 3년 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팀에 잔류했다. 이때 계약한 연봉이 당시 한국의 모든 스포츠 프로 팀 감독 중 최고액인 4억 5천만원을 받았다. 주전들의 줄부상과 찰스 로드와의 갈등 속에서 리그 3위로 마쳤고, 대체 용병을 몇번이나 데려올려고 했지만 계속 실패하고 로드와는 불편한 공존을 이어갔다. 6강에서 로드가 폭발하며 4강으로 견인했지만, 그후 4강에서 이상범 감독이 탱킹으로 박찬희,이정현,오세근이라는 인삼신기 트리오를 보유한 KGC 인삼공사의 벽을 넘지 못하게 된다.
2012-13 시즌엔 박상오를 내주고 신인픽 1순위인 장재석을 얻었지만, 김도수가 시즌 초반 부상 아웃을 당하고, 김영환과 양우섭을 LG의 오용준, 김현중과 바꾼 2대2 트레이드가 패망하는 등 다사다난했던 시즌을 보냈다. 자신이 이끄는 팀이 하위권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주 멘붕한 장면을 연출했다.
2013-14 시즌에 김현중이 부활을 노리며 오프시즌에 많은 훈련을 소화하며 전창진 감독의 기대가 컸지만, 시즌전 KCC와의 연습경기에서 타일러 윌커슨과 충돌로 이빨 4개가 부러지며 사실상 시즌 아웃 상태에 놓이고 백업 포인트가드인 김현수도 발목부상이 겹치면서 2번인 김우람과 조성민이 1번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앤서니 리차드슨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김우람, 오용준의 높은(약 40%이상) 3점 성공률, 조성민의 포텐셜이 터지면서 시즌전 뚜렷한 전력 강화없이 약체로 평가되던 kt는 상위권을 유지하였고, 외국인 용병 브라이언트가 팀에 적응하지 못하자 과거 KBL과 인연이 깊은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왔다. 팬들은 나이가 너무 많은거 아니냐면서 우려했지만, 클라크는 나이를 거꾸로 먹을수 있다는 걸 증명하였다. 비록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했던 창원 LG 세이커스에 막히면서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6강전이었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의 투혼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그 전인 9월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1순위 확률을 높였지만 뽑기 운 앞에 눈물을 흘리며 5순위로 한양대 포인트가드 이재도를 데려왔다. 재밌는건 작년 탱깅를 하지않고 최선을 다한 삼성이 4순위
오리온스에선 김동욱과 갈등이 있고, 주전 포인트가드를 이현민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울것 없이 전태풍을 넘겼고, kt 입장에서도 무단이탈 이후 감독, 구단과의 불화가 있는 리차드슨을 정리했다. 대체로 두 팀 다 소득있는 트레이드였다가 주 평가였지만, 김도수 약물 파동이 터지면서 전창진과 프런트는 멘붕에 빠지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다음 시즌 1라운드 신인픽을 내주면서 결과적으로 오리온스의 승리가 되었다.
후반기 들어서는 골번의 손가락부상으로 아이라 클라크가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결국 시즌 막판 플레이오프를 위해 6경기 남기고 후안 파틸로를 영입한다. 대체로 반응들은 로드와의 불화를 겪었던걸 이유로 후안 파틸로 vs 전창진을 기대했지만, 파틸로는 전창진 감독과 호흡이 의외로 잘 맞았다.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벌어진 4위 전자랜드와 플레이오프 6강전에선 전문가들은 조성민 vs 리카르도 포웰의 대결을 예상했지만, 농구 팬들은 그런 거 관심없고 오로지 찰스 로드 vs 전창진 감독 대결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모든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리즈는 송영진 vs 이현호의 대결로 전개되었다. 실제로 전자랜드에선 송영진을, kt에선 이현호를 거의 노마크로 두다시피 했다. 결국 송영진이 3점 슛과 야투가 터지면서 5차전 접전 끝에 kt가 4강에 진출하여 정규리그 1위 LG와 4강전을 치렀다. 그러나 4강 1차전에서 경기초반 김도명 심판의 판정에 강하게 어필한 바람에 강한 배치기를 시전하면서 퇴장을 당해 한경기 출전 금지와 500만원 벌금의 징계를 받았다. 2차전을 김승기 수석코치가 대체로 치렀지만 LG에 패배.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결과적으로 그 판정 하나가 1차전과 2차전에 큰 영향을 주었고 3차전엔 조성민과 클락이 분투했지만 대패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14~15시즌 비시즌엔 골밑이 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FA를 노렸지만 실패, 사인&트레이드로 제자인 동부의 이광재를 데려오고 김현중과 김종범을 내주었다. 오리온스에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었고 외국인드래프트에서 7번째로 뽑은 마커스 고리를 퇴출, 테렌스 레더로 교체한 뒤 전자랜드와 트레이드를 해 애증의 로드를 다시 데려왔다. 조성민은 국가대표로 활약했지만 발목 부상으로 수술이 불가피해서 2-3라운드까지 출전을 하지 못했으며, 선수들의 노쇠화는 덤. 3년 재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성적이 필요했지만, 초반 8연패에 빠지며 위기에 빠졌으나 2년차 가드 이재도의 활약으로 분위기를 반전, 다시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조성민의 복귀 와 상무 선수들의 제대란 반등의 요소가 있었지만 부상자 속출로 어려워 졌다.
결국 2014-15 시즌을 23승 31패 7위로 마쳤고, kt는 지원해주었던 이석채 회장의 위성배임혐의 구속과 kt 스포츠단의 특징상 자주 바뀌는 단장직에서 바꾼 임종택 단장으로 인해 전창진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6년간 걸친 그의 kt 감독 생활은 막을 내렸다.
3.3. 안양 KGC인삼공사
그리고 바로 몇 주 뒤, 안양 KGC 인삼공사의 새 감독에 선임되었다. 이 과정에서 코치진이나 통역관 등도 자신이 데려오는 인물들로 기용해 달라는 요구 때문에 잠깐 안양 구단과 이견충돌이 있었으나 곧 수용되어 계약도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2015년 5월 25일 승부조작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줘 곧바로 소환조사를 하였고, 8월 4일에 결국 자진사퇴를 했다. 그 이유는 등록유예 마감 기한인 8월 14일까지 해결이 되지 않아서 스스로 했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 문서 참조.
자신이 데리고 온 김승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본 뒤 2016년 1월 1일자로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다. 이후 김승기 감독의 근황은 김승기/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
3.4. 전주-부산 KCC 이지스
3.4.1. 2019-20 시즌
2018~2019 시즌, 등록 승인 요청 불허로 전주 KCC 이지스의 수석코치에 복귀하지 못하고 기술고문을 맡았다가 법원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이전부터 추승균 감독의 후임설이 돌기 시작하면서 스테이시 오그먼 코치-감독의 계약 만료로 빈 감독 자리에 2019~2020 시즌부터 이끌어갈 새로운 감독으로 내정했다. 사실상 최형길 단장의 작품이었으며 추승균 감독의 후임이었다. 처음에는 징계를 맡은 KBL 재정위원회에서도 논란이 컸다. 1차 징계회의에서는 KBL 구성원 상 재판중이라는 판단으로 인해 불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오래가지 못했다. 최형길 단장의 지속적인 KBL 재정위원회를 압박하면서 재판 결과도 무혐의로 인정받으면서 2차 징계회의까지 이어졌다. 당시 미디어에서 KBL 재정위원이었던 대선배인 김진 전 동양-LG 감독이 재정위원으로 있었는데 법전을 보는 장면을 취재하면서 복귀의 가능성을 열였다. 결국 KBL은 기어이 7월 1일 오후 3시에 KBL 재정위원회를 열고 감독 등록에 대한 자격 심의를 2시간동안 진행 재정위원장은 불참을 하면서 김진 전 감독이 포함된 재정위원회 모두 전창진 감독 복귀를 찬성하면서 4년만에 KBL 감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서 전창진 감독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영 좋지 않은 여론 때문에 더 이상 KCC를 응원하지 않겠다며 떠나는 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전창진 감독은 그 결과를 통보받은 뒤 KBL 전 감독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점에 대해선 깊게 반성하고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겠다는 다짐으로 기자회견에서 복귀한 심경을 말하던 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는데,
자신의 사단인 전창진 사단의 멤버들이었던 김영만은 현주엽 감독을 보좌하는 LG 세이커스의 수석코치로 인해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세범과 표명일은 아마추어인 고등학교 코치로 떠난 상태였다. 추가로 강동희와 김영만 이후 또 다른 전창진 사단의 멤버들로 KGC 인삼공사에 잔류하게 된 김승기 감독과 손규완 수석코치의 선임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선택한 건 어제의 동지였다. 김진 사단의 최고 참모였던 강양택 전 LG 수석코치를 16-17 시즌 이후 김진 감독과 함께 퇴임하면서 재야에 있었는지 자신의 KBL 공백을 최소화하게 위해 어렵게 요청하면서 성공했다. 추가로, kt 소닉붐 시절에 함께했던 이정래 트레이너도 복귀하게 된다. 그 여부와는 상관없이 KGC 인삼공사 감독대행을 거쳐 감독으로 승진한 김승기에 대해 좋은 감정이 아닌 루머가 나왔는데 농구팬들은 사실까지 증명했다. 결국, 김승기 감독은 얄궂은 운명 끝에 비시즌 첫 만남에서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전창진 감독은 2019년 9월에 문경은 감독이 이끄는 서울 SK 나이츠와 함께 KBL 팀을 대표해서 kt 소닉붐 감독 퇴임 이후 4년 6개월만에 복귀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미디어에서 기쁨이 있었지만 설례임을 강조했다. 명문구단인 KCC 팬들을 다시 전주체육관으로 부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짐했다.
19-20 시즌 개막전 날인 2019년 10월 5일, 김선형, 최준용, 김민수, 최부경, 애런 헤인즈, 워니 등을 앞세운 전력이 상당히 막강한 우승후보 서울 SK 나이츠와의 개막전 경기가 있었다. 승부조작 무혐의 판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팀의 하위권을 예상한 전문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을 앞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연장 접전 끝에 99-96으로 승리했다. 이는 데뷔한지 4시즌만에 감독으로서는 1, 679일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1일 뒤에는 김종규와 김태술, 김민구, 윤호영, 외국인 선수 칼렙 그린 등의 초호화 라인업을 꾸린 또다른 우승후보 원주 DB 프로미를 상대로 82-86으로 패했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정도로의 재미를 선사하며 전문가들과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9] 그러자 그 동안 전창진을 안 좋게 바라봤던 언론들도 서서히 좋은 평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창진과 KCC에 대한 호평 기사들.
그런데 2019년 11월 11일, 오전 놀랄만한 기사가 나왔는데 바로 팀의 유망주와 식스맨이였던 박지훈, 김국찬, 김세창 그리고 외국인 선수 리온 윌리엄스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내주고 라건아와 이대성을 영입했다는 것이다. 아직 시즌이 4분의 3이상 남았음에 불구 이 둘을 데리고 온 것 만으로 2010-2011 시즌 이후 9년만의 우승을 노리겠다는 심산이다. 여기에 전창진 감독의 단짝 찰스 로드 역시 조이 도시 대신 데리고 와서 개막 38일만에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바뀌었다. 일부 팬들은 이대성과 이정현의 포지션이 겹치지 않을까 생각했을지 몰랐어도 감독 의도는 적절히 조절해 역할을 나눈다면 공존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이를 저지해버리려는 팀들 역시 여럿 있었다. SK, DB, 전자랜드, KGC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으나, 이대성, 이정현, 송교창, 라건아 그리고 그의 백업 찰스 로드까지 KBL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토종 빅맨 자리에 최현민 혹은 한정원이 뛸 것으로 보였는데 다른 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져 어떻게 공격을 풀지 숙제는 남아있었다. 전창진 감독으로서는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면서 기용할 방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KCC는 선두권에서 이탈하여서 중위권으로 내려오는 등 분위기는 다소 좋지 않아졌다. 트레이드 이후 아직 최적화된 선수 조합을 만들어내지 못해 비효율적인 경기 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11월에는 8경기에서 2승 6패에 그치는 등 매우 부진한 한달을 보냈다. 이대로 손발이 계속 맞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트레이드 역효과라는 비판을 받았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12월 7일,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66-63으로 승리하며 3연패를 벗어나더니 바로 다음날은 전자랜드를 상대로 21점차로 지던 경기를 역전시키며 반등점을 만들어냈다. 서서히 라건아, 이정현, 이대성이라는 세 버팀목 간에 롤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월에 들어서면서 경기력 기복이 다시 11월 수준으로 돌아갔고 로드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중위권에서 고전했다. 그리고 5라운드 라건아의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으로 시즌아웃을 당하면서 '그렇게 라건아를 쓰지 못해 안 달나더니 결국 사단이 났네. 감독과 단장은 당장 사퇴하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본인 나름대로 시즌을 진행해 나가던 중 코로나19 때문에 잔여 경기 진행에 차질이 생겼고, 2020년 3월 24일, 연맹에서 시즌 종료를 선언하면서 KCC의 19-20 시즌 최종 성적은 23승 19패에 4위로 굳혀지면서 조직력 강화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대성-이정현-송교창-라건아라는 국가대표 빅4를 보유하고도 4위는 냉정히 말하면 실패로 평가받았다.
kt 감독 이후 5년만의 복귀전은 나름대로 성과를 내었으나 평소 강조했던 수비와 조직력을 감안하면 아쉬움을 남겼다.
3.4.2. 2020-21 시즌
그리고 시즌 종료 후 FA로 풀린 이대성과 최승욱을 잡지 못했다. 그나마 박지훈이 임대여서 KCC로 돌아와주지만 달랑 29경기 쓰고 109일만에 그것도 계약기간이 1년 남은 라건아만 남긴 채 현대모비스에게 3명을 그냥 준, 일명 속된 말로 호구딜을 해 버린 셈이 되었다.하지만, 가드 라인에서 이대성을 포기하는 대신 FA로 전자랜드에서 김지완과 LG에서 수비상을 수상했던 유병훈을 영입하면서 과거 kt 소닉붐 시절 벌떼농구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이미 유병훈과 함께 LG에서 활약했던 선배인 정창영 또한 LG 세이커스 시절과 달리 재발견 되었다.
외국인 또한 라건아의 뒤를 받칠 파트너로 kt 시절 애제자나 다름이 없었던 베테랑인 찰스 로드를 결별시키고 NBA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출신인 타일러 데이비스를 영입하면서 과거 TG 삼보-동부 시절의 강력한 골밑 농구를 예고했다.
2020년 11월 KCC 오리온 현대모비스 3팀의 삼각트레이드로 최현민을 고양 오리온에 내주고 김상규를 데리고 오며 송교창의 백업으로 쓰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2라운드까지 상위권에 형성하면서 이대성을 데리고 오면서 실패했던 공존해법을 그나마 찾으면서 잃어버렸던 최고명장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조직력 강화에 고심하였다. 다행히도 유현준의 성장속도가 빨라서 한시름을 덜었다.
3~4라운드 들어 12연승을 하며 압도적인 1위를 달렸으며 이는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타이기록이자 이 정도 상승세면 현대모비스가 가지고 있는 KBL 최다 연승 17연승도 깰 기세였다.[10] 하지만 이후 1월 24일 열린 SK전에서 패배하면서 아쉽게도 연승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이후 5라운드에선 팀이 하락세를 타고 동시에 현대모비스가 무섭게 상승세를 타며 전 시즌의 아쉬움을 또 한번 반복하나 했으나 타일러 데이비스의 중도하차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인지 다시금 1위 팀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성공했고, 결국 3월 30일 현대모비스가 DB에 패배하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11]
시즌이 끝난 뒤 열린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개인 통산 6번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는 유재학 감독을 제치고 KBL 최다 감독상 수상자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후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전자랜드를 상대로 힘겹게 3승 2패로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면서 13년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노리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챔피언결정전 상대가 원주 동부와 부산 kt 감독 시절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 김승기 감독이 이끄는 KGC였으나 모두 속수무책으로 밀려 버리면서 통합우승에는 실패했다.
결정적 원인은 4강 플레이오프 시작전부터 부상을 입은 송교창 선수를 포함해서 주축 선수의 부상이 그 때 나오면서 발목을 잡았다.
3.4.3. 2021-22 시즌
FA로 풀린 송교창 선수의 잔류에 성공했다.추가로 현대모비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김지후를 내주는 대신 국가대표 출신 슈터인 전준범을 영입하며 이정현과 함께 쌍포 구축에 나섰다.
외국인도 라건아와 재계약을 했고 자신을 꺾은 챔피언인 KGC에서 풀린 라타비우스 윌리엄스를 영입했다.
하지만, 21 KBL 컵에서 두 외국인들의 늦은 입국과 자가격리로 인해 토종 선수로 시합을 치른 악재 속에 2패로 성과를 얻지 못했다.
특히 산악훈련은 이번에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서 걱정거리를 낳았다. 여기에 고질적인 가드난 해결에는 실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1, 2라운드 모두 각각 4승 5패로 8승 10패였는데 부상 선수가 속출했었다. 정창영, 송교창 등의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더 패할 뻔 했던 게임을 이정현과 라건아로 버티지만 아무래도 순탄치 않아 보였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3라운드 첫 경기에서 김지완까지 부상당하고 말았다.
5라운드에서 외국인 선수 2명이 모두 빠진 서울 삼성을 상대로 손쉽게 대승을 거두면서 마침내 감독 통산 500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2월 10일 부터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결장하고 잠시 강양택 수석코치의 대행체제를 꾸렸다.
6라운드에서는 주전들의 부상 공백을 절감하며 정규리그 우승팀의 징크스를 절감하고 말았다. 21승 33패에 그치면서 정규리그 9위라는 저조한 성적과 함께 상처를 입게 된다. 최근 KBL은 3개팀이 전년도 정규리그 우승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17-18 시즌 DB는 18-19 시즌 8위에 그치게 되며 현대모비스는 19-20 시즌 8위로 추락하더니 20-21 시즌 SK, DB는 각각 8, 9위를 기록하더니, KCC도 정규리그 챔피언 징크스에 잡혔다.
부진 이유는 훈련부족과 체력저하에 따른 부상이다. 사실 KCC 로스터가 30대 고령이 많은점과 그 동안 전창진 감독이 신인 육성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한 몫을 했다. 그나마 이근휘를 밀어주긴 한데 아직까지는 역부족이다.
구단에서는 재계약을 구두적으로 합의를 본 뒤 라건아의 뒤를 이을 외국인을 스카웃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그 사이 자신이 혹독하게 조련했던 김승기 KGC 인삼공사 감독은 자신이 함께했던 친정팀인 2위 kt를 1패 뒤 3연승으로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SK에게 1승 4패로 패한 직후 KGC 인삼공사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고양 오리온을 해체 후 창단한 데이원 자산운용 산하 캐롯 점퍼스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
3.4.4. 2022-23 시즌
시즌을 앞두고 송교창과 유현준은 상무에 입대하고 이정현은 FA로 서울삼성 이적을 택해서 처지는 시즌 우려되었으나 구단이 FA시장에서 대어급 2명을 영입하며 다시 우승후보로 도약하게 되었다. FA에서 오리온 이승현과 DB 허웅을 데리고와서 라건아와 함께 공격 삼각편대를 이루게 되었다. 허웅의 보상으로 유현준이 팀을 떠나게 되었으나 송교창의 상무 전역 때는 우승적기라는 평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시즌도 부진을 면치 못하면 구단에서 용단을 내릴 수 있다.시즌 시작 전부터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일본 전지훈련이 취소되며 시즌 전 구상에 먹구름이 낀 상황. #
시즌 들어서 5할 승률 밑을 유지중이나 순위는 6위에 위치해 있지만 7위 KT 소닉붐하고는 1승차로 좁혀져 있고 이후 결과에 따라 KT 소닉붐이 6위를 탈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 6위 자리 유지도 안심 못 할 정도이고 게다가 허웅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줄부상으로 이탈하고 경기 운영 측면에서도 어마어마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결국 참다못한 팬들이 KCC 본사에 트럭시위를 보내고 최형길단장과 함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여론이 매우 험악해졌다. #
최종성적은 24승 30패로 6위를 차지해 6강에 턱걸이했는데 6강 플레이오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3위 SK를 만나서 3연패로 스윕을 당해 탈락했다.
3.4.5. 2023-24 시즌
같은 60년대 출생 감독들인 서동철 감독과 유도훈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면서 KBL 10개 구단 중 서동철 감독의 친구 김상식 감독과 더불어서 유이한 60년대 출생 감독이자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 만일 이번 시즌에도 성적 부진이 나온다면 경질되거나 스스로 사퇴하거나 재계약에 실패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더욱이 KCC가 전주실내체육관의 철거 문제와 전주시의 신규 체육관 건립 지연으로 인해 구단에서 연고지 이전까지 한 상황이다. 전주에서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해 전창진 본인으로써는 2014-15 시즌 부산 kt 소닉붐 감독 이후 8년만의 부산 연고 감독이 되어 책임이 막중해진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허재의 장남 허웅도 처음으로 한국농구의 성지 사직실내체육관에서 함께 하는 만큼 우승이 절실한 상황이다. 부산 연고 협약식 때도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고 허웅 또한 우승에 대한 갈증이 컸다.
FA 시장에서 서울 SK 나이츠과의 재계약이 결렬된 국가대표 포워드이자 허웅의 절친인 최준용을 또 영입하면서 우승에 대한 의지를 또 드러냈다. 다만 최준용의 경우 한국판 찰스 로드인 만큼 선수단 관리가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이로 인해 이상민 전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을 16년만에 친정에 복귀시키면서 코치로 두게 되었다.
시즌 개막전 열린 2023 KBL 컵대회에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후보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전 연고였던 전주시민들에게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단, 부상이 또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FA로 영입한 최준용이 내전근 부상과 전준범이 발목인대 파열로 시즌 초반 결장할 예정이라 전창진 감독은 송교창이 전역할 때까지 대체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부산 연고 이전 첫 개막전이었던 삼성전에서 106-100으로 승리했는데, 엷은 벤치 멤버들로 인해 간을 떨었다.
이후 시즌에 접어들수록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면서 중위권에 맴돌고 있다.
결국 노쇠화된 로스터와 약한 가드 라인, 그리고 부상과 대표팀 차출의 여러 악재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규리그 5위에 그쳤다. 슈퍼팀의 명성을 이어가는 데 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플레이오프에서는 슈퍼팀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직전 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팀 SK를 상대로 3:0 스윕승을 거둔데 이어 이번 정규시즌 챔피언 DB를 3:1로 물리치는 대이변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써 3년만에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날 승장의 자격으로의 인터뷰에서 불길한 예감이 나오게 된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자신의 제자였던 송영진 감독과 허웅의 동생 허훈의 수원 KT 소닉붐과 2023-24 KBL 챔피언결정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시리즈 스코어 4대1로 kt를 꺾고 2007-08 시즌 이후 무려 16년 만에 우승 감독으로 등극했다. 특히 안방에서 열렸던 3차전은 역대급 명승부 중의 명승부 끝에 승리하며 농구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이로써 감독 최초 전 구단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이긴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12]
추가로 KBL 프로농구 역사상 두개팀 플레이오프 우승을 거둔 두번째 감독이 되었다. 최인선 감독 이후 무려 24년만의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편 4강 플레이오프 승리 이후 인터뷰에서 사퇴에 대해 언급을 하여 시즌 후 사퇴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허웅이 인터뷰 중 전창진 감독이 내년 시즌까지 이끌겠다고 이미 구단에 밝혔다고 언급했다.
3.4.6. 2024-25 시즌
이후 2024년 5월 9일, KCC에서 공식 발표를 했는데 당초 23-24시즌까지만 하려고 했지만 최형길 단장의 설득으로 24-25시즌 까지한 후 퇴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통산 1000경기 출장도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시즌에 채우고 은퇴하게 될 예정이다.2024년 10월 19일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수원 kt 소닉붐과의 개막전에서 2쿼터 후반경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하였다.
3.5. 통산 감독 성적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정규시즌 | 플레이오프 | |
2001-02[감독대행] | 원주 삼보 엑써스/원주 TG-TG삼보-동부 | 30 | 11 | 19 | 9위 | - | |
2002-03 | 54 | 32 | 22 | 3위 | 우승 | ||
2003-04 | 54 | 40 | 14 | 1위 | 준우승 | ||
2004-05 | 54 | 36 | 18 | 1위 | 우승 | ||
2005-06 | 54 | 31 | 23 | 3위 | 6강 PO | ||
2006-07 | 54 | 23 | 31 | 8위 | - | ||
2007-08 | 54 | 38 | 16 | 1위 | 우승 | ||
2008-09 | 54 | 33 | 21 | 2위 | 4강 PO | ||
<rowcolor=#00703c> 통산 | 408 | 244 | 164 | 0.597 | V3 |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정규시즌 | 플레이오프 | |
2009-10 | 부산 kt 소닉붐 | 54 | 40 | 14 | 2위 | 4강 PO | |
2010-11 | 54 | 41 | 13 | 1위 | 4강 PO | ||
2011-12 | 54 | 31 | 23 | 3위 | 4강 PO | ||
2012-13 | 54 | 20 | 34 | 9위 | - | ||
2013-14 | 54 | 27 | 27 | 5위 | 4강 PO | ||
2014-15 | 54 | 23 | 31 | 7위 | - | ||
<rowcolor=#000000> 통산 | 324 | 182 | 142 | 0.562 | - |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정규시즌 | 플레이오프 | |
2019-20 | 전주-부산 KCC 이지스 | 42 | 23 | 19 | 4위 | [코로나-19] | |
2020-21 | 54 | 36 | 18 | 1위 | 준우승 | ||
2021-22 | 54 | 21 | 33 | 9위 | - | ||
2022-23 | 54 | 24 | 30 | 6위 | 6강 PO | ||
2023-24 | 54 | 30 | 24 | 5위 | 우승 | ||
2024-25 | |||||||
<rowcolor=#0f236a> 통산 | 258 | 134 | 124 | 0.519 | V1 | ||
<rowcolor=#373a3c> 총계 | 990 | 560 | 430 | 0.566 | V4 |
3.6. 100승 단위 달성 경기
소속팀 | 시즌 | 승리 | 상대팀 | 일자 | 경기장 |
원주 TG삼보 엑서스 | 2004~2005 | 100승 | 부산 KTF 매직윙스 | 2004년 12월 26일 | 부산금정체육관 |
원주 동부 프로미 | 2007~2008 | 200승 | 2007년 10월 28일 | 원주치악체육관 | |
부산 kt 소닉붐 | 2010~2011 | 300승 | 안양 한국인삼공사 | 2010년 12월 26일 | 안양실내체육관 |
2013~2014 | 400승 | 서울 삼성 썬더스 | 2014년 2월 13일 | 잠실실내체육관 | |
전주 KCC 이지스 | 2021~2022 | 500승 | 2022년 2월 6일 | 전주실내체육관 |
- 유재학 감독과 더불어 KBL을 대표하는 최고명장이다. 200승, 300승, 400승, 500승 모두 KBL 최소경기 기록으로 달성했다. KBL에서 둘뿐인 500승 이상 감독이다.
[1]
참고로 5차전에서 계시원의 실수로 시간이 15초나 흐르지 않은 채 경기가 그대로 진행되는 오작동 사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는 정정되지 않았고
오리온스 입장에서는 이것만 아니었으면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통한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2]
그런데 어느 팀이나 에이스가 빠졌을 때 전력이 급감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국내 감독들 중 지도력에서 가장 이견이 적을
유재학도 우승한 2006-2007 시즌 직후
양동근의 상무 입대와 용병 농사 실패로 2007-08 시즌에 바닥을 헤멨다. 솔직히 팀의 기둥이 다쳤을 때 6강 실패했다고 선수빨이라고 몰아붙이면 선수빨 아닌 감독이 거의 없다.
[3]
이는 농구의 특성상 더 크게 드러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한 선수가 경기의 일부에만 관여하는 야구, 풋볼이나, 공격수의 수비부담이 적고 수비수의 공격부담이 적은 축구 등과 달리 농구는 전원공격, 전원수비이기 때문에 한 선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크다. (당장 5명이라 비중이 큰 것도 있고) 그런데 보통 팀의 에이스는 그 팀의 공수 전술의 핵이기 때문에 에이스가 빠지면 지금까지 쓰던 전술을 다 폐기하거나 수정하고 새로운 전술을 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두 경기 빠지면 임기웅변으로 때우더라도 장기결장의 경우 전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물론 99플옵, 00플옵의 뉴욕 닉스처럼 새로운 전술(에이스 패트릭 유잉이 빠지자 스프리웰-휴스턴을 중심으로 빠른 페이스의 농구로 면모했다)이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드문 경우고 보통 시즌 내내 준비해오고 연습해온 연습을 뒤엎으면 전력이 급감하기 마련이다.
[4]
이후 모기업인 KTF는 KTF-kt의 합병과 함께 부산 kt 소닉붐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5]
[6]
전창진과 비달은
승부조작 혐의, 비달은
대회 도중
음주운전으로
경찰에게 체포당했는데 결과적으로 전창진은 법원에 의해 승부조작 혐의에서 완전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달의 음주운전은 현행범인 상태였기에 이견의 여지가 없는 팩트인 반면 전창진은 완전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감독 등록 불허가 해제된 시점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이기에 이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은 힘들다.
[7]
기사 내용을 보면 처음에 '전토토가 돌아왔다'는 말부터 시작하면서,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을 감독 자리에 앉히는 KCC와 KBL의 실태를 비꼬는 것처럼 보이지만
..... 내용의 중반으로 흘러갈수록 점점 '전창진이
이혼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데다, 거주할 집이 없다'고 뭐 이조차도 진실인건지 아니면 쉴드 쳐줄려고 일부러
억지 감성을 이끌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를 용서해주라는 옹호성의 기사 내용이었다. 그러자 '기레기가 창진이에게 돈 받았냐', '
감성팔이 오졌다', '병철이 전토토 빠돌이 인증'이라는 좋지 않은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다.
[8]
사실 이 기사를 쓴 유병철 기자는 오래전부터 전창진에 대해서 매우 좋은 기사를 쓰기로 유명했다.
전창진에 관한
기사 자료들. 이 정도면 그냥 전창진하고 친분 맺어도 될 듯 하다.
[9]
SK와 DB는 시즌 시작 전에 많은 전문가들이 꼽았던 강력한 우승후보 팀들이었다. 반면 KCC는
이정현과
송교창이 있었지만, 그 외의 나머지 라인업들이 별 볼일 없는 선수들이라 그런지 대부분 하위권을 예상했다. 승부조작 무혐의 판결 때문에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인 것도
덤. 그러한 SK, DB를 상대로 승리와
졌잘싸를 시전한 KCC라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마치
올림픽에서
중국 농구 대표팀이
스페인 농구팀을 꺾고,
미국 드림팀과 접전 끝에 패배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10]
다만 현대모비스는 두 시즌에 걸친 기록을 보유 중이었으며 단일 시즌 최다 연승은 2011-12시즌 원주 동부의 16연승이었다.
[11]
이로써 전창진 감독은 KBL 최초로 3개 팀(TG삼보-동부, kt, KCC)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 되었다.
[12]
2003년 모비스, LG, 오리온스(현 소노), 2004년 전자랜드(현 가스공사), 2005년 삼성, KCC, 2008년 KT&G(현 정관장), 2024년 SK, DB, KT
[감독대행]
시절 성적만 기재
[코로나-19]
확산사태로 인한 시즌 조기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