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5:53:19

마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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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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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세워진 대모스크

1. 개요2. 역사
2.1. 현대 분쟁지

1. 개요

마라노어: Bandar a Marawi
타갈로그어: Lungsod ng Marawi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 옛 지명은 단살란이다. 라나오 호수 북안에 자리하며, 인구는 약 21만명이다. 정식 명칭은 마라위 이슬람 도시 (Islamic City of Marawi)일 정도로 이슬람 색채가 강하며, 주민 중 99.6%가 무슬림이다. 2017년 다에시계열의 분리주의 집단이 점령하여 마라위 전투가 벌어졌고, 이때 정부군의 공습으로 많은 인명 사상과 시가지 파괴가 벌어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는 연중 내내 20~25도로 일정하고, 고도가 높아 비교적 선선하여 민다나오의 여름 수도로 여겨진다.

2. 역사

본래 마라나오 (메라나우) 부족장 다투 부아디 사 카요의 성채가 있었고, 1639년 10월 스페인 장교 프란시스코 아티엔차가 라나오 호수 일대를 감독할 식민 마을을 세워 단살란 (Dansalan)이라 명명하였다. 다만 같은해 말엽 수천의 마라나오 부족이 아직 요새화 중이던 마을을 공격해 스페인인들을 몰아냈다. 스페인 군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마귄다노 술탄국을 정복에 나서며 라나오 호수 일대로 돌아왔고, 두 차례의 시도 끝에 1895년 다투 아마이 파팍과 다투 시날의 사후 마라나오 거점인 마라후이를 점령할 수 있었다. 다만 1898년 미서전쟁기에 미군이 다가오자 스페인 군은 재차 일대를 떠났다.

미국령 필리핀 시기인 1907년, 모로 주 산하 단살란 시가 설립되었다. 1935년 3월, 하지 압둘하미드 봉가봉 능 18인의 마라나오 지도자들은 미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미의회에게 민다나오 및 술루의 분리 독립을 요청하는 단살란 선언을 하였다. 태평양 전쟁기인 1940년 8월, 일본군이 단살란을 점령하였다. 일본군은 위안소를 세운 후 현지 여성들을 나이를 불문하고 강제로 위안부로 삼았다. 전후 1956년, 단살란은 현지 지명인 마라위러 개칭되었다.

2.1. 현대 분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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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유일한 이슬람 다수 도시인 마라위는 1980년 마라위 이슬람 도시로 선포되었고, 중동 자본을 유치하고자 했던 마르코스 대통령도 이를 인가하였다. 2017년 5월, ISIL에 충성 맹세를 한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 아부 사야프가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후 필리핀 정부군이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의 협조 하에 1만의 병력을 동원해 공세를 가하였다.

1천 병력의 아부 사야프는 시가전을 통해 격렬히 저항하였고, 필리핀 군은 공습까지 가한 끝에 5달만에 도시를 탈환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민간인 80여명이 희생되었고, 2019년 12월까지 군정 하에 놓였다. 도시는 아직도 완전히 재건되지 않았고, 민다나오 주립대학교의 가톨릭 미사 도중 2023년 마라위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등 완전히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