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4 23:42:49

기아그룹

1. 개요2. 역사
2.1. 1997년 이전2.2. 1997년 부도, 그리고 해체
3. 기업정신
3.1. 사시3.2. 사훈3.3. 사가
4. 역대 그룹임원5. 계열사 목록
5.1. 자동차 분야5.2. 자동차부품/중공업 분야5.3. 건설 분야5.4. 금융/통신 분야5.5. 스포츠5.6. 공익재단
6. 산하 단체/기관

1. 개요

기아자동차를 모기업으로 하여 1999년까지 존속한 한국의 기업집단이며, 그룹 본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번지에 있었다.[1]

2. 역사

2.1. 1997년 이전

이 그룹의 모태는 1944년에 학산 김철호가 세운 자전거 부품 생산업체 '경성정공'이다. 1952년에 '기아산업'으로 사명을 바꾸어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만들었고, 1959년부터 일본 혼다와 도요공업(현 마즈다) 등과 기술제휴를 맺어 1961년에 '기아마스타'란 상표명으로 오토바이 'C-100'을 만들어 이륜차 사업으로 확장했고, 1962년부터는 삼륜차 'K-360'을 만들어 자동차산업에 손을 댔다.

1970년에는 '기아써비스'를 세워 사업 확장을 시작해 1973년에 썬공업과 동우정기를 인수해 '한국금형'과 '기아정기'로 각각 사명을 변경하였고, 1976년에 동국제강 계열이던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고 삼원제작소를 설립하였고, 1978년에는 남영금형공업을, 1986년에는 대한중기공업을 각각 인수했고, 1989년 종합조정실을 발족해 그룹의 모양새를 갖추어 1992년 여의도 신사옥으로 이전 후 건설업과 금융업에까지 진출해 그 세를 불려나가 일약 재계순위 10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2.2. 1997년 부도, 그리고 해체

1997년 기아차를 중심으로 기아중공업, 기아전자, 기아정기, 기아특수강, 기산 등의 28개 계열사에 직원 5만 5천명, 1996년 자동차 수출 30억달러의 재계 순위 8위의 거대 그룹이 되었다. 특히 특정 일가의 소유가 아닌 소유 분산이 잘 이루어져 있고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는 모범 기업으로 인정받았다.[2][3] 하지만 이러한 소유구조 때문에 강력한 재벌들 사이에서 매우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1993년 자동차 산업 진출을 노리던 삼성그룹이 대량 주식 매입에 나서면서 삼성그룹과 기아그룹이 충돌하기도 했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삼성이 지분 일부를 다시 매각하지만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설은 끊임없이 제기된다.[4]

이후 기아는 국제 경쟁의 격화와 경기침체,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실적 등으로 1997년 봄부터 위기설에 휩싸이다가 결국 1997년 7월 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된다. 이후 28개 계열사를 14개로 줄이고, 기아차노조가 무분규, 임금동결 선언을[5]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결국 10월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김선홍 회장 등 경영진은 완전 퇴진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혼란 속에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지만 결국 1998년 10월 국제입찰을 통해서 1999년 현대자동차에 매각된다.

기아그룹 부도의 원인으론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첫번째는 잘못된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한 무리한 사업 확장. 기아그룹은 1990년대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산(건설) 등에 전폭적인 투자를 했으나 아시아의 트럭과 기아특수강의 철강은 수요 예측이 잘못해 만성적인 공급 과잉이었고, 주택건설에 뛰어든 기산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엄청난 자금이 묶이고 말았다. 이 3개 계열사의 적자때문에 기아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것. 생사 갈림길 선 기아그룹 패인 분석 특히 전문경영인에 불과한 김선홍 회장이 프라이드의 성공 이후 자만심에 취해 무리한 몸집 부풀리기만 하는 등 여타 재벌을 흉내내는 오너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기아사태와 경제민주화

두번째는 삼성의 무리한 인수추진과 갑작스런 자금 경색에 따른 일시적 위기. 기아그룹이 계열사 적자에 시달리다 1997년 3월 삼미그룹 부도로 인한 금융시장의 경색에 유탄을 맞은 것뿐이라는 주장이다.[6] 더구나 기아그룹은 주력사인 기아차는 흑자였기 때문에 방만한 몇 개 계열사만 정리하면 충분히 자력회생이 가능했다는 주장이 당시 기아 임직원들 사이에선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7]

5개 재벌 그룹의 10개 계열사 재무관리팀에서 간부와 임원으로 25년간 일하였던 김건씨의 "엉터리 재무제표 읽는 비법" 12페이지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1997년 당시 기아자동차가 설립 이후 34년 동안 단 1년만 흑자를 내었을 뿐이며 실제 적자는 3조 3천억원 가량이었지만 재무제표에 나타난 적자는 3800억원에 불과하였다고 나온다.

이 와중에 곁들여진게 일명 삼성음모론이다. 나중에 ' 삼성 X파일 사건'을 통해 기아차 매각 앞뒤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아차 쪽에 금융권이 추가 지원을 하지 않도록 삼성이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인 정황이 실제로 드러나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기도 했다.[8] [9]삼성이 삼성생명과 제2금융권을 통해 기아의 자금 경색을 유도하고 정부를 압박해 기아 경영진 퇴진을 이끌어 냈다는 것. 이후에 기아차를 인수할려 했으나, 자동차 산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인수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은 1997년 초에 '기아차 성장 한계 봉착' '자동차 업계 대대적인 구조조정 필요' 등의 보고서를 공개해서 기아를 흔들기도 했다. 삼성자동차 보고서 파문 부도유예협약 직후인 8월에는 '쌍용, 기아차 인수가 필요하다'는 삼성내부 보고서가 유출되기도 했다. 1999년 외환위기 청문회 당시 김선홍 회장은 "삼성이 이를 바탕으로 금융계열사 등을 통해 빌려줬던 5000억원대의 자금을 거둬들였고, 결국 기아가 파산에 봉착했다"면서 음모론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몇가지 추가 이야기가 있는데 1995년 당시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기아차 소하리 공장 출고장에 있던 봉고 J2의 사진을 찍다 기아자동차에 걸리는 바람에 기아와 삼성 간의 알력이 발생한 바 있고( 1995년 6월 17일 한겨레 기사), 1997년 3월에는 중앙일보의 취재헬기가 기아자동차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 상공을 선회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1997년 3월 13일 동아일보 기사). 참고로 봉고 J2 사진을 찍다 걸린 사건에 대해 삼성중공업에서는 사내 차원에서 중징계를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10]

그러나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더러운 짓까지 해가며 물밑작업을 열심히 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아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 삼성은 기아를 인수할 여력이 없었다. 부산 신호동 매립지에 무리하게 공장을 짓느라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했고, 호기롭게 출범하긴 했지만 IMF를 거치며 상황은 더욱 안좋아져, 가지고 있던 삼성자동차마저 다른 회사에 넘기게 될 판이었다. 결국 삼성은 기아를 인수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놓고도 남 좋은 일만 한 꼴이 되어버렸고, 삼성은 그렇게나 원하던 기아자동차가 현대차 손에 들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삼성자동차는 프랑스 르노에 인수되어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하게 된다.

부도가 나자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 발생되었는데,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인 노조와 경영자가 정치로 회사의 위기를 풀어나가려 시도한 것이다. 적은 규모의 부정 혹은 부도였다면 14%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던 노조가 1% 지분율의 경영자를 쫓아냈겠지만, 너무 부도의 규모가 크자 양 측이 합심해서 정부를 상대로 정치적인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관련기사


한편 부도 및 법정관리 당시 차범근 최진실노 개런티로 기아자동차의 광고를 나서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후에 기아자동차는 회생 후 감사의 의미로 차범근에게 엔터프라이즈를, 최진실에게는 카니발을 기증했다고 한다. # #

3. 기업정신

3.1. 사시

1. 신용있는 회사
2. 노력하는 회사
3. 꿈을 가진 회사

3.2. 사훈

1. 신용있는 사람이 되자
2.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3. 꿈을 가진 사람이 되자

3.3. 사가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김동진이 맡았다.
(1절)우리는 이 나라의 산업의 역군 / 힘차게 전진하는 슬기론 대열
시대를 선구하는 신념과 의욕 / 조국부강 이룩하리 우리 손으로

(2절)우리는 이 나라의 산업의 역군 / 가슴마다 꿈을 안은 보람찬 대열
새 지식 새 기술 슬기론 연구 / 새 역사 창조하리 우리 손으로

(후렴)기아의 깃발 아래 모인 동지들 / 협동과 사랑 속에 힘이 솟는다
우리 모두 정성껏 땀을 흘리자 / 겨레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4. 역대 그룹임원

  • 명예회장
    • 김상문 (1984~1997)
  • 회장
    • 민경중 (1981~1990)
    • 김선홍 (1990~1997)
  • 기획조정실장
    • 이기호 (1989~1997)

5. 계열사 목록

5.1. 자동차 분야

  • 기아자동차: 1998년 현대그룹으로 매각됨.
  • 아시아자동차: 1998년 현대그룹으로 매각 후 1999년 기아자동차에 합병됨.
  • 기아자동차판매: 이하 동일함.
  • 아시아자동차판매: 이하 동일함.
  • 기아대전판매: 기아차의 대전지역 판매자회사로, 이하 동일함.
  • 기아자동차서비스: 구 기아써비스. 1999년 폐업됨.
  • 기아모텍: 구 서해공업. 1999년 현대그룹에 편입됐다가 분리 후 2000년 '모텍코리아'로 변경했으나, 2001년 부도맞고 2006년 폐업됨.
  • 기아기연: 1982년 대림공업에 인수합병됨.

5.2. 자동차부품/중공업 분야

  • 기아정기: 구 동우정기제작소-(주)동우정기. 1999년 현대그룹에 매각됐다가 곧바로 한국프랜지공업에 넘어간 후 2001년부터 '카스코'가 됐으나, 2005년 현대모비스에 인수된 후 2007년 합병됨.
  • 기아중공업(현 현대위아): 1999년 현대그룹에 매각됐다가 얼마 안 가 독립해 2000년부터 '위아'가 됐으나, 2002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매각됨.
  •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 구 대한중기공업. 1997년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3년 세아그룹에 매각됨.
  • 한국에이비시스템: 1999년 현대그룹 합류 뒤 기아정기에 합병됨.
  • 아주금속공업; 1997년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3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매각돼 메티아, 현대메티아로 각각 변경했다가 2014년 현대위아에 합병됨.
  • 화천금형공업: 2000년 폐업됨.
  • 창원공업: 1997년 그룹 부도 후 2001년 위스코로 변경해 2002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팔렸다. 2010년 현대위스코로 변경 후 2014년 현대위아에 합병됨.
  • 기아전자: 1997년 그룹 부도 후 2000년 '본텍'으로 변경해 2002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팔렸다. 2005년 현대오토넷에 합병됨.
  • 모스트: 구 아스텍. 독일 보쉬와의 합작사.
  • 부기산업
  • 대경화성(현 아이아)
  • 성산
  • TRW스티어링: 1985년에 기아기공이 미국 TRW 사와 합작으로 세운 계열사. 1999년 이후 TRW가 대주주로 등극했다.

5.3. 건설 분야

  • 기산: 구 동양종합기술공사-동양종합기술건설. 1993년 이후 위장계열사였다가 1996년 들어 정식 편입됐으나, 이듬해 부도남.
  • 기산엔지니어링: 구 호산엔지니어링.
  • 삼안건설기술공사(현 삼안): 1998년 프라임그룹에 매각됨.
  • 케이티

5.4. 금융/통신 분야

  • 기아정보시스템: 구 유니온시스템. 1999년 현대정보기술에 합병됨.
  • 기아포드할부금융: 구 기아오토파이넌스. 1999년 현대그룹에 편입된 후 자산 및 직원들을 현대캐피탈에 넘기고 청산됨.
  • 기아인터트레이드: 구 KM코퍼레이션. 그룹 해체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0년에 퇴출됐고, 2010년에 법인이 소멸됐다.
  • 인터트레이드: 1994년 KM코퍼레이션에 합병됨.
  • 기아경제연구소: 구 한국경제연구소. 1999년경에 문을 닫았다.
  • 기산상호신용금고: 구 건국상호신용금고. 1998년 퇴출 후 2010년에 폐업됨.
  • 아신창업투자금융: 그룹 해체 후 1999년 현대그룹에 매각됐다가 이후 주인이 바뀌면서 코미트창업투자, 문화창업투자, 문화인베스트먼트 등으로 변경됐으나, 2015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주)마금'으로 존속중이다.

5.5. 스포츠

5.6. 공익재단

  • 학산기술장학재단
  • 학교법인 학산의숙: 구 중야학원. 1976년 인수.
    • 고암중학교: 1996년 폐교되었다.
    • 창녕공업고등학교

6. 산하 단체/기관

  • 기아연수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45-45에 소재했으며, 1997년 대한생명으로 매각됨.
  • 기아의 집: 세미나 및 연수시설로 경기도 얀양시 석수동 241-14에 소재했다. 현 블루몬테유스호스텔 건물.
  • 기아협력회
  • 기아설비협력회


[1] 그룹 해체 후 기아자동차가 쓰다가 2001년 기아차가 양재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현대캐피탈이 사용중이다. [2] 당시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의 기아자동차 지분은 불과 1%로 소유주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김선홍 회장은 비등기이사였다. [3] 전문경영인 체제가 된 이유는 당시 김석환 삼천리 자전거 회장이 기업의 규모에 겁에 질려 자신의 아버지인 김상문 회장에게 스스로 기업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소연을 했다는 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4] 삼성은 1994년 12월 자동차 산업 진출 허가를 받아서 삼성자동차를 설립했으며, 닛산자동차에서 기술을 도입해서 SM5의 생산이 시작된 건 1998년부터다. [5] 당시 기아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핵심 강성노조로 유명했다. 1997년 1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주도한 것도 기아차 소하리(광명) 공장. 현대차 노조를 포함해서 다른 곳이 머뭇거릴때 제일 먼저 파업을 개시한 것이다. 이런 노조가 무분규 선언을 할 정도였다. 마냥 강성노조라고 하는건 옳지않다. 당시 기아차의 최대주주(각 14%)는 종업원으로 구성된 우리사주조합과 포드사였다. [6] 실제 당시 재벌중에는 부채비율 1000% 재계순위 10위의 한라 등 기아보다 재정상태가 엉망인 곳도 많았다. 하지만 한라, 쌍용, 대우 등 이런 그룹들은 외환위기 이후 결국 망했다. [7] 흑자는 4조원대의 회계부정으로 만들어낸 장부상의 흑자였다. [8]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53776.html [9]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삼성그룹이 정관계에 기아차 인수를 위해서 모종의 로비를 한 정황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그 잘난 삼성도 남의 회사 회계부정, 그리고 다가올 IMF 위기는 전혀 몰랐는 듯 관련기사 [10] 이 사건 발생 후 몇년 뒤에 출시된 삼성의 트럭이 SV110 야무진 트럭. 삼성중공업 산하에 자동차사업부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