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2:58:33

아나키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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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전적인 아나키즘
2.1.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2.1.1. 아나코 상호주의2.1.2. 집산주의 아나키즘2.1.3.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2.1.3.1. 윌리엄 고드윈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2.1.3.2. 막스 슈티르너의 이기주의적 아나키즘
2.1.4. 사회적 아나키즘
2.1.4.1. 아나코 코뮤니즘2.1.4.2. 아나코 생디칼리슴
3. 20세기 이후 개발이 완료되거나 진행중인 아나키즘
3.1. 아고리즘(Agorism)3.2. 기독교 아나키즘3.3. 아나코 패시피즘3.4. 아나코 (아나카) 페미니즘3.5. 녹색 아나키즘
3.5.1. 아나코 자연주의3.5.2. 아나코 원시주의3.5.3. 사회생태학
3.6. 아나코 트랜스휴머니즘3.7. 포스트 레프트 아나키즘3.8. 후기 아나키즘3.9. 반란적 아나키즘3.10. 정강주의()3.11. 스쾃
4. 기타
4.1. 아나코 캐피탈리즘4.2. 민족 아나키즘

[clearfix]

1. 개요

아나키즘의 분파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흔히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주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기회주의자'라거나 '모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곤 한다.[1]

2. 고전적인 아나키즘

2.1.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아나키즘보다는 조금 더 넓지만 비슷하다. 다만 완전한 하위 개념이 아니라 두 개념은 교집합에 가깝다. 이 항목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속하는 아나키즘을 설명한다.

2.1.1. 아나코 상호주의[2]

Anarcho-Mutualism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의 철학에서 비롯되는 반자본주의 자유시장 아나키즘의 일파이며, 미국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줬고, 오늘날에는 상호주의 아나키즘이 좌익 시장 아나키즘의 하나가 되었다.

2.1.2. 집산주의 아나키즘

미하일 바쿠닌의 철학에서 비롯된 좌파 아나키즘 중 하나이며 아나코 코뮤니즘(아나코 공산주의)

2.1.3.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아나코 개인주의(Anarcho-individualism)로도 불리는 이 사상은 사회 사상으로 보긴 좀 뭣하다. 그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개인적 성향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사상으로 보는 편이 옳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개인주의적 전통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자주권과 자주성, 자발성의 밑바탕이 되었고 이는 아나키즘의 토양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자발성을 제 1의 원동력으로 이야기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2.1.3.1. 윌리엄 고드윈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정부는 변화의 영원한 적이다. 정부의 특정한 제도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에 존재하는 원동력을 그 활동을 마비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악습을 영원토록 조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순수한 성향을 전도시키며, 우리를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것은 언제나 퇴보하여 결코 전진하지 않는 것이 인간정신의 본질인 양 우리들에게 공공복지를 혁신과 진보가 아니라, 선조들의 결정을 신중하게 따를 것을 촉구한다."

최초의 아나키스트라 일컬어지는 윌리엄 고드윈(1756 ~ 1836)[3]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의의 목적은 최대의 '일반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최대의 '일반선'이란 무엇인가? 고드윈은 당대의 영국 철학자들 처럼 인간의 의식에는 선험적인 어떠한 것도 각인되어 있지 않다는 '타불라 라사'가설을 지지했다. 그에 따라 다른 공리주의자들 처럼 도덕에 대한 어떠한 후차적 해석을 배격하고 인간의 감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요소인, 쾌락과 고통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는 쾌락을 높이고 고통과 불행을 낮춤으로서 공리를 극대화 하는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여타 공리주의에 따른 비판인 소수의 배격이라는 문제를 해결 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의 이론에서는 '일반선'과 '개인선'이 상충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모두 동일한 감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 하듯, 그러한 행위는 누구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의심할바 없이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보편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도덕의 목적과, 공리가 그 인간적 보편성을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공리 극대화라는 목적성을 띤다면, 개인의 권리가 침해 당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당연히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을 둔 공리는 나의 권리에 기반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틀안에 내가 포함되므로, 인간에 대한 공리 극대화는 곧 나의 공리를 올리는 것이며, 인간에 대한 공리의 향상의 결과로 개인은 이성이 우리에게 부여한 추론과 진리를 바탕으로 더욱 개선된 판단으로 공리를 끌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동등함은 정의의 요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의의 목적이란 최대의 '일반선'의 창출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도덕적 단계는 계속해서 진보해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보를 주장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저열한 것들이 존재한고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주장한다. 분명 인간은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동일성과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개개인은 고급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는 반면, 저급한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고, 지적이며 애타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자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우리는 그의 공리주의적인 입장에 따라 어떠한 행위를 하는 자가 더 가치있는가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당연히 그러한 행위가 더욱 큰 '일반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드윈은 인간의 가치를 다음의 4단계로 나눈다.
  • 최하층에 속한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에 시달려야 하므로, 삶에 행복을 느끼거나 여러가지 지적 활동을 하게 할 물질적 시간적 여유란 없다.이들에게 행복(쾌락)이란 기껏해야 더 적은 고통을 기도하는것 뿐이다.

  • 그 다음 서열은 부자들이다.

이들은 최하층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단지 그것 뿐이다. 이들에게 쾌락이란 육체적 향략같은 저급쾌락일 뿐이며, 잉여자원을 저급 쾌락에만 사용하며 어떠한 '일반선'도 창출해 내지 못한다.

  • 그 다음 서열은 취미의 인간.
    예술가나 학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자나 부자로 분류되는 유형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학문을 존중하며 진리를 탐구한다. 즉 이들은 지적쾌락, 고급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나누며, 사회에 이바지 하기 보단 자기만족을 위해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이다.

  • 마지막으로 최상의 유형은 '박애의 인간'이다.

이들은 '취미의 인간'들 처럼 지적 고급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나, 개인의 지적 만족을 얻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누며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류의 보편적 행복에 이바지 함으로서 쾌락을 느끼는 자들이다. 이 박애의 인간이야 말로 정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고드윈은 인류자체의 진보를 위하여 개개인은 스스로를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란 개인적인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의 집단에서, 사소한 이득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 지적 고급 쾌락을 향유하며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협력과 박애를 주장하는 사람이 탄생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마찬가지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표현하기 전에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사회라면, 지적 탐구자가 탄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 자신은 세계에 던져진 채로 무력하게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을 부정한채 모든 책임을 단지 개인에게 떠넘기며 의식의 진보를 요구 하는 것은 광인의 망상이나 다를바 없다.
"사회는 만일 그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비참한 노예상태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자유는 진리를 전달한 피고측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생각한 바를 말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어린아이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어린 시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모욕이며 얼마나 무지몽매한 소치인가."

따라서 고드윈은 모든 억압의 분쇄를 주장했다. 그것은 국가적인 것이건, 정치적인 것이건, 사회적이건, 종교적이건, 경제적이건, 가부장적이건 개인을 억압한다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인간의 도덕적 진보, 일반선의 극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 이라고 고드윈은 말했다.
"진리는 오직 그것을 가장 성실히 숭배하는 자에 의해서만 완만하고 지속적인 수준에 따라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개혁을 하게 될 것이지만 혁명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드윈은 혁명을 부정했다. 그는 단순히 혁명을 주장하는 그러한 행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이상주의적 이라고 했다. 반면 그는 여론의 개선과 의식의 계몽을 주장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국가, 권력, 체제, 종교, 가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요소이며 유일한 실체인 인간 의식의 인정으로 인하여 어떠한 방식으로건 존재하게 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존재하지 않는 그 허상들은 우선 인간 의식의 계몽으로 그힘을 잃어야 하며[4], 그 뒤에야 체제의 변환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법이다. 때문에 고드윈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 했으며, 이러한 신념을 가진자들로 하여금, 토론을 주져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하며 이성과 진리가 최대한 퍼져나가도록 한다면 인류의 정신이 진보하여,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5]

허나 이러한 변화와 계몽을 거치지 않은, 대중 의식의 상태를 무시한다면, 개혁이나 혁명이 아무리 고결하고 완벽한 이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하다라도, 좋은 결말을 맺을 순 없다. 그러한 혁명이란 폭력과 야만, 또다른 독재자와 폭정, 더 수구적인 체제로의 반동으로서 귀결될 것이라고 고드윈은 주장했다.
2.1.3.2. 막스 슈티르너의 이기주의적 아나키즘
"국가는 누구든지 자기의지를 가지지 말것을 강요한다. 만약 한 인간이 그것을 가졌다면 국가는 그를 배제하고 폐쇄하고 추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일 모든 인간이 그것을 가진다면 그때는 그들이 국가를 배제할 것이다. 자기의지와 국가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적대관계에 있는 힘이다. 양자간에 영원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정신의 발전
인간은 '자기의지'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나, 탄생하는 순간 '자기의지'로 자신의 존재에 책임을 져야하는 피투적 숙명에 놓이게 된다. 모든것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자기자신의 고유성과 타자와의 충돌을 경험하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유지해야 하는 인정투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은 물질과 자연의 힘 앞에 강요를 당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자기 자신의 결정과 용기로 이내 강요를 극복하며, 자신을 강요해 왔던 대상들이 자신의 용기와 의지보다 약하다는 실체를 깨닫고서는 그것들을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내 인간은 정신을 발견하며 관념의 동물이 된다. 인간은 새로이 발견한 정신의 힘으로 세상을 극복하려 한다. 그는 사상이란 이름의 유령을 만든다. 그 사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 조국, 민족, 그리고 '인간일반' 같은 것들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또한 어디에서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 같은 것들이다. 어째서인가? '국가와 신' 같은 것들은 그자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선 관념의 '동물'인 인간의 '의지'가 필요하다. 사상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정당성을 보유하기 위해 관념을 '천상의 것'으로 드높였고, 반대로 '대지의 것'은 경멸할만한 것으로 매도 되었다. 인간 자신의 의지 마져도. 그리고 이내 인간은 그 신성한 사상들을 의심하게 되며, 사상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문제삼는다. 그는 사상들의 배후에서 개인의 의지를 본다. 따라서 그는 사상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관념의 동물인 인간의 창조물로서 여기게 되며 자신의 본래 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사상들을 휘어잡아 모든 것을 자기존재와 연결시키는 '에고이스트'로서의 개인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들은 육체화 되어 더이상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되려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는 신성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유령들은 본디 나의 힘이다.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며, 나는 그러한 힘을 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나 자신을 위하여 철저히 '에고이스트'적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유령은 스스로 힘을 얻어 반대로 창조자를 지배하게 되었다. 개인이 유령에게 휘둘리는 것은 '자기소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자기소외로 부터의 탈피를 위해선, 우선 모든 사상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창조한 에고이스트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야한다. 슈티르너는 그의 저서 '유일자와 그의 소유'의 첫번째 장에서, 개개인 본래의 모습인 '에고이스트적 인간' 대한 자각을 다음과 같이 요구 한다.
All Things Are Nothing To Me(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무이다.)
"대체 나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선이란 이유, 그리곤 신, 인류, 진리, 자유, 인간성, 정의, 그 다음으로 나의 국민, 나의 군주, 나의 조국이라는 것, 끝으로 정신과 그 밖의 다른 무수한 것들이 모두 나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오직 '나'의 것만이 결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에고이스트여!"[6]

유일자와 에고이스트
슈티르너 사상의 사실상의 핵심요소. 슈티르너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이라고 부른다. 에고이즘은 이기주의 혹은 자아주의로 번역된다. 여기에는 주의 해야할 점이 있는데, 슈티르너가 말하는 에고이즘이란 독자를 향한 요구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에고이스트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에고이스트임을 자각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와 그렇지 못하는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로 나뉜다.
"그대가 신의 계명과 그 밖의 명령에 그토록 귀 기울이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대는 아마도 오직 신만을 위한 친절에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는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주체이고, 각자는 자신에게 '나'만이 모든 것이고, '나'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동한다고 솔직히 털어 놓아야 한다. 만일 신과 명령들은 오직 그대에게 해를 끼치며, 그대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당신은 마치 기독교인이 아폴로나 미네르바 또는 이교도의 도덕을 비난하여 예수나 성모, 기독교의 도덕으로 대치시킨 것처럼 그것들을 폐지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종교를 가지고 신을 숭배하여 내면의 안식을 얻는다면, 그대 자신의 위해 그렇게 행동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재물을 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재물보다 금욕을 택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내면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독재자의 탄압이 두려워 침묵하기를 선택 했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독재자의 아래에서 안락함을 택했다면, 그 또한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행동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이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힘과 풍요 때문이 아닌가? 그대가 신과 국가, 민족, 그리고 '돈'과 같은 것을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는 에고이스트이고, 그대가 그러한 사실을 자각한다면, '자발적 에고이스트'로서 사상에 매몰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소유자가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는 그러한 사상들이 본래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인지 모른채 그것에 지배 당하여, 자기자신으로부터 소외 된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상이 자신의 창조물임을 자각한 자발적 에고이스트에게는 신성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는 사상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숭배한다. 그러한 행위는 사상을 방대하게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어째서일까? 사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인간만이 생각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허상이 힘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의지가 박탈당하여 허상에 의하여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상이 숭배될수록 인간은 약화된다. 결국 이러한 숭배는 현실과는 반대로 사상을 실체화하고 인간을 허상화 함으로서 인간을 극단적인 자기소외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여기서 멈춘것이 아니다. 그는 사상과 인간의 주객이 전도 되는 것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7] 인간과 사상이 전도된 것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사상이 인간을 술어화 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허나 그는 인간이 사상화 되어 개인을 술어화 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나아간다.
" 근대의 입구에 '신인'이 서 있다. 그 출구에는 '신인' 중에 신만이 사라져 버렸을까? 그리고 만일 '신인' 중에서 신만이 죽었다[8]면 신인도 실제로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러한 물음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날 승리감에 도취되어 계몽의 사업인 신의 극복을 완성하여 과업이 완성된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9]이 스스로 유일신이[10] 되어 높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 비록 신이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위해서였다. '신인' 가운데 신만이 아닌 인간까지도 죽지 않는 한 과연 '신인' 이 죽었다고 믿을 수 있는가?"

그가 신이라는 말과, 인간이라는 말을 합친 '신인' 이라는 표현을 한점에 주목하라. 어째서 였을까? 철학의 입장에서 볼때 신은 오랜시간 정신의 세계에서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이다. 그렇다면 신이 죽어버렸다면, 인간은 찬사를 불러야 하는 것을 그는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은 신이라는 사상을 만든 창조자이다.그렇기에 허상인 신이라는 말을 독단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체인 인간을 붙여서 '신인'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나는 인간일까? 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냐? 그들이 말하는 인간이란, 우선 많은 수의 개인들에게서 포착 되는 '일반적인' 특징과 그들이 '인간적인' 이라고 부르는 미덕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지 못한 개인의 고유성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결국 신성화된 인간이라는 유령 아래서 억압받을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새로운 독재가 되려 하고 있으나,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나요, 유일자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생각치도 않은 채 '인간적인' 이라는 미덕에 대하여 탐구하고, 과거의 사제들이 그러해왔던 것과 같이 동일할 정도로 개인을 지배하려는 새로운 율법을 만들고 있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새로운 신을 향한 숭배 사상이, 이전의 종교 보다도 방대하고 억압적인 것이라고 했는데, 그이유는 '인간' 이라는 사상이 다른 시대의 유령과는 다르게, 나의 무언가에 대하여 말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더욱이 개인이 가진 인간이라는 보편적 무엇에 대하여 말을 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서, 개인에 대한 지배를 더욱 심원적이고 더욱 은밀하고, 더욱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였다. 슈티르너가 볼때 이러한 학자들의 논의는 사제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신의 지배를 더욱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무시무시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사제들보다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당대의 학자들, 특히 청년 헤겔학파 철학자들은, 기독교의 억압을 극복하는 것이아니라, 그것의 모양을 변형한 채로 억압을 계승시킨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간교는 단지 기독교의 마지막 변형일 뿐이다. ...... 인간교는 나의 본질을 나에게서 분리해 그것을 나 위에 놓는다. ...... 인간교는 다른 종교가 그들의 신이나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인간'을 찬양한다. ...... 인간교는 내것을 다른 세계의 어떤 것으로 만든다. ...... 요컨데 ...... 인간교는 나를 인간 아래에 놓고, 그럼으로써 나에 대해 소명을 창조한다."

슈티르너는 인간[11] 이라는 표현 자체조차도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인간이라는 표현이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사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슈티르너에 의하면 개개인은 인간이라는 말로서 표현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만인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을 지낸 유일한 존재, 즉 '유일자'이다. 유일자는 유일하기 때문에 수로서 표현될 수 없으며, 타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때문에 어떠한 희생도 정당화 될 수 없다.다수의 이득을 위하여 소수를 희생시킨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그것은 소수의 희생으로 공공의 이득을 만들어 낸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이라는 이름의 유령과, 사소한 숫자놀음을 위하여 유일한 세계를 종말 시킨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꿈, 관념, 사상을 탐구하면서 시작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신성한 이론' 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그대는 그대의 신들이나 우상보다도 오히려 그대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대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고, 드러내 놓고, 그리고 그대 자신을 공개하라."

소유와 에고이스트 연합
"정치적 자유는 폴리스 또는 국가가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심의 자유가 양심이 자유롭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처럼 종교적 자유는 종교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국가, 종교,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나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권력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종교, 양심 같은 나를 지배하는 전제자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국가, 종교, 양심의 전제자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자유는 나를 속박하는 족쇄인것이다."

슈티르너는 자유라는 개념 또한 비판했는데, 주로 '소극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다. 반면 그가 내세운 소유란 단지 외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내적인 압력으로 부터 벗어나 자신의 힘을 자신이 소유하여 완전한 자기해방의 길로 향하는것이 소유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그는 자유자체를 허상이라고 치부하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는데, "자유가 외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정말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문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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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가져, 일해, 결혼해, 애도 낳아야지, 유행도 쫓아가, 평범하게 행동하고, 정도로만 다녀, TV나 보고, 법을 준수해, 노후도 대비 해야지. 그리고 나를 따라 이렇게 말하면 돼, "난 자유롭다."[12]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만들거나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것을 원하고 동경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이상이요, 유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현실의 족쇄는 매순간 나의 육체에 가장 깊숙한 상처를 새겨 넣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소유로 남는다. 내가 주인에게 노예이기를 거부할 때 나는 오직 내 자신과 이익만을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채찍질을 할 때 나는 그 매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것을 참아낸다...... 내가 나 자신과 나의 이익만을 응시할 때 나는 주인을 구덩이에 처넣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에고이즘이 전제 되었을 때만이 나는 주인과 그의 채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슈티르너는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의 공동체인 에고이스트 연합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그는 그것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아나키즘 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참여와 탈퇴가 자유로워야 하고 쓸모없는 권력이 존재해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집단은 자기자신을 소유하려 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로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만인이 자기소유 외에는 어떠한 관심사, 숭배의 대상을 갖지 않는 에고이스트의 집단은 어떠한 신성한 권력도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물들의 배후에서 발견하고, 그리고 더욱이 나를 정신으로서 발견한 것처럼, 또한 그렇게 나중에 나는 나를 사상들의 배후에서, 다시 말해 나를 사물들의 창조자이고 소유자로서 발견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정신의 시대에 사상들은 사상들을 탄생시킨 나에게 더는 복종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사상들은 고열에 인한 환각과 같이 주위를 맴돌고 나를 진동시키는 하나의 전율케 하는 힘인 것이다. 사상은 그 자체로 자신을 위해 육체를 갖추게 되어,신,황제,법왕,조국 등과 같은 유령이 되었다. 나는 사상들이 육체화된 것을 깨부순다. 그래서 나는 사상들을 나에게로 되찾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만이 육체를 갖춘 존재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사상이 나에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나의 것으로서, 나의 소유로서 세계를 받아들인다. 즉 나는 모든 것을 나와 연관시킨다."

다만 주류 아나키즘에서는 여러모로 많이 까이는 신세이다. 기본적으로 관념론에 많이 입각하다보니 유물론적 철학을 지니고있던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한테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13] 실제로도 투쟁의 방법이 지나치게 개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개인의 테러등에 맞춰젔으며[14] 사회마저도 거부하는 특유의 급진성과 원시주의로 많이 흘러갈정도로 개인의 자아를 넘어서 인간의 기초적인 본능에만 집중할정도로 개인주의적이기에 다른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이들과 연대하려는 시도 자체가 적은 편이다. 물론 그전에 에고이스트 자체가 수가 작지만 말이다.

2.1.4. 사회적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모든 인간 문제에 대한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흔히 듣는 것처럼 완전한 사회 질서를 가진 유토피아도 아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절대적 틀과 개념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실 따위를 신봉하지 않으며, 인간 발달의 결정적 최종 지점 따위도 믿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약속과 인간의 생활 제반 조건이 완전해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항상 보다 고차원의 표현 형태를 바라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도 어떠한 결정적 종착점을 지정하지 못한다면 고정된 목적지 역시 설정할 수 없다. 어떠한 종류의 국가든지 그것이 행하는 최악의 범죄는 사회생활이 지닌 풍부한 다양성을 강제로 결정된 형태로 밀어 넣으려 하고 하나의 특정 형태에 적합하게 하려는 일이다. 그것은 보다 폭 넓은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이전에는 자극적이었던 정황을 이미 끝나버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국가의 옹호자들은 자신이 강력해졌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더욱 완전하게 자신들에게 봉사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모든 창조적인 문화적 제반 기력의 조작에 대해 더욱 비뚤어진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어떤 시대의 지적·사회적 발전에 대해서도 보다 불건전하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루돌프 로커 - 아나코 생디칼리슴 이론과 실천

현 아나키즘의 주류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곧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라고 주장하며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사라져야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대의 필요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에고이스트와 다르게 이들은 인간이 살기위해서는 사회[15]가 필요하다고 보기에 사회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기 위해 둘의 균형을 맞춰야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사회마저도 에고이스트인 나를 지배하려한다며 거부하는 에고이즘과 가장 차별화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2.1.4.1. 아나코 코뮤니즘[16]
이 사상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이다. 이 사상은 생산수단의 공유조차 거부하며 아예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 계열에선 화폐의 폐지도 주장한다.[17] 크로포트킨은 사유제가 개인 억압의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정치적 자유[18]를 주장하며, 기타 조류 공산주의 운동과 자유의지주의적인 운동을 혼합한 사상 흐름이며 가장 지배적인 아나키즘 분파이다. 이들의 기본적인 요구는 국가, 시장, 돈, 자본주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private property) 철폐이지만 생산수단을 제외한 소유물인 동산[19]은 존중하며, 생산수단의 공유, 직접 민주주의 자유연합의 수평적 네트워크, 노동자 평의회 그리고 루이 블랑(프랑스어: Louis Jean Joseph Charles Blanc)의 유명한 문구인 "각각의 능률에 따라, 각각의 필요에 따라."라는 원칙을 중시한다.

한편 대표적으로 반역 아나키스트들을 비롯한 몇몇 종류의 아나키스트들은 막스 슈티르너의 에고이즘과 급진적 개인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아나코 코뮤니즘 사회의 건설이 개인의 자유 실현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아나코 코뮤니즘을 개인과 사회 사이의 대립을 화해 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나코 공산주의 초기 운동은 잉글랜드 내전에서 일어났으며 그 기간에서 프랑스 혁명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후 급진적 사회주의 조류에서 발전된 아나코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 이전 까지 서서히 크로폿킨에 의해 이론적 발전을 하였고, 아나코 공산주의를 전파한 통합주의자들 덕분에 그 세력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에서 확장되어갔으며 현재까지는 아프리카에서도 확장되고있다. 현재까지, 아나코 공산주의 사회의 가장 유명한 예는, 스페인 혁명 기간 동안 1936년부터 내전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승리로 끝날때 까지 아나키스트들이 점령한 스페인 아라곤 지역에서 나타났었으며, 그에 이르러 러시아 혁명 기간인 1919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아나코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셌다. 후에 프랑코에 대항한 스페인 내전에서의 스페인 인민해방전선에서도 아나코 공산주의 성향이 나타났다.

다만 그는 소유권(목적물을 전면적,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물권) 자체는 부정했지만 점유(possession.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 사회통념상 물건이 어떤 사람의 지배하에 있다고 하는 객관적인 관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과 소유를 상당히 이상적으로 바라봤다는 평가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공동체인 자주관리공동체를 사회 혁명의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공동체들이 연합하여 집합체를 형성하여 자유연합 같은 형태를 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지금은 로자바 치아파스 사파티스타 점령 지역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옘마 골드만도 아나코 코뮤니스트로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다. 1932년 2월 1일자 동아일보.

개중에서는 에리코 말라테스타와 같이 아나키즘적 전위대를 주장하는 자도 있었으며 그 외에 생디칼리슴 노동조합운동에 반대하던 코뮤니스트들도 있었다.[20]

멕시코 자유당도 아나코 공산주의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푸틴 저항운동 무장투쟁으로 무정부 공산주의들의 전투 조직이라는 단체도 여기 속한다.
2.1.4.2. 아나코 생디칼리슴
혁명적 조합주의[21]혹은 아나코 조합주의로 말해지는 아나코 생디칼리슴은 소렐의 생디칼리슴을 아나키즘 사상에 하나의 수단으로 접목시킨 사상으로 생디칼리슴의 노동자 총파업과 직접행동 그리고 노동자 자가관리[22]를 가저왔으며 거기에 더해 임금제의 폐지[23]와 국가의 해체 그리고 노동자 평의회와 노동조합이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아나코 코뮤니즘과 미묘하게 다르지만 아나코 코뮤니즘 역시 생디칼리슴 사상을 어느정도 받아들였고[24] 현재 와서도 아나코 생디칼리슴 조직[25]은 아나코 코뮤니즘을 같이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아나코 생디칼리슴과 아나코 코뮤니즘은 화폐 노동조합의 대한에서 약간의 차이가 난다. 아나코 생디칼리슴은 화폐를 긍정하지만 아나코 코뮤니즘은 화폐는 지나치게 집산주의적이라고 부정하는 편이며 조합에 대해서도 아나코 생디칼리슴은 사회의 모든 부분을 노조로 재개편해야 한다고 보지만 아나코 코뮤니즘쪽은 그보다는 일시적이고 언제나 해체하고 언제나 세워질 수 있는 유동성을 가진 평의회 위원회쪽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26]

물론 여기서 아나코 생디칼리슴 역시 2개의 파벌로 나뉘는데 한 쪽은 스페인 내전에서 혁명을 이끌었던 CNT-FAI의 지역노동조합자치 체제와 미국에서 1800년대부터 활동했던 유서깊은 노동조합이였던 I.W.W의 원 빅 유니온(번역하자면 단일산별노조쯤)체제이다.

지역노동조합자치 체제는 하나의 종합된 노동조합이 아니라 각 공장, 코뮌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치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이끌어가자는 사상으로 네스토르 마흐노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영향을 크게받았다.

원 빅 유니온은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상으로 이후 옘마 골드만 등의 아나카 페미니스트들도 섞이면서 좀 더 노동조합이라는 생디칼리슴에 충실한 체제로 '하나의 단일된 노동조합 아래서 산업별로 노동조합을 자치적으로 조직하고서 그 노동조합을 직장민주제를 통해서 구현하고 어느 공장에 가입하든 모두 산업 노조에 가입하여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현대에는 노동자 자주 관리 이론으로 남아있으며 앞서 말한 스페인의 CNT-FAI과 미국의 I.W.W가 대표적인 아나코 생디칼리슴 단체이다. 한국의 경우 키친아트 노동자 자주 관리 이론을 적극 활용하여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경우가 있다.

3. 20세기 이후 개발이 완료되거나 진행중인 아나키즘

3.1. 아고리즘(Ago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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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리즘은 1974년 10월 CounterCon I와 1975년 5월 CounterCon II의 두 회의에서 사무엘 에드워드 콘킨 3세(Samuel Edeard Konkin III, SEK3)가 확립한 사상으로, 아나코 캐피탈리즘과 함께 오스트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시장 아나키즘 분파이다. 아고리즘의 제창자인 콘킨은 ‘신 자유지상주의 선언문(New Libertarian Manifesto)’을 통해 아고리즘의 개념을 제시하고, 기존 자유지상주의[27]에 맞서는 새로운 자유지상주의로서 아고리즘을 정의했다.

아고리즘에서, 모두에게 열린 시장을 의미하는 아고라(Agora)는 모든 비합의적이고 강압적인 관계를 폐지하고 이를 상호이익에 기반한 암시장의 자발적인 관계로 대체하여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수평적 관계에서 상호간의 자발적 교류를 통해 달성되는 반자본주의 자유시장을 의미한다. 이들은 반국가주의적 입장을 바탕으로 지배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강압적인 계급 지배 시스템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국가 권력에서 나오는 부와 경제력의 분배 시스템이라 강력히 비판하고, 그와 동시에 강력한 대기업을 미시적 국가와도 같은 착취적인 권위로 해석하여 이또한 자본주의의 일부로서 타도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아고리스트들은 노동자 사용자간의 위계질서를 부정하기에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각 모든 개개인을 자유로운 경제인으로 설정함으로서 진정한 자유시장에선 모두가 기업가정신에 입각한 자영업자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콘킨은 특허 지적재산권 독점 시장 왜곡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 반대하기도 했다.

아고리즘의 뿌리가 오스트리아학파 우파 자유지상주의에서 기원한 만큼 국가의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난 자유시장을 지향한다는 점은 아나코-캐피탈리즘과도 유사하여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공감대는 존재하나,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다. 방법론에서도 아나코-캐피탈리즘이 정당을 통해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참여하는 편인데 반해, 콘킨은 그러한 방식이 국가주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정당이나 정치단체 자체가 파티아키(Partyarchy)라는 낡은 지배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자유지상주의를 대변하여야할 미국 자유당 투표 선거라는 구시대적 전략을 통해 또다른 권력자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타협하며 본질적으로 국가의 권위에 대항하여야하는 자유지상주의 운동을 쇠퇴시킨 것을 넘어 자유지상주의의 덕목과 가치를 배반한 것으로까지도 본다. 자유당을 비롯하여 나타나는 이러한 개량주의와 타협주의 경향에 콘킨은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이 기존 정당과의 연루를 믿고,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국방 단지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풍자하며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이 진정한 자유시장을 저해하고 심각히 훼손하는 자본의 독점자들인 자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아고리즘에서 주장하는 자유시장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와는 특히나 무관하며[28] 일반적으로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를 동의어로 취급하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자본주의가 자유시장과 대립하는 것으로 순수한 자유시장을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에, 분명히 같은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기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사상간의 경제관은 꽤나 큰 괴리가 있는 편이다.

또한 콘킨은 스스로를 ‘자유지상주의 좌파’로 정의하면서 자신의 운동을 혁명적 및 급진적인 것으로 묘사하였는데, 보통 혁명적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활용되오던 이러한 수사는 기존 우익 자유지상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배격당하고 부정된 바 있다. 동시에 콘킨은 자신의 사상을 혁명적 시장 아나키즘이라 지칭하며 종래의 보수적인 아나코-캐피탈리즘과 자신의 운동을 명확히 구별짓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런만큼 아고리즘과 아나코-캐피탈리즘은 서로를 불호하며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이와는 별개로, 콘킨은 스스로를 좌익 로스바디언(Left-Rothbardian)이라 자칭하였는데, 이는 1960년대 신좌파 운동이 부상할 당시 로스바드가 잠시나마 이들과의 동맹을 구축하려 시도하며 스스로를 좌파 자유지상주의자로 정의한 데에서 기인한다. 다만 콘킨이 ‘신 자유지상주의 선언문’을 발표한 직후, 머레이 N. 로스바드는 “아고리스트들이 제시한 반체제 경제가 그 타당성을 입증하지 못 했다”면서 기존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벌이던 국가 내의 제도적 정당 활동를 옹호하는 동시에 반체제 경제가 비현실적인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오히려 아고리즘은 정당과 같은 방식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비현실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서로 방법론적 측면에서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아고리즘은 투표, 선거 정치에 의존하거나 무장 봉기와 같은 폭력 혁명 내지는 반란을 요구하는 대신 비폭력 혁명의 측면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암시장을 국가와 시장적으로 경쟁시켜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것을 주장하며, 그렇기에 직접행동 및 시민 불복종 운동과 반체제 경제(Counter-Economics)를 사용해 사실상 말려죽이는 방식을 이용하여 국가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체제 경제란 암시장, 지하경제, 대체통화, 암호화폐, 자급자족 등 비폭력적이고 비절도적이며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경제적 수단들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국가의 권위를 뒤흔듦으로써 무정부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전술[29]이다. 이러한 반체제 경제의 전술은 수직적/내성적 유형과 수평적/외향적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수직적/내성적 유형은 국가가 지원하는 서비스를 거부하고 자립을 위한 지역 네트워크 또는 이웃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전술이며, 수평적/외향적 유형은 적극적으로 암시장 네트워크와 수직적 전략에서 이웃 공동체를 초월하여 확장될 수 있는 구조를 창출하는 전술이다. 콘킨은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투쟁을 전개하는데 있어 자신들은 국가에 대한 선제적인 공격을 시작해선 안되며,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반체제 경제를 통해 엄격하게 방어적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 자유지상주의 운동에서 주요한 인물 가운데, 콘킨은 자유지상주의가 정치적 스펙트럼의 급진좌익에 속한다는 생각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자유지상주의 좌파 운동은 자유지상주의 보수주의의 동맹( 우익 자유지상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좌익 시장 아나키스트들의 연합으로 설립되었다. 그것을 더 왼쪽에 위치 시키면서 아고리즘은 계급투쟁의 개념을 포용하고 계급투쟁과 계층화에 대한 명백한 자유지상주의자의 관점을 수용한다."
Agorism is Not Anarcho-Capitalism[30]

한편, 아고리즘은 사회적 계층간 계급관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아고리스트 계급 이론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개발한 바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기업가정신: 좋음 - 혁신가, 위험 부담자, 생산자, 자유시장의 힘 추구
비국가주의적 자본주의: 보통 - 자본의 소유자, 관념적 인식을 하지 않아도 됨, 게으르고 혁신적이지 못함
국가주의적 자본주의: 나쁨 - 정부 통제의 주요 수혜자, 정치적 영역의 주요 폐해

아고리스트 계급 이론에 따르면, 비국가주의적 자본주의자는 보다 우월한 환경에서 게으르고 혁신적이지 못하게 되는 독점적 자본의 소유자이며 국가주의적 자본주의자는 이에 한술 더 떠 국가 통제의 수혜를 받으며 자유시장을 해하는 폐해에까지 속한다. 그러나 자유시장 체제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고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매번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가정신은 자유시장의 힘의 근본적인 원동력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야할 바람직한 경제적 상태로 보았으며 그렇기에 아고리즘에서 아고라와 기업가정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계급 기반의 고유한 분석과 더불어, 아고리즘은 기존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을 새롭게 포섭하려고 시도하면서도 특히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과의 다양한 협력 및 동맹 관계를 모색하고 구축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바 있다. 콘킨은 노동자 운동 전반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국가와의 협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를 지속하며 현 사회를 하부서부터 변혁하고자 하는 아나코-생디칼리슴 성향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이 미국 사회당에서 분리된 것과 같은 연고로 자유지상주의 좌파 운동(MLL, Movement of Libertarian Left, 콘킨은 자신의 정치운동을 이와 같이 정의함)이 미국 자유당에서 분리되었다는 점을 들어 MLL이 이러한 IWW에 지지의 의사를 피력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는데, 역사적으로 많은 자유시장(좌익시장) 아나키스트들이 (아나코)생디칼리스트와 이와 같은 전술의 조합을 옹호하며, 이론과 실천의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그러한 협동이 국가와 기업 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제공하는 동시에 양측의 사상적 경계를 넘어 임금노동과 같은 노동착취를 청산하고 새로운 노동자 중심의 사회를 구축한다는 공통의 비전을 제시했기에 이러한 동맹의 구축을 전적으로 지지해왔다는 점에서 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콘킨은 개인적으로 공산주의적 이상에 대해서는 반대했지만 그러한 시도에 관해서는 아고라의 자유시장이 가지는 무한한 경제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반체제 경제에 기반을 둔 코뮌이나 상호은행과 같은 여러 경제적 모델의 경험적 연구들이 시장을 위한 기회로 하여금 보다 자유로운 사회로 도약할 발판을 제공할 것이라는 입장을 통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콘킨이 여성 게이 커뮤니티 억압에 대해서 글을 쓰기도 한만큼, 다양성은 또다른 아고라의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고리즘은 기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시장 아나키즘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좌파적 의제를 적용해가며, 비록 생산수단의 사회화 및 공유화나 사적 소유의 철폐와 같은 기존 고전적 좌파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겠지만 그러면서도 좌파적 경향 및 색채가 꽤나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라 볼 수 있으며, 실제로도 아고리즘이 스스로를 좌파 정치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특이한 좌파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31]

이런 복합적인 특성 때문에 주류 아나키스트들은 아고리즘에 부정적일지언정 '아나키즘'으로는 인정하거나 최소 아나키즘과 사이비 아나키즘의 경계지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주류 아나키스트 사이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사이비 아나키즘 취급받는 아나코 캐피탈리즘과는 대조적. 한편 아고리스트라고 자칭한 사람들이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3.2. 기독교 아나키즘

독일 농민전쟁에서부터 보여질 정도로 유서깊은 이 사상은 문자 그대로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세속 권력의 억압을 거부하며 참된 신앙을 가진 교인들의 상호부조를 통하여 하느님의 권력만 권력으로 인정하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성립하자는 주장이다. 기독교 아나키스트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의 <하나님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는 이 사상의 메시지를 가장 핵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32] 다른 인물로는 도로시 데이가 있으며, 책으로는 자크 엘륄의 <무정부주의와 기독교>를 추천한다.

일단 기원인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나라의 최초 왕의 탄생배경은 '처음부터 인간이 왕이라 할만한 자는 없었다[33] 적어도 인간은 아니고 신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어거지로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 나라엔 없는 왕을 세우자고 요구했고, 이에 당시 제사장은 너희는 하나님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하냐식으로 반문하기는 했지만 크게 소용이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요구해서 나온게 그 사울 왕이었다(...) 왕의 탄생배경부터가 좀 다르긴 하다.

3.3. 아나코 패시피즘

아나코 패시피즘은 아나코 평화주의로 번역되며 평화주의 반군국주의 성향을 가진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이다. 시민운동의 한 전술인 비폭력 저항(흔히 말하는 무저항운동)이나 시민불복종은 아나코 패시피스트들의 전술로 유명하다.

3.4. 아나코 (아나카) 페미니즘

진지한 아나키즘은 반드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가부장적 반쪽짜리 아나키즘일 뿐 진정한 아나키즘이라고 할 수 없다. 아나키즘에서 페미니즘의 특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나르카 페미니스트들의 과제이다. 페미니즘이 없다면 아나키즘도 없을 것이다.

아나르카 페미니즘의 핵심은 변화가 내일이나 혁명 이후가 아닌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은 영속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억압을 꿰뚫어보는 것으로 오늘을 출발하여 지금, 여기의 패턴을 부수기 위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에게도 우리가 원하는 것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순수한 여성의 문제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그리고 공통적인 문제에서 남성 동료들과 함께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노르웨이 아나키스트 연맹 - 아나르카 페미니스트 선언

아나카 페미니즘(Anarcha-feminism)은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을 결합시킨 사상이다.

이들은 가부장제를 분권화된 자유연합으로 교체되어야 하는 강제적 위계구조로 파악하며, 국가가 가부장제의 연장선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가부장제와의 투쟁을 계급투쟁과 아나키즘적 투쟁의 연장 선상으로 파악한다. 사회주의적 페미니즘과 어느정도 공통된 면모를 보인다. 특히 계급해방이 여성해방을 (필수요소일순 있어도)불러올 수 없고 가부장제를 파괴해야한다. 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단적으로 계급해방이 된다한들 베트남(왜 하필 베트남?) 여성 동성애자가 과연 정말 평등하고 자유로운 해방의 삶을 맞진 않는다라는 것이 요지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볼테린 드 클레어(1866~1912)와 엠마 골드만(1869~1940), 루시 파슨스 등이 있다.

현 아나키즘 운동에서는 딱히 따로 분리하지 않고 같이 주장하는 편이다. 아나키즘은 반권위주의이기에 당연히 가부장제의 폐지를 통한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주장하고 또 그들의 해방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고 남성들만이 정할 일이 아니다. 라는 점에서 모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엠마 골드만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18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정치 권력을 반대하는 아나키즘 운동을 벌였고, 자유연애를 신봉했다. 1919년 미국은 그를 러시아로 강제 추방했지만, 여기서도 볼셰비키에 맞서다 망명 생활을 겪게 됐다.

3.5. 녹색 아나키즘

자연환경과 생태주의에 중점을 둔 아나키즘 분파.

3.5.1. 아나코 자연주의

아나키즘적 자연주의를 뜻한다. 채식주의, 자유연애, 나체주의로 유명하다.

3.5.2. 아나코 원시주의

Anarcho-primitivism. 기술 문명 그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유명한 아나코 원시주의자로는 존 저잔(John Zerzan)이 있다. 가장 급진적인 이들은 불의 사용, 농업, 사냥 도구 등도 인간의 자연 사회 식민지화라고 비판하며 거부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류 아나키스트들로부터 받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좌파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장난에 가까운 사상으로 보고 비웃는 경향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에서는 엉뚱하고 무고한 대상인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상대로 투쟁, 테러하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더 나은 아나키즘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친좌파적인 걸 넘어 극좌파적인 주류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리가 없다. 때문에 트롤 사상으로 보고 멸시하는 경향이 크며, 이 사상으로 유명한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아나코 원시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아나키즘 분파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다.

출처: AnPrim On Fire: Human Supremacy Within Anarcho-Primitivist Narrative

3.5.3. 사회생태학

머레이 북친이 주장한 사상. 역시 아나키즘+생태주의+사회주의로 구성되어 있다.

3.6. 아나코 트랜스휴머니즘

3.7. 포스트 레프트 아나키즘

Post-left Arnarchism. 기존 좌익과 아나키즘의 관계를 비판하면서 아나키즘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운동이다. 막스 슈티르너와 상황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주의적 아나키즘 일파를 말한다. 포스트 레프트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는 물론 신좌파들의 정체성 정치, 정치적 올바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3.8. 후기 아나키즘

후기 구조주의와 혼합된 아나키즘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사파티스모(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전선의 사상)까지 포괄하는 사상이다.

3.9. 반란적 아나키즘

insurrectionary anarchism

과거 일리걸리즘(illegalism. 불법주의[34])이라는 19세기~20세기 아나키스트의 폭력투쟁 전술을 이어받은 조류. 사상이라기 보다는 전술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민중봉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좌파적 사상의 연원을 따르며 직접행위의 가장 강력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으론"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개인주의적 투쟁의 방법론을 계승했다.

아나키스트라 하면 대부분 폭탄 테러나 파괴공작을 일삼는 이미지가 많은데 이것은 반란 아나키즘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일리걸리즘 시절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폭탄 테러나 조직범죄가 이러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 활동했던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집단 본노트 갱이나 루이지 갈레아니를 추종하여 월 스트리트 한복판에서 벌어진 월 스트리트 폭파사건 등 당시에는 이러한 전술이 매우 유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일리걸리즘의 기본 모토는 직접행동이며 이는 기층민중이 어떠한 기관이나 단체의 영도가 아닌 자결과 자주에 의한 행동을 통해 봉기하면 사회혁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35] 이는 거대한 사회 변화나 혁명을 이야기할 때 필수불가결한 현상을 이야기 함에 있어 민중의 움직임을 시작이자 끝으로 보는 혁명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일리걸리즘은 이러한 소요와 폭동을 계속해서 일으키면 연쇄작용으로 뒤따라올 혁명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일리걸리즘은 보다 조직적이고 치밀한 폭동과 파괴를 이끄는 반란적 아나키즘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들은 거대 자본으로 상징되는 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의류, 은행 등의 점포를 습격하며 심지어 때로는 은행강도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36] 이들 행동의 근거는 '그런 거 때려 부셔도 어차피 직원들 돈이 아니라 자본가 돈으로 땜빵한다' 라든가 '눈에 보이는 적부터 공격해야 한다' 라든가 하는 것이다.

이들은 2000년도 시애틀의 반 WTO 시위 때 활약했으며 2008년 그리스 폭동 때도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그리스 폭동 당시에는 경찰이 일찌감치 폭력과 총격으로 시위대를 탄압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정당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3.10. 정강주의()

Platformism

정강주의(강령주의)는 네스토르 마흐노(Nestor Makhno)의 이론을 근거로 하는 하나의 경향으로서[37] 정강주의는 계급투쟁적 아나키즘, 폭력혁명에 대한 지지, 생산의 공유화 등의 통일된 강령을 가지고 있는 아나키스트 총동맹으로 국제 아나키즘 운동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 총동맹에 소속된 아나키스트들이 대중조직에 침투하여 대중조직(노동조합, 농민단체 등)을 아나키스트 이데올로기에 따라 지도해야한다[38][39]고 주장했다. 이것이 구체화된 사례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마흐노의 지도력 아래 집결하여 동맹군과 백군 상대로 싸웠던 우크라이나 혁명반군과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과 동맹을 맺어 프랑코 반란군을 상대로 싸운 전국 노동 연맹과 전국 노동 연맹에 아나키스트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던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방(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이었다.

러시아 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러시아 제국에는 모스크바 중심으로 적지 않은 수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 세력 또한 컸으나 막상 10월 혁명이 터지자 기존의 연대 조직이 없었던 아나키스트들은 자폭 테러를 포함한 적극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볼셰비키들에게 털리거나 흡수당했다. 이러한 상황을 본 우크라이나 일대의 아나키스트들은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이끎 아래 우크라이나 혁명적 봉기군이라는 크로포트킨의 노선을 따르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 토지 재분배, 농민들과의 협력을 기반한 무장 조직을 만들어 당시 우크라이나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던 독일 제국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그리고 안톤 데니킨 장군의 백군 상대로 혁명 전쟁을 수행하며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대를 3년간 장악하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의 시도는 결국 동맹을 맺었던 볼셰비키 적군의 배신과 공격으로 인하여 와해되었으나 서로 동의한 강령에 기반하여 아나키스트의 통합 세력을 만들어 대중투쟁을 조직한다는 이 노선은 20년 뒤 스페인 최대 노조였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초기 바르셀로나 쿠데타군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스페인 공화국의 생존에 지대한 기여를 한 전국 노동 연맹-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합(CNT-FAI)이 계승하였다.[40]

이런 특징 때문에 마흐노 당대[41]부터 지금까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가장 덜 아나키즘적인 아나키즘이자, 볼셰비키와 단 한발짝 다른 아나키즘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이는 아나키스트들에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고질적으로 제기하던 비판인, 대중이 지도 없이 자유로이 스스로 혁명적으로 그리고 계급의식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기계론적인 견해가 아니냐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전위의 부정은 의식적 지도, 즉 의식적 개입 없이도 노동대중이 스스로 혁명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포하기 마련인데 — 최소한 혁명론을 유지하는 한에서는 — 이러한 견해는 기계론이라는 유서깊은 비판을 회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점에서 강령주의는 의식적 개입을 주장하되 그것이 전위에 의한 지도라는 개념까지 나아가지는 않은 것이며, 레닌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아나키즘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아나키즘 특유의 분산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통된 혁명적 강령을 가진 이론적, 전술적, 그리고 조직적인 구체적인 입장들에 기초한 '아나키스트 총동맹'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는 하나의 정치적 전술이라 볼 수 있다.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반적이고 속류적인 세계관에서는 그야말로 극단의 끝을 달리는 두 사상의 절충 혹은 수정주의라는, 즉 어떠한 사상을 타협적으로 수정했음에도 여전히 극좌의 범주에 속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3.11. 스쾃

squat, squatting

무단점거로 번역되는 스쾃은 다른 사람의 비어있는 건축물의 무단 점거이자, 주거공간 혹은 모임장소로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유지도 포함된다.

많은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같이 지켜지는 일도 적으며, 사회 운동의 형태로 일어나기도 하는 아나키즘 기초의 운동.

4. 기타

[include(틀:토론 합의, this=문단, 토론주소1=
DivergentFlutteringCrookedDad, 합의사항1='아나코 캐피탈리즘을 비롯한 우파적 아나키즘을 아나키즘으로 볼 수 없다고 단정짓는 논조의 서술을 하지 않는다. 단 좌익 성향의 주류 아나키스트 진영에서 이들을 아나키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의견이 있음은 별도의 가치판단이 없는 선에서 서술한다.')]

명칭에 아나키즘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반자본주의 반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좌익 성향의 주류 아나키스트들은 이들을 아나키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주류 아나키스트들은 포스트 레프트 아나키즘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사회주의 성향의 사상만 아나키즘으로 인정하고 또한 아나키즘을 사회주의의 분파로 본다. 다만 이들 자신들은 스스로를 엄연히 아나키즘의 일종이라 주장한다. 그 사례로 저명한 아나코 캐피탈리즘 철학자 머리 로스바드의 서적 《국가의 해부》에서는 아나코 캐피탈리스트 사회 또한 '아나키스트 사회'로 칭하고 있다. #

4.1. 아나코 캐피탈리즘


대표적인 우파 아나키즘 사상으로, 오스트리아 학파의 종착역임과 동시에 전술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후계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 것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기자고 주장하며 정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념이다. 당연히 유럽의 전통적인 좌익 사회주의 아나키즘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은 자유시장과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좌익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의 실패에서 배운 게 없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부의 재분배와 사유재산의 철폐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유의지에 반하는 강제력을 동반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좌익 아나키스트들은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그들의 자본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국가와 권위를 만들어낼 것이며 결국 자본에 의한 억압을 합리화하는 가짜 아나키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나코 캐피탈리즘 문서 참고.

4.2. 민족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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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며 줄창 깠다.(...) [2]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3] 그의 첫 아내는 현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자 프랑스 혁명에서 중요한 인물인 메리 울스톤크래프트(1759~1797)이며, 딸은 바로 그 영문학에 있어서는 SF의 효시라고 볼수있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1797 ~ 1851)이며, 그리고 그의 사위는 조지 고든 바이런, 존 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퍼시 비시 셸리(1792 ~ 1822)다. [4] 내가 테제를 제기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먹어치우며, 내가 그것을 먹어치울 때만이 나는 '나'다...... 내가 나 자신을 먹어치운다는 사실은 그저 내가 존재함을 보여줄 뿐이다. - 막스 슈티르너 [5] 이것이 위에서 언급된 '사회혁명'의 대략적인 개념이다. [6] 해당 책의 마지막 장은 책의 제목과 일치하며 끝이 난다. "나에게 나 이상의 것은 없다." [7] 그의 저서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주로 청년헤겔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8] 니체는 슈티르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9]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 무언가 인간적인 것이 단지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건 결국 또다른 유령이다. [10] '인간적인'이라는 유령이 정신의 독재자가 되려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11] 슈티르너는 당대에 새로이 등장한 인간주의적 사상, '유적존재'라는 개념이, 또다른 숭배현상이라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숭배는 또한 결국 개인을 지배 할 것이고 자기소외의 길로 이끌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이것을 종교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는데, '인간'이라는 형상이, 종교, 국가, 자본, 같은 것들이 하는 것과 동일하게 개인을 억압하며 숭배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당대 청년헤겔학파의 주류 입장에 대한 중대한 비판이 된다. [12] 아마 이 그림이 슈티르너가 자유를 비판하고 소유로 대체한 이유를 간편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13] 바쿠닌이 신과 국가에서 대차게 비판하였는데 관념론은 이 땅에 설 자리가 없으며 오직 유물론만이 진리라고 한 바 있다. [14] 이를 마흐노는 개인의 무책임하고 그저 혼돈만 불러올 뿐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하며 비판한 바 있다. [15] 국가가 아니다. 사회가 국가는 다른 존재이며 국가는 권위적이며 자본주의의 가장 훌륭한 동료일 뿐이다. [16] 아나코 공산주의, 아나코 코뮌니즘으로도 말한다. [17] 이 점이 위의 바쿠닌의 집산주의적 아나키즘과 대조되는 면이다. 크로포트킨은 바쿠닌의 아나키즘을 지나치게 집산주의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18] 필수적인 노동자 자주 관리, 상호 연합, 직접 민주주의 등 [19] personal property, 생산수단을 제외한 재산, 즉 차, 가방 각종 가전제품 및 가구등 일상에서 상호작용하는 재산 [20] 1907년 국제 아나키스트 회의당시 말라테스타가 이런 부류였고 이후 일본 아나키즘 분리 당시 순정 아나키스트들 또한 이런 방식이였다. [21] 엄밀히 따지자면 혁명적 생디칼리슴과 아나코 생디칼리슴은 다른 종류긴 하다. 이는 1907년 국제 아나키스트 회의에서 논의된 바 있다. [22] 노동조합과 노동자 평의회를 통한 생산수단 관리를 뜻함. [23] 아나코 코뮤니즘과 마찬가지로 아나코 생디칼리슴 역시 임금제를 임금 노예제라 비판하며 반대한다. [24] 크로포트킨 역시 생디칼리슴을 아나키즘과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는지 말했을 정도. [25] 대표적인 조직이 바로 CNT-FAI [26] 물론 그렇다고 노조를 거부한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뭐에 더 초점을 맞추는지에 대한 차이 [27] 미국 미국 자유당의 주류 자유지상주의 우파 자유지상주의 계열을 의미한다. [28] 오히려 이들은 물론 다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보다는 아나코 상호주의와 더 맞닿아있는 편이기도 하다. [29] 아고리즘이 하나의 ‘전술’로도 취급되는 이유는 이러한 반체제 경제를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30] # [31] 다만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오스트리아학파에 영향을 받아 자유시장을 지향하는 특성으로 인해 우파 아나키즘의 일부로도 간주되는 편이다. [32] 특히 기독교라는 특성상 자비 평화주의가 매우 큰데 톨스토이는 아예 자경단과 같은 조직조차도 폭력적이라며 거부하고 혁명적인 방법조차 유혈적이라며 거부했다. 이에 대해서 그는 적군이 무기를 들고 우리한테 쳐들어오더라도 무기 하나 없이 평화롭게 사는 우리를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평화주의적이였다. [33] 모세나 제사장같은 존재들은 있었지만 군주라고 부룰만한 인물상이나 직책은 아니다. [34] 현재 마땅한 번역어가 없다. [35] 일리걸리스트들은 아나코 생디칼리슴의 조합주의조차 거부했다. [36] 영화 아나키스트에도 조직원들이 은행을 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강도 행각을 두고 구성원들이 갈등하는 것은 생 구라. [37] 물론 이것도 재외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에서 발행한 디엘로 트루다(Dielo Truda)라는 기관지의 아나키스트 총동맹 강령, 또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의 조직적 강령 한글 번역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 [38] 정강주의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즉각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 대중의 역량을 신뢰하는 다른 사회적 아나키즘 경향과 다르게, 각성한 소수의 아나키스트와 그렇지 못한 다수의 대중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대중들이 보다 아나키스트적이 될 수 있도록 대중 속에서 대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하여야 한다고 바라본 것이다. [39] 이는 실제로도 레닌이 주장했던 전위당과 비슷하다. 블랑키식과는 다른 전위조직이 대중에 침투하여 대중조직과 하나가 되는 그런 식의 전위조직 말이다. [40] 그리고 손 잡은 공산주의 정부에게 뒷통수 맞아 털리는 말로 또한 그대로 계승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단순히 적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너진 우크라이나 혁명군과 달리 CNT는 적어도 거점이었던 바르셀로나와 아라곤 일대에서는 정부군을 압도하는 세력을 자랑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부가 내전 중의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진 투항했다는 것이지만. [41] 마흐노와 함께 우크라이나 혁명 반군에 참여했던 볼린(Voline)과의 논쟁 링크이나, 이탈리아의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인 에리코 말라테스타와의 논쟁 링크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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