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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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스토니아인은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주요 민족이다. 우랄어족 발트핀어군에 속하는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서 핀란드인, 카렐인, 벱스인, 리보니아인, 보디인 등과 함께 발트핀족 계열에 속한다.
에스토니아에 90만여 명이 거주하며, 핀란드에 거주하는 에스토니아인은 5만명 이상, 스웨덴에 2만 5천여 명, 캐나다에 2만 4천여 명 정도가 거주한다. 미국에도 에스토니아 혈통 후손이 약 2만 7천여 명 거주한다. 그리고 러시아에도 소수의 에스토니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인은 역사적인 이유로 지식인 층이 발트 독일인으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훨씬 더 대우가 좋았던 핀란드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던 데다가 1950년대부터 이미 출산율이 2명대 초반 수준에 머무른 탓에 민족 인구가 많이 증가하지 못했고 독립 이후로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했던 시절도 있었다. 2010년대에 이후로 유럽 평균보다 출산율이 높아졌지만 인구를 안정적으로 증가시킬 정도에는 약간 못 미친다.[1]
2. 언어
에스토니아인들의 모국어는 에스토니아어이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가까운 언어로 핀란드어 화자와 잘 통하진 않지만 서로 뜻이 통하는 어휘가 몇 있어 서로 대화하면 힘겹게 뜻을 유추해볼 수 있는 정도. # 역사적인 이유로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 경향을 보면 러시아어를 하지 못하는 에스토니아인이 점점 많아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스토니아가 강력한 반러정책을 펼치면서 끼친 영향도 있지만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이 줄어들고, 영어가 사실상 세계 공용어가 되면서 발트 3국 역시 영어에 더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10대, 20대들 중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거나 러시아계 부모를 둔 경우가 아니라면 러시아어를 못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에스토니아 시장 인구가 그렇게 크지 않은 탓에 특정 외국어 화자만을 뽑는 경우도 있는데, 핀란드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가 주로 여기에 해당하며, 가끔 독일어나 덴마크어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영어는 해당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은 거의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영어는 기본이다. 그러니까 영어만으로 에스토니아에서의 취업은 거의 불가능이다. [2]3. 기원
과거 러시아인들은 우랄 계열에 속한 여러 부족들을 추디-에스티인이라 불렀다. 오늘날 타르투에 해당하는 지역에 키예프 루스의 도시 유리예프가 들어서기도 했으나, 덴마크와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이 지역을 정복 후 현지인들을 농노화하면서 에스토니아인들은 이웃 친척 민족들과 다르게 독일화되었다.3.1. 핀인과의 차이
이를 테면 핀인과 카렐인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었는데, 스웨덴 왕국의 핀인 농민은 거의 자영농이었으며, 후에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된 이후에도 높은 자치와 가벼운 조세 부담 등 특혜를 누린 반면, 에스토니아인은 중세 이래로 가혹하고 혹독한 농노제로 고통 받았던 역사가 있다.3.2. 세투인과의 차이
키예프 대공국 시절 유리예프에 거주하던 에스토니아인은 십자군의 침략 이후 노브고로드 공화국 영토로 이주하여 세투인이 되었다. 이후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점령당하고 당시에도 아직 기독교 대신 토속 신앙을 믿고 있었다 하며 결국 이반 4세 시절 정교회로 강제 개종이 이루어졌다. 에스토니아의 에스토니아인들은 가톨릭-개신교-무신론 테크를 탄 것과 다르게 세투인들은 오늘날에도 대부분 정교회 신자이다.
세투인 관련 자세한 설명 및 화보 보기(러시아어)
4. 종교
에스토니아인 대다수는 핍박 받는 농노의 입장이었고 독일인 지주들은 이들을 명목상 개종시키는 데 만족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어로의 성경 번역은 매우 더디고 성의없이 진행되었다. 그나마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최초의 에스토니아어 성경이 발행되기도 했고, 스웨덴 지배 영향으로 탈린, 타르투, 패르누 등 도시에는 루터교를 믿는 독일인 지주층이 늘어났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인 입장에서 기독교는 외국인 지주들이 외국어로 제사지내는 문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대북방전쟁으로 에스토니아의 지배권이 스웨덴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에스토니아인은 무늬만 기독교도인 토속 신앙 신봉자로 간주되곤 했다.소련의 무신론 강요 이후 루터교 뿐만 아니라 토속 신앙까지 뿌리뽑히고 러시아 제국 시절에 정교회로 개종한 일부 에스토니아인들조차 무신론자가 되면서 오늘날 에스토니아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이고 무신론자 비율이 높은 민족으로 꼽히게 되었다. 종교를 믿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그 외국인 배우자의 종교를 믿게 되는 등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면 토착 에스토니아인들은 무신론이 매우 보편적이다.[3]
5. 문화
에스토니아인들은 실용주의 문화가 강하며 평균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평균적으로 3개 국어가 구사 가능하다. 에스토니아가 과거 구소련 출신 국가들 중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윤택한 국가가 된 것도 에스토니아인의 실용주의와 교육열 덕이 크다.19세기 말 에스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에스토니아어와 민족주의를 부흥시키기 위해 에스토니아 민중들에게 에스토니아어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이 전통은 에스토니아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 노래 혁명으로도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에스토니아인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화음을 넣어 합창할 수 있다고 하며, 타르투에서는 매해 정기적으로 사실상 국가 독립을 기념하는 페스티벌 라울루피두(Laulupidu)가 열린다.
민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에스토니아인 대부분은(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제외) 에스토니아가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발트 3국 국가인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가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것과 대조적.
6. 에스토니아인 인물
- 니키타 바실리예브
- 라그나르 클라반
- 루돌프 토비아스
- 뤼디아 코이둘라
- 마르트 폼
- 안톤 한센 탐사레
- 안젤라 카요
- 알렉산드라 티케르푸
- 알라르 카리스
- 올리베르 바하르
- 우쿠 수비스테
- 위리 빕스
- 야코브 후르트
- 카야 칼라스
- 카르멘 카스
-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 캐틀린 아스
- FlyingKitty
- 칼 로베르트 야콥손
- 콘스탄틴 패츠
- 파울 케레스
- 파보 얘르비
- 헨리 아니에르
- 오트 태나크
7. 에스토니아인 캐릭터
※ 해당국의 작품 제외.
[1]
에스토니아의 전체 출산율은 1.7명대인데, 이중에서 에스토니아인은 1.8~2.1명 사이, 러시아인은 1.4~1.5명대 정도로 추산된다.
[2]
에스토니아 20대들은 체감 80% 이상이 영어+에스토니아어 조합으로 2개 국어이며, 다른 북유럽 언어 중 하나를 끼워 3개 국어인 경우도 많다. 4~5개 국어인 경우도 타국가보다 많다.
[3]
에스토니아인 못지않게 무신론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되는
체코인들조차 문화적으로나마
가톨릭과
후스파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