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21:42:46

전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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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시즌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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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f236a><colcolor=#fff> 감독 전창진
코치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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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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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겸 D리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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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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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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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래 · 장지영 · 전승화
가드 1 이호현 · 3 허웅 · 5 김동현 파일:부상 아이콘.svg · 6 송동훈 · 7 정창영 [[주장|
C
]] · 9 전태영 · 10 이주영 · 23 정배권 · 25 에피스톨라 · 30 이현호
포워드 0 조혁재 · 2 최준용 · 13 이찬영 · 15 버튼 · 17 전준범 · 19 이근휘 · 21 여준형 · 33 이승현 · 55 송교창 파일:부상 아이콘.svg
센터 44 윌리엄스
군 입대
2024년 입대
서정현
타 한국프로농구 구단 명단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선수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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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산 KCC 이지스 엠블럼.svg 파일:수원 kt 소닉붐 엠블럼.svg 파일:수원 kt 소닉붐 엠블럼(유색배경).svg 파일:원주 DB 프로미 엠블럼(녹색).svg 파일:창원 LG 세이커스 엠블럼.svg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전창진
부산 K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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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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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3
(감독)
2005
(감독)
2008
(감독)
2024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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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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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2000 시즌 2000-01 시즌
최인선
기아
신선우
현대
신선우
현대
최종규
삼보
김동광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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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동양
김진
동양
전창진
TG삼보
전창진
TG삼보
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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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유재학
모비스
전창진
동부
유재학
모비스
전창진
kt
전창진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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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희
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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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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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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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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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
KGC
이상범
DB
유재학
현대모비스
이상범
DB
전창진
K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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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철
SK
김상식
KGC
김주성
DB


<rowcolor=#fff> 2026-27 시즌 2027-28 시즌 2028-29 시즌 2029-30 시즌 2030-3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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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진의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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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경력
한국프로농구 감독
파일:원주 동부 프로미 엠블럼.svg

4대
2001~2009
파일:부산 kt 소닉붐 엠블럼.svg

4대
2009~2015
파일:안양 KGC인삼공사 엠블럼.svg

8대
2015
파일:부산 KCC 이지스 엠블럼.svg

5대
2019~
국가대표팀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대
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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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KCC 이지스 감독
BUSAN KCC EGIS
파일:전창진 2024-25.png
전창진
田昌眞[1]
<colbgcolor=#0f236a> 출생 1963년 5월 20일 ([age(1963-05-20)]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담양 전씨 (潭陽 田氏)[2]
신체 신장 185cm[3] 체중 102kg
직업 농구 선수 ( 가드/ 포워드 / 은퇴)
농구 감독
학력 상명초등학교 (졸업)[4]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5]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실업 입단 1986년 삼성전자 농구단
소속 <colbgcolor=#0f236a> 선수 삼성전자 (1986~1987)
코치 수원 삼성 썬더스 (1998~1999)
원주 삼보 엑써스 (1999~2001)
감독 원주 삼보 엑써스 (2001~2002/ 대행)
원주 TG-TG삼보-동부 (2002~2009)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04~2005)
부산 kt 소닉붐 (2009~2015)
안양 KGC인삼공사 (2015)[6]
전주-부산 KCC 이지스 (2019~2025)[7]
프런트 삼성전자 (1991~1997 / 주무)
전주 KCC 이지스 (2018~2019 / 기술 고문) [8]


1. 개요2. 선수 시절3. 선수 은퇴 후4. 지도자 경력5. 야인 시절6. 감독 스타일
6.1. 장점6.2. 단점
7. 승부조작 의혹(무죄)
7.1. 1심 재판7.2. 2심 재판7.3. 무죄
8. 전창진 사단9. 여담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농구 프런트이자 현 농구 감독.

원주 동부 프로미 부산 kt 소닉붐 감독.

현재는 전주-부산 KCC 이지스의 감독이다.

별명은 치악산-금정산 호랑이[9], 저팔계, 전타짜[10], 전토토.

kt 부임 첫 시즌에는 부처님이란 별명을 잠시 얻었는데, kt가 그 동안 약팀으로 오래 있어서 그런지 선수들이 패배 의식이 쩔었다고 해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칭찬을 마구 날려서 붙은 별명. 그래서 부임한 지 첫 시즌만에 2위를 하고 나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능 자체가 호랑이다.

하지만, KCC[11] 시절에는 호랑이기도 하며 곰이기도 한 범곰이라는 새로운 별명도 있다.

구설수로 인해 4시즌 간 KBL 감독직 공백과 5년간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비극사에도 불구하고 좋지는 못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부산 KCC 이지스의 감독으로 호랑이이지만 형님이자 아버지 같은 농구감독으로 지도하며 여전히 현직 농구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 선수 시절

파일:external/www.basketkorea.com/bb.jpg
파일:허재와 전창진 대학시절.jpg

어린 시절에는 상당히 촉망받던 선수였다. 지금이야 몸이 불었지만, 어릴 때는 날렵한 슈터였다. 친구인 유재학과 함께 상명초등학교와 용산중을 다니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회를 모조리 평정했다. 유재학은 경복고로 진학해 연세대학교로 갔지만, 전창진은 용산고로 진학해 청소년대표도 하고, 친구의 라이벌 대학인 고려대학교로 진학했다. 고려대학교시절 영상그리고 졸업한 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되어 선수 생활을 이어가나 싶었는데, 발목을 다치는 부상이 악화되면서 선수로서는 딱 1년만 뛰고 은퇴했다.

3. 선수 은퇴 후

은퇴 후 삼성전자 농구단의 주무 자리를 제안받아 주무로서 일하게 되었다. 프로농구 체제에서 주무는 팀 스케줄 관리 정도만 하는 매니저 역할로 업무가 한정돼 있지만, 실업농구 시절의 주무는 선수단 스케줄 관리는 물론 선수단 운영, 대외 홍보, 훈련시간 조정 등 선수단 안팎의 모든 잡일을 혼자 해야 하는 중노동 보직이었다. 그러나 이 주무로서 전창진은 상당한 역량을 발휘해 최고의 프런트, 세계적인 프런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삼성전자의 주무로서 인정받았다. 홍보, 운영, 사무, 트레이너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실력을 발휘했다.

1991년 삼성 농구단의 동남아 전지훈련 지원 차 출장을 갔다가 홍콩에서 구단 총무이자 대학교 선배인 이왕돈 과장이 숙소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지자 그를 재빠르게 병원으로 이송하여 목숨을 건지게 한 적이 있다. 그 후 이왕돈 씨의 아들 이광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구선수가 되었고 원주 동부 프로미 부산 kt 소닉붐에서 전창진의 제자로 플레이하며 대를 이어 인연을 맺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부는 이광재가 입단한 시즌에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자신을 만들어주었던 스승으로 나래-삼보 코치 시절에 이적하면서 만나게 된 지도자 초기 시절의 은사 최종규 전 삼보 감독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최종규 감독은 대우증권 농구단에서 전창진의 친구인 유재학 당시 코치를 지도하기도 했다. 전창진과 유재학 모두 최종규 감독의 퇴임 후 감독 지휘봉을 잡았고 리그 최고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프로농구의 최고 명장을 만든 멘토가 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4. 지도자 경력

파일:전창진 KCC 감독 열정지휘.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전창진/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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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야인 시절

2016-17시즌 잠실학생체육관에 방문하고 있었으며 감독교체설이 돌고 있었다. 헤인즈 이탈 이후로 완전히 무너진 SK는 문경은 감독의 교체를 원하는 목소리는 높았고 전창진에 대한 찬반양론 또한 거센 편이었지만 무기한 자격정지 상태로 재심을 청구해 자격정지 해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임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더구나 2017-18시즌에 SK가 18년만에 우승을 하면서 재계약도 확정되었다.

그리고 승부조작사건이 1심 재판에서는 무죄, 2심에는 유죄가 나왔기에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올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재판 결과에 따라 복귀 여부에 대해서는 불투명했었다.

2018년 11월 29일, 전주 KCC 이지스의 수석코치로 내정되었다는 KBS 9시 스포츠 뉴스 보도가 나왔지만 KBL에서는 무기한 자격 정지로 인해 정지가 풀려 허가가 날 때까지 코치 복귀가 불투명하다고 했었다. 이후 하루 뒤인 11월 30일에 수석 코치직 내정이 확정되면서 자취를 감춘지 3년만에 프로농구에 복귀한다는 소식에 농구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는데, 물론 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KBL 경험이 풍부한 코치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수석 코치로 영입[12]했지만, 승부조작 사건 이후에도 논란은 여전했다.[13]

그리고 2018년 12월 3일, KBL은 재정위원회를 개최해 수석 코치 복귀에 대한 자격을 심의한 결과 등록 승인 요청이 불허되면서 복귀는 물 건너가 버리고 말았지만,[14] KCC 구단측은 전창진에게 기술 고문[15]을 맡게 했으며 추승균 감독을 보좌했던 외국인 코치로 감독 대행에서 정식감독이 된 스테이시 오그먼[16]을 보좌해주었다. 한국농구판 맨체스터 시티[17]

참고로 복귀가 무산되기 전, 다음과 같은 호소문 내용을 썼다.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인사올립니다. 전창진입니다. 저를 아껴주신 많은 팬들과 선후배 동료 어려분께 너무도 큰 상처를 안겨드린지 어느덧 3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시간 속에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저의 무지와 안이함으로 제 삶의 전부인 농구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깊이 머리숙여 사죄드립니다.

듣기만해도 경악스러운 승부조작 혐의는 벗어던졌지만 여전히 자성과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날 공인으로서 정도를 걷지 못한 점도 아직 깊은 회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때는 억울함과 서운함에 울컥하기도 했지만 지난날들은 제게 모든 것이 제 탓임을 알려주었습니다.

프로농구 시간이 되면 저도 모르게 눈길은 TV로, 발길은 체육관으로 향하곤 합니다. 거리에서 밥집에서 아직도 저를 알아보시고 따뜻한 말씀을 전하는 팬들 앞에서 저는 그저 감사와 송구함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코트로 돌아가고 싶다는 외침이 하염없이 생기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은 이후 40여년. 농구는 제 인생의 전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 코트에 다시 설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많은 반성과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절감합니다. 몇 마디 짧은 글로 제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농구인과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되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서 제 40년 농구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모범적으로 농구장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면 가장 겸허한 마음으로 가장 우직하고 성실한 태도로 농구를 맞겠습니다. 팬들과 선후배 동료 여러분 모두가 새로움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화려함에 우쭐하지 않을 것이며 분수 넘게 누렸던 모든 것들을 팬들과 농구인에게 되돌려주는 구체적 행동에도 나서겠습니다.

인간은 교만하거나 실수할 수 있는 존재이고 과오를 딛고 더 단단히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꼭 얻고 싶습니다. 깊은 이해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창진 올림-

파일:KCC 기술고문 시절의 전창진.jpg
경기 중에 벤치 뒤에 관중석에 앉아있던 모습도 카메라에 멀리서나마 나타났다. 그러다가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KCC와 오리온의 경기 때 벤치 뒤편에서 이어폰을 착용하고 경기를 관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직관에 이어 또 한 번 개념 없는 행동으로 농구팬들에게 민폐를 끼쳤다.[18] KBL 관계자는 25일 열린 2차전에서는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았고[19] 종이와 펜을 가지고 메모만 한 것을 확인했다며 매 경기 때마다 지켜보겠다고 했었다. 전창진의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했었지만 전자기기 사용과 관련된 규정이 따로 없으니 사실상 KBL이 어찌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오리온을 꺾고 플레이오프 4강전에 진출한 KCC는 모비스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2패 뒤의 3차전에서 반격의 1승을 거두자 박지혁이 이게 다 전창진 덕이라는 언플 기사를 띄웠다.

6. 감독 스타일

6.1. 장점

KBL에서 몇 안되는 전술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체력을 중시해서 매년 오프시즌마다 죽도록 강원도 태백에서 산악체력 훈련(일명 크로스 컨트리)을 시키고,[20]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전술을 짠다. TG 삼보-동부에서는 김주성을 축으로 한 공격과 수비 전술을 보였다면, kt에서는 김주성 같은 선수가 없기 때문에 송영진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수비를 바탕으로 모든 선수들이 움직이는 포워드 중심의 전술을 보였으며[21], KCC에서는 검증된 라건아 송교창을 축으로 공수전술을 통해 자신이 상황에 맞춰서 전략을 짤 줄 아는 감독임을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수비를 중시하는 감독으로 수비 전술은 상당히 잘 짰다.[22] 추가로 오펜스에서도 확실한 약속으로 패턴을 잘 짠다. 모션 오펜스를 쓰는 KBL 감독 중 하나로 모교-실업 대선배인 김진 이후 잘 짜는 감독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선수 조련에도 빅맨이든 스윙맨이든 큰 자신감을 가지며 했다. TG 삼보 엑서스 시절 정통 센터인 데렉 존슨[23] 리온 데릭스[24]에 이어 자밀 왓킨스[25]으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와 정규리그를 번갈아 우승하면서 자밀 왓킨슨으로 통합우승에 성공하더니 그리고 동부 프로미 시절 레지 오코사[26]라는 공격형 빅맨들을 잘 써먹으면서 김주성의 부담을 덜게 했다.

스윙맨(가드 겸 포워드)도 TG 삼보 시절 슈터 데이비드 잭슨[27]과 앤트완 홀 및 처드니 그레이[28] 아비 스토리[29]로 높이와 한방을 잘 해결했으며 동부 시절에도 카를로스 딕슨으로 통합우승을 했고 웬델 화이트로 성적을 냈었다.

kt 소닉붐 시절에도 외국인 조련은 여전했다. 제스퍼 존슨 찰스 로드가 대표적인데, 타 팀에서 저평가 받은 제스퍼 존슨을 2라운드 순위로 뽑았지만 그 해 최고의 외국인상을 받고 팀도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한다. 로드 역시 11시즌 정규리그 우승에 큰 보탬을 하게 된다. 13시즌 파틸로를 데려와서 인삼 때와는 다른 패스 플레이를 하게 바꿔놓았다. 보통 감독들은 경기 중에 외국인 선수가 엉뚱한 플레이를 하거나 잘못하면 교체하고 말지만, 전창진은 절대 넘어가지 않고 교체 이후 잘못된 점을 바로 지적한다. 시즌 중간에 외국인 선수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지만, 충돌은 많이 할지언정 외인 선수들과의 관계는 좋은 듯하다.[30]

KCC 시절는 국가대표 귀화 빅맨인 라건아를 중심으로 한 공수전술은 여전했다.

배우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지도자로서 비교적 열린 태도를 취한 것도 성공의 한 요인이다. 감독 초년기에는 전술을 잘 몰라서(!) 연세대의 전성기를 이끈 최희암 감독과 나래 해커스 시절 코치 시절 최종규 감독에게 찾아가 전술이나 선수 관리 요령을 묻고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제이 험프리스 같은 코치를 통해서 전술도 가다듬었고, 나중에 자신만의 철학이 만들어진 후에도 후배 코치들과 의논해서 전략을 짜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드 형 포워드는 즉 슈터 라인은 역대급으로 잘 키웠는데 대표적으로 코치와 감독으로 모두 TG 삼보-동부 시절부터 함께했던 양경민[31]을 시작으로 동부 시절에는 계속되는 저니맨 신세로 인해 자리를 잡지 못했던 강대협과 실업 삼성전자 시절 대선배인 이왕돈의 아들로도 유명한 이광재를 동부 시절에 키우면서 kt 말년에 함께했으며 kt 시절에는 전임 추일승 감독이 만들었던 빅 포워드 라인에서 무명이었던 조성민을 키워냈다.

가드들은 특히 포워드 스타일이었는지 힘이 좋은 스타일만큼은 잘 써먹었다. 양우섭, 김우람[32], 김현수, 정창영이 대표적이다.[33]

센터 즉 빅맨들도 우선 수비중심의 경기를 하는데 골밑이 강하든 외곽을 차단하든 둘 중 하나를 하는 빅맨을 최우선으로 선호한다. 김주성 송영진이다. 둘은 중앙대 선후배(선배가 송영진이고 후배가 김주성) 사이다. 고려대 출신이지만 중앙대 출신 농구인들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농구인이다. 이 모든 게 허동만 트리오 버프.

특히 자신이 슈터 출신이라 그런지 슈터들을 써먹는 건 슈팅 가드로서 최고의 슈터이기도 했던 대선배인 이충희 김진이 있지만 강한 색깔은 오히려 전 감독이 역대급이다.

슈터 육성에 있어서 역대급인데 양경민 강대협을 시작으로 조성민을 거쳐 이근휘가 해당된다.

전창진표 슈터 농구의 색깔은 강대협을 시작으로 추가로 오용준 그리고 정창영이다. [34], 본격 재활용 전문 감독으로 등극.

특히 조성민 추일승이 KTF 시절 8 순위로 지명해서 데뷔 당시 좋은 체력과 근성을 바탕으로 수비전문 선수로 활약하였지만 지금처럼 슛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전창진 감독은 혹독한 강훈련으로 조성민의 슈팅시 하체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2년에 걸쳐서 교정하면서 30% 대였던 3점 성공률이 13~14 시즌 들어와서 40%를 넘겼다. 12~13 시즌이 끝나고 타팀들이 FA 시장에서 조성민에게 더 높은 가격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전창진 감독의 설득으로 kt와 총액 5억원에 재계약, 그리고 13-14 시즌에 포텐이 터지면서 정규리그 MVP 후보로 오르게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 농구의 대표 슈터로 자리잡았다.

전주 KCC 이지스 감독으로 부임해서는 유현준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김지완 유병훈도 뒤에서 준비를 했으나 실패한 이후 이오현으로 바꾸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강한 팀 워크로 패배주의에 젖은 선수단에 강한 자극제와 함께 할 수 있는 용기와 실력을 강하게 키우는 스타일로 인해 팬들이 지지를 한다.

이 때문에 전창진 감독이 부임한 팀들은 전력상 열세나 부상 악재 등 외부 환경 대비 훨씬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의 사단에서 독립한 김승기 감독이 부임한 팀들도 그런 경우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동부의 경우도 부임 내내 김주성빨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신기성이 2004-05시즌 통합우승 이후 부산 KT로 이적한 이후에는 이렇다 할 스타가 없는 선수단이었었다. 자칫 김주성의 과도한 의존도로 인해 팀 밸런스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06-07시즌이 경우, 김주성이 부상으로 겨우 29경기 출전에 그쳤던 시즌에는 23승 31패, 8위로 플레이오프조차 진출에 실패했었다.

이 과정에서 전창진 감독은 많은 것을 느꼈다는 후문. 실제로 그는 김주성의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표명일, 강대협, 이광재 등 미완의 대기나 벤치 신세였던 선수들을 주축 선수들로 키워내며 선수 육성에 있어서도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 결과는 2007-08시즌 당시 역대 정규리고 최소 경기 우승(48경기), 3년 만에 통합 우승으로 돌아왔다. 이 시즌 이후 김주성 빨이라는 전창진에 대한 평가가 확 바뀌었다.

부산 KT로 이적한 이후에는 이 부분이 더욱 부각되는데, 실제로 전창진 감독이 부임한 첫 시즌인 2009-10시즌, KT는 잘해봐야 6강, 실질적으로는 꼴찌 후보나 다름없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전창진 감독은 선수층 열세를 모션 오펜스와 변칙 수비 등 다양한 전술을 팀에 입히면서 매 시즌 전력 대비 훌륭한 성적을 거뒀고, 부상 악재가 창궐하던 시즌에도 항상 평균적으로 플레이오프권 이상의 성적을 냈다. 전주 KCC의 경우도 마찬가지. 2021-22 시즌만 하더라도 송교창이 손가락 부상 수술로 인해 무기한 아웃 됐으며, 전준범, 정창영 등 사실상 주축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부상으로 나가 떨어졌음에도 2021년 12월 14일 기준 10승 11패로 5할에 근접한 성적으로 플레이오프권 성적을 내기도 했다. 이 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탈락했지만 2022-23 시즌에도 부상병동 속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했다. 이 때문에 전창진 감독에 대한 비판론자들도 이러한 전창진 감독의 임기응변 능력은 인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추일승의 KTF 매직윙스 시절 06-07 시즌 KBL 파이널까지 올랐던 팀이었으나 2년간 성적이 8위와 10위(일명 꼴찌)였는데 KTF-kt 선수단은 아무래도 자신감이 다운되었는데 기마저 죽은 모습으로 겸손하게 "6강"을 말하다가 호된 질책을 당했고 남자가 "우승"을 해야하면서 더 강하게 야단친 일화도 있었다.

사실 강해도 너무 강한 강성 이미지와 죽기 아니면 살기로 따지고 보는 성격으로 인해 마치 호랑이자 저팔계처럼 저돌적인 면을 보이면서 구설수가 많지만 실력과 성적으로 깔 수 없는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강팀의 조건으로 대표되는 강한 수비와 한방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강점은 역대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강하게 혼을 내다가도 언제 그랬듯이 위로하는 형님 리더십과 최고라는 목표가 확고한 사장 리더십이 섞여 있어서 팬들의 호불호가 있지만 그래도 잘 되는 방향으로 하니 다 이해해 주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꿈과 희망이 있으니 이해하면서 지지를 더 해준다.[35]

자신도 주무(매니저) 시절 너무 힘들었던 과거가 있으니 자신을 믿고 따르는 매니저와 스테프에서 자신의 연봉을 내놓으면서 더주는 등 정도 많이 주고 무식함을 극복하기 위해 친하지 않은 농구 선배들에게도 전술과 전략을 많이 물어보는 사고관도 있다.

팬들도 평소 예민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으로 인해 재임 중에는 잘 못해주지면 소통을 원채 많이 하는 편인데 과거의 과오를 딛고 KCC 이지스 감독이 된 이후 이전에도 잘해주었지만 더 노력하면서도 팬들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실천하고 있다.

악마의 재능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실제로 전창진 감독을 따르는 농구 후배들이 생각보다 많다.[36]

심지어 자신이 잘못이 있지만 그래도 인정해주면서 지지하는 팬들에게는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심판 판정에서 억울한 일이 있을 때는 코트든 만남이든 항상 소통을 강조한다.

현재 KCC 이지스 감독으로 우여곡절 끝에 돌아오면서 더더욱 팬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소통을 꾸준히 하는 점은 KBL 역대 감독 중에서 거의 최고급으로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언론에서는 전창진 감독이 TG삼보 엑서스에서 성공을 하면서 농구계에서는 입지적인 인물로 최고 인기 감독으로 평가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감독들인 전창진 사단은 이렇게 구성되었다. 놀라운 건 대다수가 자신의 모교였던 고려대 출신이 아닌 아무 인연이 없었던 중앙대 출신을 지도자로 두었다는 거다. 그 중심에 자신의 2년 후배인 슈퍼스타였던 허재였다.

허재, 강동희, 김영만, , 트리오는 기본이었고, 김승기도 포함되었다. 이 외 출신으로는 손규완 표명일이 있다. 추가로 이세범도 포함된다. 용산고 마피아에 이어 중앙 프로미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들이 있는데 실력으로 비판못한다. 동갑내기 라이벌인 유재학의 경우 자신이 경복고-연세대 출신이지만 이 학력 출신이 아닌 임근배, 김재훈, 조동현, 위성우 정도가 있지만 실제로 학력보다 같은 뜻을 함께 나누면서 자신이 아주 밀당처럼 하는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다한다. 이렇게 보면 전창진 사단의 중심이었던 강동희 김영만 그리고 김승기가 감독이 될 때 같이 따르면서 이적 또는 내부승진 때 함께했고 모두 수석코치를 전 감독과 강 감독 사이에 다 했다. 참고로 허재는 TG 삼보 엑서스 시절 말년에 플레잉코치였다.

2007-2008 시즌 동부 프로미의 코칭스테프가 바로 왕의 얼굴이 전 감독이었고 왼팔(수석코치)이 강 감독이었으며 오른팔(보조코치)이 김 감독이었다. 이로 인해 자신이 떠날 때 구단에 내부승격을 위해 프런트와 밀당을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수석코치를 가장 아끼면서 KBL 수석코치 출신 성공신화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자신이 KCC 이지스에서 14-15 시즌 kt 소닉붐 감독 퇴진 이후 5년만에 KBL에 돌아올 때 수석코치는 자신의 대학-실업 대선배인 김진 감독 라인 [37] 강양택 수석코치다. 실제로 전창진 감독은 역시 명장이자 선배인 김진 감독의 참모라서 그런지 그만큼 더 신뢰를 한다.

뿐만 아니라 통역과 매니저 그리고 구단 버스에게도 자신의 돈을 내놓으면서 지원을 해 주는 마음 아픈 소식도 함께 있다. 심지어 식당 아주머니까지 챙겼었다고 하니까 말 다한 셈. 아울러 프런트 생활하면서 기자들과도 친분도 두텁고, 실제로 기자들에게 가장 인터뷰를 잘 해 주었다. 아울러 가까운 후배들이 상당히 많은 감독. 허재가 그를 따르는 것은 유명하고, 강동희와도 한 때 2010-11 PO 때문에 사이가 잠시 틀어졌다가 지금은 다시 화해했다고 한다.

김승기 또한 자신이 KGC 인삼공사 감독 부임 때 kt 소닉붐 감독 시절 승부조작 의혹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 농구인 장례식장에서 한판 싸우기도 했으나, 금세 화해를 한 모습도 나왔다. 가슴 아픈 경쟁을 하면서 넘지 못할 후배가 급성장을 했지만 2021 KBL 드래프트에서 김승기의 둘째 아들인 김동현을 지명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선수들을 엄하게 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프런트 생활 때문에 선수들이 심리를 잘 알아서 정작 사생활에는 관대한 편이라고 한다. 오히려 선수들 여자친구까지 챙기면서 일상에서는 편하게 대한다고. 프런트의 생리도 잘 알기 때문에 kt 시절 이석채 전 회장 겸 구단주가 떠난 이후 막판이었던 14-15 시즌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갈등도 없었다.

선수 중에도 정이 들었던 선수는 해당선수가 결혼하면 직접 축의금을 주면서 사회까지 보는 등 코트의 큰 행님이자 아버지 같은 모습도 함께 있다.

야구로 보면 거의 김성근이자 축구로 보면 김학범 급의 존재가 농구에서는 전창진이다. 실제로 전창진 본인 김성근을 손수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추가로 축구 최강희 배구 신치용과도 이야기를 할 정도다.

6.2. 단점

감독으로서는 사실상 명장이라 할 수 있는 모든 능력들을 갖췄지만, 반대로 인격과 지도 방식에 있어서는 매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공존되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다.

특히 빚지고 못사는 자존심으로 대표되는 성격[38]의 소유자로, 치악산 호랑이 말고도 저팔계라는 별명도 있는데, 팬들은 전팔계라 부를 정도로 저돌적인 면을 보여주는데, 그 부분이 슬슬 몰락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다.

kt 소닉붐 감독 재임 시절 자신이 이렇게 고백을 했다.

“나는 빚지고 못 사는 사람이다. 엄청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우승을 해보이고 싶다. 욕심을 내보고 싶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해놓고 보니 그 이후가 걱정이다. 과연 내 결정이 선수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특히 심판 판정에 대한 강력한 항의는 매 시즌마다 꼭 지적되는 전창진 감독의 대표적인 단점 중 하나다. 단순히 항의하는 것을 넘어서 육두문자까지 서슴지 않으며, 심한 경우 아예 양복 자켓을 집어던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특히 13-14 시즌엔 KBL 최초로 심판까지 배치기 밀쳤다. 그런데 이 점은 감독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심판들이 감독을 호구로 알고 판정을 지들 멋대로 하는 경우들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그 매너 좋다는 대학 후배 강을준과 대학 선배 김진도 당했는데,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을 대신해서 총대를 맨 격이었다. 특히 강을준 감독의 LG는 재임 기간 내내 심판 전용 호구 구단 신세를 면치 못했다(...). 추가로 대학 선배 김진 감독도 대구 동양 오리온스 창원 LG 세이커스 시절만 보아도 그렇게 항의를 자주 하지 않지만 가끔은 어이없이 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라이벌 추일승 감독도 KTF 매직윙스와 오리온 오리온스 시절에 비주류라는 차별까지 당하면서 두 고려대 - 삼성전자 선후배보다 더 억울하게 당하는 편이다. 실제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 창원 LG 세이커스 서울 SK 나이츠는 역대 감독들이 하나같이 순하고 사람 좋은 성격의 사람들인데, 만약에 전창진 같은 다혈질 성향의 인물이 이 자리에 앉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이렇게 산으로 가는 심판들의 제멋대로 판정으로 인해 한국의 농구 감독들은 따지고 들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타 리그 감독들보다도 더 독하게 맞서게 된다. 하지만 원인이야 어찌 되었던 감독들이 욕하고 옷 던지는 등의 폭력적인 모습 보이는 장면을 팬들이 좋게 볼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점점 수준이 낮아지는 심판들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장면을 그리워 하는 팬들도 많다.

또다른 단점은 선수들에게 가하는 무시무시한 막말. 사실 동부 시절 때도 다혈질 성격으로 인한 모습은 많이 나타났지만, 그 당시는 중계 화면에 그다지 많이 잡히지 않은 반면, KT로 넘어와서부터는 아예 중계 카메라에 찍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지시한 플레이를 이행하지 못하거나 트롤링이나 실수를 연발하는 선수들에겐 가차없이 독설을 쏟아붓는다.[39] 독설이 아닌 인격모독이라고 느껴질 수준의 강한 수위라고 느끼는 팬들도 상당히 많으며, 이 때문에 팬들이 비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실제로 자신도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제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말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외국인 선수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아니, 한 팀의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오히려 폭언이라고 느낄 정도로 더욱 심각한 수준의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12 시즌에 보였던 찰스 로드에 대한 디스는 도를 넘어섰다. 찰스 로드 때문에 올 시즌 다 망쳤다.[40][41] 심지어 상대편과 경기할 때도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인터뷰를 진행하여 상대 팀에게도 불쾌감을 안기기도 한다.[42]

지지를 했던 TG 삼보-동부 시절과는 다르게 일부 kt 팬들은 보는 이들에게 지나친 언행과 돌출 행동으로 인해 KT스포츠단의 KT 기업 이미지(통신으로 소통강조)를 망치는 행동이라며 10-11 시즌 정규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재계약 포기를 포함해서 이별을 구단에 원하기도 했다.[43]

또한 경기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면 2012년 10월 20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작전 타임을 부르지 않았다. 정황상 1쿼터 경기력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일부러 태업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모습을 보여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전토토[44].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참고로 본인도 전토토라는 별명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행동으로 인해 구단으로부터는 엄중 경고, KBL으로부터는 벌금 500만 원의 징계를 먹었다.[45] 이게 왜 문제냐면, 농구의 타임아웃은 리그의 중요 수입원인 중간광고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걸 안 부르면 광고주들 엿먹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NBA에선 아무리 게임 분위기가 좋건 나쁘건 1쿼터에 한 번 이상은 꼭 불러줘야 한다. 아예 룰이 경기 시작 후 9분 안에 부르지 않으면 심판이 임의로 타임아웃을 시키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kt 시절 부각된 또 다른 문제점은 신인 육성과 트레이드인데, 2009년에 단행한 1라운드 지명권을 안양 KT&G 카이츠 나이젤 딕슨과 바꾼 트레이드[46], 2011-2012 시즌 이후 포인트가드와 베테랑 슈터를 보강하기 위해 벌인 김영환, 양우섭 창원 LG 세이커스 김현중, 오용준을 트레이드 시킨 것, 박상오를 사인 앤 트레이드로 서울 SK 나이츠가 지명한 장재석과 트레이드한 것, 12~13 시즌에 서울 삼성 썬더스와 한 용병 대리언 타운스와 브라이언 데이비스의 트레이드 모두 별로인 결과로 나타난 것 또한 좋지 못한 부분. 지속적인 트레이드 실패로 인한 선수층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떠난 후 11~12 시즌부터 삼성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이 kt에 고스란히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3-14 시즌에도 깜짝 트레이드를 했는데, 당장 이득을 보진 못했다. 기자들은 전태풍이 내년 계약 1년 남은 것과 KCC 시절에도 3년 동안 한번만 산악 훈련에 참가하였는데 설마 전태풍을 kt 태백훈련 데려가려고? 13 시즌 끝으로 드래프트에 좋은 선수들( 양희종, 김태술, 함지훈, 이광재 등등)이 많이 나오는 것, 신인 드래프트에 좋은 신인들( 이승현 김준일 등)이 많이 나오는 것을 이유로 내년 시즌을 위해 리빌딩 들어간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였다. 그리고 김도수의 약물 논란으로 인해 1차 신인 지명권을 날려버렸다. 자세한 계약은 아직 발표를 안 했으나, 이후 마지막 오리온스와의 6라운드 대결에서 추일승 감독과 악수를 거부하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유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당시 그럴듯한 소문 내용은 오리온스가 내년 시즌 1라운드 1픽을 뽑게 되면 보상으로 오리온스의 포워드 중 한 명을 보상으로 내주는 걸로 계약했다는 내용이었다. 내년엔 신인 드래프트가 1위 팀과 2위 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 동률이기 때문에 오리온스 입장에선 훨씬 이득인 셈. 만일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전창진 감독은 최진수를 보상선수로 선택하게 될텐데 최진수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상무 입단 신청을 했다. 5라운드까지는 악수했는데 최진수 상무 신청 날짜 이후 전창진 감독이 화났다는 설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오리온스가 kt의 1라운드 지명권를 갖고 그 대신에 kt는 오리온스의 2라운드 지명권을 갖게 됐다.[47]

정작 트레이드로 온 선수들의 활약도 참혹한데, 전태풍이 kt 특유의 많은 패턴농구에다가 특히 오리온스에서 평균 출전 시간이 20분 내외였기 때문에 kt에 와서 체력에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야투율과 자신감까지 떨어지게 됐다. 외국인 골번은 손가락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하고 시즌 마지막 6경기 남기고 플레이오프를 위해 파틸로를 영입한다. 반면 고양 오리온스 장재석, 김도수, 임종일, 앤써니 리차드슨을 받아 막강한 포워드 라인업을 구축하였고 장재석이 포텐이 터지면서 오리온스는 상승세를 타고 도장깨기를 시전했다.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5위로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이해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팀이었던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자신이 직접 피땀 흘려 키웠던 조성민 데이본 제퍼슨에게 팔꿈치로 가격을 당했는데, 즉각 흥분하더니 심판을 밀치면서 바로 퇴장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출장정지를 받았고 김승기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경기를 치렀으나 2연패를 당했다.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가까스로 복귀했지만 데이본 제퍼슨의 도발[48]로 인해 또 흥분했고, 대학 선배 김진 감독이 적장이었지만 안 그래도 예민하면서도 날선 봄농구라는 특징으로 인해 상대팀과 기싸움을 할 정도로 치열했는데, 오죽했으면 안타까움에 상태팀이었지만 말리기도 했는데 결국 시리즈 3연패로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또 완성형이 아닌 세밀하게 다듬어야 할 가드를 시작으로 포워드와 센터를 생각보다 잘 키워내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전창진 본인부터가 가드 겸 포워드 출신이라서 아주 짜임새 있는 플레이를 원했고(열외로 kt 와서 했던 영입한 가드들은 포인트 가드에 비중을 맞추고 있다. 그 예가 김현중 전태풍), 그 때문에 포인트 가드에 아주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빅맨들은 나쁘게 말하면 병풍 신세가 된다. 빅맨들에겐 아주 단순하면서도(몸싸움 리바운드 수비+중거리슛) 확실한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개인기가 좋은 빅맨들은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아주 단순한 플레이만을 보이는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윤호영 같은 경우도 전창진 밑에서는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감독이 바뀌자 날아다니면서 결국 MVP를 차지하였고, 장재석 역시 1년 이상 부진을 겪다가 오리온스에 가자마자 좋은 모습으로 날아다녔다. 결국 전창진 감독이 추구하는 빅맨 스타일이 장재석과 안 맞았던 부분이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전창진 감독이 추구하는 빅맨 스타일은 딱 김주성 송영진이다. 이들은 기술보다 궂은일을 담당한다. 반대로 장재석은 본인이 기술자라고 할 만큼 개인기가 좋은 선수다.[49] 대학 때도 드라이브 인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보였고, 드리블도 곧잘했다. 하지만 kt에서 바라는 스타일은 외곽 슛을 갖추고 리바운드 확실하게 잡아주고 2대2 플레이 등 화려한 빅맨보단 기본기가 충실한 빅맨을 원했다.

반면 엄청나게 뛰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타 팀에 비해서 크다. 시즌 1~3 라운드까지는 잘 가다가 4 라운드 넘어가면서부터 체력이 급감하는 모습들을 자주 연출하며 시즌 막판엔 무기력한 경기를 가끔 한다.

또한 본인의 틀에 선수들을 강제로 맞추는 스타일인 데 이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2019년 농구 월드컵을 통해 밝혀졌다. 이를 전창진 감독 본인도 인식을 했는지 본인 역시 지금까지 해왔던 농구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50]

여기에 오히려 평균 이하의 선수층을 가지고는 최상의 성적을 기록하지만, 반대로 선수단이 강화된 우승후보 수준의 팀은 잘 이끌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KCC로 복귀한 2019-20 시즌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2019년 11월 11일, 상명초등학교 동기이자 절친인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2:4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15승 14패로 5할을 겨우 턱걸이 승률로 별 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코로나19로 정규리그 4위를 확정지으며 시즌을 조기로 마쳤다. 특히 라건아는 시즌 종료 직전 부상을 당했으며, 이대성은 시즌 종료 후 FA로 오리온으로 떠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트레이드가 되어 버림은 물론 상대 현대모비스에게 선수들만 잔뜩 퍼준 셈이 되었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전력 대비 훌륭한 성적(8승 5패)으로 잘 나갔으나, 무리한 라건아 트레이드 이후 오히려 성적이 정체되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KCC 이지스의 골수팬들도 오히려 후배이자 절친이었던 전임 허재 감독을 더 그리워하는 등 실력에 비해 욕심이 너무 과해서 트레이드로 인해 TG 삼보-동부급과 kt 시절의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며 잘 하는 명장인데도 불평을 하기도 한다. 현재 KCC 팬들이 어떻게 된 건지 허재팬과 추승균팬, 그리고 TG 삼보-동부로 인해 전창진팬으로 삼등분되는 상황까지 오기도 했다. 다행히 2020-21 시즌을 기점으로 이러한 평가는 많이 없어졌으며, 부상 악재가 심각해진 2021-22 시즌에도 5할 승률에 가까운 성적으로 선전하자 평가는 더 올라가는 상황이다. 다행히 기존 스타일로 돌아온 2020-21 시즌의 경우 개인 통산 네 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이러한 악평은 많이 없어졌으며, 부상 악재가 심각한 2021-22 시즌에도 5할 승률에 가까운 성적으로 선전하자 평판은 더 올라가는 상황이었으나 다시 부상으로 9위의 부진과 함께 거센 비난을 받았다. 2022-23 시즌 또한 부상으로 인해 5할에서 고전했으며, 2023-24 시즌도 플레이오프 우승을 했으나 5위에 그쳤다.

KCC 역대 감독 2대 허재는 로테이션, 3대 추승균은 6~8인, 5대 전창진(사실상 추승균 후임)은 두겹 팀 속 올인인데, 각자 감독들의 제각기 다른 농구 스타일로 인해 갑론을박이 치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찰스 로드를 영입하면서 4년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찰스 로드와의 특별한 관계가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드와의 재회는 2019-20 시즌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7. 승부조작 의혹(무죄)

7.1. 1심 재판

단순도박에 대해서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기사

7.2. 2심 재판

'도박' 전창진 전 농구감독 무죄 뒤집고 2심 유죄

2018년 9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임성철 부장판사)는 전창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뉘우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도박의 규모나 회수가 과중하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7.3. 무죄

2019년 6월 21일, 드디어 파기환송심에서 증거 불충충분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51]

3심까지 진행된 재판을 통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재판부는 그러한 사실관계를 고려하여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단순히 기사로 접한 여러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디까지나 3심의 재판을 끝으로 결론난 사실은 전창진은 무죄라는 것이다.

다만 MLB의 블랙삭스 스캔들에서도 승부조작 실행자들은 기소되었지만 결국 법적으로는 무죄를 받았으며, 이와는 별개로 커미셔너는 해당 선수들을 모두 영구제명하였다. 전창진의 행위가 법적으로는 무죄일지라도 과연 프로 구단 감독직에 맞는 품행인지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8. 전창진 사단

보통 어느 스포츠 지도자들이고 능력이 좋은 감독들은 사단 구성을 지닌다.

단, 방열의 영향을 받은 엄격한 교장 같은 동갑 친구 유재학은 제외. 사실 유재학도 사단이라 보면 모교인 연세대학교 코치 시절부터 흘러가는데, 실제로 농구대잔치 시절 스타 선수는 단 하나도 없고 그나마 이상범 김재훈 정도 밖에 없다. 대신 프로 진출 이후 임근배 위성우가 있다. 오래 보면 조동현 양동근 정도다.

KBL 원년 출범 이후 사단이라 하면 모교 대선배 김동광과 완전한 상극이자 라이벌인 신선우 정도가 있다.

실제로 전창진 사단은 자신의 모교 출신보다 중앙대학교 - 기아 왕조 출신들이 지배적이다. 허동만은 기본이었다. 여기서 독립된 사단이 바로 김승기다.

원주 동부 감독 시절 지도했던 이세범은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와 국가대표팀 코치까지 활약 중이며, 이광재도 대학교 및 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프로팀 코치로 활약 중에 있다.

9. 여담

  •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 에서는 꾸준글로 "전창진 무혐의! 쏴리 질럿!"이라는 글이 자주 도배되는 경우가 주기적으로 있다. 일종의 이 된 듯(...).
  • 자신의 대학 - 대선배인 김진 감독과는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김진 감독은 차분한 편이지만 전창진 감독은 흥분도가 높고 성질이 급하다. 김진 감독은 전창진 감독에게 자극은 주지 말 것을 당시 맡았던 팀의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 자신의 동갑인 추일승 감독과는 TG 삼보 시절부터 kt 시절까지 라이벌이었다. 두 감독은 KTF-kt 전임 감독이었고, 추일승은 초대였으며 전창진은 2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연은 서동철 감독과도 관계가 있다.
  • kt 감독 시절 심판 판정의 불만에 대한 답답함을 관중들에게 호소하는 관중친화적인 붙임성을 선보인 적이 있다. #
  • 소문난 야빠이다. TG 삼보-동부 감독 시절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이던 김경문 감독을 응원했다. kt 감독 시절 형제야구팀인 kt wiz의 창단을 매우 기뻐했는데, 당시 이석채 회장의 전사적인 지원에 감사해했다. KCC 감독 시절에도 야구는 챙겨보는 편이다. 또한 양승호와도 절친한데, 둘 다 공통점이 많다. 먼저 고려대 선후배 사이, 서울토박이,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은퇴, 각자의 종목을 떠나지 못해 한동안 프런트로 근무, 원만한 대인관계, 양승호가 롯데의 감독을 맡게 되면서 양승호의 가족은 서울에 있고 전창진의 가족은 캐나다에 있기에 기러기 아빠라는 것까지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야구에 SUN인 선동렬이 있으면 농구에는 JUN인 전창진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김경문과 선동열 모두 고려대 동문 선후배 사이다.
  • 구석기 농구인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야기를 생각보다 많이 들어보는 편이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화끈하면서도 따뜻한 남자. 그러면서 사생활은 은근히 갭모에한 소녀감성(?)도 있는 게 드라마를 자주 보거나 마카롱을 좋아한다고 한다.
  • kt 소닉붐 감독 재임 당시 부산 사직체육관의 시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었는데, 22-23 시즌을 끝으로 KCC 이지스가 전주시에서 부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8년만에 다시 이 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 부산에서의 인연이 생각보다 깊다. kt 소닉붐 감독과 KCC 이지스 감독으로 모두 부산 사직에서 홈경기를 치를 때 인근 호텔에서 호떡을 먹었는데 맛이 있어서 그 집만 찾는다.
  • 절친한 후배 허재와는 정 반대로 술을 전혀 못한다. 그럼에도 술자리에서 주로 수다와 말빨로 좌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하다.
  • 부산 연고팀들인 kt와 KCC 감독 시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호떡을 찾는다. 부산 온천동의 한 호텔이다. 이로인해 당시 kt 선수단과 KCC 선수단은 그 호떡을 자주 찾는다.

10. 관련 문서



[1] 鎭(누를 진)이 아니라 眞(참 진)이 맞다. 옛날 신문기사는 물론이고 과거 몸담았던 TG 삼보-동부와 kt 구단 및 KCC 구단에서 판매하는 싸인볼에도 본인 자필 서명으로 田昌眞이라고 적어 놓았다. [2] 야은파 30세. 부친은 전동숙(田東淑). [3] 예순이 넘는 나이이니만큼 이보다는 더 작을 확률이 높다. 프로필 185cm의 허웅보다 확연하게 작았고, 프로필 180cm 허훈과 신장이 거의 비슷했다. [4] 재학 당시 용산에 위치했으며 1994년에 노원으로 이전했다. [5] 33회 졸업 [6] KBL 공식 경기 출장 없음으로 언론 기재 시 KGC 감독 시절 제외. 아래 기재되어 있는 승부 조작 의혹 때문에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사임했다. [7] KCC 감독직은 2019년부터 2025년까지 계약이 되었는데 당초 1년 앞당겨서 23-24시즌 까지만 역임한 채 물려날 생각였지만 최형길 단장의 설득으로 계약 기간을 꽉 채운 24-25시즌 까지한 후 퇴임한다고 한다. [8] KBL 공식직함이 아닌 추승균 감독 사퇴 이후 고문직이며 미디어에서 기술고문으로 직책 표시. [9] 원주는 치악산이 맞지만 부산은 사직체육관 기준으로 보면 금정산이 아닌 쇠미산이라는 루머가 있다. [10] 특유의 전술로 승부사 기질이 강한 성격을 칭송하는 별명이다. [11] 당초 전주 연고였으나 새로 연고이전한 부산에서도 감독을 했다. [12] 그 과정에서 KCC에서 선수로도 뛰었던 최승태 코치가 경질되었다. [13] KCC측에 따르면 승부 조작과 관련해서 무혐의 처분과 동시에 벌금 100만원을 받은 것도 수석코치로 등록되지 못할 만한 결격 사유는 안 된다면서 KBL이 등록을 불허할 사항은 안 될 것이라며 강조하였다. 그리고 코트에서의 행동과 태도에는 KBL로부터 엄청난 징계를 받았어도 벌금 등으로 종결된 사항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런 것들을 문제 삼아 등록은 불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4] 조승연 KBL 재정위원장에 의하면 복귀가 불허된 전창진이 자숙하고 많이 반성했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판단의 기준이 되지는 못했고, 법리적 상황과 KBL 규정을 기준으로 향후 리그 안정성과 발전성, 팬들의 기대와 정서도 등을 고려해 격론을 거친 결과였기 때문이었기에 아무리 무혐의가 있었다고 해도 도박으로 대법원에 상고 중인 점을 고려해 구성원으로서의 판단은 부적격하다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에서 상고 결과가 나오고 구단이 요청만 한다면 재심이 가능하지만 무기한 자격정지로 코트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다. [15] KBL에서 등록 불허를 결정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벤치에 앉거나 코트에 들어서는 것과 같이 선수단과 동행은 할 수 없다. [16]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변수로 인해 KBL 역대 최단명 감독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모든것이 전창진 감독의 고등 선배인 최형길 단장의 계획 중 하나 [17] 맨시티는 UEFA에서 지정한 UEFA FFP 룰, 즉 재정적 페어플레이를 어기고 불법적인 돈으로 스타 선수들을 모조리 영입하여 전세계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자세한 건 2018년 풋볼리크스 폭로 사건 참조. KCC는 승부조작이라는 범죄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전창진을 수석 코치로 앉히는데 실패하자 얼른기술고문으로 앉혀버렸다. 밑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기술고문은 코트에서만 나서지 못할 뿐 훈련이나 그 외의 일에 관여하며, 이는 KBL의 조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맨시티와 KCC가 각각 UEFA, KBL에서 정한 규칙을 쌩까버리고 불법으로 선수 영입 혹은 범죄자를 기술 고문으로 앉혔다는 점에서 둘 다 마찬가지나 다름없다. [18] 프로축구, 프로배구는 벤치에서 헤드셋 착용 등 전자기기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더그아웃에서 무전기, 휴대전화,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프로농구 같은 경우에는 전자기기 사용과 관련한 규정이 따로 없어서 의지만 있다면 TV 중계로 상대의 작전타임을 엿듣고 빠르게 작전에 활용할 수 있다. [19] 결과적으로 오리온은 KCC를 97:86으로 꺾고 반격의 1승을 챙겨갔다. [20] 태백훈련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훈련은 선수들 모두가 벌벌 치를 떤다. 그러나 2023-24시즌부터 폐지되었다. [21] 이 당시 준수한 선수정도로 평가받던 박상오를 팀 전술에 융화시켜 정규리그 MVP까지 받게 만들었다. [22] KBL의 대표적인 테크니션 전태풍 kt의 팀 수비가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했었다. 실제로 전태풍 kt에 상당히 약했다. [23] 정통적으로 골밑에 힘으로 밀고 들어갔다 [24] 몸은 가늘었지만 속도가 빠르면서 패스가 정확했던 타워 빅맨 [25] 별명이 왓추장이라는 키가 크면서도 힘이 센 외국인 빅맨 [26] 전창진 감독의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인해 훈련 중 구토를 한 일화도 있었다. [27] 전창진 감독이 직접 선발한 최고 외국인 슈터로 2002-2003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28] 2004-2005 시즌 중 KCC 이지스를 견제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할 때 전창진 감독이 미안해했음. [29] KBL 대표 외국인 저니맨으로 포지션은 포워드으로 통합우승에 한 몫을 했다. [30] 과거 07-08 원주 동부 우승멤버였던 레지 오코사가 2018년 2월 19일 인스타그램에 전창진 감독 사진을 올리고는 "내가 만난 최고의 감독 중 한 분이었다. 나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인물"이라며 칭찬을 했고 제스퍼 존슨 찰스 로드가 이를 긍정하는 댓글을 남겼다. 그 외에도 찰스 로드의 아들 돌잔치까지 챙겨준 일화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편이다. [31] 암흑의 스타로 지금은 흑역사화되어 있다. [32] KCC에서 방출된 이 2군 선수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자 신데렐라가 됐다. kt에서 비시즌 때 프로에 남기 위해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해냈다고 한다. [33] 대신 창의적이면서도 투맨 게임을 매우 잘하지만 턴오버가 많은 가드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3년차 이내의 가드 라인 특히 마음이 여런 선수들은 성장시키지 못했다. [34] 강대협은 가드의 트위너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슈팅 가드로 장착하면서 농구인생을 바꾸었다. 오용준은 대학생 때는 슛이 좋았지만 프로에선 김진 감독이 중용했으나 이렇다 할 큰 활약을 못 하고 식스맨으로 활약했으나 13~14 시즌에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하며 조성민과 함께 슈터 쌍포로 활약했다. 정창영은 김진 감독이 중용했던 포인트 가드 겸 슈팅 가드였지만 전창진 감독이 KCC로 데리고 오면서 이후 스몰 포워드로 바뀌면서 3&D로 탈바꿈했다. 역시 한국농구는 비시즌에 산을 뛰어야 하는 건가? [35] 일명 밀당의 고수로 밀당 리더십으로 생각하면 쉽다. [36] 야구로 말하면 김성근 스타일로 보면 쉽다. [37] 김진 감독의 참모는 모교로 보면 김지홍 전 동양 수석코치이고 실업시절을 보면 강양택 전 SK-LG 수석코치다. [38] 신용카드 연체자의 개념으로 보면 매우 쉽다. [39] 제스퍼 존슨: 어디서 주접을 떨어 이 새X야!
찰스 로드: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인마!
조성민: 네가 그러고도 농구선수야?
조동현: 야, 껌 뱉어. 껌 뱉으라고.
이 외에도 작전 타임 도중 서장훈에게 펜을 집어던지기도(...)...
[40] 전창진의 스타일상 팀플레이 용병을 추구하는데, 찰스 로드는 그런 면에서 전창진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한 선수에게 책임을 전부 떠넘기는 극단적인 발언은 인격 모독이라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41] 리차드슨과의 갈등은 감독의 카리스마보단 선수 내적인 부분과 kt 구단에 외적인 부분의 충돌로 빚어졌다. 리차드슨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아내가 셋째를 출산하자 무단으로 선수단을 이탈해 결국 kt는 리차드슨 없이 경기를 치렀으며, 구단과 감독은 이에 실망해 트레이드를 감행한다. [42] 야, 상대는 플레이오프도 못 올라갈 팀이야! 그런데 왜 니네가 급하게 해: 2008-09 시즌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전반에 34-44로 끌려갈 때 했던 말.
전자랜드가 그런 라인업으로 나온 것을 보니 이기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2012/02/17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 종료 후.
상대편이 거칠게 나오니 우리도 거칠게 나가야겠다: 2013/02/13 서울 SK와의 경기 종료 후.
LG와 동부는 플레이오프에 갈 마음이 없어 보인다. 삼성만 견제하면 우리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2013/02/25 원주 동부와의 경기 종료 후.
[43] 일부 kt 팬들은 사실상 초대였던 전임자 추일승을 더 그리워했고, kt 구단의 사정상 후임 감독을 추일승 시절처럼 대학과 아마까지 다양하게 보면서 후보군을 짜기도 하면서 전창진 감독을 압박했다. 실제로 KTF 시절 초대 추일승 감독 시절 외국인이었던 게이브 미나케는 폭언으로 인해 당시 강종학 단장에게 호된 야단을 맞았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만큼 KTF-kt의 기업 이미지는 매너인데, 이걸 어긴 것이다. 팬들이 밝힌 후보군은 고려대 출신 기준으로 이충희 김상식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름값으로 인해 올라갔고, 이민형과 강을준도 대학에서의 성공 사례로 인해 자연히 후보에 들어갔으며, 비고려대 출신으로는 중앙대 52연승 신화의 김상준을 시작으로 초대 추일승 감독의 라인으로 자신의 후임 상무 감독이었던 이훈재 감독도 있었으며, 14-15 시즌 막판에는 kt 스포츠단의 사장으로 LG 시절에 함께 했던 신선우도 포함되었다. 즉, 팬들이 KT라는 회사와 구단을 볼 때 고려대 출신 명장들인 김동광과 김진을 데리고 오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 것도 있다. [44] 상대팀에게 배팅하고 경기는 일부러 패하는 승부조작을 한다는 의미. 단, 이것은 팬들 사이에서 이런 스포츠 정신이 없는 것을 비꼬아서 비판하는 것. 실제로 스포츠토토의 경우 국민체육진흥법에 의하면 선수, 감독, 코치, 심판 본인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이 할 경우에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45] 본인은 포기한 경기의 다음 경기에서 승률이 좋다고 변명하지만, 팬들은 이런 거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 플레이오프에선 이게 약간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플레이오프는 단기전이기 때문에 패할 거 같으면 과감히 버리고 체력을 비축하거나 대파당하게 되면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 보완하고 대비한다. [46] 다만 이 부분은 이정현의 성공 이후 평가받는 부분. 실제로 당시에는 약점을 메우는 트레이드라고 호평을 받았다. 딕슨이 kt에서 워낙 저조했고(딕슨은 2005-06 시즌 중도에 kt(당시는 KTF 매직윙스)에 합류해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과체중을 이기지 못한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다시 KBL로 왔을 때는 여전한 부상 우려와 1인 출전제로 바뀌면서 활용에 제약이 따랐기에 저조했던 것.), KT&G에서 2순위로 의외로 지명된 이정현의 성공 덕분에 평가받는 부분. [47] 실제로 이 트레이드들은 전창진 감독보다 거래 호구 kt 프런트가 대다수 주도했다. [48] 입이나 행동으로 F자로 시작. [49] 2미터 빅맨이 그렇게 날렵하기도 힘들다. [50] 자신의 고등학교 대선배이자 라이벌인 신선우는 역시 반대였다. [51] 석연치 않은 부분도 분명 있지만 제출된 모든 증거가 다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제대로 된 증거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생각 외로 까다롭다. 독수독과이론[52]도 따져야 하며 사건과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증거 혹은 애매한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이 무조건 이득을 봐야만 한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데,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듯 이런 원칙이 없으면 자칫 억울하게 유죄 판정을 받는 등 대한민국 국민 중 전과자가 지나치게 많이 생겨서 전과를 남기는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기 때문으로, 어지간한 흉악 사건이 아닌 한 생각보다 법정형이 크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저런 이유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