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0:34:05

추일승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추일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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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승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추일승의 수상 내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1997
(매니저)
2016
(감독)

추일승의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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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ab041><tablebgcolor=#eab041>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상무 농구단
역대 감독

(프로 출범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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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000> 초대 2대 3대 4대 5대
김홍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1999)
추일승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3)
서동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2004)
이훈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19)
장창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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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나산-골드뱅크-코리아텐더
KTF-부산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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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2대 3대
황유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2000)
감독 대행
김태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진효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2)
감독 대행
이상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2003)
추일승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2009)
<rowcolor=#ffffff> 4대 5대 6대 7대 파일:kt 소닉붐 워드마크.svg
전창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2015)
조동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2018)
서동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23)
송영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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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동양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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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2022년
<rowcolor=#FFFF00> 초대 2대 3대
박광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2000)
감독 대행
최명룡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최명룡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1)
감독 대행
김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김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7)
<rowcolor=#FFFF00> 4대 5대 6대
이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
감독 대행
김상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8)
김상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8~2009)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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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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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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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8대 이후 구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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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20)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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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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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1982 뉴델리 AG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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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23a82>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방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인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방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인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인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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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허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감독 대행
김상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상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상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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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승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준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1982년 뉴델리 AG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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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 감독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추일승.jpg|width=100%]]
추일승
秋壹勝 | Choo Il-Seung
<colbgcolor=#ffffff> 출생 1963년 1월 31일 ([age(1963-01-3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신장 186cm
직업 농구 선수 ( 포워드 / 은퇴)
농구 감독
해설자
학력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 경영학 / 학사)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1] / 석사[2])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대학원 ( 생활체육학 / 석사[3])
동신대학교 대학원 ( 체육학 / 박사[4])
소속 <colbgcolor=#ffffff> 선수 기아자동차 (1985~1987)
코치 상무 불사조 (1997~1999)
감독 상무 불사조 (1999~2003)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KTF 매직윙스 (2003~2009)
고양 오리온스-오리온 오리온스 (2011~2020)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22~2023)
프런트 기아자동차 (1990~1995 / 운영팀장)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6~1997 / 매니저)
해설자 MBC ESPN (2009~2011/ 농구 해설 위원)
SPOTV (2021~2022 / 농구 해설 위원)
행정가 한국농구연맹 (2009~2011 / 기술위원)
대한민국농구협회 (2019~2021 / 경기력향상위원장)
대한민국농구협회 (2021~2022 / 이사)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프런트 경력4. 지도자 경력
4.1. 부산 KTF 매직윙스4.2. 야인 및 방송 해설 1기4.3. 고양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4.3.1. 11 - 12 ~ 13 - 14 시즌4.3.2. 14 - 15 시즌4.3.3. 15 - 16 시즌4.3.4. 16 - 17 시즌4.3.5. 17 - 18 시즌4.3.6. 18 - 19 시즌4.3.7. 19 - 20 시즌
4.4.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4.5. 통산 감독 성적
5. 퇴임 이후
5.1. 오리온 감독 퇴임 이후 시절5.2. 방송 해설 2기5.3. 대한민국농구대표팀 감독 퇴임 이후
6. 코칭 스타일
6.1. 장점6.2. 단점
7. 기타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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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주류라서 그동안 서럽지 않았나요?"
"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혹은 중앙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니까 저 같은 사람이 주류입니다. 학교를 어디 나왔다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세상에는 주류로 평가 받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나도 주류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농구인.

한국 농구인 중에서 유일하게 박사로 인정받은 농구 박사. 일명 한국의 제임스 네이스미스.

농구계의 마이티 마우스[5]. 또한 아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농구인으로서는 꽤나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농구에 필요한 전술과 전략 및 영어까지 공부하는 농구인으로 알려졌다.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은 정말 별 볼 일 없었던 선수였다.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재학 시절,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농구부에 오라는 권유를 받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로는 전혀 명문도 아니었고, 홍익대학교 농구부[6] 시절 최봉환 감독 밑에서 이영와 함께 배운 뒤 1985년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다. 그리고 한 시즌 농구대잔치를 치르고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서 복무한 후 바로 은퇴했다. 그 뒤로 기아자동차 공장 노무관리팀에 발령받아서 노조원들과 때로는 협상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지원하는 임무를 맡아 농구와는 관계없는 평범한 삶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3. 프런트 경력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90년. 방열 감독의 퇴진으로 이어진 기아자동차 농구단 내부의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의 갈등이었다. 이 갈등으로 방열 감독이 퇴진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기아자동차 수뇌부는 두 학교와 전혀 연관이 없는 추일승을 농구단 프런트로 발령하면서 매니저 일을 맡겼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농구와 연을 맺은 추일승은 운영 팀장으로 5년간 활약했다. 1994-1995 농구대잔치 우승을 최인선 감독과 박인규 코치의 뒤를 잘 받치면서 허재, 강동희, 김유택, 김영만을 잘 지원하면서 1997년 KBL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초대 매니저로서 97 KBL 원년 통합우승을 지원했다.

4. 지도자 경력

4.1. 부산 KTF 매직윙스

파일:추일승 KTF 감독.jpg

1997년 당시 상무 농구단의 코치를 맡고 있던 장일 안양 SBS 스타즈의 코치로 선임되자 장일의 후임으로 공석이 된 상무 농구단의 코치를 맡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상무의 터줏대감인 김홍배 감독이 정년퇴임하면서 감독으로 승격, 농구대잔치에서 우승도 일구는 등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농구계의 주류는 아니라서 과연 프로 감독이 될 지는 의문이었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어렵게 어렵게 팀을 다잡으며 지도하였던 이상윤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로 떠난 후 모기업이 부도가 나서 제대로 돈을 주기 힘들던 코리아텐더가 싼 맛에 활용하기 위해 추일승을 신임 감독으로 영입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말 코리아텐더가 KTF에 인수되면서 추일승은 여유있게 연봉을 받으며 감독 생활을 할 수 있었다.

KTF 시절을 평가하자면 잠시 반짝한 것이긴 했지만 하위권에 주로 머물던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자유계약으로 외국인 선수 선발에 상당히 능해 애런 맥기, 게이브 미나케, 나이젤 딕슨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오면서 팀을 꾸준히 상위권에 올려 놓는 수완을 보였다. 리빌딩에도 뛰어나서 현주엽, 조상현 같은 주축 선수들을 FA로 내줬지만, 꾸준히 포워드를 수집하면서 공백을 최소화했다.

2004-2005 시즌에는 포인트 가드 없이 포인트 포워드인 매직히포 현주엽과 2003-2004 시즌 중 SK 나이츠와의 트레이드로 황진원을 보내면서 데려온 슈터 손규완의 외곽포를 중심으로 유럽형 빅 포워드 농구를 통해 정규시즌 4위라는 성적을 거두며 KTF 매직윙스를 팀 창단 첫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단기전 경험 부족으로 인해 안준호 감독과 서장훈 강혁이 있는 서울 삼성 썬더스에 밀리면서 팀의 첫 플레이오프를 아쉽게 마감한다.

2005-2006 시즌에는 현주엽이 FA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할 때 FA 보상선수로 송영진 선수를 지명하면서 공백을 최소화했고 TG 삼보의 매각과 동부의 인수문제로 인해 FA로 풀렸던 포인트 가드인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끌어올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NBA 진출문제로 인해 1순위로 지명되었지만 팀에 계륵이었던 방성윤을 통신 라이벌 팀 서울 SK 나이츠 정락영과 함께 과감하게 트레이드시키며 조상현 황진원을 데려와 포지션 밸런스를 갖춘 팀으로 재건에 성공한다.

홈 구장을 사직실내체육관으로 옮긴[7] 2006-2007 시즌에는 KTF 매직윙스라는 이름으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며 부산에 농구바람을 일으켰다. 조상현이 FA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할 때 보상선수로 부진했던 임영훈을 겨우 지명하게 되는 등의 전력 손실이 있었지만 기존의 신기성 송영진이 건재했고 지난해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황진원과 식스맨 김희선, 김도수 조성민까지 탄탄한 국내선수진을 구성했다. 외국인 선수 또한 3년 연속 재계약에 성공한 애런 맥기와 새로 영입한 필립 리치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치열한 정규리그 순위경쟁 끝에 아쉽게도 정규리그 3위에 그쳤으나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객관적으로 전력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3승 1패로 현재까지도 팀 창단 처음이자 유일의 KBL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부산 사직체육관은 뜨거운 함성으로 마법의 날개를 달게 된다. 비록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끈질기게 7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으며 무엇보다도 팀을 사상 첫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끈 것은 큰 업적이다.

하지만 그 이후 리빌딩을 위해 모아둔 포워드들[8]의 군 입대로 인해 전력에 공백이 생겼고, 외국인 선발이 자유계약에서 드래프트로 바뀌면서 외국인 선수 선발에 계속 실패했다. 이로 인해 2007-2008 시즌에는 8위로, 2008-2009 시즌에는 12승 42패의 압도적인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시즌 후 감독직을 KTF-kt의 회사 합병 차원에서 자신과 치열한 경쟁을 한 KBL 최고명장인 전창진에게 넘겨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4.2. 야인 및 방송 해설 1기

재계약에 실패한 후에는 MBC 스포츠에서 농구 해설위원을 맡았고, 농구전문 웹 사이트인 "바스켓코리아"의 대표를 맡아 칼럼을 쓰기도 했다. 농구 해설에 대한 평가는 딱 교수님의 강의 같다는 평.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술에 관한 책을 번역하는 등 학구파 감독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방송해설 때는 약간 저음의 목소리로 인해 전달을 받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론과 실기가 겸비된 해설이라는 긍정적인 평을 얻게 되었다.

4.3. 고양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4.3.1. 11 - 12 ~ 13 - 14 시즌

파일:추일승 오리온스 감독.jpg

파일:추일승 감독 서동철 수석코치.jpg

야인 생활은 2년 만에 끝났는데, 2011년 3월 28일부터 대구 오리온스의 감독을 맡아 현장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 삼성 썬더스의 플레이오프 7전 전승 우승을 이끌었던 서동철 수석코치와 모비스 출신으로 알려진 성준모 코치가 선임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 이전을 한 오리온스의 재건을 맡게 된다.

부상으로 골골대던 김승현을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동욱으로 트레이드하면서 KTF 시절 보여주었던 빅 포워드 라인업 위주의 재건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게 된다.

초반에는 오리온스에 내재된 패배 의식으로 인해 상당히 고전한 편이었지만, 점차 크리스 윌리엄스, 김동욱, 최진수로 이어지는 포워드 농구를 구축하면서 팀 리빌딩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다. 다만 이 팀은 감독이 문제가 아니라 단장이 문제라는 거지. 그러나 2012-13 시즌 전태풍을 영입하며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는 팬들의 기대와 달리 답답한 용병술로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벌이며 실망감을 안겨 팬들은 추필패, 추무능으로 불렸다.[9][10]

또 대표적인 빅 포워드 농구 성애자로, 준수한 패싱력을 지닌 포워드가 있다면 KBL 올스타 레벨의 포인트 가드는 무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 중 한 명으로 개인기가 뛰어난 전태풍을 데리고도 김동욱으로 하여금 리딩과 공격 전개를 맡기는 게 대표적이다. 그로 인해 둘 사이에 자존심 싸움에 불화설이 나돌고 있으며 심지어 최진수마저 김동욱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 결과 성적 부진과 팀 내부 불협화음이 겹치면서 여전히 무능하다고 까이며 현 상황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목소리도 팬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11] 게다가 이상한 출전시간 배분으로 승기를 잡았을 때 제일 잘하는 선수를 빼버린다. 그리고 벤치멤버까지 출전 시간을 꽤 배분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전태풍도 일단 10분 쉬고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산주의 농구로 비꼬는 사람이 많다.

그와는 별개로 포워드 수집가인 추일승 감독의 지도력은 대구의 비극으로 끝난 오리온스에 고양의 희망이라는 서곡을 알렸다.

당시 탱킹이 유행하던 시즌에 최선을 다한 몇 안되는 감독으로 평소 승장 인터뷰 때 고양 시민들에게 좋은 경기력과 함께 승리 그리고 봄농구를 고백했다.

나머지 팀들이 워낙 밑바닥을 깔아준 덕에 승률이 5할을 기록하지 못하고도 5위에서 놀았고 결국 6라운드에서 6승을 기록하며 6년만에 5할 승률을 맞추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년도 KBL PO 챔피언이었던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2승 3패로 패했지만 오리온스는 고양에서 희망을 쏘아 올렸다.

이 시즌 막판에 서동철 수석코치는 청주 KB 스타즈의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추일승 감독은 쿨하게 보냈으며 그 자리는 오리온스의 레전드로 유소년 강사를 맡았던 스타출신인 김병철을 차기 수석코치로 부르게 된다. 12-1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조상현 성준모 코치를 대신에서 오리온 코칭스테프에 합류하게 되었다.

13-14 시즌에는 초반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 결국 KTF 시절처럼 빅딜을 단행했다.

결국 2013-14 시즌 도중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과 함께 4:4 트레이드로 부산 kt 소닉붐으로 보내는 대신 장재석, 김도수, 임종일, 앤서니 리차드슨을 받아오면서 자신이 원하는 포워드 농구를 한 번 더 실현시키게 되었다.

트레이드 직후 이런 인터뷰를 했는데 대다수 팬들의 반응은 개소리 집어쳐를 외치고 있다. 추일승 감독 “전태풍은 특별한 선수 아니다” 일축

그 배경에는 6 순위로 한호빈 선수를 지명한 것도 배경이 있다.

실제로 오리온스는 허일영 선수가 중심이었던 건국 오리온스라는 별칭이 있듯이 건국대 출신들이 팀워크를 잘 살리는 것도 추일승 감독이 반영한 격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역시 포워드 수집가 답게 포워드 농구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원 뛰는 농구이고 중심은 발빠르고 뿌리는 패스를 잘하는 이현민이 중심이다. 게다가 그 멤버들 중에 김동욱, 전정규는 빠져있고 장재석을 활용한 뛰는 농구로 변모했다. 즉, 속공 패싱력이 우수한 이현민을 필두로 장재석-앤서니 리처드슨- 최진수-임종일(성재준) 가만히 보면 주전 멤버 중 3명이 이번 트레이드 멤버 등 이 멤버로 예전 스티브 내쉬의 피닉스 썬즈 시절과 유사한 농구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지시가 내려진 게 있는지 장재석은 덩크로 주로 마무리하고, 최진수는 내외곽을 맡고 있다. 그리고 클러치 타임 때는 주로 앤써니 리처드슨에게 일대일을 맡긴다. 일단 트레이드 후에 호성적을 내고 있고, 상위팀과는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추일승- 장재석 국공합작이라고 불리고 있다. 즉 추일승추일성의 공산주의에 장재석 장개석이 넘어가 인민영웅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불리우고 있다. 그 결과 오리온스는 8연승을 달리며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되었으나 최종순위는 6위를 기록, 6강에서 SK에게 1승 3패로 물러나고 말았다.

약체로 평가받은 오리온을 2년 연속 6강권으로 이끈점을 보면 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4.3.2. 14 - 15 시즌

2014-15 시즌을 앞두고 오리온(15-16 시즌부터 오리온 오리온스라는 명칭이지만 통상적으로 오리온으로 부른다)에는 큰 낭보가 전해지게 된다. 2014 KBL 드래프트에서 2년 연속 6강에 오르고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전체 1순위와 함께 대표팀 출신이자 고려대 농구부 출신인 두목호랑이라 불리우는 포워드 형 센터인 이승현의 입단과 함께 오리온 팬들에게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사실 이 행운은 kt 소닉붐과의 지난 시즌 전태풍과 장재석이 포함된 4대4 트레이드에서 김도수가 포함되었는데 오리온 구단은 약물을 이유로 신인지명권을 원하여 Kt 소닉붐의 픽으로 뽑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엄현히 1순위(이승현)은 오리온의 지명권으로 뽑았으며, KT 소닉붐에게 얻어온 지명권은 7순위(이호현)을 뽑았다. 참고로 KT소닉붐은 1순위 지명권을 양도하는 댓가로 오리온의 2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이해 오리온은 3년전 김동욱 선수와 1년전 이현민 선수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백코트 라인이 좋아졌으며 최진수 선수가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지만 1년전 장재석 선수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전력이 좋아진 평이다.

외국인 또한 트로이 길렌워터와 찰스 가르시아를 뽑았다.

미디어는 오리온을 우승후보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 예상대로 1 라운드에서 개막 8연승을 달리며 그 동안의 오리온과는 환골탈태를 한 격이었으나, 이 시즌도 위기관리 능력에서는 의문점을 드러냈다.

내심 4강 PO 직행까지 노려봤던 기세는 전창진의 우현민 디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한풀 꺾이게 된다.

이로인해 1월 중순 삼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리오 라이온스를 영입하며 다시 상승세를 탔지만 매치업과 조직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며 연패에 빠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SK에 패배하며 정규시즌 5위에 그쳤다.

역대 KBL 팀 중 정규리그 1위에서 5위로 DTD를 당했는데 역대급 추락이었다. 봄농구 탈락이 아닌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였다.

결국 2013-2014 시즌 오리온 전신 동양의 명장으로 창단 첫 KBL 무관의 한을 풀어낸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으로 국민감독이자 청부사인 김진 감독이 이끄면서 문태종- 김영환- 김시래- 김종규 빅4가 있었던 창원 LG 세이커스가 전년도 정규리그 우승팀이었지만 각종 악재 끝에 8위라는 추락에도 불구하고 4위로 역전 비상을 했는데 오리온은 희생양이 되었고 6강 플레이오프 홈 어드벤티지마저 넘기면서 혹독한 봄농구를 예고했다.

그래도 미디어와 농구인들은 LG와 오리온의 전력을 백중세로 보고 최종 5차전까지 예상했다.

사실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잃은 이후 어웨이인 창원에서 열렸던 1차전은 그야말로 재앙급이었는데 정신차린 이후 임한 2차전에서 4쿼터 막판 집중력으로 동률을 만들면서 고양에서 열릴 3차전과 4차전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고양 홈에서 열렸던 3차전에서 김시래를 막지 못하며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으나 4차전은 LG도 힘들었는지 오리온이 여유있게 이겼다.

하지만, 창원에서의 최종 5차전에서는 거의 대 패배한 경기와 다름이 없었던 20점차 가까이 벌어진 경기를 다 따라잡는 병경기명경기를 연출하면서 접전을 만들면서 역전의 기운이 오는가 싶더니 트레이드로 데리고 온 리오 라이온스가 결정적 슛 2개를 날리며 분패하며 모비스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 속에 3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만족해야 했다.

냉정히 말해면 12-13 시즌부터 3년 연속 6강으로 선전했으나 계속해서 단기전에서 일찍 마무리하면서 실패한 시즌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이승현이라는 신인을 보유하고도 개막 8연승 선두에서 시즌 막판 5위로 추락하면서 4강에 오르지 못한 건 충격과도 같았다.

4년 재계약 기간이 끝나게 되었는데 1년 연장 계약을 했다.

4.3.3. 15 - 16 시즌

파일:추일승 감독 2015 개막전.jpg

새 팀 명칭인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변경된 이후 첫번째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2015-16 시즌 개막 직전 열린 제 3회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 4강전 상무를 넘은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 93대 68로 이기면서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첫 프로팀 우승을 이뤄내며 2007년 KT에서 겪었던 준우승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냈다. 오리온스 구단으로서도 고양으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들어본 첫 트로피이다. 사실 상무를 아는 추일승 감독은 비록 쇼케이스 형태의 토너먼트였지만 최선을 다했다.[12] 이벤트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니 뭐니 하는데 그래도 우승한 게 어디냐??

2015-16 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R 7순위로 애런 헤인즈를 선발하였다. 하위순번으로 밀렸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측면도 있으나 평소 추 감독의 포워드 선호 경향이 나타난 부분이기도 하다. 2R에서는 맥도널드 올아메리칸 경기에도 선발되었던 단신가드 조 잭슨을 선발하면서 빠른 공격농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LG와의 협상이 결렬, 이적시장에 나온 문태종을 영입했다.[13] 기존의 다른 상위권 팀들이 전력 누수가 생겼지만 오리온스는 전력을 그대로 유지, 오히려 더욱 보강하였고 추일승 감독 역시 이번 시즌을 우승의 적기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11월 중반 헤인즈가 부상을 당해 팀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자 승률이 점점 깎이더니 급기야는 리그 초반기부터 굳건히 지키던 선두 자리마저 모비스에 뺏기자 추일승도 추애런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조 잭슨이 의욕만 앞선 나머지 개인플레이로 일관하다 삽질을 계속하는 와중에도 "조 잭슨 교체는 없다."고 교체설을 일축하면서 추무능 타이틀이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4라운드부터 잭슨의 활약이 이어지고 일시 대체선수로 들어온 제스퍼 존슨의 컨디션이 점차 올라옴에 따라 1라운드의 경기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1~3라운드에 벌어두었던 승패마진이 많이 줄어들었고 다소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선두권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헤인즈의 컨디션 회복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제스퍼 존슨의 일시대체를 정규시즌 말까지 연장하려 했으나 KT가 코트니 심스의 부상대체 선수로 제스퍼 존슨을 지명하며, 과거 4:4 트레이드에 대한 복수를 당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존슨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헤인즈의 회복이 더뎌지고, 조 잭슨과 손발을 다시 맞춰야 하는 문제도 있었기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동안의 외국인선수 공존에 대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헤인즈와 잭슨이 강력한 시너지를 보여주고, 이승현, 최진수, 장재석을 필두로 한 장신 포워드진이 장신 외국인, 언더사이즈 빅맨, 국내 최상위권 빅맨으로 구성된 트리플 타워로 재미를 많이 보았던 원주 동부와 울산 모비스를 상대로 전부 스윕을 거두고야 말았다. 동부전에서는 1차전부터 104득점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공격농구를 보여주어 수비 농구로 정평이 나있는 동부를 상대로 평균 득점 90점대의 대굴욕을 안겼다. 울산 모비스 전에는 최진수, 김동욱, 한호빈 등 미스매치와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앞선 수비 강화가 좋은 효과를 발휘하여 디펜딩 챔피언 모비스 마저도 평균 실점 60점대로 묶어버리는 극한의 수비농구를 과시하였다.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모비스를 스윕해내며 2006-07시즌 챔프전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2015-2016 대망의 KBL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전 연고였던 대구 동양 시절이었던 2002-2003 시즌 이후 13년만에 KBL 파이널에 진출했다.[14]

맞대결 상대는 2015-2016 시즌 KBL 정규리그 우승팀이었던 KCC였다. KCC 이지스에는 추승균 감독이 이끌고 있었고 전태풍과 하승진에 이어 안드레 에밋이라는 언더 테크니션 겸 스코어러가 있었다. 2015-2016 시즌 정규리그 개막 이전 우승후보로 평가받았고 KBL 파이널에서도 KCC가 오리온을 이길꺼라는 전망은 80%를 넘었다.

KCC와의 챔프전에서는 1차전에서 패배를 안았지만, 패배 이후 추 감독은 수비에서 해볼만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후 수비 작전이 잘 들어맞아 초반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던 5경기를 제외하고는 KCC의 공격을 확실히 틀어막고 폭발적인 화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화끈한 공격농구를 선보여, 시리즈 스코어 4-2로 제압하였다.

이 당시 에밋 수비법을 하나 더 준비했는데 결국 사용하지 않았다. 추일승 감독이 밝히길 바로 "박스 앤 원" 수비전술이었는데, 4명이 지역방어를 서고 1명이 에밋을 막는 변형 지역방어이다.[15]

특히 우승을 결정지은 6차전에서는 120득점을 기록하는 공격농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로서 팀의 두 번째 우승이자 추일승 감독이 꿈에 그리던 개인 통산 첫 우승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16]

파일:추일승 감독 우승.jpg

고양 입성 이후 첫 KBL 플레이오프에 성공한 오리온은 전설의 보라색과 함께 KBL 챔피언에 올랐고 차기 시즌부터 다시 빨간색 유니폼으로 돌아갔다.

KBL 플레이오프 MVP는 유도를 통해 몸싸움을 배우면서 자신보다 20cm 이상 큰 거대한 하승진을 막아냈던 두목 오리온인 이승현 선수였다.

감독 감독 이후 오리온스의 전성기를 연 추일승 감독은 15-16 PO 챔피언의 공을 인정받아 4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장기집권을 예고했다.

4.3.4. 16 - 17 시즌

파일:추일승 감독 300승 시절 모습.jpg

오리온은 고양 입성 이후 첫 KBL 통합우승에 도전했지만 조 잭슨의 이적으로 인해 오데리언 바셋을 영입했다. 플레이오프 챔피언 이후 FA가 된 이현민이 이적하면서 가드 라인이 취약해졌는데 끝내 이 약점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규리그 2위에 그치게 되었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명승부 중의 명승부 끝에 홈경기에서 1차전을 먼저 내주고 2차전마저 홈에서 패하면서 시리즈 스윕 위기를 맞이했다. 비록 서울 잠실에서의 3차전과 4차전을 가까스로 모두 2연승을 거두었지만 뒤집지는 못했다. 돌아온 고양 홈에서 최종 5차전에도 패배를 당하며 2년 연속 KBL 파이널 진출 실패와 함께 2년 연속 KBL 플레이오프 우승에는 실패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6년 12월 24일 kt와의 고양 홈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KBL 감독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17]

4.3.5. 17 - 18 시즌

이승현의 상무 입대와 장재석의 공익 및 FA로 인해 친정이었던 삼성으로 돌아간 김동욱에 이어 SK로 돌아간 애런 헤인즈 정재홍 등 2015-2016 시즌 플레이오프 우승의 주역들이 나가면서 팀 전력은 급격할 정도로 많이 약화되었다.

시즌 전에는 인천 전자랜드와 부산 kt 및 원주 DB[18]와 함께 최약체로 분류되었으며 예상대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16-17 시즌 종료 이후 오리온 그룹 사원 강의에서도 인정했으며 그래도 그대로 당하지 않음을 뚝심있게 다졌지만 한꺼번에 나간 15-16 챔피언 멤버들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12-13 시즌부터 16-17 시즌까지 5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이승현의 상무 입대 공백과 1년전 이현민 그리고 친정인 삼성으로 돌아간 김동욱의 공백을 끝내 메우지 못하면서 11-12 시즌의 초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현주엽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조성민 김시래 김종규가 있었으며 유력했던 6강 후보인 창원 LG 세이커스 역대 초보 사령탑의 적응문제와 함께 각종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창단 이후 역대 최저성적인 17승 37패라는 굴욕적인 성적과 함께 정규리그 9위로 미끄러지면서 그나마 선전한 평을 받았다.

이적과 군입대로 인한 전력약화 치고는 선전했전 최종성적은 19승 35패 정규리그 8위로 마무리했다.

4.3.6. 18 - 19 시즌

개막전 KGC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출발한 뒤 현대모비스에게 대패를 당했으나 곧바로 SK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2승 1패로 나쁘지 않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현민과 김동욱이 더난 공백을 토종 가드 라인과 포워드 라인 모두 지난 시즌처럼 주인공이 나타나지 못했으며 고질병과 같은 외국인 가드 또한 KBL 스타일의 팀 플레이 적응에 실패했다.

가드 라인만 보면 제쿠안 루이스는 기량은 있었지만 리딩과 멘탈에 문제점이 있는 바람에 교체를 당했고 돌고 돌더니 스윙맨에 가까운 제이슨 시거스의 등장과 이후 부상으로 교체한 조쉬 에코리언으로 인해 겨우 한시름을 놓을 정도였다.

여기에 이승현 선수의 기약없는 기다림도 이어지면서 시련은 계속되었다.

이 악재로 인해 시즌 초반에는 10연패를 당하면서 독보적인 최하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잘 뽑은 올어라운드 외국인이었던 대릴 먼로의 트리플 더블 모드로 인해 겨우 꾸리고 있었다.

그나마 외국인 선수 대릴 먼로가 부상에서 복귀를 한 이후 서울 삼성 썬더스를 제물로 10연패에서 연패를 끊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한때는 성적이 정점에 찍은 뒤에 임기 말년에 독보적으로 부진을 하는 모습이 과거 부산 KTF 매직윙스 임기 시절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다. 이 때와 다른 점은 그나마 15-16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이지만...비판을 하는 팬들도 있지만 저 당시의 우승 때문인 것인지 몇몇 감독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비판받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부상에서 먼로가 복귀하고 대체 용병인 시거스가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최진수도 부진에서 회복하여 괜찮은 모습을 보여줘 팀이 정상궤도로 회복해서 다시 이런 논란도 사그라드는 중.

이후 4라운드를 기점으로도 여전히 8위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6위와는 단 1.5게임차까지 추격을 하기도 하면서 6위권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대릴 먼로와 허일영의 활약으로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만 네 번 모두 덜미를 잡으면서 상대전적 우세를 확정지은 것은 덤. 경기력이 라운드를 거듭하면 할수록 회복되고, 그리고 납득이 가기 시작하는 경기력으로 6위권 싸움을 치열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에 대한 평가가 도로 나빠질 일은 없어질 듯하다.

마침내 그분이 상무에서 전역하게 된다.

바로 두목호랑이 이승현.

사무국장은 이미 신협상무에 입대할 때도 앞으로 오리온의 스타로 남아주길 바라며 초코파이를 선물하면서 신뢰를 형성했다.

그 효과는 이렇게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승현의 복귀전인 1월 30일 울산 동천체육관 원정경기에서 이승현의 위닝샷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승현을 필두로 한 포워드 농구의 시대를 다시 맞이했다.

2019년 2월 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원정경기에서 88대 80으로 꺾으며 5위까지 도달했다(!). 결국 3월 16일자로 안양 KGC인삼공사를 또 잡아내는 데에 성공하면서 10연패를 뒤로 하고 kt와의 상대전적 우위로 최종 5위로 포스트시즌 막차에 탑승하는 데에 성공했다.

외국인 또한 단신이었던 제쿠안 루이스부터 꼬이기 시작했는데 시즌 막판 조쉬 에코리언의 돌파력을 통해 약점이었던 가드 라인에서 힘이 되었다.

2년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상대는 15-16 KBL 파이널에서 격돌했던 KCC 이지스다. KCC는 추승균 감독이 경질된 이후 전창진 감독을 선임할려 했으나 실패로 인해 스테이시 오그먼 코치를 감독으로 두었으나 사실상 감독대행이었다. 이미 전술과 전략은 전창진 감독에서 나왔다.

결국 1차전을 내주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고양에서의 3차전과 4차전은 전창진 감독을 넘지 못하면서 나머지 경기들은 모두 패하는 바람에 오리온의 플레이오프는 6강에서 멈추었다. 그래도 시즌 초에 답이 없어 보이던 팀이 이렇게까지 올라온 것에 대해 많은 농구팬들이 추일승 감독의 지도력을 다시 재평가하게 되었다.

4.3.7. 19 - 20 시즌

15-16 시즌 영웅들이 무려 4년만에 돌아오게 되었다.

마침내 트레이드로 친정에 돌아온 이현민 선수와 공익근무를 끝낸 장재석 선수가 돌아오면서 2년간 얇은 선수층은 그나마 보완되었다.

이미 상무에서 전역복귀하면서 10연패 팀의 봄농구를 이끌었던 이승현 선수와 오리온의 프랜차이즈 슈터인 김도수 코치 후임의 주장인 허일영 선수의 건재와 고양 시절 이후 오리온의 스타인 최진수 선수까지 모두 다시 만나게 된다.

외국인 또한 18-19 시즌 서동철 감독이 잘 활용했던 스코어러 겸 올어라운드 빅 포워드인 마커스 랜드리를 영입하게 된다.

전문가의 평은 6강은 충분.

그러나, 추일승 감독의 임기만료였는데 악재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과 함께 주축선수들의 부상겸 외국인 선발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최하위로 힘겹게 팀을 꾸리면서 시즌을 힘겹게 치루었다.

시즌 초부터 마커스 랜드리의 개막 3경기만의 부상과 함께 보리스 사보비치로 바뀌었지만 공격력이 떨어졌고 약점인 가드 라인에도 포인트 가드였던 조던 하워드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중도 퇴단을 당했으며 백업으로 공격력이 약한 센터인 아드리안 유터까지 가는 등 부침이 심했다.

이승현 선수는 이미 대표팀 차출로 인해 체력이 떨어진 상태로 컨디션이 무너졌으며 최진수 선수도 가드 라인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평균 득점도 두자리 미만으로 떨어졌고 김도수 코치 이후 주장인 허일영 선수는 부상으로 인해 결장경기가 늘어났다.

돌아온 이현민 선수도 이제 체력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같이 부상당한 한호빈 선수와 함께 약점인 가드 라인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파일:김병철 코치 추일승 감독 스왑.jpg

결국 국가대표 아시안컵 휴식기중인 2020년 2월 19일에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했다. 남은 시즌은 김병철 코치가 감독대행직을 맡고 대신 팀을 이끌어 나게게 되었다. 깊은 울림 남겼던 추일승 감독과 오리온 '영광의 시대'

감독 퇴임 이전부터 추일승 감독은 이미 김병철 수석코치의 승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18-19 시즌과 19-20 시즌에 보여주었다. 자신은 총감독으로 퇴진한 듯한 모습으로 김병철 수석코치가 감독처럼 선수단에 작전지시를 하도록 배려를 했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 매니저 때 최인선 감독과 박인규 코치가 서로의 역할을 스왑하기도 한데 그 모습이 나왔다. 이 부분은 자신의 친구인 유재학 감독이 조동현 수석코치에게 작전을 맡기는 모습과도 연관이 있다.

오리온에는 큰 울림이었으며 김병철 수석코치는 큰 슬픔과 충격속에 한 동안 코트가 보이지 않기도 했다.

오리온 구단 관계자는 아쉬움 속에 추 감독의 뜻을 받아들였고 오리온 팬들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자진 사퇴 이후 구단과 선수단 및 팬들에게 미안함을 드러내며 오리온에서의 길고 길었던 재건-정상-성장과 함께했던 9년의 시간을 마감하게 된다.

이 슬픔 속에 김병철 수석코치 또한 큰 충격과 함께 감독대행을 볼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을 만들었던 또 하나의 명장인 김진 감독도 같이 그리워하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다음은 오리온 역대 최장수였던 9년의 감독생활을 마감한 추일승 감독의 편지였다.
"시즌 도중 사퇴하게 돼 구단과 선수단에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결심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팬들과 묵묵히 따라와 준 선수단, 아낌없이 지원해준 구단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오리온의 선전을 기원한다"

이후 오리온은 당초 김병철 수석코치의 내부승진이 유력했으나 그룹 최고위층에서 강을준 감독을 선임하며 논란을 키웠다. 물론 강을준 감독이 2년간 플레이오프 진출로 선전했으나 추일승 감독은 아쉬움과 함께 오리온스의 건승을 응원했다. 하지만, 강을준 감독 이후 구단의 충격적인 매각과 함께 추억으로 남게 되면서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4.4.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추일승호 문서 참조.

조상현 감독이 대표팀 일정문제와 자신이 몸담았던 LG 세이커스의 계속된 성적부진으로 인해 LG 세이커스 감독을 맡으면서 후임으로 지원하면서 선임되었다. 비국가대표 출신 첫 대표팀 감독을 맡는 역사를 새로 섰다. 자신의 제자였던 이훈재 전 하나원큐 감독이 코치로 함께했다. 하지만, 2002 항저우 아시안게임 성적부진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특히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직을 맡을 시절 대표팀 선발과정부터 시작된 엔트리 문제 및 부상악재로 인해 17년만의 노메달이자 역대 최저 7위라는 성적부진으로 불명예 속에 계약만료로 대표팀 감독직을 일찍 떠나게 되었다. 후임으로 안준호 전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과 자신이 추천했던 서동철 전 부산/수원 kt 소닉붐 감독이 코치로 대한민국농구대표팀을 맡게 되었다. 안준호 감독 또한 추일승호의 충격적인 부진으로 인해 상당한 고령인데도 원팀을 강조했다.

4.5. 통산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KBL)
시즌 소속팀 경기수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2003-04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부산 KTF 매직윙스 54 19 35 8위 -
2004-05 54 32 22 4위 6강 PO
2005-06 54 29 25 4위 6강 PO
2006-07 54 32 22 3위 준우승
2007-08 54 24 30 8위 -
2008-09 54 12 42 10위 -
<rowcolor=#000000> 통산 324 148 176 0.457 -
시즌 소속팀 경기수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2011-12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54 20 34 8위 -
2012-13 54 27 27 5위 6강 PO
2013-14 54 27 27 6위 6강 PO
2014-15 54 31 23 5위 6강 PO
2015-16 54 32 22 3위 우승
2016-17 54 36 18 2위 4강 PO
2017-18 54 19 35 8위 -
2018-19 54 27 27 5위 6강 PO
2019-20 41 12 29 10위[19] -
<rowcolor=#000000> 통산 473 231 242 0.488 V1
<rowcolor=#373a3c> 총계 797 379 418 0.476 V1
역대 감독 전적 (국가대표팀)
시즌 소속팀 경기수 승률 비고
2022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1 1 0 1.000 -
<rowcolor=#000000> 통산 2 2 0 1.000 -
<rowcolor=#373a3c> 총계 2 2 0 1.000

5. 퇴임 이후

2019년 1월 17일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 경력조차 없었던 무명의 추일승 감독은 비록 행정분야지만 진정한 국가대표가 되었다. 주로 맡은 역할은 남녀 농구대표팀의 엔트리 및 감독선임과 향후 대표팀의 로드맵 구성을 맡는 대표팀 관련 행정 회의의 총책임자로 대표팀 감독 선임 및 선수선발에 대한 총권리를 누린 것이다. 오리온 추일승 감독, 농구대표팀 경기력향상위원장 선임

한 때 오리온에서 수석코치를 했던 서동철 감독도 경기력 위원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김병철 수석코치의 내부승진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20]

오리온은 이미 KBL 감독에서 떠난지 역대 최장수인 9년을 쉰 강을준 감독을 선임하면서 추일승 정신과는 이별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추일승 감독이 공을 들인 백업 빅맨으로 FA로 풀리게 된 장재석은 추일승 감독이 떠난 나머지 유재학 감독이 있는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추일승 감독이 떠난 이후 오리온은 성리학자인 강을준 감독이 오더니 FA로 가드 이대성 선수는 오리온 역대 FA 최고액인 5억 5천과 함께 이적을 하면서 취재열기가 180도 바뀌고 있다.

최근엔 '나는 농구인이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강원도 횡성군으로 귀농을 하며 지내고 있다. 횡성으로 자리를 잡은 이유도 밝혔는데, 아내의 고향 원주시인데, 그 곳에서 멀지 않은 횡성을 공략해서 그 곳으로 가게 되었다며 고백을 했다.

그런데, 자신의 오리온 후임 사령탑이 김병철 수석코치의 승진 실패 때 한숨을 내쉬면서 안타까워 했다. 대신 강을준 감독이 잘되길 바랬다. 추가로 지도자 경력이 없었던 현주엽 LG 감독의 퇴진 때도 한숨을 내쉬었으나 자신이 직접 키웠던 서동철 kt 감독을 자신있게 설명하는 등 애정을 잃지는 않았다.

5.1. 오리온 감독 퇴임 이후 시절

오리온 감독 재임 중 스트레스 때 농구선생을 꿈꾸었는데,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농구 유튜버의 길을 가게 되었다.

KTF 매직윙스 감독 퇴임 때도 박사학위를 포함해서 바스켓코리아라는 농구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소통하는 농구인으로 농구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KTF 매직윙스 시절부터 제자로 오리온 오리온스에서도 함께하게 된 박상오 선수와 함께 '나는 농구인이다'라는 유튜브 채널 개설과 함께 강원도의 농민(?)으로 귀농의 자연체험을 하고 있다.

자신은 예능끼가 부족해서 박상오를 불렀음을 고백했다.

재임 때 짓궂게 했던 농구 기자들과도 회식을 했는데 자신도 피곤해했다.

이와 다르게 일부 스타 선수 출신들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화제를 모으는데 추일승 감독은 박상오 선수 덕에 용기를 냈음을 고백했다.

자라나는 한국농구의 유망주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운영을 시작했음을 고백했다.

강원도에 귀농을 하면서 오후에 농사를 짓지만 저녁에는 다시 농구저서를 포함해서 KBL, WKBL, NBA 영상시청을 포함해서 농구를 공부하고 있다.

자신의 KTF 시절 제자였던 박상오는 오리온의 전력분석관으로 강을준 감독을 지원하게 되었으며 또 다른 KTF 시절과 오리온 시절의 제자인 김도수 코치는 같이 물러난 뒤 방송해설위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21년 1월 FIBA 아시아컵 대표팀 관련 차출문제로 인해 김상식 대표팀 감독이 선수선발 문제로 인한 신뢰를 잃게 되더니 자진사퇴를 밝혔다. 그것도 자신의 후임 오리온 사령탑인 강을준 감독이 이승현 선수 관련 차출로 인해 디스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본인도 깨끗하게 책임을 지게 되었다. 김상식 대표팀 감독도 계약만료였으나 신뢰 문제를 이유로 자진사퇴를 밝혔다.

농구 팬들은 한국농구를 위해 차출에 응해야 할 현 KBL 사령탑이 보호본능으로 기피한 강을준 감독이 무조건 잘못했음에 비판과 분통을 터트렸고 오히려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장과 김상식 감독을 위로했다.

참고로, 추일승을 포함해서 김상식과 강을준은 오리온 출신 감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로 인해 오리온 출신 감독들간의 집안싸움이라는 오명의 피해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내 선택에 떳떳함을 고백했다. 잘한 건 아니지만 제한적 차출을 감안하면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뒤로 하고 김상식 감독이 계약만료이자 대표팀 차출문제로 사퇴를 하면서 2021 FIBA 아시아컵 예선전은 코로나 19로 인해 당초 2월말 필리핀 개최가 6월로 미루어지더니 끝내 상처를 받고 신뢰문제로 인해 불명예로 마무리 된 김상식호는 닻을 내리게 된다.

이후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장은 갑자기 대한민국농구협회 감독직에 지원하게 되었다.

팬들의 반응은 한국농구가 학벌주의인 만큼 동의하는 팬들도 있지만 국가대표도 못해보았는데 경기력향상위원장 시절 강을준에게 항의를 당하며 대표팀 행정을 못본 이후 감독직에 지원한 사실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2021년 04월 15일자로 감독면접을 보았다. 코치는 KTF와 오리온에서 함께했던 김도수 코치를 함께할 예정이다. 감독후보는 동세대 경쟁했던 전 동양-LG 감독이었던 김진 KBL 재정위원- 김영만 전 동부 감독과 KTF 시절과 오리온에서 지도했던 후배인 조상현 대표팀 코치- 김동우 SPOTV 해설위원이었다.

자신도 경기력향상위원장인데 공교롭게도 후임이 고려대 출신 김동광 전 KBL 경기본부장이다. 이승현 차출로 디스했던 강을준을 위원으로 데리고 간 상태로 인해 순탄치는 않다. 물론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한국농구의 병폐인 혈연, 지연, 학연을 철폐할 유일한 후보로 농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농구인으로서 바꾸기 위한 도전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 꿈은 처음에는 이루지 못하게 된다.

2021년 5월 6일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는 조상현 전 대표팀 코치를 김상식 전 대표팀 감독의 후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아무래도 경기력향상위원장 시절 대표팀 선수선발 논란이 컸던 모양새였다.

농구 팬들도 충격에 빠졌다. 당초 김진 감독-김영만 코치조가 아닌 누가 보아도 경험이 일천한 조상현 감독-김동우 코치조에서 농구 커뮤니티는 이해불가였다. 추가로, 김진 감독과 김영만 코치도 팬들은 단순한 전술 및 전략을 지적했다. 어떤 농구 팬들은 추일승 감독-김도수 코치조는 정말로 안타까워 했다.

이후 조상현 감독조차 LG에서 계속된 성적부진과 코로나 사태로 인해 A 대표팀 경기일정 공백으로 인해 지도력을 펼치치 못하면서 허무한 상태로 대한민국농구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를 했다.[21]

자신은 개인블로그에 왜 대표팀 출신만 대표팀 감독을 맡아야 하는지 회한을 알리면서 농구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참고로, 추일승 감독은 상무 감독 시절 군인 국가대표 감독이었고 대한민국농구협회장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주축 선수 특히 WKBL 최고 스타 빅맨인 박지수 선수에 대한 혹사논란으로 비판받았던 여자농구의 베테랑 사령탑인 이문규 여자대표팀 감독의 하차를 이끈 숨은 농구영웅이었다. 자신의 친구인 유재학 감독 또한 대한민국농구협회 이사를 맡으면서 여자농구 발전을 같이 고민했다.

이와는 별개로 7월에는 2021 더 바스켓볼 토너먼트에서 Forces of Seoul 팀을 구성하면서 새로운 농구인생에 도전했다. KBL 출신 외국인으로 급조된 팀이었는데 새로운 농구경험을 했다. 비록 32강전에서 탈락했지만 농구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5.2. 방송 해설 2기

2021-22 시즌을 앞두고 KBL 주관방송사인 SPOTV의 새 해설위원이 되었다.

자신이 KTF 매직윙스와 오리온 오리온스 감독 시절 지도했던 제자인 WKBL 하나원큐의 수석코치로 부임한 김도수 전 해설위원을 대신해서 10년 만에 KBL 주관방송사인 SPOTV에서 농구 해설자로 복귀하게 되었다.

2021년 10월 05일 KBL 센터 내 KBL 규칙위원회 설명 중 미디어에 해설위원을 맡게된 점을 고백했다.

농구 중계를 통한 즐거움과 농구인기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짐했다.

친정팀인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대해서 이미 오리온 팬들은 농구박사의 귀환에 그리움과 환영을 표시하면서 성리학자라 불렸지만 점점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는 강을준에 대한 비판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오리온 게임 해설 때 평소 편파적이지 않지만 가끔은 안타까워하는 멘트가 나오기도 했다.

추가로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중계방송도 맡게 될 예정으로 인해 색다른 해설이 예상된다. 단, 지도했던 조상현 신임 대표팀 감독에게는 아무래도 쓴소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게 농구 팬들의 생각이다.

2021년 10월 24일 열린 전주 KCC vs 울산 현대모비스 경기에서 명경기 해설을 하게 된다. 추가로 양 팀 사령탑이 과거 경쟁했던 63년생 전창진과 유재학의 동갑 맞대결이었는데 시즌 첫 2차 연장 게임을 치르게 된다. 해설 때도 평소 온화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약간 흥분한 멘트로 농구팬들에게 감동을 남겼다.

2022년 5월 10일 챔피언결정전 5차전 해설을 맡아 SK의 사상 첫 통합우승을 해설위원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경기가 해설위원으로써의 마지막경기였다.

2022년 5월 16일 SPOTV 해설위원 이상윤과 함께 조상현 감독의 창원 LG 감독 부임으로 공석이 된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가 되었고 2022년 5월 19일 대표팀 감독으로 확정되었다.

5.3. 대한민국농구대표팀 감독 퇴임 이후

충격적인 대표팀 감독성적부진에 따른 계약만료로 퇴임 이후 과거 블로그가 사라지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농구스토리를 남기고 있다. 추가로 농부와 관련된 사진도 몇개 있다.

6. 코칭 스타일

미국과 세계 농구의 박사는 네이스미스지만, 한국 농구에 있어 박사는 추일승 감독이라는게 농구계의 소문이다. 대학 세 곳에서 석·박사까지 마친 전형적인 ‘지장’으로 꼽힌다.

감독 재임 기간에 끊임없는 농구이론과 농구전술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나오는 성실함을 통해 미국 수비 전술 전략 저서였던 Winning Defense를 한글로 번역한 학구파 감독이었다.

오리온의 15-16 플레이오프 우승 전후로 심장을 뛰게하라라는 농구저서를 오리온 감독재임 시절에 출간했다. 프로농구 추일승 감독, 에세이집 '심장을 뛰게 하라' 출간

감독 재임 기간 중 농구 전술과 전략 및 농구 영어 공부를 위해 하루에 2~3 시간 밖에 잠자리에 들지 못했지만 인내와 노력으로 공부를 했다.

실제로 감독 재임 기간 중 저서가 나올 정도로 농구박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공부하는 농구인으로 알려졌다.이런 농구인으로서의 노력을 농구팬들과 자신을 만들어주었던 박상오 선수가 포함된 추 감독의 제자들은 스승인 추 감독에게 농구박사 또는 추박사라는 별명을 붙어주었다.

6.1. 장점

감독으로서 최고의 장점은 역시 유로 바스켓에서 배웠던 포워드 수집능력과 센터 출신의 용병 뽑기와 리빌딩이다.

과거 KTF 시절부터 애런 맥기, 필립 리치, 게이브 미나케, 나이젤 딕슨 등과 오리온스에서 2라운드에 뽑은 리온 윌리엄스, 트로이 길렌워터, 조 잭슨 등 용병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그리고 17-18 시즌 영입한 버논 맥클린 저스틴 에드워즈모두 상당한 활약을 했으며 2018-2019시즌 뽑은 대릴 먼로, 제이슨 시거스 또한 본인 포지션에서 역할을 다했다. 19-20 시즌 역시 KBL에서 검증된 용병 마커스 랜드리를 뽑았고 단신 용병으로 조던 하워드를 뽑아 국내선수를 맞춰주는 높은 안목으로 용병을 선발했다. 다른 팀 감독들에 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공부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답게 평소에 NCAA나 유로리그를 자주 보면서 안목을 기른 듯하다. 리빌딩 능력도 훌륭한데 KTF 에서도 불우했던 코리아텐더 시절부터 팀을 맡아서 트레이드를 통해 우수한 뎁스를 쌓아 KTF-kt의 창단 유일의 KBL 파이널 진출 이후 준우승을 차지했고 김승현의 이면계약 후 꼴찌를 거듭하고 황폐해졌던 오리온스를 부임 후 마치 KTF 시절처럼 스쿼드를 2개나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뎁스를 자랑하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아울러, 선수들에게나 팬, 매스컴에도 비교적 젠틀한 감독으로 알려져있다.[22]

야인 시절에도 08-09 시즌 KTF 매직윙스 감독 퇴임 이후 인터넷 농구언론 바스켓코리아를 운영하며 각종 전술론을 기고하는 등, 세계농구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1달간 철야작업을 한 끝에 사이트를 완성한 추일승 감독님의 작품이다. '아마농구 발전과 대한민국 농구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내건 '바스켓코리아'는 추 감독이 대표를 맡아 지도자 생활에서 터득한 노하우와 농구정보를 제공하기도 했고 현재 바스켓코리아는 점프볼과 루키에 이어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인터넷 미디어로 성장했는데 그 지분에는 추일승 감독의 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추가로 외국 유명 코치들의 저서와 훈련법, 전술 등을 번역해 국내 아마추어 농구 지도자들은 물론 농구 마니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아마추어 유망주들을 발굴, 소개하는 등 각종 농구소식도 다룬다.

15-16 시즌 들어서는 코트에서 빅맨을 제외하고 기동력과 수비력, 슈팅 능력을 갖춘 포워드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NBA에서도 사용하는 오펜스를 가동하는 중. 헤인즈를 기반으로 한 혼즈 오펜스, 조 잭슨을 주축으로 한 2:2, 속공 후 세컨드 브레이크 등의 공격전술뿐만 아니라, 포워드 요원들의 활발한 디나이와 적극적인 박스아웃/공격리바운드 장악, 효과적인 더블팀/트리플팀 등의 협력수비 등 수비전술까지 모든 면에서 15-16 시즌 파이널 상대였던 KCC를 압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평균 출전시간을 살펴보면, 30분이 넘는 출전시간을 가진 선수가 15-16 시즌에는 이승현, 헤인즈이고, 16-17시즌에도 김동욱, 헤인즈 단 2명뿐이다! 이러다보니 주축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15-16 시즌과 16-17 시즌도 고른 농구라는 시스템의 장점을 활용하여 부상 선수 발생으로 인한 전력 누수를 최소화했고, 15-16 시즌 챔프전 우승과 16-17시즌에도 상위권에 안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 팀에서 30분 이상의 출장시간을 갖는 주축 선수 2명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선두 경쟁을 할 수 있을 만한 팀이 있을까? 게다가 저런 두꺼운 스쿼드를 장기간 유지하다보니 한두 명이 슬럼프에 빠져도 나머지 선수들이 해결하면서 이기는 경기가 많다. 하물며 나머지 선수들마저 제대로 터지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경기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15-16 챔피언 결정전 6차전.[23]

16-17 시즌 이후 몰락했지만 18-19 시즌 개막 이후 10연패를 당한 팀을 빠르게 수습해서 2년만에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걸 보면 아무리 비판이 있어도 빅 포워드 스타일 농구가 아직도 KBL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해는 6강에 그쳤지만 더 못할꺼라는 오리온을 꾸리는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포인트 가드 또한 선입견이 있었지만 적어도 KBL 레벨에서 탑 클래스에 들어가는 KTF 시절 신기성과 오리온 시절 이현민을 잘 활용하면서 빅 포워드 라인의 공격활로를 뚫은 전술과 전략을 잘 제시했다.

6.2. 단점

단점으로는 큰 그림 은 잘 그리는데, 세밀함이 떨어진다는 것. 즉, 전체적 게임 플랜은 잘 짜오는데 경기 중의 임기응변이 좋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코트 위에 해결사나 크랙이 없으면 팀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본인이 지향하는 농구 틀에 갇힌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부각되는 점이 조커와 가드 자원들을 쓰지 못한다는 점. 김강선과 같은 스윙맨 내지 수비 스페셜 리스트들의 기용 타이밍이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농구 칼럼니스트 손대범은 KBS '스포츠 대백과 운동화'에 출연해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평했다. 그리고 깨알같은 마르크스와의 합성 CG... 그리고 추일승 감독 본인도 자신의 선수 기용 스타일인 공산농구라는 별칭을 알고 있다(…). 사실 이 별칭이 틀린 건 아닌 게, 추일승 감독의 농구 모토는 1988 서울 올림픽 유고슬라비아와 소련팀.

추일승의 농구가 왜 공산농구인지를 알려주는 명짤.JPG

부임 초기에는 이런 선수 기용 성향이 리빌딩에는 주효하지만 대권을 노리는 성적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추무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KTF, 오리온에서 수년간의 시행착오와 경험치를 누적하여 선수들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게끔 공헌하여 부상자가 나오더라도 전체적인 팀전력의 약화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포인트 가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포인트 가드에게 많은 공격을 맡기는 편이 아니다. 가드 활용 능력에서 항상 지적을 받았다. 이 부분은 김진 감독과 서동철 감독과는 반대다. 두 감독들은 포인트 가드들에게 프리롤을 준다.

알고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이 보여주었던 농구를 공교롭게도 추일승이 한 단점의 사례 중 하나다.

KTF-오리온 재임 시절 특히 포인트 가드 활용문제로 인해 공산농구라는 비난을 당했다.

대신 열외는 KTF 시절은 신기성이었고 오리온 시절은 이현민이었다.

실제로 빅 포워드 스타일이지만 능력있는 포인트 가드가 없을 때 현주엽과 김동욱으로 좋은 경기를 했지만 이들에게 가드 모드를 하면서 변칙농구를 했으나 없을 때는 경기력이 더 꼬였다.

현주엽이 떠난 KTF는 신기성과 송영진 덕으로 버텼으나 양희승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평균은 커녕 하위권으로 몰락했다.

김동욱이 떠난 오리온 또한 포인트 가드 및 슈팅 가드 부재 속에 외국인과 장재석으로 겨우 버텼지만 몰락했다.

공교롭게도 KTF와 오리온에서 퇴임할 때 모두 최하위로 마무리했다.

KTF 시절 신기성과 오리온 시절 이현민을 제외하면 포인트 가드의 능력이 뛰어난 선수보다 보통치 선수를 더 중용하는 편이었다.

KTF 감독기간에는 정락영과 황진원이 있었지만 모두 트레이드를 했고 오히려 가드 라인 대신 현주엽의 올어라운드에만 의존했고 가드들은 쉽게 말하면 병풍신세가 되었다.

오리온스-오리온 감독기간 내내 포인트 가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태풍을 영입했지만, [24] 결과적으로 둘의 공존을 실패로 끝났고, 용병 선발에서 조 잭슨을 영입했지만 잘 맞지 않은지, 혹은 애런 헤인즈의 기량이 너무나 뛰어나서인지 조 잭슨을 많이 기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역시 포워드 수집가라서 그런지 김동욱에게 의지하는 면만 보였다. 하지만 초반 부진에도 불구 추일승은 조 잭슨을 바꾸지 않고 믿음을 주었고 결국 시즌이 거듭될수록 잭슨이 리그 적응을 하면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추일승 감독은 테크니션 포인트 가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즉, 홀로 볼을 오래끄는 볼호그 가드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반대로, 올어라운드 포워드였던 현주엽 김동욱에게는 볼을 오래 끌어도 찬스를 끝까지 보는 편이다. 이들은 외국인 포워드와 센터를 잘 활용했다.

무엇보다 15-16 시즌 전까지 아직 우승이 없었으나. 마침내 2015~2016 시즌 우승으로 드디어 꽃을 피웠다.

추가로 KBL 사상 첫 10연패의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렸던 18-19 시즌도 농구 팬들은 추일승 감독의 인내 속 리빌딩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포워드 출신이었는지 타임아웃을 부르는 타이밍과 맞춤형 전술과 전략에서는 빠른 농구와 대한 대비는 미흡한 아쉬움을 남겼다.

노력형 농구인이지만 상황대처는 아쉬울 따름.

7. 기타

성적이 안 좋아지면 자주 관련 발언에 시달린다. 이름이 "일승"이라 1승밖에 못 한다며... 근데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위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 한자 이름마저 秋壹勝이다.[25]

추승균과 달리 긍정적인 별명도 있는데, 바로 추젠틀. 오리온스 전자랜드와 더불어 심판콜 못 받기로 유명한 팀인데도 불구하고 격한 항의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붙은 별명이다. 그리고 추무능이란 별명은 15/16 시즌 감독이 된 누군가에게 물려줬다 카더라. 그래서 농구팬들 사이에서 "추젠틀이 화내면 정말 심각한 일인 거다." "추젠틀이 판정에 항의를 했다면 전창진은 쌍욕했을 판정이다." 라는 말들이 떠돈다.[26] 항의를 잘 안하는것도 있지만 신사적으로 팬들을 대하는 좋은 팬 서비스도 이 별명이 굳게 만들었다.

유재학 감독과는 선수 시절부터 절친으로 유명하다. 이는 기아자동차 실업팀이 파벌싸움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중앙대와 비중앙대 출신끼리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특히 추일승의 경우 비중앙대 출신에 늦게 농구도 시작했고, 엘리트 농구부 학교를 거친 게 아닌 고2 때 뒤늦게 농구를 시작한 홍익대 농구부 창단멤버 출신이라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여서 유독 텃세를 심하게 받았다. 이 때, 추일승을 도와줬던 사람이 바로 연세대 출신이었던 유재학, 정덕화 등이였다. 그 때 쌓은 친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4강 PO에서도 축하를 주고 받는 등 훈훈한 장면이 나왔다.

사실 이 비주류라는 꼬리표 때문에 농구계 사람들한테 주로 무시를 받기도 하는데, 일부 감독들한테는 악수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특히 KTF 시절부터 라이벌이나 다름이 없었던 전창진 감독과는 경기 후 악수를 대놓고 거부당하기도 했다.[27] 이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경기 끝날 때마다 악수를 청하는 모습도 추젠틀이라고 붙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군체육부대 입대 당시 해군기군단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왼쪽 이마에 흉터가 있는데, 대학생 때 담배 피는 고등학생을 훈계하려다가 싸움이 나서 난 흉터라고 한다.

KTF 감독 시절 외국 하부리그를 관전하던 중 데이브 예거(전 새크라멘토 킹스 감독)의 전술에 반해 그에게 스카우트 요청을 하였으나 예거 감독은 본인이 곧 NBA에 갈 것 같다고 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힘이 장사라고 밝혀졌다. 2005년 소속팀 애런 맥기와의 팔씨름 대결에서 이겼다고 한다.

특히 미디어데이에 출연할 때 다른 감독들에 비해 더 영리해 비유적 표현을 요긴히 잘 쓴다. 예를 들어 우리 팀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할 때 기도하세요 또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갈 두 팀을 알려주세요 할 때 한 팀은 알겠는데(지휘봉을 잡고 있는 오리온) 한 팀은 모르겠습니다. 한 팀은 이동거리가 가까운 전자랜드였으면 좋겠습니다.[28] 반면 나이가 같은 유재학 감독에게는 솔직히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 현대모비스입니다."라고 정확히 밝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2019-2020 시즌 미디어데이 때 유재학 감독은 1963년 동갑내기 추일승 감독에게 "늙기전에 우승해야지?"라는 격려스러운 디스를 받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승을 못한 채 시즌 중 사퇴해버리고 말았다.

KBL 출범 후 300승을 돌파한 감독은 추감독을 포함해 유재학, 전창진, 신선우, 김진, 유도훈 6명에 불과한데, 그 중 추일승 감독이 가장 승률이 낮은 감독이다. 부산 KTF 시절 포함 379승 418패로 0.475의 승률이었고 오리온 시절에는 231승 242패로 KBL 역대 통산으로 보면 승보다 패가 39개 더 많다.

사실 더 놀라운 건 오리온 감독 재임 중에 오리온 그룹 블로그에 그 명언을 포함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부탁하며 오리온 사원들에게 강의를 진행했다는 거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이 말하는 열정, 도전, 승리의 정신

오리온 감독 재임 중 농구로 심장을 뛰게하라라는 저서를 본인이 직접 KBL 감독 재임기간중에 저서를 했고 출간시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하는거 오리온 오리온스의 우승이후 했으면 하는 생각에 15-16 시즌 KBL 플레이오프 우승 이후 16-17 시즌 개막을 앞두고 완료가 되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추천을 한다. 그 저서를 보면 동료들과의 팀워크를 맞추는 방법과 농구인들에게 요구되는 코치 그리고 농구에 대한 동기부여가 숨어있다. 한국농구판 필 잭슨의 일레븐윙즈를 읽은 농구팬이라면 이해하기 쉽다.

자신과 아무 인연이 없는 성리학자 강을준 감독이 9년만에 KBL 감독으로 복귀하며 오리온 오리온스의 후임 사령탑이 된 이후 과거 공산농구를 비꼬는 추일성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지만 이상하게도 강을준의 성리학이 유튜브를 포함해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추일 성리학이라는 이상한 어록이 뜨기도 했다. 결국, 농구는 팀 스포츠인데 이건 강을준과 같았다. 다만, 추일승은 조직주의자가 완벽하지만 강을준은 자유 속 조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8. 관련 문서


[1] 상업교육학 전공 [2]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官僚化程度와 成就動機가 組織構成員의 疎外에 미치는 影響에 관한 硏究 : K社 事例를 中心으로(관료화정도와 성취동기가 조직구성원의 소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K사 사례를 중심으로, 1992). [3] 생활체육학 석사 학위 논문: 한국프로농구 선수와 지도자들의 경기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연구(1999. 7). [4] 박사 학위 논문 : 프로농구팬의 소비특성에 따른 이동통신사의 만족도, 신뢰도, 충성도와 전환혜택, 전환의도에 관한 연구(2009). [5] 특히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때마다 찰진 입담을 과시하는데, 대표적으로 14-15 시즌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의 코트의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진 감독 안색 발언이나 15-16 시즌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의 답변들을 보면 다른 감독들에 비해 훨씬 인터뷰 스킬이 능수능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1996년 해체. [7]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울산으로 떠난 이후 6년 만에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 다시 프로농구 팀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8] 대표적으로 조성민, 김도수 등이 있다. [9] 또 그 이유가 알 수 없는 선수기용인데 한창 흐름을 타는 선수를 교체해서 흐름을 스스로 끊어 버려서 역전패당한 경기가 상당히 많다. 즉 스스로 자신의 선수들을 억제하는 셈인데, 그 이유가 추일승 감독의 특성상 다 같이 하는 농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상과 현실을 잘 구별을 못하는 타입. [10] 하지만 2015-16시즌 오리온이 우승하고 그 다음 시즌에 추승균이 감독으로 있던 KCC가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2016년 이후로 이 별명은 추승균에게로 사실상 넘어갔다. [11] 물론 성적이 멤버에 비해 안 좋은 게 대표적인 이유이다. 포워드 농구든 뭐든 성적이 좋으면 그만이지만 이 고집으로 인해 성적이 떨어지니 팬들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12] 1년뒤 김진 감독이 이끄는 창원 LG 세이커스가 결승에서 상무를 만나면서 아쉬움을 드러낸 걸 보면 의미있는 우승이다. [13]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영입하였는데, 대가는 1라운드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이었다. 그런데 이 지명권에서 오리온이 6순위가 나오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의 승자는 오리온이 되고, 그 결과 농갤에서는 거상 추일승이라 부르면서 추 감독을 찬양하고 있다. 다만 LG 역시 6순위인 정성우가 이 해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결과는 윈-윈 트레이드로 끝났다. [14] 13년 만에 KBL 파이널에 다시 진출한 팀은 공교롭게도 김진 감독이 이끌었던 2013-2014 시즌 창단 17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한 창원 LG 세이커스였다. 그것도 오리온스의 역사를 함께했던 감독이라는 평행이론이 있다. 동양-오리온의 13년만의 결승 진출 이전에는 2000-2001 LG 세이커스의 첫 KBL 파이널이었다. 이후 동양은 2001-2002 시즌 창단 첫 KBL 파이널에 진출했고 2002-2003 시즌에도 정규리그 2년 연속 우승과 함께 2년 연속 KBL 파이널에 진출했다. [15] 이 지역방어 전술은 3년뒤 KCC의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이 잠실학생체육관에서 SK에게 당한 지긋지긋한 13연패(…)를 끊기 위해 다시 내세우게 된다. 당시 애런 헤인즈를 막기 위해 이 전술을 썼고 초반에는 아무래도 KBL에서는 낮선 지역방어에 SK 선수들이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박스 앤 원을 뛰어넘는 애런 GO에 밀리면서(…) 아쉽게 패배. [16] 물론 2015-2016 프로 아마 최강전에서도 우승을 했지만 진정한 프로의 우승이자 이제는 추억의 우승으로 남게 된 2015-2016 KBL 플레이오프 우승이었다. [17] KBL 통산 300승 감독은 유재학, 전창진, 신선우, 김진이 대표다. [18] 원주 동부 프로미의 새 이름인 원주 DB 프로미 또한 전력약화로 인해 최약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있었지만 중위권이라는 평도 있었다. [19] 중도사퇴 [20] 오리온 구단은 아직 시간이 필요함을 보도하며 강을준을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추일승 감독의 꿈을 아쉽게 포기했다. 당초 오리온 구단은 내부승진을 원했지만 오리온 그룹 최고위층은 반대를 했다. 이 과정에서 강을준 신임 감독의 고등학력을 보는 등 과감하지 못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추일승 감독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슬픔과 함께 안타까워했다. 김병철 수석코치를 성적부진으로 잃을지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 같다. 오리온의 전신인 동양의 명장이자 LG의 명장이었던 김진 감독의 고양 시절 이후 복귀도 아직은 아니었다. [21] 조상현 감독은 2022년 농구대표팀 감독 사퇴 이후 조성원 후임으로 LG 감독이 되었고 8년간 암흑기였던 팀을 180도 탈바꿈했다. 이후 자신은 조상현의 후임으로 농구대표팀 감독이 되었으나 성적부진으로 빛이 바랬다. 자세한 건 추일승호 참고. [22] 타 팀 감독들과도 관계가 좋아 보인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가 끝나면 바로 악수하는 등. [23] 팀 야투성공률 70%를 기록하면서 120점을 득점하여 15-16 시즌 정규리그 1위 KCC를 영혼까지 털어버렸다. 그나마 120점에 그치고 야투성공률이 70%인 것은 4쿼터 막판에 2진급까지 고루 기용했기 때문이다. 풀스쿼드로 제대로 돌렸으면 120점이 아니라 130점, 그 이상도 가능할 기세였다. 3쿼터까지 냈던 점수가 무려 98점. [24] 추일승 감독은 전태풍을 KBL에 드래프트되기 훨씬 이전부터 주목했고 그의 기량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던 경험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추일승 감독의 용병 분석은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다. [25] (한 일)의 갖은자이다. 갖은자란, 의 액수 등을 기록할 때 함부로 고치지 못하도록 획이 더 많고 구성을 달리 한 한자를 말한다. [26] 17-18시즌 11월 11일 전자랜드전에서 4쿼터 추격하는 상황에서 턴오버를 연발하는 김진유에게 식빵굽기(…)를 시전했다. [27] 다만, 전창진과 추일승은 서로가 동부 KTF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악연이 있었다. [28] 이는 전자랜드의 홈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이 오리온의 홈 고양체육관과 25km가량으로 서울 연고 2팀을 빼고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