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프가니스탄 사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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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작전 2021년 한국 협력 아프가니스탄인 국내 이송 작전 2021 Operation Mira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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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아프간인들 | |
<colbgcolor=#030><colcolor=#fff> 원인 | 탈레반의 카불 점령 |
날짜 | 2021년 8월 24일 ~ 8월 27일 |
장소 | 아프가니스탄 카불 시내 및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
결과 | 한국 정부 협력 아프가니스탄인 중 한국행 희망자 전원 구출 및 이송 성공 (총 391명)[1] |
당사국 |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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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국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2] \ [[파키스탄| ]][[틀:국기| ]][[틀:국기| ]] [4] \ [[영국| ]][[틀:국기| ]][[틀:국기| ]][A]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A] \ [[태국| ]][[틀:국기| ]][[틀:국기| ]][7] \ [[대만| ]][[틀:국기| ]][[틀:국기| ]][B] \ [[필리핀| ]][[틀:국기| ]][[틀:국기| ]][B] \ [[베트남| ]][[틀:국기| ]][[틀:국기| ]][B] \ [[캄보디아| ]][[틀:국기| ]][[틀:국기| ]][B] \ [[말레이시아| ]][[틀:국기| ]][[틀:국기| ]][B] \ [[인도| ]][[틀:국기| ]][[틀:국기|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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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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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데리러 오겠다."[14] |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함락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주 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과 KOICA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구출해 국내로 이송한 작전이다. #
2. 배경
한국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구조 요청이 작전의 발단이 되었다. 친미 정부였던 아슈라프 가니 정권이 무너지고 탈레반이 예상보다 빠르게 카불로 진격하여, 카불이 함락당하는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대적인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후 카불이 탈레반의 숙청과 아슈라프 가니 정권 협력자에 대한 보복으로 피바다로 변할 거란 우려 속에, 각국은 외교관 및 주재무관, 교민들을 탈출시키는 데에 급급했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대한민국은 교민을 비롯한 국민들을 안전하게 피난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프간 현지에는 한국과 인연을 맺은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남겨진 상태였다. 문서 상단 사진처럼 대사관에서 일하던 현지인 직원[15]마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질 정도로 공관 직원, 아프간 재건 프로젝트 참여자, 코이카 등의 국제협력단 조력자 등 많은 조력자들이 탈레반 치하에 방치되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탈레반의 카불 점령 첫 날부터 외국인이나 외국인 협력자에 대한 폭력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신변 위협이 가시화되었다. 탈레반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던 만큼 아프간 국민들, 특히 탈레반이 극도로 싫어하는 '외세 결탁자들'이 처형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미 구 정권 치하 경찰청장을 살해하고, 미국과 서방세력에 협력했던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채찍질하는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후 바그람 공군기지 내부 한국직업훈련원과 한국 병원을 폭파시켰는데 훈련원에서 근무했던 현지인 훈련 교사들이 아프간에 남아 있다면 처형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
탈레반은 공공연하게 전, 현직 외세 협력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한국 협력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협력자들의 요청, 당국의 예견에 의해 8월 초부터 이송 작전이 계획되었다. #
3. 투입 부대/기관
- 대한민국 외교부
- 주 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긴급 여권 발급 및 피난 대처 지원
- 주 파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현지 정부에 공항 임대 요청과 육로 국경으로 넘어오는 인원 체크
- 주 아랍에미리트 대한민국 대사관: 초기 두바이, 아부다비 공항 대여 요청 및 현지 주둔 미군과 협력 요청
- 주 카타르 대한민국 대사관: 주아프간 대사관 임시 이전 부지 제공 및 동맹국 지원 요청
- 주 인도 대한민국 대사관: 인도 출장 중인 기여자 입국 지원 및 임시 여권 발급
- 한국국제협력단: 전반적인 비품 관리 및 인원 체크
- 대한민국 법무부
-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출입국심사, 비자 발급과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 실시
4. 전개
자세한 내용은 미라클 작전/전개 문서 참고하십시오.5. 반응
자세한 내용은 미라클 작전/반응 문서 참고하십시오.6. 의의
이 문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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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프간 한국 대사관에 한국 관련 아프간인들이 구조요청을 한 이후 한국 정부는 곧바로 아프간인 이송작전을 계획하였으며 엠바고를 통한 사전 비밀 유지, 그리고 동맹국을 비롯한 유관국과의 긴밀한 협조로 작전 수행이 원활하도록 했다. 이로써 상징 기밀성을 유지하면서도 신속한 작전 진행을 통해 개인 사정으로 카불 공항에 오지 않은 인원 및 제3국행 희망자를 제외한 희망자 전원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작전은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자력으로 수백 명의 외국인을 국내로 탈출시킨 작전[17]이 되었다. 또한 '인도적 이유'만으로 자국 교민이 아닌 '외국인들만'을 위해 해외 분쟁 지역에 군 자원을 투입해 구출한 일로 치면 유례가 없다. 전쟁으로 인해 타국의 원조를 받고, 타국이 자국민을 철수시켰던 국가가 이제는 다른 나라의 국민을 구하는 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작전이 성공한 지 12시간 만에 탈레반이 내국인 탈출 금지를 선언했고 아프간인들이 입국한 8월 26일에는 이탈리아 공군기를 향한 피격미수 사건과 공항 주위에서의 폭탄테러가 연이어 발생했는데 만약 이 작전이 조금이라도 지연됐다면 현지인들의 탈출은 물론 특임단의 신변도 위협받을 수 있었다. #1 #2 #3
희망자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구출하면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외교적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심지어 6년 전에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직원에게까지 탈출 의사를 물어보는 등 한국은 친구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했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미군과 한미동맹으로 묶여 있기도 하고 국제사회의 주요 군사강국이자 선진국 중 하나로서 향후에도 해외에서 군사작전 혹은 대민지원작전을 벌일 여지가 많다. #
때문에 이번처럼 적대적인 국가에서 한국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해당국의 보복으로부터 보호해내는 것은 추후에도 제3국에서 현지인 혹은 현지 정부와 협력하여 업무나 군사 작전을 벌일 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상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경제 구조를 생각해 보아도 대외 신인도 제고 차원에서 바람직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의 진면목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이역만리 중동에서도 발휘되었는데 미군은 한국행 아프간 난민을 위해 전세 버스 대절 지원을 하였으며 탈레반과 협상을 하여 이들이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였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현지 한국군 대표단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군 수송기의 카불공항 신속 진입을 보장했다. 여기에 영국, 캐나다 등 나토 국가의 공항 안전 지원도 한몫했다. 또한 미국, 영국, 캐나다, 인도, 파키스탄, 대만, 태국 등을 비롯한 여러 우방국들에게 신속한 협력을 얻어내어 수송 지원, 공항 사용 승인, 공항 경계 지원, 영공 개방 등의 외교적 성과도 보였다. #1 #2
7.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2021년 법무부 과잉 의전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8. 미디어
- 대한민국 공군 - '미라클 작전' 출발 및 임무수행 영상 (2021. 8. 27.) #
- 국방TV KFN스페셜 - 미라클 작전, 108시간의 기록 (2021.10.5.) #[연령제한동영상]
- 대한민국 공군 - '미라클'의 약속, 기적의 날개를 달다! (2021.10.15.) #
- KBS 1TV 다큐 인사이트 - 카불 기적의 밤 (2021.11.7.) #[연령제한동영상]
9. 여담
- 주아랍에미리트 대한민국 대사관, 주파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등 외교부와 인접국 주재 대사관들도 본 작전에 적극 참여했다. 특히 주 파키스탄 무관 허진녕 대령은 모친의 부고를 접하고도 작전에 계속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
본래 전체 391명, 1차 입국자는 378명으로 알려졌으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서 아프간인 1명은 명단에 없는 사람으로 확인되어, 군수송기를 이용해 다시 카불 공항으로 돌려보냈다. 해당 아프간인은
카불 공항에 주둔 중인
미군에 인계되어 신원조사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1차 입국자는 377명, 전체 입국자는 총 390명으로 정정되었다.
#
이후 인도로 출장 갔다 항공편이 끊겨 발이 묶인 정부협력자 1명이 주인도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추가로 입국하면서 전체 입국자는 다시 391명이 되었다.[20] #
- 카불 국제공항에서 대한민국 수송기가 이륙한 바로 다음 날, 8월 27일 카불 국제공항 입구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미군 14명과 민간인 130여명이 사망했다. 한국 정부의 구출작전이 지연됐다면 협력자 구출을 위해 카불 공항과 시내에 진입했던 대한민국 정부 인원과 군 병력, 협력 아프간인 중에서 사상자가 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테러 이후 구출 작전을 중단하는 나라가 속출했고, 기껏 자국민 및 협력자를 구출하기 위한 수송기를 보내도 대상자들이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구출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했다. #
- 공개된 작전으로서는 공군 공정통제사 요원들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사례가 되었으며, 그동안 아는 사람들만 알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공정통제사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계기가 되었다.
-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국내 이송 작전은 이것이 유일한 작전이 되었다. 탈레반이 제시한 탈출 시한은
8월 31일까지로 추가 수용을 위한 여론수렴을 하기에는 짧은 기간인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카불 공항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여, 추가 이송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
2
현재 아프간 내 정부협력자는 모두 구출했으며, 남아있는 협력자들로 추정되는 명단은 대체로 아프간 정부를 통한 간접고용자, NGO, 기업, 선교단체 등과의 민간협력자여서 테러 이전에도 추가 이송 계획은 잡혀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승민 전 의원, 양준우 전 대변인을 비롯한 야당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명확한 인원파악이 가능하고 외교적 명분도 있는 정부 직고용 현지 협력자들과 달리 간접고용자와 민간협력자는 국내 이송 명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불로의 추가 구조대 파견은 테러 사건으로 원천 봉쇄되었다.
- 현지에 파견된 국군 특수전 부대가 어느 부대인지는 밝혀지 않고 정황상 CCT라는 추측만 무성하던 시점에서 국내 군사 커뮤들은 카불 현지에서 작전 중인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들을 보며 국군의 작전 사진이 공개되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던 중 공항에서 이송 작전에 참가한 한국 측 인원 중 사복 차림에 K1A 기관단총 등 특수부대 장비[21]로 무장한 인원이 있어 혹시 국가정보원 등의 기관 소속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한국대사관 경호처 경호단장으로 확인됐다. #
-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철수했던 한국 교민 1명은 미안한 마음에 자신의 작업장을 대피 아프간인들의 쉼터로 제공했다는 미담이 알려졌다. 덕분에 탈출 대상자들이 한곳에 모여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
- 공군에서 제공한 미라클 작전 수행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었다. 다만 군사 보안 및 피난민 신변보호를 위해 일부 장면에 모자이크가 걸려있다. 피난민 신변보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모든 언론기관에 요청한 사항으로,[22] 국내의 모든 언론에서는 아프간 피난민의 모습에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를 하고 있다. # 물론 SCMP 같은 외신에선 생으로 올리기도 했다.
- 김일응 주 아프간 대사관 공사참사관은 작전 당시 카불에 돌아간 사실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해 가족들은 뉴스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 그가 주 아프간 한국 대사관의 임시 공관이 위치한 카타르에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장기체류 자격인 거주(F-2) 비자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8월 26일 입법예고했다. F-2 비자는 국내 체류 가능 기간이 최장 5년으로 연장이 가능하고 취업과 학업에 제한이 없다. 심사를 거치면 영주권도 받을 수 있다.
- 각 지역 중소기업들에 특별기여자들에 대한 고용을 요청하는 정부 공문이 발송되었다. 고용하는 기업은 특별기여자와 그의 가족이 함께 머물 숙소도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 특별기여자들 중 일부는 울산광역시에 정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23] 이는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울산광역시교육청 소속 학교에 등교, 해당 학생이 속한 학급을 순시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울산 교육감이었던 노옥희 교육감은 해당 아프간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직접 첫 등교를 함께하여 화제를 모았다.
- 주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에 보관 중이던 K2 소총 30정은 철수하면서 파기됐다. # 2014년 대사관 경비임무를 맡았던 해병대 병력이 민항기편으로 귀국하게 되었는데 이때 총기 소지가 어려워 대사관에 보관하게 된 것이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기 전에 대사관 직원들이 미국 수송기편으로 철수하면서 한두 정 정도만 휴대하고 나머지는 탈출 전에 이미 파기하였다고 한다. 외교당국에서 파기방법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총기 격발의 핵심부품인 노리쇠뭉치와 공이를 제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개인 사정으로
카불 공항에 오지 않은 인원 및 제3국행 희망자를 제외한 한국행 희망자 기준. 처음에는 전체 391명, 1차 입국자는 378명으로 알려졌으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서 아프간인 1명은 명단에 없는 사람으로 확인되어,
군 수송기를 이용해 다시 카불 공항으로 돌려보내면서 한국에 들어온 1차 입국자는 377명, 전체 입국자는 총 390명으로 정정되었다. 이 인원은 작전 수행을 통해
입국한 총원 기준이며, 이후 9월 4일에
인도에
출장갔던 정부협력자 1명이
주 인도 한국 대사관을 통해 추가로 입국하여 최종 전체입국자는 391명이 되었다.
[2]
카불 공항 경계 및 현지 이송작전 지원
[3]
카불 공항 이착륙 지원
[4]
영공 개방 및 중간 기착지(
이슬라마바드) 제공
[A]
카불 공항 경계 지원
[A]
[7]
영공 개방 및 급유 지원
[B]
영공 개방
[B]
[B]
[B]
[B]
[B]
[14]
명실상부 미라클 작전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탈출 직전 현지 대사관 통역사 직원 카심(참고로 이 사람은 마지막 버스로 간신히 들어온 사람이다)과 김일응 주 아프간 대한민국 공사 참사관이 감격하며 포옹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다. 탈레반의 예상치 못한 빠른 카불 진격에
한국의
외교부 본부는
카불 주재 대사관에 긴급 철수를 지시했고, 김일응 참사관은 마지막 교민 탈출까지 도운 후 긴급히 미군을 통해 탈출했다. 이때
미 공군 수송기엔 현지 직원들은 탑승하지 못했는데, 대신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겼으며, 그 약속을 지켰다.
#
#
[15]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의거하여 현지인 직원도 일정 수준의 외교적 특권이 있지만,
공관이
철수하고 정권이 아예 갈아치워지면서 이들의 신변도 불안정해질 정도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되었다.
[16]
인천공항에서
진천 행정연수원으로 수송할 때 육군버스가 사용되었다. 해당 버스 번호판에 "육"이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1군수지원여단 예하 601수송대대에서 버스를 지원하였다. 참고로
진천에서
여수로 이동할 때에는 민간
전세버스가 사용되었다.
#
[17]
첫 번째는
남베트남 패망 당시 탈출 사례로, 남베트남 VIP 150여 명과 교민들을 탈출시켰다.
십자성 작전 및
프리퀀트 윈드 작전 문서 참고. 다만 당시의 남베트남 VIP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의로 탈출시켰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한국인
불법체류자들의 신원조회 절차를 안 밟는 대가로 남베트남 정부가 억지로 떠넘긴 VIP들이었다. 원래는 500명을 요청했으나 현지 상황이 긴박해진 시점에 그중 150명만 와서 그들만 태우고 나갔다.
[연령제한동영상]
[연령제한동영상]
[20]
그의 가족은 미라클 작전 때 먼저 한국에 입국했다.
[21]
대략적으로 장비는 K1A, 옵스코어
FAST 헬멧, 5.11 TACTEC
플레이트 캐리어 등으로 보인다.
[22]
탈레반이 보도 영상을 근거로 현지에 남은 친인척에 보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탈레반에서는 해외 미디어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또한, 얼굴이 지나치게 알려질 경우 국내 생활 교육을 마치고 퇴소한 뒤에도 과도한 주변의 관심으로 국내 적응이 어려워진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23]
29가구, 157명이 울산 동구에 정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