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23:32:24

장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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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장충식.png
이름 장충식
출생 1932년 7월 25일 ([age(1932-07-25)]세)
중화민국 허베이성 톈진시
본관 결성 장씨
가족 아버지 장형
학력 휘문고등학교 (44회 /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 / 중퇴)
단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 / 석사[1])
브리검 영 대학교 (철학 / 박사)
현직 재단법인 범은장학재단 이사장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경력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사학과 교수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장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1-7대 총장
학교법인 단국대학 18-20대, 25-26대 이사장
대한적십자사 21대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대한올림픽위원회 고문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겸 대학스포츠위원장
남북이산가족상봉단 단장

1. 개요2.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다. 선친이 독립운동가 장형, 아들이 장호성이다. 호는 중재(中齋)이다. 본관은 결성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1932년 중국 톈진시에서 태어났다. 8.15 광복 월남하였다. 휘문고등학교(44회)를 졸업하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의용대 1기 뽑혀 중국어 특기자로 미군 8240 특수부대에 배치되어 중국군 동향을 살피는 일을 맡았다. 활동 중 북한 인민군 부대와 만나 격전을 벌이다, 수류탄 파편에 복숭아뼈 부상을 입었다. 부상으로 조기 전역 후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입학했다. 군 복무 후 아버지가 설립한 단국대학교로 편입[2]하여 법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후일 교생실습도 못 나갔고 아내도 결혼하고 숙명여대로 갔다고 전해진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인문과학 석사, 미국 브리검 영 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대만 문화학술원 문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60년부터 1989년 단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편 1967년부터 1993년까지 단국대학교 학장 총장을, 1996년부터 2004년까지는 학교법인 단국대학 이사장을 지냈다. 2000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지냈다.

2. 여담

  • 서민 교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교수들에게 그다지 간섭을 안하는 스타일이라 한다. #
  • 박정희 대통령와 상당한 인연이 있다. 유신 정권 초기에 아버지인 범정 장형 선생이 장면 박사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과 같은 집안이라는 이유에서 반혁명종자로 모함을 당해 장형 선생의 도피를 도운 죄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일간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장형 선생이 운영하던 단국대학교가 주간부가 폐지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직접 박정희에게 찾아가 단국대학교를 대통령에게 바치겠다고(?) 하였다.
    박정희는 독대 당시에는 별 언급이 없었지만 결국 몇개월 후 주간대학도 복원 허락이 왔고, 종합대학으로 승격 허가까지 받게 되었다. 이후 박정희에게 직접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라는 명령까지 받았으나 교육 사업에 매진해야한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국회의원 거절을 하면서도 단국대학교 캠퍼스 확장을 위한 내곡동 국유지 매입을 허가 받았을 정도로 박정희와 상당한 인연이 있다. 또한 천안에 새마을 운동하면서 천안시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캠퍼스 설립 허락을 받았을 정도이다. # 한편 장충식 총장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용하여 당시 반유신 체제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단국대학교에서 제적 당하는 걸 막았다.
  • 박원순 서울 시장이랑도 상당한 인연이 있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대학교에서 제적 당한 이후 단국대학교 입학을 허락해 준 것도당시 장충식 총장의 결단으로 이뤄진 것이며, 이후 박원순 시장의 결혼식 주례도 맡았다.
    심지어 박원순 시장이 참여연대을 운영하면서 운영자금이 부족하자, 단국대학교 병원과 보험회사 간의 알선업무를 참여연대한테 넘겨 박원순이 있던 참여연대 재정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후 박원순 시장이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자 장충식 이사장이 직접 대학 차원에서 아름다운 가게와 협력협정을 맺고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서 아름다운 가게를 홍보하기도 하였다. 이후 박원순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개인적으로 후원을 하기도 하였다. # #
  • 김영삼 대통령과 악연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선거 지원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상당한 정치 보복을 겪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삼성 이수빈 비서실장(현 삼성경제연구소 회장)이 단국대학의 재정 상황을 직접 조사한 후, 장충식 총장이 이건희 회장과 독대를 하면서 삼성의 학교 인수가 성사되기 직전 김영삼의 압력으로 무산된 사례가 있으며, 또한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직후 벌어진 교육부의 단국대 종합감사가 있다. 결국 IMF 사태로 단국대가 서울부지를 팔고 수지로 내려가며 진정한 의미의 복수를 했다.


[1] 석사 학위 논문: 明太祖의 農本政策考 [2] '아비가 만든 학교를 자식들마저 기피하면 되겠느냐'며 아버지가 학적을 옮겨버렸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