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멕시코 합중국 제38대 대통령 페드로 라스쿠라인 Pedro Lascuráin |
|
|
|
<colbgcolor=#006847> 본명 |
<colcolor=#000000,#e5e5e5><colbgcolor=#fff,#191919>페드로 호세 도밍고 데라칼사다 마누엘 마리아 라스쿠라인 파레데스 Pedro José Domingo de la Calzada Manuel María Lascuráin Paredes |
출생 | 1856년 5월 8일 |
멕시코 멕시코시티 란초 라 로미타 | |
사망 | 1952년 7월 21일 (향년 96세)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재임 기간 | 제38대 대통령 |
1913년 2월 19일 오후 5시 15분 ~ 오후 6시[1] | |
직업 | 정치인 |
국적 |
[[멕시코| ]][[틀:국기| ]][[틀:국기| ]] |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2]
|
경력 |
멕시코시티 시장 외무부 장관 제38대 멕시코 대통령 (1913) |
[clearfix]
1. 개요
멕시코의 제38대 대통령. 더불어 세계에서 임기가 가장 짧은 정부수반이기도 하다.2. 생애
1856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1880년 국립 법학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10년 멕시코시티 시장으로 일했다. 시장으로 일하던 시절, 프란시스코 마데로 세력이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재선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났을 때 마데로의 편에 섰다. 결국 디아스가 마데로와 시우다드후아레스 조약을 맺고 프랑스로 망명하자 마데로 정부에서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3. 반란군의 역습
새롭게 들어선 마데로는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국민 대부분이 대농장의 소작농 신분이었고, 판초 비야와 같은 소작농 출신 혁명가들은 토지 개혁을 희망했다. 하지만 대지주 가문 출신이었던 마데로는 토지개혁에 소극적이었다.한편 디아스 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군부, 대농장주, 교회, 기업가 등은 마데로를 찬탈자로 여기며 인정하지 않았고, 전국에서 저마다 여러 이유로 들고 일어난 반란군들은 멕시코를 혼란에 빠뜨렸다.
마데로 대통령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에게 반란을 진압할 것을 명령했지만, 우에르타는 헨리 윌슨 미국 대사, 반란 세력 중 디아스의 조카 펠릭스와 밀약을 맺고 쿠데타를 일으켜 마데로를 사임시키고 감금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했다. 이 사건이 비극의 열흘 사건이다.
4. 45분의 대통령직
1857년 제정된 당시 멕시코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 시 승계순위는 부통령-법무장관-외무장관-내무장관 순이었다. 하지만 우에르타의 쿠데타 속에서 부통령과 법무장관까지 살해된 상태였다.우에르타는 합법 정부의 외양을 갖추기 위해 일단 라스쿠라인을 대통령에 취임하게 했다. 라스쿠라인은 우에르타를 권력 승계 다음 서열인 내무장관에 임명한 뒤 바로 사임했다. 그 절차에 걸린 시간이 오후 5시 15분부터 6시 정각까지 약 45분이었다.
5. 이후
우에르타 정권은 의회를 해산하고 철권 통치를 펴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등이 이끈 혁명 세력에 의해 이듬해인 1914년 7월 축출되었다. 우에르타는 스페인으로 도주한 뒤 재기를 꿈꾸다 1916년 미국 텍사스에서 사망했다.한편 라스쿠라인은 우에르타 정부의 각료 제안을 사양한 뒤 정계를 은퇴했고, 변호사와 로스쿨 교수로 지내다 1952년 향년 96세로 사망했다. 66년이 지난 2018년 루이스 에체베리아에 의해 갱신될 때까지 역대 멕시코 대통령 중 최장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