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1:38:37

음식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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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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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 개요2. 역사3. 내용과 특징
3.1. 많은 부분의 생략3.2. 대갓집으로서의 특성과 역사적 차이
4. 요리 목록5. 여담6.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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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 표지의 한자는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1]이며 후손들이 덧붙여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2] 원 제목을 한자로 나타내면 飮食知味方(음식지미방)[3]으로 적을 수 있으며, 뜻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

2. 역사

1670년경 조선 시대 안동 지역에서 살았던 석계 부인 안동 장씨 정부인(貞夫人)[4] 장계향[5]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의 재령 이씨 종가로 시집온 후 75세 때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 순 한글로 썼음이 특징이다. 내용을 온전히 갖춘 순한글 조리서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6]

저자 장계향은 시서화에 능했으며 맏며느리[7] 역할과 남편 내조에 충실했다. 재령 이씨 가문의 이시명에게 시집와 슬하에 7남 3녀[8]를 두었는데, 아들 모두를 훌륭한 학자로 키워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도 남달라 대문 밖에 큰 솥을 걸고 을 쒀 300명이나 되는 걸인들을 먹였다고 한다. 퇴계 학파의 숨은 공신이라거나 맹자의 어머니에 뒤지지 않는다는 후세의 평가가 나올 정도. 결국 불천위로 모셔져 지금도 자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이렇듯 생애가 꽤 드라마틱해서 장계향의 후손 이문열[9]이 장계향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 선택>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장계향의 입을 빌려 현대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또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언급하며 페미니즘을 비난한 내용도 등장한다.[10] 장계향이 여성으로서는 동아시아 최초로 요리책을 지었다는 점이나 정부인 안동장씨 실기의 시서화를 남겼다는 점을 보면, 오늘날 관점에서는 전문직 여성이나 문필가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

현재 대구광역시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 중. 뒷표지 후기에는 "이 책을 눈이 어두운데도 간신히 썼으니, 그 뜻을 알고 그대로 시행하며 잘 간수하라."라고 쓰였다. 다른 가문으로 시집 가는 딸들은 원본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필사하여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수운잡방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추진 중이다. #

3. 내용과 특징

국수, 밀가루 음식 종류가 18가지, 어류나 육류 음식이 44가지, 그 밖에 , 한과, 식초 등의 종류를 합쳐 총 146가지 음식을 설명했다.

역사스페셜에서도 저자인 장계향의 일대기와 함께 소개된 적이 있는 책으로, 조선 시대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그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지금도 전통 음식을 재현하려는 분들이 참조하는 책이기도 하다.

<음식디미방>의 음식은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다. 음식디미방이 쓰인 시기는 17세기 후기지만 고추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경상북도 지방에 고추가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추는 임진왜란을 통해 전해졌다고 하지만, 기록상으로 1613년 『 지봉유설(芝峰類說)』에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 무렵 겨우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1766년의 『 증보산림경제』에 고추가 본격적으로 김치 조리에 이용한다고 적혔다. 대부분 찌고 굽는 방법을 사용해 담백하다. 양념으로 천초, 후추, 마늘, 가 들어간다. 육류 요리가 많은데 재료는 주로 의 위나 개고기, 고기다. 특이하게 곰발바닥 조리법도 있다.
석회를 넣어 끓인 물에 (곰 발바닥을 잠깐) 담가 털을 뽑아 없앤 후, 깨끗이 씻고 간을 쳐서 하룻밤을 재워 두어라. (이튿날 물이) 매우 솟구치도록 충분히 끓인 후 (아궁이의) 불을 반으로 줄이고 약한 불로 다시 무르도록 고아 쓰라. 곰 발바닥이 다 힘줄로 된 것이니, 다른 고기와 (같이) 하면 무르게 하기가 쉽지 않다. 곰 발바닥을 소발(牛足) 그을리듯이 불을 많이 때고 그을리면 털이 다 타고 발바닥 가죽이 들뜨게 된다. (들뜬 가죽을) 벗겨 버리고 깨끗이 씻어 무르게 고아 조각으로 잘라서도 쓴다. 발가락 사이를 칼로 긁어 째고 간장 기름을 발라 구우면 더 좋다.
개고기를 맛있게 먹는 법이 있는데, 개를 잡기 전날 [11] 푹 삶아 먹인 뒤 다음날 잡으라고 설명했다.

꿩고기는 꿩의 껍질과 뼈는 남겨두고 살코기만 발라내어 잘게 다진 후 양념하여 다시 껍질 속에 채우고 찌거나 굽는 봉총찜, 쇠고기는 양념하여 구운 고기를 찬물에 담가 수축시킨 후 다시 굽는 설야적, 요리는 다릿살과 속살을 따로 발라내고 양념하여 게 등껍질에 채워 굽거나 찌는 요리 등이 나온다. 음식을 손으로 들고 먹으면 상스럽다는 인식 때문에 손을 쓸 수 없는 양반들의 식생활을 반영한 요리였던 듯. 그리고 상류층 음식답게 만드는 데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자주 나온다.

이름이 비슷해도 지금 우리가 먹는 요리와는 다른 요리인 경우도 있다. 순대를 두고 음식디미방에서는 개고기를 이용해 만든다고 했다.[12] 빈대떡은 속에 을 넣어 지지는 화전 혹은 부꾸미와 비슷한 요리로 나온다. 오늘날 전병 과자 굽는 것과 비슷한 방식도 있는데, 기왓장 2장을 붙여 불에 데워 만드는 다식이 그렇다. 오미자차에 꿀을 타고 간장으로 간을 해 국수를 말아먹는 요리법도 있다.

3.1. 많은 부분의 생략

파일:external/a2848b9c92b94cf93a0d5540f76dfbc96cec890db4e293692f2f6d5810520bbf.png 왠지 한국 요리의 비전서 같지만, 음식디미방의 원문을 바탕으로 당시의 요리를 재현하려면 해석이 많이 필요하다.
셩이편법(석이[13]떡을 만드는 방법)
ᄇᆡᆨ미 ᄒᆞᆫ 말이면 ᄎᆞᆸᄡᆞᆯ 두 되ᄅᆞᆯ ᄒᆞᆫᄃᆡ ᄃᆞᆷ갓다가 ᄀᆞᄅᆞ ᄆᆡᆫᄃᆞᆯ고 셩이 ᄒᆞᆫ 말을 덴 물에 조히 씨어 다ᄃᆞ마 싸ᄒᆞ라 섯거 녀ᄉᆞ ᄑᆞᆺ시ᄅᆞ편ᄀᆞ치 안치ᄃᆡ ᄇᆡᆨᄌᆞᄅᆞᆯ ᄶᅩ사[14] 켜 노하 ᄶᅵ라 이 편이 ᄀᆞ장ᄒᆞᆫ[15] 별미니라 (원문)
백미가 한 말이면 찹쌀 두 되를 함께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고 석이버섯 한 말을 데운 물에 깨끗이 씻어 다듬고 썰어서 섞어 넣어 팥시루떡같이 안치되 잣을 으깨어 여러 층으로 쌓아 놓고 쪄라. 이 떡이 최상의 별미이다. (현대어역)
한양PUA 입력DB, 현대어(네이버 음식 백과)

파일:attachment/음식디미방/img_23.jpg

요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말만 듣고 흉내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식디미방은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서 많은 갈굼과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을 거듭한 며느리나 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궁금할 때 슥슥 찾아보면 "아 이거였지!" 하는 정도로 힌트를 주기 위해 쓴 책이다. 누구나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쓴 초보자용 요리책이 아니다.[16] 상당한 수련을 쌓아서 경험이 축적된 사람을 독자층으로 가정했기 때문에 저자 입장에서 당연하다 싶은 내용은 가차없이 생략해버렸다. 대표적으로 김치 담그는 법 짓는 법은 책에 없다. 그나마 꿩고기 김치가 있긴 한데, 이마저도 '꿩고기를 어떻게 조리해서 나박김치처럼 담가라.'는 것이 전부다. 이 2가지는 조선에서 요리한다면 너무 당연하게 알 터이므로 생략한 것이다.

그런데 매우 간략하긴 해도 아주 터무니 없이 생략한 것은 아니다. 현대인이라 해도 경험이 많은 주부에게 음식디미방의 내용을 알려주면 음식 문외한처럼 당황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석이편을 얼마나 오래 익혀야 하는지 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고 하지만, 경험 많은 주부들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면 당연하다는 듯 잘 익을 때까지 익히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전문 요리사들 역시 '레시피는 지침 정도일 뿐이고, 구체적인 요리를 만드는 요령은 몸과 손의 감각( 암묵지)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음식디미방>의 내용 자체는 요리 초보자용 매뉴얼 따위가 아니라 뭔가 잠깐 깜빡했을 때 찾아보고 떠올리는 정도의 용도이다. 경험적으로 요리 기술을 충실하게 익힌 사람이라면 저런 설명으로도 대강 감은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된 < 석이편>을 예시로 삼아 상황을 가정해보자. 새로 온 며느리가 석이떡을 먹지 않는 지역 출신이라 석이편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면 석이떡에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당연히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양반가 며느리인 이상 일반적인 떡 만드는 방법 자체는 당연히 알 테니, 음식디미방의 내용을 보고 이를 자신이 아는 '떡 만드는 방법'에 응용해서 석이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집안의 딸이 석이떡을 먹지 않던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면, 이 떡이 잘 익었는지 정도는 집안 어른들이나 친족 부인들에게라도 물어볼 수 있겠지만 '석이떡에 무슨 재료를 얼마나 넣는지'는 물어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위의 석이편법에서도 구체적인 조리 방법에 대한 설명은 '팥시루떡같이 안쳐라' 딱 한마디로 끝내버렸다. '시루떡을 안치는 것'(쌀가루를 시루에 올려 떡을 찌는 것)은 당시 조선 땅에 사는 (특히 양반가의) 주부들이라면 '밥 짓기'나 '나박김치 담그기' 수준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일테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반면 백미, 찹쌀, 석이버섯이라는 주 재료의 양은 아무나 알지 못하는 내용이니 각 재료의 비율까지 정확히 알려주는 것. 또 그 반면에 잣의 양은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저 요리법에서 잣은 팥 시루떡의 팥처럼 켜켜히 쌓아올린 떡반죽 사이에 넣는 것이니 팥의 양에 준하여 계산하면 충분하고, 따라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철저히,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비법에 가까운 정보만 알려주는 책인 셈.

그리고 애초에 요리 생초짜가 따라할 만한 계량적인 레시피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현대처럼 분초까지 정확히 측정하여 표시해주는 시계가 흔히 있는 시대도 아닌데 정확하게 몇분간 익히라는 것은 설명할수도 없고 이해할수도 없는 것. 굳이 설명하려면 '숫자 몇을 셀 동안 익혀라' 라거나 ' 한잔 마실 시간 동안 익혀라'와 같이 추상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이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 척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더 깊이 파고들면 '얼마 동안 익혀라'라는 설명은 열을 가하는 화력의 기준, 즉 약불, 중불, 강불 등과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데 현대의 가스레인지처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일정한 화력을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한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던 시대였다.[17] 장작 아궁이의 특성상 화력은 각자 조절하기 나름이고 또 장작(화목)의 수종과 질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되며 그 화력이 계속 일정하게 유지될수도 없는 것. 그러니 여기서 그런 설명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저자 나름대로 이런저런 기준을 제시해봤자 '충분히 익혀라', '살짝 익혀라', 물이 펄펄 솟구칠 정도로 끓여라'와 같이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정확한 판단은 독자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독자 역시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면 요리가 완성!' 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요리의 기량은 타인의 가르침+경험의 축적을 통해 스스로 쌓아나가고, 책은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찾아보는 용도로 쓰인다는 전제로 읽는 것이었다.

3.2. 대갓집으로서의 특성과 역사적 차이

현대인으로서는 '지금도 석이는 싼 재료가 아니고, 조선시대라면 더 귀한 식재료였을 텐데 그걸 한 말이나 넣냐.'며 놀라기도 한다. 석이는 100g에 2만~3만 원 정도 하는 재료로, 표고버섯보다 10배 정도 비싸다. 물론 이는 표고버섯이 널리 양식되어 대중화되면서 표고버섯 값이 많이 떨어진 영향이기도 하지만... 초반에 백미 1말을 기준으로 해 두었으니 소량으로 할 것 같으면 그에 비례해서 석이의 양도 줄이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쌀과 석이를 1:1로 아낌없이 쓴다는 것이다. 석이는 깊은 산의 바위에 붙어 자라는 지의류이기 때문에 자생량도 적고 채취도 힘들고 위험하여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다.(밧줄 하나에 의지하여 험한 산의 절벽이나 바위를 기어내려가서 석이를 따온다고 생각해보자.)[18] 보통 소량을 채썰어 고명이나 장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석이를 주재료로 아낌없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기본적으로 양반가 요리를 집대성한 책임을 보여주는 한 가지 요소이다.

사실 이런 부분을 따지자면 기준량이 쌀 1말인것 자체가 이 책이 대갓집 요리법을 정리해둔 책임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쌀 한 말은 현대 도량형으로 대략 16kg 정도이고, 당시의 도량형 관념에서 '성인 남성 1인의 1년 양식'으로 여겨지던 쌀 1석(섬)의 1/10이다. 즉 떡을 한번 할 때 기준량으로 잡은 쌀 사용량이 성인 남성 1인의 한달 식량이 넘는 양이었으니, 대가족을 거느리고 늘상 손님도 자주 받던 대갓집 안주인이 쓴 책이라는 점을 이런 부분에서도 확인 가능한 것.

내용 중 채소를 겨울에도 신선하게 보관하는 법이 있는데, 이게 마굿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축사도 아닌 마굿간이니 일반인들은 섣불리 쓸 수 없는 방법이다.

시대가 변하다 보니 지금과 상황이 달라진 부분이 좀 있다. 예를 들어 밀가루가 귀했던 그 시절에는 귀한 음식을 만든 후에 귀한 밀가루로 쑨 소스를 부어서, 고급 음식에 맞는 격식의 재료를 썼다는 느낌이 들지만, 밀가루가 흔한 지금[19] 시점에서 보면 값싼 재료를 추가하는 격이라 미묘한 느낌이 든다.

4. 요리 목록

5. 여담

영양군에서는 전용서체로 음식디미방의 글씨를 재현한 폰트를 제작해 공개했다. # 볼드체 전용이며 특별한 허가절차 없이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2022학년도 수능 화법과 작문에 출제되기도 했다.

영양군에 이 음식디미방의 요리를 재현하는 식당이 있다.

6. 관련 영상



[1] '규시의방'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닮은꼴 한자로 '대궐 안 길 (곤)' 자는 '壼' 이며 '병 (호)' 자는 '壺' 이니 호로 읽는 것은 엄연히 잘못이다. [2] '규곤(閨壼)'은 여성들이 거처하는 공간인 '안방과 안뜰'을 뜻하고, '시의방(是議方)'은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라는 뜻이다. '부녀자에게 필요한 것을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 정도의 뜻. 당대 윤리의식이 반영된, 한문 문어체로 좀 더 격식을 차린 표현이다. [3] 음식지미방으로도 이 문서로 올 수 있다. 음식디미방은 17세기 후반 당시의 정서법에 따른 표기이며, 구개음화를 비롯한 후대의 언어 변화가 반영된 현대 국어의 맞춤법에 맞게 표기를 고치면 음식지미방이 된다. [4] 3남 갈암 이현일이 이조 판서에 오르면서 받은 직위. [5] 경당일기의 저자 장흥효의 장녀 [6] 한글 표기를 포함하여 기록한 최초의 요리책으로는 최씨음식법, 주초침저방 등이 좀 더 이르다. 각각 2015년, 2017년에 발견되었다. 다만 최씨음식법은 한글 편지와 함께 내용의 일부만 전하고 있다. [7] 본래 셋째 며느리이지만, 위의 두 형님이 죽은 남편을 따라 순절(殉節)하는 바람에 사실상 맏며느리 역할을 떠맡았다. [8] 이중 1남 1녀는 이시명이 죽은 전처 광산 김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장계향이 낳은 아이들은 6남 2녀. [9] 장계향의 아들인 이현일은 이문열의 직계 조상이다. [10] 참고로 이문열은 이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문에서 본 제목만 인용해 비난했다고 한다(..) [11] 황계라고 표기했다. [12] 사실, 순대 당면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소시지처럼 고기 채소, 찹쌀을 넣는 것이 원조다. 당면은 청나라 때 들어왔지만 널리 퍼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당면 요리의 대명사 잡채 역시 정통 잡채는 문자 그대로 채소를 섞어 만든 것일 뿐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13] '石栮' 또는 '石耳'. 버섯의 일종이다. [14] '쪼수다' 또는 '쪼다'는 '찧다', '으깨다', '부수다' 등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15] 'ᄀᆞ장ᄒᆞ다'는 '끝까지 하다[究\]'의 의미. 즉 'ᄀᆞ장ᄒᆞᆫ 별미'는 '(갈 데까지 간) 궁극의 별미' 정도의 의미가 된다. [16] 사실 그 당시의 책들이 다 그렇다. 검술서나 점성술 서적, 한의학 서적 등도 그것만 가지고 독학하라고 만든 책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스승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참고로 보는 용도로 쓰였으니 말이다. 논어 같은 경전도 마찬가지. [17] 사실 오늘날에도 구체적인 시간은 각 가정의 화력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본인이 상태를 보고 알아서 짐작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상당수 요리책에서 단순히 시간 재기가 귀찮아서 '적당히 익으면...' 식의 표현을 쓰는 게 아니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지침을 주는 것은 요즘에도 TV나 유튜브 같은 멀티미디어 매체에서나 가능하고 책으로는 전하기 어렵다. [18] 그나마 말리면 보관성이 좋다는 장점 덕분에 유통이 조금 덜 힘들긴 하겠지만. [19] 밀가루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950년대 미군이 지원한 잉여 밀가루로 삼백산업(제분, 제당, 방직)이 발달하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에도 밀가루야 있었지만 그때는 이고 이고 음식 자체가 귀한 시기였다. 60~70년대 박정희 정부로 가면 쌀이 밀가루보다 더 귀해져 가게에서 쌀 음식 판매를 규제하고 밀가루 음식만 파는 시간을 따로 지정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