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5:43:05

휘문고등학교/출신 인물

<colbgcolor=#fff,#191919> 나무위키에 등재되거나 언급된 인물 혹은 그에 준하는 자 가나다순으로 정렬.
이름 - 직업·직책 - 졸업회수의 형태로 정리하며 직업·직책이 복수인 경우 대표적인 것들 중 최근 것이 먼저 오도록 기술.
휘문고등학교에 재학한 사실이 있는 자 한정으로 출신 인물을 기재. 단, 졸업·자퇴·제적·전학 등 학적변동 여부를 명시.
1. 정치인 / 공직자2. 기업인3. 문화예술인 / 방송(언론)인4. 체육인5. 군인6. 법조인7. 학자 / 교수8. 기타9. 미디어 속 인물

1. 정치인 / 공직자

2. 기업인

3. 문화예술인 / 방송(언론)인

4. 체육인

5. 군인

6. 법조인

7. 학자 / 교수

8. 기타

9. 미디어 속 인물



[1] 민영환의 손자 [2] 고등학교때부터 듀엣으로 교내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3] SK& 한국석유공사 합작 [중퇴] [5] 플루티스트이자 정용진의 아내인 한지희의 아버지 [6] GS칼텍스 명예회장 허동수의 장남 [7] 현대그룹 회장인 현정은의 할아버지 [8] 일제의 식민지금융정책으로 인해 신한은행의 전신인 조흥은행에 흡수합병 되어 신한은행의 일부가 되었다. [9] 농구부 출신 [10] 참고로 김동률과는 대학까지 같은 동문이다. [전학] [12] 간송 전형필이 그의 고종사촌동생이면서 동문이다. [전학] [14] 집안사정으로 인하여 전학을 자주 갔다. 졸업은 배명고에서 했다. 김동완과 같은 기수이자 친구사이. 고1 때부터 친해졌다고 한다. [전학] [16] 농구부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안양예술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17] 서장훈과 동기 [18] 정의선, 장항준과 동기 [19] 장면 내각의 그 장면 동생이다 [20] 김은희 작가의 남편 [21] 주호민의 아버지 [전학] [23] 양재고로 전학. [24] 1919년 휘문의숙을 거쳐 1923년 일본 체조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휘문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역도이론의 연구와 실제수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같은 해 11월 30일 조선체력증진법연구소를 조직하여 서울 화동 자택에 현판을 걸고 역도를 보급시켰다. 1930년 9월 자택에 20여평의 도장을 건설하고 ‘중앙체육연구소’라 명명하는 한편, 조선체력증진법연구회를 이에 흡수시켰다. 1938년 자신이 창설한 역도연맹의 회장을 맡았으며, 1946년 대한씨름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체육인으로서 『현대일보』를 창간하였고, 1950년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 그는 일제침략으로 쇠운에 빠진 민족운명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를 양성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역도를 보급,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체육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도덕생활에까지 연결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1936년 ‘역기(力技)’를 ‘역도(力道)’라는 용어로 개칭하였다. 광복 후 반공노선의 선봉에서 대한청년단을 결성하여 범청년운동을 전개하는 등 조국건설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한역도연맹에서는 우리나라 역도의 발전과 보급에 대한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서상천배역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저서에 『현대체력증진법』·『심신단련법』·『역도』 등이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상천(徐相天))] - 대한민국 역도의 아버지. 前 대한체조협회 회장.前 대한씨름협회 회장 - 10회 졸 [25] 야인시대의 그 김영태 맞다. [26] 실제로 강동원이 맡은 역할은 사기꾼 한치원으로 김재영 검사를 사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