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22:55:42

덕종(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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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윤 황태자 · 왕태자 ·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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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 왕후 · 왕태후 · 왕태자
왕자 : 국조 ~ 문종 · 선종 ~ 공양왕
왕녀 : 태조 ~ 문종 · 선종 ~ 공양왕
※ 작호가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사람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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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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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세가(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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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fedc89>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성종 · 목종 현종 · 덕종
<rowcolor=#670000,#fedc89>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문종 · 순종 선종 · 헌종
<rowcolor=#670000,#fedc89>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숙종 · 예종 인종 · 의종 · 명종 신종 · 희종 · 강종
<rowcolor=#670000,#fedc89>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고종 원종 충렬왕
<rowcolor=#670000,#fedc89> 33·34·35권 36권 37권
충선왕 ·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 충정왕
<rowcolor=#670000,#fedc89>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열전 45·46권
공민왕 우왕 · 창왕 공양왕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표(表) ]
86·87권 「연표(年表)」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88권 「후비1(后妃一)」
89권 「후비2(后妃二)」
90권 「종실1(宗室一)」
91권 「종실2(宗室二)」· 「공주(公主)」
태조
신혜왕후 유씨 · 장화왕후 오씨 ·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 신정왕태후 황보씨 · 신성왕태후 김씨 · 정덕왕후 유씨 · 헌목대부인 평씨 · 정목부인 왕씨 · 동양원부인 유씨 · 숙목부인 · 천안부원부인 임씨 · 흥복원부인 홍씨 · 후대량원부인 이씨 · 대명주원부인 왕씨 · 광주원부인 왕씨 · 소광주원부인 왕씨 · 동산원부인 박씨 · 예화부인 왕씨 · 대서원부인 김씨 · 소서원부인 김씨 · 서전원부인 · 신주원부인 강씨 · 월화원부인 · 소황주원부인 · 성무부인 박씨 · 의성부원부인 홍씨 · 월경원부인 박씨 · 몽량원부인 박씨 · 해량원부인
태자 왕태 · 문원대왕 왕정 · 증통국사 · 대종 왕욱 · 안종 왕욱 · 왕위군 · 인애군 · 원장태자 · 조이군 · 수명태자 · 효목태자 왕의 · 효은태자 · 원녕태자 · 효성태자 왕림주 · 효지태자 · 태자 왕직 · 광주원군 · 효제태자 · 효명태자 · 법등군 · 자리군 · 의성부원대군 · 안정숙의공주 · 흥방궁주 · 대목왕후 · 문혜왕후 · 선의왕후 · ( 정덕왕후 소생 공주) · 순안왕대비 · ( 흥복원부인 소생 공주) · ( 성무부인 소생 공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혜종 정종 광종
의화왕후 임씨 · 후광주원부인 왕씨 · 청주원부인 김씨 · 궁인 애이주 문공왕후 박씨 · 문성왕후 박씨 · 청주남원부인 김씨 대목왕후 황보씨 · 경화궁부인 임씨
흥화궁군 · 태자 왕제 · 경화궁부인 · 정헌공주 · 명혜부인 경춘원군 · ( 문성왕후 소생 공주) 효화태자 · 천추전부인 · 보화궁부인 · 문덕왕후
경종 성종 목종
헌숙왕후 김씨 · 헌의왕후 유씨 · 헌애왕태후 황보씨 · 헌정왕후 황보씨 · 대명궁부인 유씨 문덕왕후 유씨 · 문화왕후 김씨 · 연창궁부인 최씨 선정왕후 유씨 · 궁인 김씨
- 원정왕후 · 원화왕후 - }}}
현종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평양공 왕기 · 검교태사 왕충 · 효정공주 · 천수전주 · 인평왕후 · 경숙공주 · 효사왕후 · 효경공주 · 경성왕후 · 아지
덕종 정종
경성왕후 김씨 · 경목현비 왕씨 · 효사왕후 김씨 · 이씨 · 유씨 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문종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대각국사 왕후 · 상안공 왕수 · 도생승통 왕탱 · 금관후 왕비 · 변한후 왕음 · 낙랑후 왕침 · 총혜수좌 왕경 · 조선공 왕도 · 부여후 왕수 · 진한후 왕유 · 적경궁주 · 보령궁주
순종 선종
정의왕후 왕씨 · 선희왕후 김씨 ·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숙종 예종
명의태후 유씨 경화왕후 이씨 · 문경태후 이씨 · 문정왕후 왕씨 · 숙비 최씨
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승덕공주 · 흥경공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인종 의종 명종
폐비 이씨 · 폐비 이씨 · 공예태후 임씨 · 선평왕후 김씨 장경왕후 김씨 · 장선왕후 최씨 광정태후 김씨
대령후 왕경 · 원경국사 충희 · 승경궁주 · 덕녕궁주 · 창락궁주 · 영화궁주 효령태자 왕기 · 경덕궁주 · 안정궁주 · 화순궁주 왕선사 · 왕홍기 · 왕홍추 · 왕홍규 · 왕홍균 · 왕홍각 · 왕홍이 · 연희궁주 · 수안궁주 }}}
신종 희종
선정태후 김씨 성평왕후 임씨
양양공 왕서 · 효회공주 · 경녕궁주 창원공 왕지 · 시령후 왕위 · 경원공 왕조 · 대선사 경지 · 충명국사 각응 · 안혜태후 · 영창공주 · 덕창궁주 · 가순궁주 · 정희궁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강종 고종 원종
사평왕후 이씨 · 원덕태후 유씨 안혜태후 유씨 순경태후 김씨 · 경창궁주 유씨
수령궁주 안경공 왕창 · 수흥궁주 시양후 왕이 · 순안공 왕종 · 경안궁주 · 함녕궁주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제국대장공주 · 정신부주 · 숙창원비 김씨 계국대장공주 · 의비 · 정비 · 순화원비 홍씨 · 조비 · 순비 허씨 복국장공주 · 조국장공주 · 경화공주 · 명덕태후 홍씨 · 수비 권씨
강양공 왕자 · 소군 왕서 · 정녕원비 · 명순원비 세자 왕감 · 덕흥군 용산원자
충혜왕 공민왕 공양왕
덕녕공주 · 희비 윤씨 · 화비 홍씨 · 은천옹주 임씨 휘의 노국대장공주 · 혜비 이씨 · 익비 한씨 · 정비 안씨 · 신비 염씨 순비 노씨
석기 · 장녕공주 - 세자 왕석 · 숙녕궁주 · 정신궁주 · 경화궁주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rowcolor=#670000,#fedc89>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rowcolor=#670000,#fedc89>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rowcolor=#670000,#fedc89>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rowcolor=#670000,#fedc89>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
121권
<rowcolor=#670000,#fedc89>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rowcolor=#670000,#fedc89>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
123권 「폐행1(嬖幸一)」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2(嬖幸二)」
윤수 윤길보 (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1(姦臣一)」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2(姦臣二)」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27권 「반역1(叛逆一)」 128권 「반역2(叛逆二)」 129권 「반역3(叛逆三)」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
<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131권 「반역5(叛逆五)」
한순 다지 · 홍복원 (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6(叛逆六)」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 신창(창왕)) }}}}}}}}}}}}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제9대 대왕
덕종 | 德宗
파일:덕종 숙릉 정비 후 사진.jpg
숙릉 전경
출생 1016년 6월 9일
고려 개경 개성부 연경궁
(現 경기도 개성시 만월동)
즉위 1031년 6월 17일
고려 개경 정궁 중광전
(現 경기도 개성시 만월동)
사망 1034년 10월 31일 (향년 18세)
고려 개경 정궁 연영전
(現 경기도 개성시 만월동)
능묘 숙릉(肅陵)
재위기간 고려 연경군
1020년 5월 19일 ~ 1022년 6월 26일 (2년)
고려 왕태자
1022년 6월 26일 ~ 1031년 6월 16일 (8년)
고려 제9대 대왕
1031년 6월 17일 ~ 1034년 10월 31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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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본관 개성 왕씨
흠()
부모 부왕 현종
모후 원성왕후
형제자매 6남 8녀 중 장남
왕후 경성왕후, 경목현비, 효사왕후
자녀 2녀
종교 불교
원량(元良)
묘호 덕종(德宗)
시호 광장강명선효경강대왕
(光莊剛明宣孝敬康大王)[1]
봉호 연경군(延慶君)
절일 인수절(仁壽節) → 응천절(應天節) }}}}}}}}}
1. 소개2. 생애
2.1. 즉위 전2.2. 즉위 후
2.2.1. 대 거란 강경 외교2.2.2. 외치2.2.3. 내치
2.3. 붕어
3. 가족관계4. 태묘 악장5.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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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효성스러웠고 명신들을 등용하여 조정을 잘 이끌었으며 백성들도 편안히 생활했으니 (德)이라는 이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이제현의 평.
"나면서부터 숙성하고 성품이 강직하며 과단성이 있었다. 장성해서는 벽돌을 밟기만 하면 깨어지니 사람들은 그의 덕이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 고려사》 <덕종 세가>, 3년 9월 계묘일.

고려의 제9대 대왕이자 해동천자.

묘호는 덕종(德宗), 시호는 광장강명선효경강대왕(光莊剛明宣孝敬康大王). 휘는 흠(欽). 자는 원량(元良). '중흥지주'였던 명군 현종(제8대)의 맏아들로, 부왕의 훌륭한 치세를 잘 이어나갔으나 요절한 탓에 많은 업적을 쌓지는 못했다.

2. 생애

2.1. 즉위 전

봉호 연경군(延慶君) 연경궁(延慶宮)의 가신
훈위 상주국 가장 높은 훈위
공신호 숭인광효보운공신
문산계 품계 개부의동삼사 종 1품 품계로 가장 높은 품계
수직 수사도 수직은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품계의 직위를 받을 때 붙힌다.
겸교직 검교태사 검교는 직위에 이름만 올렸다는 뜻으로 명예직이다.
직위 내사령 내사령은 내사성[2]의 명목상 장관[3]으로 명예직이며 실권은 없다.

1016년 5월 2일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현종 원성왕후 김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군이었던 부왕을 빼닮았는지 어린 시절부터 결단력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1020년에 연경군(延慶君)에 봉해졌고, 1022년에 태자에 책봉된 후 1031년에 부왕 현종이 붕어하자 중광전[4]에서 즉위했다. 그는 아버지가 붕어하자 방에서 하루종일 울며 슬퍼했다.[5] 아버지가 붕어하자 16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선정을 펼쳤다.

덕종은 현종의 공인된 후계자로서 왕태자(王太子)에 봉해졌다. 덕종 이전에는 공인 후계자의 작위를 '정윤'(正胤)[6], '태자'(太子)[7], '개령군'(開寧君)[8]으로 불렀는데 덕종부터 태자로 고정되어 봉해졌고, 충렬왕이 마지막 태자가 되었다.[9]

또한 고려의 임금 중 마지막으로 궁원(宮院)에 봉해진 군(君)이다. 덕종은 아버지 현종이 대량원(大良院)에 봉해진 것처럼 연경원[10]에 봉해졌고, 덕종이 마지막 사례가 되었다. 이후의 군주들은 태자로서 국왕이 되거나 옛 국가나 영지를 하사받은 제후 상태에서 즉위했다.[11]

2.2. 즉위 후

2.2.1. 거란 강경 외교

덕종 즉위 초인 1031년 요나라에서는 거란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었던 성종 야율융서가 붕어하고, 흥종 야율지골이 즉위했다. 요 성종의 장례식 준비 기간 동안 거란은 압록강 유역에 부교와 여러 보루를 쌓아두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조정에서는 이를 무너뜨리는 것과 거란과의 전쟁 때 포로가 된 고려인들의 송환을 요구했는데 거란이 이를 거부하자 당대의 중신이었던 서눌[12] 왕가도[13]는 "이놈들이 우리 말을 쌩까니 어이없네요. 그냥 사신을 끊죠"라고 진언했다.

왕이 이를 받아들여 11월에 거란으로의 사신 파견을 중단하는 한편 흥종에게 사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전황제 성종 연호인 '태평'(太平)을 계속 사용하는 등 강경 일변도를 유지했다. 거란 흥종이 사용한 연호는 '경복'(景福)과 '중희'(重熙)였는데 이 해의 연호는 '경복'이었다. 1032년 1월 또 다시 거란이 사신을 보냈지만 그냥 무시했다.

한편 거란에서 후궁이던 흥종의 생모가 선제 성종의 황후로부터 태후 자리를 빼앗고, 그들을 살해하는 정변이 일어나 이 여파로 1031년부터 옛 발해인 고진상, 왕광록이 투항했고, 1032년 3월 고선성, 고진성, 최운부, 이운형 등 20명에 달하는 거란의 중앙 관료 출신 귀족들이 대거 고려로 망명했으며, 4월에는 고위 관료 해가, 내을고 등 30명이 귀순했고, 6월에는 우응, 약기 등 50명이 망명했다. 덕종은 이들을 모두 받아들였고, 같은 해 거란의 군인 7명을 체포했다.

이런 긴장 관계 속에서 끝내 1033년 10월 거란군이 정주(靜州)에 침입해오자 맞서서 격퇴하기도 했다.[14] 거란이 갑자기 침입한 것은 덕종이 수축하기 시작한 고려 북계의 천리장성의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命平章事柳韶, 創置北境關城.
평장사 류소를 시켜 북쪽 국경에 관성을 축조하도록 했다.
- 《 고려사》 <덕종 세가> 1033년 8월 중.
당시 거란은 명군 성종의 붕어 전후로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지도층은 분열하여 국력이 심하게 기울어 가던 상태였다. 이런 거란의 재침입에 대비하여 덕종은 영인진(寧仁鎭), 삭주(朔州), 파천현(派川縣) 등 북방의 요새를 축성하여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고려사》 < 왕가도 열전>에는 왕가도, 류소, 이단 등 조정의 중신들이 덕종에게 거란을 침공하자고 강하게 건의했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고, 덕종은 태묘에 들어가 점을 쳐보고는 결국 포기했다고 기록했다. 이미 아버지 현종 대에 흥료국을 지원하기 위해 거란을 공격했지만 큰 성과를 못본 것 역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15]

2.2.2. 외치

현종 대부터 점차 타국에 품계를 내리거나 책력의 반포, 조공 무역을 늘려가기 시작했는데 덕종 대부터 고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명성이 퍼졌을 정도로 강성한 국력을 자랑하게 된다. 《 고려사》 <덕종 세가>의 내용 절반은 타국이 조공하러 오는 것일 정도이다.

현종에게 책력을 받은 철리국(鐵利國)의 왕인 무나사(武那沙)는 약오자(若吾者) 등을 보내 준마와 담비 가죽을 조공해 무역을 지속적으로 행하였으며, 무나사는 다시 사신을 보내 고려와 외교 관계를 이어가고자 했고 덕종은 하사품을 크게 주어 화답했다. 요나라의 남부에 거주하던 해가(奚家) 민족, 발해 유민들은 계속하여 고려로 이주하였다.

울릉도의 성주(城主)는 아들 부어잉다랑(夫於仍多郞)을 보내 덕종에게 특산물을 조공했다. 북송은 무역 상인편에 여러 외교 문서를 보내 간접적으로나마 무역과 외교 관계를 이어갔다. 서여진 200여 명이 북계 천리장성을 쌓는데 도움을 주자 그들의 관작을 높여주기도 했으며, 투항한 동여진 350호의 거주지를 동번으로 정하는 등 여진의 거처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동여진과 서여진의 영새대장군(寧塞大將軍), 장군(將軍) 등이 170여 명과 같이 와서 병기, 준마, 특산물을 조공했으며 장군 모이라(毛伊羅)는 현종의 선릉을 제후로서 참배했는데 다음 관작들은 전부 고려가 봉한 것이다.[16] 대상[17], 원보[18], 정보[19] 원윤[20], 정조[21], 보윤[22]은 고려의 향직 품계, 봉국대장군, 회화장군, 귀덕장군은 고려의 관작명이다.

2.2.3. 내치

한편 덕종은 고려 역사상 처음으로 국자감시를 시행하여 폭넓은 인재 등용의 체계의 기반을 마련했다. 국자감시는 국자감에서 실시한 예부시의 예비 시험인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시험을 시행하면서 처음으로 중앙의 국자감생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선발된 인재들에게도 응시 자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재 등용의 폭이 한층 넓어진 셈이다.

또한 덕종 3년 전시과를 개정하고 선왕 현종 때부터 복원하기 시작한 《7대 실록》의 완성을 보는 등의 크고 작은 치적들을 남겼다.

2.3. 붕어

짐(朕)의 병이 낫질 않으니 이미 대점(大漸)[23]에 이르렀다. 마땅히 사랑하는 동생 평양군(平壤君) 형(亨)으로 하여금 보위(寶位)를 잇게 하라.
- 《 고려사》 <덕종 세가>에 기록된 덕종의 고명(顧命).[24]

어린 나이에 현종의 뒤를 이어 태평성대를 잘 이끌어 나갔지만 불행하게도 몸이 병약했다. 그 때문인지 재위 3년만인 1034년 9월 병석에 누웠고, 왕위를 동생 평양군 왕형에게 물려준 뒤 만 19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이 탓인지 치적은 준수한 데 비해 인지도는 낮은 편에 속한다. 덕종의 능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거쳐 유실된 상태였으나 2016년 해선리 1릉을 발굴해 '숙릉'으로 발표했다.
파일:숙릉의 도굴갱.jpg
숙릉 발굴 초기 모습
파일:덕종 숙릉 정비 후 사진.jpg
숙릉 최근 모습

덕종에 대해 고려 말의 유학자 이제현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제사를 잘 모셨고 왕으로서 여러 인재를 등용시켰으니 '덕'(德) 자에 어울리는 임금이라고 호평을 내렸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등극하여 거란 차단, 여진 복속, 국가 시험 시작 등 무거운 임무를 3년 동안 잘 해냈으니 고려 입장에서 덕종이 등극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현은 평론에 민간 설화를 소개했는데 덕종 대에 위봉문(威鳳門)[25]에서 봉황이 날아다녔다고 한다. 헌데 까마귀 떼가 따라와 울어대자 봉황은 귀찮아서 날아갔고, 이후부터 고려 사람들은 상서로운 봉황을 쫓아냈다고 까마귀를 싫어해 보일 때마다 활로 쏘아대니 덕종의 치세 동안 개성에는 까마귀가 없었다고 한다.

3. 가족관계

부인이 다섯인데 이 중 둘이 이복여동생이다. 고려 왕조 근친혼의 대표적인 사례다.

4. 태묘 악장

고려 성종(제6대)이 태묘를 만든 뒤, 태묘에 배향된 제왕들에게 바치는 악장, 즉 칭송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제16대 예종 11년에 예종 기준 9묘(九廟)의 제왕에게 새로 바친 노래가 《고려사》 <악지>에 남아 있다.

예종 대 덕종 왕흠의 찬가 제목은 <엄안>(嚴安)이다. 네 글자 운구이다.
당신의 덕은 천생(天生)이니, 용감함이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당신의 위엄은 뇌정(雷霆)과 같으니, 인방(隣邦)[26]을 떨게하고 놀라게 합니다.
국강(國疆)[27]을 넓히시니, 길고 길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변방의 오랑캐는 빈 땅을 뺏길까 늘 지키고 있습니다.

진덕(震德)[28]이 잠저를 떠나니, 용이 하늘을 날라다닙니다.
당신의 위엄은 요방(遼邦)까지 흔드니 용감함을 드러내면 아무도 앞에 서지 못합니다.
문화가 다른 자들이 소문을 듣고 내정(來庭)하여 조공합니다.
이에 변강(邊疆)[29]을 넓히시니 세세토록 복을 받으시오서.

예종 대에 덕종은 상당히 용맹한 군주로 받아들여진 듯 하다. 찬가의 내용을 보면 이웃나라는 두려워하며 조공한다고 하며 심지어 당시 상국으로 대우하던 요나라까지 겁쟁이 오랑캐로 취급해 덕종의 위엄을 드러내려고 한다.

5. 대중매체



[1] 《고려사》 <덕종 세가> 마지막 조 기준. [2] 고려 최상위 정부기관으로 조직명은 내의성 → 내사성 → 중서문하성 순으로 바뀌었다. [3] 실권을 가진 실제 장관은 문하시중이다. [4] 重光殿, 고려 본궐에서 가장 크게 활용된 편전. [5] 《고려사》 원문 기록: '태자가 즉위하여 익실(翼室)에 거처하면서 조석으로 애림(哀臨)하였다.' [6] 혜종, 경종, 성종. [7] 혜종, 경종. [8] 제7대 목종. 선왕인 성종의 '개령군' 봉호를 물려받는 방식으로 후계자에 공인됐다. [9] 원 간섭기부터는 '왕세자'(王世子)에 봉해졌다. [10] 당시에는 '원'이었다. 동생 정종이 태어나고 나서 '궁'으로 승격된 것. [11] 원 간섭기 이전까지. [12] 서희의 아들. [13] 개경 나성의 건축자. 원명은 이자림. 김훈•최질의 난의 진압자였다. [14] 《고려사》 <류소 열전> [15] 현종 원문대왕의 신하 곽원의 출정이다. 곽원은 압록강 이북을 차지하자며 군대를 끌고 갔지만 역사에 기록될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16] 덕종의 치세 동안 동여진의 정보(正甫), 보윤(甫尹), 정조(正朝), 원보(元甫), 원윤(元尹), 봉국대장군(奉國大將軍), 회화장군(懷化將軍) 등과 서여진의 대상(大相),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 귀덕장군(歸德將軍) 등이 총 620여 명을 이끌고 수 차례 입조(入朝)하였고, 덕종은 품계를 올려주며 직접 조공을 받았다. [17] 4품 1등위. [18] 4품 2등위. [19] 5품. [20] 6품 1등위. [21] 7품 1등위. [22] 8품. [23] 죽음의 때. [24] 《고려사》 원문엔 '유조'(遺詔)가 아닌 '고명'이라고 기록했다. [25] 본궐의 제 2정전 천덕전으로 가는 길에 세워져있던 문이다. 3번째 대문이며 이중루로 위에 위봉루(威鳳樓)가 있어 매우 화려했다고 한다. 왕건이 직접 세운 문이다. [26] 인접한 나라. [27] 나라의 영토, 경계. [28] 모두를 떨게 만드는 덕성. [29] 나라의 주변 영토,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