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9 21:52:19

최부영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Korea Basketball National Team.png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1982 뉴델리 AG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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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1982년 뉴델리 AG 전) }}}}}}}}}

파일:최부영 감독.jpg
이름 최부영(崔富永)
생년월일 1952년 7월 7일 ([age(1952-07-07)]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학교 군산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학사
소속 경희대학교(부장)
가족 동생 최철권
병역 대한민국 해군 수병 만기전역
포지션 포워드
선수 전매청 농구단 (1976~1977)
삼성전자 농구단 (1978~1981)
지도자 경희대학교 감독 (1985~2014.02)
방콕 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 감독 (1998)
도하 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 감독 (2006)
행정 경희대학교 농구부 부장 (2014.03~)

1. 개요2. 경력
2.1. 선수2.2. 직장인2.3. 지도자
3. 기타4.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 전 경희대학교 농구부장.

2. 경력

2.1. 선수

군산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6년부터 실업 전매청(현 KT&G)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해군 소속으로 군 복무를 마친 후 삼성전자 농구단(현 서울 삼성 썬더스)이 창단하자 1979년 삼성전자 농구단으로 이적하여 198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2.2. 직장인

1983년 은퇴 후 제일모직에 대리로 입사했다. 운동선수 출신인 최부영에게 회사 업무는 쉽지 않았다. 퇴근 후 회사 동료들에게 업무 과외를 받았으며 일감을 가지고 서초동 독신자 숙소로 복귀하면 연일 밤을 샜다고 한다. 그의 담당업무는 매장영업 관리 및 제품관리 업무였으며 1년 반만에 과장으로 소중했다. 최부영은 이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며 "운동보다 몇 백배는 고단했던 시기이지만 내 60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순간이고 경험이었다. 어린 선수들에게 나의 직장 경험을 당당히 이야기하곤 한다. 좋은 교훈이 됐으면 좋겠다", "뭐든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2.3. 지도자

제일모직 회사일에 재미를 붙일 무렵 1985년에 은사인 이종희 감독이 물러난 모교인 경희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다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고교 유망주들이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등 농구 강호에 진학하고 경희대는 외면하자 어려움을 겪었다. 포기할 법 하지만 오히려 선수들을 더 혹독하게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켰다. 경기에서 지면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회기동 캠퍼스까지 뜀걸음으로 복귀하도록 명령했다는 일화도 있다.[1] 다만 스파르타식의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이미지와는 별도로 폭력쪽에서는 그 당시 대학농구 감독들 중에서는 평균 이하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대학농구 감독 중에 폭행이 극심한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TV중계 카메라가 벤치를 비춰도 선수들을 질책했으며 심판실까지 쫓아가 항의하다가 감독직에서 물러날 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2014년까지 경희대학교 감독을 역임하였다. 감독 자리는 김현국 코치에게 물려주고 현재는 농구부장이다. 경희대학교 감독 시절 엄격한 스파르타식 조련으로 유명하였다.

그 시절 지도했던 선수로는 이창수, 최명도, 장창곤, 윤영필, 손규완, 강혁, 김성철 등이 있었다.

특히 공들여 스카우트했던 윤영필을 아꼈는데 윤영필이 김택훈의 엘보우 어택에 앞니 3개를 잃는 중상을 당하자 최희암 연세대 감독에게 크게 항의했던 적이 있고 대학 4년 내내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고 졸업하자 유독 안타까워했다.

그후 1998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결승전에서 명지대학교를 꺾고 MBC배 첫 우승을 경험하면서 지도자상을 수상받았다.

한편 국가대표 농구단 감독직도 수행하였는데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남자농구단 감독 등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농구 노메달의 굴욕을 당했다.

2010년대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을 앞세워 경희대 농구부의 최전성기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평가는 혹독했다.

농구팬들에게 지도자로의 평가는 상당히 박한 편인데, 농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김민수를 센터 역할에만 한정시켜 성장 못시켰다던가, 프로에서 좋은 성장을 보이는 김종규가 대학 시절에는 뭘 배운 거냐[2]라는 비판이 나오는 식, 게다가 롤을 몰아주며 성장시킨 김민구는 사고를 쳤으니... 또 대학농구판에서 상당한 입지를 바탕으로 작전시간을 초과해 사용한다던가, 작전시간 동안 선수에게 언성을 높이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3] 또한 드래프트에서 2, 3라운드에 선수를 안 뽑는 구단이 나오자 특정 구단과 연습경기를 거부했던 전력이 있는데 겉으로 보면 자신들의 제자를 위하는 모습이지만 어차피 농구선수 엔트리는 한정되어 있기에 이번에 더 뽑히면 옛 제자들은 더 은퇴해야 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은 자신의 치적 쌓기용 언플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다만 한편으로는 고교농구 지도자들이 제자들에게 가장 추천해주는 대학농구 감독으로 꼽히기도 했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 감독을 하기도 했다. 선수빨이니 뭐니 해도 대학농구 최강의 팀을 만든 적도 있는데, 경희대가 리쿠르팅에서 썩 유리할게 없는 팀이란 걸 감안해보면 마냥 무시할만한 업적은 아니다.

3. 기타

  • 동생 최철권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기업은행 농구단(현 수원 kt 소닉붐)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1987년 전국체전에서 전북 올스타로 출전, 부산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한국기록인 1경기 97점을 기록하는 등 몰락한 명가 기업은행을 하드캐리하던 3점 슈터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고려대학교 농구부 코치, 군산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등을 거쳐 현재 숭의여자고등학교 농구부 총감독과 체육교사를 역임하고 있다.
  • 나이에 비해 상당히 파격적인 패션감각을 가지고있다. 재킷만 50벌이 넘는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옷 잘 입는 선수를 묻자 두경민을 칭찬했는데, 두경민은 이것을 듣고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막상 보면 좀 아스트랄하기는 해도 눈이 썩는다 싶은 생각보다는 그냥 저 연세에 저 성격과 외모의 감독님 패션치곤 굉장히 신기하고 재미있구나 싶은 생각 정도가 드는 패션센스라서 패션 테러리스트라거나 하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제일모직 근무 경험이 나름 저런 센스에 이유가 되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 경희대학교 농구부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정작 선수들은 디자인에 대한 불평을 토로했다고 한다(…).
  • 경희대 감독 시절 매년 스카웃 경쟁에서 고려대에게 패하자 " 고대 벤치워머 다섯이면 대학농구 평정하고도 남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타도 고대의 투지를 불태움과 함께 고대 박한 감독을 디스했다.
  • 지도하는 선수를 타이를 때 상당히 비꼬면서 찌르는 능력이 있던 감독이었다. 대표적으로 최진수를 예로 들자면 연습경기 때 소극적으로 플레이하는 최진수를 두고 "야 진숙아!"를 두고두고 외쳤다고 한다... 암만 본인 눈에 남자답지 않아도 TS를...
  • 핸드볼 선수 윤경신이 경희대 시절 농구하는 것을 보고 '쟤는 왜 농구선수를 안했을까' 하면서 아쉬워하였다.

4. 관련 문서



[1] 비슷한 일화로 현주엽도 고려대 시절 게임에서 지면 안암동까지 뛰어갔다고... [2] 김종규가 대학에서 뛸 시절에는 리바운드 셔틀 및 속공 트레일러의 한정된 역할만을 수행했다. 포스트업을 익히지 못해 LG 세이커스 입단 후 센터 출신인 강양택 코치의 지도하에 센터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3] 김종규, 두경민, 김민구가 있던 시절의 경기 당시에 "너네 지금 이기고 있냐?! 이기면서 하는 애들같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지상파로 방송을 탔다. 이 때 해탈한 김종규의 표정과 그런 김종규를 웃프게 바라보는 포카리걸의 표정이 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