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3:36:53

독일-우크라이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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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우크라이나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2.2. 20세기2.3. 21세기
2.3.1. 2020년대
3. 문화 교류4. 대사관5. 관련 기사6. 관련 문서

1. 개요

독일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우크라이나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지만, 21세기 이후에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과 협력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20세기 초반까지 우크라이나에는 이른바 흑해 독일인이라고 해서 상당한 수의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인구가 거주하였던 역사가 있었다.

2.2.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서부 일대에 우크라이나국이란 괴뢰국을 세웠다. 우크라이나국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당시 트로츠키가 고의로 회담을 질질 끌면서 독일 장교들을 농락하자, 여기에 격문한 독일 측에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과 별도의 조약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했다. 1918년 2월 9일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독일의 보호국이 되었고, 결국 이는 소련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원래 기획했던 것보다 더 불리하게 체결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은 우크라이나 일대의 농경지를 약탈하다가[1] 제1차 세계 대전이 동맹국이 패전하면서 물러가고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일어나자 서부는 폴란드의 영토가 되고 동부는 소련의 영토가 됐다. 독소전쟁이 일어나면서 나치 독일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는 나치 독일의 점령 도중에 유대인이 절멸당하고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극심한 곡물 수탈을 당해 아사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지는 등 독일의 폭정에 시달렸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반폴란드 성향이 강한 서부 지역의 지원병들을 받아들여 제14무장척탄병사단을 편성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 독일 협력자들도 존재했다.

여담으로 독소전쟁 중에 아돌프 히틀러가 크림 고트인을 찾을려고 했으나, 이미 그가 크림 고트족들의 후손으로 생각했던 우룸인들은 18세기 예카테리나 대제가 우크라이나 각지로 이주시켜 여타 우크라이나인/러시아인과 동화되었던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범게르만주의자들은 우룸인을 잊혀진 고트족의 후예로 생각하였으나 범슬라브주의자들은 이들을 고대 러시아에 문명을 전수해 준 그리스인들의 후손으로 생각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룸인은 그냥 크림 타타르어를 사용하는 정교회 신도들의 집합이지, 이들이 무슨 고트족의 마지막 후손이니 같은 말은 유사역사학에 불과한 망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나치 독일이 패했고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 크림 반도 일대의 독일계 주민들은 전란 와중에 독일로 피신하거나 아니면 대다수가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 당했었다. 다른 한편으로 2차대전 이후 국경선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자카르파탸 지역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로 넘어왔고 자카르파탸 일대의 독일인들도 우크라이나 주민이 되었다. 스테판 반데라 등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소련의 체포를 피해 전후 서독으로 비밀리에 망명하기도 했다.
영어 자막 있음
자카르파탸의 독일계 주민들은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에 잔류한 소수의 독일계 주민 중 주요 그룹에 해당한다.

91년 소련 해체 이후에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되면서 양국은 수교했다.

2.3. 21세기

양국의 교류와 협력은 2000년대 이후에 늘어났다.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상황에 의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폴란드를 통해 독일로 이주했다. 독일내에는 우크라이나인 공동체가 형성됐고 우크라이나내에는 독일계 우크라이나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2008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논의한 국제 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독일 정부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프랑스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강하게 거부하며 가입이 부결되기도 했다. # 2010년대부터 유로마이단,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 등이 일어났음에도 독일은 국방비 축소 흐름을 이어가고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대금을 치르며 계속 천연자원을 수입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동유럽 전반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경제적 협력관계가 존재했음에도 독일측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인정하며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다. 돈바스 전쟁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로도 피난한 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유로마이단 이후로 네오나치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의 이유로 나치즘의 청산을 강하게 지향하는 독일과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불협화음이 있었다. 독일 사회민주당 내 인사들이 러시아 연방과의 우호관계를 지향하면서 돈바스 전쟁 이후로 우크라이나 일각에서 불만을 표출하는 등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2.3.1. 2020년대

2021년말부터 우크라이나 위기가 일어났지만, 독일측은 전쟁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 # 우크라이나측은 이에 주우크라이나 독일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 독일측이 헬멧 5천개를 지원하자 우크라이나측은 독일이 러시아 견제에 미온적이며 우크라이나에 겨우 헬멧 5천개 지원하고 생색내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

쇤바흐 제독이 푸틴을 존경해야 한다고 발언한 뒤 사임되자 우크라이나측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

노르망디 형식 회담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는 돈바스에서의 정전을 합의했다. #

우크라이나측이 독일 외무장관의 면담을 취소했다. #

독일측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대전차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

독일내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 독일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인력난 해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3월 26일에 독일이 지원한 스트렐라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내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정착했지만, 독일 물가가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상승하고 있다. #

4월 10일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 다만, 양국은 대러 추가 제재를 논의하기로 했다. #

숄츠 총리가 독일 의원들의 키이우행을 막고 있단 주장이 나왔다. #

우크라이나측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거절했다. #

숄츠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국방 예산에 20억 유로(약 2조6,500억원)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하지만 숄츠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지 않자 비판을 받고 있다. #

4월 19일, 독일인 의사 1,100명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신청했다. #

4월 22일 독일의 스벤야 슐체 개발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3,700만 유로(498억3,000억원)를 추가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기시다 총리와 숄츠 총리는 회담을 통해 G7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

5월 5일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1억 3,0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추가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

슈타인마이어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통해 서로 과거의 앙금을 풀기로 하며 화해하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와 동시에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숄츠 총리를 키이우로 초청하였다. #

5월 8일 독일 경찰이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대의 대형 깃발을 압수하자 논란이 일어났다. # 베를린 경찰이 분쟁을 우려하여 종전 기념일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국기를 모두 금지시킨 것이 논란이 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독일 맥주의 가격이 상승했다. #

슈뢰더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

9월 19일, 독일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에 지주포 4문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

11월 30일. 독일 연방하원이 홀로도모르를 우크라이나 민족에 대한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안건을 광범위한 다수결로 의결했다. #

독일 측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보내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

2023년,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

1월 5일, 미국과 독일 양국은 우크라이나에 경량급 탱크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

1월 10일, 안나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이 하르키우시를 방문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

2월 5일, 숄츠 촐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확전을 피한다고 밝혔다. #

2월 24일, 폴란드의 지원하에 독일제 레오파르트2 전차가 우크라이나에 전달됐다. #

독일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말라는 청원이 2월 10일에 시작한 이후, 논란이 이어졌고 참여 인원이 70만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

2024년 2월 24일,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어 표기인 키이우 표기를 정착시켰다고 밝혔다. #

3월 14일, 독일의 기업 라인메탈이 우크라이나에 탄약공장 4곳을 설립하기로 우크라이나 측과 합의했다. #

9월 20일, 독일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난민수가 118만명이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9월 23일,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하지도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3. 문화 교류

독일어는 우크라이나에서 주요 외국어로 지정됐다. 독일어를 배우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많은 편이며 독일로 이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우크라이나인 공동체

2024년 5월 25일, 독일 헤센주의 한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제2외국어로 추가시켰다. #

4. 대사관

베를린시에 주 독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키예프시에 주 우크라이나 독일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독일 측은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 #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의 우크라이나 방문과 함께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을 재개설 하였다. #

5. 관련 기사

6. 관련 문서



[1] 제1차 세계 대전 와중 독일이 주로 식량을 수입하던 러시아 제국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영국의 봉쇄로 해상 무역로까지 막히자 식량 공급이 부족해졌던 독일은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농산물을 상당부분 강제징발하여 타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