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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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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웹소설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고려

2.1. 상산 임씨 일가

2.1.1. 임연우(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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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의 주인공.

2.1.2. 임희

호족 상산( 충청북도 진천군) 임씨의 장이자 상산백으로 불리며, 고려의 초대 병부령. 임연우의 친정아버지이자 군부의 수장. 왕건의 친구이자 역성혁명에 같이 동참한 개국 3등공신.

921년경에 있었던 왕무와 임연우의 정혼 당시에는 왕건의 부인이 적어서 혼사를 받아들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왕건이 정략결혼을 통해 부인이 많이 늘어나자 후계자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고, 왕무의 기반이 약한 것을 보고 결혼하게 되면 이후 화를 입을 거라는 판단[1]을 딸하고 같이 하고 파혼을 하려 하고 공모한다.

딸이 2년 전에 구덩이에 빠져 부상을 입고 난 이후부터 학문이 늘고 식견이 좋아진 것을 보고 처음에는 딸이 하는 말을 흘려듣다 이후 그 말들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집안에 일이 있으면 딸에게 의견을 구하게 된다. 40화에서 왕건의 명으로 서경에 파견되어 임무를 완수하고 온 딸에게 딸이 없는 동안에 왕건이 딸이 구상해놓은 김순식과 정윤을 엮은 파혼 계획을 분쇄했다고 알리고, 왕건의 명을 받아 상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한다. 연우와 연객이 유금필의 휘하에서 종군문관으로 배속되면서 왕건의 명으로 유금필의 휘하로 배속되어 가병들과 함께 탕정군으로 가서 연우를 다시 만나고, 삼년산성에서 왕건이 패배할거를 예측한 유금필이 후속대책을 위해 청주에 가까이 주둔지를 옮기려는거를 딸이 주는 암시만 믿고 가장 먼저 찬성한다.

이후 왕건이 삼년산성 공략에 실패하고 철수할 때, 견훤이 청주에 매복시켜둔 병력들에 의해 왕건이 위기에 처할때 유금필이 이끄는 기병으로 이루어진 선발대에 이어 뒤따라 오는 본대를 지휘하여 왕건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충주에 와서 부석사에 가려는 명을 거부하려는 딸을 소매를 잡는식으로 제지한다. 개경으로 돌아오고 나서 딸의 "저를 앞으로 전장에 보내지 말아주세요"라는 부탁에 "이미 나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다"는 답을 하며,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하면 데려가겠다"는 말을 해서 연우를 좌절시킨다. 연달은 패전으로 분위기가 안좋은 조정의 상황을 말하면서 자식들에게 "행동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윤신달의 초청을 거절하려는 딸에게 "인맥을 만들기 위해 응하라"고 암시를 준다.

딸이 표천현에서 은광을 발견하고, 연은분리법을 이용해서 추가로 추출되는 은에 대한 소유권을 받아내자, 가문의 재산을 털어서 개경에 은제련소를 건설한다. 직후 사이가 매우 안좋은 친척인 임명필[2]의 초대를 받아 임명필의 딸인 진주원부인이 기거하는 진주원으로 가게 되어 거기서 유긍달,황보제공과 만나게 되어 왕무와의 파혼에 대해 이해관계가 맞아 합의를 한다.

그러나 왕건의 사기쇼에 파혼은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왕무를 사위로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딸이 왕무와 결혼해 정윤비가 된 후에는 연우를 묵묵히 도와주는 중이다.

2.1.3. 임연객

임희의 아들이자 연우의 오빠로서 가문의 후계자개그 캐릭터다. 기인 제도로 인해 개경에 있는 상산저에서 살고 있으며 병부낭중으로 재직중이다.

왕건의 명으로 학관에 입학하는 여동생을 위해 자기가 학관에서 쓰던 책과 기타 물건들을 물려준다.[3] 그 책 중에 현대에는 전해지지 않는 책들이 있어서, 연우가 "현대로 가져갈 수 있으면 가치를 헤아리기 힘든 유물이 될 텐데"라고 아쉬워한다.

김선우가 임연우가 된 이후로는 오빠를 처음 만나니 남매간에 거리감이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남매(...) 같은 사이가 되어간다. 자기도 모르게 왕건에게 부려먹히는 동생과 달리, 출세를 바라면서도 꿀을 빨고 싶어하는 뺀질이다. 하지만 연우가 활약을 할 때마다 같이 다니는 신세가 되어 약방의 감초처럼 구르는 신세다.

연우가 파혼에 대한 계획을 아버지인 임희하고만 공유해서 오빠인 본인은 아버지와 여동생이 정윤하고의 혼사를 꺼린다는 사실을 몰라서 여동생이 정윤을 철저히 선을 긋고 대하는거를 안타까워 하며 "너랑 결혼하는 정윤이 불쌍하다"고 투덜댄다. 결혼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테고, 그 연기를 아버지와 여동생이 간청했다면 눈치가 있다면 아버지가 혼사를 꺼린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리가 없을텐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거 같다.

이후로도 연우가 왕건의 명을 받아 외부로 출장을 가는 일이 생기게 되면 보호를 위해 동행을 한다. 그리고 여동생이 시집을 가서 정윤비가 되었음에도 주변에 타인이 없으면 말을 놓는다.[4][5]

102화에서 가문에서 격구단을 운영하기 위해 경제권을 가진 여동생을 찾아와서 격구단을 만들자[6]하면서 여동생한테 배운 그래프를 운용한 소책자를 가져와 매부인 왕무를 비롯한 사돈 식구들을 전부 부추긴다. 그 와중에서 저번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다고는 했으나, 비슷한 이유로 승진한 사람들이 많아서 하는 일이 바뀌지 않았다고 투덜댄다.

107화에서 영지인 상산의 근방인 천안의 군소호족인 노씨의 딸하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연우에게 말한다.[7] 931년 1월인 109화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으나 이전에 언급되었던 승진은 말이 나온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하지 못한거 같다.

그 후에도 격구에 대한 애정은 한결같아서 인색한 연우에게서 돈을 더 타내려고 아쉬운 소리를 하고다닌다. 이렇게 그가 키운 격구단 선수가 북벌할 때 큰 활약을 하게 되었으니 그의 노력이 마냥 여흥은 아닌 셈이 되었다.

선동에 재능이 있다.임벨스 연우가 미래인의 지식으로 과학적으로 해결을 보고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설명하려 들때마다 연객이 끼어들어 비과학적인 상서로운 징조라고 설파한다. 이 시대에는 이런 게 더 먹힌다는 걸 알고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지만, 연우 입장에선 과학적 사고를 심어주려 할 때마다 방해하니 거슬려 한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등장인물이다.

2.1.4. 상산부인

임희의 부인이자 남매의 어머니로서 상산 임씨 본가에서 안주인 일을 하고 있으며, 딸과 정윤의 혼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혼사가 위험하다는 남편의 만류를 "어명을 어길 셈이냐"고 막으며, "딸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정윤비로서 존대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고, 이후 수년간 모아온 혼수를 딸과 남편에게 주어 개경으로 보낸다. 이후 1화에서 4개월이 지난 39화에서 개경으로 상경한다. 45화에서 나주원 방문을 자주 하겠다는 딸에게 "생각 잘했다"며, 아예 눌러앉기를 권한다.

그러나 나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는 결혼 반대로 돌아서나, 정윤의 체면을 생각해야 하는 임희가 "연우가 파혼되고 나서 새로운 혼처를 구하는데 4~5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하자, 연우가 20살도 넘어서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경악한다.

왕건의 계략으로 인해 둘이 결혼을 할수밖에 없게 되자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거에 걱정을 하며 남편과 같이 결혼식에 참석한다.

자신을 제외한 식구들이 고창에 출진했다 개경으로 귀환하자 딸을 불러서 결혼한지 일년이 다 되가는데 외손주 소식은 없냐고 딸에게 물어본다.

99화에서 연우가 자신에게 불리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치원의 은거를 깨게 만들어서 상산저에 초대하자 놀라면서 미리 얘기좀 해둬야 하는거 아니냐 질책한다.

2.2. 왕실

2.2.1. 왕건

고려 태조 최수종[8] 궁예의 폭정에 들고 일어나 역성혁명을 하며 10년 전에 고려를 건국한 왕이며, 1화 기준에서 6년 전인 921년에 큰아들인 왕무를 정윤으로 임명할 때 연우와 왕무를 약혼시켰다. 본작의 씬스틸러로 매우 가볍고 친근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공에게 무거운 과업을 턱턱 던져주며, 독자들에게는 시어머니 29명이 문제가 아니라 시아버지가 왕건인 게 문제라는 평을 듣는다.[9][10]

1화에서 신라를 구하러 출정하면서 임희에게 명을 내려 "둘을 결혼시키기 위해 연우를 데리고 개경으로 오라"고 한다. 그러나 신라를 구원하러 간 전투에서 대패를 하여 실종되었다가, 6화에서 연우의 트릭을 이용한 선필의 연락으로 50여명의 군졸들과 같이 재암성으로 온다. 6년만에 대면한 연우를 앞에 두고서 "어? 어렸을 땐 예뻤는데?"라고 중얼대며 연우를 열받게 한다.[11] 직후 연우의 결혼 연기 요청에 개경으로 올라와서 학관에 입학하고, 적응을 위해 나주 왕후의 처소에 1달에 1주일씩 머무는 조건부로 승낙한다.

이후에 연우가 개경에서 벌이는 활약을 보고 점점 며느리로 삼으려 하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26화에서 최승우를 이긴 연우에게 관직을 내린다. 32화에서는 서경에서 올라온 상소를 보고, 연우에게 "3개월 동안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한 재주로 가서 해결하라"고 보내놓고[12], 그 사이에 연우가 파혼을 위해 김장명을 끌어들인 것을 수습한다.[13]

40화에서 일을 해결하고 보고하러 온 연우가 오빠에게 공을 돌린 것을 행적만으로 알아맞췄으나, 연우가 주목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을 알아서인지 모른척 넘어가준다. 42화에서 학사들에게 삼년산성에 대한 과거 자료를 구해올 것을 명하고, 45화에서 유금필의 간청을 받아들여 연우에게 유금필을 따라 탕정군[14]으로 같이 가서 조언을 해주라고 명을 내린다. 47화에서 삼년산성 공략에 실패하여 철군하나, 철군 도중 청주에서 견훤이 미리 보내놓은 후백제군에 의해 포위를 당해 위기에 처하게 되나, 이를 예측한 유금필의 도움으로 물리친다.

전투 이후에 유긍달이 자신의 본거지인 충주로 가서 재정비를 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충주로 가서 충주에서 장군들과 주요 호족들을 모아 후속대책을 논하던 중에, 자신을 지지하는 화엄종 북악파의 수장인 희랑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가져온 희랑의 제자인 지명의 말을 듣고, 안될 줄 알면서도 희랑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 화엄종을 장악하려는 견훤에 맞서 아들인 왕무가 자신이 가겠다 자원하자, 부석사로 보내면서 연우도 물귀신같이 같이 가라 명한다.[15]

연우가 부석사에서 무차대회를 파토낸 직후에 분노한 견훤이 보내는 공세를 청주에서 막아내며, 정윤 일행이 후백제군의 집요한 추적을 뿌리치고 무사히 귀환하자 환영하며 성과를 보고받고 기뻐하며 "상을 주겠다"면서 연우에게 뼈가 있는 말을 남긴다. 직후 개경으로 철군명령을 내려 개경으로 돌아가서 연우를 다시 불러 연우의 명의로 김장명에게 "'왜 김순식이 약조한 물건이 안 오냐고 물어보라'는 편지를 쓰라"고 시킨다. 연우가 학관에서 한 발언을 최언위를 통해 듣게 되고 "그리 되면 좋겠다"고 하면서 원정에서 연패를 하여 안좋아진 고려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을 한다.

다음날 윤신달이 올리는 보고를 받아보고 왔다고 연우에게 말하면서, 사이비종교의 탄압을 진언하는 최언위에게 "저들이 사고를 안치는데 괜히 건드렸다 뒷수습이 힘들거라 안 된다"고 말하고, 재정을 확충하여 연달은 "패전으로 손실된 병력을 복구하기를 원한다"는 뉘앙스를 모두에게 말한다.[16] 이후 윤신달에게 표천현에 은광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2천 병력을 이끌고 직접 와서 채굴 계획과 운송 방식에 대해서 자리에 있는 사람들하고 논의한다. 그 와중에 어릴때 아버지가 혼내더라도 표천현에 와봤어야 했다고 말을 해서 김악을 기겁하게 만든다.

이후 국선선발전에 출전하는 연우가 선발전을 준비하기 위해 휴가를 신청하자 승인해주고, 김악이 팔관회에 대해 안좋게 말하자, 자신이 어릴 적에 있었던 경험담을 말하면서 김악의 실언을 유도하여 감봉을 하려 유도한다. 팔관회 도중에 공산에서 전사한 장수 8명의 이야기가 나오자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팔관회가 끝나고 연우가 국선이 되어 극성 팬들에게 시달린 이야기를 듣고 그 광기라면 전쟁에서 통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데, 직후 오어곡성의 장수 6명이 싸우지도 않고 견훤에게 투항했다는 보고와 정윤의 외가인 나주가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연달아 받고 충격을 받아 주저앉는다. 결단을 내려 항복한 장수들의 가족들을 전원 처형하고, 이후 시간이 흘러 유긍달이 주도하는 소문이 퍼져 왕무와 연우가 파혼을 하게 되는쪽으로 여론이 몰리자 연우에게 절세미남인 왕무하고 결혼을 못하게 되어 너한테 큰 손해가 아니냐며 남자의 정체성이 남아있는 연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리고 혼인 연기때 걸었던 조건인 나주원에 한달에 일주일간 머무르라고 했던 명령을 철회한다. 직후 김악이 지금 나라 사정이 안좋아서 1월 15일에 열리는 연등회를 취소해야 한다 진언하나 축소로 절충한다. 그리고 백제와의 전쟁 향후 방침과 군사 배치에 대해 고심하면서 수세에 몰리면서부터 말했던 견훤이 급사라도 해줬음 좋겠다고 한다. 해가 지나 남아있는 사벌주의 고려 영토의 수비를 강화하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리겠다 다짐하고 연등회날 숙부가 건립한 구산사에서 연등회 의식을 하겠다 한다.

그러나 여태까지 연우 앞에서 보였던 행보는 결혼을 꺼리는 연우와 파혼을 추진하려는 호족들을 방심시키려는 행동들이었고, 실은 연우를 큰며느리로 어떤 수를 써서든 들이기 위해 연우와 친하게 지내는 동양원부인에게 지시를 내려 연등회 전날 연우를 구산사에 유인하여 함정에 빠트려 왕무와 같이 빠져나오도록 유도를 한다. 연우가 왕무를 데리고 빠져나오자 우연히 발견했다는 듯 갑자기 큰아들과 연우가 같이 우물 속에서 나왔다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여론몰이를 한다. 그리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둘의 혼사를 결론 내겠다고 선언하면서 할아버지가 남긴 책에 쓰였던 방법을 이용해 둘의 결혼을 확정짓는다. 행사가 끝난 직후 임희와 연우를 남겨 따로 면담을 진행하는데, 임희와는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임희는 어쩔수 없다는 식으로 납득했고, 연우와 면담을 하게 되었을때 향을 피워 향이 다 탈때까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부처님 앞에서 하면서 연우에게 질문을 해보라 한다.

연우가 자신이 파혼을 위해 노력했던거를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는 자신을 도와주고 왕가와의 거래를 독점하는 왕창근이 연우가 립밤 제조를 오지수에게 넘기려 했다는 보고하는거를 받았고, 자신의 본거지인 개경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자신의 눈을 피할수 없다 했다 연우가 이어 자신같은 애매한 집안에서 큰며느리를 들이지 말고 대호족 집안에서 들여야 하는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연우의 조건이 자신이 생각하는거에 딱 맞고, 후계를 조기에 굳혀서 유긍달 황보제공같은 대호족들의 협조를 받기 어렵게 되는거를 원하지 않는다는식으로 대답했고 자신이 시험하는거에 연우가 통과를 했으니 둘은 행복하게 살수 있을거라 했다.[17] 그리고 삼한을 통일하게 된다면 왕무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했다.

3일 후 나주원에서 열린 결혼식에 자신과 정략결혼을 한 17명의 부인들과 같이 결혼식을 진행하며, 임희에게 결혼식이 끝나면 한잔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연우에게 일주일간의 휴가를 준다.

연우가 일주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한림원에 가자, 견훤이 거란에 사신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개하며, 발해에서 넘어오는 유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연우한테 은을 빌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면서 그러면 자신의 체면이 살지 않는다면서, 연우가 자원해서 유민들을 받아들이겠다 하자 반색한다. 직후 최선필이 보낸 손긍훈의 망명신청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서 손긍훈의 영지가 견훤의 영역에 있어 데려오기 난감하다 하나, 최언위가 손긍훈이 흥덕왕 시절 효자로 명성높았던 손순의 후손이라는 말을 하자 반드시 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패하더라도 구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말하면서 이것마저도 떠넘길수 없다고 한림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날까지 방도를 구해오라 명한다. 다음날 연우의 제안을 받아들인 왕무가 대전에서 손긍훈을 구하러 가겠다 자원하자 연우가 작전에 필요한 물자와 인원을 바로 지원해주며, 배웅나와서 서두르라고 말하고 연우가 손긍훈에게 견훤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 시간을 끌라는 명령을 내려달라는 청을 들어준다.

이후 큰아들 부부가 손긍훈을 구해오자 개경에서 손긍훈과 그 일족들을 환영하며 연회를 베풀고 사재를 털어 저택과 식량을 하사한다. 그리고 연우가 적은 보고서를 읽고 너무 사실대로 썻다고 지적한다. 이후 천축에서 중국을 거쳐 고려로 오는 삼장법사로 불리는 마후라 대사가 입국을 신청하자 받아들이며 공주들에게 환영행사때 대접할 음식을 만들라 지시를 내리며 자신은 며느리이기 때문에 빠져나가려는 연우에게도 같이 만들라 한다.

연우가 마후라 대사의 고향 음식인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오자 외형만 보고는 이걸 자신이 먹으면 구천이 되는거냐며 돌려서 까며, 연우가 출처를 말하자 나는 듣지 못했다 하면서 연우의 체면을 봐서라도 안보이는 위치에 음식을 놓게 지시를 내린다. 이후 마후라 대사가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고 예전에 천축 사람이 온 적 있냐고 물어보자 없다고 하면서 책에서 천축국의 풍속에 대해 읽어서 준비해왔다고 둘러대면서 겉으로는 자상한 시아버지의 이미지로 연우를 불러 자기가 가장 아끼는 큰며느리라며 내가 상에 올리자고 했다고 뻔뻔(...)하게 나온다. 이후 마후라 대사가 연우를 '소년'이라 지칭하자 외국인이 발음을 잘못한 거 아니냐 말하면서 넘기고, 마후라가 연우에게 글을 써서 선물로 남기자 부럽다 한다. 그리고 연우가 마후라에게 한접시 더 드시라고 하면서 뒤끝으로 왕건 자신도 같이 먹는게 어떻냐 묻는 말에 명망 높은 고승마저도 좋은 음식이라고 드시라 권하고, 난감한 상황에 처하자 자신이 먼저 한숟갈 먹고 나서 신하들을 불러서 한숟가락씩 먹이는 졸렬한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연우에게 마후라 대사가 준 글을 자신만 읽어보면 어떻냐 하면서 받아내서 읽어보고는 마후라 대사가 도선 대사같은 승려가 아니었다고 실망한다.[18] 7월이 되고, 견훤의 공세에 진보성이 함락되고 홍술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으며, 연이어 들어온 순주성 함락에 대한 보고에 순주성을 책임진 원봉의 좌천을 명한다.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는 연우가 태연하자 이런 상황에서도 똑같아며 놀라며, 이후 견훤의 의심을 받고 있는 최선필이 탈출을 하겠다 하자 임희를 보내 마중을 나가라 명한다. 그리고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동원 가능한 전군을 모아 출진을 하겠다고 명하면서 연우에게도 너의 지략이 필요할 일이 있을테니 같이 가자고 한다.

추수가 끝나고 병력이 전부 모이자 1차적으로 충주에서 집결하자 하고는 수뇌부들과 배를 타고 충주로 내려가며 충주에서 마중 나온 최선필에게 2년만에 만나고 과거에 했던 대우가 립서비스가 아니라는거를 증명하듯이 상보라 부르면서 자신때문에 근거지를 잃게 되어서 마음이 무겁다 하면서 최정혜에게 청혼을 한다. 직후 최선필이 바치는 지도들을 받아서 같이 있는 호족들과 장군들에게 오늘 안에 대오를 정비하라 하고는 내일 사벌주로 들어가겠다 명한다. 이후 사벌주에서 몇달간 백제군과 대치를 하면서 틈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고창의 삼태사가 견훤의 요구를 거절하고 맞서 싸우겠다 하면서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받게 되어 서신의 내용을 회의장에서 공개하면서 이 셋을 무조건 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방안을 논의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후 호족들과 장군들의 의견을 모아온 대표로 홍유와 강공훤이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소수의 군사를 남겨두고 가자는 의견을 내미는거를 유금필이 반박하는 가운데,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유금필에게 분개한 호족들이 말을 놓자, 예를 지키라고 고함을 지른다. 직후 문관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자 하고, 호족들과 왕건의 눈치를 봐야 하는 문관들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답을 하는 와중에 연우가 유금필보다 더 강경하게 결전을 주장하자 잘 들었다고 하면서 2년간 견훤에게 연전연패하면서 큰 고통을 겪었고, 자신을 위해 죽어간 이들과 근거지를 버리고 도망간 이들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하면서 견훤과 결전을 하기 위해 모든 군사를 투입하겠다는 명령을 내리면서 연우가 자원한대로 고창성에 가라고 명령을 한다. 이 와중에 왕무가 부인을 사지에 보내는거를 지켜보지 못하겠다고 자신이 대신 가겠다는거를 막으며 바로 출전을 위해 준비하라 명령을 내린다.

이후 견훤과의 결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전장을 정리하고 나서 고창성으로 입성하고, 승리에 큰 도움을 준 삼태사에게 큰 상을 내리는거와 함께, 고창을 안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홍술의 근거지인 진보성에 의성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사방에서 복속을 청하는 호족들의 사신을 일일이 대접해주면서 살이 찐다(...) 그러나 경순왕만 끝내 사신을 보내지 않자 짜증을 내며, 이 와중에 역적인 견훤이 세운 왕이니 바꿔야 한다는 황보제공의 주장을 지나치다고 막고, 개경에 있는 최언위를 불러 국서를 작성케 하여 서라벌로 사신을 보내라는 요구를 하게 한다.[19]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자 국서를 받은 뒤에 연회를 열게 하나, 자신은 금방 요 몇달간 과식을 너무 해서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연회에서 빠지고 뒤로는 신라 사신[20]이 연회장에서 외교결례를 저지른거를 보고 받고는 끝까지 참아넘긴 사람[21]들을 연회가 끝나고 불러들여 신라 진골들은 원래 그런 족속들이라 하면서 자신은 신라를 직접적인 협박 없이 스스로 항복하게 만들고 싶다 말하면서 그에 대한 공작을 명령한다. 직후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물러가자, 안돌아가고 남아있는 연우와 왕무에게 뭔 일이냐고 물어보고, 연우가 폐하의 선대와 신라 조정간의 은원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는 어찌 할 거냐는 질문에 이 건을 물고 늘어지면 통일을 못한다고 하면서 왕무에게도 나중에 왕이 되면 언급하지 말라 지시한다.

그리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중에 대목군을 거치면서 천안으로 개칭하고 황보제공을 천안도독으로 삼아 후백제와의 결전을 위한 전진기지의 건설을 명한다. 그 와중에 유긍달이 그간 나라 사정이 급박하여 노약자들까지 부역에 부득이하게 동원했는데, 이제 대승을 거두어 나라 사정이 나아졌으니 노약자들은 부역을 면제시켜줘야 한다 주장하는거를 받아들이며 개경에서 이를 연계한 연우의 퇴직을 자신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네가 알아서 해결해보라 하면서 연우에게 해결을 떠넘긴다. 그래서 연우가 최치원이라는 대어를 낚아오자 최치원을 출사시키려고 치근덕대었지만 결국에는 실패한다. 그리고는 호족들을 회유해 백제 대호족 공직이 귀순해 크게 기뻐한다.

백제가 바닷길로 개경을 공격할 것이라는 유금필과 연우의 상소를 무시하고 있다가 된통 당하고 연우가 수군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걸 허용하고 만다. 절치부심하다가 백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견훤이 귀순해오자 견훤을 내세워 백제멸망전에 돌입,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 일리천에서 대승을 거둬 삼한통일을 완수한다.

그리고는 북벌을 위해 진나라의 석경당과 협력하려 하지만 거절당해 실의에 빠져 건강이 점점 악화된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왕무의 대에라도 북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던 중 연우에게서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말을 듣고 며느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전국구 사기를 친다. 그러다가 북벌을 계속하라는 등 유언을 남기고[22] 죽은 척했다가 마지막 기력으로 일어나 장난치고는 세상을 떠난다.

2.2.2. 왕무

고려의 왕위계승자 정윤으로, 미래의 혜종이자 임연우의 남편(75화부터). 연우의 첫 인상은 질투조차 못 할 시대를 잘못 타고난 미소년, 힘이 매우 세다. 항상 왕도를 추구하며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정말 다정한 고려스윗남.

연우와는 약혼식 이후에 6~7년만에 왕실의 비밀통로에서 만나게 되며, 이후에 왕건의 명을 받아 나주원에 1달에 1주일씩 머물게 되어 찾아온 연우하고 나주원에서 정식으로 인사한다. 그리고 서경까지 같이 다니면서 왕무의 처지를 지켜본 연우는 왕무한테 미안하지만 자신과 가문이라도 살기 위해 파혼을 더더욱 굳게 결심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연우를 '그대'라고 칭하다 결혼 이후에는 '국선'이라 칭하고, 연우가 왕무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사지인 고창성으로 들어가겠다고 자원한 직후에 처음으로 직접 연우의 이름을 부른다.[23]

삼년산성 전투에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며, 충주에서 견훤이 후백제 왕자를 보내려는 것에 맞서 격을 맞추기 위해 자신을 부석사에 보내려 고민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스스로 가겠다 자원하며, 이걸 보는 연우는 머리를 짚는다. 그리고 부석사로 향하면서 "대책은 있냐"고 물어보는 연우에게 "고려를 지지하는 희랑을 정윤으로서 외면할수 없다는 책임감만으로 무작정 부석사에 간다"는 답을 해서 연우가 마음속으로 뒷목을 잡게 만든다. 연우는 이렇게 올곧기만 한 왕무를 보고 혼사를 파토내고 더 나아가 정윤파에서 가문을 이탈시킬 생각이 더 굳어지게 된다.

관흔을 견제하기 위해 왕건이 불러들인 왕충을 기다리면서 무차대회가 열릴때 까지 희랑을 구하기 위해 같이 동행한 이들하고 같이 작전을 짜며, 부석사에 도착해서는 희랑을 만나고, 신라 왕의 초상화에 궁예[24]가 새겨놓은 흔적을 보며 고려가 연패를 하여 부석사까지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간거를 안타까워한다. 이후 연우가 주도하는 사기극에서 희랑이 기적을 발휘하도록 보이게 하는 연출로 이야기가 진행되자 왕건에게 고해 희랑을 왕사로 삼겠다 말하는 역할을 맡으며, 무차대회가 파토난 이후 희랑이 경위를 물어보려 하는 와중에 분노한 백제인들을 피해 일행과 함께 도망치면서 나중에 개경에서 가르침을 듣겠다는 식으로 자리를 뜨고, 도주중에 체력이 다해 기절한 연우를 구한다. 이후 연우와 같이 말을 타면서 백제군의 추격에서 도망을 가며, 견훤의 분노로 인한 백제군의 집요한 추적을 뿌리쳐가면서[25] 충주에 있는 왕건의 본대로 귀환하여 왕건에게 치하를 받고, 같이 개경으로 돌아간다.

비밀통로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연우에게 반해있던 걸로 보인다. 같이 출장 다니면서 썸을 탔고 결혼 후에는 연우가 관계를 무서워하자 참고 기다려준다. 문제는 연우가 여우짓을 하면서 여지를 주는데 정작 동침은 거부한다는 것.[26]하지만 6년을 기다린 끝에 연우가 마음의 문을 열자 곧바로 3일내리 같이 침대에서 뒹군다. 몇달동안 뜨거운 밤을 보내다가 연우를 임신시키고는 득남했다.

드디어 왕건 사후에 왕으로 즉위했다! 국정과제로 북벌을 설정해 군량을 모으고 백두산 폭발에 대비하는 등 거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백두산이 폭발하자 염상, 견권으로 하여금 1만 병력으로 강동을 점령하게 하고 다음해 봄 기병 5만 + 보병 1만의 총합 6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도를 따라 북벌에 나섰다. 두만강을 건넌 후 대광현으로 하여금 중경현덕부와 동경 용원부를 해방하게 하고 동모산에서 1만 병력을 이끌고 온 정안국주 열만화, 3천 기병을 모은 대광현과 합류한 뒤 발해의 수도 상경 용천부로 입성했다. 그러나 상경에 주둔하던 병사들을 포함하여 발해령 각지에 있던 거란군이 주둔지를 버리고 요충지인 부여부로 집결하고 있었고, 이에 황보제공, 황보금산, 박수문, 박수경에게 1만 2천의 정예 기병들을 이끌고 부여진을 공격하게 지시하고 연우에게 1만 보병과 나이가 많거나 부상당한 기병 4천을 이끌고 퇴로를 확보하게 지시한 다음, 정예만 추려서 바로 부여진으로 출진했다. 부여진에서 거란과 일전을 벌이나 기병의 숙련도 부족으로 점차 밀리던 중 연우가 강 상류로 우회하여 후방을 들이친 것을 기회로 삼아 총공격을 가해, 거란 승상을 직접 효수하며 승리한다.

종전 후에는 서경으로 천도해 아내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나중에는 연우의 전생이 남자, 그것도 흉노 선우였다고 전해듣고는 "그래서 7년을..."이라며 신혼 때 튕긴 것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렇게 잉꼬 부부로 살다가 연우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27] 승하한 뒤 원역사와 달리 '성조'로 추존되었다.

취미는 격구로 연우는 오빠인 임연객이 격구단을 만들자고 할 때는 꿈쩍도 안하다가 왕무가 아내 눈치를 보면서 하고싶다는 티를 내자 곧바로 지갑을 열었다.

2.2.3. 왕요

충주 왕후 소생의 태자로서 109화인 931년 기준으로 9세라고 배현경이 언급한다.

이후 조금 더 자란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왕건에게 매우 귀여움을 받으며 연우에게 왕요가 혜종 왕무를 몰아내고 정종으로 즉위한 원 역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위기감을 불러 일으킨다.

2.2.4. 왕평달

왕건의 숙부이자 왕실의 최고원로이다. 나이가 많아 현재는 모든 일선에서 은퇴한 지 오래되었으며, 은퇴한 이후부터 수 년간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문제를 풀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연우를 구하기 위해 충주 왕후가 불러서 우물에 와서 이런 짓을 하면 어쩌냐고 이미 물이 차올라서 답이 없다고 하면서 취침중인 왕건이 일어나면 너희들끼리 보고하라고 하면서 책임을 나눠지려는거를 거부한다. 시간이 지나 물이 빠질 시간이 되자 연우의 시신이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할때 연우가 산발이 되어 스스로 우물에서 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라나 신라 말의 풍운과 폐주의 광기의 시절을 지나온 경험으로 버틴다.
문제를 풀고 위기에서 빠져나온 연우를 채근하여 정윤을 통해 아버지의 문제의 답과 사정을 알게 되고 신라에 매우 분노하나, 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일단 덮어두려는 왕건의 의견에는 동의하긴 했는데, 분노와 그리움을 참지 못하는 기색을 보인다.

이후 왕무에게 가문의 친척들하고 인맥을 가지게 도와주고 어머니의 유골을 이장하고, 개경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구산사를 건립한다. 이후 구산사에서 지내다 930년 봄쯤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병을 온 왕무와 연우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찾을수 있게 도와준데에 감사를 표하고, 아들인 왕식렴에게 유언으로 둘을 도와달라 말하나, 왕식렴이 그간 서경을 재건하면서 대호족들에게 받아온 지원이 많아 그들에게 돌아서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난감해하자. 내가 유언으로 말하는데 안들을거냐고 다그친다. 중간에 연우가 조율을 하여 그 제안을 왕식렴이 받아들이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2.2.5. 장화왕후 오씨

왕건의 2번째 부인이자 연우의 시어머니(75화부터)[28], 나주 왕후로 불리며, 미녀로 묘사되며 정윤의 친모이나 본가가 현재 후백제의 군대에 의해 포위를 당하고 있어 영 곤란한 처지이다.

왕건의 장남을 낳아 후계자로 책봉을 받았음에도 친정의 지원을 받지 못해[29] 나주원 자체가 궁인들을 적게 쓰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다른 왕후들과 부인들에게 집중견제와 망신을 당하고 있다.

팔관회 직후 친정인 나주가 끝내 백제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어고 일족들은 전사하거나 다른 섬 깊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듣는 와중에 나주원에서 치러진 일족의 장례식때 본인은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참석을 하지 않는다.

발해 유민들의 마을을 시찰하러 동양원 부인, 나주원 식구들과 가서 유민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주면서 요리 솜씨를 발휘한다. 이때 집안일 못하는 며느리를 부엌 구석으로 쫓아내어서 아궁이만 지키게 했지만 며느리는 중요한 일을 맡기는 줄 알고 의기양양했다. 그리고 또 다쳤다.[30]

아들인 왕무처럼 무골호인으로 결혼하고서 7년이 지나도록 애를 낳지 않는 연우에게 후계에 대해서 말 한마디를 안하는 착하디 착한 시어머니.

2.2.6. 오지수

왕건과 나주 장화왕후 오씨의 딸이자 정윤의 동복 여동생. 연우의 시누이(75화부터) 현재 나주원 공주.

연우를 동경하여 첫 만남부터 연우의 품에 안겨오는 식으로 인사하여 연우와 나주 왕후를 당황하게 했으며, 연우가 서경에 갔다 온 사이에 있었던 왕건에 의한 김장명과의 분리 조치와, 연등회에서 왜 망신만 당해야 하냐며 화를 낸다. 그리고 유금필이나 그 딸인 동양원부인이나 왜 선물을 안 받으려 하는지 이해를 못하나, 다음 화에서 연우가 선물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자 이해한다.

현재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철이 없는 언행과 행동을 자주 보이며, 41화에서 "상산( 충청북도 진천군)의 돈이 나의 돈이나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하여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44화에서 연우가 나주원에 1달에 1주일만 머무는 것을 아쉬워 하며 왕건에게 간청하여 "1달 내내 머물게 하겠다"고 말한다.[31] 왕건이 패배하여 철군하고 나서 개경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불안해하며, 전장을 다녀온 연우에게 "백제 사람들을 혼내주고 온 언니가 보기에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냐"고 질문을 한다. 연우의 답을 듣고 나서는 그리되면 좋겠다고 하며, 시간이 좀 더 지나 국선 선발전에 연우가 출전한 사실을 알고 배수현과 같이 왜 도와달라고 요청을 안했냐며 서운해하면서 상산저로 정윤파 아이들과 같이 가겠다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스러워졌고 처음과는 달리 같이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연우와도 친해진다. 한편, 학관 다닐 때부터 서로 좋아하던 명주의 김장명과 이어지길 원했지만 주변의 호족들의 견제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자 연우가 유긍달이 왕실과 호족들의 집에 세작을 풀었다는 걸 폭로하는 사이에 격구단의 호위를 받아 명주로 야반도주하여 김장명과 결혼한다.

2.2.7. 왕식렴

왕평달의 아들이자 왕건 사촌동생이다. 현재 서경유수로 재직중이며, 서경 재건 작업을 10여년간 진행 중이다. 왕건 사후에 정종과 손을 잡고 혜종의 정적이 되는 것을 알고 있는 연우가 경계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며, 현재는 왕건이 건재하니 겉으로는 왕무를 정윤으로 대하며 존중하나 아직은 어느 편인지 모를 행동을 한다.

102화에서 아버지의 건강이 안좋아지자 왕건에게 개경으로 오겠다는 청을 해서 허락받아 개경으로 오게 된다. 개경에 와서 구산사로 가서 아버지를 간병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언에 그간 자신이 지원받아온거때문에 아버지의 유언을 들어주기 어렵다 말하자, 아버지가 더 강하게 유언으로 요구를 하자,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하고 상의해보겠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이를 연우가 중간에 조율해서 부탁을 반드시 하나 들어주는거로 조정을 해서 이를 받아들이고, 직후 왕건과 모종의 밀담을 나누고 받아들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얼마 후 아버지가 사망하고, 상주로서 장례식을 치른 후에 서경으로 다시 돌아간다.

2.2.8. 동양원부인 유씨

유금필의 딸로 왕건의 9번째 부인. 연우의 첫사랑 43화에 첫 출연을 하며, 나주 왕후와 오지수가 언급하기로는 여태까지 자신과 친정아버지에게 오는 선물들을 왕건이 하사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거절하고 있다 한다. 연우가 본 첫 인상은 "키가 크고 나른한 눈매를 하고 있는 미녀"라 한다.

44화에서 연우가 주는 선물을 평소 아버지와 같이 취하는 입장과 형평성 때문에 거절하나. 추후 연우를 불러 "선물로 준 물건을 정식으로 거래하겠다"고 한다. 연우에게 자신의 생일잔치때 아버지(유금필)에게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만 있는 와중에 연우만 자신을 봐줬다고 백합백합한 감사인사를 한다. 연우에게 호감이 있는지, 연우에게 궁에서 필요한 조언들을 해준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따로 연락을 보내 탕정군으로 아버지와 같이 가게 되는 연우를 잘 부탁한다 전한다.

이후 전장에서 돌아온 연우가 국선선발전에 출전하자 응원하며, 왕건이 부인이 많아 동양원에 잘 오지 않는데다가, 최근들어 왕건이 더 바빠져서 혼자 지내게 되어 이럴거면 결혼하지 말걸 그랬다면서 쓸쓸하다고 연우에게 말한다.

국선선발전이 끝난 이후에 상산 임씨 일가와 유긍달 황보제공이 합의한 파혼에 대한 여론조작이 진행되는 와중에 연우에게 편지를 보내 앞으로 만나기 힘들게 될거 같으니 왕평달이 건립한 구산사에서 만나자 약속을 잡고 연우에게 구산사의 건립경위[32]를 말해주며, 연등회 전날에 구산사에서 다시 만나자 한다. 약속대로 연등회 전날에 다시 찾아온 연우에게 연등회날 왕건과 대신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구산사가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될거라 말해주면서, 대웅전 뒤에 있는 작은 건물로 안내하여, 연우에게 미안하다고 한 뒤에 함정에 빠트린다. 이로 인해 연우가 왕무와 결혼을 할수밖에 없게 되었고, 둘의 결혼식에 왕건과 다른 부인들과 같이 참석하였고, 며칠 후 항의하러 찾아간 연우에게 내가 언제 결혼하지 말걸 그랬냐는 말을 했냐는 식으로 시치미를 떼나, 연우가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못을 박자, 자신은 왕건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고, 둘이 결혼하는게 연우에게 가장 좋은 길이었다고 말하면서 연우를 안아준다.[33] 이후 연우가 손씨 일가를 구해서 돌아온 이후에 홍술을 구하기 위해 뭔가 하려는거를 눈치챈 친정아버지가 동양원에 찾아오고, 연우를 초대하여 친정아버지하고 대면시키고 자신이 알아선 안될 사안임을 알고 물러간다.

이후 해가 지나고, 고려가 고창 전투에서 대승을 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후에 왕건이 최선필의 딸인 최정혜를 새 부인으로 들이게 되었고, 왕건의 지시를 받은 연우가 최정혜의 처소가 될 해량원의 건축을 독려하고 오는 길에 생각없이 자신의 처소로 찾아오자, 남편의 새 부인을 도와주고 어떻게 내 처소에 목이 마르다고 올수 있냐고 화를 내며, 연우에게 너랑 가장 친한 사람은 나인데, 어떻게 새로 오는 부인을 발 벗고 도와줄수 있냐며 운다. 진정한 직후에, 왕무가 다른 부인[34]을 들이게 되면 자신이 지금 느끼는 기분을 연우가 느끼게 될거라고 그때는 자신이 달래주겠다 하며 안아준다.

해가 지나 친정아버지가 대호족들에게 정치공세[35]를 당하게 되자, 연우가 서라벌에 가 있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나주원에 찾아왔으며, 연우가 나주원으로 돌아오게 되자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연우의 초청으로 궁에 온 최치원을 만나러 왕건과 만날 기회를 얻어 간만에 제대로 항의를 한다.

연우에게 여자력을 전수하며 여자어를 이용해 충고를 해주나 남자의 정체성이 남아있는 연우는 영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직접적으로 말해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2.9. 정덕왕후 유씨

왕건의 6번째 부인으로 정주 왕후라 불린다. 타인들이 언급하기로는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며, 43화의 동양원부인의 생일잔치 때 방문한다. 연우와 왕무의 결혼식에 참석하며 이 결혼으로 인해 향후 벌어질 일을 계산하는 다른 부인들과 달리 별 생각 없이 결혼식을 지켜본다.

다른 설명이 없어서 왕건의 첫 부인인 신혜왕후 유씨로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았으나, 87화에서 신혜왕후는 수 년전에 병사했다고 언급되면서 이후 같은 가문에서 부인을 다시 들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신혜왕후의 부친인 유천궁이 상심해서 은거를 했다 전해진다.

2.3. 정윤파

2.3.1. 배수현

배현경의 딸. 학관 내 여학생들 중에서 최장신이며, 정윤파 신하의 자녀들의 파벌 수장. 연우가 정윤비가 될 것으로 알고 있기에 같은 파벌 아이들과 같이 연우에게 친근하게 대하나, 정윤과 결혼할 생각이 없는 연우로서는 이런 호의를 배반하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해 한다.

오지수의 입학 직후 연우가 오지수를 김장명한테 붙여주려는거에 기겁하며 연우에게 대체 어떤 생각이냐 물어본다.

팔관회때 열리는 국선선발전때 파혼으로 인해 정윤파를 배신하게 될 연우가 미안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왜 도와달라 하지 않느냐며 질책하며 막무가내로 도와주겠다 한다. 이후 다른 정윤파 학생들과 같이 연우네 집에 와서 놀다가 법왕사의 승려들하고 연우를 연결시켜준다.

팔관회 이후에 " 박술희의 아들인 박제안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연우에게 말한다.

그러나 이후 전황이 악화되자 "결혼이 연기되었다"고 말하고, 해가 지나 연우가 결혼하게 되자 학관내 정윤파 학생들과 함께 "이제부터는 정윤비로 대하겠다"고 말한다.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고 연패로 인해 혼란한 상황이 해결되자, 연기된 결혼식을 하겠다 하면서 오지수를 통해 연우가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박제안과 결혼을 하게 되며 연우가 축하연에서 시아버지인 박술희가 본인 특유의 괴식을 즐기는거를 보고 시집살이가 험난할거 같다는 망상을 한다.[36] 그러나 다행히 박술희가 자신이 먹는 괴식을 타인한테 시키는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만들어 먹는다 밝히면서 그런 일은 없게 되었다.

2.3.2. 김장명

명주 도독 김순식의 아들. 아싸 연우가 자신의 파혼을 위한 패 중에 하나로 선택되어서 오지수와 연결시켜주게 되고, 연우가 관직을 받음으로서 받은 녹봉을 장학금으로 받게 된다.

연우의 의도를 간파한 왕건에 의해 원보로 임명되어 아버지가 데리고 온 600명의 명주군과 같이 지방으로 파견된다. 해가 지나 연우가 결혼하게 되고 손긍훈을 구하기 위해 명주로 도착했을때 마중을 나오며, 아버지가 귀부하기 전에 곤궁한 시절에 연우가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데, 이를 연우에 대한 호감으로 오해한 왕무가 질투를 하나, 곧 여동생인 오지수한테 입은 은혜에 대해 말하고 안부를 물어서 오해를 푼다.

연우가 중매를 서준 후로도 지수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갔다. 그리고는 연우가 유긍달을 날려버려서 주목을 끄는 동안 지수를 데리고 명주로 도망가서 결혼한다. 이를 통해 정윤파에 명주 김씨가 완전히 편입되게 된다.

2.3.3. 김순식

명주를 비롯해 태백산맥 동쪽을 지배하고 있는 대호족 산너머 변경백. 궁예의 충실한 부하였고 왕건의 역성혁명 당시에 반발하여 독립하였으나, 시간이 지난 뒤 아들을 먼저 개경에 보내고 928년 1월 즈음에 개경으로 오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개경에 방문할때 왕건에게 병력과 물자를 지원해주겠다고 하나, 7개월여가 지난 8월까지 처음 데리고 온 600명 외에 뭔가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가지원을 보내지 않고 있다 한다. 얼마후 연우의 명의로 아들에게 발송된 편지의 답장을 보내며, 기근이 들었다는 명분을 내세워 100명의 추가지원을 하겠다 한다.

이후 해가 지나고 연우가 주도하는 손긍훈 구출작전에 대한 협조요청을 "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충효의 가문이 굴욕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동생인 김순우를 길잡이로 동행시키고 자신의 사병과 선박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준다.[37]

아들인 김장명이 나주원 공주 오지수와 결혼하면서 정윤파로 완전히 편입된다.

2.4. 충주파

2.4.1. 유설란

왕건 충주 신명왕후 유씨의 딸. 미래의 시누이 2 낙랑공주. 현재 충주원 공주. 악역영애

학관에서 연우가 왕건을 빼오기 위해 제안한 트릭에 대해 물어보면서 거짓이 아니냐 추궁하는 황보인혜를 제지하여 겉보기에는 연우에게 첫인상이 좋게 보이게 나오는 미소녀이나, 신례때 우물에 들어가서 왕실의 비밀을 풀어오라는 황보인혜를 제지하며 "새언니가 될 사람인데 너무한 신례를 강요하는거 아니냐"면서 겉보기에는 편한 길을 제시하면서 연우가 스스로 정윤비임을 인정하게 유도하도록 몰아간다.[38]

연우가 거절하며 우물로 들어가겠다 하자 이를 받아들이며, 시간이 지나도 연우가 겁을 먹고 금방 나오리라는 예상과 달리 오래 버티자 일이 커지는거를 우려해서 연우를 불러오라 시녀들에게 지시하나, 연우를 부르러 우물속으로 갔던 배수현이 "비밀통로에 물이 차오른다"고 하자 당황하여 어머니한테 사실을 황급히 보고한다.

시간이 지나 연우가 엉망이 된 모습으로 산발이 되어 스스로 빠져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라서 선채로 기절하여 어머니에 의해 충주원으로 실려간다.

이후로는 우물에서의 연우에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서 꺼리며, 아이들 선에서는 연우를 감당할수 없다 외가의 어른들이 판단한건지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나와서 충주원을 대표해서 어머니와 함께 왕실의 행사에 참석하며, 왕건을 따라 이복자매들과 함께 서라벌에 다녀오게 되며, 외할아버지인 유긍달이 신라 왕실과 혼맥을 맺기 위해 벌인 공작이 성공해 경순왕과 결혼한다.

2.4.2. 유긍달

충주의 대호족이자 충주 왕후의 아버지. 왕건에게 잡찬으로 불리며 왕건과 임씨 부녀가 사벌주에서 빠져나온 직후에 충주에 도착하여 왕건이 맞으러 오라는 전령을 보내자 가병들을 이끌고 맞으러 나오면서 개경의 현 상황을 말하면서 왕건의 빠른 귀환을 돕기 위해 선박을 제공한다.

이후 정윤과 연우의 혼사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임씨 가문에서 혼사를 꺼리는 것을 눈치채고 연우를 정윤비로 대우하여 혼사를 못박으려 하나, 의도를 눈치챈 연우가 먼저 절을 하면서 한방 먹은 듯이 답을 하면서 가버린다. 이후에 딸과 외손녀한테 연우가 스스로 정윤비임을 인정하게 유도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이유는 정윤의 빈약한 세력에 한정된 세력을 가진 상산하고 결합시켜 정윤의 세력을 제한시키기 위함이다.

40화에서 왕건의 명을 받아 후백제에 반격을 준비하기 위해 충주로 가게 된다. 이후 개경에서 출진하는 왕건과 합류하여 삼년산성 공격에 실패하고 철군하는 길에 청주에서 왕건과 같이 위기를 맞았으나 유금필의 구출을 받은 직후에 자신의 본거지인 충주로 돌아가자 진언한다. 진언이 받아들여져 충주에서 왕건과 출진한 호족들과 후속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화엄종 북악파의 수장인 희랑이 견훤에 의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왕건과 같이 듣고는 기회를 잡은듯 왕자를 보내 남악파의 수장 관혜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견훤에 맞서 정윤을 부석사로 보내 고려는 희랑을 버리지 않았다는거를 백성들에게 보여주자 왕건을 부추긴다.

이후 연우가 왕무와의 협력으로 무차대회를 파토내고 오는 활약을 벌이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별 반응이 없다가, 연우가 연은분리법을 이용해 추출량을 늘려 은제련소의 권리를 왕건에게 받아내자 임명필을 통해 임희와 연우에게 황보제공과 같이 접촉을 시도한다. 임씨 부녀의 여태까지의 행적을 보고 부녀가 파혼을 바라는거를 말하고서는 원래는 "정윤과 연우가 맺어져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명목으로 혼사를 밀려고 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명목으로 "파혼을 지원해주겠다"고 임희에게 제안한다.

임희가 이를 받아들이자 "지금 있는 사람들 모두 다 신하인 처지이니 감히 왕한테 국혼에 대해 직접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는 거를 주지시킨 다음에 먼저 파혼을 바라는 민심을 조성하여 왕건이 파혼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게 만들자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직후 연우에게 백성들한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팔관회 때 선발되는 국선에서 만백성이 알아볼수 있게 선발되어달라 요구한다.

작전을 짜는 방식이 본인이 직접 나서는 일이 아니면 큰 틀을 아래사람에게 주고 세부 계획은 아래사람이 짜서 실행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황보인혜가 물이 차오르는 우물에 보내 연우를 죽일 뻔한 실책을 저지르는거를 예측 못한거 같다.

이후 황보제공 임희 임명필 등과 같이 파혼을 위한 여론 조작을 공모하면서 연우가 국선에 선발되고, 왕무의 외가가 멸문당한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장례식을 한 이후에 미리 합의한대로 파혼을 위한 여론을 일으킨다.

신라를 귀부시키기 위한 공작을 총괄하게 되었으나, 신라 조정이 항복을 하지 않고 시간끌기로 일관하는거를 왕건에게 질책을 받은 이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공식석상에 나오지를 않는다.

역사서에 적힌 사실과 연우가 평하기를 결혼을 통한 인맥으로 자신의 외손자가 왕위를 이어야 고려가 안정이 되도록 손써놨다고 수완이 대단하다 평하면서 왕무와의 결혼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신라는 결국 항복했고 외손녀 유설란을 경순왕과 결혼시켜 신라 세력과 연계를 꾀하는 한편, 마무리를 짓기 위해 정주 유씨와 혼맥을 맺으려 한다. 하지만 179화에서 왕무 부부와 주요 대호족들에게 세작을 겸하는 시녀들을 심어둔 사실이 연우에 의해 적발되어 왕건에 의해 책임을 지고 가택연금을 당한다.

왕건 사후에 북벌을 위한 국론 통합의 일환으로 연금에서 풀려나 정계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미 왕무의 입지가 탄탄했고 북벌 성곡 후에는 왕권이 크게 강화되어 별다른 공작은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2.4.3. 신명왕후 유씨

왕건의 3번째 부인이자, 유긍달의 딸로 충주 왕후로 불리며, 황보인혜가 저지른 사고를 듣고 직접 찾아오면서 만약에 연우가 사고로 인해 사망할 시에 대한 후폭풍을 우려한다. 43화에 딸과 같이 동양원부인의 생일잔치에 참석한다. 75화의 연우의 결혼식에도 왕건의 다른 부인들과 참석하여 옆에 있는 황주 왕후와 같이 향후 방침을 논의한다.

2.4.4. 황보인혜

왕건과 황주 신정왕후의 딸. 미래 시누이 3 광종 왕후 대목왕후 황보씨. 현재 황주원 공주. 악역영애 2

연우에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쓴 꾀가 무엇이냐 물어보면서 연우가 그 꾀가 군사기밀이라서 대답을 못한다 말하자. 자세하게 말을 안하면 믿을수가 없지 않겠냐고 답하면서 연우를 몰아붙이나, 직후 유설란의 제지를 받아 일단은 물러나고 당일 밤에 신례가 있을거라고 연우에게 통보한다.

2.4.5. 신정왕후 황보씨

왕건의 4번째 부인이자, 황보제공의 딸로 황주 왕후로 불리며, 딸이 저지른 사고를 듣고 직접 찾아와서 딸한테 "이렇게 일을 저지르면 어떡하냐"고 고함을 지른다. 43화에 딸과 같이 동양원부인의 생일잔치에 참석한다.

연우와 왕무의 결혼식에 왕건의 다른 부인들과 같이 참석을 했으며 결혼식장에서 충주 왕후와 같이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논의를 한다

2.4.6. 황보제공

황주 황보씨의 가주로서 황주 왕후의 아버지이다. 왕건의 중재로 외손녀가 저지른 사고의 수습을 위해 상산저에 사람을 보내 사과의 의사와 예물을 보낸다.

43화의 동양원부인의 생일잔치 때 참석해서 유금필과 동양원부인이 왕건이 하사하는 선물을 제외한 모든 선물을 거절하는 거를 알면서도,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실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유신이 썼다는 열박검을 선물로 주겠다고 유금필에게 말한다. 그러나 유금필은 다른 이들이 주는 선물을 대하듯 거절한다.

이후 유긍달과 같이 임희와 연우를 만나러 진주원에 같이 온다. 본인이나 동생이나 고려에서 뛰어난 무장으로 이름이 높으나, 이로 인해 정치적인 면에서는 유긍달보다는 아래이다. 회동 때 서로 꺼내기 난감한 문제를 누가 먼저 말해야 하는지 눈치를 보는 상황을 못참고 먼저 발언하게 되며, 유긍달이 꺼낸 제안에 동의한다.

이후 팔관회가 끝나고 왕무의 외가가 멸문한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돼서 나주원에서 장례식을 하는 와중에 조문을 하며, 따로 조문하러 온 임씨 부녀에게 황주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 제안하여 식사자리에서 곧 파혼에 대한 여론을 조성할거라 부녀에게 알린다.

신라 왕실에 대해 매우 안좋은 감정[39]을 가지고 있다.

반정윤파이지만 정치에 능숙하지 않은 군인에 가까워서 유긍달이 은퇴당한 후로는 대세에 끌려다니다가 왕무의 북벌에 협조하게 된다.

2.4.7. 임명필

상산과 맞붙어 있는 진주의 호족이고 왕건의 장인이자 초대 순군부령. 임희와 사이가 매우 안좋은 친척 관계로서 임희보다 10여살정도 나이가 많다. 연우가 은광을 발견하고 연은분리법을 이용해 추가로 추출되는 은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자 유긍달, 황보제공의 부탁을 받아 자신의 명의로 딸이 기거하는 진주원에 임희와 연우를 초대한다.

2.4.8. 진주원부인 임씨

임명필의 딸이자 왕건의 10번째 부인이다. 연우와는 친척관계이나 아버지들의 사이가 나빠서 서로간의 교류가 전혀 없다. 아버지가 자신의 처소에 임희 연우 부녀를 초대하는 자리에 참석하며, 이후 왕무와 연우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여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이후 벌어질 일들을 계산한다.

2.5. 조정 대신

2.5.1. 최언위

신라삼최의 일원으로서 한림원령으로 재직중이며, 자신의 제자라는 명성을 얻기 원하는 호족들의 자녀를 바쁜 시간을 쪼개서 가르치고 있다.

최승우의 방문 때 자신은 수년 전에 신라에 희망이 없어 떠나기는 했어도 견훤 서라벌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방벌이라 주장하는 최승우에게 분노하며, 대결에서 지나 이후 연우가 최승우를 이기고 나서 관직을 주려는 왕건의 의견에 동의하고, 연우가 왕건에게 받은 관직이 한림원 직원이니 직속상사가 되었다.

이후 고신(임명장)을 연우에게 주고 녹봉을 받아가라 하는데, 명예직으로 알고 있는 연우가 녹봉을 받아가라는 뜻[40]을 이해하지 못해 실수를 하고 만다. 연우가 서경에 갔다온 이후에는 대놓고 수업 후에 한림원에 와서 일하라고 한다.

왕건이 삼년산성 공략에 실패하고 철군하고 돌아온 이후에 윤신달이 보낸 보고를 받은 왕건이 이에 대해 말하자, 100여년 전 흥덕왕 시절에 윤신달이 다스리고 있는 지역에서 사이비종교가 일어나서 수뇌부를 멀리 유배보냈다고 말하면서 그 이후 주춤하다가 후삼국시대가 열리고 나서부터 다시 사이비종교가 일어났다고 탄압할 것을 왕건에게 진언한다.

왕건 옆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다가 연우 덕에 친척 어른이자 중국 유학 1세대인 최치원을 만나서 뛸듯이 기뻐한다. 그 후에도 한림원에서 일하다가 왕건이 죽고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2.5.2. 최응

현재 내봉경으로 재직중이며, 최승우와의 서예대결에서 간발의 차로 지나, 이후에 연우가 최승우를 이기게 되자 같이 대결했던 학사들과 같이 연우에게 글씨를 써준다.

한동안 출연이 없다가 연우가 전장에서 돌아오고 국선선발전에 출전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국선에 뽑히기를 응원한다.

932년 가을쯤에 있었던 백제의 해안을 통한 기습공격 이후 유금필이 연우와 같이 신라를 구원하러 간 사이에 병사를 했다고 한다.

2.5.3. 최지몽

현재 사천관으로 재직중이며, 최승우와의 서예대결에서 첫 주자로 나서나 패배한다. 왕건의 삼년산성 공략에 종군문관으로 따라오고, 왕건의 명을 받아 왕무를 돕기 위해 부석사로 같이 가게 된다. 후백제의 계략에 "대책이 있냐"고 묻는 연우에 " 고려를 지지하는 북악파의 수장인 희랑의 체면을 세워주는 정도밖에 답이 없다"고 말한다.

부석사에 도착해서 능환이 왕무 일행에게 건네는 선물의 내용물을 보고 사정이 안좋아 선물을 안가져온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낯이 어두워지며, 연우가 주도하는 사기극 직후에 도망을 치면서 예언을 말한 연우에게 "희랑이 화엄종을 통합한다는 말을 왜 하지 않았냐"고 말한다.[41]

직후 백제의 맹추격에 평소에 단련한 병사들과 달리 탈진을 하고 만다. 개경에 돌아와서 왕건의 명을 받아 연우와 같이 파평현으로 가게 된다. 표천현에서 연우가 한 말에 매우 놀라며 자기 선에서 해결할수 없다는거를 알고 일단 아무도 모르게 표천현을 빠져나가서 윤신달에게 사실을 알리자 말한다.

2.5.4. 김행선

현재 고려의 시중으로 재직중이며, 김순식의 입조를 위해 먼저 와 있는 김순우와 동행하여 학관에 방문한다. 학관내 학생들이나 선생들이 김장명을 홀대한 것을 알면서도, 연우와 오지수에 의해 김장명이 잘 지내고 있는 걸로 보이자 기회를 잡은 듯이 뻔뻔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걸 지켜보는 연우가 질려 하는 것은 덤(...).

2.5.5. 김악

현재 고려의 대내학사로 재직중이며, 왕건이 궁에 있을 때 곁에 붙어다니면서 자문을 해주는 최측근이다.

최승우의 방문 때 대결하나 졌고, 연우가 최승우에게 대결을 신청할때 "연우는 기묘한 꾀가 많은 아이"라고 "대결하는 게 어떠냐"고 주선을 해준다.[42] 연우가 최승우를 이기자 왕건이 직접 와서 연우를 치하하자, 인재를 알아본 왕건의 안목을 칭찬하며 바람을 잡는 행동도 한다. 그리고 과거 역성혁명 직후에 있었던 환선길의 난 때, 왕건이 환선길 앞에서 허세를 부릴 때 겁에 질려서 들킬 뻔 했다고 왕건이 디스한다.

왕건이 부인이 많아 일일이 직접 챙겨주기 힘드니 생일잔치같은 행사가 있을 때 왕건을 대신해서 선물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으며, 왕건이 삼년산성에서 지고 개경으로 돌아온 직후에 "나라에 돈이 없으니 11월에 열리는 팔관회를 연기하는 게 어떠냐"는 진언을 한다. 연우가 표천현에서 은광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은 왕건이 병력을 이끌고 표천현으로 직접 올 때 같이 따라오며, 왕건이 어릴때 아버지한테 혼나더라도 갔어야 했다는 말에 기겁한다.

팔관회 이후에 후백제의 공세가 거세지고 고려가 더욱 몰리게 되자 상황이 좋지 않으니 연등회를 취소해야 한다고 간언을 하나, 왕건이 절충해서 간소하게 하는거로 결정하자 만족스러운듯 넘어간다.

전형적인 유학자로서 왕건이 불교를 우대하거나 유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거를 싫어하는 간언을 자주 하나, 그때마다 왕건에게 디스를 당한다. 이후로는 눈치 없는 유학 서생 역할을 맡아서 개그 캐릭터로 활약중.

2.6. 군부

2.6.1. 박술희

김학철 왕무의 후견인이자, 정윤파 장군들의 수장이며, 왕무를 끝까지 따랐던 충신이다. 학관에서 격구 수업을 담당하는 교관으로 첫 등장하며, 사서에 적힌대로 곤충 튀김 같은 괴식을 즐긴다. 격구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나와 식사를 같이 하면 해결된다"고 겁을 주며, 수업 도중에 들어온 최승우의 방문 예정 소식에 분개[43]하며 학생들을 귀가시킨다.

이후 해가 지나 928년 가을쯤에 아들인 박제안과 배현경의 딸인 배수현하고 혼사를 추진한다. 그러나 이 혼사는 후백제의 공세가 거세짐으로서 연기가 되고 만다.

고창 전투때 왕건을 따라 같이 출전하며 유금필이 지휘하는 선봉에서 같이 싸우고 왕무와 같이 고창성으로 온다.

개경으로 돌아와서 아들의 결혼식을 진행하며, 축하연에서 본인 특유의 괴식을 즐겨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기겁하게 한다.

109화에서 임연객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연회장에서도 역시 괴식을 즐겨 하객들을 기겁하게 한다. 연우가 괴식의 재료는 어떻게 구하냐 물어보자 본인이 직접 구한다고 하면서 정윤비께서도 드실거면 잡아서 보내드리겠다 하여 연우를 기겁하게 한다. 그리고 연회 직후 정윤파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유긍달이 세운 공에 대해 언급하면서 후사를 빨리 보는게 좋을거 같다는 뜻을 다른 장군들과 같이 왕무에게 전한다

북벌에서는 유금필의 아들 삼형제와 함께 여진 기병들을 통솔했다.

2.6.2. 배현경

고려 1등 건국공신이자 왕건에게 왕이 되라고 권했던 4기장 중의 한명이자 연우의 친구인 배수현의 친정아버지로서 역성혁명 당시 왕건을 도와 큰 공을 세웠으며, 현재 대장군 직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윤을 지지한다. 작 초반부에는 배수현의 아버지로 언급만 되고, 928년 가을에 박술희의 아들인 박제안을 사위로 들이는 혼사를 박술희하고 합의한다. 그러니 이 혼사는 전황이 악화되어 연기가 되고, 해가 지나 왕건이 결전을 하기 위해 고창으로 출전할때 같이 간다

2.6.3. 유금필

고려 초기 최고의 용장이자, 왕건의 장인. 평주의 호족이기도 하나 가문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 염상과 같이 왕건의 명을 받아 북방 국경지대에 성을 쌓고 고려에 협조하는 말갈족들로 기병부대를 만들기 위해 파견된다. 거중기의 개발 소식을 듣고 염상과 같이 서경으로 찾아오나, 친분을 쌓기 위해 접근하는 임연객을 립서비스로만 응대하며, 왕위 계승에 대해서는 철저히 중립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협조를 얻은 말갈족들과 언어 외의 소통문제로 곤란해 한다. 이를 듣게 된 연우가 오빠를 통해 그래프를 만들어서 해결해주며, 그래프를 가져온 임연객에게[44] 여태까지 하던 립서비스와는 달리 저녁식사까지 같이하며 추후 개경에 찾아오게 되면 방문을 할때 최우선적으로 받아주게 되는 명첩을 제공한다.

본인과 가문이 왕위 계승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딸과 본인에게 주는 선물을 전부 거절하고 있다 한다. 44화에서 딸의 생일잔치 때 연우가 준 선물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나 입장상 받지는 않고, 추후 딸을 통해 거래를 제안한다. 연우가 자신이 생각하던 거보다 물품을 훨씬 일찍 가져오는거를 보고 감탄해서 왕건에게 간청하여 연우를 탕정군에 같이 데려가게 해달라 한다. 직후 대면하면서 공산 전투의 패배를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면서 왕건이 이번 원정을 실패할거라는거를 예측하고 있으며, 같이 가서 연우의 아버지인 임희를 유금필의 휘하로 배속시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암시를 연우에게 준다. 탕정군으로 가서 성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연우에게 가까운 시일내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견훤의 작전을 간파했다는 거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어 왕건과 다른 대호족들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도인이 도와줬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군략은 뛰어나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군인으로서 관여하고 싶지 않아 피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정치적인 면에서 약한건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희랑이 위기에 처해서 어찌하면 좋겠냐는 왕건의 질문에는 나중에 견훤을 이겨서 희랑을 다시 밀어주면 된다는 답을 한다. 82화에서 연우를 만나 견훤이 언제 쳐들어올지에 대해 논의하다가 "연우가 병법이 깊다"며 감탄한다.(...) 그리고 여기서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병법같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일장연설을 하는 스타일이라는게 밝혀졌다. 그러나 "홍술을 구원해야 한다"는 연우에게 "지금 고려는 홍술을 구원할 방법과 여력이 없다"고 한 뒤에 "지금 견훤이 하는 공세가 훗날 화가 될 거다"라고 말한 뒤에, 더 이상 공식석상에서 말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계절이 지나 결전을 위해 모인 회의에서 "퇴로를 확보하고 진군하자"는 호족들의 주장에 "견훤이 요 수년간 잦은 군사작전을 일으켜 병력들의 체력소모가 크다"는 점을 내밀어 "전 병력을 공세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비난을 받으며, 연우가 자신의 주장을 더 강경하게 지원해주자 이를 찬성하며, 부인을 사지에 보낼 수 없는 왕무가 자신도 같이 가겠다 하자, "본대에 남아서 같이 싸워야 한다"고 "냉정해지라"고 말한다.

회의가 끝나고 자신은 선봉을 맡게 되었고, 연우가 고창성[45]으로 떠나게 되자 배웅을 나오면서, 자신의 작전에 적극적으로 찬성해준거에 감사를 표하며 고창성에서 뵙겠다 말하고 떠난다.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후 연우에게 왜 성 주변이 진창이 되었냐 물어보고, 연우가 소금을 뿌려서 그렇다 하자, 좋은 방법이긴 한데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이라고 평한다. 왕건이 복속을 청하는 호족들을 받아들이는 와중에 다른 장군들과 같이 견훤에게 빼앗겻던 땅들을 되찾으면서 병력을 배치하는 일을 한다. 연우가 임희에게 대장군에 대해서 묻자 임희의 말로는 고창에서 자신들이 아무리 힘을 모아도 유금필이 없었다면 패했을 것이고 유금필의 돌격에 견훤이 놀라서 달아나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몸을 떤다. 수년간 유금필을 봤지만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유금필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게 되었고, 유금필이 말을 걸어도 주인공을 제외하면 다들 굽신거리기만 한다. 군사회의에서 유금필을 비난하던 황보제공도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 피할 정도. 그러나 연우는 유금필이 큰 공을 세우고도 가까운 미래에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아 유배를 가게 될 예정인거를 알기에 안타까워한다.

해가 지나 고창 전투 당시 자신에게 분노가 쌓인 대호족들의 정치공세를 받아 서라벌에 간 왕건이 돌아올때까지 시간을 끌며 버텨보나, 왕건이 자신을 구해줄 생각이 없다는거를 깨닫게 되고는 본인 스스로 사직하고 개경을 떠나는 형식으로 곡도로 떠나게 된다. 왕건의 명을 받아 찾아온 연우와 최언위와 얘기를 나누며, 이 와중에 내년에 있을 견훤의 바다를 통한 기습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기회삼아 개경에 복귀할 생각을 연우에게 돌려서 말한다. 연우가 군자금으로 쓰라고 준 은병을 계획의 성공을 확실히 하기 위해 받아들이고 곡도로 떠난다.

백제 수군이 예성강을 습격하자 곡도에서 그동안 기른 수군을 출진시켜 요격함으로써 공을 세웠고 개경으로 복귀한다. 80명의 기병만 이끌고 마상쌍검을 구사하며 백제군의 방어를 뚫고 연우와 함께 서라벌에 가서 신라의 민심을 잡아놓는다. 마지막 결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을 보좌한다. 통일 후에는 건강이 많이 약해졌고 연우에게 뒷일을 맡기며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2.6.4. 홍유

고려 건국공신 1등이자 왕건에게 왕이 되라고 권했던 4기장[46] 중의 한명이자 왕건의 장인 중 한 명으로서 견훤과의 결전을 위한 왕건의 출전에 따라오며, 고창의 호족들의 지원요청에 현재 고창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물어보고, 자신과 호족들이 주장한 작전이 유금필에 의해 반박당하자 분노한다. 이후 고려가 승리한 후에 신라에서 보낸 사신인 아찬 김굉이 자신이 진골이라고 고려의 신하들을 자신들의 골품에 맞춰 대하는거에 분노하며 경고를 한다.

2.6.5. 염상

발해 거란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 유금필과 같이 왕건의 명을 받아 북방 국경지대에 성을 쌓기 위해 파견되었다. 거중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보기 위해 유금필과 같이 서경에 방문한다.

102화에서 왕평달의 건강이 나빠져서 돌보기 위해 개경으로 내려오는 왕식렴을 대신해 서경을 맡게 된다. 염 부장

2.6.6. 왕충

명지성의 성주로서 삼년산성에서 지고 열세가 된 왕건이 유금필의 의견을 받아들여 군대를 이끌고 죽령을 넘어온 관흔을 견제하라 지시하여 명지성에서 원군을 이끌고 오게 된다.

계략을 짜기 위해 죽령 근처에서 대기중인 왕무와 만나서 왕무에게 " 부석사에 소수의 호위병만 데리고 가는거는 위험하지 않냐"는 의견을 말하나, 왕무가 어명이라 하자 어쩔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무차대회를 파토내고 온 왕무 일행이 부석사에서 탈출하자 극노한 견훤의 명을 받아 광범위하게 공세를 펼치는 관흔을 견제하는데 쩔쩔매면서도 부장인 윤선지를 보내 왕무 일행을 마중나오게 하면서 자신의 부대와 합류하자 "지금 상황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왕건한테 돌아가는거는 위험하다"는 의견을 왕무한테 말하면서 연우에게 "백제군이 연우를 집중적으로 찾고 있다"고 말한다.

며칠이 지나 관흔이 휘하 병력의 체력과 군량이 한계에 다다라 스스로 철군하게 되면서 왕무 일행을 직접 호위하여 충주에 있는 왕건에게 데려다준다. 그리고 해가 지나 왕건이 동원 가능한 전 병력을 데리고 사벌주로 갈때 같이 가게 된다.

2.7. 기타 호족

2.7.1. 최선필

재암성[47]의 호족이자 성주. 연우의 제안을 들은 임희가 보낸 서신에 "도와주겠다"는 답을 하며, 딸을 적들이 활동하는 지역에 데려오는 임희에게 놀란다.

신라에 실망했으면서도 충성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견훤이 서라벌을 기습 점령하여 경애왕을 굴욕을 준 다음에 살해하고, 서라벌을 약탈한 것에 분노한다. 서라벌에서 일했을 당시에 재직했던 승부에서 할거할 당시에 지도를 빼돌려서 그 정보를 토대로 왕건의 탈출을 돕게 되며 왕건에게 접촉하려 중간에 깔려있는 백제군의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 주인공이 제안한 트릭에 감탄한다.

이후 왕건이 요청한대로 사벌주내 호족들 및 신라 조정과 왕건간의 비밀 연락책을 맡으며, 왕무와 연우의 결혼 직후 " 응천군의 손긍훈이 망명을 요청한다"는 소식을 보낸다. 이후 왕건의 명령이 계속 사벌주 내의 고려 장군들이나 친고려 호족들에게 자신이 모르는 방식으로 들어가는거를 이상하게 여긴 견훤이 의심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색을 하자, 압박을 못이기고 왕건에게 망명을 요청하여 가족들과 같이 빠져나오고, 왕건이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여전히 상보[48]라 부르자 감격하며, 왕건이 정혜에게 청혼을 하자 이를 받아들인 후에 견훤과의 결전을 위해 사벌주로 가려는 왕건에게 자신이 모아온 지도를 바치고 길잡이를 맡는다. 이후 후백제군과의 대치 와중에 왕건이 고창의 호족들에게 복속과 함께 구원요청을 하는 서찰을 받게 되자, 회의에서 장군들에게 고창에서 견훤에게 저항하는 삼태사의 평과 동원 가능한 전력에 대해 설명해준다

고창에서 고려가 대승을 하자 여태까지 조력한 공으로 왕건에게 큰 상을 받으며, 근거지인 재암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신라에서 사신으로 온 김굉이 골품으로만 보고 한참 연장자인 자신에게 하대를 하며 무례를 저지르자, 원래 서라벌의 진골들 대부분이 그런 부류인거를 아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직후 왕건에게 신라를 스스로 항복하게 하기 위한 공작에 대한 임무를 받는다.

2.7.2. 최정혜

재암성의 호족 최선필의 딸로 막내 시어머니이자 해량원부인(海良院夫人)(107화부터). 공산 전투를 도우러 온 연우와 만난다.그리고 연우는 그녀에게 반했다 동물을 키우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929년 가을 이후에 가족들과 같이 재암성을 빠져나와 충주로 같이 가게 되고, 의붓오빠 왕건의 청혼을 받게 된다.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승전을 하고 왕건과 고려군이 개경으로 개선을 한 이후에 혼례일이 정해져서 개경으로 상경하는 와중에 아버지가 보내준 돈과 왕건이 내준 돈으로 처소를 만들게 되는데, 부인이 늘어나는거를 불편해하는 기존의 다른 부인들이 공사를 진행하는 이들에게 압력을 넣어 공사가 지지부진한거를 왕건이 연우를 시켜 공사를 독려케 한다.

연우가 격구단에 쓸 말을 사러 교동도에 다녀온 직후에 개경에 도착하여 왕건과 정식으로 혼례를 하게 되고 해량원 부인이라 불리운다. 이후 종종 연우가 자주 찾아가서 챙겨준다는 말이 들려온다.

2.7.3. 손긍훈

흥덕왕 시절 효자로 이름난 손순의 후손. 후삼국시대가 열리고 호족들이 할거하면서 신라 조정에 세금을 바치치 않는 와중에도, 선조가 입은 은혜를 갚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세금을 낸다.

이를 서라벌을 무너트린 견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나, 자신의 악명이 더 커지기를 원하지 않고, 미덕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묵인하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일대 호족들이 진정으로 복종하지 않는다는거를 파악한 견훤이 손긍훈에게 협박을 하여 가보인 석종을 바치고, " 후백제의 신하로 충성맹세를 하라"는 강요를 지속적으로 당하자 최선필을 통해 고려 망명요청을 한다.

망명요청을 받아들인 고려가 정윤을 보내 일족을 데려가려는거에 감격하고, 도주 와중에 친분이 있는 근방 호족인 박윤웅이 형식상으로 추격하는거를 알고 도망가는거를 묵인해달라 요청한다.[49] 도주에 성공하여 명주에 도착해서는 왕무 부부를 믿는다 하고, 개경에 와서 왕건이 자신의 가문을 우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저택과 식량을 하사한거에 감격한다.

고려가 고창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전세를 역전하면서 강주를 공략하게 되면서 영지였던 응천군을 고려가 점령하게 되자 왕건이 손씨 일족에게 돌려주어 손자를 개경에 기인으로 두고 일족들과 같이 응천군으로 돌아가게 된다.

손자 손서당이 연우의 격구단에 합류했는데 격구를 굉장히 잘한다고 한다. 구단주 연우의 무관심과 인색한 지원에도 군말없이 활동했다. 손서당은 북벌할 때도 종군했는데 격구채로 거란 태후를 낙마시키는 큰 공을 세운다.

2.7.4. 홍술

진보성의 호족이자 왕건의 충신.

연우의 말을 듣고 사벌주로 향하던 임희가 공산 전투 고려의 대패로 끝나고, 왕건이 행방불명되자 구출하기 위한 협력을 구하기 위해 1순위로 거론했으나, 홍술이 왕건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을 견훤이 진보성 주변을 봉쇄해놨으리라고 예상한 연우가 만류한다.

이때 연우는 충성심이 있는 것은 좋은데 그 점 때문에 견훤에게 찍혀 집중공격을 당해 2년여 후에 전사한다는것을 알고 있어 안타까워 하며 결국 2년 뒤 전사한다.[50] 전사한지 6개월여가 지나 고려가 고창 전투에서 대승을 하게 되자 왕건이 일찍 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근거지를 의성으로 개칭해준다.

2.7.5. 윤신달

파평현의 호족이자 파평 윤씨의 시조, 왕건의 심복중 한명으로 '파평장군'이라 불리운다

연우의 활약을 듣고 아들을 보내 연우를 파평에 초대해서 자신이 관리하는 현 중에 하나인 표천현에 있는 사이비종교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원한다. 연우가 종교를 가장한 은광 밀채굴에 대해 알려주자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수 없는 일임을 알고 경악하며 왕건에게 보고한다. 이후 왕건에게 표천현의 은광을 감독하는 임무를 받게 된다.

해가 지나 출전하는 왕건을 따라 휘하 병력을 이끌고 다른 호족들과 같이 사벌주로 간다.

2.7.6. 김선평

고창의 성주이며 신 안동 김씨의 시조이다. 견훤이 군량을 요구하는 거를 거절하고 김행(권행), 장길과 같이 군사를 일으켜 맞서 싸우겠다 하고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에 연우가 직접 고창으로 오자 둘과 같이 마중을 나오며, 연우가 "성 내부의 전각에 있지 않고 문루에 있겠다"고 하자 담력이 대단하다 한다. 전초전이 끝나고 백제군이 압도적인 병력으로 성을 최대한 빠르게 함락시키기 위해 공성병기[51]를 앞세워 강공을 하는거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고 하면서 수성구를 준비하지 못했고, 성 안에 식량이나 소금만 있다는 답을 한다. 소금이 있다는거에서 해결책을 찾은 연우가 소금이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자 많이 비축해둔걸 백제군에게 주기 싫어 성 안으로 다 가져왔다고 답을 하며, 연우에게 소금을 땅에 뿌리면 얼어붙은 땅이 녹는게 사실이냐고 질문을 한다. 연우가 실험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는거를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나 얼어붙은 땅이 녹은거를 확인하고 그 땅을 직접 손으로 찔러서 이정도면 백제군이 공성병기를 운용하기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직후 다른 두 태사들과 같이 병졸들에게 소금을 성 밖에 뿌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임연객의 선동으로 백성들의 조력을 얻어 밤새 성 밖에 소금을 뿌린다. 다음날 공성에 다시 나선 백제군들이 진창이 된 성 주변에서 허둥대고 체력이 급격히 소모되는거를 보자 지렁이[52]의 부하들이 괴로워한다고 조롱하며 화살을 쏘라고 명령한다. 백제군이 후퇴를 하자 연우의 계책이 훌륭했다고 말하며, 백제군을 유인하기 위해 연우에게 현재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 달라 요청한다. 이후 백제군이 야습을 시도하나 이를 예상하고 역이용하여 야습을 한 부대에게 큰 피해를 주고, 고려군이 견훤의 본대를 격파하고 입성하자 같이 있던 사람들하고 같이 마중을 나오며 고창성에 직접 온 왕건에게 다른 두 태사들과 같이 큰 상을 받는다

2.7.7. 권행

고창의 호족으로서 안동 권씨의 시조이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90화 시점에서는 왕건에게 권씨 성을 받기 이전이라 성씨가 김씨이다. 삼태사 중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평을 듣는다. 주인공이 직접 자원해서 고창에 온거에 "고창 군민들이 감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백제와의 1차전이 끝나고 백제군이 압도적인 병력을 이용해 발석거의 엄호 하에 운제를 끌고와서 성벽을 넘으려는게 가장 골치아프다고 하고, 연우가 얼어붙은 땅에 소금을 뿌려 땅을 녹여 진창으로 만들어 운제를 봉쇄하는 작전을 제안하자 귀한 소금을 땅에 그냥 버리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직후 연우가 절충안으로 일단 좁은 땅에 소금을 뿌려 실험을 해보고 결정하자는 제안에는 동의한다. 어찌된 일인지 권씨 성을 받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2.7.8. 장길

고창의 호족이자 고창 전투에서 활약한 삼태사 중의 한명이고, 안동 장씨의 시조로서, 연우가 부석사에서 활약한거를 언급하며 명불허전이라 한다.

2.7.9. 함규

현대의 경기도 광주를 근거지로 하는 호족이자 딸 두명을 왕건에게 시집보냈고, 현재 좌승으로 불리운다. 아직 왕씨 성을 받지 못해 원래의 성인 함씨를 쓰고 있다. 원래 역사에서 박술희와 같이 왕무의 강력한 지지자였고, 근거지의 위치상 패서 호족들하고 대립[53]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신라를 항복시키는 임무를 맡은 대립하고 있는 유긍달이 신라가 시간을 끌려하는 행보를 취해 왕건에게 질책을 받는 와중에 왕건에게 서라벌 근처에 병력을 보내 신라 조정을 압박하는게 어떠냐는 진언을 하며, 연우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나 함규의 셋째 딸이 왕무의 두번째 부인이 되는거를 역사서를 읽어 알고 있는 연우가 답답해한다.

일단 구정에서 연우와 함규의 격구단이 대결을 하는 경기가 열리는 와중에 관람을 명목으로 서로 첫 접촉을 하게 되고, 연우와 현재 중국의 정세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연우가 광주원에 초청해달라는 요청을 하나, 수리 중을 명목으로 거절하며, 추후에 다시 얘기하자는 식으로 말을 한다.

연우가 크고작은 공을 세워 정윤파의 세력이 커지자 자연스레 정윤파로 합류한다.

3. 후백제

3.1. 견훤

서인석 후백제를 건국한 왕.

삼년산성 전투에서 이기고 나서 화엄종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남악파의 수장 관혜를 화엄종의 종정으로 세우려, 부석사에 무차대회를 열게 하고 왕자를 보내게 한다.

무차대회가 연우에 의해 파토가 나자 보고를 받고 극노하여 고려군과 대치중인 전선에 일제히 출진명령을 내리고, 도주하는 연우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부대를 이끌고 있는 관흔한테는 "연우를 반드시 죽이거나 사로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에 휘하 병력들의 체력과 준비한 군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왕건이 철군을 하자 역시 재정비를 위해 철군하고 추수 이후에 재공세를 가하여 나주를 함락한다.

해가 지나고 틈이 나는대로 사벌주에 공세를 가하여 영토를 넓히나 짧은 기간동안 잦은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휘하 병력들의 체력이 떨어져가는거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를 눈치챈 유금필과 연우의 진언을 받아들인 왕건의 결사적인 공세에 밀려서[54] 대패를 당해 간신히 도주한다.전사자만 8천이야! 8천!

이후 수비로 일관하면서 피해를 복구하는 한편, 기습공격을 위해 수군을 재편하는 와중에 자신에게 귀부했던 공직이 고려로 돌아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자, 완산주에 인질로 와 있는 공직의 자식들에게 단근질을 하여 발목 힘줄을 끊어놓는다.

총애하는 아들 금강을 후계로 세웠지만 신검 등 다른 아들들이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키자 고려로 망명한다. 그리고는 왕건에게 완산주에 사심관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백제멸망전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일리천 전투에서 이기도록 돕는다. 그러나 예전의 원한을 잊지 않은 왕건은 깍듯이 대하던 태도를 완전히 바꿔 호통을 친다. 이에 충격받은 견훤은 등창이 터져 인근 절에서 요양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3.2. 양검

견훤의 둘째 아들. 무차대회를 열어 관혜를 종정으로 선출하여 화엄종을 장악하려는 견훤의 명을 받아 관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동생과 같이 부석사에 방문한다. 연우의 사기극 직후에 종정이 되는게 득보다 실이 커서 발을 빼려는 관혜에게 원래 계획대로 종정에 오르라 종용하나, 관혜가 사정을 설명하자 어찌할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해가 지나고 강주도독으로서 손긍훈과 일족을 빼내어 도주하는 왕무 부부를 맹추격하는 와중에, 저번 부석사에서 당한 사기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았는지, 병사들을 시켜 "부부사기단을 반드시 체포하라"고 외치게 명한다.[55]

3.3. 용검

견훤의 셋째 아들로서 둘째형과 같이 부석사에 방문한다.

3.4. 능환

후백제의 개국공신이자 이찬.

견훤의 명을 받아 두 왕자를 돕고 무차대회에 대한 실무를 전적으로 맡기 위해 부석사에 방문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준비를 해왔나 과시하기 위해 왕무 일행에게 자신들이 방문객에게 돌리는 선물을 건네주라 부하에게 지시한다.

이후 연우의 사기극에 이의를 걸려, 연우가 밀고 있는 바위가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걷어차다가 고통을 받는다. 직후 연우의 사기극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관혜가 종정이 되는게 득보다 실이 큰 상황이 되어버리고 양검의 강권을 거절하는 관혜에게 격노하여, 무차대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관혜의 면전에서 "백제 조정이 이 무차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들어간 물자가 얼만지나 아냐"고 질책한다. 그러나 관혜가 질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자[56] 질책의 정도를 올리는 실책을 하고 만다.

직후 남악파 승려들을 비난하면서 같이 온 백제군들에게 도망가려는 왕무 일행을 잡아 죽이라고 명령한다. 해가 지나고 왕무 부부가 언양군에 몰래 상륙해서 손씨 일족을 데리고 도망가자 양검과 같이 맹추격을 하며, 연우의 계략에 의해 견훤에게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는 서라벌 일대 호족들이 추격을 주저하자 "저 부부가 있는 데서는 이상한 일밖에 없었다"고 "사기에 속지 말라"고 외치면서 추격을 종용한다. 그러나 매복해 있는 고려군이 연우가 만든 확성기를 이용해 음성을 높이자 예상했던거보다 적들이 더 많다고 후퇴를 명한다.

3.5. 최승우

전무송 혹은 파진찬 신라삼최의 일원.

후백제의 예부령 자격으로 공산 전투에서 패한 고려의 염장을 지르기 위해 견훤이 사신으로 보내지만[57] '자기 이름 쓰기'라는 연우의 헛점 찌르기에 패한다.[58] 패배 이후에 "연우가 최근에 개명한 거 아니냐"며 "반칙을 썼다"고 주장하나, 상산 근방의 고승들과 학자들이 "연우가 개명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을 해주고, 연우가 "백제의 정보력이면 적국 태자의 정혼녀 이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 않으냐"며 지적하자 할 말이 없어진다.

직후에 연우가 최승우가 이전에 자신이 서예 대결에서 이긴 학사들에 했던 말을 돌려주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썼던 글들을 다 찢어버리고 처소로 가버린다. 다음날 왕건을 대전에서 만나 국서를 전해주고 백제로 돌아간다. 그 후에는 신검의 쿠데타 때 금강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죽었다고 한다.

배수현이 평하기를 "얼굴이 얍삽하게 생겼다"고 한다.

3.6. 종훈

후백제의 술사로 능환을 돕기 위해 참석하고, 능환이 바위가 가짜인지 확인하려다 실패하고 바위를 미는 다른 수단이 있는지 찾기 위해 부하들과 같이 바위를 밀어보나 몇걸음 가지 못한다. 연우의 계략에 의해 무차대회가 파토나자, 격분하는 능환이 실언[59]을 하는 거를 황급히 제지하려 한다.

6년 후에 운주 전투에서 백제군이 대패를 하는 와중에 포로로 잡히게 되었고, 면식이 있는 연우에게 목숨을 구걸한다.[60]

4. 신라

4.1. 경순왕

현재 신라의 왕으로서 고창 전투에서 왕건이 대승을 거두는 와중에 주변 호족들이 사신을 보내 복속을 청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왕건에게 사신을 보내지 않아 왕건이 깐다.[61] 왕건이 사신을 보내라는 요구를 하자 마지못해 사신을 보낸듯 한다. 이후 해가 지나서 왕건을 서라벌로 초대하며, 서라벌에서 환영연회를 여는 자리에서 왕건과 따로 밀담을 나누며, 본인은 신라에 답이 없어 고려에 귀부를 하고 싶어 하는거 같으나, 내부에 반대가 무지 심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4.2. 마의태자

경순왕의 장남이자 신라의 태자이다.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는거를 결사반대하는 이들의 대표격이며, 왕건의 서라벌 방문 환영연회에 참여하나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한다.

5. 발해

5.1. 대광현

고려에 귀부한 발해 태자. 중성적인 미남이다.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발해군왕에 임명된다.

6. 말갈(여진)

백두산의 대분화 이후, 고려와 합심해서 거란에 대항한다.

6.1. 필제특아공

필제특부의 부족장.

6.2. 각랍라영신

각랍라부의 부족장.

6.3. 포탈철림

포탈부의 부족장.

포탈부의 경우, 고려인들이 만들어주고 떠난 배를 해체하였다. 그 후, 백두산 대분화의 영향으로 산에서 회색 물이 쏟아져 강이 흘러넘칠 때, 가죽으로 만든 작은 고기잡이배에 탄 사람들도 있었고 나무로 된 가재도구를 붙들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회색물이 쏟아져 내려왔으며, 그 회색 물결이 작은 고기잡이배를 휩쓸고 지나갔고, 회색 물결에 휩쓸리자 고기잡이 배와 그 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가재 도구를 붙들고 버티던 포탈부 사람 단 3명만이, 필제특부와 각랍라부에 의해서 구조되었고 나마지는 전멸하였다.

7. 거란

7.1. 야율이호

거란의 황자. 황제 야율덕광이 화북에서 진나라와 전면전을 치르는 동안 수도인 상경 임황부에서 국무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가 약 6만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 북상해오자 기겁해 대응에 나선다.

승상 슐률노속과 같이 중원에 나가지 않은 군사들 전부를 싹싹 긁어모으고, 야율덕광이 지원보낸 군단까지 합쳐 4만에 달하는 대군을 편성.[62] 부여진 너머에서 고려와 야전을 치른다. 1만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마술과 높은 사기를 보여주며 우세를 점하고, 이에 자신이 미래의 거란 대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나, 후방을 들이친 고려의 보병 위주 별동대에 의해 태후가 포로로 잡히고 이에 발맞춰 전면적 총공세를 가해온 고려에 의해 결국 군이 무너지고 패퇴한다.

승상 슐률노속이 후방의 고려보군을 막으라고 미리 빼준 덕에 야율이호는 겨우 도망칠 수 있었지만[63], 오천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상경 수비는 암울했다. 게다가 중원에서 싸우던 거란의 본군에 본토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 황제 야율덕광은 사망, 종군하던 조카 야율올욕이 군대를 장악하고 거란황제를 자칭한다.

이에 제위를 얻기 위해서 고려에 원조를 청하면서, 사실상 만주 지역의 이전 발해 영토는 거의 다 회복을 포기하게 된다. 고려에서는 1만명의 포로 중 절반은 풀어주어 연운의 거란군에게 수비는 가능하도록 해 내전이 길어지도록 계획하고 있다. 태후 슐률평 역시 거란 제실의 최고어른이기에 한참을 더 쥐고 있을 예정.

결국 이 때 넘긴 요동과 발해의 강역은 끝까지 되찾지 못했다고 언급된다. 약 30년 후에 왕무가 죽자, 거란이 다시 군사를 끌고 공격했지만 연우가 직접 전장에 나와서 야전을 벌일 준비를 하자, 결국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고려에게 당하고 거란 제국의 중원 정복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요나라 사서에는 고려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길게 나와서 미래 교차검증의 훌륭한 사료가 되었다.

8. 기타

8.1. 궁예

김영철 세간에는 '폐주'라 지칭되며 918년에 있었던 역성혁명때 사망했으나 과거에 대해 언급할 일이 있을때 종종 언급된다.
삼국 통일 이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왕건에게 저항하는 호족들을 왕건이 뜻을 꺾게 하기 위해 관심법을 언급하면서 궁예의 폭정을 겪었던 호족들을 떨게 한다.

8.2. 마후라

천축 출신 고승으로서 40여년 전에 고향을 떠나 중국을 통해 고려로 입국하게 된다.

환영 행사때 왕건이 공주들에게 지시를 내려 고려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거를 먹는 와중에 연우가 고향의 음식인 카레라이스를 대접하자 과거에 다른 천축인이 온 적 있었냐고 왕건에게 물어보면서 답을 듣고 왕건이 연우를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큰며느리라고 소개하자 연우의 본질을 꿰뚫어 본듯이 '소년'이라 칭한다.[64] 그러나 부질없다는 답을 하고 연우에게 고향의 음식을 대접해줘서 감사하다고 마음이 혼란할 때 읽으면 도움이 될거라고 글을 써서 주머니에 넣어서 준다.[65]

해가 지나 930년 봄이 되어서 건강이 안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후 왕건과 왕무 연우 부부의 문병을 받게 되는데, 연우가 만들어온 카레를 먹고 나서 자신이 남긴 주머니에 있는 글을 연우의 마음이 가장 혼란할때 읽어보라는 조언을 남기고, 먼저 글을 훔쳐본 사람이 있으면 그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훗날의 화를 피할수 있을거라 한다.[66] 그리고 쾌차하면 설법을 들으러 오겠다는 왕건에게 자신의 수명이 다했다고 하고, 얼마 후 입적한다.

마후라 대사가 준 글귀는 "네 다리 아래를 보라"라는 사자성어였다. 왕건의 사정에도 들어맞고, 임연우의 경우에는 생물학적으로도 들어맞는 글귀였다. 임연우가 김선우로서의 자아를 버리고 왕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 결정적 포인트가 되었다.

8.3. 왕노인

왕창근의 상단에 머무르고 있는 인물. 연우는 처음에 창근의 친족으로 알았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비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연우의 공이 높아지면서 한림학사에서 물러나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이를 잠재울 일을 터뜨려보라는 왕건의 지시에 연우는 다시금 왕노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난데없는 부탁에 의아해하던 왕노인이었으나 이내 하인으로 분장한 최언위가 그를 알아보는데...

정체
왕노인의 정체는 실종되었다 알려진 신라삼최 중 1명, 최치원이었다. 이전부터 왕노인의 비범함을 의심하던 연우는 팔관회에서 왕노인이 자신이 읊은 이규보의 시를 정확히 평가하자 해인사 얘기를 꺼내 왕노인을 떠보면서 그가 최치원임을 얼추 확신하고 필요한 때 써먹기 위해 계속해서 이규보의 시를 종종 거론하며 붙들다가 때가 되자 그의 정체를 폭로해 고려에 귀의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런 연우의 계책에 넘어갔음을 깨달은 최치원은 정체를 들킨 시점에서 빨리 떠났어야 했다며 가볍게 탄식하면서도 고려에 남기로 결심한다. 다만 본인은 조국인 신라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며 출사를 거부했으며 이후에는 상산저에서 손님으로 머무르게 된다.

신라말 명성을 떨친 신라삼최 중 으뜸으로 받들어지고 있는데다 정체를 가장 먼저 간파한 것도 연우다보니 연우에게 학문과 식견을 가르친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최치원 본인 입장에서는 생뚱맞은 소리인지라 이를 부정하지만 워낙 세상일과 손을 뗀 인물이라 그런지 주위에서는 세상일에 관여한 게 들키기 싫어서 둘러된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고 연우 역시 사실이 아닌걸 알면서도 역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기에 침묵을 유지하며 학벌사기를 치는는 중이다

[1] 왕건의 아들을 낳은 왕후들중에 임희 본인이 감당 못해내는 대호족을 아버지로 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정윤과 이 결혼하면 이들과 대결을 하면서 정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충주 왕후의 아버지인 유긍달과 황주 왕후의 아버지인 황보제공을 도저히 적이 된다면 감당할수 없다고 한다. [2] 둘이 사이가 나쁜거는 삼한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어 둘이 초대 병부령 순군부령을 각각 맡았어도 특정 가문의 병권 독점을 우려하지 않았을 정도이고, 서로의 영지가 맞붙어 있는데, 서로를 경계하여 접경지대에 사병을 각각 배치해놓았다. [3] 당시에는 책을 만들려면 필사를 해야 해서 책값이 매우 비쌌다. [4] 아직 고려가 건국된지 오래되지 않아 예법이 정착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5] 친정아버지인 임희도 딸이 정윤비가 되고 나서도 역시 말을 놓는다. [6] 왕건이 호족들의 힘을 빼놓기 위해 운영비용이 많이 드는 격구단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이 격구단이 사병의 규모와 무장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는 개경에서 유사시에 쓸 수 있는 기병 20~25명 정도를 추가로 얻게 되는 것이라 호족들이 왕건의 의도를 알면서도 만들 수밖에 없다. [7] 930년 기준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는 나이로 이 시대 남자들 치고는 늦게 결혼한 거지만, 여동생의 결혼으로 인해 대호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비슷한 수준의 가문들이 혼사를 꺼리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연우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8] 이 작품에서는 왕건이 장보고 딸의 후손임을 주인공이 밝혀냈기 때문에 이로서 장보고와 왕건의 얼굴이 닮은 이유도 해명되었다는 농담도 있다. [9] 이 점에서는 작가의 전작인 내마속의 제갈량과 비교된다. [10] 왕건이 나오는 매화 댓글마다 제발 한대만 때려줬으면 좋겠다는 글이 반드시 달리다시피 한다. [11] 물론 일러스트 상으로는 어마어마한 미소녀이지만, 초반에 나온 연우의 자기평가에서는 '평범한데 살짝 매력이 있는 정도'라고 했고, 임희, 임연객 등 가족들도 용모가 평범하다고 묘사되는 등 연우의 외모는 평범에서 조금 위 정도의 설정이다. 그래서 본인도 미중년이며 특히 왕후들은 모두 절세미인에 그 자식들까지 미남 미녀인, 그야말로 '아름다운 일족'의 수장인 왕건의 눈에 찰 정도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 이때 왕무도 시간 간격을 두고 북방을 순시하고 오라 지시를 하여, 연우와 둘이 같이할 수밖에 없게 하도록, 연우에게 호위병을 적게 배정하는 식으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짜놓았다. [13] 독자들의 생각으로는 현재 견훤하고 싸워야 하는데 후계가 왕무로 기울게 되어버리면 결혼동맹으로 끌어들인 호족들의 협조를 받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했다 추정되고 있다. 이 추측은 맞아떨어져서 74화에서 왕건이 인정한다. [14]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시) [15] 그 화의 베댓이 "일반적인 아버지면 아들을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는데, 왕건은 며느리까지 같이 보내면 알아서 같이 기어나오고 황금까지 주워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16] 연초에 임희가 연우를 나주원에 보내면서 "현재 국가예산의 8할을 국방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17] 외가가 멸문당해 처지가 곤궁한데 임희나 연우가 그런 왕무를 외면할수 있을 사람이 아니라 말했다. [18] 하지만 연우로서는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봤으니 영험한 고승은 맞다. [19] 이 와중에 연우가 흉통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고 나서는 나도 과식을 너무 해서 그런 거 같다고 말을 해서 연우를 부끄럽게 만든다. [20] 아찬 김굉이 사신으로 왔으며, 이 사람은 마의태자와 같이 항복을 결사반대한 사람이다. [21] 왕무 연우 유긍달 최선필 최언위 [22] 이때 연우에게 죽음을 앞두고 괴로웠는데, 연우 덕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걸 알게되어 두려움이 없어졌다며 감사를 표했다. 연우가 소나무숲에서 혼자인 줄 알고 자신이 전생했다고 크게 외친적이 있기 때문. [23] 그 후에는 분위기가 잡힐 때마다 이름을 부른다. [24] 세간에는 폐주라고 지칭된다 [25] 이 와중에 죽령을 틀어막고 연우를 생포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를 이끄는 관흔이 공세종말점에 달해 스스로 돌아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연우가 같이 타던 말에서 내리자 아쉬운 기색을 보인다. [26] 그래서 TS물이 아니었다면 연우가 욕을 먹었다는 게 중론이며 연우가 여우짓할 때마다 왕무 몸에서 사리 나오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실제로 혼인 후 관계 거부는 이혼사유다. [27] 두 사람의 금슬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서 연우가 슬퍼하기만 할 것이라고 여겨서 거란이 침략해올 정도였다. [28] 왕건의 부인으로서의 연우의 시어머니는 29명이지만, 남편인 왕무의 친모로서의 시어머니는 장화왕후 오씨이다. [29] 다른 왕후나 부인들은 친정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참고로 유금필도 본인의 세력은 미약하나 그 딸인 동양원부인이 기거하는 동양원이 나주원보다는 사정이 낫다. [30] 은광을 갖고 있어 집안의 돈줄인 며느리가 다치면 안될 일이기도 하고 왕무가 고창성에서 가마솥 뚜껑 들다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31] 이걸 들은 연우는 기겁한다. [32] 진짜 이유는 따로 있으나 왕건이 이유를 아는 사람들에게 어명으로 입막음을 했다. [33] 연우가 동양원부인에게 호감을 많이 느껴서 흐지부지 넘어가긴 했어도 이 건은 동양원부인이 연우와 상산 임씨 일가를 왕위쟁탈전으로 꼼짝없이 끌어들인 일인데, 친정아버지와의 상의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으며, 상의도 없이 했다면 더더욱 비판을 받아야 할 문제이다. 이렇게 슬쩍 넘어가는 것도 정치력이다 [34] 왕무가 연우 일편단심이라도 왕무의 직위와 현 입장상 정략결혼으로 싫어도 연우 외의 부인을 들이게 될 확률이 높다. [35] 고창 전투때 유금필이 자신의 작전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패서 호족들의 반감을 크게 살 행동을 했다. [36] 배수현이 밥상을 차려와서 박술희한테 가져왔는데, 박술희가 개미가 좋지 못하다고 하면서 다시 차려오라 하는거부터 해서 식사 자리에서 박술희가 배수현의 밥그릇에 곤충을 얹어주는 등(...). [37] 선필과 마찬가지로 신라에 대해 복잡한 애증을 갖고 있었던 모양. [38] 이미 황보인혜하고 각각 선역 악역을 맡기로 공모를 했었다. [39] 특히 김씨 [40] 고려시대 명예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녹봉을 지급하지 않았다. [41] 만약에 연우가 그런 발언을 했으면 남악파와 북악파간의 대립이 더 심해질 뿐더러 견훤의 성격상 희랑이 무사할 보장을 하기 힘들 수도 있어서 그런거로 추정된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서 자신의 예언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도 있고. [42] 현재 고려의 군사기밀로 지정되 있는 연우의 트릭에 대해 왕건한테 들었다. [43] 이는 공산 전투 직후 최승우가 적은 고려 입장에서는 매우 모욕적인 국서의 내용때문이다. [44] 여기서 임연객이 여동생이 해서 자신을 통해서 전달해주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본인이 고안할 능력도 없는데 그걸 했다고 말하면 추후에 감당 못할 일이 닥칠 거라는 거를 알아서. [45] 경상북도 안동시. 고창 전투 참조. [46] 신숭겸,홍유,배현경,복지겸 [47]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48] 왕건은 나이가 많은 중요한 호족들에게 상보라 불렀다. 상보는 아버지라는 뜻인데 왕건은 선필이 처음 도와줬을 때 '아빠'라고 불렀다(...) [49] 박윤웅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 기반을 버리고 가는 손긍훈의 의지에 감격해 도주를 묵인해준다. [50] 이 와중에 연우는 구해주려고 왕건에게 견훤의 공세계획을 말하려 했으나 중간에 유금필이 막는다. [51] 발석차,운제 [52] 견훤을 싫어하는 이들이 견훤을 토룡의 후예라 불렀다 [53] 한산주의 치소가 광주에 있어 고려가 건국하기 전에는 패서 호족들이 굽신거렸으나, 고려 건국 이후에는 반대가 되었다. [54] 유금필의 기병돌격이 결정타가 되었다 한다. [55] 병사들이 자신과 왕무를 부부사기단이라 지칭하는데는 연우가 화를 냈지만, 같이 들려오는 왕건,궁예의 사이비 집단을 토벌하자는 외침은 납득(...)을 한다. [56] 견훤에게 직접 찾아가서 사죄를 하겠다고는 했으나 끝내 종정에 오르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57] 이 와중에도 견훤과 후백제군이 서라벌에서 저지른 만행에 분노한 최언위에게 방벌이라 불가피한 일이었다 주장한다. [58] 주인공의 독백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자기 이름을 쓰는 법부터 익히기 때문에 서예가 미숙한 시절부터 많이 써온 자신의 이름은 필체가 뇌리에 박혀 거의 개선되지 않으며 이때문에 를 즐겨 쓴다고 한다. 이때문에 최승우는 자신의 관직은 뛰어난 필체로 써냈으나 이름은 악필이였던 반면, 주인공은 자신을 김선우라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임연우라는 이름을 자신의 신분과 균일한 필체로 쓸 수 있었다. [59] 명망높은 고승의 면전에서 "우리가 이 무차대회를 위해 얼마나 쓴지 아냐"고 윽박지르면서 고함을 지르는 등의 행위 [60] 연우는 이후 있을 견훤의 망명을 위해 이들을 살려서 개경으로 압송하자고 왕건에게 말한다. [61] 이 와중에 황보제공은 저들 입장에서 역적인 견훤이 세운 왕이니 퇴위시키고, 고려와 친하게 지냈던 박씨를 왕으로 세워야 한다 주장한다 [62] 후일 연운 16주 너머 개봉에 원정중인 거란군이 5만으로 밝혀진다. 퇴각손실을 합쳐도 현 거란 총력의 4할에 달하는 셈. [63] 그마저도 연우가 부석을 깎고 날붙이를 꽂아 흘려보내서 제대로 도하도 못했다. [64] 이를 들은 연우는 속으로 크게 놀라고, 같이 들은 왕건은 '소녀'라는 단어를 외국인이 발음을 잘못 말한 거로 보고 별일 아닌 듯이 넘어간다. [65] 사실 강황 문서에서 보듯 일반인이 시판 카레와 비슷한 물건을 향신료 조합으로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다. 본작에서도 수없이 많은 실험과 실패를 했다고 나온다. [66] 이 말을 들은 왕건은 놀라면서 예를 더욱 갖춰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